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필자 그리고 편집자

2016/09/06 09:22
편집자는 필자와 독자를 이어주는 가교라고 생각합니다.
필자와 독자 사이에 놓인 그 너비와 깊이를 가늠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 같은 부족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때로는 징검다리를 놓는 일로 충분할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큰 강을 건널 나룻배가 되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그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필자(원고)를 있는 그대로 독자께 전하는 일이 편집자의 일이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슬로우뉴스는 다양한 철학과 지향을 가진 동인들의 협의체입니다. 슬로우뉴스 안에는, 비유하면, 뜨거운 물도 있고, 아주 차가운 물도 있습니다. 편집 방향과 색깔은 대개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이 섞여 미지근한 물이 되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독자들이 마시기에는 가장 적당한 온도의 물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시원함을 찾거나 뜨거움을 찾는 독자에게는 시원하지도 뜨겁지도 않은 물이었겠죠.
저는 최근 "관계: 너무나 베를린스러운 어떤 관계"라는 글을 편집했습니다. 초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저는 뜨거운 물이었고, 또 어떤 편집위원은 차가운 물이었습니다. 초기 검토 과정을 거친 뒤에 제가 최종적으로 글을 편집하게 됐습니다. 두 부분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1. 하나는 글 서두에 나오는 "페이스북-혁명가"라는 조롱투 표현
2. 나머지 하나는 글 말미에 등장하는 "메갈"에 관한 논평이었습니다.
사전에 필자와 협의해 이 두 부분을 편집(이 경우에는 삭제)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원문 그대로 발행했고, 지금 와서 다시 숙고하면, 필자에게도 독자에게도 이롭지 않은, 필자와 독자의 간격을 더욱 멀어지게 한,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베를린스러운 어떤 관계"라는 글이 가지는 주된 가치를 한국사회의 문화적 편협함과 집단주의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타산지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다소 도취적이고, 과도한 표현 혹은 민망하거나 독자에 따라서는 폭력적일 수 있는 표현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 역시 문화적 상대성과 다양성, 무엇보다 관용주의를 강조하는 테마의 글에서 필자의 개성으로 존중하려고 했고, 이를 가급적 살리려고 했습니다.
"베를린스러운 어떤 관계"를 비판하는, 현저히 눈에 보이는 독자들의 반응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그 즉시 편집팀원들과 대화했고, 비판을 주신 독자(슬로우뉴스필자이기도 한)와 대화했고, 또 무엇보다 글을 쓴 필자와 대화했습니다. 제가 신뢰하는 많은 이들께 조언을 구했고, 이 대화는 족히 10시간을 넘습니다. 결과적으로 슬로우뉴스 편집팀은 이 문제를 안건으로 올려 심도 있게 논의했고, 다음과 같은 '편집자 주'를 보강하는 선에서 독자의 비판적 지적에 답하기로 했습니다.
"이 글은 필자가 경험한 베를린의 문화적 다양성과 관용주의에 관해 서술한 글입니다.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표방한 몇몇 분들에게도 공감을 얻지 못하고 소수의견으로 매도됐던 필자의 경험 등이 그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채 최종 발행이 됐습니다. 앞으로 더 깊은 사유와 토론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이 글의 소재와 주제에 관한 반론과 보론, 비판 기고는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결과로만 보면 대여섯 줄의 편집자 주를 쓰기 위해 많은 분들께서 진심을 다해 고성이 오가고, 또 때로는 감정적인 불편을 느낄 정도로 대화했고, 토론했습니다. 그야말로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슬로우뉴스의 방법론이고, 철학이며, 필자와 독자를 모두 동등하게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글에 비판적인 독자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아쉬움은 다양한 "반론 기고"로 풀어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는 "베를린스러운 어떤 관계"를 쓴 필자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니체는 "위대한 정신은 숭배받기보다는 비판받기를 원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물론 순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받고, 칭찬받기를 원합니다. 따뜻하게 안아주길 바라고,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누군가 내 곁에 있기를 원합니다. 저도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때론 치열하게 비판하고, 반대하며, 분노하는 것이야말로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대화가 담기고, 누구나 자신의 체험을 당사자로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많이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그저 나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공간. 그런 집단 지성의 정원으로 슬로우뉴스가 자리하기를 바랍니다.
긴 넋두리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슬로우뉴스 편집장 민노

*메모. 슬로우뉴스 페이스북 페이지(2016년 7월 21일)에 쓴 글 옮김.


마음빵 돈빵 몸빵

2014/04/19 23:06
1. 마음빵: 이성복 식으로 말하면 "무력한 기도의 방식"이랄까. 형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대개의 경우에 무익하거나 영향력이 전혀 없다. 다만 마음이 없다면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무시할수만은 없는 노릇. 그리고 마음이 없는 몸은 강요 혹은 가식이라서 지속하기 어렵다.

기도의 형식으로 나는 만났다
버리고 버림받았다 기도의 형식으로
나는 손 잡고 입 맞추고 여러 번 죽고 여러 번
태어났다
흐르는 물을 흐르게 하고 헌 옷을
좀 먹게 하는 기도, 완벽하고 무력한 기도의
형식으로 나는 숨 쉬고 숨졌다

지금 내 숨가쁜 시신을 밝히는 촛불
애인들, 지금도 불 밝은 몇몇의 술집
내 살아 있는 어느 날, 어느 길, 어느 골목에서
너를 만날지 모르고 만나도 내 눈길을 너는 피할 테지만
그 날, 기울던 햇살, 감긴 눈, 긴 속눈썹, 벌어진 입술,
캄캄하게 낙엽 구르는 소리, 나는 듣는다

- 이성복, “연애에 대하여” 중에서


마음빵의 유사 대체재: 온라인에서 아주 아주 간단한 수동적인 의견 보태기 혹은 SNS에서의 공유... 이들이 대체로 지적 만족/정의감의 알리바이 역할을 한다는 지적은 대체로 현재의 소셜미디어 환경에서는 아주 유의해서 고찰해야 하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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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돈빵: 대개 몸빵의 대체재로서 큰 효과가 있다.

3. 몸빵: 믿음 소망 사랑 중에 그 중 제일은 사랑이라.... 마음빵 돈빵 몸빵 중에 그 중 제일은 몸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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