어린 왕자와 상표권 분쟁

2008/04/15 09:23
0. [어린 왕자]가 상표권 분쟁에 휘말렸다.
대형서점에서 [어린 왕자]가 사라지고 있단다.
궁금증을 정리할 겸 포스팅한다.


1. 상표권 분쟁 개요

일단 위 [어린 왕자] 상표권 분쟁 개요는 다음과 같다.

ㄱ. 생떽쥐베리 유족재단인 소젝스(SOGEX) -> 한국내 공식 에이전트 GLI 컨설팅(외국 유명 패션 브랜드 국내 라이선스 사업을 한단다)과 인피니스 (GLI의 법률 대리인)
ㄴ. 대형서점에 문제제기 : 당신들이 유통시키는 [어린 왕자]는 우리 의뢰인이 등록한 상표에 대한 권리(삽화 두 개, 제호 두 개)를 침해하고 있소이다.
ㄷ. 대형서점들 : (법률검토 뒤) 괜히 분쟁에 휘말리기 전에 출판사에 반품해야겠다. ㅡ.ㅡ;
ㄹ. 어린 왕자 출판사들 이구동성, 뭐냐? 썅! 
a. 생떽쥐베리는 64년전에 죽었고, 우리 저작권법은 저자 사후 50년까지만 저작권을 인정하는데 왜 난리냐? - 의견1.

관련 저작권법 규정
제39조 (보호기간의 원칙)
① 저작재산권은 이 관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저작자의 생존하는 동안과 사망 후 50년간 존속한다. 다만, 저작자가 사망 후 40년이 경과하고 50년이 되기 전에 공표된 저작물의 저작재산권은 공표된 때부터 10년간 존속한다.
② 공동저작물의 저작재산권은 맨 마지막으로 사망한 저작자의 사망 후 50년간 존속한다.


b. “국내 저작권법을 보면 저작자의 텍스트뿐 아니라 삽화도 저작물로 돼 있어 사후 50년이 지난 삽화도 사용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한겨레 기사 중 문예출판사 전병석 사장) - 의견 2.
ㅁ. 암튼 출판사들은 연대해서 특허청에 상표등록 무효 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이게 [어린 왕자]와 관련한 상표권 분쟁의 개요다.
아, 이 분쟁이 촉발된 계기는 이 상표 사용 계약을 한 업체가 새로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출판 및 팬시사업체(아르데코)에서 이 상표권 사용계약을 맺고, 출판물 및 팬시용품에 이 문구(제호)와 그림(삽화)를 사용하고 있단다.


2. 정리(쟁점)

어린 왕자 이슈를 생각나는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ㄱ. 이건 저작권 이슈가 아니라, 상표권 이슈다.
조선일보 기사가 이 부분을 적절히 지적하고 있다. 개인적으론 유감스럽게도, 이 이슈를 가장 먼저 보도한 것도 조선일보고, 가장 심도있는 기사를 쓴 것도 조선일보다. 다른 언론사들은 대충 사실관계만 언급하고 있는 정도고. 이 점은 개인적으론 좀 아쉽다. (조선일보 관련기사)

ㄴ. 소젝스(생떽쥐베리 유족재단)는 어쨌든 제호(프랑스 제목과 우리말 제목)와 그림 두 개(생떽쥐베리가 그린 삽화)에 대한 우리나라 내에서의 상표 등록을 1996년에 이미 마쳤고, 특허청은 (어쨌든) 이를 인정했다.

ㄷ.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뒤(그 동안은 이 상표에 대해 일언반구가 없었다) 아르데코(국내업체)는 소젝스(생떽쥐베리 유족재단)에 어쨌든 돈을 주고 상표 사용 계약을 맺었다. 그러니까 자기만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돈 주고 샀다. 그러니 자기는 돈 주고 구입한 상표를 다른 넘들은 돈 안내고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소젝스와) 아르데코는 판단했을테다.

ㄹ. 앞으로의 쟁점
위 조선일보 기사를 참고하면 족하다.
요약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저작물의 일부인 제목과 삽화만 따로 상표권이 인정되어(현실적으론 특허청이 인정했지만) 이미 저작권이 소멸한 저작물의 유통을 제한할 수 있는가?
- 찬성 논리 : 삽화와 서체에 대한 대중적인 인지도(이거 생떽쥐베리가 그리고 쓴거잖오.)가 확보되면 상표권 인정된다. (아무개 변호사) (위 조선일보 기사 참조)

- 반대 논리 : 상표권 침해는 상표로 사용했을 때만. 아르데코가 자신의 상품을 구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면 책에 있는 삽화와 제호는 상표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 (아무개 변리사) (위 조선일보 기사 참조)


3. 관련 상표법 관련 규정 및 유사(실은 별로 유사하진 않은) 판례

상표법 [법률 제8458호 일부개정 2007. 05. 17.]

제1조 (목적) 이 법은 상표를 보호함으로써 상표사용자의 업무상의 신용유지를 도모하여 산업발전에 이바지함과 아울러 수요자의 이익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정의)
①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상표"라 함은 상품을 생산·가공·증명 또는 판매하는 것을 업으로 영위하는 자가 자기의 업무에 관련된 상품을 타인의 상품과 식별되도록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이하 "표장"이라 한다)을 말한다.
가. 기호·문자·도형·입체적 형상·색채·홀로그램·동작 또는 이들을 결합한 것
나. 그 밖에 시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

제3조 (상표등록을 받을 수 있는 자)
국내에서 상표를 사용하는 자 또는 사용하고자 하는 자는 자기의 상표를 등록받을 수 있다. 다만, 특허청직원 및 특허심판원직원은 상속 또는 유증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상표를 등록받을 수 없다.

제6조 (상표등록의 요건)
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상표를 제외하고는 상표등록을 받을 수 있다.
1. 그 상품의 보통명칭을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표장만으로 된 상표
2. 그 상품에 대하여 관용하는 상표
3. 그 상품의 산지·품질·원재료·효능·용도·수량·형상(포장의 형상을 포함한다)·가격·생산방법·가공방법·사용방법 또는 시기를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표장만으로 된 상표
4. 현저한 지리적 명칭·그 약어 또는 지도만으로 된 상표
5. 흔히 있는 성 또는 명칭을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표장만으로 된 상표
6. 간단하고 흔히 있는 표장만으로 된 상표
7. 제1호 내지 제6호외에 수요자가 누구의 업무에 관련된 상품을 표시하는 것인가를 식별할 수 없는 상표


관련 판례(는 아닌 것 같지만... 무료로 판결요지나마 제공되는 건 이것 뿐이라서.. ㅠ.ㅜ; )

특허법원 2003. 8.14. 선고 2003허2027 등록무효(상)

판시사항
[1] 저명한 캐릭터 또는 그 명칭이 상표적으로 사용되는 경우 언제나 주지·저명한 상표인지 여부(소극) 및 그 판단 기준
[2] 저명한 저작물의 제호나 그 캐릭터의 명칭을 상표로 사용하는 것이 상표법 제7조 제1항 제4호에 해당하는지 여부(소극)

판결요지 (이하 판결문 특유의 만연체는 독해 편의를 위해 분절해서 처리)
[1] 저명한 저작물에 등장하는 이른바 캐릭터(character) 또는 그 명칭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고객흡인력 때문에 이를 상품에 이용하는 상품화(이른바 캐릭터 머천다이징; character merchandising)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고, 그와 같은 경우에는 상품의 출처를 표시하거나 품질보증기능을 하는 등 상표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캐릭터 또는 그 명칭이 상품화 사업을 통하여 상표적으로 사용되는 경우 캐릭터 자체가 저명하다 하여 상표적으로 사용된 표장 자체가 바로 그 캐릭터에 관한 상품화사업을 영위하는 특정 집단(group)의 상품표지로서 수요자들에게 널리 인식되어 있다거나, 그 상품이나 상표라고 하면 그 특정 집단의 상품이나 상표라고 인식될 수 있을 정도로 알려져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캐릭터 또는 그 명칭이 상품화되어 주지·저명한 상표 또는 특정인의 상품이나 상표로서 인식될 정도에 이른 상표라고 할 수 있는지 여부는 캐릭터 자체가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캐릭터 상품의 판매실적, 상품의 공급기간, 영업활동의 기간, 방법, 태양 및 거래범위 등을 종합하여 거래실정 또는 사회통념상 객관적으로 상표로서 널리 알려져 있느냐의 여부 등을 종합하여 이를 판단하여야 한다.

[2] 저작물의 제호나 캐릭터의 명칭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상 또는 감정의 표현이라고 보기 어려워 저작권법 제2조 제1호에서 저작권의 보호대상으로 규정한 저작물이라고 할 수 없고, 따라서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누구나 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저작물이나 그 캐릭터가 주지·저명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저작물 자체 또는 캐릭터 자체에 내재된 재산적 가치는 별론으로 하고 이러한 제호나 캐릭터의 명칭에 어떤 재산적 가치가 화체되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상표를 등록하여 사용하는 행위가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없는 이상은, 저명한 저작물의 제호 또는 그 캐릭터의 명칭을 모방한 표장을 사용한다는 사실만으로 저작물에 내재된 재산적 가치를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행위로서 상표법 제7조 제1항 제4호 소정의 공공의 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을 문란하게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없다.

실은  특허법원  2000.11.23. 선고   2000허3449  등록취소(상) 이 판결을 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이건 대법원 판례검색 사이트에서는 검색이 안되고, 법률 관련 사이트에서는 유료로만 볼 수 있다.

문득 이런 분야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과 놀랄만한 자료 정리를 보여주셨던 알짜매니아님이 생각나는구나.. 요즘은 뭐하시는지 모르겠다.
다시 블로깅하시면 좋을텐데...


4. 결

나는 이 분쟁 어느 한편에 서야 한다면 당연히 출판사 쪽이다.
생떽쥐베리 유족재단은 조상 잘만나서 참 오래도 해먹는다는 생각 (막연하지만) 들고.
우리나라 특허청은 왜 상표 등록 해줬나 싶은 생각도 든다.
50년 동안 해먹었으면 족하지 않나 싶은거지.
거기에 또 상표 등록해서, 그걸로 장사하고 싶나...

그리고 무엇보다..
B612에 있을 어린 왕자가 이 세속 세계의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하늘나라에서 아직도 비행하고 있을 생떽쥐베리는 또 어떨지...
내 생각엔 이럴 것 같다.

쯧쯧쯔... 
잘들 논다...
 -


* 관련 추천글 - 엔디님의 연재 (강추)
어린 왕자를 소비하는 사회: 어린 왕자 상표권 분쟁 
개악판 『어린 왕자』: 예담-아르데코7321판을 둘러싼 번역 비교 






1. 나는 국제뉴스, 특히나 정치뉴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일단 기본적으로 거기에 까지 미칠 관심의 여력이 없을 뿐더러, 영어를 못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국제 정치기사를 읽을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언론, 특히나 거대신문에서 국제 정치뉴스를 접하면,워낙에 외신을 지 멋대로 해석해서 전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종종 악의적 오역도 있는 것 같고), 그리고 한편으론 읽어도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는 피상적인 찌라시풍 기사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런 이유도 어느 정도는 작용하는 것 같다.

하지만 게이터로그에서 전해주는 이런 저런 미국 정치 소식은 매우 흥미롭게 탐독하는 편이다. 어제 저녁에 흥미롭게 읽은 이야기는 '오마바의 실언'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4월 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었던 기금모금행사의 연설에서 오바마는 펜실베니아, 인디애나주등 미 중부지역의 백인 블루컬러층들이 일자리를 잃고 분노에 차서 다른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는 무관심 혹은 적대감을 갖고 사냥이나 종교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리고 허핑턴포스트에서 이 비공개 기금모금행사의 오바마 연설 녹음된 파일을 올린 것이다.

- 아거, 오바마의 실언. 중에서

오바마 실언에 그 자체에 대해선 위 글과 위 글에 있는 관련 링크에서 확인하시면 좋겠다.


2. 그런데 실은, 내가 관심을 갖는 건 오바마 실언 그 자체가 아니다. 그리고 그 실언이 과연 오바마의 대선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것이 오바마가 낙마하는 결정적인 패착으로 불거질 것인지도, 솔직히 그렇게 큰 관심사는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갖는 건 다음과 같은 영역이다. 위 글에서 아거님이 펄님 논평에 남긴 답글을 읽어보자.

비공개 기금모금 행사에서 행한 발언을 녹음해 와서, 인터넷에 올린 허핑턴포스트 측의 보도 윤리도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물론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만… 내부지지자의 환호와 비공개 행사라는 점에서 경계심을 풀고 속내를 이야기하다 뒷통수를 맞은 것 같네요.

아이러닉한 것은 허핑턴포스트의 성향으로 볼 때나 비공개 지지자 기금모금 행사에 갈 정도면 보도한 사람은 오바마 지지자일 것인데, 자신의 정치적 지지보다는 “특종”으로 이름날리는 것이 더 중요했던 모양입니다.. (아거)



3. 추론들 : 몇 가지 딜레마
위 아거님 답글이 없었다면 포스팅하는 일은 없었을거다. 실은 위 아거님 글을 읽으면서도 아거님이 펄님 논평에 대해 답한 바로 그 내용이 몹시 궁금했다. 그 사정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는 바에야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할 것 같다.

ㄱ. 특종에 대한 욕심과 정치적 당파성이 충돌한 경우
ㄴ. (독자) 알권리에 대한 의무감와 정치적 당파성이 충돌한 경우

일단 아거님께서는 위 ㄱ.의 관점에서 답글을 쓰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아거님께 개인적인 궁금증을 여쭤봤다.

아거님께서 허핑턴에 기고하시는 입장이라면, 그리고 오바마의 실언이 담긴 파일을 비공개, 지지자 모임에서 입수하셨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셨겠는지요? ()

아거님께서는 어떤 답을 하실까? (물론 답하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지보다는 “특종”으로 이름날리는 것이 더 중요했던 모양" 이라고 하신 것으로 보건대, 아마도 발표하지 않으셨을 것 같다.

보충 1. 방금전에 확인했는데, 아거님께서 답하셨다. 역시나 아니라는 쪽으로.

이런 특종은 진짜 경박한 특종입니다.
오바마가 백인 블루컬러를 폄하하는 마음에 사로잡혀서 나온 말이라면 모를까, 다소 이 지역의 블루컬러계층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서 무심코 한말인데 이걸 부각시켰으니 말입니다.

이런 발언이 문제가 되어 선거에 진다면 진짜 문제가 있는 거지요.
제가 괜히 민감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예쁘지 않은 마사지걸이 성심껏 서비스해주기 때문에 안예쁜 마사지걸을 ‘고른다’는 분이 대통령이 된 나라의 국민 입장에서 생각할 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이 발언이 치명적이다고 생각하는 것은 힐러리측의 주장에 말려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힐러리는 계속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네요…. (아거)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어려운 문제고, 골 때리는 문제일 것 같다.
그 구체적인 상황이 그다지 단순하지가 않다.

일단 오마바의 실언은 문맥상 취지를 '호의적'으로 헤아린다면 '있을 수 있는 발언'이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 있을 수 있는 발언인가 아닌가, 란 점이 아니다. 문득 지난 대선 때 김근태의 실언이 생각난다 (온갖 악재 속에서도 이명박 지지율이 요지부동이자.. "국민이 노망났다"고 했던). 나는 김근태를 꽤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만(덧. 이번 총선에서 뉴라이트에게 밀린 건 정말 아쉽다...), 그건 미친 소리다.

하지만 김근태 발언 역시 내 정치적 당파를 투사해서, 그리고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이메가의 지난 악행(특히 범인은닉사건이랄지...)과 당시 하나둘 드러났던 온갖 범법 증거들이라는 그 '문맥' 정보와 함께 들으면 '있을 수 있는' 발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게 실언인 사실,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그 여파를 생각하지 못한 경솔함이 드러난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다시 돌아가서, 이 발언이 있을 수 있는 발언인가 아닌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발언은 그 '내심상의 진의'가 문제되는 발언이 아니라, 그 정치적 활용이 전적으로 중요한 발언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이건 정말 말그대로 전략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수 밖에 없고, 그게 현실 정치 세계,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혐오하는 철학 없는 '투쟁'의 세계,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정치라는 진흙탕이다(말 그대로 이전투구).

여기에는 당연히 당파성 매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건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그 정도에서는 차이가 있겠다 싶긴 하지만. 아무렴 조중동 같은 멋진 신문이 세상이 또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런다.

간단히 쓰려고 했던 글이 너무 길어지는데, 아무튼, 위 ㄱ. ㄴ.의 딜레마가 나로선 몹시 흥미롭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 물론 사안 마다 그 구체적인 조건과 역학이 다를테고, 이를 일률적으로, 어떤 원칙론에 입각해서 답하기란 어렵다는 생각이 일단 든다.

질문을 나에게 던져본다. 내가 그 현장에 있는 허핑턴 포스트에 기고하는 블로거였다면, 그런데 내가 지지하는 어떤 유력 대선 후보가 치명적인 실언을 했고, 그 실언이 녹음된 파일이 나에게 있다면, 있을 수 있는 실언이라고 주관적으론 이해하지만, 정치적으로 경쟁자들에게 매우 악의적으로 해석될 여지도 동시에 있는 발언이었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나?

나는 아마도 그 내용을 발표했을 것 같다.
물론 오바마를 현실정치인으로서는 비판하되, 그 발언 취지를 알리고자 노력하면서 말이지.

이런 가정적 선택은 다음과 같은 추론에 바탕한다.
미디어 핵심 타겟인 오바마(의 모임이)라면, 분명히 힐러리 첩자(?)라거나, 혹은 여타의 저널리스트, 혹은 보수파 블로거들의 ‘위장 잠입’이 있었을 거다. 그러니 어떤 발언이든 간에 그게 자신의 당파에게 이로운 발언이었다면, 그래서 오바마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문제'로 해석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 예방주사 차원에서, 넘들이 먼저 때리기 전에 내가 먼저 때리는 거지.

.....

문득 호기심이 생겨서 글까지 썼지만..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세상에는 어느 하나의 관점만으로, 어느 원칙만으로 해석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권력의 역학, 관계의 역학들 속에 존재하는 문제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런 문제들이 흥미롭기도 하고, 때론 짜증스럽기도 한데, 오바마 이슈는 그 모두다.


4.
아, 그런데 내가 이 글 소재로 삼은 아거님 글에서 정작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여기에 적은 이 호기심들을 자극한 어떤 구절들, 어떤 상황들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아마도 다음과 같은 지적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과 한나라가 공동으로 “좌파척결” 캠페인을 벌인다. 노무현씨나 김대중씨가 좌파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나라/조선에게 주지시켜주려는 논객들이 있는데, 그 간교하게 머리 잘 돌아가는 인간들이 그걸 모를 리 없다. [중략] 알면서 계속 지겹도록 좌파라고 세뇌시키는 것이다. 결국 언젠가는 ‘좌파’라는 말만 들으면 진저리를 낼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질 날이 올 것이다. 아니 이미 온 것도 같다.
- 아거, 오바마의 실언. 중에서


원래 여기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호기심 때문에 엉뚱한 글을 써버린거다.
여기에 대해서도 가급적, 짧게라도, 포스팅할까 싶다.


* 발아점 & 글재료
오바마의 실언 (아거)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그럼, 그냥 죽어라. 죽을 테면 죽어봐”라고 말하면서 라이터를 건네 줄 당시 피해자가 이를 이용하여 분신하여 자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위와 같은 행위를 한 경우의 판결. (지법판결)

피고인과 사귀고 있는 ***의 예전 남자친구인 피해자 000(26세)이 몸에 휘발유를 끼얹은 채 찾아와 피고인과 위 ***가 탑승한 차량을 가로막으며 흥분하여 “***가 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보는 앞에서 죽어 버리겠다. 정말 몸에 불을 붙이겠다.”라고 말하자 동인에게 “그럼, 그냥 죽어라. 죽을 테면 죽어봐.”라고 하며 소지하고 있는 라이터를 동인에게 건네주어 동인으로 하여금 위 라이터로 몸에 불을 붙이게 하는 등 동인이 자살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같은 해 12. 12. 21:50경 서울 강남구 대치4동 **** 병원에서 동인이 화염 화상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부전 등으로 사망함으로써 동인의 자살을 방조한 경우의 책임

- 출처 : 대법원 전국법원주요판결



이하 판결문 재구성

서울동부지방법원 제11형사부 판결
사건 : 2007고합342 자살방조
판결선고 : 2008. 4. 2.
검사 : 이문한

*** : 피해자의 옛 애인. 피고인의 현재 애인.
### : 피해자. ***의 옛 남자친구.
피고인 : ***의 현재 남자친구.


1. 범죄 사실

2007년 9월 5일 새벽 3시 35분경 서울 송파구 잠실동 도로상.
피고인과 사귀고 있는 ***의 예전 남자친구인 피해자 ###(사망)은 몸에 휘발유를 끼얹은 채 찾아와 피고인과 ***이 탑승한 차량을 가로막으려 흥분하여 소리쳤다.
"*** 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보는 앞에서 죽어 버리겠다. 정말 몸에 불을 붙이겠다"

이에 피고인(현 ***의 애인)은
"그럼, 그냥 죽어라. 죽을테면 죽어봐"
라고 하며 소지하고 있는 라이터를 피해자에게 건네주어 동인으로 하여금 몸에 불을 붙이게 하는 등 자실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결국 피고인은 같은 해 12월 12일 오후 9시 50분 경 서울 강남구 모병원에서 피해자가 화염 화상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부전 등으로 사망함으로써 동인의 자살을 방조하였다.


2. 쟁점 판단
ㄱ. 피고인(및 변호인) 주장
라이터를 건네준 사실은 있으나, 피해자가 이를 이용 분신자살할 것이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으므로 피고인에게 자살에 대한 방조의 범의(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ㄴ. 판단
자살방조죄(252조 제2항)는 자살하려는 사람의 자살행위를 도와주어 용이하게 실행하도록 함으로써 성립되는 것이다. 그 방법에는 자살도구인 총, 칼 등을 빌려주거나 독약을 만들어 주거나, 조언 또는 격려를 한다거나 기타 적극적, 소극적, 물질적, 정신적 방법이 모두 포함된다. 이러한 자살방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방조 상대방의 구체적인 자살 실행을 원조하여 이를 용이하게 하는 행위의 존재 및 그 점에 대한 행위자의 인식이 요구된다(대법원 1992. 7. 24. 선고. 92도1148 판결).

그리고 범죄 구성요건의 주관적 요소로서 미필적 고의라 함은 범죄사실의 발생 가능성을 불확실한 것으로 표상하면서 이를 용인하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하려면 범죄사실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음은 물론 나아가 범죄사실 발생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어야 한다.

그 행위자가 범죄사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용인하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 행위자의 진술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 외부에 나타난 행위의 형태와 행위의 상황 등 구체적인 사정을 기초로 하여
- 일반인이라면 당해 범죄사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고려
하면서, 행위자의 입장에서 그 심리상태를 추인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 5. 14. 선고 2004도74 판결 참조).

앞서 든 증거에 의하면
a. 피해자는 2007. 3경 피고인의 여자친구인 ***와 헤어진 후 여러 차례 ***를 찾아와 "나와 헤어지면 네 앞에서 죽겠다."라는 말을 하였고, 이를 알게 된 피고인도 이 사건 범행 전에 ***와 함께 피해자를 만났던 적이 있는 사실. 
b. 이 사건 범행 당일 술에 취한 피해자가 휘발유를 준비하여 피고인과 함께 PC방에 있던 ***를 근처 놀이터로 불러내서 "너 보는 앞에서 죽을테니까 평생 후회하며 살라"라고 말한 사실. 
c. ***가 PC방으로 돌아가자 피해자가 휘발유를 몸에 끼얹은 채 피고인이 있던 PC방으로 찾아왔고, 강한 휘발유 냄새를 맡은 PC방 주인이 경찰에 신고까지 한 사실.
d. 피고인과 ***가 PC방에서 나와 피고인의 차에 탔으나, 피해자가 피고인의 차를 막아선 채 "죽어버린다. 몸에 불을 붙이겠다."라고 말한 사실.
e. 피고인이 차를 후진하여 가려고 하였으나 피해자가 계속 따라붙자,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그럼, 그냥 죽어라. 죽을 테면 죽어봐."라고 말하며 창문을 열고 차 안에 있던 라이터를 피해자를 향하여 던져준 사실
f. 피고인이 건넨 라이터를 받은 피해자가 30초 정도 머뭇거리다가 몸에 불을 붙였고, 결국 화염 화상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부전 등으로 사망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이러한 이 사건 범행의 경위 및 형태와 당시 당황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그럼, 그냥 죽어라. 죽을테면 죽어봐"라고 말하면서 라이터를 건네 줄 당시, 피해자가 이를 이용하여 분신자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위와 같은 행위에 나아갔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피고인에게는 적어도 피해자의 자살를 방조한다는 점에 대하여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 할 것이다.

(결국)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


3. 양형이유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은 여러 차례 자살의사를 표시하였던 피해자가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있음을 알았음에도 피해자의 자살을 충동질하는 언사를 하고 분신에 이용될 수 있는 라이터를 건네주어 결국 피해자가 자살에 이르게 한 것이므로 그 죄질과 범정이 매우 중한 점, 피해자의 유족에 대하여 사죄나 피해 변제가 전혀 이뤄지지 아니한 점,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반성이 충분하지 아니한 점, 그 밖에 피고인의 나이, 성행, 가족환경 등 이 사건에 나타난 모든 양형조건을 고려하여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한다.


4. 주문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한다.
판사 조현일(재판장) 이상헌 김은경


단상들...

1. 사건은 그야말로 극단적이고, 자극적이다. 우리시대의 한 단면을 그대로 함축하는 것 같다. 물론 젊은이의 혈기와 객기, 광적인 집착과 맹목적인 연애감정은 시대 불문이긴 한다. 하지만 정말 이런 일이 있구나 싶은 생각... 이런 일이 지금/여기에서 벌어지고 있구나.. 싶은 생각 어쩔 수 없이 든다. 마치 가스파르 노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새벽에 벌어졌을 장면들,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2. 망자의 (살아생전) 심정에 공감하는 독자들 여럿 계실줄로 안다. 나도 그 중 하나다. 피고의 심정에 공감하는 독자들 여럿 계실줄로 안다. 나도 그 중 하나다. 사건과는 직접적인 상관없는, 하지만 사건의 중심에 있는 '그녀'의 심정에, 물론 이건 그저 막연한 추정, 상상에 불과하긴 하지만, 공감하는 독자들도 여럿 계실줄로 안다. 나도 그 중 하나다.

3.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것 같다. 한 목숨이 스스로 저버렸다. 이를 적극적으로 방조한 자가 분명히 존재한다. 어쩔 수 없다. 책임을 지는 수 밖에.

4. 자주 인용하는 김현
어떤 경우에도 자살은 용납될 수 없다.
살아서 별별 더러운 꼴을 다 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삶이니까.

5. 망자의 명복을 빌고...
남겨진 그녀에게는 씩씩하게 이 고통을(그런데 솔직히 이건 그저 상식적인 상상일 뿐이지만) 이겨내길 당부하고, 끝으로 자신의 경솔함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 할 그 젊은 친구에게도 짧은, 나조차도 스스로 그 정체를 알 수 없을, 위로를 전하고 싶다.

보충. 곰곰님의 논평


곰곰
2009/03/07 13:37 perm.

오래 전 포스트지만, 저도 눈여겨봤던 판결이라 댓글 붙입니다.
항소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더군요. 대법원까지 간다면, 미필적 고의의 판단 기준에 관한 법리가 새롭게 정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 기사를 보고 피고의 행동이 도덕적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지 몰라도 과연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될만한 것일까 의문이었습니다.
애초에, 휘발유를 들이붓고 죽어버리겠다던 망인이나, 라이터를 던져주며 죽어버리라는 피고의 행동 모두, 말하자면 민법 107조의 비진의표시로, 내심과는 다른 의사표현이었을테니까요. 싸 움을 하다 격해져서 '너죽고 나죽자'며 드잡이질을 하는 사람들이 살인의 고의를 가진 것이 아니듯이 망인의 '죽어버리겠다'는 '돌아와달라'였고, 피고의 '죽어버려라'는 '꺼져버려라'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여성분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망인은 라이터를 켜지 않았겠지요.
그들이 어떠한 사람들인지,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수는 있겠지만- 그건 법이 관여할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정황에 따라서는 물론 정말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인정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구체적인 특별한 사정들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고,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정이 있어야 할 거라고 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큰 일이지만, 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드는 건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일일 겁니다. 그건 우리 사회의 원칙과 공존을 위한 토대의 문제가 되니까요. 도덕적으로 용서할 수 없다고 해서 살인의 고의를 쉽게 추정하는 건 우리 모두를 위험하게 하는 법의 남용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민노씨
2009/03/07 15:27

진지하고 깊이있는 논평에 감사드립니다.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군요. 저로선 일심의 판단이 여전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고의 확정'과 관련해서는
1. 피고 행위는 '라이터를 건내 준 것'이고,
2. 이는 자살이라는 결과 발생에 인과관계가 분명히 성립하고 있으며
3. 말씀하신 비진의표시라는 문제는 '외부에 객관적으로 표시된' '라이터를 건네주는 행위'라는 그 표시행위를 통해서 판단해야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비진의표시는 원칙적으로 유효하고, 그것이 '자살'이라는 결과를 초래한 만큼, 단서적인 예외(특수한 경우에는 그 의사가 무효가 되는)는 좀더 엄격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고법이 일심을 뒤집은 그 근거가 무엇일지 몹시 궁금하네요.

 '살인의 고의'라고 하기엔 좀.. ^ ^; 피고의 행위는 살인의 고의가 아니라 '자살방조의 고의'잖아요. 양자는 좀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깊이있는 논평에 대해선 다시금 고마움을 전합니다.




계몽 혹은 소통의 딜레마

2008/04/11 10:13
제10회 여성영화제가 종종 언론에 소개된다.
그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이 가장 필요한 관객들은 누굴까?
페미니스트들일까, 아니면 소위 가부장적 권위에 찬 골수 마초일까?
(그런데 나는 '마초'라는 말 별로 싫어하지는 않지만 암튼 일반적으론 다소 부정적으로 쓰이는 것 같으니까)

소위 페미니스트들이라면 그 영화들의 메시지에 이미 '공감'할 준비가 끝난 관객들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니까 그 영화들이 어떤 계몽을, 어떤 소통을 원한다고 했을 때, 그 계몽, 그 깨달음, 그 소통이 이미 (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필요없는 사람들일 확률이 매우 높다. 오히려 가부장에 찌든 골수 마초들이 그 영화를 보고, 깨닫고, 느끼고, 그래서 소통해야 할 '대화의 상대방'일 그 현실적인 필요가 훨씬 더 높지 않을까? 그런데 가부장 골수 마초가 '여성영화제'에 갈 일은 없다. 솔직히 여성영화제로 말하면, 나 역시도 그 지루한 영화들을 시간 내서 볼 엄두가 잘 나지 않긴 하다.

총선이 끝난 뒤에 가장 먼저 생각한 건 이거다.
블로그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건 정치적인 질문이다.

쥐뿔... 인가?
잘 모르겠다.

언젠가 나는 블로그 혁명은 아주 느린, 아주 천천히 진행될 수 밖에 없는, 너무 너무 지루한 혁명이고,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썼다. 블로그 혁명이고, 나발이고... 일단 지엽적인(?) 딜레마가 있다.

포털, 가령 다음 블로거뉴스는 한편으론 가능성이지만, 한편으론 일방적으로 블로그를 자신의 '콘텐츠'로 소비하는 또 다른 아가리에 불과하다. 딜레마다. 소통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선 활용해야 하지만, 활용하자니 잡아먹힐 가능성, 종속성이 높아진다.

애드센스, 이 새로운 종교에 빠져, 그렇게 미끼질에 심취해서 스스로 몰락할 수도 있을테다. 그런데 이것도 역시 딜레마이긴 마찬가지. 애드센스는, 언젠가 펄님의 말씀처럼, 블로깅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요인인데, 그 애드센스가 블로그의 가능성을 또 축소하는데 기여한다.

블로그 혁명이 블로그 '마케팅' 혁명이라면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만...
나로선 좀 허무하단 생각이 들 것 같다.

아무튼, 블로그로, 우리들의 딱딱해진 껍질을, 일상과는 멀어진, 정치적 상상력을, 우리의 일상 속에서, 그 괴물 같은 습관들 속에서, 다시 깨울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대답은 회의적이다.

가령 우리의 블로그는 여성영화제와 같기 때문이다.
아주 진보적인 관점을 갖는 어떤 블로그를 즐겨 읽는다고 치자.
그 독자가 백 명이라고 가정해보면, 그 백 명 중에서 그 '진보적인 정치 블로그'의 메시지가 '필요한 독자'들은 얼마나 될까? 열 명이나 될까? 이미 정치적인 입장에 있어서 매우 공감하고 있거나, 혹은 지엽적인 차별점을 갖더라도 꽤 동질적인 철학을 공유하고 있을 확률이 '이미' 높다.

그러니 이번 총선과 관련해선 적어도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불상사'를 만들어내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민주주의의 꽃은 역시나 선거다. 솔직히 시민들의 정치적 가능성이 현실로, 정말 권력 그 자체로 비약적으로 표출되는 유일한 순간은 선거뿐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 정치적인 계몽을 목적으로 한다면, 정치적인 소통과 대화를 원한다면, 그 '진보적인 정치 블로그'는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렇게 '끼리끼리' 읽고, 대화해봤자, 정치적인 변화의 관점, 정치적인 계몽의 관점에서는 몹시 아쉬운 거지 뭐. 매우 비효율적인 독자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진보적인 정치 블로그의 독자들은 이미 그 진보적인 정치 블로그의 메시지에 공감하고 있고, 유사한, 그 지향에 있어서 동질적인 투표행위를 보여줄 확률이, 이미 매우 크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백 명 중에서 열 명을 위해, 그 작은 꼬리들이 조금씩 그 꼬리에 꼬리를 물면(이른바 롱테일), 그것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을테지. 그런데 지배적인 판, 환경은 여전히 그 꼬리들이 그 '기억'들, 그 '소통'과 '대화'들을 유지할 수 있게 조력하지 않는다. 세속의 욕망과 비교와 생존의 환상적인 조합들, 그 욕망을 콘트롤하는, 가령 연예산업의 생존논리들, 거기에 엉킨 정치권력의 의도적인, 혹은 암묵적인 방관과 방조... 그리고 위대하신 일등주의, 성공주의(이메가식 표어, "국민 여러분 성공하세요")는 정치적인 상상력, 세상을 바라보는 어떤 철학과 세계관.. 이런 '따위'에 고민할 시간을 내어주지 않을테다.

언젠가 블로그를 처음 만들면서, 그건 네이버블로그였는데, 나는 이렇게 썼다.

그건 참 어렵다.
왜냐면 습관의 관성이 때론 의식을 가뿐히 눌러 놓고, 나를, 나라는 객관성의 증거인 행위들, 그 근육의 움직임들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건 참 짜증난다..
완만한 죽음처럼..
느린 죽음처럼 고요하게 달콤하게.. 짜증나는 것이 있을까..
생각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이든..


빌어먹을..
아직도 이 타령이라니...


위대한 뮤지션 한영애는 이미 십 수 년 전에, 이 딜레마를 간파하고, 노래했다.

끝도 없는 변명 자꾸 늘어만 가지
서로의 가치기준 어디에다 팽개치고
너 몰라라 나 몰라라 눈 귀막고 따라가며
플라스틱 세상 풍선만 불어대네
세상이 변했으니 어쩔수가 없다고

변하는 건 당연해
!
어떻게가 중요해!

(중략)

그래도 희망은 너와내가 손잡은 사람에게 걸 수밖에
희망은 언제나 사람들의 몫으로 남아있게 마련이지

- '말도 안돼' 중에서




* 관련 추천글
진보의 재구성? (행인) : 강추.
어떤 노동자들은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쏟으면서 정당활동을 하기도 하고, 어떤 노동자들은 환경운동에 열성적으로 나서기도 하며, 어떤 노동자들은 자신의 취미활동을 위해 월급의 전부를 쏟아붓기도 한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선거일에 투표를 할 수 있고, 또 마음만 먹으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 "노동자"가 가지는 이처럼 다양한 계층적 수준을 도외시한다 .
(중략)
폐지를 주워 하루를 먹고 살면서도 투표에서는 한나라당을 찍고 나중에 정치하는 놈들은 다 똑같다고 하는 그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들조차도 우리의 한 일부이고 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 할 사람들임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이상이다. 진보가 그래서 어려운 거다. (위 글 중에서)

기만적 민주주의와 수구세력의 힘 (소요유)
수구 언론들이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면서 또 지껄이는 이야기는 “절묘한 민심의 선택”이라는 말이다. 이건 그냥 “수구” 투표를 해버린 46% 유권자들에 대한 감사의 립서비스이다.(글 중에서)


* 발아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건 아니지만)




두 개의 0.06

2008/04/11 02:34
1. 진보신당의 0.06

진보신당은 심상정·노회찬 후보가 낙선하고, 정당투표에서도 의석 확보 기준인 3%에 0.06%포인트 모자란 2.94%의 득표율을 기록해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원외 정당의 가시밭길만 남았다.
- 한겨레, 진보신당, 원외 가시밭길 ‘대운하 파이팅’ 중에서

이번 총선의 가장 아쉬운 점은 그동안 장애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해온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 후보가 정당득표 0.06%가 부족해서 떨어진 것이다. 이는 장애계가 이번 18대 총선에 남긴 가장 큰 오점이며, 정치세력화를 위한 장애계의 응집력부족을 보여준 것은 아닌지 평가해봐야 할 부분이다.
- [논평] 2008총선장애인연대 (2008년4월10일) 중에서 (출처 : 에이블뉴스)

0.06
아마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숫자가 될 듯 싶다...
- 행인, 0.06


2. 재벌의 0.06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 가운데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에서 상속세를 40% 인하하면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0.06% 가량 증가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아 주목된다.
- “상속세 40% 인하시 GDP 연평균 0.06% ↑” (동아닷컴. 2008. 4. 9. 연합뉴스 인용) 중에서


3.
절묘한 타이밍.
총선 직전에 상속세 내기도 아깝다는 애국지사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GDP 0.06%를 몹시도 걱정하는 애국심 투철한...
그런데 GDP 0.06이라니, 난 그 숫자가 어떤 의미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와는 너무도 멀리 있는...

우리는 0.06을 채워내지 못함으로써, 전혀 다른 빛깔, 전혀 다른 풍경을 갖는, 0.06을 현실에서 만날 가능성이 더더욱 높아졌다. 그러니 0.06을 채워내지 못함으로써, 0.06% GDP 상승을 위해 상속세 40% 내리자는 애국자 재벌님네들을 견제할 수 있는 의미있는 숫자, 상징적인 숫자 1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행인님 말씀처럼, 0.06.... 은 나에게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숫자가 될 것 같다.

이제 대한민국 의회는 자신이 가진 것 빼앗길까 노심초사하는, 그래서 상속세 내리자는, 아니 폐지하자는 1%의 수중으로 떨어졌다.

이건 시작에 불과할테다.
당신들의 무관심, 나의 나태함, 우리들의 속물근성, 이제는 구조 그 자체가 된 피상적 욕망체계가 만들어 놓은 그들만의 천국, 우리가 끝끝내 들어갈 수 없을, 그 소름끼치게 아름다운, 꿀물 흐르는 천상의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만.세.



* 관련 팟캐스트
미디어토크 18회 "20대여 깨어나라" (49분)


* 관련 추천글
총선의 토막들 (capcold)
다행이다 진보신당. (중략) 하지만 정당등록 취소 한도인 2% (의원 없고 전국구 지지율 2% 이하면 정당등록 취소당한다)는 넘겨줬다. 이제 당초 플랜대로 총선 이후 재창당을 할 때, 강제해산 후 재결합이 아니라 진보신당에서 새 진보당으로 자연스럽게 계승될 수 있게 되었다. 이거 큰 차이고,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기반이다. 마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마지막 장면에서 바닥에서 솟아나온 작은 싹 한 줄기 같은. (위 글 중에서)

진보신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한다 (foog)
나 스스로 정치적 지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지속적인 화두인데 최근 내린 결론은 적어도 사회주의자는 아니라는 것이 결론이다.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려서 나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표현이 결국 ‘자기파괴적 자본주의자’다. 자본주의적 삶을 지향하면서 끊임없이 그 한계를 알아채며 좌절하는 그런 녀석인 것 같다. (위 글 중에서)



* 발아점
0.06 (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