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이 가장 필요한 관객들은 누굴까?
페미니스트들일까, 아니면 소위 가부장적 권위에 찬 골수 마초일까?
(그런데 나는 '마초'라는 말 별로 싫어하지는 않지만 암튼 일반적으론 다소 부정적으로 쓰이는 것 같으니까)
소위 페미니스트들이라면 그 영화들의 메시지에 이미 '공감'할 준비가 끝난 관객들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니까 그 영화들이 어떤 계몽을, 어떤 소통을 원한다고 했을 때, 그 계몽, 그 깨달음, 그 소통이 이미 (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필요없는 사람들일 확률이 매우 높다. 오히려 가부장에 찌든 골수 마초들이 그 영화를 보고, 깨닫고, 느끼고, 그래서 소통해야 할 '대화의 상대방'일 그 현실적인 필요가 훨씬 더 높지 않을까? 그런데 가부장 골수 마초가 '여성영화제'에 갈 일은 없다. 솔직히 여성영화제로 말하면, 나 역시도 그 지루한 영화들을 시간 내서 볼 엄두가 잘 나지 않긴 하다.
총선이 끝난 뒤에 가장 먼저 생각한 건 이거다.
블로그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건 정치적인 질문이다.
쥐뿔... 인가?
잘 모르겠다.
언젠가 나는 블로그 혁명은 아주 느린, 아주 천천히 진행될 수 밖에 없는, 너무 너무 지루한 혁명이고,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썼다. 블로그 혁명이고, 나발이고... 일단 지엽적인(?) 딜레마가 있다.
포털, 가령 다음 블로거뉴스는 한편으론 가능성이지만, 한편으론 일방적으로 블로그를 자신의 '콘텐츠'로 소비하는 또 다른 아가리에 불과하다. 딜레마다. 소통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선 활용해야 하지만, 활용하자니 잡아먹힐 가능성, 종속성이 높아진다.
애드센스, 이 새로운 종교에 빠져, 그렇게 미끼질에 심취해서 스스로 몰락할 수도 있을테다. 그런데 이것도 역시 딜레마이긴 마찬가지. 애드센스는, 언젠가 펄님의 말씀처럼, 블로깅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요인인데, 그 애드센스가 블로그의 가능성을 또 축소하는데 기여한다.
블로그 혁명이 블로그 '마케팅' 혁명이라면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만...
나로선 좀 허무하단 생각이 들 것 같다.
아무튼, 블로그로, 우리들의 딱딱해진 껍질을, 일상과는 멀어진, 정치적 상상력을, 우리의 일상 속에서, 그 괴물 같은 습관들 속에서, 다시 깨울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대답은 회의적이다.
가령 우리의 블로그는 여성영화제와 같기 때문이다.
아주 진보적인 관점을 갖는 어떤 블로그를 즐겨 읽는다고 치자.
그 독자가 백 명이라고 가정해보면, 그 백 명 중에서 그 '진보적인 정치 블로그'의 메시지가 '필요한 독자'들은 얼마나 될까? 열 명이나 될까? 이미 정치적인 입장에 있어서 매우 공감하고 있거나, 혹은 지엽적인 차별점을 갖더라도 꽤 동질적인 철학을 공유하고 있을 확률이 '이미' 높다.
그러니 이번 총선과 관련해선 적어도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불상사'를 만들어내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민주주의의 꽃은 역시나 선거다. 솔직히 시민들의 정치적 가능성이 현실로, 정말 권력 그 자체로 비약적으로 표출되는 유일한 순간은 선거뿐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 정치적인 계몽을 목적으로 한다면, 정치적인 소통과 대화를 원한다면, 그 '진보적인 정치 블로그'는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렇게 '끼리끼리' 읽고, 대화해봤자, 정치적인 변화의 관점, 정치적인 계몽의 관점에서는 몹시 아쉬운 거지 뭐. 매우 비효율적인 독자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진보적인 정치 블로그의 독자들은 이미 그 진보적인 정치 블로그의 메시지에 공감하고 있고, 유사한, 그 지향에 있어서 동질적인 투표행위를 보여줄 확률이, 이미 매우 크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백 명 중에서 열 명을 위해, 그 작은 꼬리들이 조금씩 그 꼬리에 꼬리를 물면(이른바 롱테일), 그것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을테지. 그런데 지배적인 판, 환경은 여전히 그 꼬리들이 그 '기억'들, 그 '소통'과 '대화'들을 유지할 수 있게 조력하지 않는다. 세속의 욕망과 비교와 생존의 환상적인 조합들, 그 욕망을 콘트롤하는, 가령 연예산업의 생존논리들, 거기에 엉킨 정치권력의 의도적인, 혹은 암묵적인 방관과 방조... 그리고 위대하신 일등주의, 성공주의(이메가식 표어, "국민 여러분 성공하세요")는 정치적인 상상력, 세상을 바라보는 어떤 철학과 세계관.. 이런 '따위'에 고민할 시간을 내어주지 않을테다.
언젠가 블로그를 처음 만들면서, 그건 네이버블로그였는데, 나는 이렇게 썼다.
그건 참 어렵다.
왜냐면 습관의 관성이 때론 의식을 가뿐히 눌러 놓고, 나를, 나라는 객관성의 증거인 행위들, 그 근육의 움직임들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건 참 짜증난다..
완만한 죽음처럼..
느린 죽음처럼 고요하게 달콤하게.. 짜증나는 것이 있을까..
생각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이든..
빌어먹을..
아직도 이 타령이라니...
서로의 가치기준 어디에다 팽개치고
너 몰라라 나 몰라라 눈 귀막고 따라가며
플라스틱 세상 풍선만 불어대네
세상이 변했으니 어쩔수가 없다고
변하는 건 당연해!
어떻게가 중요해!
(중략)
그래도 희망은 너와내가 손잡은 사람에게 걸 수밖에
희망은 언제나 사람들의 몫으로 남아있게 마련이지
- '말도 안돼' 중에서
* 관련 추천글
진보의 재구성? (행인) : 강추.
(중략)
폐지를 주워 하루를 먹고 살면서도 투표에서는 한나라당을 찍고 나중에 정치하는 놈들은 다 똑같다고 하는 그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들조차도 우리의 한 일부이고 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 할 사람들임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이상이다. 진보가 그래서 어려운 거다. (위 글 중에서)
기만적 민주주의와 수구세력의 힘 (소요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