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촛불의 축제

2008/06/05 16:28
부제 : 아름다운 시가 흐르는 축제의 나날들이 지나가면 우리는 다시 지루한 산문을 써야한다


누군가가 그랬다.
그건 혁명을 시에, 일상을 산문에 비유하는 문장이었다. 물론 그런 말을 누가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득 이 비유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누구인지 문득 궁금하긴 하지만... 이 비유는 빨강머리 앤이  좋아할 정도로 '낭만적'이다.

우리는 지금 '촛불의 축제'를 만끽하고 있다.
그 축제는 우리를 들뜨게 하고, 우리를 슬픈 가운데 춤추게 하며, 우리가 희망을 실천으로 현실 그 자체로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제다. 그 축제가 때론 비통함으로, 때론 분노로, 때론 허무감을 동반하는 알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축제 한 가운데를 벅찬 감격과 함께 통과하고 있다.

하지만 그 축제가 암울한 현실에서 피어난 축제라는 그 사실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 암울하고, 기만적인 현실을 만든 그 주체가 우리임을 스스로 반성적으로 회고하고, 고백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 축제가 끝난 뒤에 우리는 또 다시 일상 속으로 되돌아가 메마르고, 지루한 산문을 써야 한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그리하여 그 지루한 일상과 건조한 산문들이 지배하는 나날들 속에서 우리를 춤출 수 있게 하는, 우리가 하루하루를 너무도 벅차게 감격할 수 있게한 축제의 의미를 스스로 그 일상 속에 심어놓지 않으면, 이 축제가 끝난 뒤에 우리는 더 깊은 허무의 늪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 축제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스스로 기록하고, 그리하여 스스로 이 축제를 더욱 아름답게 했던 기만적인 시스템의 추악한 거짓들이, 결국은 스스로의 방조와 나태와 불성실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임을 아프게 각성하는 것, 이거 없으면, 이런 아픈 자기 확인의 과정이 없으면 이 축제도, 지난 87년의 축제처럼, 지난 2002년의 축제처럼 그렇게 지워져버릴 수 있을거다.

나는 이토록 아름다운 시민들이 그 축제의 기억들을, 거리를 밝힌 그 환한 촛불의 의미들을 스스로 산문으로 붙잡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기억을 블로그를 통해 공유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 분명한 우리의 따분한 일상을 축제처럼 아름답고, 달콤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고 믿으니까....



추.
다소간 감상적으로 썼지만, 이 축제가 지속가능한 것이 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론의 하나로서 '조중동 불매운동'은 매우 적절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일상 속에서 숨쉬는 방법론의 하나로서 여전히 블로그라는 단순하고, 심심한 미디어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다.



* 축하드립니다!
자축! Forget the Radio 1주년! (08.06.03) : 소중한 우리시대의 팟캐스터




신문은 이미지 매체다.
신문은 시각 이미지와 즉각적인 시각 이미지에 준하는 활자이미지(이것은 주로 제목, 소제목인데)들의 조합을 통해, 단 일분 안에, 아니 불과 휙~하고 훑어보는 그 수십초 안에 이미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거의 모두 해버린다. 신문은 긴 이야기나 토론을 싫어하고(대부분의 신문들은 긴 토론이나 이야기를 할 만한 능력도 안되고), 대화하는 건 더더욱 싫어한다. 대한민국 저널리즘이 짝사랑하는 건 무식한 대중에 대한 선동과 연설, 그리고 그들의 이성이 아니라 감정을 자극하고, 불태울 드라마다.

신문은 당신의 관점을 결정하려한다.
무식한 독자, 가르쳐야 하는 독자들이 어떤 관점으로 '그것'을 보는지에 관심이 많다. 그 관점에 영향을 미치려 늘 노심초사다.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악마의 시점이든, 주인공의 시점이든, 악랄한 독재자의 시점이든, 범죄자의 시점이든, 천사의 시점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나를 보는 이 바보들(독자들)을 그렇게 바라보게 만들었을 때 그것이 '나'(미디어)에게 이익이 되는가, 나와 내 고객(광고주인 자본권력으로서의 기업과 흔히 정치권력)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저널미장센의 가장 천박한 단계이며, 우리나라 저널리즘에서는 일상화된 반저널리즘의 풍경이다.

이 글은 2008년 5월 31일과 6월 1일의 촛불시위를 통과한 그 다음 날, 그러니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의 소식을 전해주는 어떤 신문들의 일면에 관한 이야기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일면에 실린 어떤 사진에 관한 이야기다.

그 5월 31일과 6월 1일에는 경찰의 물대포가 시민들의 촛불과 함께 춤췄다.
거기에 흥겨운 어떤 군홧발은 무기 하나 없이, 어떤 저항할 기색도 없이, 그저 땅바닥에 쓰러진 어떤 여학생 얼굴을 가볍게 짓밟았다. 그 경찰새끼를 죽이고 싶다고 내가 느끼든, 느끼지 않든, 그게 나이든 나이지 않든,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우리는 대추리 싸움에서 그렇게 그 늙고 힘없는 늙은이들이 벽을 치며 메마른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도 여전히 무심하고 냉랭한 '착한 국민'들이었으니까. 포스코에서 노동자가 죽어나가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람, 우리는 그렇게 한없이 '착한 국민'들이었다.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이 하나 둘 시름시름, 병에 걸려 세상을 등져도 나와는 너무 멀리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모처럼 촛불을 들고 광장에 있었고, 거기에서 모처럼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상력, 우리가 함께 일수도 있겠다는 소망, 그래서 사회라는 관념이 아니라, 우리라는 실체로서의 공동체적 상상력을 맘껏 스스로 꿈꿀 수 있는 그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니 우리가 그 다음 날 신문 일면에 원하는 건 이런 거다.

"내 옆에 있던 어떤 전경 새끼가 저기에 쓰러져있던 어떤 여학생 얼굴을 짓밟는 사진을 보여달란 말이야." 

"비폭력을 외치는 우리들을 향해 물대포 쏘는 그 야만의 증거를 보여달란 말이다!!"

이건 촛불든 시민들의 관점이다. 이명박 더이상 견디기 힘들어서 참다 참다 거리에 나온 소박한 시민들의 관점이며, 제발 뭐라도 좀 해봐야하지 않겠니라는, 박찬희 교수와 문화부 홍보지원국 공무원들이 보기엔 '무식한 대중과 찌질한 시민들'의 관점이다. 나는 이게 민주주의의 관점에 (좀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저 무식한 시민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오."
"저 무식한 대중들이 감정에 취해 쓰레기 마구 버리는 그런 모습 보여주오"

이게 소위 '종이 유사의 어떤 것'의 관점, 혹은 사이비 엘리트주의의 관점이다.
시민혁명 수준의 저항권을 국민의 다수가 실력행사하는 와중에 쓰레기 타령하는 놀라운 '균형감각'(가령 정선희가 의식있는 척하는 발언이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 일탈적인 균형감각에 대해선 애도를 표하는 바다)에 대해선 우리는 도무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말문이 막히는 거다.

물론 세상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고, 어떤 촛불든 어떤 개인의 내면에서조차 그 작은 우주는 온갖 욕망과 소망으로 서로 싸우고, 서로 투쟁하며, 과연 내 행위에 대해 내가 얼마나 알고 있나, 느끼고 있나... 헷갈리기도 하다.

선량한 자들의 무관심은 악한 자들의 폭력만큼이나 해롭고, 무서운 거다.
하지만 선량한 자들의 지나친 도취는 악한 자들의 침묵만큼이나 두렵다.

그건 지속 가능한, 계속해서 끊임없이, 그렇게 꺼지지 않을 촛불이어야 하니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하니까...

역시나 헛소리가 너무 길었다.
어제는 글까지 날려먹고...
원래 어제 아침에 쓰려던 글을 이제야 이어서 쓴다.

아무튼 두 개의 세계가 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진실에 닿아 있는, 그 진실은 각자에게는 너무도 간절하게 진실이지만, 서로에게는 너무도 혐오스러운 기만인, 그런 두 개의 진실이 있다. 나는 물론 더럽게 재수없고, 구질구질하고, 이랬다 저랬다 하며,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너무 사랑스런 촛불 편에 서련다. 게네들이 나라서... 이게 그 무시무시한 당파성이란 건데, 나는 그게 좋다. 왜냐하면 내가 그 구질구질하고, 가진 것 없고, 허공에 헛발질하는 그 '우리'라서다. 사이비 엘리트주의의 야만보다는 그게 차라리 나으니까. 그게 오히려 폼나고, 멋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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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2008. 6. 2. 일면)
제목 : 물대포 안피한다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31일 밤 촛불집회 마치고 거리행진에 나선 시민·학생들이 1일 새벽 청와대로 통하는 삼청동 들머리에서 미국산 쇠고기 고시 철회와 재협상, 이명박 대통령 퇴진 등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하다 강제해산에 나선 경찰이 쏘는 물대포를 맞으며 버티고 있다. 김정효 기자

물론 한겨레 마음 이해하긴 하지만, 물대포 피하지 말라고까지 선동(여기에 어떤 감정적인 반감도 없다)하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하다. 물대포 피하라고 말하는 한겨레였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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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일보 (2006. 6. 2. 일면)


이런 후진 사진에 도메인까지 정중앙에 박아 넣는 조선일보의 센스는 뭐랄까, 좀 짜증스럽다. 아직 사태파악 안되고 있나보다. 물론 대중들이란게 가공할만한 건망증(황우석 파동은 솔직히 좀 그렇다)과 얼마든지 그 의식을 조작가능한 멍청이들의 총합에 불과하다고 찰떡같이 믿고 있나보다. 게다가 18대 국회도 개원했겠다, 이명박은 신문법 개정을 공약으로 약속했겠다, 이제 바야흐로 KBS2와 MBC 민영화 시나리오도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겠다... 몇 번이나 강조했지만, 이 자들은 지금 믿는 구석이 있다. 미친소에 쏟는 관심만큼 미친 말과 글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지속가능한 저항의 방법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나는 그게 블로그라면 좋겠다, 정말 보잘 것 없고, 아직은 너무도 미약하지만....

설마 이 조선일보 일면 사진이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이렇게 협동심이 대단하다우, 이런 건 아니겠지? 혹은 운동회 줄다리기를 연상시켜서 훈훈하게 이 대열에 합류하시라니깐여~! 이런 건 아닐테지... (물론 아니다.) 식상하게 설명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무식한 대중들은 이렇게 폭력적이라니깐여~! 를 강조하고 싶은데, 솔직히 그런 자료들이 별로 없어서 이렇게 버스랑 줄다리기 하는 모습이라도 일면에 실은거다. 그게 조선일보다.

조선닷컴에서 촛불시위에 관한 화보를 검색해봐라.
뉴시스에서 제공받은 시위 현장의 쓰레기에 대한 다양한 시선들을 만날 수 있을거다. (물론 직접 이런 허접한 사진들을 확인하기 위해 시간낭비하고, 조선닷컴 트래픽 올려주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한데... 그 허접함을 확인하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들긴 한다).

두 개의 사진은, 두 개의 세계를 상징한다.
물론 그 두 개의 세계는 궁극적으로 만나야 하지만, 이런 허접한 수준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깊은 간극이 그 두 개의 세계 사이에는 있다.



* 관련 추천글 및 팟캐스트
제가 여러분의 배후가 되어드리겠습니다 (블루룸)
촛불문화제 vs. 거리시위 (새드개그맨) : 나는 전략적인 차원에서는 '문화제'를 찬성하지만, 마음으로는 '시위'를 찬성한다. 그게 내 모순이다...




촛불시위(이제 더이상 촛불'문화제'가 아닌 건 분명한 것 같다)에 대한 글을 쓰다가....

more..


암튼...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이명박 찍은 국민'에 대해서다. 프레시안에 갔다가 어떤 글(좀더 정확히는 그 기사에 대한 어떤 댓글)을 만났기 때문이다.


1.
'어떤' 전경 새끼(최대한 순화했다)가 쓰러진 여학생 군홧발로 짓밟은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봤다(처음엔 다음 TV팟에서 봤는데...). 솔직히 좀 자제가 안된다. 그 새끼 면상을 운동화로나마 짓밟고 싶은 심정이 들지 않으면, 나는 솔직히 그게 더 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폭력 전경에 대해선 그 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것으로 족하고, 그 행위를 행위에 한정해서 구체화시켜 비판하는 것으로 족하고, 또 의미를 좀더 확대하자면, 그 군홧발이 갖는 정치사회적 상징과 함의에 대해 논하는 것으로 족하다(MBC 9시 뉴스의 지적처럼 기록수단의 발전, 가령 캠코더나 핸드폰, 인터넷은 이런 개념없는 공권력에 대한 강력한 저항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

그 군홧발을 그 전경 '새끼'에 대한 증오로 맞바꾸거나, 전경 전부, 혹은 경찰 전부에 대한 증오로 맞바꿔서는 곤란하다. 그건 이명박이나 조중동이 추구하는 세계관이고, 그들이 원하는 상황이다. 99% 떨거지들끼리 서로 반목하고, 서로 증오하게 만드는 거(이명박 정부는 10%의 국민이 아니라 1%의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사실이 점점더 자명해지고 있는데..), 그래서 더 큰 적, 더 커다란 숲을 보지 못하게 하는 그런 틀짓기를 가장 잘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집단이 이명박, 한나라당과 자웅동체모드로 작동하는 조선일보와 같은 '종이 유사의 어떤 것'이다.

내 체험치, 적어도 지난 대추리 싸움을 곁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렇다. 그리고 동시에 끊임없이 물타기 하는거다. 가령 예전식으로 보자면 북한이 이렇다더라, 저랬다더라, 하는 식으로...뜬금없이 북한 끌어들이는 건 아직 조선일보에서 애용하는 방식이긴 하다. 큰 관점으로 보자면, 군홧발로 여학생 짓밟고, 방패로 항의하는 시민에게 방패 날리는 그 전경 '새끼'들도 정부 잘못 만난 불쌍한 국민들이다. 동영상에서 쌍욕하는 그 개념없는 새끼까지 모두 내 자식새끼고, 내 동생이고, 우리 형이며, 선배고, 후배다. 물론 그 개념없는 새끼의 '행위'까지 용서하자는 거 아니다. 마땅히 그 행위에 대해선 처벌해야지.

하지만 그 모든 증오와 분노의 감정을 추스리고, 그 '새끼'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수 있어야 한다. 그들까지 포용하고, 함께 가자고 설득하는 거, 그거 없으면 촛불시위는 그저 한 때의 '시위'에 머물고 만다. 이게 아무리 의미있는 기억을 우리에게 남기고, 시민의식을 한단계 고양시키고, 5.18과 6월 항쟁을 겪지 못한 어린 세대들에게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몸의 기억들, 그 소중한 공동체적 체험, 사회적인, 역사적인 체험을 남긴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6월 항쟁의 기억은 IMF의 체험 앞에서 얼마나 무력했나.

"씨발 우리가 니들 때문에 잠도 못자고..."라고 말하는 그 새끼(거듭 강조하지만 순화한 표현이다)에게 "씨발 우리도 이명박 때문에 잠도 못자고..."라고 친절하게 대답해줘야 할, 그 어렵고, 더러운, 감정을 누르고 눌러야 할 책무가, 그래서 대화를 시도하고, 다름을 기반으로 그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 책무가, 촛불든 우리에게는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그 개념없는 전경이 스스로 반성하고, 후회하게 만들어야, 더 나아가 함께 대화하고, 우리 스스로 비판적으로 자기를 성찰할 수 있어야 이 '시위'가 진정한 의미의 '시민혁명'이 된다.


2.
그 전경, 혹은 경찰특공대(정말 이명박이 이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군홧발을 이명박 정권의 야만성에 대한 유일한 상징으로 동일시하고 나면, 그래서 오직 그 군홧발에만 모든 증오의 감정을 집중하면,  촛불시위를 바라보는 관점은 너무도 분명해지고, 너무도 간단해진다. 악과 정의의 싸움이 되고, 촛불든 나는 당연히 정의이며, 나머지는 모두 악이 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고, 어떤 싸움도 단순한 선악 대결은 아니다. 그런건 헐리웃 영화에나 있는거다. 식상한 수사지만,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이고, 가장 어려운 싸움은 자기 내부에 있는 시스템의 관성이 내면화시킨 세속적 욕망들이 서로 치고받는 싸움이다.

촛불시위는 아름다운 싸움이지만, 전경들이 경찰들이 다양한 실존의 인간들이 모여있는 인간군상의 하나이듯, 촛불든 시민들도 다채로운 빛깔들을 갖는 다양한 실존들의 집합일 뿐이다. 저마다 서로 다른 이유로, 하지만 크게 공감하는 바 있어(이명박이 이대로 두면 도저히 안되겠군...) 거리에 나온거다. 현상황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은 이런 질문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이명박 찍은 국민들은 옆에 좀 찌그러져 계십시오, 당신들은 이명박 욕할 자격도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시민들에게 방패질하고, 군홧발로 시민 짓밟는 게 민중의 몽둥이를 자임하는 대한민국 경찰입니다. 다 똑같은 새끼들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하수인들이예요!!"

이러면 싸움판이 정해진다. 이러면 세상이 너무도 명확해진다. 싸움 전략과 전술이 이 단순한 관극틀에 의해 결정되는거다. 이 관점이, 이 관극틀이 극단적으로 형상화된 모습은 내전이다. 우리편과 우리편이 아닌 편 간의 극단적인 증오와 반목과 싸움이 있고, 그 뒤에는 숙청이 있다. 쪽수 많은 편이 우리편, 이기는 편이 우리 편하면 된다. 이게 소위 우리나라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취하는 생존의 원칙이기도 하다.

정권 전복하고, 국회 해산시키고, 대선과 총선 다시 하고, 그 국회에서 새로 헌법 만들게 하고.... 이렇게 하면 대한민국의 '촛불 혁명'이 완성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나? 이건 꿀 수 있는 꿈이긴 하지만, 좀더 냉정하게, 좀더 현실적으로, 좀더 이기적으로(촛불시위는 이기심에 바탕하고 있다. 물론 그 이기심은 이타심이기도 하지만) 생각하자, 이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그 방식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명박을 대통령 만든 그 세속적 욕망들은 모두 갑자기 개과천선했나? 선거 끝나면 뒤집힐 뉴타운 공약에 환장해서 한나라당 출마자들 당선시킨,  '집값'과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맞바꾼 유권자들은 어떤가? 자신들은 집값과 알 수 없는 경제살리기를 위해 영혼을 팔았는데, 왜 공무원은 자신의 밥줄을 위해 영혼을 팔면 안되나? 내가 너무 속물이라서, 나란 놈은 원래 이렇게 비겁하니까... 이런 걱정(?)은 나만 하고 있는거였어?


3.
저들이 이명박을 찍었다.
저 무식하고, 세속적이고, 더러운 욕망으로 가득한 유권자들이 이명박 정권을 만들었고, 며칠 전에 개원한 18대 국회를 한나라당과 극우 보수 집단에게 넘겼다.

이러면 속이 시원한가? 이러면 민주의식 투철한 시민 되고, 진보적인 지식인 되나? 쥐뿔이다, 이런 생각으로는 단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이런 생각이 촛불을 밝히는 원동력이라면, 그 촛불이 다 꺼진 뒤에 다시 제2, 제3의 이명박이 나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촛불시위가 참여적 공동체의식이 절로 피어나서, 불과 다섯달 남짓 전의 결정을 전적으로 후회해서, 이명박 찍은 원죄를 씻고자 나선 순결한 시민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하나? 그 발화점은 거대미디어(PD수첩. 이에 대한 조선일보의 지적에 대해선 나는 일정부분 동의한다. 물론 이를 거론한 그 전략적인 취지에 대해선 전적으로 반대하지만)였고, 그 원동력은 소박한 이기심이었다. 적어도 내 새끼들에겐 미친소 먹이기 싫다는 그 단순한 이유가 유모차 끌고 촛불 든 엄마 마음인거다.

물론 나는 그 이기심을 사랑하고, 지지한다. 그 이기심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순수한 시민의식이고 나발이고, 민주의식이고 나발이고, 공동체의식이고 나발이고... 그 도덕적이고, 관념적인 의식이 '이기심'을 이긴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종종 언급하곤 하는 4.19혁명이 미완의 혁명인 이유, 6월항쟁이 이토록 급하게 그 기억들을 빼앗긴 이유, 나는 그게 그 이기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기심이 얼마나 사회적 공동체 의식과 만나는가, 얼마나 열린 사고와 만나는가, 얼마나 타인의 고통을 내 아픔으로 느낄 상상력을 품을 수 있는가(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아프면 나도 아픈데, 그건 당연히 이기심이지 않나)... 이런 것들이 그 이기심의 총합으로서의 어떤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를 결정할 뿐이다. 그래서 영어몰입교육을 비판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학원에 꾸역꾸역 자기 아이들 쑤셔넣는 엄마들의 욕망이 이해되는 이유이고, 홍정욱보다 노회찬이 더 훌륭한 정치인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홍정욱을 뽑는 그 배반적 선택이 이해되는 이유이다.

4.
이 글의 발아점은, 앞서도 언급했지만, 프레시안 어느 기사에서 읽은 어느 독자의 댓글이다.
이명박 욕하는 사람들. 자격있는가.
pigret / 2008-06-01 오후 9:46:10
 
[.....] 이명박을 선거때 뽑았던 사람들은 각오했던 것 아니었습니까? 이명박표 경제성장에 이미 긍정했던 것 아니었습니까? 마이클 무어의 '식코' 란 영화가 타이밍좋게 나오지 않았더라면 미국소고기의 '광우병' 이란 이슈가 이렇게 언론플레이로 다뤄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 봅니다.

제 생각은 1. 이명박 뽑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였는지 곰곰히 생각하면서 다음부터 이런 돌이킬수 없는 실수를 만들지 않도록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 선거투표 안한사람들은 더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욕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대책회의 부상자 현황 발표'
에 달린 댓글 논평 중
격정적인 논평을 남긴 pigret 님 심정에는 십분 공감한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그 취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찍은 국민들 역시 이명박 정권에 대해 비판할 당연한 자격을 갖고 있고, 이건 너무도 당연하다. 이명박 찍었다고 해서 죄인이 되어야 하거나, 혹은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명박 정권을 욕할 자격도 없어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민주주의는 선택된 지식인들, 그래도 머리에 먹물든 고상한 시민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시스템의 포로이자, 그 희생양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켜야 하는 시민들을 상대로 쌍욕하는 그 전경새끼, 언론통제와 대중 의식조작의 기법(이라고 하기엔 너무 양아치스런)을  친절하게 특강하는 박찬희(중앙대 교수)와 같은 자에게 공부하는 문체광부 홍보지원국 공무원들. 이들에게까지 대화를 시도하고, 설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빗나간 액션, 그 액션을 만들어낸
세속적인 욕망, 즉흥적인 욕망들이 무엇보다 내 안에 여전히 꿈틀거리는 시스템의 관성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각하는 그 바탕 위에서 서로 대화 나누고, 공동체적인 상상력을 키우는 일이 촛불의 의미가 되어야 한다.

촛불이 갖는 의미가 그저 '이명박'에 대한 맹목적 거절,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막연한 공포, 몇몇 전경새끼들에 대한 극단적인 분노에만 머문다면, 그래서 더 큰 증오와 더 큰 혐오만을 만들어내고, 거기에서 대화를 통해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설득하며, 그래서 함께 살자는 공동체적인 상상력을 각자의 이기심 안에서 내면화시키지 못한다면, 이 촛불은 지난 위대한 87항쟁의 기억들이 몇몇 정치적 수혜자들만을 남기고 그토록 쉽게 잊혀져버렸듯, 그렇게 지워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러기엔, 그렇게 반목만 키우고 지워버리기엔, 저 촛불들이 밝히는 광장과 거리가 너무 아름답고, "때리지 마세요"를 외치는 당신 목소리가 너무도 깊은 곳에서 가슴을 친다.


* 발아점
'국민대책회의 부상자 현황 발표' (프레시안)에 달린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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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동영상
다음 TV팟 (촛불시위 관련 동영상들)
쓰러진 여학생 군홧발로 짓밟은 모습이 담긴 동영상 (유튜브)


위 동영상을 굳이 참조하라고 글 말미에 따로 올리고, 링크 표시하는 이유는, 이 동영상을 보고 흥분해서 좀더 감정적이 되라는 취지가 전혀 아닙니다. 그러니 이 동영상이 조중동이 틀짓기하는 그 방식과는 전혀 다른 절대선의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작위적인 요소가 가미된 이 동영상의 편집은 최소한 사실에 근거하고 있고, 진실에 가까우며, 좀더 높은 도덕성과 공동체의식에 근거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또 지상파와 케이블에서는 이런 동영상을 가감없이 보내주지는 않으리라는 판단도 이 동영상을 여기에 올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최소한 어제, 08. 6.1. 9시뉴스에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 동영상을 좀더 많은 분들이 접하도록 널리 퍼뜨려주시길 개인적으로 바랍니다.

* 관련 추천
촛불문화제와 거리시위 (새드개그맨)

* 알림
이 글을 기점으로 다음 블로거뉴스에 재송고할까 싶습니다. 글 전부에 대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좀더 많은 독자들과 대화하고 싶은 주제(주로 공적인 의제들)에 대해서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재미없는 글을 다음 블로거뉴스를 매개로 글읽는 독자들께서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겠지만요. 쇠고기 파동을 겪으면서 DAUM(특히 아고라와 같은)이 민의를 공론화하는데 현실적으로 기여하는 바에 대해 호의적으로 느끼고 있고, 더불어 아주 아주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다음 블로거뉴스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보다는 조금이라도 많은 독자들에게 제 부족한 목소리나마 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네요, 단 한명이라도 말이죠. 다만 다음 블로거뉴스는 제발 블로그의 고유 URL을 다음 블로거뉴스의 URL로 둔갑시키는 그 최소한이나마 시정해주시길 거듭 부탁드립니다.




민정수석실은 쇠고기 대책회의에서 "어제 촛불집회가 열렸고 1만 명이 참석했다"고 보고했다가 혼쭐이 났다." 이 대통령은 "신문만 봐도 나오는 걸 왜 보고하느냐. 1만 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 조선닷컴, 배성규, "촛불집회 몇 명 참석" 하나마나한 보고 (08.05.31) 중에서 

경제대통령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ㅡ..ㅡ;
촛불 누구 돈으로 샀는지 추궁하면서 버럭질 내는 모습을 상상하니, 내 맘이 다 짠하다. 시민혁명 수준의 촛불문화제, 그 촛불 누구 돈으로 샀는지 궁금해 하는 경제대통령 보니 "경제 3대 지표, 우울한 3중창"(조선일보. 08. 5. 31. 일면 헤드라인)이라는 극우 수구신문마저 걱정하는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힘이 불끈! 솟는다. 경제는 이제 이명박만 믿으면 만사 오케.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다. 혁명 일어나도 그 혁명 누구 돈으로 했나, 얼마 들었나 따지고 있을 경제대통령이 있는 바에야 뭐.

이게 우리가 뽑은 경제대통령 모습이다.
우리가 경제 좀 제발 살려달라고, 어떤 청년이 TV에 나와 눈물까지 찔끔거리면서 그렇게 뽑아달라고 호소했던, 그래서 뽑힌 경제대통령 모습이다.

촛불 누구 돈으로 샀나....
누가 주도했나...
이런게 관심사인가 보다.

촛불 내 돈으로 샀고,
이명박 정부(의 끊임없는 뻘짓)가 이 사태의 주동자다.

이제 속 시원한가?
이게 당신이 대국민담화에서 말했던 국민과의 소통인가?
국민들은 속 편해서, 재미로 촛불 들고, 황사 뒤집어 쓰면서, '나를 잡아가라!'고 이러고 있는 줄 아나?

어처구니가 없다.
정말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런 기사를 진지하게 쓰고 앉아 있는 조선일보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고... )






오늘자(2008. 5. 31) 한국경제 일면에 실린 사진이다.
뭐랄까, 묘하다.
묘해...



명박씨께서 좋아하는 사진 한방은, 역시나 쓰촨성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이런 판국에 이런 사진을 일면에 실은 한국경제의 센스가 놀랍다. 언젠가 글에서도 썼지만 한경은 '대운하 특집기획' 연재기사까지 쓰면서 '대운하 최고예효~!'를 연신 강조했던 바로 그 신문사다. 당대의 조선일보도 대운하 회의론에 대해 지면을 할애하는 판에도 이토록 과감한 행보를 보여줬던 신문사답게, 온나라가 촛불로 쓰촨성만큼 흔들리고 있는 와중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따뜻한 포옹을 일면에 떡하니 올려주신다.

솔직히 이명박 외모를 갖고 쥐박이니 뭐니 하는 건 개인적으로 별로 찬성(?)하지 않는 편인데(상대가 반칙왕이라고 나까지 반칙왕이 되어선 안되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 오늘자 한경의 일면을 보면서... 역시나 묘한 느낌, 뭔가 낯설고 섬뜩한 느낌이 드는건... 아직 수양이 덜 된 것 같다. ㅡ.ㅡ;
이명박 지못미. ㅠ.ㅜ;

사진에 대해 좀더 시각적인 느낌을 적어보자면(이건 그러니까 자애로우신 이명박씨 사진 한방에 대한 인상비평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제목은 "나도 눈물이 난다"인데, 그 사진 속 이명박 얼굴은 메마름과 뺀질거림의 오묘한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느낀다(이건 다시 강조건대 이명박에 대한 악의적인 폄하가 아니라, 사진에 대한 인상비평이다. ㅡ.ㅡ; ). 얼굴을 번쩍번쩍 빛내는 개기름과 "눈물이 난다"는 눈에서 느껴지는 사막같은 건조함은, 특히 왼쪽 눈(사진에서는 오른쪽 눈)의 메마르다 못해 섬뜩한 느낌은 뭐랄까 마치 고야의 기괴한 이미지들이 연상된달까... 가령 아래와 같은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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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한국경제의 눈물겨운 이명박 사랑에도 불구하고, 오늘자 일면 사진 한방은... 독자로부터 그다지 좋은 이미지를 불러오지는 못할 것 같다.

뭐니 뭐니 해도 이명박은 이런 이미지가 제격인데...
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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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불리스 돈불리제
주의사항(좌측 하단) : 오래 보고있으면 파손을 유발하니 주의하세영

(출처 엠파스 via 펄의 Feelings... )
덧. 원본 출처는 역시나 디시겔 (홀로햏자)이라고 하네요. 핑소년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감사 : )


내가 워낙에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에 관심이 많아서 그냥 한번 끄적거려봤다. 다시한번 강조건대, 이 글은 자애로우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폄하를 의도한 글이 전혀 아니다. 그냥 어떤 크로테스크한 사진에 대한 느낌, 좀더 바라자면, 어떤 기묘한 이미지에 대한 소박한 인상비평이라고 생각해주시기 바란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