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단상 - 2. 미인과 권력, 그리고 스펀지

2008/04/0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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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몇 주전(3월 15.16일자) 조선일보 토-일요일 판에 실린 조경란의 서평에서 출발한 글이다. 그 서평이 대단해서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물론 아니고, 그 글이 대단히 후졌기 때문에 비판해야겠다는 것도 물론 아니며, 그냥 내가 느낀 그 글의 '자기배반'에 대해 쓰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서평이란 건 도대체 뭔가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건 기약은 없지만, 세 번째 글로 써야겠다. 일단 조경란 글의 자기배반, 자기모순에 대해 짧게 쓴다.

이 글은 '책 단상 - 1. 책 분류법 혹은 독서법'에서 이어지는 글이다.


1. 아름다움과 권력, 그리고 과학 : 어떤 대단히 '논쟁적'인
[아름다움의 과학]이라는 잘 팔린 만한 책을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있는 조경란 서평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대개의 다른 순진한 책과 달리 이 책은 저자의 의학지식에 문화사적, 진화생물학적, 언어학적 그리고 뇌과학적 연구 성과가 더해져 육체적인 아름다움이 새로운 권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조경란)

그런데 내 보이기엔 엉뚱하게도 결론은 다음과 같다.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아름다움 그 자체를 알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칸트가 말한 '지식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인간이 불행한 건 본능적으로 자신을 남과 비교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 이미 아는 사람,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조경란)
어이없이 '순진한' 혹은 좋게 표현해서 '상식적인' 결론이다.
여기에 칸트는 도무지 왜 등장하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그렇다.

조경란의 책 분류법(친절한, 순진한, 독발적인, 논쟁적인, 까다로운, 무뚝뚝한, 흥미로운)에 의한다면, "까다롭고, 도발적이며, 논쟁적인 책"(ㅡ.ㅡ;)이라고 평가한 책에 대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서평을 써버린 셈이다. 달리 말하자면, '아름다움'에 대한 상투적인 도덕적 진술에 대해 '순진하다'고 평가한 뒤에, 스스로 그런 상투적이고, 순진한 결론에 머문다.

그런데 더 순진하고, 게다가 따분하게 느껴지는 건 소개하고 있는 그 '도발적인, 논쟁적'이라는 책의 내용이다. "'아름다움'은 권력... 미인은 항상 승리한다"라는 표제기사로 설명(혹은 광고)되고 있는 그 책은 아무리 "의학지식에 문화사적, 진화생물학적, 언어학적 그리고 뇌과학적 연구 성과가 더해져" 있더라도 식상하다. 이게 그 책을 읽지 않은 무식의 소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서평을 통해 느끼기엔 그렇다.

미인은 승리한다... ㅡ.ㅡ;

아름다움은 권력이다.... ㅡ.ㅡ;
이걸 누가 모르나. 이건 KBS (교양빙자 오락) 프로그램 [스펀지]도 아는 내용이다.

2. [스펀지]도 아는 진실
언젠가 스펀지에서 황당한 실험을 했다. 이 실험이 위 [아름다움의 과학]이란 책에 영감받아 행한 실험인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방송 시점을 보건대, 이 책이 우리나라에 출간되기 한참 전에 그 실험을 한 건 확실한 것 같다.

이쁜 여자 A.
그다지 이쁘지 않은 여자 B.
(이 실험은 정말 그 실험에 참여한 여성, 물론 B에게는 그야말로 '야만적인' 실험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

ㄱ. 사람들을 상대로 한 실험
A와 B가 길거리에  전단지를 나눠준다. 결과는 당신이 예상하는 바로 그대로다. A는 B가 아직도 열심히 돌리고 있는 전단지를 가뿐하게 털어버린다.

ㄴ. 동물을 상대로 한 실험 (이 결과가 개인적으로 좀 놀라웠다)
A와 B가 나란히 각 동물들이 좋아하는 먹이를 들고 동물들을 유혹한다. 물론 A와 B가 들고 있는 먹이는 같다. 결과는? 이 놈의 짐승들도 이쁜 건 알아서, 이쁜 A에게 몰린다. 어떤 동물에게 실험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방구나 뽕이나.. ㅡ.ㅡ;

3. 자기모순의 귀결 : 장식적 글쓰기의 공허함
아름다움은 권력이다. 그리고 이건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이게 현대인에게 대단히 새로운 진실이라거나, 혹은 무슨 대단한 실험을 통해, 어떤 놀랄만한 과학적 실증을 통해 '밝혀진' 진실이라는 생각은, 개인적으론, 전혀 들지 않는다. 조경란은 서평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이런 까다로운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아름다움을 향한 광기가 왜 나쁜 것인가? 하는. '아름다움의 신화'를 쓴 미국 작가 나오미 울프는 '이제까지 여성들이 얻어낸 것, 아이, 부엌, 여성적인 것에 대한 집착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자 아름다움의 신화가 그들을 구속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전 세계의 여성을 아름다움에 집착하게 하는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
그러면서 '전지현'을 예로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전지현의 "주근깨가 고스란히 보이는 맨 얼굴로 인터뷰한 사진"은 "'나는 완벽해 보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보이고 싶어요'라는 듯 느껴졌다"
참, 어처구니 없다. ㅡ.ㅡ; 예를 들 사람이 없어서 전지현을 예로 드나. 전지현은 맨얼굴이 더 이쁘다는 CF 모델(개인적으론 김태희 전지현은 배우라기 보단 CF 모델인데)아닌가? 전지현은 그렇다치자. "전 세계의 여성을 아름다움에 집착하게 하는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라는, 그래도 흥미를 느낄 만한 질문에 대해  조경란은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써야 한다면 여기에 대해 좀더 썼다면 흥미로웠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선 어떤 대답도 없다. 그렇다고 책을 읽는다고 이에 대한 해답이나 혹은 해답에 대한 상상력을  얻을 것 같지도 않다. 이게 뭔가, 허탈하게시리. (여기에 대해선 따로 글을 쓰고 싶다. 물론 언제 쓸지 모르지만).

이 '논쟁적인 책의 결론'은 "아름다움은 확실히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자신 스스로가 아름답고다고 느끼는 경우에만 그렇다고 한다"란다. 참 논쟁적인 결론이다.(아놔, 장난하냐?) ㅡ.ㅡ;

대체로 대단히 논쟁적인, 무슨 대단히 독창적인 관점과 놀라운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글의 결론은 의외로 허무할 수가 있다. 그 허무의 풍경은 두 가지다. 그 결론이 상식에 바탕하기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미처 느끼지 못했던 어떤 근원적인 아이디어들, 어떤 원형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능동적인 허무, 공감이 그 밑바닥에 닿아 있는 허무감일 수 있다는 거다.

반면 뻔한 이야기를 놀랄만한 둔갑술로 위장하고, 치장해서 생겨나는 감정은 수동적인 허무, 즉, 공허함이다. 그러니 뻔한 이야기를 놀랄만한 둔갑술로 포장한 글, 그런 이야기들에 대해선, 새로운 상상력이나 머리와 가슴을 모두 채우는 만족감(그로 인해 생겨나는 존재론적 허무감)이 아닌, 배반감을 느끼게 된다.

[아름다운의 과학]이란 책은 차치하고, 조경란의 서평은 전형적으로 이런 '둔갑술'에 바탕하고 있다. 속류 도덕론에 바탕한 순진한 이야기 밖에는 할 이야기가 없는데, 그걸 세련된 양, 혹은 굉장히 도발적인 양 포장하려니 결국 그 바닥이 드러나는 셈이다. ㅡ.ㅡ; 여기에는 어떤 고민어린 자기 체험의 투사도 없고, 그렇다고 관념의 치열한 노동이 담겨진 흔적도 없다. 그냥 되는대로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평균적인 저널 서평보다는 꽤 나은 서평이긴 하지만.

대충 잘 팔리는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이름값(솔직히 조경란에 대해 나는 아는 바 없지만)의 관성에 의지해서, 약간 감각적인 언어들, 혹은 어떤 상투적 권위의 표시들(가령 '의학지식, 문화사적, 진화생물학적, 언어학적, 그리고 뇌과학적 운운이나 '칸트의 지식의 아름다움' 따위의 인용... 이게 도무지 이 서평에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그저 과시적, 장식적 수사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로 그 공허함을 치장할 뿐이다.


* 관련글
책 단상 - 1. 책 분류법 혹은 독서법'



추.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 스스로도, 공허한 글을 쓰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싶은 반성이 밀려오긴 한다. 그냥 되는대로, 혹은 어떤 매너리즘에 빠져 왜 쓰는지도 모르면서 쓰는 글들... 그래도 조경란은 조선일보라는 반역사적 저질매체에 기고한 대가로 빠방하게 원고료 타먹었을거 아닌가... 란 생각이 더불어 변명처럼 떠오른다. ㅡ.ㅡ;

아, 문득, 떠오른, 총선이 정말 코앞이다.
심상정, 노회찬 화이팅!!




좀 오래된 이슈지만, 개인적인 관심사와 겹치기도 하고,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짧게 남긴다. 이 글은 다음 해킹 이슈가 아닌, 찌라시즘의 베끼기 신공에 관한 글이다.


1. 다음(daum) 해킹 이슈

좀 아리까리한 지상파이긴 하지만, SBS뉴스를 통해서도 보도된 바 있는 꽤 덩치가 큰 늬~우스였다.

대형 포털사이트인 다음이 회원 정보를 해킹당하고도 반 년 동안이나 쉬쉬해온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사후 대책도 허술하기만 했습니다.
- 관련 SBS 보도 내용중  (FF에서는 클릭 비추. 로딩시간이 좀 길더라)
- 다음미디어 송고버전 (동영상 정보가 함께 있고, FF에서도 접근성이 좋다. 클릭 추천)

이 해킹 이슈의 논리적인 얼개랄까, 그 구조는 이미 지난 '옥션' 해킹 이슈에 본 그것과 유사한 것 같다. 비슷한 일이 업체만 달리해서 반복된 것 같다. 이에 대해선 새드개그맨님의 흥미진진한 추리극장 버전을 강력 추천하는 바다. 이번 다음 해킹 이슈에 대해서도 은근 팟캐스팅을 기대했지만, 동일한 (의미를 갖는) 이슈라고 판단하셨는지, 이번엔 팟캐스트를 제작하지 않으셨다. 암튼...


덧. 새드개그맨님께서 드디어 팟캐스트를 제작하셨군요!



* 보충 : 이하 내용에 대해선, 써머즈님의 논평 때문에 보충이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가급적 이전 본문에 대한 수정은 최소한으로 하고, 써머즈님 논평을 통해 제가 새롭게 알게된 '연합뉴스' 관련 부분을 본문에 첨가하는 식(덧. 으로 표기)으로 본문을 보충할까 싶습니다.


2. 기사 표절 의혹 : 누가 누굴 베꼈을까?

다음 해킹 뉴스의 부가적인 이슈는, 내 개인적인 관심사 중 하나인 '찌라시즘', 특히 찌라시즘 최고 덕목인 표절에 관한 거다. 이 역시 앞서 소개한 새드개그맨님의 미투로그에서 처음 접한 소식이다. 내용인 즉 다음과 같다. 덧. 이에 대해선 써머즈님께서 논평하신 '연합뉴스'를 인용하는 것이 아닌, 아예 '보도자료' 삼아서 기사를 작성한 혐의가 강하게 포착된다.

이 기사이 기사는 신문도 다르고 기자도 다르다.
그런데 희한하게 똑같다. 누가 누구 것을 보고 베낀게냐? (새드개그맨)

태그 : 댣군과 떡이떡이 논쟁보다 훨씬 더한걸. (참고1. 참고2.)

앞의 '이 기사'는 세계일보의 기사고, 뒤의 '이 기사'는 쿠키뉴스의 기사다.
덧. 그리고 위 양 기사들은 공히 '연합뉴스'를 적극적으로 참조(혹은 베낀) 혐의가 있다.
링크 인용하면,

M. 다음, 상담시스템 해킹당하고 수개월간 `쉬쉬'(종합)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2008/03/26 07:55 송

A . 포털사이트 다음, 해킹 피해 8개월간 '쉬쉬' (세계일보. 김준모 기자)
    : 기사입력 2008.03.26 (수) 21:20, 최종수정 2008.03.26 (수) 21:21

B. 포털 ‘다음’ 해킹 당하고 수개월간 쉬쉬 (쿠키뉴스. 차윤경 기자)
    : 2008.03.26 22:21

M. 연합뉴스 기사
A. 세계일보 기사.
B. 쿠키뉴스 기사.
(궁금하신 분들은 가운데 박스를 열어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셔도 좋을 듯)

포털사이트 다음이 지난해 고객상담 시스템을 해킹당하고도 이를 수개월간 숨겨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 M
포털사이트 다음이 지난해 시스템 일부를 해킹당하고도 이를 숨겨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 A
포털사이트 다음이 지난해 고객상담 시스템을 해킹당했다. 그러나 다음측은 이 사실을 수개월 동안 숨겨온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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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업계 관계자는 "피해가 일부 이용자에 국한된다 하더라도 개인정보 유출 여부나 피해 규모 등을 특정하기 어려웠던 상황인 만큼 이용자 전체를 대상으로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아이디, 비밀번호 변경 등의 조치를 취하게 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 M
업계 관계자는 “피해가 일부 이용자에 국한된다 하더라도 개인정보 유출 여부나 피해 규모 등을 특정하기 어려웠던 상황인 만큼 이용자 전체를 대상으로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아이디, 비밀번호 변경 등의 조치를 취하게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A
이 같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다음측의 대응이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피해가 일부 이용자에 국한된다 해도 개인정보 유출 여부나 피해 규모 등을 특정하기 어려웠던 만큼 이용자 전체를 대상으로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아이디, 비밀번호 변경 등의 조치를 취하게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B

덧. 그리고 베끼고 남은 '연합뉴스' 기사 말미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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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지적했다'와 '말했다'의 이 놀라운 차이!!!
덧. 꼬집었다 -> 지적했다 -> 말했다. 로 이어지는 눈돌아가게 현란한 삼연속 콤보!!!



3. 생각해볼 수 있는 경우의 수.

ㄱ. 동일한 보도자료를 활용했을 경우
일단 기사작성의 관행상, 이 사건에 대한 동일한 보도자료를 활용했을 경우를 생각해볼 수는 있다. 그런데 사건 성격상 다음(daum)이 머리에 총맞지 않고서야, 이 사건에 대해 '보도자료'를 자사에 비판적인 논조로 작성했을리 만무하다. 그러니 동일한 보도자료에 바탕해서 기사가 거의 똑같아졌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ㄴ. 베꼈을 경우
기사 입력시각으로 본다면, 쿠키뉴스 차윤경이 세계일보 김준모 기사를 베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건 추정이다. 하지만, 정황을 보건대, 아주 강한 추정이다. . 아래 'ㄹ' 부분에 보충하겠지만, 연합뉴스 기사 하나를 두 기사가 대놓고 베낀 뒤에, 쿠키뉴스가 확인차 세계일보 기사를 참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연합뉴스 기사가 워낙에 '원본'이라서 세계뉴스 기사를 참조하지 않았을 수도 있긴 하겠다).

ㄷ. "복제된 두뇌"(아거)를 갖고 있을 경우
이 경우엔 '인체의 신비'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ㄹ. (덧.) '연합뉴스' 기사를 '보도자료'처럼 활용한 경우 (써머즈님 보충 논평 참조)
써머즈님의 논평을 접하고, 연합뉴스의 최초 기사를 확인해보니, 두 기사 모두 '연합뉴스' 임미나 기자의 글을 대놓고 베낀 것 같다. 물론 통신사 기사 '인용'하고, 이를 자사 지면이나 사이트에 게재하는 일은 합법적이고, 늘상 있어왔던 일이다. 괜히 돈내는 건 아닐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통신사 기사라고 해도, 그 기사를 작성한 엄연한 기자가 따로 있거늘, 이를 자신이 쓴 기사처럼 둔갑(! 말그대로 둔갑인데)시키는 일이 그 통신사와의 계약조건에 포함되어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솔직히 세계일보 김준모나 쿠키뉴스 차윤경이나 연합뉴스 '임미나' 기사를 대놓고 (합법적으로) 표절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이것이 합법의 테두리(표절이 전적으로 불법은 아니니까, 연합뉴스와의 계약 내용에 따라 얼마든지 '베낀 뒤 어조사 수정' 신공이 '합법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에 있더라도, 정말 저널리즘을 지향하는 언론사 기자라면, 이렇게, 아무리 통신사라고는 하지만, 다른 기자의 글을 자기 글인양 가로채는 행위는 기자 윤리에 반하는 '양아치 짓'이라는 생각을 지울 길 없다.



4. 결

끝으로, 위 미투로그에 있는 새드개그맨님의 간단명료한 논평으로 글을 마칠까 싶다.

요즘 기자들...돈 참 쉽게 버네요~
이러면서 쿠키뉴스 차기자는 해당 기사의 저작권을 주장하겠지요? (새드개그맨)


물론, 복제두뇌가 아닌 경우라면 말이지. : )

끝으로 하나 더, 쿠키뉴스(국민일보 자회사) 표어는 "갓 구워낸 바삭바삭한 뉴스"다.
위 강한 추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표어 하나 제안한다.

"갓 표절한 바삭바삭한 뉴스"

덧. 세계일보도 방구나 뽕이나다.


* 관련 추천글
옥션과 해킹, 내 정보는 누구의 손에? (08.02.13) (새드개그맨)
데자뷰 (아거
) : "글쓴이가 내 글을 보지 않고 그렇게 적을 수 있다면 나와 그는 어떤 특정 주제에 대해 거의 비슷하게 정보처리를 하는 일종의 복제된 두뇌를 가지고 있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 (글 중에서)





강남좌파

2008/04/03 00:21
* 본격 인터뷰라고 하기에도 뭣하고, 그렇다고 전적으로 서평을 빙자한 책광고로 보기에도 아리까리하다. 기사 제목의 '강남좌파'는 인터뷰이인 세계문학상 수상작가 백영옥의 대답 중에 등장한다. 강부자시대에 '강남좌파'라니, 어울린다. 
패션잡지 기자를 주인공 삼은 '칙릿'이라는 점에서 베스트셀러 소설이자 흥행 영화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지만, 소설은 처음부터 <악마는…>처럼 번드르르한 이야기는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주인공은 유명 여배우를 섭외하기 위해 매니저에게 ‘스토커’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7개월을 공들이고, 후배에게 ‘잡지계의 성철스님’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지만 예금도, 보험도, 펀드도, 애인도 없다. (중략) 그는 “패션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명품만 입고, 속물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도 진정성은 있다”며 “좋은 집안에서 혜택 받고 자란 소위 ‘강남 좌파’의 상반된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 너희가 '강남좌파'의 비애를 아느냐(김일주, 한겨레) 중에서

* 다소간 책광고 향기 풍기는 이 기사는 너무 짧아서 뭐라 논평하기도 뭣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너무 피상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미할 만한 메시지를 던진다. 제목 그대로다. '강남좌파'는 무엇으로 사는가? 명품족으로 상징되는 세속적인 욕망의 시스템은 어떻게 이들의 초자아와 충돌하나... 이제 명품과 더불어 '좌파'는 강남으로 상징되는 어떤 계급들의 '패션 악세사리'가 되어 가는것인가...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종종 하는 이야기지만, 내 주된 관심사 중 하나는 나의, 당신의, 그러니 우리 모두와 이 사회의 문화적 관습과 욕망들 속에 잠재된 그 죽을 수 없는, 죽지 않는, 마치 내 살처럼, 뼈처럼, 피처럼.. 내 몸 속을 흐르는 속물근성이다.

*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위 기사에 달려 있는 댓글 때문이다.
명품 안입고 속물처럼 안살려고 노력해도 예금도, 펀드, 보험도 없는 사람 수두룩하다.
강남좌파 따위의 되지도 않는 이야기 하는 건 즐일뿐...
이 솔직하고, 즉각적인 반응 역시 음미할만한 것 같다.
감정적으로 무한한 공감이, 무한한 선입견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바지만,  생겨난다.
'즐.일.뿐.'

* 아무튼 소위 패션좌파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 드디어 문학상을 받았다. 문화사적인 의미에서도 이건 꽤나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물론, 그 소설을 읽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읽지 않을 확률이 높지만, 혹시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런 경향에 대해서는 그다지 거부감은 없고, 자연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 나는 중학교 이후로 강남 한복판인 역삼동에서 십 수년을 살았다. 지금은 나와서 자취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본가는 거기에 있다. 아무튼 그 강남으로 이사가는 날 느꼈던, 어린 내가 느꼈던 그 이질감은 여전히 희미한 기억으로, 하지만 생생한 질감으로 남아 있다. 가장 먼저 왔던 충격은 공간적인 이질감이었던 것 같다. 그 넓고, 반듯한 도로들. 화려한 고층건물들.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잔상들.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밤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지나쳐갔던 탐스럽게 반짝거리던 모텔의 네온사인들. 검고 기름진 말(馬)처럼 빛나는 세단, 양복입은 사내들에게 '오빠''오빠'를 촉촉한 혀로 발음했던.. 룸살롱 앞에 늘어선, 늘 날씬하고, 멋진,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즐겨입었던 그 아가씨들... 아직도 떠오른다.

* 기사에 대해 짧게 한마디.
위 인용한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칙릿'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문화부기자에게는 익숙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난 솔직히 이런 표현 처음 들었다. 찾아보니 칙릿(치크리트. Chick-lit)은 이런 뜻이다.
ㄱ.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속어 chick와 문학 literature를 결합한"(출처)
ㄴ. "젊은 여성을 겨냥한 영미권 소설들을 지칭하는 신조어" (출처)

괄호로 간단한 설명도 없이, 이런 신조어들을 누구나 읽어야 하는 신문기사에 함부로 써재끼는 그런 반상식적 행태에 대해선, 아주 짧게나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예민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건 사소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런 표현들은 기사 질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런 유치한, 상식주의에 반하는, 기자답지 못한, 그래서 프로답지 못한, 언어습관 하나 하나가 반저널리즘의 뿌리다.



오늘은 우리민족 고유의 명절, 만우절이다.

만우절을 며칠 앞둔 지난 27일 만우절스러운 기사가 하나 실렸다.
내용인 즉, 노원구(병)에 출마한 홍정욱과 노회찬의 여론조사가 유독 한 신문에서만 역전되서, 그것도 꽤 격차가 벌어진 채로 1면에 실렸는데, 그야말로 혼자서 미리 만우절 기분 물씬 만끽하고 있는 기사다. 그 신문은 말할 것 없이 해럴드경제고, 더욱 말할 필요 없는 주지의 사실일텐데, 홍정욱은 전(前)헤럴드미디어 회장을 역임했던 바로 그 남궁원씨 아들, 7막7장의 바로 그 홍정욱이다.


미디어오늘과 프레시안의 의심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지극히 상식적이다.
이건 초딩만 되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노회찬, 홍정욱에 근소한 차로 우위 한겨레신문 - 2008년 3월 26일
[총선 D-11] (격전지/노원병) 홍정욱ㆍ노회찬 박빙승부
한국경제 - 2008년 3월 28일
노회찬 34.8% - 홍정욱 28.5%
한국경제 - 2008년 3월 25일

그런데 해럴드경제는?

홍정욱 29.4 vs. 노회찬 17.4 (헤럴드경제. 케이엠조사연구소)

구글이 '멀웨어 경고' 때려서, 가뜩이나 후진 컴퓨터가 맛이가지 않을까 염려되어 그 링크는 인용하지 않겠다만... ㅡㅡ;; 위 미디어오늘을 잠깐 인용해보자.

동아일보와 MBC의 공동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마찬가지로 노 후보가 홍 후보보다 3.9%포인트 앞서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노 후보는 35.2%의 지지를, 홍 후보는 31.3%의 지지를 얻었다. 한겨레는 리서치플러스, 동아와 MBC는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지지율을 조사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비슷한 기간에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이렇게 큰 차이가 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24∼26일 이뤄졌고, 나머지 신문들은 25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 홍정욱 압승? 이상한 헤럴드경제 여론조사 (미디어오늘) 중에서


만우절 특수를 겨냥한 것이 분명한, 케이엠조사연구소 제작,  해럴드경제 배급, 홍정욱 주연의 만우절 블록버스터 '홍정욱 회장님 힘내세요'는 이제 법정에서 관객들을 불러모으려 하고 있다.


아, 이 블록버스터 황당 무비의 장르는 물론 코미디다. 
이제 저널리즘은 만우절을 미리 미리 근심하는 놀라운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해럴드경제는 저널리즘의, 그야말로, 신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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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든 콜필드 - [호밀밭의 파수꾼](1951)

2008/03/31 20:56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읽었던 문예출판사판 표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Jerome David Salinger)
: 1919년 1월 1일 뉴욕 ~ 2010년 1월 27일


0. 이 글의 문장들 중 어떤 것들은 '나는 영화다'(이것도 물론 내 글인데)의 어떤 문장들과 겹친다. 자기 인용인 셈인데, 비슷한 시기에 썼던 글이고, 그 문장들 말고 딱히 다른 문장들이 생각나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게으름이기도 하고.. 이 글을 웹상에 처음 올린 건 한겨레블로그였다. 거기에 있던 글은, 내 원칙상으론 지워야겠으나, 거기에 있던 논평들에 그 본문이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지우지 않는다. 물론 이 글은 그저 감상적인 서평에 불과하지만...

이 글은 '책에 대한 단상 - 1. 책 분류법 혹은 독서법'에 잠깐 등장한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한 언급 때문에, 생각난 김에 '민노씨.네'로 옮겨오는 글이다. 추고는 최소한으로 한다. 끝으로 이 글 마지막 문단의 어투는 의도적으로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의 어투를 흉내내고 있다. 유치하더라도 그것은 의도적이다. 아, 그리고 하나 더. 고유명사인 외래어의 표기상의 기준은 모르겠지만, 내가 읽었던 출판사판에서는 '홀든 코울필드'라고 적고 있지만, 이제는 '홀든 콜필드'라고 부르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기존에 '코울필드'로 표기했던 것은 '콜필드'로 바꾼다.
 

1. 관계.
나는 어떻게 책과 만나는가. 나는 책의 이미지들을 통해 그 책의 본질들과 만난다. 이미지만이 본질에 닿아 있다. 그 본질이 드러나는 방식은 관계를 통해서인데, 모든 존재들이 그 스스로를 드러내는 그 관계, 그와 마찬가지로 나와 책 속에 있는 홀든과 우리인 소설의 풍경들은, 그러므로 가상적 현실들, 그 실재들은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고, 그 신비로운 베일을 벗는다.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그것은 이미지의 잔상들이다. 그 잔상들의 이어짐을 통해서 우리는 책, 어떤 이야기, 소설과 만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만질 수 없는 물질성을 소설의 ‘육체적인’ 속성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계와 만나는 방식은 이것과 다른가. 그 본질은 같다. 우리는 소설을 만나는 그 방식으로 세계와 만난다. 우리가 세상을 구성한다고 믿는 그 알갱이들, 그 본질들은 그러나 우리의 신념과는 상관없이 하나의 이미지이며, 그 이미지들의 끊임없는 질주와 정지과 교차인 것이다

 
2. 접촉.  
아주 진지하게 묻자. 당신은 어떻게 나를 아는가. 내가 당신의 이성과 감수성의 씨줄과 날줄로 무수하게 엉켜진 그 복잡하기 그지없는 회로들과 만나는 방식. 그것은 이 글이다. 나와 당신 사이의 공통분모, 그 문법이라는 배경과 그 배경을 만들어 가는 개개의 단어들을 통해 당신은 나라고 생각되는 이미지들, 어떤 어투, 어떤 느낌들과 만난다. 그것은 대개 착각에 기반한다. 당신은 나를 이루고 있는 어떤 편린, 그 편린들의 극히 일부를 통해서 나라는 어떤 이미지의 지극히 협소한 부분과, 지금, 조우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만질 수 없는 촉감이며, 잡을 수 없는 몽환이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나와 만나고 있다.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할 텐가. 그렇다. 그것은 기적이다. 기적. 우리에게는 기적적으로, 공감의 회로들이 서로에게 각자 존재한다. 그 기적의 매개는 언어이며, 우리가 서로를 느끼는 방식은,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느끼는 방식은 그 언어의 풍경들인 것이다. 기억들의 고정과 고정의 변주를 통해 이어지는 낯선 기억들과의 재회. 그것이 삶이다. 우리는 그 풍경들을 어떤 소설들을 통해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만나려 하는 풍경. 꺽다리 홀든. 홀든 콜필드다. 나는 홀든을 부르면, 벌써부터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3. 그 아이, 홀든.
홀든. 그 아이가 어른이 되게 하는 일, 당신이 나와 만나는 일.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홀든이 어른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당신은 선택해야 한다. 무엇을? 당신과 당신을 둘러싼 세상, 그리고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 그 모두를 말이다. 참여하도록 선동하고, 그 선동이 삶의 방향을 틀도록 누구나 고함을 질러야 한다.

그 고함은 그러나 비유적인 고함이며, 외침이다. 모든 속삭임, 아무 것도 없는 침묵은 그러나 고함인 것이다. 아주 가느다란 목소리로 당신에게 말하는 나의 속삭임. 홀든의 목소리는 아주 냉소적으로 세상에 퍼진다. 그리고 나의 내면에 침잠한다. 그 가느다란 떨림, 작은 고백. 하지만 그 목소리가 메아리로 돌아와야 하는 것은 커다란 파도와도 같은 함성. 외침.


4. 나, 홀든 콜필드
나는 홀든이다. 당신, 나, 홀든의 글을 읽는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나의 친구인가. 나의 친구. 친구 말이다. 당신이 나의 친구가 되길 바란다. 바란다는 건, 무엇인가를 소망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 바람은 그저 공상이거나 꿈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람이 현실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바랄까. 내가 바라는 것. 당신이 바라는 것.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저 소망하고, 그저 바란다면 그건 정말 바라는 게 아니지.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정말 바라기 위해선, 그래서 바라보아야 한다. 바라본다는 거 말이다. 자기를 바라보고, 자기의 주변을 바라보고, 그 모두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바라봄으로 항상 소망은 시작되고 있다.

본다는 것은 그 피상의 현상적 이미지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물론 말이다. 그 바라봄은 어떤 뽀얀 시선의 가상적 관계들을 그 최초에 만들어낸다. 그 관계, 안개처럼 희미한 관계 말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지하철 입구의 거지아저씨는 나와 희미한 안개 속으로 함께 걸어들어 가서, “아저씨, 당신은 왜 지금 여기에 있어요?”. 나는 질문하고, 아저씨는 알 수 없는 말을 내게 건다. 그러나 그 대화, 그걸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튼 그 희미한 관계로부터 나는 거지 아저씨의 앙상한 손, 그 손에 묻은 때의 얼룩에 대해서 나만의 기억을 갖게 되고, 그 기억으로부터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5. 다시, 공감.
이상하다. 왜 나는 여기에 있지. 라고 나는 떠올려 보는 거다. 왜 아저씨는 저기 웅크리고 앉아 있지. 나, 홀든은 호밀밭의 파수꾼.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은 낭떨어지를 향해 달려가는 순수의 동작들. 그리고 저기 웅크리고 있는 아저씨. 정말은 내가 아주 어른이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나는 속수무책이란 말이다.
 


* '호밀밭의 파수꾼'을 둘러싼 이야기들
존 레논의 암살범 마크 채프먼(Mark Chapman)이 탐독한 소설로 유명하다. 암살 순간 그의 손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들려있었으며, 그의 암살 동기는 거짓과 가식에 대한 콜필드의 절규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의 작품세계는 수많은 미국 뮤지션(그린데이, 오프스프링, 빌리 조엘 등)과 영화인, 심지어 테러리스트와 암살범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엘리아 카잔(Elia Kazan)감독이 영화화하고자 했으나 샐린저는 '홀든이 싫어할까 봐 두렵다'라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생애는 2000년에 <파인딩 포레스터>를 통해 '간접적으로' 영화화되었다. [이상 인터파크 제공 저자 소개문 발췌 인용] : 파이어폭스에서는 깨져서 링크는 생략. ㅡ.ㅡ;
 

* 작가연보
1940년 『휘트 버넷 단편지(紙)』에 단편소설 「젊은이들」
1948년 『뉴요커』지에 단편소설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
1951년 유일한 장편소설『호밀밭의 파수꾼』
이후 단편소설집 『아홉 개의 이야기』, 중편소설집 『프래니와 주이』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를 출간(그 뒤에 긴 침묵)
( 이상 인터파크 제공 저자 소개문 발췌 인용)


* <앵무새 죽이기>
한겨레블로그에 썼을 때 많은 분들께서 하워드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함께 추천했다. 아직 <앵무새 죽이기>를 읽지는 않았는데... 기회가 닿으면 함께 다시 읽어보고 싶다.


* 인터넷 구입가격 비교
민음사, 공경희 번역본 기준.
인터파크가 가장 싸다. 7,000원 → 최저가 4,550원 / 적립금 228원(5%).
예전엔 그랬는데, 그 때는 주로 IE를 써서 불편함을 몰랐으나, 지금은 주로 FF를 써서, 들어가봤더니 사이트가 깨진다. ㅡ..ㅡ;

알라딘에서 살펴보니 민음사판과 문예출판사판, 그리고 소담출판사판이 있는데...
내가 읽은 건 문예출판사판(민음사판이 나오기 전의)이지만, 가격은 민음사판이 좀 더 싸다.
민음사, 공경희 번역본 (4900원)
참고로 문예출판사판은 5600원이다. ㅡ.ㅡ;


* 관련글
'책에 대한 단상 - 1. 책 분류법 혹은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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