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B2 크롬/파이어폭스 접속 장애 안내

안녕하세요. 알라딘 TTB 운영자입니다.

지난 12월 1일경 크롬 및 파이어폭스에서 악성코드 경고 때문에 접속이 안 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연이은 장애 탓에 회원 여러분께 많은 불편을 겪으시게 된 점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악성코드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고, 구글에서는 현재 안전사이트로 등록된 상태입니다만 그 외 다른 브라우저 및 보안 프로그램에서 악성코드가 있다고 노출되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회원님의 블로그나 사이트에서 알라딘 TTB2관련 코드를 잠시 숨김, 처리하시면 회원님의 사이트를 방문하는 크롬/파이어폭스 브라우저 사용자들의 접속 문제는 없어집니다.
악성코드 관련한 사항이 정리되는 대로 서비스 일정 및 관련 내용을 정리하여 재공지할 예정입니다.

다시 한번 접속 장애에 관련하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알라딘 TTB2 운영자 드림



12월 4일에 알리딘에서 보내온 메일이다. TTB로는 한 500원이나 적립했으려나 모르겠다. 내가 올려 둔 책들은 대개는 품절이라서, 그냥 이런 책이 좋다는 정보 공유용이지 TTB로 무슨 돈 벌 생각이 있었던 건 전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선물을 주는구먼...; TTB발 유해사이트 경고 딱지가 아직도 파이어폭스(FF)에선 해제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스팸댓글 때문에 짜증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판에, 박그네 빅토리로 짜증에 우울증까지 생기는 마당에, 블로그 다시 살려보자 이러면서 왔는데... ㅡ.ㅡ; 암튼 공지용이다. 크롬에선 진작 해제신청했는데, FF에선 어떻게 해제 신청하는건지 모르겠다. 아시는 분 알려주시라.


그런 마음으로 참여했다.
10시간씩 화장실도 안가면서
지난 4, 5일 동안 약속 취소하고, 미뤄가면서 체크했다.  
솔직히 이번 대선처럼 관심이 안 생기는 선거는 처음인 것 같다.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투표는 이를 악물고 기어코 할 생각이다.
투표하러 가기 전에 이런 정도는 읽고 가면 좋겠다.
물론 잘못된 점이 없지 않을거다.
애정어린 비판과 정정을 당부드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http://pic.twitter.com/XpQzSPn1

0. 기본적으로 허모 씨의 '순진무구함'에 대한 개인적 평가를 별론으로하자. 여기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참조: 양치기 소년의 진심)  

1. 민주주의 국가다. 정치에 대해선 누구나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당위다. 하지만 왜 '선거 개입'이 부정적인 어감으로 단박에 느껴질까. 뭔가 나쁜 것, 피해야 할 것으로 '선거 개입'이라는 단어는 인식된다. 물론 제도와 문화 때문이다. 선거법은 여전히 억압적이고, 정치문화는 개판이다.

2. 현재의 선거법과 정치제도, 그리고 여기에 직접 영향 받는 정치 문화는 너무 '억압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달리 말하자.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철저히 무시하고, 하잖게 평가한다. 시민을 누군가의 악의적이거나 무책임한 말장난으로 언제든 현혹될 수 있는 저열한 인식을 가진, 사리판단 안 되는 철부지로 보는 거다.

3.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작용한다. 최근 곽노현 사건에서 보듯 불명확하고, 크게 고민되지 않은 현실과 유리된 선거법(정치제도)이라는 존재와 이를 집행하는 국가기관(검경, 법원)의 이중성이다. 권력적 국가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청와대 혹은 유력한 정치인들의 카르텔이다. 거기에 기업권력이 이에 못지 않은 영향력을 늘려가고 있다. 무슨 과학적인 통계나 깊이 있는 인식이 필요한 게 아니다. 세상 꼴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체험으로 터득할 수 있다.

4. 선거가 코앞이다. 아직 인터넷 실명제 문제도 끝나지 않았다. 위헌 판결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책이라는 게 코미디 수준을 넘어서 호러로 간다. 한 지인이 페북에 남긴 지적을 인용해보자. (신뢰할 만한 경로를 통해 입수한 관계 당국의 입장) 선거 실명제 문제도 끝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인터넷 실명제 위헌 후속대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대책

-가해자의 직접 처벌보다는 간접 규제를 강화
-즉, 만만한 포털사업자들의 책임을 묻는 부분 강화

-요점은 3가지
1)악성댓글 추적 끝까지 해서 엄중처벌 한다.
2)게시판 운영자, 즉 포털이 관리 제대로 못한 경우 포털에도 손해배상 책임 물을 수 있게 한다.
3)방통심의위에 온라인 분쟁조정제 도입한다.

5. 기본적으로 국가는 국민주권에 바탕한 하나의 형식적인 위임기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가(권력, 그런 권력을 쥔자들)에게 국민은 철저히 대상이고, 도구이며, 수단에 불과하다. 그나마 좀 좋게 말하면 계몽 대상이다.

7. 우리 자신도 책임이 없지 않다.


1. 트위터와 블로그, 그리고 내러티브의 죽음에서 이어짐

11. SNS의 역설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SNS는 매체의 문턱을 낮췄다. 여전히 (협의의) 블로그가 뭔가 줄거리를 갖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리가 있는, 비교적 소수의 지적 엘리트에게 친화적인 매체였다면, SNS, 특히 트위터와 같은 캐주얼한 스트리밍 미디어는 '단 한 줄'로 고전적인 내러티브가 지배하는 질서를 일순간 파괴하고, 해체했다. 한 줄은 나도 쓸 수 있으니까. 스마트폰으로 사진 한방 찍어서 올리는 건 나도 할 수 있으니까.

12. 하지만 트위터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목도했던 풍경은 만인 미디어로서의 다채롭고, 다양한 빛깔과 향기의 풍경이 아니라 소수에 대한 이목 집중현상이다. 만인이 참여할 수 있는 미디어임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네임드' 집중현상은 오히려 강화된다. 여기에 이고잉이 탁월하게 지적한 '진영의 비즈니스'화는 가속하고, 맞팔이라는 병맛 문화로 인한 노이즈는 미친듯 증가한다. 그래서 나는 초기 트위터의 매력을 상당 부분 이미 잃어버렸다.

13. 최근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생각하는 현상은 '유명인'의 몰락(?)으로 부를 수 있는 현상이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트위터가 행하는 것 같은 '위대한 복수'(니체)랄까. 가령 공지영 '의자놀이' 사건을 생각해보자. 나는 공지영이라는 꽤 훌륭한 작가(로 평가되는 어떤 유명인)가 트위터라는 새로운 매체에 투영될 때 드러나는 그 한심한 모습에 이미 오래 전에 '아웃 오브 안중'한 상태였지만, 최근의 사태(!)는 뭐랄까, 묘한 쓸쓸함까지 안겨주고 있달까. 여기에 진중권이 구원투수로 함께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자니, 누군가 탁월하게 묘사한 바, 이게 대한민국 "진보 일진"의 일진스러움인가... 아주 슬픈 생각마저 들었다. (이번 사태를 훌륭하게 정리한 뗏목지기트윗 르뽀르따주)

14. 위대한 복수. 위대한 성취를 이룬 어떤 사람은 그 위대한 성취 때문에 언젠가는 망가지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 위대한 성취로 만들어진 그 사람에 대한 표상을 실제의 그가 계속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과거의 위대한 내가 오늘의 평범한 혹은 비천한 또는 욕망에서 허우적거리는 나에게 복수한다. 트위터의 즉각적인 대화 시스템은 대화의 맥락과 결을 거세시킴으로써, 즉 극단적으로 대화를 즉물화시킴으로써 자기의 즉각적인 감각적 본능만으로 그 대화를 조직하는 속성을 갖는다. 특히 1:1이 아니라 1:10, 1:20, 1:100... 이렇게 소수에게 집중되는 대화 메카니즘 속에서 소위 주목받는 유명인의 반응은 수동적인 공격성으로 표출되기 쉽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15. 그럼에도 공지영, 진중권의 트위터에서 표출된 그들의 '일진스러움'에 대해선 일말의 연민도 생기지 않는다. 그네들 진보일진들의 행패를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트위터라는 이 가상이며, 환상인 민주주의적 광장은 진보 일진들이 심심하면 용돈 삥뜯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악몽이 모여 있는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여기서 다시 지적하지만, 트위터라는 '민주주의적 광장' 그 자체가 환상이며, 환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게 지옥인 것보다는, 환상이더라도, 푸른 잔디인 것이 낫지 않겠나. 물론 방구나 뽕이나이긴 하다.


SNS 시대: 자기반영적 드라마로서의 사회운동

2012/08/23 04:27
지난 8월 16일 [더 많은 수다 2012] 포럼 중 '사회운동 더 창의적으로' 세션에서 발표했던 자료다(PPT). 참석자(청중)은 주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었는데, 한 스무 명 쯤 되었을까. 강의나 발표를 많이 하지 않아서 아직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청중이 많은 쪽과 적은 쪽, 그 둘 모두에게 장단점이 있겠으나, 나는 아직은 청중이 적은 쪽이 좋다. 사소한 단상들.

1. 청중이라는 말. 오병일 님은 '청중'보다는 '참석자'라는 표현을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그리고 나도 수동적인 의미가 다소 강한 청중보다는 뭔가 능동적이고, 수평적인 느낌의 단어가 뭐 없나 궁리해보지만, 적당한 표현이 당장은 생각나지 않는다. '참석자'는 강사(발제자)와의 쌍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개인적으론 별로다. 야학에선 교사를 '강학'(가르치면서 배운다)이라고 하고, 학생을 '학강'(배우면서 가르친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컨퍼런스든 포럼이든 말하는 사람만 말하고, 듣는 사람은 듣는 그런 구도를 나는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대개는 그렇게 된다. 이번 발제에선 그런 느낌이 강해서 좀 아쉬웠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셔서 질문도 많고, 딴지도 많을 줄 알았는데...

2. 자기 표절에 대한 불안. 유사하거나 중복되는 테마로 강의, 발제를 준비할 때 처음부터 새로운 자료들,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지, 아니면 기존에 썼던 자료를 업데이트해서 써도 되는지 좀 헷갈릴 때가 있다. 이번 발제 테마는 총론적인 차원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웹과 SNS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강의였는데(처음 오병일 님께서 발제를 맡기셨을 때는 좀 다른 취지셨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미 기존에 학부생의 교양강좌(특강) 자료로 대학생들이 웹과 SNS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를 내 나름으로 구성해본 발제가 이미 있어서, 이번 '수다 포럼'에선 그 자료를 상당히 많이 썼다. 2/3 정도는 이미 있는 자료를 썼고, 새로운 내용은 1/3 정도 뿐이다. 그게 좀 마음에 걸리더라. 물론 기존 자료들도 다시 모두 한장 한장 손보긴 했다.

아무튼 누가 볼지, 점점 더 독자들도 줄어드는 판에, 댓글이라도 하나 달릴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한 명이라도, 잠시 동안이라도 시간과 관심을 선물할 거라는 기대로 올린다. 슬라이드 쉐어에 올렸는데, 임베드로 공유한다. 물론 여기서 공유는 내용 공유와 다운로드 참조용이지(뭐 그다지 참조할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전적인 의미의 공유는 아니다. 발제 자료에 한정해선 앞으로 CC-BY-NC-SA(출처-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정도로 좀 타이트하게 정책을 가져갈 생각이다. 내 블로그의 CC 라이센스는 BY-SA(출처-동일조건변경허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