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새로운 원칙

2008/07/25 01:43
0. 블로깅, 특히 포스팅 원칙에 관한 글.

1. 앞으론 존칭을 사용하는 글과 존칭을 사용하지 않는 글을 명확히 구별할 생각이다.

1-1. 대한 글쓰기 원칙 중 인용, 언급되는 블로거에 대한 호칭이 늘 신경쓰였는데, 앞으론 존칭을 사용하지 않는 글에서는, 가령 000님, 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블로거 000 혹은 (그냥) 000으로 표기하려고 한다. 특히 어떤 블로거의 글을 사고의 모티브로 삼는 글에서는 이 원칙을 가급적 지키려고 노력할까 싶다.

2. 블로그래픽 관련
블로그래픽 출범과 관련한 글을 아직 쓰고 있지 않은데, 이건 내 게으름이 물론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 밖에 몇몇 사정들이 겹쳐 있다.  아무튼 블로그래픽과 관련해서 민노씨.네 포스팅 원칙은 달라질 것 같다. 달라질 수 밖에 없을테고,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저 '민노씨.네'에도 수록해도 좋은 글을 '블로그래픽'에 수록하는 건 팀블로그에 굳이 동참한 취지가 아닐테다. 

좀더 풀어쓰자면,

2-1. 두 명 이상 함께 하나의 주제에 대해 쓰는 공동 프로젝트 글(물론 이 때 공동저작 혹은 공동 프로젝트의 파트너는 블로그래퍼)은 물론 블로그래픽에 집중할 테다.

2-2. 위 공동 저작과는 별개로, 블로그래픽에는 가급적 부족하나마 "잘 익은 홍시"(블로그래픽 논의 중 아거의 지적)라고 생각되는 글들을 송고하고 싶다.

3. 앞으로 민노씨.네에서는 좀 느슨하게 자의식을 풀어놓고, 좀더 즉각적인 인상비평, 날 것의 싱싱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특히 웹과 블로그에 대해 그동안 게을렀던 비판작업을 부족하나마 해보고 싶다. 가식 떨지 않고, 솔직하게... 그렇게 부족하나마 사고의 발아점으로나마 남겨놓고 싶은거다. (
관련 추천 글 : 인기글, 카피글, 진중한 글 (김우재) )


3-1. 정치니 사회, 웹과 블로그 등등의 마땅히 중요한, 혹은 이전부터 관심사였던 공적 이슈에 관한 포스팅도 여전히  하겠지만, 앞으론 좀 사소한 이야기들, 그저 내가 애정을 갖고, 관심을 갖는 것들에 대해 좀더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3-1. 이를테면 속물근성에 나는 관심이 많다.
좀 지겹게 반복했지만, 내 관심사는 흔히 속물근성으로 불리는 세속적 욕망이다. 그 욕망을 교육하고, 학습시키는 욕망의 사제들, 그 사제들을 만들어내는 시스템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그걸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니고, 좀더 미세한 영역에서 관찰하고 싶다. 그런데 말그대로 '관찰'에 불과한 것이 될테고, 거기에서 '한 소식' 건져낼 것 같지는 않다.

3-1-1. 바람이 있다면 그 세속적 욕망(이건 오히려 구조적이고, 사회적이다)과 공동체적 상상력(이건 오히려 굉장히 사적으로, 주관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간의 화해를, 그 화해를 위한 방법론을 독자들과 함께 동료 블로거들과 함께, 멍 때리면서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한 꼭지 덜 보는 셈치고, 그러니 심각하지 않게, 하지만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싶다. (관련 추천글 : 블로그계의 김구라 워너비들)

3-2. 또 이를테면 나는 아이러니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이율배반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리고 인간의 가식에 대해서도... 나는 가식적인 걸 싫어하는 가식적인 인간이다. 그러니까 참 이것도 아이러니다.

3-3. 끝으로 나는 커피캬라멜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나는 거기에서 시작했고 거기로 돌아갈수 밖에 없을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사이비 낭만주의자인거다...


글이 길어질 기미가 있어서...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지금까지 쓴 글이 서론의 서론이 될 확률도 매우 높기 때문에, 그러니 앞으로는 나는 독자들의 평균적인 인내심을 고려해서, 가급적 더 쓰고 싶어도 적절한 분량(이건 정말 아무래 생각해도 그 '적절'이란 너무도 다양한 편차를 갖겠다는 생각이지만...)을 고려할 생각이다. 하기는 계속 쓴다고 해도 중언부언이거나, 내 사고의 미로 같은 달팽이관으로 들어가 나 조차도 그 출구를 찾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





* 이 글은 블로깅 방법론(공지)에 반영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어떤 블로그를 소개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독립적으로 포스팅 한다.  이 부족한 소개글을 통해서나마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와 블로거들께서 이 '보석 같은 블로그'를 스스로 발견하고, 그 블로그에 있는 고민과 열정으로 환하게 빛나는 보석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급진적 생물학자'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 김우재는, 올 하반기 블로그계의 '발견'이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깊은 인식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그동안 어디에 숨어계셨을까... 물론 김우재의 블로그를 발견한 건 좀더 되긴 했지만.. : ). 그 성찰과 고민과 열정은, 나와 같은 (그가 주로 쓰는 관련분야에 대해) 과문한 독자들마저도 들뜨게 한다.

특히나 가장 최근 글인 '보수주의자 소넷씨의 잡학다식에 관하여'는 근래에 읽은 가장 치열하고, 성실하며, 애정어린(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냉정한) 비판의 전범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포스트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가 아니라)
기대만 하지마시고, 방문하시라, 이미 개봉했다!





* 앞으론 이런 보물섬을 발견하면 바로 바로 그때 그때 간단하게나마 소개해야겠다... 언젠가 말했지만, 블로거는 무엇보다 먼저 블로그 리뷰어가 되어야 한다. 메타가 블로그를 발견해주지 못하면, 블로거들 스스로 작은 메타가 되어 자신의 가장 든든한 동지이자 동료인 블로거들을 '발견'해내야 한다.



* (뒤늦은) 추천글.
1. '때문이다' 시리즈
2. 쓰레기와 신 : 무엇보다 재밌고, 또 어쩌면... 매혹적인 글.

"
이 신비한 현상들을 신의 섭리라는 틀로 이해해야만 안정을 찾는 사람들의 심리는 도대체 무엇인지 항상 궁금한 것이다."

3. 조선일보, 과학자 그리고 지식인

http://heterosis.tistory.com/21 : 첫 인연이 된 글.

추천 국역 과학관련 도서와 그 의미 :
http://heterosis.tistory.com/31 : 훌륭한 서평가이자. 

보수주의자 소넷씨의 잡학다식에 관하여
http://heterosis.tistory.com/44 : 적극적인 논쟁가이며,

어떤 양키에 관하여
http://heterosis.tistory.com/46 : 개성있는 감수성과 사회적인 상상력을 접목하는 탁월한 이야기꾼

인간광우병, 걱정 말라고? (시사in 37호 2008년 05월 26일)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33 : 무엇보다 과학자로서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안목을 갖추고 있는 블로거.






* 나에게 블로그란 무엇인가 [연재]
1. 냉소 혹은 자학 버전
2. 지금/여기에서 질문에 질문하다.



꽤 오래전, 어떤 문학잡지에서 특집 기획으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문인들에게 돌렸던 적 있었다. 황지우에게도 그 질문은 돌아왔는데, 황지우는 그 질문에 질문하며 답변을 시작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지금/여기에서 갖는 그 의미는 무엇인가.
왜 이 질문은 지금/여기에서 문제되고 있고, 문제되어야 하는가.

이렇게 질문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시작하는 황지우의 문제제기는 어떤 진지한 논의도 구체적인 시간공간적 한계, 그 정치경제문화적 조건들 속에 위치시키지 못한다면, 그저 허무한 관념론으로 추락할 수 밖에 없음을 웅변하는 것 같다. 그런데 여전히, 앞으로도 내내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거듭 거듭 질문되고, 새로운 대답들을 만들어 갈 것임에 분명하다.

황지우를 빌어 나는 이렇게 질문하고 싶다.

블로그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지금/여기서 어떻게 다시 질문되어야 하는가?

그게 정말 중요하다.
그게 중요한 이유는, 지금/여기에서 블로그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하는 모습은 희망이기도 하고, 자주 절망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론 블로그가 그 잠재된 혁명성을 스스로, 혹은 외부에 의해 거세하는(거세당하는) 방향으로, 그래서 새로운 유행의 악세사리로 전락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을 점점 더 자주 만난다.

그러니까 이 질문은 무엇보다 그 질문의 대상/목적 자체가 급속하게 변화하는 가운데,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서 그 의미를 추적해야 하는 질문이고, 이 질문은 그 때/거기에서 왜 블로그는 탄생했고, 지금/여기에서 어떤 의미를 획득해가며 진화 혹은 변질되고 있으며, 우리의 '의지'라는 거, 그 의지를 표상하는 구체적인 액션, 그러니 블로깅이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무지하게 심각한 질문인거다.

특히 인터넷강국이라는 허울좋은 수사를 끝장내버리는 이명박식 '인종적인 혐오'와 반동적인 경찰국가의 망령으로(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 둔갑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적인 특수성은 '블로그란 무엇이고, 무엇이 되어가고 있으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좀더 구체화된 질문 속으로 적극개입해야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을 가장 극명하게 함축하는 정치경제문화적 얼개와 시스템은 현재스코어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로 표출되고 있고, '삼성'이라는 종교, 혹은 이건희라는 종교와 그 교도들의 발호로 분출되고 있으며, 이 모든 아수라 속에서 싸이월드와 신상녀로 상징되는 비교와 질투를 가속화하는 제도적 심리기제들과 사랑스런 우리들의 속물근성은  사회와 나, 당신과 나에 대한 비판적 거리, 지정적학적이며 반성적인 고찰, 이 모든 실존적 자아에 대한 본능적인 소망 자체를 비웃거나, 불허(!)하는, 그래서 더더욱 매혹적인 표피적 욕망의 질서를 더더욱 견호하게 쌓아가고 있다.

저널리즘적 관점에서는, 촛불 이후, 오프의 전통 미디어들(소위 진보적인 미디어들조차)이 인터넷, 특히 블로그에 대해 그 남루한 인식에 바탕해서 호들갑을 떨고, 그래도,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블로그의 위상이 조금은 높아진 것 같은 착시현상이 만연한 지금(바로 지금! 그리고 여기!!), 이 질문은 좀더 중요해질 수 밖에 없는 질문이면서, 매우 시급하게 다시 질문되어야 하는 질문인 것이다.


* 본문에 링크인용된 글(묶음)

1. 인종적 혐오 : 강유원,
히틀러와 정보 전염병 : 우리 시대의 인종주의자(들)

2.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 :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22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수사의 영향으로 현재 광고중단을 요구하는 전화는 기업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90%가 줄어들었고,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방문자 숫자도 대폭 감소했다'고 말했다.(프레시안) : 21세기 한국, 때 아닌 경찰국가의 망령. 법무부는 권력기관으로서의 검찰에 대한 '민의 지배'를 위한 행정적인 장치인데, 그런 '민(民)의 지배' 를 위임받은 자가 앞장서서 '국가 형벌권'을 확대하겠다는 전근대적인 경찰국가적 발상을 갖고 있다는 점은 정말 어처구니 한참 없다. 급진적 생물학자라는 타이틀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 김우재는, 개인적으론 올하반기의 '발견'이라고 할만큼 깊은 인식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그 성찰과 고민과 열정은, 나와 같은 과문한 독자들마저도 들뜨게 한다.

3.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 : 미디어오늘을 중심으로 한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에 관한 관련 기사들.(구글 검색 글 묶음)

4.
삼성'이라는 종교 (김우재) : 블로그 리뷰에서 따로 '홍보'하고 싶은 블로그(거).

5.
이건희라는 종교와 그 교도들 (민노씨)

6.
속물근성 (민노씨) : 민노씨.네에 있는 '속물근성'이 들어간 글의 구글링 결과. 내 나름 가장 흥미로운 테마는 속물근성과 이율배반, 그리고 아이러니(가령 연애감정의 불가피성... )등이다.




나는 처음에는 담담하게, 조금은 건조한 방식으로(개량 한복 스타일로 : ) 쓰려고 했다. 그렇게 썼다면, 쓴다면, 나는 아마도, 여전히, 이렇게 시작할 수 밖에 없었을 거다.  

나에게 블로그란 온라인 실존이 자라는 집이다.
('당신에게 블로그란 무엇인가' 중에서)

그런데 이건 내가 이미 예전에 썼던 문장이다.
(썼던 문장을 다시 또 그대로 쓰는 건, 나는 물론 종종 그러지만, 좀 그렇다...)

그래서 다시 여러가지 버전으로...
이 질문에 대해 답해보고 싶었다.

이 글은 나눠서 연재(씩이나..?)한다.
내 글은 평균적으로 꽤 긴 편인데.. 앞으론 가급적 짧게, 안되면 좀 나눠서라도 적당한 분량(이란게 있는건가.. 싶기는 하지만)으로 올려야지 싶다. 물론 이번에는 그런 이유만은 아니지만... 아무튼 이번 글은 몇 번에 걸쳐 나눠질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두 번 이상이 될 것 같다.

이번에 올릴 글은 냉소적(?)이고, 자학적인 버전이다.




* 냉소 버전

나에게 블로그란 '나에게 블로그란 [ ]이다'라는 TNC의 여름 이벤트에 대한 답하기 위해 잠시동안 짱구 굴려야 하는 이벤트 소품이다.  

위 진술은 TNC 이벤트 웃긴다, 뭐 이런거 전혀 아니다(오해하지 마시라).
TNC 이벤트에 대해 유감 없다, 호의적이라면 모를까.  
마음 한편으론 이런 이벤트는 좀 식상하잖아?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도 하지만, 다른 마음 한편으론 이런 이벤트를 통해 그래도 블로그 (그 자체)에 대해 한번쯤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참 좋군!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내 마음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게, 아주 가볍고, 사소하게 양가적이다.

그런데 나는 특히 이 주제에 대해선 이미, 최소한, 서너번 이상은 쓴 것 같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반드시 블로그에 대해 쓰지 않아도, 어쨌든 블로그'에서' 쓰는 글들은  블로그에 관한 글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니 블로그에 '무엇'을 쓴다고 해도 그건 나에게, 당신에게, 어떤 누군가에게, 블로그가 뭐지...라는 질문에 대해 각자가 나름으로 응하는 그 대답에 다름 아닐테다.


* 자학 버전

쥐뿔 아무것도 아니다.
그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건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김갑수의 어투를 빌자면...

웹은 블로그를 만들었고,
기업은 포털을 만들었다.
블로그는 망했다.



* 발아점 (히스토리)
TNC 이벤트 설명글(꼬날) : http://blog.tnccompany.com/288 
-> BKLove, 기회 : http://bklove.info/839
-> 이스트라, 애물단지 : http://blogissue.org/317
-> 민노씨
-> 필로스, 밥벌이 : http://philomedia.tistory.com/121


* 나에게 블로그란 [   ]다.
이 괄호 넣기를 이어갔으면 하는 블로거...
이건 이 글(연재) 끝날 때 해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솔직히 나도 이 글 언제 끝날지, 과연 끝나기는 할지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

이 글에 (혹시) 댓글이 있다면, 가장 먼저 댓글을 남기는 '당신'이 이 릴레이(?)를 이어 갔으면 한다... (이렇게 해서 무플 확보? ㅎㅎ)
덧. 마법소년님께서 첫 댓글을 주셨다. 이미, 고맙게도 필로스님께서 바통을 받으셨지만, 마법소년님께서도 써주시면 고마움과 반가움이 더할 듯...








* 위대한 텍스트는 거듭 읽히고, 끝없이 해석되며, 쉼없이 다시 탄생한다.

* 프랑소와 트뤼포의 유명한 일화.
열 살의 트뤼포. 땡땡이 치고 영화를 본다. 집에 돌아온 트뤼포, 숙모 손에 이끌려 다시 영화 보러 나선다. 그런데 숙모와 함께 봐야했던 영화가 하필이면 땡땡이 치고 낮에 봤던 바로 그 영화. 난감해진 트뤼포. 하지만 차마 땡땡이쳤다 말할 수 없었던 트뤼포. 그렇게 트뤼포는 그 운명의 영화, 마르셀 카르네의 <밤의 방문객>을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영화광은 같은 영화를 다시 홀린 듯 보는, 볼 수 있는 그 순간 태어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트뤼포, 드디어 영화광이 된거다.

그리고 어른이 된 트뤼포의 멋진 격언.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거듭해서 영화를 다시 보는 것.
두 번째는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것.
마지막은 영화를 직접 찍는 것, 그 이상은 없다.

* 어제 새벽 우연히 [친절한 금자씨]를 다시 봤다.
이번이 정확히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다. 다섯 번 째나 혹은 여섯 번 째... 인 것 같다. 어떤 케이블 채널에서 뜬금없이, 정말 뜬금없이 [친절한 금자씨]는 방영중이었고, 나는 마침 우연히도 TV를 켰던 거다. 중간부터, 금자 새끼 손가락이 붕대로 감긴 그 뒤부터 다시 봤다. 이 영화는 정말 걸작이다. 나는 이 영화가 이토록 걸작인줄 예전엔, 네다섯 번을 보면서도, 미처 몰랐다.

* 마르쿠제는 거듭해서 예술과 실천, 예술과 정치적 잠재력, 꿈과 현실은 중재된 매개에 의해,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예술이 갖는 정치적 잠재력은 그 미학적인 형식 속에서만 구현될 수 있다. 그 형식이 내용이 됨으로써 구현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마르쿠제의 어투를 빌자면, 노골적인 교훈극인 [화려한 휴가]보다는 [친절한 금자씨] 혹은 [지구를 지켜라] 속에 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정치적 잠재력은 훨씬 더 커다랗게 숨겨져 있다.

* 금자씨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치적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정치적 함의를 읽어내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이 영화는 눈물을 찔끔 거릴만큼 포복절도할 블랙 코미디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현주의적 과장으로 자신을 숨기며, 교활하고 뻔뻔한 스타일을 만개시킨다. 놀랄만한 표피들, 흔적들, 이미지들의 부유하는 속도들, 그 속도에 리듬과 단절의 운율을 만들며 흘러가는 기적적인 매혹의 이미지들, 그 이미지들의 끊임없는 교차, 그 혼돈의 우주 속에서 이미지가 내용이 되고, 형식이 실체가 되는 궁극의 지점을 향해 뛰어 든다.

그리하여 [친절한 금자씨]는 20세기 말 21세기 초라는 시간의 진실과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의 진실이 품을 수 있는 극단적인 상징들을 그 홀린듯 한 이미지들 속에서 재현해낸다. 그건 그 개새끼가 왜 죽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죽음이 이미 있는 우리들의 '주검'들과 어떤 본질적 연계를 맺는지 아프게 증명한다. 이 영화는 제도를 통한 합리적인 복수마저도 사제적인 작용, 그것은 주로 언론과 쇼오락프로그램이 담당하게 되는데, 을 통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대한민국이라는 기만적 정의를 상징적으로 까발기고 진심을 다해 저주한다. 가령 이런 판국에 '사형제도 폐지론'은 얼마나 환상적인, 스스로에게 기만적인 휴머니즘에 기반하고 있는가?

"하늘엔 조각 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는" 아름다운 대한민국은 그 개새끼가 멋진 요트를 타기 위해 아이들을 죽이고, "당신은 영어를 할 줄 압니까?"라고 지껄이며, "아내와 그 짓을 할 때 포르노의 하얀 구멍을 상상하는"(황지우) 그런 세계, 평범함으로 둘러싸여 있는, 그래서 더더욱 도저한 악의 세계, 그 악의 세계 속에서 그 하수인으로 복무했던 어떤 '날라리 고삐리'가 이제는 어른이 되어, 한 순결한 소녀의 엄마가 되어, 숨죽이는 목소리로 "아임 소리, 아임 소리, 아임 소리, 정말 아임 소리"라고 흐느끼며 용서를 구하는 그런 세계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용서를 구하는, 하지만 구원받지는 못할, 날라리 고삐리가 초인이 되어 우리들 모두의 복수를 대행하고, 사이비 사제에게 "너나 잘하세요"라는 우리시대의 금언을 날리며, 친절하게 그 개새끼 이마에 총알을 쑤셔박는 궁극의 판타지를 꿈꾸는, 하지만 꿈만 꾸는... 그런... 세계. 마치 이건희가 법원에 퍽큐를 날리는 그 풍경을 이른바 진보적인 미디어들이 맹렬하게 비판하는 기사들의 배경 뒤로 전지현의 미끈한 허벅지가 겹쳐지는 그런 세계....

이 평범한 악의 세계에서 사이비 사제는 어느새 악의 심부름꾼이 되어 하느님을 팔아 먹고, 보통 사람들의 평범해서 더욱 거룩한 욕망들은 파출부가 되어 아이를 강남 학원에 밀어 넣으며, 그렇게 밀어 넣은 아이가 주검이 되자, 다시 그 죽음은 계좌번호로, 문득 희미한 천사들의 강림으로, 죽음 그 자체가 잔인하게, 그래서 더더욱 간절한 아름다움으로, 그런 싸구려 휴머니티로, 그 휴머니티에 대한 조소로, 조소에 대한 기꺼운 연민으로 영겁회귀한다.

하지만, 문득 눈이 내리고, 그 눈길을 잠에서 깬 기적의 소녀가 맨발로 뛰어 나오면, 금자씨는, 비록 "구원을 받지는 못했지만" 두부 케잌에 얼굴을 파묻고, 그 소녀를, 자신의 또 다른 '생(生)'을 껴안는다.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솔솔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
똑똑똑 구두소리 어딜 가시나.

"... 나는 금자씨를 좋아했다."  




* 관련 팟캐스트
무비 토크 34회 - 감독을 말하다 '박찬욱'


* 관련글
니체와 금자씨 (kino21)

추.
이건희가 대한민국 법치주의를 끝장낸 게 아니라, 법원이 대한민국 법치주의를 끝장낸 게 아니라, 실은 그 욕망의 사슬들, 이미 당신에게 있었고, 나에게 피처럼 흐르는 그 질투와 시기와 결핍과 그래서 더 붉게, 더 환하게 타오르는 그 자본에 대한 욕망, 권력에 대한 욕망, 사랑스런 이기심, 그리고, 그런데... 오늘은 비가 오려나요? 병신들, 놀고 있네... 이명박 각하 만세! 대한민국 만만세... ㅎㅎㅎ 완전히 코미디야, 코미디...

추2.
언젠가, 빨강머리 앤이 아주머니에게 그랬다.
"이젠 조쉬를 좋아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그만둘까해요... "


추3.
나는 지금/여기 이 빌어먹을 대한민국에 총체적인 환멸을 느낀다. 그 환멸이 너무도 깊고, 동시에 너무도 피상적이기 때문에, 그건 마치 끈적끈적한 습기 같은데... 나는 될대로 되라...는 심리에 빠진 것 같기도 하다. 평소라면 글을 쓰고 싶었을, 혹은 최소한 알고 싶었을 각종의 사건 사고들이 넘쳐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새드개그맨에게, 그리고 새드개그맨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 무게에 질식해버릴 것 같다. 그러니까 결론은, 아주 이쁜 여자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질거다. 그것도 어쩌면 빌어먹을 짓이겠지만, 그리고 물론 커피캬라멜만 못하겠지만... 

추4.
'악의 평범성'은, 주지하다시피, 한나 아렌트가 평생을 통해 추적한 철학적 테마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인간의 조건'... ). 최근에 청주로 여행(?)을 갔다. 거기에는 내가 참 좋아하는, 교수라는 말을 무척 싫어하는, 실제로도 교수는 아닌, 장동건을 좋아하는 시간강사가 산다. 그의 작업실 혹은 집필실(어떤 독신자 아파트인데)에 혼자 일박하게 됐다. 심심한 나머지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 가운데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빼들었다. 한 두 세시간 동안, 그 짜증스러운 번역투 글을 읽었다, 별 다른 감흥은 없었지만,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의 제목 중에 그  표현이 들어간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랬다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