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기본적으로 거기에 까지 미칠 관심의 여력이 없을 뿐더러, 영어를 못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국제 정치기사를 읽을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언론, 특히나 거대신문에서 국제 정치뉴스를 접하면,워낙에 외신을 지 멋대로 해석해서 전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종종 악의적 오역도 있는 것 같고), 그리고 한편으론 읽어도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는 피상적인 찌라시풍 기사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런 이유도 어느 정도는 작용하는 것 같다.
하지만 게이터로그에서 전해주는 이런 저런 미국 정치 소식은 매우 흥미롭게 탐독하는 편이다. 어제 저녁에 흥미롭게 읽은 이야기는 '오마바의 실언'에 관한 이야기다.
- 아거, 오바마의 실언. 중에서
오바마 실언에 그 자체에 대해선 위 글과 위 글에 있는 관련 링크에서 확인하시면 좋겠다.
2. 그런데 실은, 내가 관심을 갖는 건 오바마 실언 그 자체가 아니다. 그리고 그 실언이 과연 오바마의 대선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것이 오바마가 낙마하는 결정적인 패착으로 불거질 것인지도, 솔직히 그렇게 큰 관심사는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갖는 건 다음과 같은 영역이다. 위 글에서 아거님이 펄님 논평에 남긴 답글을 읽어보자.
비공개 기금모금 행사에서 행한 발언을 녹음해 와서, 인터넷에 올린 허핑턴포스트 측의 보도 윤리도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물론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만… 내부지지자의 환호와 비공개 행사라는 점에서 경계심을 풀고 속내를 이야기하다 뒷통수를 맞은 것 같네요.
아이러닉한 것은 허핑턴포스트의 성향으로 볼 때나 비공개 지지자 기금모금 행사에 갈 정도면 보도한 사람은 오바마 지지자일 것인데, 자신의 정치적 지지보다는 “특종”으로 이름날리는 것이 더 중요했던 모양입니다.. (아거)
3. 추론들 : 몇 가지 딜레마
위 아거님 답글이 없었다면 포스팅하는 일은 없었을거다. 실은 위 아거님 글을 읽으면서도 아거님이 펄님 논평에 대해 답한 바로 그 내용이 몹시 궁금했다. 그 사정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는 바에야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할 것 같다.
ㄱ. 특종에 대한 욕심과 정치적 당파성이 충돌한 경우
ㄴ. (독자) 알권리에 대한 의무감와 정치적 당파성이 충돌한 경우
그래서 아거님께 개인적인 궁금증을 여쭤봤다.
아거님께서는 어떤 답을 하실까? (물론 답하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지보다는 “특종”으로 이름날리는 것이 더 중요했던 모양" 이라고 하신 것으로 보건대, 아마도 발표하지 않으셨을 것 같다.
이런 특종은 진짜 경박한 특종입니다.
오바마가 백인 블루컬러를 폄하하는 마음에 사로잡혀서 나온 말이라면 모를까, 다소 이 지역의 블루컬러계층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서 무심코 한말인데 이걸 부각시켰으니 말입니다.
이런 발언이 문제가 되어 선거에 진다면 진짜 문제가 있는 거지요.
제가 괜히 민감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예쁘지 않은 마사지걸이 성심껏 서비스해주기 때문에 안예쁜 마사지걸을 ‘고른다’는 분이 대통령이 된 나라의 국민 입장에서 생각할 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이 발언이 치명적이다고 생각하는 것은 힐러리측의 주장에 말려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힐러리는 계속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네요…. (아거)
어려운 문제고, 골 때리는 문제일 것 같다.
그 구체적인 상황이 그다지 단순하지가 않다.
일단 오마바의 실언은 문맥상 취지를 '호의적'으로 헤아린다면 '있을 수 있는 발언'이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 있을 수 있는 발언인가 아닌가, 란 점이 아니다. 문득 지난 대선 때 김근태의 실언이 생각난다 (온갖 악재 속에서도 이명박 지지율이 요지부동이자.. "국민이 노망났다"고 했던). 나는 김근태를 꽤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만(덧. 이번 총선에서 뉴라이트에게 밀린 건 정말 아쉽다...), 그건 미친 소리다.
하지만 김근태 발언 역시 내 정치적 당파를 투사해서, 그리고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이메가의 지난 악행(특히 범인은닉사건이랄지...)과 당시 하나둘 드러났던 온갖 범법 증거들이라는 그 '문맥' 정보와 함께 들으면 '있을 수 있는' 발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게 실언인 사실,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그 여파를 생각하지 못한 경솔함이 드러난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다시 돌아가서, 이 발언이 있을 수 있는 발언인가 아닌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발언은 그 '내심상의 진의'가 문제되는 발언이 아니라, 그 정치적 활용이 전적으로 중요한 발언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이건 정말 말그대로 전략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수 밖에 없고, 그게 현실 정치 세계,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혐오하는 철학 없는 '투쟁'의 세계,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정치라는 진흙탕이다(말 그대로 이전투구).
여기에는 당연히 당파성 매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건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그 정도에서는 차이가 있겠다 싶긴 하지만. 아무렴 조중동 같은 멋진 신문이 세상이 또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런다.
간단히 쓰려고 했던 글이 너무 길어지는데, 아무튼, 위 ㄱ. ㄴ.의 딜레마가 나로선 몹시 흥미롭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 물론 사안 마다 그 구체적인 조건과 역학이 다를테고, 이를 일률적으로, 어떤 원칙론에 입각해서 답하기란 어렵다는 생각이 일단 든다.
질문을 나에게 던져본다. 내가 그 현장에 있는 허핑턴 포스트에 기고하는 블로거였다면, 그런데 내가 지지하는 어떤 유력 대선 후보가 치명적인 실언을 했고, 그 실언이 녹음된 파일이 나에게 있다면, 있을 수 있는 실언이라고 주관적으론 이해하지만, 정치적으로 경쟁자들에게 매우 악의적으로 해석될 여지도 동시에 있는 발언이었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나?
나는 아마도 그 내용을 발표했을 것 같다.
물론 오바마를 현실정치인으로서는 비판하되, 그 발언 취지를 알리고자 노력하면서 말이지.
이런 가정적 선택은 다음과 같은 추론에 바탕한다.
미디어 핵심 타겟인 오바마(의 모임이)라면, 분명히 힐러리 첩자(?)라거나, 혹은 여타의 저널리스트, 혹은 보수파 블로거들의 ‘위장 잠입’이 있었을 거다. 그러니 어떤 발언이든 간에 그게 자신의 당파에게 이로운 발언이었다면, 그래서 오바마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문제'로 해석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 예방주사 차원에서, 넘들이 먼저 때리기 전에 내가 먼저 때리는 거지.
.....
문득 호기심이 생겨서 글까지 썼지만..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세상에는 어느 하나의 관점만으로, 어느 원칙만으로 해석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권력의 역학, 관계의 역학들 속에 존재하는 문제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런 문제들이 흥미롭기도 하고, 때론 짜증스럽기도 한데, 오바마 이슈는 그 모두다.
4.
아, 그런데 내가 이 글 소재로 삼은 아거님 글에서 정작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여기에 적은 이 호기심들을 자극한 어떤 구절들, 어떤 상황들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아마도 다음과 같은 지적이지 않을까 싶다.
- 아거, 오바마의 실언. 중에서
원래 여기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호기심 때문에 엉뚱한 글을 써버린거다.
여기에 대해서도 가급적, 짧게라도, 포스팅할까 싶다.
* 발아점 & 글재료
오바마의 실언 (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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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잘 보고만 갑니다^^;;
제가 만약 그 자리에 있고 오바마의 지지자라면 아마 그 기사를 냈을지 안 냈을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ㅡ,.ㅡ
그러시군요. ㅎㅎ
저라면.. 데스크에 보고했을 것 같군요. ㅠㅠ
그리고 데스크는..
당연히 쓰라고 했을 것 같군요.. ㅠㅠ
기자라는 직업은 일단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니까요..
맥락이라는 것을 무시하면 안 되겠지만, 그 맥락을 다 전달하면서 팩트를 놓치지 않는 게 기자의 소임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사실'의 선택 그 자체에 굉장한 철학적, 정치적 함축이 담겨 있는 거잖아요. 우리나라 언론, 특히나 정치 기사들에서 가장 짜증나는게 뭔고 하니.. 별로 선택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사실'들, 이를테면 연예찌라시가 연예인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식을 일일이 자극적으로 꾸미는 그런 방식으로, 별 고민가치도 없는 내용을, 사실들을 전달한다는 점입니다. ㅡ.ㅡ;
물론 사실의 선별작업, 그리고 그 크기를 결정하는 작업(이를 기사가치판단이라고 하는데)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말씀하신대로 신문의 논조와 철학이 담긴 것이기도 하고요. 연예 찌라시가 보도하는 '사실'들은 또 그런 내용을 소비하는 특정 계층에게는 어필하는 내용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물론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똑같은 내용의 실시간 검색어 연예기사가 쏟아지는 경우는 다른 케이스이고요..)
말씀하신 "특정 계층에게는 어필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저도 공감하는 부분이 큽니다.
저부터도 연예계 가십에 대해, 당연한 속물적인 호기심으로 멍때리면서 기사를 쫓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이런 영역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세상 모든 기사들이 온갖 심각한 이야기들, 감동적인 이야기들, 뭔가 깨닫고, 논쟁해야 하는 그런 이야기만 해야 한다면.. 것도 참 답답할 것 같구요.
그런데 전체적인 균형의 차원에서... 너무 독자들을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게끔 '강요'하는 기사들, 여기서 더 나아가 읽고나면 후회하게 할 기사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읽으면 읽을수록 나쁜 관점과 태도를 은연중에 학습시키는 그런 기사들... 이 너무 일방적으로 많은 것 같아서... ㅡ.ㅡ;
요즘 문득 유럽의 르네상스 이전의 "중세시대"가 생각이 나는군요. 옳은 말을 하더더라도, 선동꾼들에 의해 "마녀"로 매도되고, 틀린말을 해도 아무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인간의 사고란 진화가 상당히 더디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날입니다.
마녀, 군중, 성직자, 정치인, 언론, 정부를 가만히 "중세시대" 및 "현대사화"와 대입을 해보면 재미있는 생각이 많이 납니다.
정말 새로운 중세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중세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사제'들은 언론권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