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격 인터뷰라고 하기에도 뭣하고, 그렇다고 전적으로 서평을 빙자한 책광고로 보기에도 아리까리하다. 기사 제목의 '강남좌파'는 인터뷰이인 세계문학상 수상작가 백영옥의 대답 중에 등장한다. 강부자시대에 '강남좌파'라니, 어울린다.
* 다소간 책광고 향기 풍기는 이 기사는 너무 짧아서 뭐라 논평하기도 뭣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너무 피상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미할 만한 메시지를 던진다. 제목 그대로다. '강남좌파'는 무엇으로 사는가? 명품족으로 상징되는 세속적인 욕망의 시스템은 어떻게 이들의 초자아와 충돌하나... 이제 명품과 더불어 '좌파'는 강남으로 상징되는 어떤 계급들의 '패션 악세사리'가 되어 가는것인가...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종종 하는 이야기지만, 내 주된 관심사 중 하나는 나의, 당신의, 그러니 우리 모두와 이 사회의 문화적 관습과 욕망들 속에 잠재된 그 죽을 수 없는, 죽지 않는, 마치 내 살처럼, 뼈처럼, 피처럼.. 내 몸 속을 흐르는 속물근성이다.
*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위 기사에 달려 있는 댓글 때문이다.
이 솔직하고, 즉각적인 반응 역시 음미할만한 것 같다.
감정적으로 무한한 공감이, 무한한 선입견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바지만, 생겨난다.
'즐.일.뿐.'
* 아무튼 소위 패션좌파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 드디어 문학상을 받았다. 문화사적인 의미에서도 이건 꽤나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물론, 그 소설을 읽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읽지 않을 확률이 높지만(혹시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향에 대해서는 그다지 거부감은 없고, 자연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 나는 중학교 이후로 강남 한복판인 역삼동에서 십 수년을 살았다. 지금은 나와서 자취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본가는 거기에 있다. 아무튼 그 강남으로 이사가는 날 느꼈던, 어린 내가 느꼈던 그 이질감은 여전히 희미한 기억으로, 하지만 생생한 질감으로 남아 있다. 가장 먼저 왔던 충격은 공간적인 이질감이었던 것 같다. 그 넓고, 반듯한 도로들. 화려한 고층건물들.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잔상들.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밤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지나쳐갔던 탐스럽게 반짝거리던 모텔의 네온사인들. 검고 기름진 말(馬)처럼 빛나는 세단, 양복입은 사내들에게 '오빠''오빠'를 촉촉한 혀로 발음했던.. 룸살롱 앞에 늘어선, 늘 날씬하고, 멋진,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즐겨입었던 그 아가씨들... 아직도 떠오른다.
* 기사에 대해 짧게 한마디.
위 인용한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칙릿'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문화부기자에게는 익숙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난 솔직히 이런 표현 처음 들었다.
찾아보니 칙릿(치크리트. Chick-lit)은
괄호로 간단한 설명도 없이, 이런 신조어들을 누구나 읽어야 하는 신문기사에 함부로 써재끼는 그런 반상식적 행태에 대해선, 아주 짧게나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예민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사소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런 표현들은 기사의 질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런 유치한, 상식주의에 반하는, 기자답지 못한(그 자체로 정말 프로답지 못한) 언어습관 하나 하나가 반저널리즘의 뿌리다.
패션잡지 기자를 주인공 삼은 '칙릿'이라는 점에서 베스트셀러 소설이자 흥행 영화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지만, 소설은 처음부터 <악마는…>처럼 번드르르한 이야기는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주인공은 유명 여배우를 섭외하기 위해 매니저에게 ‘스토커’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7개월을 공들이고, 후배에게 ‘잡지계의 성철스님’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지만 예금도, 보험도, 펀드도, 애인도 없다.
(중략)
그는 “패션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명품만 입고, 속물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도 진정성은 있다”며 “좋은 집안에서 혜택 받고 자란 소위 ‘강남 좌파’의 상반된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 너희가 '강남좌파'의 비애를 아느냐(김일주, 한겨레) 중에서
(중략)
그는 “패션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명품만 입고, 속물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도 진정성은 있다”며 “좋은 집안에서 혜택 받고 자란 소위 ‘강남 좌파’의 상반된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 너희가 '강남좌파'의 비애를 아느냐(김일주, 한겨레) 중에서
* 다소간 책광고 향기 풍기는 이 기사는 너무 짧아서 뭐라 논평하기도 뭣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너무 피상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미할 만한 메시지를 던진다. 제목 그대로다. '강남좌파'는 무엇으로 사는가? 명품족으로 상징되는 세속적인 욕망의 시스템은 어떻게 이들의 초자아와 충돌하나... 이제 명품과 더불어 '좌파'는 강남으로 상징되는 어떤 계급들의 '패션 악세사리'가 되어 가는것인가...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종종 하는 이야기지만, 내 주된 관심사 중 하나는 나의, 당신의, 그러니 우리 모두와 이 사회의 문화적 관습과 욕망들 속에 잠재된 그 죽을 수 없는, 죽지 않는, 마치 내 살처럼, 뼈처럼, 피처럼.. 내 몸 속을 흐르는 속물근성이다.
*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위 기사에 달려 있는 댓글 때문이다.
명품 안입고 속물처럼 안살려고 노력해도 예금도, 펀드, 보험도 없는 사람 수두룩하다.
강남좌파 따위의 되지도 않는 이야기 하는 건 즐일뿐...
강남좌파 따위의 되지도 않는 이야기 하는 건 즐일뿐...
이 솔직하고, 즉각적인 반응 역시 음미할만한 것 같다.
감정적으로 무한한 공감이, 무한한 선입견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바지만, 생겨난다.
'즐.일.뿐.'
* 아무튼 소위 패션좌파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 드디어 문학상을 받았다. 문화사적인 의미에서도 이건 꽤나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물론, 그 소설을 읽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읽지 않을 확률이 높지만(혹시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향에 대해서는 그다지 거부감은 없고, 자연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 나는 중학교 이후로 강남 한복판인 역삼동에서 십 수년을 살았다. 지금은 나와서 자취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본가는 거기에 있다. 아무튼 그 강남으로 이사가는 날 느꼈던, 어린 내가 느꼈던 그 이질감은 여전히 희미한 기억으로, 하지만 생생한 질감으로 남아 있다. 가장 먼저 왔던 충격은 공간적인 이질감이었던 것 같다. 그 넓고, 반듯한 도로들. 화려한 고층건물들.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잔상들.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밤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지나쳐갔던 탐스럽게 반짝거리던 모텔의 네온사인들. 검고 기름진 말(馬)처럼 빛나는 세단, 양복입은 사내들에게 '오빠''오빠'를 촉촉한 혀로 발음했던.. 룸살롱 앞에 늘어선, 늘 날씬하고, 멋진,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즐겨입었던 그 아가씨들... 아직도 떠오른다.
* 기사에 대해 짧게 한마디.
위 인용한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칙릿'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문화부기자에게는 익숙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난 솔직히 이런 표현 처음 들었다.
찾아보니 칙릿(치크리트. Chick-lit)은
괄호로 간단한 설명도 없이, 이런 신조어들을 누구나 읽어야 하는 신문기사에 함부로 써재끼는 그런 반상식적 행태에 대해선, 아주 짧게나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예민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사소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런 표현들은 기사의 질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런 유치한, 상식주의에 반하는, 기자답지 못한(그 자체로 정말 프로답지 못한) 언어습관 하나 하나가 반저널리즘의 뿌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