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06다6713 (2008. 2. 1. 선고) 손해배상(기)

* 참고 : 대법원 사건번호 ****다****(민사). ****도****(형사사건)

원고, 피상고인 : 갑. 을. 병. 정.
주소생략.
병정은 미성년자이므로 법정대리인 친권자 모 '무'
원고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아무개'
담당변호사 갑돌이, 똘똘이.

피고, 상고인 : 대한민국
법률상 대표자 법무부장관 정성진
소송수행자 가, 나, 다, 라, 공익법무관 마.

원심판결 : 부산고등법원 2005. 12. 22. 2003나18432 판결

주문 :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유 :
이하 이유 부분의 판결문은 '사실 - 원심판단 - 대법원 판단'의 순으로 재구성한다.


1.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및 위법성조각사유 등에 관한 주장에 대하여

사실 :

(경찰관) ###은 아무런 흉기도 소지하고 있지 않던 ***에 대하여 실탄을 발사하였다.

또한 권총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함께 출동한 경찰관 및 그 자리에 있던 다른 경찰관 등과 협력하여 ***의 동료 경찰관에 대한 폭력을 저지할 수 있었을 터(이다).

설령 부득이 실탄을 발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의 하체 부분을 향하여 발사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위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여지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측 흉부(가슴팍)를 향해 실탄을 발사하여 ***으로 하여금 사망에까지 이르게 하였다.


원심 판단 : 경찰관에게 과실이 있고,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당시 경찰관 ###으로서는 사망한 ***이 칼이나 다른 흉기를 소지하고 있는지 여부를 신중히 관찰한 뒤 과연 ***에 대하여 권총을 사용하여야 될 만큼의 급박한 위험성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였어야 옳(다고 하였다).

한편 (경찰관) ###의 위 총기사용은, 그 동기나 목적, 경위, 상황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고, 그 때문에 형사사건에서는 무죄판결이 선고,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과실의 내용 및 총기사용의 구체적인 태양(양태)이 사람에게 결정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것이었고, 실제로 ***의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 점에다가 이 사건 사고로 발생한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측면까지 종합하여 고찰하면,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대법원 판단 : 원심 판단이 옳다.

ㄱ. 경찰관의 무기사용 요건

경찰관은 범인의 체포, 도주의 방지,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 신체에 대한 방호,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의 억제를 위하여 무기를 사용할 수 있으나, 이 경우에도 무기는 목적달성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필요한 한도 내에서 사용하여야 한다(경찰관직무집행법 10조의4).  

ㄴ. 경찰관의 무기사용이 '상당한 이유'있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표준

경찰관의 무기사용이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는

- 범죄의 종류
- 죄질
- 피해법익의 경중
- 위해의 급박성
- 저항의 강약
- 범인과 경찰관의 수
- 무기의 종류
- 무기 사용의 태양
- 주변의 상황 등을 고려하여 사회통념상 상당하다고 평가되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특히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위험성이 큰 권총의 사용에 있어서는 그 요건을 더욱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 5. 13. 2003다57956 판결).

ㄷ.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의 차이

불법행위에 따른 형사책임
a. 사회의 법질서를 위반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서
b. 행위자에 대한 공적인 제재(형벌)를 그 내용으로 한다.

이에 반하여 민사책임
a. 타인의 법익을 침해한 데 대하여 행위자의 개인적 책임을 묻는 것으로서
b. 피해자에게 발생된 손해의 전보를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손해배상제도는 손해의 공평, 타당한 부담을 그 지도원리로 하는 것이므로, 형사상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침해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는 형사책임과 별개의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1971. 11. 15. 71다1985 판결).

앞서 본 법리와 관련 증거들을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이러한 사실인정과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은 채증법칙 위배, 이유모순, 위법성조각사유 및 과실, 형사판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헙이 있다고 볼 수 없다.


2. 손해배상책임의 범위에 관한 주장에 대하여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손해의 발생이나 확대에 관하여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배상책임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 당연히 이를 참작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실상계 사유에 관한 사실인정이나 그 비율을 정하는 것은 그것이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인정되지 않는 한 사실심(원심)의 전권사항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2. 11. 26. 2002다43165 판결).

* 참고 : 대법원 판결은 '사실심' 아니라 '법률심'이다.

관련증거들을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과실상계 사유에 관한 사실인정은 정당하고, 또 그 비율판단도 수긍할 수 있는 범위 내로서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고, 거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은 채증법칙 위배, 과실상계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3. 그러므로 상고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박시환, 박일환, 김능환



1. 원심과 대법원의 판단을 지지한다.
2. 교훈 : 총질 함부로 하지 말자.




#. 시간 아까우신 분은 맨 아래 '추' 부분만 읽으셔도 됩니다.

나는 이 글이 참 맘에 든다.
좀 현학적인 느낌이 없지 않지만.
암튼 위 '이 글'에 링크된 MBC 뉴스의 결론을 보자.

하지만 이 정도는 만족할 수 없다는 듯 요즘 우리 청소년들이 감정 표출을 너무 무절제하게 하는건 아닌지, 그리고 남들을 배려해야 하는 기본적인 도덕마저 잊고 있는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MBC 뉴스 신기원입니다.

도무지 '기본적인 도덕'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남들을 배려하는?
도대체 그게 뭔가?
세계에서 섹스를 돈주고 사기 가장 쉬운 나라의 '간통죄' 같은건가?
삽질하고 있다, 정말.

덧. 여형사님과 Reidin님께서 댓글로 지적한 바에 대해 간략히 보충합니다. 사회의 이율배반이라는 구조적 차원, 그리고 '어른'들의 가식과 그 위선을 '중학생들의 일시적인 해방구, 혹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치기어린 일탈'과 비교한다면...

아무래도 좀더 비판적으로 먼저 '반성'해야 할 것은 사회와 어른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사회고 어른이고 전혀 반성이 없어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그러니 아이들에 대한 배려는 차치하고, 최소한 왜 그런 일탈로 나아가는가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조차도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중학생 아이들이 나름으로는 발랄상큼(?)하게 추억을 만들어보자라는 취지(보도내용 보면 그런 인터뷰도 있다)에 대해선 '그랬어? 그런데 좀 춥겠다ㅎㅎ' 속으로 이런 반응이 떠오를 뿐이다. 이게 무슨 대단한 '도덕적 비난'을 받을 일인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무슨 "기본적인 도덕"씩이나 들먹일 일인지 모르겠다.

"너나 잘 하세요."

저널리즘의 차원에서는 신기원 기자가 참 애썼는데, 솔직히 좀 식상하다. 이런 '속류 도덕론'으로 마무리하면 이 이슈는 그저 '자극적'으로 휘발되는 이슈에 머물고, 시청자들을 '생산적으로' '자극'(이 자극은 전에 쓰인 자극과는 물론 다른 함의를 담고 있다)할 수 없다. 그러니까 답을 정해놓은 거지.

즉, 고리타분하고, 이율배반적인 유교적 관성, 그런데 세계에서 섹스를 돈주고 사기엔 가장 쉬운 나라의 간통죄 같은 불가해한 구조 속의 모순에 "나라 꼴 잘 돌아간다"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탄식이나, 가식적 도덕관에 찬 '쯧쯧쯧'이 남을 뿐이다.

물론 트래픽에 심취한 많은 블로거들이 이 뉴스(?)에 대해 쓰고, 또 나까지 거기에 동참하고 있는 걸 보니 어느 정도는 '흥행' 성공한 것 같기는 하지만... 뭐랄까 좀 약하다. 개인적으론 이게 무슨 그렇게 '호들갑' 떨만한 소식인지도 잘 모르겠다. 빨간 마후라가 이미 '전설'로 내려오는 마당에 이 정도가 무슨 '뉴스씩'이나 되나. 그것도 9시 뉴스에 등장해야 하는 소식이 되는건가... 싶은거다.

최소한 '나훈아 X 잘렸다' 정도는 되어야지.
이게 우리나라 (연예 관련, 자극적) 엘로 저널리즘(블로기즘)의 '본색'이지 않나.

사회적인 모순, 구조적인 메카니즘을 고민하자는 뻔한 소리(하지만 이건 역시나 중요하긴 하다)를 하고 싶은게 아니라, 제발 호들갑 떨지 말자는 소리를 하고 싶은거다.


덧.
이 글을 먼저 읽었으면 본문 방향이 좀 달라지거나, 혹은 길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추.
다른 주제로 쓸 게 많았는데, 저녁 약속 때문에...자꾸 미뤄진다.
그리고 돌아와선 이런 되도 않는 소리를 하고 있구나. 
문득 새벽에 위 링크한 글을 읽고 즉흥적으로다가... 쓰는 글이라서... 비문과 어설픈 생각들이 많을테다. ^ ^;
이런 말도 안되는 이슈에 호들갑 떨 시간에 "이런 멋진 팟캐스트"를 한판 때리는게 (개인적으론) 생산적인 것 같다.

추2.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시는 분들께선..
한국타이어 사건(판결 및 20일로 예정된 조사결과 발표)에 대해서도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_ _)





기본적으로 홍보 및 소개를 위한 글입니다.

인수위와 이명박 영어교육에 대한 네 번째 인터뷰를 제작했습니다. 인터뷰이는 '실용주의와 언어 제국주의'라는 논문급 포스트를 써주신 엔디님이셨는데요. 위 포스트를 바탕으로 질문지를 작성했지만, 훨씬 더 다양한 사례들과 이야기들을 들려주셔서 정말 개인적으론 재밌고, 뜻깊은 인터뷰가 된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엔디님께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링크님께서 정리한 인터뷰 요약문을 바탕으로 좀더 세분해서 분류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한 분들은 흥미를 느끼시는 부분을 골라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 ^;  물론 다운로드를 받으셔서 이동 중에 라디오 듣는 기분으로, 음악 듣는 기분으로 들으시면 좀더 좋겠지요.  인터뷰는 괄호 안 링크를 통해 연결됩니다. ( 클릭 한방! )


0. 엔디님 소개 (0:52)

1. 조선시대 때 모국어를 학대하던 모습 (2:25)

2. 일제시대에 한글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게 된 아이러니 (4:37)

3.  영어 광풍은 개인에게는 지극히 합리적이라는 강준만씨의 말 (7:48)

4.  영어 공용어화를 주장한 복거일씨보다 인수위의 영어 정책이 순수하지 못한 까닭 (8:41)

5.  영어 공교육을 총론에서는 찬성하는 까닭 (13:58)

6.  이명박 정부 인수위의 영어 교육 정책의 실상 (15:52)
- 관련 공청회에서 한 학부모 왈, "영어교사들도 '사교육' 받게 해라" (ㅡ_ㅡ;)

7. 언어 사멸에 대한 엔디님의 견해 (18:58)
- 관련서적 [사라져가는 목소리들] : 언어를 생태적인 관점에서 접근. (관련 링크 : 언어의 생태학 (YY))
- 유네스코의 공식언어 10개 중 하나로서의 한국어.
- 추천하고 싶은 책 [눈에 대한 감각](스밀라) : 지은이 스밀라는 그린란드 이누이트족의 후손.

8. 방송 등 실생활에서 쓰이는 언어 문제 (24:58)
- 시청자들의 무감각 문제
- 세대 간의 단절을 촉발하는 언어습관들, 이를 적극 '방조'하는 방송들  
- 영화 제목 문제. 예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이윤기(번역가, 소설가)가 말하는 '낫씽 투 루즈'와 밑져야 본전'

- 우리말 쓰면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전도된 감수성.
- KT. SK와 같은 내수용 기업들까지 왜 영어 기업명칭을 고집하나.

9. 영어와 권력관계 - 1.
- 영어 컴플렉스, 영어하면 출세할 수 있다는 기대심리.
- 기업에서의 사례.
- 과거 에스파냐의 경우.
- 계급적 표지로서의 영어 .

10. 영어와 권력관계 - 2. '꺼삐딴 리'를 통해 본 외국어와 권력에 대한 예 (36:10)
- 소설 속 인물 이인국 박사의 경우. 일제땐 일본어, 북한에서는 러시아어, 월남해서는 영어로 출세가도를 달리는 이인국 박사.
- 일개인 이인국이 문제가 아닌 이유 : 국가 전체가 '이인국'이 되길 원하는 듯한 '이명박식 영어교육'.
- 국제어가 무너진 사례들.

11. 선진국 독일의 예 (39:24)
- '한겨레21'에 소개된 외국인들의 반응 : 이렇게 '영어에 미친 나라'는 없다.

12. 영어 외 외국어 교육에 대한 필요성 (41:27) - 국가경쟁력의 차원
- 러시아 차관을 제공하고, 무기로 받은 사연 (추정)  
- 고 김선일 사건의 경우 : 이라크 대사관에 아랍어 능통자는 단 한 명.
- 물건을 팔려고 하더라도 그 지역의 '로컬 언어'를 알아야
- '로레알' 사례 : 영어면접과 한국어면접을 동시에 하는 이유. 영어면접만 봤더니 한국말을 못하는 사람이 많아서요(로레알 인사담당자 왈. ㅡ_ㅡ; )

13. 글로벌 시대의 한국어의 발전 방향에 대한 엔디님의 견해 (46:16)
- 한국어는 세계 최고의 언어가 아니다. 이런 생각할 필요 없다. 우월하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게 아니다. 한국인에게 가장 쉽고, 편리한 언어이기 때문에 지켜야.
- 한국인이 쉽고, 명료한 한국어로 다양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넓혀야

- '심상성 비대부 좌창'에 대한 일화.
- '서분'에 대한 일화.
- '셈틀'에 대한 일화.

- 박노해의 '손무덤'이라는 시를 통해 본 '한국어 자료들'의 문제. (정보 접근의 차원)
- 우리말을 우리말로 '번역'해야 하는 아이러니.

(이상의 인터뷰를 직접 들으실 분께서는 클릭!)




[영어교육 정책에 대한 집중 인터뷰] (괄호는 인터뷰어)


추.
엔디님과는 인터뷰가 끝난 뒤로도 약 세 시간에 걸쳐 (스카이프를 통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 )
앞으로 '책'을 주제로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책에 대한 '대담'을 진행할까 싶은데요(시기는 미정).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


추2. 다음 인터뷰 주제
다음 인터뷰 주제는 '로스쿨'입니다.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하신 ***님과 인터뷰를 진행할까 싶네요.
아직 인터뷰 일정은 잡지 못했구요.
오늘 중으로 스카이프를 통해 접선(^ ^)할 예정입니다.




일단 좀 어처구니가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시민의 꿈"을 확인하기 위해선

13만 2천원
9만 9천원
7만 7천원이 기본으로 필요하시단다.

즐겨 찾는 블로그에 갔다가 폴 포츠 내한 공연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폴 포츠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굉장히 가슴 뭉클했던 사람의 한 명으로서 공연 기획자와 관련업자들의 놀랄만한 '상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곤한 상상력에 일단 '훠큐~!' 한방 날려주고 싶은 기분이다.

물론 폴 포츠 신드롬 자체가 일종의 연예 산업 메카니즘의 오래된, 정말 지겹게 반복적으로 울궈먹는 '신화'인 '신데렐라 컴플렉스' 에 기반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 "영국판 'American Idol' 프로그램인 'British Got Talents'을 통해 휴대폰 외판원에서 성악가로 거듭난"(해당글 중) 폴 포츠도 이런 전형적인 사례에 불과하고, 해당 영국 프로그램도 이런 '신데렐라'들을 의도적으로 띄우고, 상품으로 가공하기 위한 일종의 '연예 공장' 시스템에 불과하기는 하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소시민의 꿈"이라고 홍보 표어를 만들어내면서, 13만 2천원을 요구하는 그 돌머리 기획에는 전혀 공감되지도 않을 뿐더러, 폴 포츠의 감동을 '즐기는' 방식은 '대강당'이 아니라, 유투브로도 나는 이미 충분하다(동영상은 귀찮아서 올리지 않는다. ㅡㅡ;).

폴포츠의 공연비가 이렇게 비싸게 된 건 좀 의외네요. 그를 빛나게 했던 어떤 요소들과는 굉장히 동떨어진 듯해서요. 당연히 이건 그의 탓이 아니라 국내 시스템의 문제겠지만 말이죠. 하지만 감동은 이렇게 작은 유투브 창 안에서도 전해져오네요.

- 가즈랑 , '폴 포츠 공연이 13만원이라니..."에 대한 댓글 중에서


물론 '소시민의 꿈'을 확인하는 '적절한 가격'이 있다면 좀더 투자할 생각 없지 않지만...
13만원 내라구?
공연기획자 및 관련업자들, 즐~!



* 논평 보충
공연이든 제품이든 우리나라에서 파는 것들이 합리성을 잃어가는 것 같아요. 상품을 합리적인 값에 팔지 않는다는 건 비합리적인 상품을 사기 때문일텐데, 요즘들어 이런 문제에 대한 비판 의식이나 지양적 소비 행태가 오히려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진답니다. - 칫솔



* 발아점
폴 포츠 공연이 13만원이라니...(펄)  : 관련 유튜브 동영상.





비판

2008/02/17 21:57
쉬운 일은 비판이라기 보다는 신경질, 투정, 비난이다. (말의 본래적인 의미에서) '제대로 된' 비판은 비록 어떤 구체적인 대안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기존 의미관계, 권력관계에 창조적인 균열을 가져오기 때문에 생산적이다.


0. 비판만 있고 대안이 없잖나?? 라고 볼멘 소리하는 일이 오히려 굉장히 쉽다. 그건 기존의 권력관계와 의미관계에 조력하는 일이 되기 쉽고, 좀더 부정적인 측면을 (우려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기득권과 기존 권위에 복종하게 되기 쉽고, 그럼으로써 일견 엄격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런 신중한 엄숙주의는 실은 우리를 순응적인 햄릿으로 만드는거다.


1. 일차적인 문제
(생산적인 잠재력을 갖는) 비판과 (그저 주관적인 불평불만, 컴플렉스, 짜증.. 따위일 뿐인) 비난을 구별하는 일이다.


2. 세상은 비판 작용을 통한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발전했지, 비판에 대한 신중한 태도를 통해 발전하지는 않았다. 가령 이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다음과 같은 주장에 대해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3. 물론 구체적인 '대안'까지를 마련한 비판행위는 비판의 꽃이라고 할 만하다.
이건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거기에 자신의 실존을 진지하게 투사한 어떤 의견, 비판행위는 거기에 이미 '대안'에 대한 강력한 잠재력을 품고 있는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내 부족한 체험치를 통해 말하건대.. 대부분 그런 경우가 많다.

블로그 간 비평적 작용, 논쟁과 관련해서도, 그게 '찌질'해 보이고, 비생산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게 상호간의 비판작용이 아니라, 상호간의 신경질 경연대회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상적 휴머니즘(이라는 나로선 굉장히 경계하는 감수성인)에 빠져서 "우리 서로 칭찬 좀 합시다... 그리고 제발 서로 비판좀 그만하죠"라고 하는 경우, 그 마음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칭찬과 격려, 그리고 비판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그걸 서로 반의어로 생각하는 것 자체에 그 감상적 휴머니즘의 한계가 있다.


4. 예시.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손석춘.
감놔라, 배놔라... 하는 '손석춘'의 훈수질은 비판이라고 보기는 어렵겠다. 그건 그 행위자에 대한 일반의 기대수치와 그 외적인 표지(명망성) 자체가 요구하는 비판의 요건이랄까... 그것들이 '주관적인 행위자 지표'로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에 관해서 추천할 만한 글.



* 이 글은 '이 글'의  단상들을 추고하고 보충한 글.



* 논평 보충


다 그런건 아니지만, 경험적으로 '대안 없는 비판' (혹은 '너무 이상적이라 현실성이 없는 대안')이라는 말은 대개 비판 자체를 차단하고 상대의 말문을 막는 폭력으로 작용한다. 비판적 논의에 선행하는 대안이란 없다. 그런 실용주의적 대안을 제시한 예는 아마도 나치였지. 왜 비판에 대안을 요구하는가? 나는 오히려 섣불리 대안이라고 주장하며, 대안의 환상을 심어주고 그저 따라오기를 요구하는 주장들이 더 의심스럽다.
- 에옹양, '비판 대안' 

담론적 실천 또한 그 자체로서 중요한 실천.
- 에옹양, '실천'


비판이 공허하다는 소리를 듣는 건, 비판을 받는 대상이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거나 그 대상이 속한 사회가 도덕적인 준거가 사라진 곳이기 때문이다. 실수를 지적한 자에게 할 말은 그게 실수가 아니라는 항의여야지 대안을 달라는 건 칭얼거림을 위장한 적반하장일 뿐이다.
- nova, 실수는 한 사람이 고치는 것이 맞다는 말

대안에 대해 더 생각해보면, 없는 것은 대안이 아니라 대안을 실현할 힘이거나 세력이다. '대안 없는'이라는 수식어는 기실, 비판에 붙는 것이 아니다. 대안 없는 세력, 말하자면 대안을 실현할 힘이 없는 세력이라는 조롱이다. 그러니까, 함부로 쓰지 말자.
nova, 소수자에게 주둥이까지 닥치라고 하면 잔인하잖아


블로그에서 비판글을 쓰는 것.. 댓글이든 포스팅이든..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그게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 된 것일까요?
토론문화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토론을 하면 서로의 인격은 존중하면서 의견에 대해서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상대방의 인간성에 대한 비난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또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비판=비난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요.
어렸을 때부터 건설적 토론을 하는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편입되는 가정과 학교라는 사회는 우리나라에서 토론은 고사하고 '질문'조차 하기 어려운 곳이 아닌가.. 그래서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펄, '함께 블로깅하기 - 블로깅의 민주적 가치'에 남긴 댓글

위 오래된 펄님의 글을 굳이 인용한 건, 블로그에서는 아직도 건강한 토론이, 즐거운 논쟁이, 상호간 서로 배우고, 그저 놀이로서 즐길 수 있는 '비판행위'가 무슨 성격파탄자의 그것처럼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전도되고 있거나, 그 실질이 매우 위축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토론이 없다면, 좀더 확장해서, 대화가 없다면 블로깅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