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일은 비판이라기 보다는 신경질, 투정, 비난이다. (말의 본래적인 의미에서) '제대로 된' 비판은 비록 어떤 구체적인 대안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기존 의미관계, 권력관계에 창조적인 균열을 가져오기 때문에 생산적이다.
0. 비판만 있고 대안이 없잖나?? 라고 볼멘 소리하는 일이 오히려 굉장히 쉽다. 그건 기존의 권력관계와 의미관계에 조력하는 일이 되기 쉽고, 좀더 부정적인 측면을 (우려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기득권과 기존 권위에 복종하게 되기 쉽고, 그럼으로써 일견 엄격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런 신중한 엄숙주의는 실은 우리를 순응적인 햄릿으로 만드는거다.
1. 일차적인 문제
(생산적인 잠재력을 갖는) 비판과 (그저 주관적인 불평불만, 컴플렉스, 짜증.. 따위일 뿐인) 비난을 구별하는 일이다.
2. 세상은 비판 작용을 통한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발전했지, 비판에 대한 신중한 태도를 통해 발전하지는 않았다. 가령 이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다음과 같은 주장에 대해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3. 물론 구체적인 '대안'까지를 마련한 비판행위는 비판의 꽃이라고 할 만하다.
이건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거기에 자신의 실존을 진지하게 투사한 어떤 의견, 비판행위는 거기에 이미 '대안'에 대한 강력한 잠재력을 품고 있는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내 부족한 체험치를 통해 말하건대.. 대부분 그런 경우가 많다.
블로그 간 비평적 작용, 논쟁과 관련해서도, 그게 '찌질'해 보이고, 비생산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게 상호간의 비판작용이 아니라, 상호간의 신경질 경연대회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상적 휴머니즘(이라는 나로선 굉장히 경계하는 감수성인)에 빠져서 "우리 서로 칭찬 좀 합시다... 그리고 제발 서로 비판좀 그만하죠"라고 하는 경우, 그 마음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칭찬과 격려, 그리고 비판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그걸 서로 반의어로 생각하는 것 자체에 그 감상적 휴머니즘의 한계가 있다.
4. 예시.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손석춘.
감놔라, 배놔라... 하는 '손석춘'의 훈수질은 비판이라고 보기는 어렵겠다. 그건 그 행위자에 대한 일반의 기대수치와 그 외적인 표지(명망성) 자체가 요구하는 비판의 요건이랄까... 그것들이 '주관적인 행위자 지표'로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에 관해서 추천할 만한 글.
* 이 글은 '이 글'의 단상들을 추고하고 보충한 글.
* 논평 보충
위 오래된 펄님의 글을 굳이 인용한 건, 블로그에서는 아직도 건강한 토론이, 즐거운 논쟁이, 상호간 서로 배우고, 그저 놀이로서 즐길 수 있는 '비판행위'가 무슨 성격파탄자의 그것처럼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전도되고 있거나, 그 실질이 매우 위축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토론이 없다면, 좀더 확장해서, 대화가 없다면 블로깅도 없다.
0. 비판만 있고 대안이 없잖나?? 라고 볼멘 소리하는 일이 오히려 굉장히 쉽다. 그건 기존의 권력관계와 의미관계에 조력하는 일이 되기 쉽고, 좀더 부정적인 측면을 (우려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기득권과 기존 권위에 복종하게 되기 쉽고, 그럼으로써 일견 엄격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런 신중한 엄숙주의는 실은 우리를 순응적인 햄릿으로 만드는거다.
1. 일차적인 문제
(생산적인 잠재력을 갖는) 비판과 (그저 주관적인 불평불만, 컴플렉스, 짜증.. 따위일 뿐인) 비난을 구별하는 일이다.
2. 세상은 비판 작용을 통한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발전했지, 비판에 대한 신중한 태도를 통해 발전하지는 않았다. 가령 이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다음과 같은 주장에 대해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3. 물론 구체적인 '대안'까지를 마련한 비판행위는 비판의 꽃이라고 할 만하다.
이건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거기에 자신의 실존을 진지하게 투사한 어떤 의견, 비판행위는 거기에 이미 '대안'에 대한 강력한 잠재력을 품고 있는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내 부족한 체험치를 통해 말하건대.. 대부분 그런 경우가 많다.
블로그 간 비평적 작용, 논쟁과 관련해서도, 그게 '찌질'해 보이고, 비생산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게 상호간의 비판작용이 아니라, 상호간의 신경질 경연대회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상적 휴머니즘(이라는 나로선 굉장히 경계하는 감수성인)에 빠져서 "우리 서로 칭찬 좀 합시다... 그리고 제발 서로 비판좀 그만하죠"라고 하는 경우, 그 마음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칭찬과 격려, 그리고 비판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그걸 서로 반의어로 생각하는 것 자체에 그 감상적 휴머니즘의 한계가 있다.
4. 예시.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손석춘.
감놔라, 배놔라... 하는 '손석춘'의 훈수질은 비판이라고 보기는 어렵겠다. 그건 그 행위자에 대한 일반의 기대수치와 그 외적인 표지(명망성) 자체가 요구하는 비판의 요건이랄까... 그것들이 '주관적인 행위자 지표'로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에 관해서 추천할 만한 글.
* 이 글은 '이 글'의 단상들을 추고하고 보충한 글.
* 논평 보충
다 그런건 아니지만, 경험적으로 '대안 없는 비판' (혹은 '너무 이상적이라 현실성이 없는 대안')이라는 말은 대개 비판 자체를 차단하고 상대의 말문을 막는 폭력으로 작용한다. 비판적 논의에 선행하는 대안이란 없다. 그런 실용주의적 대안을 제시한 예는 아마도 나치였지. 왜 비판에 대안을 요구하는가? 나는 오히려 섣불리 대안이라고 주장하며, 대안의 환상을 심어주고 그저 따라오기를 요구하는 주장들이 더 의심스럽다.
- 에옹양, '비판 대안'
담론적 실천 또한 그 자체로서 중요한 실천.
- 에옹양, '실천'
- 에옹양, '비판 대안'
담론적 실천 또한 그 자체로서 중요한 실천.
- 에옹양, '실천'
비판이 공허하다는 소리를 듣는 건, 비판을 받는 대상이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거나 그 대상이 속한 사회가 도덕적인 준거가 사라진 곳이기 때문이다. 실수를 지적한 자에게 할 말은 그게 실수가 아니라는 항의여야지 대안을 달라는 건 칭얼거림을 위장한 적반하장일 뿐이다.
- nova, 실수는 한 사람이 고치는 것이 맞다는 말
대안에 대해 더 생각해보면, 없는 것은 대안이 아니라 대안을 실현할 힘이거나 세력이다. '대안 없는'이라는 수식어는 기실, 비판에 붙는 것이 아니다. 대안 없는 세력, 말하자면 대안을 실현할 힘이 없는 세력이라는 조롱이다. 그러니까, 함부로 쓰지 말자.
nova, 소수자에게 주둥이까지 닥치라고 하면 잔인하잖아
- nova, 실수는 한 사람이 고치는 것이 맞다는 말
대안에 대해 더 생각해보면, 없는 것은 대안이 아니라 대안을 실현할 힘이거나 세력이다. '대안 없는'이라는 수식어는 기실, 비판에 붙는 것이 아니다. 대안 없는 세력, 말하자면 대안을 실현할 힘이 없는 세력이라는 조롱이다. 그러니까, 함부로 쓰지 말자.
nova, 소수자에게 주둥이까지 닥치라고 하면 잔인하잖아
블로그에서 비판글을 쓰는 것.. 댓글이든 포스팅이든..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그게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 된 것일까요?
토론문화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토론을 하면 서로의 인격은 존중하면서 의견에 대해서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상대방의 인간성에 대한 비난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또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비판=비난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요.
어렸을 때부터 건설적 토론을 하는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편입되는 가정과 학교라는 사회는 우리나라에서 토론은 고사하고 '질문'조차 하기 어려운 곳이 아닌가.. 그래서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펄, '함께 블로깅하기 - 블로깅의 민주적 가치'에 남긴 댓글
그런데 왜 그게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 된 것일까요?
토론문화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토론을 하면 서로의 인격은 존중하면서 의견에 대해서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상대방의 인간성에 대한 비난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또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비판=비난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요.
어렸을 때부터 건설적 토론을 하는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편입되는 가정과 학교라는 사회는 우리나라에서 토론은 고사하고 '질문'조차 하기 어려운 곳이 아닌가.. 그래서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펄, '함께 블로깅하기 - 블로깅의 민주적 가치'에 남긴 댓글
위 오래된 펄님의 글을 굳이 인용한 건, 블로그에서는 아직도 건강한 토론이, 즐거운 논쟁이, 상호간 서로 배우고, 그저 놀이로서 즐길 수 있는 '비판행위'가 무슨 성격파탄자의 그것처럼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전도되고 있거나, 그 실질이 매우 위축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토론이 없다면, 좀더 확장해서, 대화가 없다면 블로깅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