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컷님께서 피력하신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합니다.
저 개인적으론, 점프컷님께서 글 서두에 말씀하신 (인터넷)한겨레에 큰 기대를 했었지요.
한겨레가 탄생한 역사적 맥락과 그 상징성 때문에, 그리고 개인적인 체험들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세상을 가장 먼저 알려준 매체는 뭐니 뭐니 해도 한겨레였으니까요. 여전히 우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이제는 그다지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인터넷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이렇게 비관적인 판단을 하게 된 것은 그저 감이 아니라, 저 나름으로는 어느 정도 객관화된 체험치를 통해서라고 스스로는 생각합니다. 좀더 특정해서 지적하자면 (인터넷)한겨레가 블로그를 바라보는 마인드는 조중동이 블로그를 바라보는 마인드, 포털이 네티즌을 바라보는 마인드와 크게 다르지 않고,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특히나 기술적인 발전을 수용하는 태도에서는 더 후진적이기까지 합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관료적이고, 권위적이며, 게으르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어요.

한때 '필진네트워크'로 불렸던, 지금은 '한겨레블로그'로 불리는 공간에는 아직도 제 블로그가 존재합니다. 한겨레 블로그 초창기에는 정말 한겨레 미디어에 우호적인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한겨레를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한겨레는 그 자발적이며 우호적인 에너지를 수용하지 못했다고 평가합니다. 지금 한겨레블로그는 아주 작은, 아주 아주 작은 커뮤니티로만 남아 있습니다(물론 저는 여전히 '필벗'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 한겨레블로그에 깊은 고마움을 갖고 있기는 합니다). 초기 우호적인 에너지들은 이미 식어버렸거나, 상당 부분은 실망감으로 돌아섰습니다.

인터넷한겨레, 좀더 특정하면 한겨레블로그의 난맥상에 대해 좀더 이야기해볼까요?
필벗들과 함께 나름으로 분주하게 시도했던 이런 저런 개선, 활성화 노력들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만을 이야기할까 싶어요. 개편을 통해서 사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노출된 적이 있었습니다(비밀글로 입력했던 방명록 공간이 공개되었던 거죠). 거기에 기존에 블로그에 쌓여 있던 댓글이 시간과는 상관없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습니다. 상당부분 수정되었지만, 아직도 종종 제 한겨레 블로그에서 그 개편의 후유증으로 뒤죽박죽된 댓글을 보곤 합니다. 이정도면 개편이 아니라 '개판'이죠. 이런 일은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졌습니다. 여전히 한겨레블로그 사이트의 로딩속도는 매우 답답한 수준이고, 외부와의 연결고리들도 제한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검색엔진 적합도나 블로거들과의 협력적인 파트너쉽에 무고민이랄까... 등등). 물론 소수인력으로 노고가 크신 점은 십분 이해합니다만, 나타나는 모습으로만 보자면, 인터넷한겨레, UCC콘텐츠팀은 어떤 전략과 비전을 갖고 있는지 정말 그 속을 모르겠습니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한겨레 미디어에 대해 말해보죠.
냉정하게 말하자면, 거대수구언론과의 '적대적 공생'이라는 메카니즘 속에서 자신의 존립 근거를 찾아가고 있구나 싶은 좌절감이랄까, 배신감이랄까, 한계랄까를 느끼기도 합니다. 한겨레 스스로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스스로 권위화되고, 관료화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최근 삼성 비자금 사태에 대해서 만큼은 한겨레나 경향, 오마이, 프레시안의 존재에 큰 가치를 부여할 수 밖에는 없겠다는 생각을 더불어 합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한겨레에 대해선 여전히 아쉬움이 커요.

정치경제적 당파성이 드러나는 기사들에서는 저는 여전히 한겨레를 응원하고, 한겨레의 입장에 상당히 호의적입니다. 하지만 그 밖의 영역에서 한겨레는 매체로서의 경쟁력을 상당부분 잃어가고 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그리고 정치경제적 당파성이 드러나는 부분에 있어서도 중구난방인 모습들을 보여주곤 합니다. 지난 '대추리 싸움'(한겨레21은 제외)에서도 그랬고, 포스코 노동자 사망사건과 관련한 금속노조 광고 거절사건도 그렇습니다(그 구체적인 어려움에 대해선 이해하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만...).

미디어 기업으로서 한겨레는 '고급지 전략'을 채택하고, 이를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말뿐입니다. 어떤 고급지를 만든다는 것인지, 어떤 전략과 구체적인 전술을 갖고 고급지를 실천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기존의 모습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어 보여요. 구체적인 스케줄도 없고, 이를 실천할 프로그램도 없습니다. 그냥 말뿐이예요.

이상 한겨레에 대해 이런 저런 아쉬움을 전했습니다만, 여전히 저는 한겨레와 경향, 오마이, 프레시안, 레디앙 등등의 진보적 미디어들을 우호적으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오마이를 제외하고는(물론 그렇다고 오마이 전략이 대단히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요) 블로그 전략에 대해선 매우 회의적이고, 또 아쉬움을 느낍니다. 한겨레에 대해 한마디만 더 하자면, 왜 한토마와 같은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든 게시판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한토마와 한겨레블로그를 어떤 식으로든 통합하려는 노력이 왜 없는지 모르겠어요. 그 상호 통합의 시너지를 의도한 기획이 인터넷한겨레의 하위 사이트들을 기계적으로 '통합'시킨 '필통'시스템이라면 할 말 없습니다. 필통을 하시던지, 연필을 하시던지... ㅡ.ㅡ;

주로 한겨레의 예를 통해 대안언론, 혹은 진보언론이라고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언론사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제는 블로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블로그가 스스로 대안적인 미디어의 잠재력을 표출할 수 있는 방식을 이제는 스스로가 현실적으로 고민할 단계에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블로그의 미디어성에 대해 선입견을 갖는 분들도 있을테고, 블로그가 무슨 언론이냐, 이렇게 반문하시는 분들도 있을테죠. 블로그와 기존 미디어와의 관계는 '대체'가 아닌 '보완'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는 그것이 대체이든 보완이든 그런 관념적인 논의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블로그가 기존 미디어를 대체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적극적으로 새로운 미디어 모델들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것은 그저 대체냐 보완이냐는 추상적인 논의가 아니길 기대합니다.

그저 단순히 기존 미디어를 '보완'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존의 미디어 기업들에서 생산하는 콘텐츠들과는 전혀 다른 내용과 전혀 다른 창조적 유통 구조를 스스로 마련해가는 '실험'이자,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미디어에 대한 인식의 '혁명적 전환'이 블로그를 통해서 가능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런 기대는 현재로선 정말 말도 안되는 기대입니다.
왜냐하면 웹 콘텐츠의 유통 구조는 언론사닷컴도 게임이 안되는 수준으로 포털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근엄하고, 잘나가는 언론사(닷컴)'들도 점점더 포털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포털의 지배력에 의미있는 수준으로 '몸부림' 치는 업체는 여전히 거대 보수 언론사 몇개에 불과한 수준이죠.  특정하자면 조선닷컴 정도입니다. 왜 포털에 대해서 조선이 그토록 부정적인 기사들을 싣고 있는지를 상기하십시오. 왜 변희재란 친구가 조선에 칼럼을 쓰는지 생각해보십시오.

포털과 거대 신문들이 지배하는 의미생산 및 유통구조 , 그리고 앞으로 개정될 것이 분명한 신문법을 통한 거대수구언론들의 방송업계 진출은 우리나라 담론 생산 및 유통의 구조가 더더욱 특정의 기득권에 의해 조정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정말 암담한 현실이죠. 이런 거시 시스템 구조에서 블로그를 통해 뭔가 의미있는 균열을 일으키는 일은 정말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당연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아주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는 깨지더라도 이제는 정말 무엇인가를 시도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작은 힘들, 작은 에너지들을 모아서, 기존의 미디어 구조에 의미있는 균열을 낼 수 있는, 창조적인 파괴를 자극하고, 그런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업들을 기존 미디어에 바라는 것은 정말 부질 없는 바람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말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수 있더라도, 정말 보잘 것 없는 좌절로 끝나더라도 우리들 블로거들이 이런 창조적인 균열, 창조적인 파괴의 에너지를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비극적 액션'(레이몬드 윌리엄스)만이 지배적인 기득권이 만들어놓은 시스템과 관성에 자극을 줄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 시스템에 조금이라도 부딪혀가면서 그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제 블로거들 스스로 빨간약을 삼켜야 하는 순간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이 '비참한 현실'을 스스로 확인하고, 그 속에서 스스로 부딪히고, 좀더 철저하게 좌절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좌절을 오히려 자양분으로 삼아 스스로 성장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말입니다.


이상입니다.



추.
그 '비극적 액션'에 대해선 앞으로 점차로 각론의 수준에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 발아점
대안언론의 등장 참 힘드네요. (점프컷)




* 공익을 위한 홍보글 : 닷네임코리아 미스터리 시리즈. 아직 여름도 아닌데 미스터리 호러물이 등장했네요. 3부가 이어진다면 저도 적극적으로 이 미스터리에 참여할 생각입니다. 관심을 당부드립니다. :(
더러운 손 (1부)
수상한 손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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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점프컷 2008/04/21 10:34

    "특히나 기술적인 발전을 수용하는 태도" 다른 예를 하나 들면 저번에 온신협의 RSS 논쟁에서 한겨레가 당사자였죠. 당시 조선닷컴의 영리한 대처와 비교가 되더군요. 민노씨님이 지적하는 문제들을 보면 이건 단순히 열악한 환경(자본력에서 차이가 나서 발생하는)의 문제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태도"의 차이죠. 관계자분들에게 죄송하지만, 저 역시 한겨레의 이런 태도가 관료적이고, 권위적이며, 게으르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듭니다.

    "매체로서의 경쟁력"을 지적하신 부분 역시 크게 공감합니다. 아울러 블로그 스스로가 대안 언론으로 자리잡을려면 역시 매체로서의 경쟁력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지금 메타블로그에서 주목받는 글들을 보면 나름 비장하고 신념 넘치는 글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매체로서의 경쟁력"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우리들만의 리그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비극적 액션"의 각론 부분이 기대되네요. 전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 다소 피상적인 의견밖에 가지고 있지 않거든요. 어떻게 하면 블로그가 미디어로서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고, 대안언론으로 성장해 나가는가 관심은 많이 가지지만 뚜렷하게 이렇게 하자고 제안할 무엇인가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블로그가 희망인게, 현재 신문사 닷컴들도 어찌할 수 없는 포털천하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게 블로그입니다. 반대로 블로그로 안되면 정말 답이 없다는 생각도 들구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피상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많은 부분 구체화 되는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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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4/21 16:07

      함께 대화하면서 각론을 채워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
      역시나 예상대로(?) 점프컷님 덕분에 겨우 무플 면했네요. ㅎㅎ

  2. 민노씨 2008/04/21 16:13

    * 넋두리 : 이 글은 이상하게 올블에 수집되지 않았었네요. ㅡ.ㅡ; 그래도 그나마 들어오는 고정 트래픽(메타블로그 중에선)인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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