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좌파

2008/04/03 00:21
* 본격 인터뷰라고 하기에도 뭣하고, 그렇다고 전적으로 서평을 빙자한 책광고로 보기에도 아리까리하다. 기사 제목의 '강남좌파'는 인터뷰이인 세계문학상 수상작가 백영옥의 대답 중에 등장한다. 강부자시대에 '강남좌파'라니, 어울린다. 
패션잡지 기자를 주인공 삼은 '칙릿'이라는 점에서 베스트셀러 소설이자 흥행 영화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지만, 소설은 처음부터 <악마는…>처럼 번드르르한 이야기는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주인공은 유명 여배우를 섭외하기 위해 매니저에게 ‘스토커’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7개월을 공들이고, 후배에게 ‘잡지계의 성철스님’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지만 예금도, 보험도, 펀드도, 애인도 없다. (중략) 그는 “패션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명품만 입고, 속물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도 진정성은 있다”며 “좋은 집안에서 혜택 받고 자란 소위 ‘강남 좌파’의 상반된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 너희가 '강남좌파'의 비애를 아느냐(김일주, 한겨레) 중에서

* 다소간 책광고 향기 풍기는 이 기사는 너무 짧아서 뭐라 논평하기도 뭣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너무 피상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미할 만한 메시지를 던진다. 제목 그대로다. '강남좌파'는 무엇으로 사는가? 명품족으로 상징되는 세속적인 욕망의 시스템은 어떻게 이들의 초자아와 충돌하나... 이제 명품과 더불어 '좌파'는 강남으로 상징되는 어떤 계급들의 '패션 악세사리'가 되어 가는것인가...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종종 하는 이야기지만, 내 주된 관심사 중 하나는 나의, 당신의, 그러니 우리 모두와 이 사회의 문화적 관습과 욕망들 속에 잠재된 그 죽을 수 없는, 죽지 않는, 마치 내 살처럼, 뼈처럼, 피처럼.. 내 몸 속을 흐르는 속물근성이다.

*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위 기사에 달려 있는 댓글 때문이다.
명품 안입고 속물처럼 안살려고 노력해도 예금도, 펀드, 보험도 없는 사람 수두룩하다.
강남좌파 따위의 되지도 않는 이야기 하는 건 즐일뿐...
이 솔직하고, 즉각적인 반응 역시 음미할만한 것 같다.
감정적으로 무한한 공감이, 무한한 선입견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바지만,  생겨난다.
'즐.일.뿐.'

* 아무튼 소위 패션좌파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 드디어 문학상을 받았다. 문화사적인 의미에서도 이건 꽤나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물론, 그 소설을 읽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읽지 않을 확률이 높지만, 혹시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런 경향에 대해서는 그다지 거부감은 없고, 자연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 나는 중학교 이후로 강남 한복판인 역삼동에서 십 수년을 살았다. 지금은 나와서 자취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본가는 거기에 있다. 아무튼 그 강남으로 이사가는 날 느꼈던, 어린 내가 느꼈던 그 이질감은 여전히 희미한 기억으로, 하지만 생생한 질감으로 남아 있다. 가장 먼저 왔던 충격은 공간적인 이질감이었던 것 같다. 그 넓고, 반듯한 도로들. 화려한 고층건물들.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잔상들.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밤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지나쳐갔던 탐스럽게 반짝거리던 모텔의 네온사인들. 검고 기름진 말(馬)처럼 빛나는 세단, 양복입은 사내들에게 '오빠''오빠'를 촉촉한 혀로 발음했던.. 룸살롱 앞에 늘어선, 늘 날씬하고, 멋진,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즐겨입었던 그 아가씨들... 아직도 떠오른다.

* 기사에 대해 짧게 한마디.
위 인용한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칙릿'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문화부기자에게는 익숙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난 솔직히 이런 표현 처음 들었다. 찾아보니 칙릿(치크리트. Chick-lit)은 이런 뜻이다.
ㄱ.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속어 chick와 문학 literature를 결합한"(출처)
ㄴ. "젊은 여성을 겨냥한 영미권 소설들을 지칭하는 신조어" (출처)

괄호로 간단한 설명도 없이, 이런 신조어들을 누구나 읽어야 하는 신문기사에 함부로 써재끼는 그런 반상식적 행태에 대해선, 아주 짧게나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예민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건 사소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런 표현들은 기사 질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런 유치한, 상식주의에 반하는, 기자답지 못한, 그래서 프로답지 못한, 언어습관 하나 하나가 반저널리즘의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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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강남좌파와 시골우파 : 아틸라 인터뷰

    Tracked from 민노씨.네 2010/01/21 12:10 del.

    * 강남좌파 에서 이어지는 글. 내일 위클리경향과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왜 나같은 사람과 인터뷰 하려는지에 좀 의문이다. 겸손이 아니라 진심이다. 물론 그 진심에는 허명에 대한 유치한 공명심과 이에 대한 경계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나는 참 뼛속까지 속물이다. 이런 가벼운 인터뷰 요청, 혹은 이런 저런 곳에서의 원고 요청 등을 접하면, 물론 반가움이 앞서지만, 또 한편으로 내 블로깅이 뭔가 '의식 있어 보인다'는 삘, 그런 식 허상을 의도했나 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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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2008/04/03 06:39

    칙릿이 보편적인 단어가 아니긴 해도 나름 계속 유포되어온 단어이기는 합니다. 대표적인 칙릿이 '브리짓존스의 일기'죠. 음.. 영화가 다시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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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4/03 08:44

      아직은 신조어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물론 제가 너무 과문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요. : )

      구글링해봐도 이게 이런 뜻이라더라.. 류의 글들이 대부분인 것 같고.
      검색결과도 그다지 많다고 볼 수는 없고 말이죠.
      http://www.google.co.kr/search?q=%ec%b9 ··· 220kr221

      추.
      브리짓존스 좋아하시나봐요? ^ ^
      의욉니다.

  2. 미리내 2008/04/03 09:38

    마지막 문장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아 댓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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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4/04 21:22

      고맙습니다. ^ ^
      미리내님 덕분에 훈훈하네요.

  3. Malick 2008/04/03 10:27

    영어 약어도 한글로 쓰는 한겨레에서 '칙릿'이 주석도 없이 등장하는 건 의외네요.
    신문은 80세 할아버지도 읽을 수 있어야 하는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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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엘 2008/04/03 14:35

      한겨레는 영어 약어를 한글로 써놓을 뿐이죠.
      NBA 를 '엔비에이' 식으로요.

    • Malick 2008/04/03 21:47

      예. 제 말씀이 그건데요..
      그것이 알파벳을 모르는 이들을 위한 것 아니었나요?
      그런 의미로 풀어쓰고 있다는 걸 얘기한건데...

    • 민노씨 2008/04/04 21:23

      Malick님 견해에 깊이 공감합니다.
      저처럼 과문한 사람들도 신문기사 읽을 자격은 있을텐데 말이죠. : )

  4. 써머즈 2008/04/03 11:15

    주를 달아놓았다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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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4/04 21:24

      앗, 이게 누구십니까?ㅎㅎ
      안그래도 말씀드리고 싶은 일이 있는데요.
      오늘 내일 중으로.. 방명록에 남기겠습니다.

  5. 비밀방문자 2008/04/03 12:00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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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4/04 21:25

      일단 글은 참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
      어제요.
      그런데 마땅히 떠오르는 생각은 없어서 말이죠.
      이따가 다시 한번 읽고 부족한 의견이나마 보탤게요. : )

  6. 미루 2008/04/03 19:02

    '패션좌파'와 '강남좌파'가 거의 같은 의미로 나가는데, 그러니까 강남좌파 이야기를 하면서 '프라다'를 탐하는 '속물적'인 인간이라는 말을 하는 것들을 보니까 말이에요. 한국 좌파가 유독 옷을 못입는다거나 그래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패션좌파이면서 강남좌파라고 했을 때 저 여자가 들이댄 '예금, 펀드, 보험'이라는 건 이를테면 꾸준히 일정한 액수의 돈이 확보되는 지위를 뜻하는거잖아요. 게다가 강남까지 끼어있으니 꾸준히 일정한 액수의 돈인데, 다른 강남사람보다 초큼 더 많은 돈이라는 의미가 되겠구요.

    이렇게 봤을 때 기분나쁜 건 왜 속물적으로 프라다를 탐할 수 있는 인간이 강남좌파여야 하는가 라는 거에요. 보증금 300에 월급 절반을 집세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몇 개월을 공들여 비비안웨스트우드 스카프를 사고, 몇 끼를 굶으면서 프라다 힐을 사는 이야기였을 때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릴까봐 그랬을까요?

    누가 댓글에 단 것 처럼 '명품 안입고 속물처럼 안살려고 노력해도 예금도, 펀드, 보험도 없는 사람 수두룩하다. 강남좌파 따위의 되지도 않는 이야기'의 의미와는 달리 저 소설은 왠지 저는 좌파는 아닌데, 우파는 싫은 데다 된장녀는 절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고, 어쨌든 저는 우아하단말이에요!!!!!!! 만 나올 것 같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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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4/04 21:29

      "저는 좌파는 아닌데, 우파는 싫은 데다 된장녀는 절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고, 어쨌든 저는 우아하단말이에요!!!!!!!" (ㅎㅎ)

      미루님 논평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
      그런데 그런 속물근성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물신주의가 제1철학으로 확고하게 뿌리박힌 나라에서는 계급을 떠나서 존재하는, 마치 피부처럼 밀착한, 뼈속까지 스며든 '허위의식'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저도 여기에서는 완전히 자유롭다 이야기하기 힘들 것 같아서 말이죠.
      좋은 논평 고맙습니다. ^ ^

    • 미루 2008/04/05 12:42

      그러니까 제가 저 여자에게 불쾌했던 건 강남과 패션과 좌파가 나란히 배치되었던 것 때문이에요. 자기가 믿고 있는 브랜드가 있다는 건(니코보코부터 루이비통이든) 자기가 믿는 요리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거든요.
      근데 또 많은 루이비통 광들은 저렇게 접근하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암튼 저 강남/패션/좌파의 배치는 저 영악한 여자가, 혹은 기자가 명품으로 대표되는 '패션'을 어떻게 보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저 배치는 불쾌한데, 지금으로선 똑똑한 배치인 것 같기도 한데.... 우아하지 않아요!

    • 민노씨 2008/04/05 13:25

      미루님 논평은 너무 재밌고, 흥미롭네요.
      덕분에 별로 읽고 싶지 않았던 기사를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 )
      기사 중 '강남좌파' 부분이 등장하는 대목도 보충 인용했구요.

      언젠가 말씀하신 논평에 대해서는 새로운 글을 써보고 싶네요.
      거듭 좋은 논평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배치는 불쾌한데, 지금으로선 똑똑한 배치인 것 같기도 한데.... 우아하지 않아요!" (!!!)

      인상적인 논평이십니다.
      고맙습니다.

    • 민노씨 2008/04/05 13:26

      아, 그런데 제가 예전에 알고 있던 그 '미루님'이신가요?
      궁금합니다. ^ ^

  7. 히치하이커 2008/04/03 21:59

    강남좌파까진 아니어도 저도 비슷한 생각이 계속 듭니다. 결국 나 역시 말만 앞세우는 놈이 아닌가. 얼마 전에 김규항씨 블로그에 이 글(http://gyuhang.net/entry/%EC%95%84%EB%A6%84%EB%8B%A4%EC%9B%80)을 읽을 땐 가슴이 욱씬거리더라구요.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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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4/04 21:31

      그렇게 스스로 회의하고, 반성한다면.. 솔직히 된장이면 어떻고, 강남좌파면 어떻습니까? ^ ^; (좀 과한 농담, 물론 농담유골)

      저는 그런 사유와 고민들이 언젠가 실천을 만날 수 있는, 실천을 만들 수 있는 맹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고민들은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싶기도 해요. 그렇다고 강남좌파라는 새로운 조어가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지만요.

  8. mariner 2008/04/04 00:54

    예금도, 보험도, 펀드도, 애인도 없어서 더 좌파 같아 보이지가 않네요.
    박봉에 시달리는 저같은 젋은이는 아둥바둥모아서 적금도 들고, 다들 하니까 조금 돈 더 벌수 있을까 싶어 없는돈 꼬불처서 펀드도 해보고 애인만들어서 청약당첨된 주공 아파트에서 토끼처럼 사는게 꿈인데...
    이렇게 산다면 주택대출받아서 그거 갖는다고 평생 허리가 휘어도 괜찮을것 같은데.. 미국 모기지파동이 좀 걱정이 되긴하지만... ㅠ.ㅠ

    이렇게 아둥바둥사는게 저는 속물인가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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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4/04 21:34

      "예금도, 보험도, 펀드도, 애인도 없어서 더 좌파 같아 보이지가 않네요."

      인상적인 말씀이시네요. : )
      재무컨설팅을 하시는 블로거벗을 아는데요, 책도 몇 권 내시고, TV에도 고정적으로 출연하시고, 세속적인 기준으로는 꽤나 잘 나가시는 분이죠. 그 분이 항상 주장하는게 '돈맹'이란게 무슨 좌파적 선비주의의 덕목이 될 수는 없다는 거거든요.

      누구나 속물이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저는 예금도, 보험도, 펀드도, 애인(?)도 없을 뿐이지만요. ㅎ

  9. 이정일 2008/04/04 22:06

    칙릿~ 저도 좀 생소한 단어네요.
    근데 뜻을 알고 보니 좀 야릇한 뉘앙스가 풍기는 것도 같은데, 제가 이상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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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4/05 09:57

      네, 정일님께서 이상하신 겁니다. ㅎ
      (농담입니다. : )

  10. 민노씨 2008/04/05 13:26

    * 기사 중 '강남좌파' 부분 보충 인용.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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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이승환 2008/04/05 13:44

    아니, 민노사마, 부르주아 출신이었군요! (어쩌다가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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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4/05 14:09

      그런 '오해'를 종종 받곤 했는데요. ㅡ.ㅡ;
      강남에도 가난한 사람들 꽤 많습니다. ㅠ.ㅜ;

  12. 민노씨 2008/04/05 14:12

    * 오타 수정 및 사소한 추고(1줄 정도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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