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오해에 대해 네이버가 드리는 글"

제목부터 날샜다.
'오해'로 단정하고 나서, 자신을 피해자라도 되는 양 해명하겠다고 나선 꼴이다.
네이버에 대한 사용자들의 비판 여론이 전적으로 '오해'라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이런 '수퍼갑'스러운 제목은 절대로 사용하면 안된다.
이건 마치 사용자들을 '만만한 을'로 보는 그 권위적 태도가 은연중에 드러나는 제목이다(나만 그런가?).

누가 이런 졸스런 공지문을 작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홍보팀? 내부적으로도 욕 꽤나 먹겠다), 정말 소통의 'ㅅ'부터, 커뮤니케이션의 'C'부터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 좀 진지하게 배우던가...
 


* 정치적 중립성 강변에 대해

네이버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용자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정보를 신속하고 충실하고 다양하게 제공한다는 원칙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때로는 이 같은 네이버의 원칙이 오해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정치적 편향을 경계하다 보니 요즘처럼 한 목소리가 큰 힘을 얻을 때 반대 목소리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입니다.  (공지 중에서)

0. 위 아둔한 공지에서 보다시피 네이버는 정치적인 중립을 강조하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1. 네이버는 언론이다(법원 왈). 난 여기에 대체로 동의한다.

2. 언론(이든 문학이든 의식과 관계된 모든 것)의 중립성에 대한 강변은 자기 모순을 확인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이를 증거하는 두 개의 보석같은 발언이 있다.

ㄱ. 아도르노는 묻는다. 순수시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가? 개뿔. 순수시는 없다. 순수시가 있다면 그 순수성이 순수시의 정치성이다. 순수시는 (그런게 만약 정말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기성의 제도적 권력에 순응하도록, 현실과 멀어지도록 독자를 이끄는 정치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건 네이버가 강변하는 그 '중립성'과 많이 닮았다.
 
ㄴ. 귄터 그라스와의 인터뷰. 질문은 "참여문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라스는 답한다. 문학은 이미 현실에 던져졌다. 어쩔 도리 없다. 네이버는 무슨 가상세계에 있는, 천국에 있는 매체가 아니다.

3. 따라서 언론이 스스로 정치적 중립을 씨부리는 건 눈가리고 아웅하는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 정치적으로 완전하게 중립적인 언론은 없다. 네이버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강변은 "난 돈버는 일에만 신경쓰고 싶으니까 건드리지마"라는 정치적인 중립성을 강변하는 정치성이다.

4. 결국 네이버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고, 중립적이지도 않다. 모든 언론이 그렇다. 그러니 기계적 중립은 가짜 신화에 불과하다.

5. 네이버 자체 옴부즈맨 제도에서 김창남은 그 기계적 중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적으로 강하게 권고한다. 물론 이에 대해 네이버는 귀를 닫았다. 자신이 운영하는 옴브즈맨제도를 그냥 '구색 맞추기'로 만들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명문이므로 좀 길지만 소개한다. 전문 일독 강하게 권한다.

적극적 균형 (김창남)

기본적으로 뉴스의 단순 재매개자이기 때문에 뉴스 전체의 흐름을 그저 반영할 뿐이라는 네이버 측의 태도는 지나치게 소극적일 뿐 아니라 무책임하기도 하다. 이미 여러 번 지적된 것이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뉴스들을 일정 기준에 따라 편집하고 배열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언론 행위이다. 더 이상 신문을 읽지 않는 많은 수용자들이 네이버에 의해 편집되고 배열된 뉴스를 접한다. 거기에 특정한 의도가 없다고 아무리 외쳐도 이를 보는 수용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거기에서 ‘의미’와 ‘의도’를 찾아내고야 만다. 결국 어떤 편에서든, 어떤 식으로든 비판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더욱 근원적인 문제는 기존 언론의 내용과 구도를 그저 ‘반영’할 뿐이라는 태도에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 사회에서 언론 매체 시장은 지극히 불균형하며 편향되어 있다. 이른바 메이저 언론사들이 뉴스 시장을 독과점한 채 편향된 정보를 쏟아내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인터넷이 각광을 받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런 편향된 정보 시장에서 대안적이고 주변적인 정보가 숨 쉴 수 있는 대안 매체적 공간이 되었다는 점에 있다. 인터넷 공간의 절대 강자라고 하는 포털이 기존 정보의 흐름을 단순히 반영하는 공간에 머문다면 그것은 편향된 뉴스 시장을 더욱 더 편향되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럴 바엔 아예 포털들이 뉴스 매개를 중단하는 것이 좀 더 균형적인 뉴스 시장을 위해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나는 네이버가 중립성의 가치를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재 뉴스 시장의 구조를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것이 오히려 중립성의 가치를 깨트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중립성은 현실에 대한 소극적 반영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 균형의 추구에 의해 달성될 수 있다. 사회적 관심사가 될 수 있는 아젠다들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게 중립성을 해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위 글 중에서)
(경로 : 네이버뉴스홈 > E옴부즈맨 > 이용자위원회 > 칼럼)



*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시스템

1. 이건 포털 공히(언론사닷컴도 어느 정도) 정말 저질 서비스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미끼시스템이라고 평가한다. 공지에 표현된 네이버의 항변은 뭐랄까 말은 많은데 쓸 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럴수 밖에 없는게 그 서비스 자체가 정말 저질이라서 그렇다. 문의하면 상세히 답변준다는데, 됐다. 이건 문의해봤자 정말 시간낭비다.

2. 이에 대해선 다음 글을 참조해주면 좋겠다.
포털 단상 1 - 포털이라는 감옥 ; 콘텐츠 소비의 악순환과 실시간 인기검색 시스템
포털 단상 2 - 실시간 인기 검색어


* 아프리카 도메인 금칙어 설정에 대한 항변

이건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태도라고 보기 힘들겠다. 자신에게 책임이 있으면서도 그다지 반성하는 기미는 없고, 주저리 주저리 항변하기에 바쁘다. 정말 아둔하다는 생각만 들 뿐인데, 말미에는 어김없이 문의하면 상세히 답변해주겠단다. ㅡ.ㅡ; 무슨 이용자들이 시간 남아도나? 그렇게 설명을 했으면서 뭘 또 문의를 하라는건지.


* 게시물 임의 삭제(모니터링)에 대한 설명

이 설명 혹은 항변 역시 구체성이 전혀 없어서 읽어도 읽은 보람이 전혀 없다. 게시물 모니터링 기준이 뭔지 최소한 그 일부라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할 것 아닌가?


* 오해가 오해를 낳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네이버

별로 안타깝지 않는게 뭔고 하니, 이건 누가봐도 자신에게 부당한 사례들을 나열하고, 나 정말 불쌍하지 않니? 동정심 유발하는 그 유치짬뽕을 연출하고 있다. 이게 대한민국 웹을 지배한다고까지 평가되는 네이버의 대외적인 커뮤니케이션 언어라는게 정말 어처구니 없다.

일정한 기준에 충족하는 광고는 실지 않을 수 없다는 항변도, 네이버가 그 실질이 언론이라는 전제에서 본다면 전적으로 불가항력은 아니다. 네이버도 밝혔듯 그 '광고 기준'은 네이버가 설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광고가 대중의 감정과 배치되지만, 네이버는 광고 기준에 맞을 때 이 광고를 싣지 않을 근거가 없습니다. 만약 정부가 달가워 하지 않는 광고일지라도 광고 기준에 벗어나지 않다면 네이버는 집행할 것입니다.(공지 중에서)

제11조 (광고)
①신문사업자는 광고로 인하여 독자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당하지 아니하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광고의 내용이 사회윤리, 타인의 명예나 기본권을 명백히 침해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그 게재를 거부할 수 있다.
(신문법 중 제2장 독자의 권익보호 중 제11조 광고 중 제1항)

검역주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국가공권력이 집행되는 상황이라고 '적극적'으로 판단한다면 얼마든지(라고 하기엔 좀 뭣하긴 하지만...;;;) 거절할 수도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광고는 무조건 집행하겠다고 강하게 피력하는 그 어조에서 네이버를 비판하는 이용자들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지는 안봐도 비디오다. 돈되는 건 사행성 도박(NHN = 네이버+한게임)이든 뭐든 다 하겠다는거군... 이런 인상을 당연히 떠올릴 거 아닌가. 참 해명을 해도 무식하게 한다는 생각 들지 않을 수 없다.


* 앞으로 더욱 열심히 뛰겠다는 네이버

뛰지 마라. ㅡ.ㅡ;
가장 먼저 등장해야 하는 문장들이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구나.
마치 마지 못해 억지로 말하는 것처럼.
무슨 사족처럼....


* 끝으로

공지에 네이버가 대한민국 웹에 끼치는 그 해악에 대한 자기 반성은 단 한줄도 없다. 스스로 검색엔진이면서 타사(구글)의 검색 크롤러를 차단하는 어처구니를 보여주고 있다거나, 내부적으로 자신의 DB자료들을 위주로 뺑뺑이 돌리는 '가두리양식 검색'을 유지하는 그 현실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한줄이라도 있었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정색하고 비판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반성과 개선에 대한 언급들은 모두 철저하게 추상론이고, 변명과 항변은 주저리 주저리다.

한마디로 참 네이버스럽다.

이런 네이버라면 별 기대 갖지 못하겠다.
이번 촛불을 계기삼아 네이버가 의미있는 수준으로 축소되는 편이 대한민국 웹 발전을 위해 낫겠다는 생각이 이번  공지를 읽으니 더욱 강하게 든다.





* 대상글
최근의 오해에 대해 네이버가 드리는 글



*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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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블로그가 성공한 이유 
네이버 '블로그'와 네이버 '블로거'


* '촛불과 블로그' 관련 팟캐스트
블로거 좌담회 (써머즈, BKlove, link, 새드개그맨, 한날, 정신병자, 민노씨 등 7人)
(1) 촛불시위 정국은 어디로? (08.06.10)
(2) 촛불시위 정국의 원인은? (08.06.11)
(3) 촛불시위 정국과 블로거 (08.06.11)
(4) 촛불시위 정국 속의 타매체와 블로그 (08.06.12)

(5) 한국웹의 지배자 네이버 (08.06.13)
(6) 촛불에게 블로그를 (08.06.15) (이상 편집 정리 및 논평은 새드개그맨)




* 난 TV 토론 프로그램을 꽤 좋아하는 축이다. 물론 아무리 토론을 좋아한다고 해도 영화나 드라마나 만화책보다는 좋아하지 않지만. 방금 전 우연히 '백지연의 끝장토론'을 시청했다. 노회찬과 진중권을 한 화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청할 이유는 충분했다. 게다가 이명박이 주제니까. 이명박 : CEO인가 대통령인가.. 뭐 이런.. 케이블 토론 프로그램이라니 어떨까 싶은 궁금증도 자아내고... 이하 '백지연의 끝장토론'을 시청한 잡스런 단상들이다.


* 토론과 생쇼 사이
일단 이 토론 프로그램을 시청한 뒤의 전체적인 인상은 난잡함과 생동감의 혼재다.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면 '난잡' 쪽이다. 새로운 시도도 좋지만, 최소한 토론이라고 한다면 주제에 대한 이성적인 '추적, 추론, 재구성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전혀 혹은 거의 없다. 그냥 자극적인 발언만 총알처럼 이리저리 난사된다.

방청석에 있는 시민은, 방청객이자 주패널에 못지 않은 토론참여자들인데, 정말 열띠네.. 라는 느낌이 절로 들만큼 핏대 세우면서 과장된 액션들을 보여주는데... 뭐랄까 너무 핏대를 세워서 좀 부담스럽다. 피디가 혹은 FD가 그렇게 '교육' 시킨 것 같다. 그러니까 그런 '연기' 리허설이 있었던 것 같다는거다. 물론 추측이다... 왜 저러나... 싶은 순간들을 자주 만났다. 때때로 날 것의 생생함도 느껴졌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날 것을 '연기'하는 쇼의 느낌이 더 강했다.

이 나름으로 '새로운 시도'는, 토론 진행과정 중에서도 무슨 영화 찍는것처럼 현란한, 실은 난잡한 카메라워크를 시도하는데, 그 일반적인 어감에 충실한 의미에서 '쇼'에 가깝지 토론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쇼가 그다지 (프로그램 자체에서 홍보하는) '카타르시스'를 주지도 않는다. 백지연의 끝장토론은 '토론과 쇼' 사이의 긴장을 보여주지는 못했고, 그랬다면 꽤 새로운 시도로 평가될 수도 있었을텐데, 그냥 생쇼에 머물렀다.

심지어 카메라로 온갖 지랄(양해바란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시청한 시청자라면 이 표현이 그다지 과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리라 생각될 지경이다)을 하다 하다 못해서 카메라 워크, 동선과 줌인, 줌아웃을 지시하는 담당PD의 지휘(?)까지 유치한 자기도취적 영상으로 보여준다. 카타르시스는 담당PD의 이런 자뻑에 바탕한 유사 카타르시스를 말한 거였나 싶기도 하고...


* '끝장' 토론에 대해...
'끝장'과는 전혀, 일말도 상관없는 피상적인 수박 겉핥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왜 '끝장'이라고 붙였을까? 반어일까? 물론 아닐테다. 그냥 흔히 쓰이는 관용적이고, 익숙한 표현을 사용한 거 겠지. 그래도 좀 심했다. 솔직하게 그냥 '맛뵈기'토론이라고 했으면 이렇게 허무하지는 않을 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뵈기' 동영상에서
보여지는 여러 계층들의 시민들이 보여주는 솔직한 발언들은 꽤 들을만하다. 시민들 짧은 인터뷰 모음, 이 꼭지 제목이 '민심 파파라치'인데... 뭐랄까 '파파라치'라는 어감은 발랄깜찍이라기 보다는 육갑팔색에 가까워서... 왜 굳이 이렇게 자극적인 꼭지제목을 붙였나 싶은 생각이 문득... 암튼 이것만 따로 편집해서 초반에 몰아서 보여주면 이것만 시청할 용의는 있다.


* 백지연...
이전에도 그다지 관심이 크지 않는 편인데, 뭐랄까, 암튼, 점점 더 언론인, 저널리스트에 대한 전통적인 기대감, 그런 말을 떠올릴 때의 이미지에서는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좀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언론인이 아니라 연예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찾는 것 같달까. 이건 감정적인 비난도 아니고, 애정에 바탕한, 그래서 아쉬움이 묻어나는 비판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거지. 다시 확인하지만 나는 백지연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거다.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하는데, 뭐랄까, 내가 개인적으로 그다지 백지연의 외모에 호감을 느끼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뭔까 좀 쓸쓸함이랄까, 스스로 굉장히 아름답다고 믿는 한물간 여배우의 자기애, 과시욕 따위에서 느껴지는 난처함이랄까... 그런게 느껴졌다. 물론 객관적으로...이게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꽤 이쁘고, 꽤 세련된 모습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나는 그런게 느껴졌다. 내가 이상한 심미안을 가진 건지도 모른다. 그냥 그랬다.


* 하지만 어떤 아름다운 이야기 - 캐나다의 인디언 학생
평준화가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어떤 시민논객의 황당무계한 발언이 나오는 와중에또 다른 어떤 시민논객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용은 기억에 의존해 옮기면 대충 이렇다.

캐나다의 한 학교에는 캐나다 아이들과 거기에 사는 인디언 아이들이 함께 수업을 받고 있었다. 어느 시험날. 선생님은 깜짝 놀랐다. 인디언 아이들이 동그랗게 책상을 모으고 있는 모습을 봤으니까. 인디언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이 대답했다.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함께 도와야 한다고 어른들께서 가르쳐줬어요"

우리나라 아이들 무한경쟁 강조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경쟁하고 있다고 그 시민논객은 말했다. 오히려 이런 환경에서 필요한 건 '나눔의 철학'이라고 이야기를 마쳤다. 깊이 깊이 공감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건 스스로를 가둘 종이 감옥 만드는 일이다. 진중권도 말했지만, 교육은 경쟁이고, 효율성이고, 나발이고 간에, 가장 우선해서, 무엇보다 '철학'에 대한 문제다. 이명박 정권에서 철학을 기대하는게 정말 부질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고 있기는 하지만, 이건 정말 철학에 대한 문제인거다.  


* 제성호
스스로 B급 논객이라는 걸 증명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평준화가 박정희 대통령이 자기 아들 때문에 실행한 정책이라고 말하는데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진중권이 가만 있겠나, 야사를 토론회에서 지껄인다고 조롱조로 비웃으며 지적하는데, 그런 지적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 진중권
기대한 딱 그 만큼이다.
그래서 딱히 큰 즐거움을 주지는 못하고, 대개는 공감하는 의견들을 피력한다.

* 노회찬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정치인인데... 뭐랄까  이런 허접한(직접 경험했으니 판단이 섯겠다 싶은데) 쇼에 출연해서라도 노출도를 확보하기 위한 진보신당 '홍보맨' 역할 하려니 속으로는 좀 마음이 어지럽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물론 내 멋대로 추측이다). 증권회사에 다니는 방청석 시민패널이 증권거래법을 자기네들은 '걸래법'이라고 부른다면서, 이런 규제로 점철된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 보면 때려주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하자, 노회찬이 그런다.
"그러니까 국회의원을 잘 뽑아야죠."
그렇게 말하는 노회찬 표정에 알 수 없는 씁쓸함이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마음이 쓸쓸하고, 짠했다. 백지연은 끝날 무렵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논평을 요구하기까지 하는데(정말 삼류스러운 질문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진중권은 방청석에 있는 시민 패널들이 앞자리로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뻔한 아부성 농담을 남기고, 노회찬은 다소 엉뚱한 대답을, 역시나 재치있게 남긴다.
"대박!"
그 대박이 설마 이 프로그램이 정말 멋진 토론 프로그램이라서 '대박날 겁니다'라는 의미는 아니지 않겠나하는 추측을 해본다. 이건 정말 절묘한 반어로 사용한 촌철살인이 아니었을까? 거듭 확인하거니와 내 나름의 아전인수식 추정이다.

* 나머지 한 명의 패널
별로 이름을 기억할 필요 없을 것 같은 아저씨가 한 분 나왔다. 그냥 예상되는 뻔한 논리에 뻔한 의견들.


* 결론은... 두번 볼 일 없을 것 같다.



* 관련(?) 추천 글
재밌는 비유. 유로2008 꽤 재밌나 보다. 아직 한 게임도 제대로 시청하지는 못했는데… 나중에 한번 제대로 봐야겠다.

'성聖과 속俗'(엘리아데)이 문득 생각났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나는 왜 속에만 집착하는가…그런 생각... 불안하니까 그렇겠지. 그리고 결국은 이 촛불들도 허무라는 거. 아마도 그럴 거라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능동적인 허무주의자들이다

문득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가 떠오른다. 어떤 가름도 없는, 어떤 나눔도 없는... 거기에 문자가 등장하고, 이성이 자신을 뽐내기 시작하면서 가름과 나눔이, 위계와 차별이 생겨나고, 나는 풀과 나무와 바람 소리의 일부가 아닌 '그것을' 지배하는 주체의 환상에 빠진다. 세계는, 자연은 나와 다른 '어떤 것'이 되고, '그것들'에 대해 우리는 지식을 쌓는다, '나의 일부'인 '당신'과 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정복하기 위해서....


* '촛불과 블로그' 관련 팟캐스트
블로거 좌담회 (써머즈, BKlove, link, 새드개그맨, 한날, 정신병자, 민노씨 등 7人)
(1) 촛불시위 정국은 어디로? (08.06.10)
(2) 촛불시위 정국의 원인은? (08.06.11)
(3) 촛불시위 정국과 블로거 (08.06.11)
(4) 촛불시위 정국 속의 타매체와 블로그 (08.06.12)

(5) 한국웹의 지배자 네이버 (08.06.13) (
이상 편집 정리 및 논평은 새드개그맨)




* .... 원래 그저께(2008.6.10) 작성했고, 마무리하지 못했다. 거의 다 쓴 글을 그냥 방치하자니 좀 걸린다. 살짝 추고하고, 보충해서 발행한다.

more..



0.
추부길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지난 5일 한국기독교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기도회 축사에서 촛불집회를 비난한 뒤 “사탄의 무리들이 이 땅에 판을 치지 못하도록 함께 기도해 주기시를 감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추 비서관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으로 시작된 이 문화집회는 이제 정치세력과 이익단체의 개입으로 정치집회로 변질되고 있다”고 말했다. 목사이기도 한 추 비서관은 이어 [....]  “이 세상 어떤 정부가 일부 방송과 세력이 주장하는 위험천만한 질병을 국민에게 확산시키겠느냐”고 말했다. [....]  “이러한 왜곡과 과장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세력이 누구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배후론’을 주장했다.

- 한겨레, 황준범, 사탄 무리...빨갱이...촛불에 기름 끼얹는 '막말' 중에서



1.
대운하에 반대했던 서울대 교수들을 '정치적'이라고 맹비난했던 대운하 전도사 추부길이 이번엔 촛불 든 시민들과 그 '배후'(정말 그 '신앙심'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ㅠ.ㅜ; )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시민들을 대놓고 이간질하고 있다. 이런 자가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라는 자다.

논평 가치 제로다.
발언 수준 그냥 아메바급이다.
이런 발언을 듣고 있노라면 아메바도 고등생물이 아닐까 착각할 지경이다.
이게 아메바급 두뇌에서 나온 아메바급 저질 발언이라고 보면 문제는 간단하다.
'아닥 플리즈~!' 를 외치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2.
두 가지 가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추부길은 원래 아메바가 고등스럽게 느껴지는 사고방식을 가진 자라는 평면적인 판단이 일단 가능하다(이 가설도 이 자의 평소 언행을 보건대 가능할 것 같다). 두 번째는 이것이 고도로(라고 하기엔 좀 심하게 뭣하지만 암튼) 계산된 목적을 가진 도발이 아닐까라는 점이다.

이것이 도발이라면 도발 목적은 단순명료하다.

'사탄의 무리들아 제발 좀 흥분해줄래?'
'그래서 제발 과격해져서 폭력 사건 좀 일으켜줄래?'

2008년 6월 8일자 조선일보 일면의 환호성을 생각하면 시민들이 해야 하는 선택은 분명했다. 더더욱 소리 높여 비폭력을 외쳐야 했다. 이 놀라운 일등신문은 촛불이 정점일 땐 촛불을 일면에서 아예 배제하는 극단적인 편집을 보이더니만, 일부 '프락치의 장난질' 이 거기에 적극적으로 개입되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물론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쇠파이프의 등장에 대해선 아주 그냥 일면 정중앙을 그 쇠파이프 사진으로 도배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8년 6월 9일자 조선일보 일면(연합뉴스 인용)


조선일보가 사랑하는 사진은 이런거다...



이런 수구적인 이익집단의 틀짓기 재료로 저 아름답고, 장엄한 촛불의 의미가 변질되도록 내버려 두어선 안되는 거다. 촛불집회가 대다수 평범한 시민들의 지속적인 놀이 공간이자 민주주의 학습 공간, 공동체적 상상력과 개인의 이기심이 어떻게 조화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고차원의 토론공간이 되려면 이 숭고한 폭력이 어떤 식으로든 침투해서는 안된다. 그건 지속가능해야 하는 촛불의 축제를 위험한 모험주의에 빠뜨릴 공산이 큰거다.

다행스럽게 6.10 '촛불 항쟁'(그 역사적 의미을 성급하게 평가하기엔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시민항쟁이라는 명명이 그다지 이상하지는 않다)은 비폭력을 외치는 시민들의 거대한 목소리로 별 물리적 충돌 없이, 불의의 사고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조선일보의 가공할만한 둔갑술은 이렇게 일면제목을 뽑는다. "비폭력, 비폭력"

만에 하나 불행한 폭력사태가 발생했으면 어땠을까. '폭력으로 얼룩진 촛불시위' 정도의 타이틀이 갑자기 제목만 착해진 조선일보 일면 타이틀을 대신하지는 않았을까? 물론 조선일보의 둔갑술과 뻔뻔함에 대한 기념비적 사례는 김대중에게서 좀더 명시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뻔뻔함을 예술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김대중은 이제 드디어 '똘레랑스'를 이야기한다.(지가 불리할 때는 관용을 외치고, 지가 기운이 넘칠 때는 빨갱이 사냥에 심취한다 ㅡ.ㅡ;).

황우석 사태 때는 소수가 다수를 마녀사냥한다면서 한탄하고, 대추리 싸움에서는 논두렁에서 뒹구는 저 빨갱이들 때문에 나라가 엉망이라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 분이시다. 그런 자가 '관용'을 이야기하는 건, 뭐랄까... 그 뻔뻔함이 놀랍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이런 작정한 건망증에 소름이 끼친다. 머리 속에 대따 큰 지우개 셋트가 있는게 틀림없다.


3.
지난 목요일 집회에서 거의 매일 집회에 나온다는 한 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드라마 쓴다는 이 분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다. 영화 이야기도 하고, 드라마 이야기도 하고, 책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중산층의 속물근성 이야기도 했고, 지난 12월에 이명박 뽑은 국민과 지금 촛불든 이 국민 같은 국민 맞나.. 지난 18대 총선에서 노회찬 대신에 홍정욱 뽑은 유권자들이 촛불든 이 시민들 맞나... 이런 이야기도 했고, 우리안에 내면화된 세속적인 욕망과 그 무시무시한 관성들에 대해, 그리고 이 촛불들이 이 관성의 방향을 조금은 바꿀 수 있을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분 말씀이 집회에 매일 나오기 위해서 적당히 체력 조절하면서 귀가한다고 하신다. 꾸준하게 촛불 들고 어울려 크게 한바퀴 돌기 위해 저녁도 든든히 챙겨서 적당히 때되면 귀가하신단다. 너무 공감했다. 물론 반드시 이렇게 해야한다는 거 아니지만, 이 싸움이 좀더 지속 가능한 축제가 되고, 일상의 일부로서 흡수되기를 원한다면, 우리 제발 넉넉한 마음으로 페이스 조절하면서 했으면 한다.

몇 번 글로도 썼지만 나는 '촛불'은 무슨 대단한 시민의식의 발로가 아니라, 이기심과 그 밖의 몇몇 동인들의 우연한 겸침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명토박아 아저씨'처럼 그렇게 성급하게 민중의 위대한 성취로서 '촛불'을 확정하지는 못하겠다.(솔직히 명토박아 아저씨의 추상론에 대해선... 뭐랄까 계속 이런 막연한 추상론에 바탕해서 글 쓰실거면 그냥 칼럼니스트 딱지 떼시는게 낫지 않을까 싶은 심정이다)

나 역시 누구못지 않게 '촛불'에 감격했고, 그 촛불에 내 작은 촛불을 더해 '이명박 물러나라'를 함께 외쳤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촛불이 무슨 급작스럽게 진화한 '민주적 시민의식'의 귀결로서 나타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촛불'은 그 자체로 어마어마하게 의미있는 체험이고, 정말 시민의식의 어마어마한 각성을 이끌어낼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가진 집단적인 축제인게 맞다. 그렇지만, 최소한 현시점에서 이 '아름다운 촛불들'은 정당한 이기심의 발현('내 새끼에겐 미친 소 안먹인다')이고, 거듭 강조건대 나는 이 이기심을 지지한다, 지키고 싶은 아련한 기억에 대한 안타까움이자 몸부림이며, 이명박, 강부자, 고소영의 변신합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짜증이다.

이 짜증과 본능에 가까운 이기심이 사회적인, 공동체적인 상상력과 만나지 못하면, 그래서 끝끝내 그저 피상적인 수준에서 머물고 만다면, 이명박을 선택한 그 시스템의 관성이 더욱 더 교활하게 더욱 더 정교하게 우리의 내면을, 그 욕망을, 그 욕망을 만드는 자본권력과 여기에 부역하는 착한 엔터테인산업의 콘텐츠들을 수단으로 결국은 다시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4. 기타 등등 : 이명박의 방송 장악 시도와 미디어의 재편

그리고 개인적으론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고, 정말 장기적으론 본질적인 부분으로까지 생각하는 미디어 폭발, 기존 미디어의 지형 변화, 미디어에 대한 소비자적 관점에서의 저항(조중동 불매운동, 네이버에 대한 반감... )이 촛불과 함께 촉발되고 있다. 그 미디어 폭발은 외부 작용(매스미디어. 가령 PD수첩. 그래도 규모를 갖는 인터넷 미디어, 가령 다음 아고라와 오마이뉴스 등등)과 내부(마이크로 미디어. 인터넷 중개자로서의 아프리카나 캠코더, 디카, 휴대폰, 블로그...) 작용의 절묘한 시너지 작용이다.(여기에 아쉽게도 블로그 미디어의 존재감은 희미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그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본다..)

외부 매스미디어들과 내부 마이크로 미디어들은 서로 공동전선을 형성, 바야흐로 방송과 (뉴)미디어 전반을 장악하려는 진정한 '사탄의 무리'에 대항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혹은 그 전초전을 행하고 있다). 이제 촛불집회에서도 '방송법'과 '신문법' 개정을 우려하는 피켓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그 반가움이라니...

이제 우리가 든 촛불이 더불어 밝혀야 하는 것은 그저 '쇠고기'만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삽질스런 대운하 정책, 성급한 민영화 시도, 얼렁뚱땅 집행유예가 유지된 채 하하호호하는 몽구씨(혹은 삼성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는 여전한 유전무죄의 反법치주의).... 이런 여러 갈래 갈래로 우리의 사회적인 상상력, 정치적인 상상력은 즐겁게 퍼져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이명박과 18대 국회가 시도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아니 현재 진행형으로 시도하고 있는 언론장악 시도(방송법과 신문법 개악 시도)를 반드시 저지해 내야 한다. 미디어를 가진 자가 결국은 웃을 것이라는 걸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촛불에 뜨겁게 데인 그들은 더더욱 바득바득 이를 갈고 있을 것이 자명해 보인다. 

"나에게 영화를 달라, 세계를 공산화시키겠다."(레닌)

미디어에 대한 레닌의 발언은, 그 발언취지 여하를 불문하고, 여전히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유효하다.  





* 언론장악 관련 추천 기사 및 칼럼

이명박, 방송을 손아귀에?  (시사in)

공영방송 민영화, 신문 방송 겸영은 안 된다 (미디어오늘) (좀 오래전 사설)

"언론장악 음모 정면 돌파하겠다"
언론노조, 24일 '미디어장악저지결의대회' 개최 (미디어오늘. 2008년 05월 25일)

박성제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올 하반기 싸움을 단판 승부로 끝내기 위한 배터리 충전이 100% 완료됐다"며 "신문·방송 겸영 저지와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사수를 위한 최선봉에 서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언론탄압·장악 시도 중단하라”
미디어행동 기자회견…“최시중·이동관 교체해야”(미디어오늘.  2008년 06월 03일)

미디어행동은 또 “이 정권의 언론 장악 음모가 성공하면”
△광우병 쇠고기 협상처럼 부실 덩어리 정부 협상에 대한 비판이 실종되고
△조중동 뿐 아니라 모든 신문과 방송이 협상 무효를 외치는 시민들에게 불순 배후세력 개입, 국익을 생각할 줄도 모르는 철부지 운운하며 비난하고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은 거의 명맥만 유지한 채 조용히 사라지는 한편
△신문시장은 전국과 지역을 막론하고 조중동이 완벽히 장악하고 다양성은 실종될 것
이라며 언론 장악 음모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정부를 향해 △최시중 위원장을 비롯한 방통위원이 총사퇴하고 △신문·방송에 대한 검열과 통제를 시인하는 한편 △KBS2와 MBC의 민영화 계획을 철회하고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대한 광고 탄압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또, △신문법을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철폐하고 △다음 아고라 등 인터넷을 통제하는 행태를 중단하는 한편 △언론·표현·집회의 자유를 탄압한 데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라고 주문했다.
     
    
이명박정부는 언론장악에 성공할까?
[창비주간논평] 프레스 프렌들리의 허와 실 (프레시안. 2008-05-28)

이명박정부의 언론통제는 그 사례를 언급하는 것만도 이리 벅차다. 그런데 대다수 국민은 이러한 사실들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는 바가 없다. 언론으로 보면 실로 심각한 상황이지만 국민은 모른다. 왜? 프레스 프렌들리한 청와대에 호응하는 언론들 탓이다. 특히 지난 10년 비판언론을 자임했던 조·중·동은 귀 막고 눈 막고 입 다물고 있다. [....]

게다가 현정부는 지배적 신문사들의 지상파 진출을 도와주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민영화나 신문-방송 겸영 허용은 앞선 예와 같은 불법, 탈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법개정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여대야소를 형성한 18대 국회는 이를 실현할 좋은 기반이다.

"'광우병 파동은 언론 탓'이라는 최시중도 물러나라"
"내각 총사퇴에 MB정부 실세, 최시중은 왜 빠지나"(프레시안)

현덕수 YTN 노조위원장은 "이명박 정부는 구본홍 특보를 YTN 사장으로 내정하는 등 방송장악을 획책하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는 '소통'하겠다면서 '소통'의 틀인 언론과 언로를 장악하려고만 한다. 최시중 위원장은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언론장악 관련 참조 기사
“신문·방송법 개정안 9월 국회에 상정” (중앙일보)
“미디어 관련 법 연내 국회 통과시킬 것” = 한나라당은 이르면 이번 주말까지 당내에 미디어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 한나라당 미디어 정책을 주도하는 정병국 의원은 “공청회 등 여론 수렴을 거쳐 9월 정기국회에 신문·방송법 개정안을 제출할 것”이라며 “연내에 모든 관련 법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신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신문법 개정을 올해 안에 마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도 관련 세미나에서 “이르면 9월 정기국회에 언론 관련 법 일괄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논의할 문제에는 신문·방송 겸영, MBC 소유 구조 개편, 코바코(한국방송광고공사) 존폐 문제 등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18 대 국회 미디어 정책의 밑그림은 = 현재 ‘신문·방송 겸영 허용’에 대한 여야의 입장은 엇갈린다. 17대 국회의 신문법 추진 상황과 ‘공·수’가 바뀌었다. 한나라당은 미디어 상황의 변화와 세계 흐름을 고려할 때 매체 겸영은 필연적 수순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반면 통합민주당은 일부 언론의 여론 독과점이 심화될 거라며 반대하고 있다.


* '촛불과 미디어' 관련 팟캐스트
블로거 좌담회 (참석 : 써머즈, BKlove, link, 새드개그맨, 한날, 정신병자, 민노씨 등 7人)

(1) 촛불시위 정국은 어디로? (08.06.10)
(2) 촛불시위 정국의 원인은? (08.06.11)
(3) 촛불시위 정국과 블로거 (08.06.11)
(4) 촛불시위 정국 속의 타매체와 블로그 (08.06.12)





1. 마녀사냥의 요소

마녀사냥은 중세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배타성에 기원한다고 나는 알고 있었는데, 정말 그런가 문득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한국어 위키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고,
영어 위키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이건 워낙에 영어 울렁증이 있어서 읽다가 말았다).

특히 시기적으론 '중세의 마녀사냥'이라는 관용적 표현이 학계의 연구에 의해 수정되었다는 지적이 인상적이다.

12세기 이후 그리스도교의 주도에 의해 행해져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이러한 견해는 1970년대 이후 마녀 재판의 학술적인 연구의 진전 덕분에 수정되어 본래 민중 사회에서 일어났던 마녀 재판은 15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볼 수 있었으며 전 유럽에서 최대 4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보고 있다.
- 한국어 위키 - '마녀사냥' 중에서



내가 이해하는 마녀사냥은 이렇다.
마녀사냥은 흔히 포퓰리즘이라고 말하는 대중의 감정과잉과 냄비근성(마녀사냥은 대부분 어떤 거대한 이슈와 만난다), 상대방(의 견해)에 대한 불관용(엥똘레랑스), 그리고 자신의 정당성을 지지하기 위한 배타성의 전략(희생양 만들기)에 기반한다.

마녀사냥은 대개의 경우 '다수'가 '소수'를 대상을 한다. 물론 여기에는 예외(?)도 있는데, 황우석 파동의 와중에 '소수'(PD수첩, 한겨레,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가 황우석을 지지하는 선량한 다수인 "보통 사람들"을 마녀사냥했다는 조선일보 김대중의 놀라운 발상이 이런 경우다(이 명문은 두고 두고 조선일보와 김대중에 대한 '증거'(!)로서 거듭해서 읽혀야 마땅하다. 조선일보 링크는 자제하고 싶지만, 이런 경우는 예외다. 굳이 설명하기도 민망하지만 '촛불'에 대해 조선일보는 유사한 현상을 거의 정반대로 평가하고 있다).

나는 언젠가 '이안과 전원책' 사례에서 이안을 비판하는 글을 썼고, 다만 이안에 대한 마녀사냥에 가까운 행태에 대해선 그것을 다시 비판하는 글을 쓴 바 있다. 그 글에서 내가 피력한 논리, 사고의 틀은 이번 정선희 사례와도 거의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좀 다르다. 왜 다를까... 나는 왜 정선희 발언에 대한 집단적인 비판과 (그 와중에 좀 과한) 증오가 그다지 안타깝지 않은걸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게 스스로에게 궁금해서다.


2. 정선희 발언의 맥락

정선희 발언의 비난가능성은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어떤 블로거께서는 '옳은 소리 했고만, 왜 욕먹어야 되는지 모르겠네...' 이런 말씀하시는데...정선희 발언은, 쉽게 말하자, 정말 개념 없어도 너무 없다.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정선희 발언을 '촛불'이라는 맥락 속에서 살펴보면 이건 조선일보 김대중이 황우석 파동의 와중에 했던 바로 그 맥락이다.  '선량한 시민'이라는 이미지를 가상의 아군으로 설정하고, 황우석을 정당하게 비판했던 PD수첩을 악당으로 이미지화해서 비난하는 바로 그 방식이다.

물론 차이가 있다면 그 때는 다수(선량한 시민이라는 어떤 '이미지')를 조선일보 김대중이 자신의 임의로 참칭하고 있다면, 이번 정선희 발언은 그냥 그런 정치적인 의도 없이(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정치적인 의도를 저도 모르게 담고) 막연한 일반론과 도덕론(이라고 하기도 좀 뭣한 초딩 도덕교과서)를 흉내내고 있다는 점이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다. 그러니까 이건 정치적으로 매우 악의적인 맥락 속에 위치하고 있다는 거다. 그러니 당연히 공적인 비난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오늘자 조선일보에 드디어 '촛불들'의 장엄한 모습이 일면에 그 자체로 처음 실렸다. 원래 조선일보가 좋아하는 '사진'은 이런 '솔직한 사진', 전체를 가장 잘 대변하는 사진이 아니라, '집회 끝난 뒤에 쓰레기 좀 보라지요?'라는 초딩(초딩들께는 정말 미안)스런 이색 취미가 발현된 사진들이다. 적어도 조선닷컴에서 촛불문화제와 촛불집회, 촛불시위(문화제와 집회와 시위는 정말 분명히 다른데...)로 이어지는 동안에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촛불관련 화보들'은 쓰레기 타령하는 것들이나 폭력시위하는 시민들 모습, 혹은 폭력에 당하고 있는 전의경들의 '안타까운' 사진들이다.

정선희 발언은 시민혁명 수준의 저항권이 발동하고 있는 와중에 '쓰레기 타령'하는 조선닷컴의 '촛불'관련 화보와 그 정치적 함의에 있어 쌤쌤인 셈이다. 그러니 당연히 공인으로서 좀더 큰 발언권(그 권위가 있던 없던 그 '부피'로만 본다면)을 갖는 바에야 그 발언은 비판되어야 마땅하고, 시민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그 공적인 언어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3. 정선희와 마녀사냥이라는 틀짓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염려되는 점은 정선희 개인에 대한 불필요한 감정 과잉이다. 이 감정 과잉은 정치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중대한 촛불의 의미를 '마녀사냥' 아류의 어떤 것으로 전락시키려는 조선일보식 틀짓기에 말려들 공산이 크다. 물론 정선희나 조선일보가 유포하는 '참 잘했어요'류의 공중질서 강조하는 초딩 도덕교과서의 틀로 이기심과 사회적 상상력이 만나는 (소)시민혁명의 전망에 대해 고민하고, 대화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과한 기대이긴 하다.

오늘자(2008. 6. 11.) 조선일보는 '정선희 이슈'를 어떤 맥락에서 재가공하고 있는지 보자.

[....] 개그우먼 정선희씨도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비하했다"는 네티즌의 집중 공격을 받아 지난 6일 출연하던 3개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일부에서는 특정언론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 '정당한 소비자 운동'이라는 주장과 '군부시절을 연상케 하는 광고탄압'이라는 논쟁(ㅡ..ㅡ;; 참 뻔뻔하다... ) 이 이어지고 있다.

- 조선일보 김진명, '촛불시위 40일' '순정'으로 시작한 시위 점차 격렬해져(큰 제목) 서울도심 밤샘 도로점거...쇠파이프도 등장 (작은 제목)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며 네티즌 참여 이끌어 (작은 제목) 중에서

다시금 강조건대 그 정치적 함의로 판단하면,  정선희 발언은 적어도 전체로서 '정당한 다수'를 박정희스런 도덕교과서의 '참 잘했어요' 마인드로 비난하고 있는, 그러니 황우석 파동 때 조선일보 김대중이 행한 아리까리한 선동에 다름 아니다. 비판받아 마땅하고, 그 비판의 정당성 자체가 무슨 자동반사식의 '마녀사냥'이라는 얼렁뚱땅으로 다시 '비난'되어야 할 까닭은 없다.

그리고 이 비판들은 촛불의 의미에 대한 좀더 진지한 논의를 방해하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하는게 뭔고 하니, 정선희 발언은 그대로 조선일보라는 가공할만한 기만매체가 촛불을 공격하는, 혹은 촛불의 의미를 왜곡하는 논리 틀의 연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선희 발언은 조선일보류의 '종이 유사의 어떤 것'에서 의도하는 악질적인 정치적인 틀짓기의 혐의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냥 폼 한번 잡으려다, 혹은 똥인지 된장인지 분위기 파악 안되서 실언했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관용 정신은 중요하다. 그리고 볼테르주의자가 견지해야 하는 언로의 자유에 대한 신념은 정말 정말 너무 너무 중요하다. 다만 관용이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한 정당한 비판까지를 막아서는 언로의 장애가 된다면, 그건 정말 우스운 일이다.

사이비 볼테르주의자들, 가령 정선희를 초딩 교과서 마인드로 옹호하고, 정선희에 대한 비판을 그저 감정과잉의 마녀사냥으로 아무런 고민없이 틀짓기하는, 이들은 마녀사냥 원정대 만큼이나 위험하다. 합리적인 이성의 고민과 비판정신, 그리고 치열한 토론을 거치지 못한 좋은게 좋다는 식의 피상적 휴머니즘, 피상적 관용은 허울좋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런 사이비 관용은 그저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군부시절의 언론탄압"을 운운하며 헛소리 하는 '종이 유사의 어떤 것들'의 논리와 한치도 다르지 않다. 그건 관용도 뭣도 아니다.





* 마녀사냥 관련글
마녀사냥 원정대 - 포퓰리즘과 참여적 가치 [이안-전원책 2]
마녀사냥, 볼테르, 말과 몸 (이상 '민노씨')

걸핏하면 집단 포격(다구리)이래 (한날)




* 촛불 관련 추천글
주절주절 (블루룸)

나는 누구를 규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반성하기 위해 나왔노라고,
당신들도 그래야한다고 외치는 오바를 하지 못한 건,
확신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분위기를 깨기 싫었던 것인지도...


이명박과 실미도 (아거)
그리고 집권여당은 6-4 보선에서 참패를 했다. 그 다음에 한 말에서 이명박의 현실인식이 잘 드러난다. 바로 ‘촛불 몇만개보다 (선거결과로) 민심을 더 잘 읽을 수 있었다’라는 대목이다. 결국 이명박은 아직도 촛불에는 배후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대목이다. [....]  그와 그 주변이 하고 있는 언행들을 보면 왜 국민들이 대통령을 이메가로 부르는지 충분히 알고도 남을 일이다. 아니 이승만 시절에나 있었던 우리 기억에서 아련히 사라진 정치깡패 용역의 문화를 다시 들고 온 이명박에게 80년대 산물인 메가바이트라는 칭호를 불여준다는 것도 너무 과분하지 않을까?


촛불 정국 생각 토막들 2 (capcold)
폭력진압이 발생하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 전의경도 힘들고 스트레스 받고 죽을 맛이라서 그리 되었다는 것. 그리고는 더 철저하게 인권교육을 시켜서 뭘 방지하겠단다. 그런데 장비고 매뉴얼이고 교육이고 간에, 전의경들의 노동권은 어디로 갔나 모르겠다. 잠 좀 재우고, 밥 좀 제대로 먹이고, 교대근무로 출동시켜서 적당한 휴식을 취하게 하란 말이다.


컨테이너 벽은 훌륭한 의사 표시였다. (한날)
사람들은 (이명박식)소통의 벽이라고 부르더라. 깨부술 수도 없고 밀어낼 수도 없는 차가운 쇳덩이 벽.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국민과 소통하지 않겠다는 굳건함을 느낄 수 있었다. 멀리서 찍은 사진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거대하고 차갑고 굳건한 벽이었다. [....] 이번 6월 10일 집회는 이명박식 소통의 벽, 명박산성, 컨테이서 벽이 모든 걸 나타냈다. [....] 완벽한 무시. 벽.


명박산성 VS 시민산성 - 소통, 컨테이너, 꼼수, 풍경 (Shain)
초기에 폭력 시위를 우려하던 많은 언론이 이제는 밤새워 그곳의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이번 촛불문화제를 통해 국민이 얻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해가 곧 떠오르기 시작할 시간, '새벽 4시 10분, 이명박씨가 잠에서 깨어나면 여러분을 치우기 시작한다'라는 자유발언대 시민의 말처럼 그저 시민들이 눈앞에서 없어지기만 바라는 컨테이너 정부는 '장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될 것이라 믿는 정부는 밤잠을 못 이루며 진정한 소통을 고민해야할 것이다.


컨테이너 차벽은 시민들의 분노를 막지 못했다. (이정환)
이날 광장은 여전히 흥겨운 축제 분위기로 술렁거렸지만 지난 집회와 다르게 무력감이 조금씩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70만명이 모여도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열패감 때문일 수도 있고 한달 이상 달려온 집회의 피로감 때문일 수도 있고 단순히 압도적인 컨테이너 차벽 때문일 수도 있다. 사상 최대의 집회였지만 열기는 눈에 띄게 식어있었다. 그 순간 컨테이너 차벽 앞에서는 거센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


2008년 6월 10일 (레진)
태그 : 사탄의 무리



* 촛불 관련 팟캐스트
미디어 토크 26회 - 촛불문화제와 집단지성 (링크 & 민노씨)
중간에 미처 입장을 차분히 정리하지 못한 채로 링크님과의 격론이 있어서 많은 부분 편집되었습니다... ^ ^; 어수선한 대담을 그래도 이나마 편집력을 발휘해서 올려주신 링크님께 감솨. : )

블로거 좌담회 (정리 : 새드개그맨)

(1) 촛불시위 정국은 어디로? (08.06.10)
(2) 촛불시위 정국의 원인은? (08.06.11)


3일 동안의 휴일을 마무리하며 (Shain)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08/06/10 20:19
원래는 추부길 망언에 대해서도 간단히 썼던 글이 있어서 그 글도 마무리 하고, 어제 블로거 좌담회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하는 글을 쓰고 나가고 싶었는데... 마음이 너무 바쁘네요. : )

지금 바로 나가봐야겠습니다.
광장에서 만납시다~!!

다만 하나...
이 싸움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어야 하고, 그래야 결국 승리할 수 있는 싸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싸움이, 아니 이 축제가 일상으로 온전하게 돌아올 수 있고, 이 싸움이 그저 일상으로서의 '문화'가 되어야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고 말이죠.

이 싸움이 놀이가 될 때까지.
이 싸움이 그저 아이들과 어른들과 시민들과 정치인들의 즐거운 토론장이 될 때까지
그렇게 즐겁게 한번 놀아봅시다.

시청이든, 종로이든, 세종로이든, 광화문이든....
어디선가 당신들을 만날 수 있겠네요.
마음이 참 설렙니다.
드디어 6월 10일이군요!

지금 당신을, 그러니 당신 안에 있는 저와 놀라도록 아름다운 공동체적 상상력을 만나러 갑니다. 이 글이 생중계로 만족해야지 하는 당신을 한명이라도 더 이 아름다운 광장으로 나올 수 있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너무도 기쁠 것 같네요.

아무튼!
저,
지금!!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