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소녀와 뻥구라닷컴

2008/10/24 07:14
댓글 소녀는 뻥구라닷컴 사이드바 맨 꼭대기에 있다.
댓글 소녀는 눈과 얼굴이 대따 크다.
댓글 소녀는 그 커다란 눈망울을 글썽거리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리플 하나 쓰는게 그렇게 어려워?"

댓글 소녀는 이렇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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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어제 뻥구라닷컴에서 댓글 소녀를 업어와 사이드바에 달려고 했었다.
두 가지 목적.
ㄱ. 하나는 댓글 소녀 본연의 목적인, 댓글 좀 달아주소. 이런 거랑.
ㄴ. 거기에 뻥구라닷컴 주소를 경로로 심어서 추천 블로그 홍보(?)랄까 뭐 그런 걸 하려는 목적.

그래서 영화블로그로 쓰는 티스토리에 그림 저장하고 그림 주소 따와서 경로는 뻥구라닷컴으로 해서 사이드바에 잠시 설정했었는데, 계속 '엑막'(엑스마크. 맞나?)이 생기는 바람에 지워버리고 말았다. 이 엑막은 왜 생기는 건지.. 컴사양이 떨어져서 그런건가?

뻥구라닷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블로그 가운데 하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진보의 엿같은 어려움에 대해 썰을 풀었던 글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소위 '국개론'적 상황의 어려움, 그 딜레마다.
나는 이 말 굉장히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감정이 들 때는 많다, 솔직히.

지금 궁금해서 찾아봤다.
내가 '계몽 혹은 소통의 딜레마'란 글에 인용했던 글이구나.
그 글은 진보의 재구성? 이란 글이다.

폐지를 주워 하루를 먹고 살면서도 투표에서는 한나라당을 찍고 나중에 정치하는 놈들은 다 똑같다고 하는 그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들조차도 우리의 한 일부이고 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 할 사람들임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이상이다. 진보가 그래서 어려운 거다.

- 행인,
진보의 재구성?



* 발아점
진보의 간지에 대한 단상 (capcold)
 : 원래는 이 글(과 허지웅의 글)에 대해 나도 아주 짧은 단상 하나 쓰려다가 뻥구라닷컴이 연상되서리 뻥구라닷컴의 댓글소녀를 불러오게 된 것 같다. 아주 작은 단위의 의미 공동체들의 총체로서의 진보 모델을 나는 떠올렸다. '간지 모델'은 굉장히 현실적인 모델이면서 위태로운 모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건 성공이라는 '이데올로기'(이건 정말 하나의 이데올로기인데)에 대한 재구성(혹은 발전적인 해체)과는 어울리지 않는 편승, 순응모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성공한 놈들의 속성은 어쩔 수 없이 '보수적'이다. 그것은 그저 스타일이 아니라, 권력이 작용하는 운동원리 같은 거.. 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생각이 꼬이니까 이건 나중에 써야겠당.

* 또 다른 발아점
두고두고 읽고 싶은 블로그_1.소개 (J준)
 : 진보 간지에 대한 글이 물론 발아점은 맞는 것 같은데, 그 직전에 J준의 위 글을 다시 한번 읽었다. J준은 적극적으로 동료 블로그들의 글을 읽고 또 소개하는데, 이런 역할은 정말 의미있는 것이다. 블로그가 자기 발전적 동력을 만들어가는 이상적인 방법은 스스로 서로에게 비평가 역할을 수행하는 길이다. 좀 식상(까지는 아니겠지만)할 정도로 강조해왔지만, 블로거는 블로그 리뷰어가 되어야 한다. 이건 두 가지 의미다. 하나는 이 리뷰를 통해서 좋은 블로그들이 시스템 종속적인 '거대 중심'으로 휩쓸려버리거나 소외되지 않고, 살아남게 된다. 그런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블로그는 그저 구모델의 중심지향적인 유통모델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 리뷰들을 통해서 상호 의미있는 교류와 토론이, 궁극적으론 대화가 활성화된다. 블로그는 관계적인 모델인 거다. 물론 이건 블로그를 일기장용도로 쓰더라도 변하지 않는다.

*  추천 블로그 : 뻥구라닷컴



* 쓰다가 만 밀린 글 마저 쓰기 차원.




0. 이 글의 문맥을 좀더 풍부하게 이해하려면 다음 글들을 읽으시길 권합니다.

싱글맘이었던 최진실 (foog)
최진실 법에 대한 한 중앙일간지 기자의 의견에 대해 (펄)
최진실과 한국의 이혼녀 차별 (이승환)

타임지의 왜곡된 최진실 보도 (송원섭)


이 글은 송원섭의 위 글을 비판하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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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수나 조롱하기


컬럼니스트 본명 박수나씨 맞구요
컬럼 쓸 때 닉네임을 이용하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은 안됩니다.
여권에 있는 정확한 영문이름을 quote 해야하기 때문에 기사에 본명이 나간 겁니다.거기에 대한 논란이 많기에 적고 갑니다. (송원섭의 글에 있는 댓글)

송원섭은 '박수나'라는 어떤 (아마도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은, 혹은 그럴 확률이 높은, 또는 따로 필명이 존재하는) 연예 칼럼니스트이자 한 한국주재 외국 언론사 기자의 정보원을 그가 명망이 없다는 이유로(혹은 명망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조롱하고 있습니다.

박수나의 의견을 비판하고 싶다면 그 표현된 발언(텍스트)에 대해 자신의 의견과 논리로써 비판하면 됩니다. 박수나가 유명하거나 유명하지 않거나, 글을 일기장에 쓰거나 쓰지 않거나, 그걸 궁금해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이건 정말 유치하고 반교양적인 태도입니다.

행위와 행위자를 구별하자는 것. 이것은 상식 중에서도 상식이지요. 표현된 발언에 대해서 자신이 해석한 그 표현의 무게와 부피에 비례해 그것에 대해 나름으로 견해와 근거를 갖고 비판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송원섭 스스로도 블로깅을 하면서 경험했을 법한 '당신은 악질적인 수구 꼴통 신문사 찌라시 스포츠지 기자잖아'라는 식의 공격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보다 더 유치하고, 저열합니다. 왜냐하면 박수나가 유명하고 말고는 그 박수나의 선택사항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더욱 확인된 사실도 아니구요(박수나가 실명이고, 필명이 따로 존재한다면요).

박수나의 의견이 아닌 박수나에 대한 외부적 권위부여의 부피와 무게로 그 박수나의 의견을 평가한다면 이것은 정당한 비판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태도를 취함으로써 '박수나'를 모욕하려는 의도가 성취되는 것은 별론으로, 스스로의 인격을 모독하게 됩니다. 인간 존중에 대한 감수성 결핍이 스스로에 대한 모욕이 되는 까닭은 인격과 존중은 대상적이지 않고, 관계적이기 때문입니다.

철없는 독자들은 그런 유치한 새디스트 놀이에 동참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함께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적인 성취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인격적으로 처참해지는 것입니다. 시장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인생 불쌍해지거죠. 정말 진심으로 말씀 드리건대, 스스로를 모욕하는 태도입니다. 인격적인 자살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성숙한 초딩들도 하지 않을 법한 '너 유명해?' 라는 식의 조롱을 하다니요.

송원섭은 왜 최진실법?(행인)을 찬성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적어도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취지는 사람은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아닌지요? 그런데 이런 태도를 취하면서 최진실법의 그런 대외적인 당위를 설파하는 모습은 코믹하고, 아이러니합니다.

제가 과장하고 있거나(물론 반복이 과장이라면 과장이 맞겠지만 이건 빼구요), 혹은 제 발언의 논거에 오해나 착오가 있다면 이 글을 읽는 누구든지 밝혀주시고, 제 오류를 지적해주시길 원합니다.

이 문제는 이쯤하구요.


2. 사실과 의견

이 부분은 위 이승환의 글과 그 글의 댓글을 살펴주시면 좋겠는데요.
특히 이 댓글(이하)이요.

http://www.realfactory.net/750#comment1488807

송원섭의 논리적인 오류 혹은 하나의 주제에 대한 논리 일관성 결여는 매우 심각한 지경입니다.
송원섭은 자신의 최진실 관련글에서 최진실의 자살이 악플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확신의 물적 근거, 과학적 근거는 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저 정황만이 있을 뿐입니다.

http://isblog.joins.com/fivecard/167 (송원섭)

위 글은 한국 감독 네트워크 성명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곧바로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최진실법'의 추진 움직임이 정치권의 화두가 됐습니다. 물론 어떻게 해도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이번 사건이 통칭 사이버 모욕죄의 등장에 도움이 된다면, 그나마 값진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송원섭)

정보통신망법의 보강 규정이 될지(사이버 모욕죄), 아니면 사이버 모욕죄를 아우르는 실명제 강화 법률로 일명 최진실법?(행인)이 통합적으로 마련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법률은 정말 만들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공권력의 자의적인 확대를 막고,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형법제도는 발전해봤습니다. 이걸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에 다름 아닙니다. 자율적인 자정능력, 대화와 토론의 가치를 고양시키는 방법론을 모색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렇게 한 연예인의 죽음에 일반 대중의 감정적인 연민을 극단적으로 조장해서 그것을 빌미로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국가공권력의 근거 없는 확대에 찬성하는 식으로 논리를 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런 발상은 정말 앞뒤가 뒤바낀 것입니다.

ㄱ. 악플에 대한 개념은 무엇입니까?
ㄴ. 법안 마련을 위한 악플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가 존재한 적은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연구결과를 저에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ㄷ. 거의 완전 실명제를 유지하고 있는 싸이월드에서 각종 악플문제와 명예훼손이 문제되는 이유는 어찌된 것입니까? (
싸이월드 게이 비방 사건 등 참조)
ㄹ. 이 법안이 마련된다고 할 때, 이 법안으로 인해 위축되는 표현의 자유, 잠재적인 자기 검열 심리, 이런 반문화적인 환경는 이 법을 통해 잠재적으로 구제가능한 이익과 비교형량할 수 없을만큼 보잘 것 없는 것입니까?

송원섭의 글을 좀더 인용해보죠.

남자 A, 남자 B의 뒤통수를 친다.
B: 왜 때려?
A: 자유야.
B: 뭐?
A: 나한테는 너를 때릴 자유가 있어. 이제 해방됐으니 자유야.
B: 뭐가 어쩌고 어째. 오냐. 그럼 이 방망이로 너를 패는 것도 자유지? 맛좀 봐라.

이 엉성하기 그지 없는 가정적 사례가 뭘 말해주는건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송원섭은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이야기하기 위해 과장된 상상력의 나래를 펴는데, 자기 책임의 원리를 강화하기 위해서 현재로도 이미 충분히 강압적인 인터넷 실명 관련 제도를 논할 것이 아니라 천박한 찌리사즘의 무책임한 태도를 반성하는 일이 언론인으로서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 책임의 원리는 엄격한 그 책임 범위의 설정을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증권사 여직원, 악플러.
이 사람들 어떻게 처벌해야 합니까?
자살 방조범으로 처벌할까요?

그 마음은 이해합니다. 최진실이라는 사랑스런 상징을 빼앗아 간 악당을 응징하고 싶은 그 심리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위험한 태도입니다. 지난 역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1935년 히틀러 하의 독일은 독일 형법 2조를 개정합니다. 거기에 "건전한 국민감정에 반하는 행위는 법률의 규정이 없어도 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죠. 물론 산파 노릇을 한 것은 나치라는 독재권력입니다. 하지만 산모 역할을 한 것은 대다수의 독일국민들입니다. 그들 스스로 이런 대중심리와 법제도를 맞바꾼 것입니다. 썸뜩하지 않은지요?

자살 사건에 대해 인간적인 연민을 보내는 것과 그 연민의 반대급부로 한 희생양을 선택해 집단적인 방식의 폭력을 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거기에 더해 그런 강압적인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 최진실의 죽음에 안타까워 했던 그 최초의 연민, 그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 초래할 수 있는 가장 비이성적인 귀결입니다. 좀더 고민하고, 좀더 대화해야 하지 않을는지요? 일방적으로 선동하고, 그렇게 감정에 취해서 악당을 무찌르자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공권력에 순응화된 생각할 수 없는 대중들을 길러낼 수 밖에는 없습니다. 물론 그 감정이라는 껍데기 안에는 교활하고, 음흉한 정치권력과 지식권력, 그리고 자본권력이 여전히 그렇게 작동할테구요.

악플이 무의미하다면, 그 악플의 무의미성을 확대하는 방법론을 모색해야 맞지 않을는지요? 그런데 현재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악플 때문에 국민들이 온통 자살할 것 같은 과장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정치권력과 기성 기득권 언론(특히 온라인 담론 권력과 적대적인 긴장에 선)이 담합합니다. 그 담합은 자기책임 원리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살'에 '정당성'를 부여하는 자기 모순적 행태인 것입니다.

악플의 무의미성을 극적으로 반전시켜서 악플이 자살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되는 것처럼 사회성원들을 현혹합니다. 이제 우리들은 스스로 잠재적인 범죄자로서, 그리고 닥쳐올지 모르는 암흑의 적에게 희생될 예비 피해자로서 존재하게 됩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어떤 사회이든, 어떤 문화이든 간에 극소수의 똘아이들은 존재합니다. 그런 극소수의 똘아이를 잡기 위해 시민사회 전체의 잠재적 자율성을 위축할 수 있는 형벌적 수단을 가장 먼저,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양 이야기하는 것은 상식적입니까? 전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최후로 논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기존의 법제도로도 충분히 대응이 가능합니다. 오히려 법제도의 문제가 아닌, 시민사회와 담론 생산 집단의 책임의식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책임의식을 법제도가 '강요'할 수 있다는 그 발상은 정말 한심합니다.

송원섭은 실증적인 혹은 논리적인 설득력을 갖는 이성, 그것도 아니라면 고민이 담긴 성찰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감정적인 대중심리에 호소합니다. 한 사랑스런 상징의 죽음에 독자들의 연민이 투사되고, 그 투사된 감정이 다시 정치권력의 에너지원으로 작동하기를 원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송원섭이 이승환의 글에서 지적했던 '사실'과 '의견'의 구별이라던가, 사회학적인 가치가 존재하는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라든가 하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즉 송원섭의 논리구조는 이렇습니다. 자신이 자신의 '꼴림'에 반하는 글을 공격할 때는 이성에 호소하고, 냉정한 사회과학의 근거들을 제시하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인식'을 근거 삼아 의견을 주장하고, 그 '인식' 때문에 최진실이 자살했다고 확신하는('믿음'이죠) 글을 씁니다. 악플은 마치 모든 문을 열수 있는 황금 열쇠가 된 것 같습니다. 코미디인 것입니다. 송원섭에게 '인식'이란 진지한 이성과 감성의 성찰 뒤에 얻어진 깨달음과는 전혀 관계 없는 대중심리와 선동도구, 그리고 정치 역학의 절묘한 결합에 불과합니다. 이건 그가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그렇습니다.

송원섭 글에 악플에 대한 사회학적으로 유의미한 통계나 사실확인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냥 삘 가는데로, 땡기는데로 최진실은 악플 때문에 죽었고, 악플을 때려 잡아야 한다는 '신념'에 차 있을뿐입니다. 그토록 근거와 사회과학적 실증을 강조하는 송원섭이 그 자신은 신념으로써 선언하고, 선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역설적입니다.

그러니 이승환 글, 즉 최진실 사건의 또 다른 사회적인 원인인 이혼녀(에 대한 인식)에 대한 (상대적으로 신뢰도 높은) 조사결과에 바탕한 지적을 '사실'이 아닌 '인식'의 문제라고 비판적으로, 무슨 훈장처럼 지적하는 점은 이해가 안됩니다.


3. 사이비 오리엔탈리즘

송원섭은 외국 언론의 최진실 보도를 비판하면서(이 비판은 물론 지극히 자의적이고 감정적인 비난에 가까운데요) 뜬금없이 오리엔탈리즘을 언급합니다. 타임지의 보도태도가 "오리엔탈리즘의 샤워가 다 씻기지 않은 듯" 하다고 지적하죠.

정말 엉뚱한 곳에서 오리엔탈리즘이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초딩급으로 유치한 반문을 해보자면 송원섭이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제대로 읽어보긴 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물론 반드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읽어야만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전혀 아니지요.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오리엔탈리즘의 샤워"라는 지적은 의미없는, 허무에 가까운 권위의존적 수사, 장식적 수사에 불과합니다.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을 쓴 취지는 아마도 송원섭이 오리엔탈리즘을 원용한 그 반대의 취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건 해석의 문제이고, 오리엔탈리즘의 방법론과 관점으로 어떻게 현상을 바라보는가하는 구체적인 문제입니다.

송원섭은 과학적으로, 실증적으로 전혀 확인되지 않은 악플을 자살의 원인으로 확정하고, 거기에 더해 감정적이고, 대중적인 연민과 그 연민의 반대급부로서의 폭력적 성향을 정치적인 선동에 결합합니다. 그리고 그 선동 담론이 위협당한다고 생각하자 그것에 저항하기 위해, 항변하기 위해 오리엔탈리즘을 민족적인 정서에 바탕해서 언급하고 있죠. 하지만 이는 사이드의 취지와도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을 방법론적 비판틀로 사용하는 입장과도 정반대의 관점으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인식틀을 오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리엔탈리즘 자체에 대해선 아래 글을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http://www.minoci.net/32
http://www.minoci.net/286

사이드는 (물론 저자의 취지를 가정적으로 추출해서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차이 혹은 다름이 차별, 혹은 위계적이고, 억압적인 권력 작용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되며, 차이에 바탕한 조화와 공존,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성의 비판적 통찰, 이성적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그 방법론이란 지식과 권력의 담합관계를 '언술(담론)'의 형태로 추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확하게 송원섭의 글이 정치권력의 역학과 결합하는 그 방식의 정반대 지점에 속하는 것이죠.

극단적인 감정적인 폭주와 배타적인이고, 감상적인 민족주의의 과잉(우리나라 부끄럽다 류, 혹은 그 반대), 혹은 전도된 변주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의 내면화는 오리엔탈리즘을 인용하면서 오히려 그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4. 실증과 체험, 그리고 진실

아래 인용한 댓글은 송원섭 글에 어떤 분이 남긴 자신의 솔직한 체험담입니다. 이것은 사회과학의 씨앗이 될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사회과학은 아닐테죠. 이것이 일반적이거나, 객관적인 진실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에는 송원섭이 강변하는 사실과 근거, 의견과 책임 등을 모두 떠나 그저 소박한 체험자로서의 '진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소박한 고백이 담고 있는 진실은 어떤 이름으로 불려지고, 어떤 의미로 평가받는 간에 저는 충분히 존중해야 하는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둘을 혼자 기르는 싱글맘입니다

전 어느정도 공감하는바입니다.
고최진실씨가 한가지이유로 자살했다고는 생각하지않구요.성장과정부터 이어져온 불행한 가정사와 각종스트레스로인한 우울증에 기름을 끼얹어온 각종루머등이 얽혀서 그런 결과를 낳았다고생각합니다.

어쨌든..최진실씨측근들도 말하듯이 그녀가 항상 양육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괴로워했다고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엄마혼자..아이둘을 기르는게 어떤건지 아시나요?
그녀가 톱스타라고해도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날순 없답니다.
이건 겪어보지않은 사람은 알수없어요.
그녀의 아이들이..만5.7세라고하죠.
그녀가 죽기전 운동회에 가기싫다라고했다죠.
그게 비단 루머때문만은 아니었을겁니다.
아이들 운동회에 가보셨나요?
유치원이건.학교건..모든 프로그램보셨나요?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는 가정의 아이들은 참여하는것조차 쑥스러울정도랍니다.
물론 이런것에 의연할수도있겠죠.
하지만..이제 어린 아이들에게 기대하긴 힘든 부분입니다.

전체 유치원에서 나혼자.전학교에서 10명도안되는 아빠(혹은 엄마)없는 집.그리고 은근한 시선들을 느끼는 10세미만의 아동에대해 생각해보셨나요?
이건 운동회만 예를든것이고..생일잔치.학교모임.부모참여..모든부분에 해당합니다.
(홀가정이 많이 몰려있는 지역도있어요.하지만.최진실씨처럼 어느정도 경제수준을 이루고있는 지역에서는 솔직이 드뭅니다.제가 살고있는곳도 마찬가지구요.유치원통틀어 홀가정은 한집뿐이었으며.인근 초등학교도 비율상 마찬가지상황입니다.)

아이를 버리고가는 엄마들도있지만.그녀처럼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엄마들에게 자식이 그런상처를 받으며.때론 울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건 정말 고통입니다.

또한 그녀가 조성민과 파경을 맞았을때.
조성민측으로부터 아무런 양육지원을 받지못한채 5년넘게 흘러 성변경을 했을때 그녀에게 한꺼번에 쏟아진 지탄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셨나요?

제가보기엔..타임기사에 잘못된 부분은 없어보이네요.

- 기사 맞습니다. (
송원섭 글에 대한 논평)





* 관련글
최진실 일발 장전. http://minoci.net/612
최진실 자살 단상 : 악플과 찌라시즘 그리고 희생양. http://minoci.net/617
숭고한 사회의 악당들 : 사이버 모욕죄와 나경원법. http://minoci.net/621


* 관련 추천글
최진실법?(행인) : 내가 읽은 최진실 사건에 대한 글 중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글


* 이글 제목과 주소
송원섭, 박수나를 조롱하다 : 자기배반과 사이비 오리엔탈리즘. http://minoci.net/635





1. 미디어스에서 전화가 왔다.
일주년 이벤트로 언론계 최고의 진상을 뽑는 설문조사를 하는데 홍보용 배너를 사이드바에 달아주면 고맙겠다,  뭐 이런 내용. 아마도 일주년 기념 기고를 했던 인연으로 작은 부탁을 한 것 같다. '메일로 이야기해도 충분한데 직접 전화까지 하시고...' 뭐 이런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암튼 그 취지에 기꺼이 공감하는 바 있어서 배너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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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바 상단에 29일까지 달릴 '미디어 진상 투표' 홍보용 배너의 모습이다.
디자인에 대해선 뭐랄까, 약간 지나치게 투박한(^ ^;;) 맛이 없지 않지만...

취지에 공감하고, 관심있는 블로거들께선 아래 코드를 코드용배너로 삽입하면 되시겠다.
(가로 세로 : 175 * 100 사이즈)

<div align="center">
<a href="http://www.mediaus.co.kr/poll/pollView.html?idxno=12" target="_blank">
<IMG src="http://sub.mediaus.co.kr/images/jinsang_175_100.jpg " class="noborder">
</a>
</div>


2. 그리고 좀전에 직접 단 배너를 눌러서 투표하고 왔다.
투표 게시판의 모습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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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해직 사태를 생각하면 당연히 구본홍에 한표를 던져야겠으나, 이똥관씨의 구수한 망언들은 너무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라서, 나는 이동관과 신재민에게 한표 던졌다.

그런데 실은 나는 비교적 기성 저널리즘에 관심이 많은 블로거로 (사람들에게, 독자들에게) 인상지어진 블로거임에도 불구하고 이 투표지(?)를 받아 보고 나서 이 인물들에 대한 내용파악이 명확히 머리 속에 그려지지는 않더라. 그런 무지를 고백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건 물론 아니고, 그렇다면 이 투표 대상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이 투표게시판에서 링크로 제공해주면 좋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으로 글을 쓰는거다.

그러니까 미디어스 해당 기사 중에서 '최시중'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기사는 최시중에게 링크를 설정하고, 구본홍과 YTN사태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기사는 '구본홍'에게 설정하는 식으로 투표 참여자에게 최소한의 정보를 제시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렇게 하면 미디어스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벤트를, 더불어 자신의 기사를 자연스럽게 알림으로써 더 나아가 저널리즘 철학과 관점을 좀더 효과적으로 피력하는 일석이조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거다.


3. 그래서 관련기사 대충 찾아봤다.
(이하 프레시안과 미디어오늘 해당 기사 제목 혹은 문구들을 발췌 요약)

최시중 관련 기사

"좌파 방통정책 정상화 위해 최시중 필요"(한나라 안상수 왈) (2008-03-04. 프레시안)

1988년 동아일보 정치부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대통령에게 의회해산권을 주는 개헌론을 적극 지지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과 골프회동을 갖는 등 권력 유착 행적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2008-03-07. 프레시안)

17일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에서 열린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스케치, 각종 의혹에 "모른다" 일관 (2008-03-17. 프레시안)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공개 석상에서 KBS 정연주 사장 교체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또 후임 KBS 사장 인선에 개입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예상된다. (2008-08-06. 프레시안)

KBS 사장선임 과정에 사실상 청와대가 개입했음을 보여준 'KBS 대책회의' 논란은, 최시중 위원장이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시나리오의 총사령관임을 다시 한번 확인케 했다.  (2008-08-25. 미디어오늘)

최시중 "경향 KBS 회의 기사, 대다수가 작문" (2008-09-10. 미디어오늘)

'민영방송이 조종하기 쉽다'는 말에 동의하는 발언. 지난 10일 방통위의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업무현황 보고에서 "민영(방송)이 외려 (공영방송보다) 정부가 '조종'하기는 더 쉽지 않냐"는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의 질문에 "어떻게 보면 그런 측면이 있다"고 답변했다. (2008년 09월 11일. 미디어오늘)

YTN 개입의지 피력 관련 YTN노조 비판성명 (2008-09-16. 미디어오늘)

최시중 "오해다…아니다…기억에 없다" : 민영방송 조종 쉽다 동의 발언 관련. (2008-09-18. 미디어오늘)

민주당 원내대표가 ‘최시중 인적 청산’을 다짐한 당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일부 의원들은 ‘부적절한 만남’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서울의 유명 한정식집에서 최시중 방송통신 위원장과 민주당 의원들의 ‘만찬’이 진행. 전병헌, 이종걸, 장세환, 서갑원, 변재일 참석. 조영택, 천정배, 최문순은 불참. (2008-10-01. 프레시안) (2008년 10월 02일. 미디어오늘)

방송통신위원회가 오는 10일 전체회의에서 지상파 방송과 보도 및 종합편성 채널사용사업자(PP)에 대한 대기업 진입제한 기준을 현행 3조 원에서 10조 원으로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상정하고 의결할 것인지 주목 (2008년 10월 09일. 미디어오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임기 중에 구본홍 YTN 사장을 공적 업무 외에 만난 사실을 시인했다. (2008-10-09. 미디어오늘)

지난 6개월 동안 32차례 회의를 열면서 다룬 안건 194건 중 193건을 최 위원장이 제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8-10-09 . 미디어오늘)

최시중 위원장·유인촌 장관 위증 논란 : 최문순 의원(민주당)은 "유 장관과 최 위원장이 앞선 국감에 출석, 민영 미디어렙 도입 여부까지 포함한 방안을 내년 말까지 마련하겠다고 한 발언과 다른 내용의 선진화 방안이 발표됐다"면서 "이는 위증에 해당한다"고 성토했다.  (2008년 10월 10일. 미디어오늘)

과도한 업무추진비. 6개월간 총 6천여만원 사용. (2008-10-10. 프레시안)


이병순 관련

"KBS저널리즘에 대한 청부살해 사건" (2008-09-19. 프레시안)


YTN 사태 : 구본홍 관련

YTN은 ‘YTN 국감’을 생중계 하지 않는 것이 자사의 이익이라는 ‘황당 논리’를 내세우기도 했다. 10일자 아침신문 역시 사설을 통해 이명박 정부 언론장악의 문제점을 질타한 언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 문방위 국감 보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조선일보 기사였다. 조선일보는 기사의 절반 가까이를 고흥길 문방위원장의 ‘청심환’에 할애했다. (2008-10-10. 미디어오늘)


이명박 언론정책 전반

'말보다는 주먹', 이명박 정부의 언론통제 100일 (2008-06-04. 프레시안)



4. 기사 클릭질 하다가 지쳐서.. (역시나 게으르니즘이 발동하는구나 ㅡ.ㅡ; )
편법으로다가 구글링 링크만 남겨본다.

아, 그런데 각 언론사닷컴들에서 '최시중'을 검색해봤더니 최시중에 특화된 검색주소가 생성되는게 아니라 그냥 아래와 같은 식의 심플한(?) 검색주소가 뜬다. 미디어오늘도, 프레시안도, 미디어스도, 인터넷한겨레도, 경향닷컴 마찬가지다. 이건 좀 문제가 있는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List.html (미디어스 경우)
http://search.hani.co.kr/ (인터넷 한겨레 경우)

이건 언론사닷컴에서 '주제어'(검색어) 단위 묶음 기사들을 링크로 활용하고 싶어도(주로 블로거들이 그럴텐데) 이걸 활용하기 어렵다는 걸 의미한다. 가령 '최시중'을 포함한 기사 묶음 주소를 링크로 걸고 싶어도 전혀 걸 수 없다.

물론 구글을 우회하면 가능하다(ㅡㅡ;;). 그런데 구글을 우회하는 기사 묶음 링크들도 가장 강력한 정보가 함축된 제목이 링크 설정되는 게 아니다. '프레시안' '경향닷컴' '미디어오늘'의 경우엔 제목 대신 각 언론사명이 제목으로 링크 설정된다. 이것도 좀 (많이) 아쉽다. 각 개별 기사 제목이 설정되는 건 '미디어스'와 '인터넷한겨레'다.

암튼, 각설하고, 프레시안, 미디어오늘, 미디어스, 인터넷한겨레, 경향닷컴에서 미디어스 선정(?) 언론 10적(실은 7명 + 5개 집단) 관련 기사 모음 링크들을 걸어본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미디어스  
프레시안 
미디어오늘 
한겨레 
경향














관심있고 시간 허락하시는 독자들은 위 링크들을 눌러보고 대~충~ 그 언론 십적들의 활약상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활약상이 너무도 눈부시다.



추. 가만히 생각보내 '투표'라고 하는데, 진행경과를 뻔히 보여주는 것도 좀 이상하다.
뭐, 재미삼아(?)하는 성격이 강해도 좀...

추2. 제목은, 물론, 김지하의 오적(五賊)을 차용(?)한건데, '적'을 '適'(왠수)로 할까, '賊'(도둑넘)으로 할까 살짝 고민하다가 그냥 왠수로 했다.



* 관련 추천글
2008 언론계 최고의 진상을 뽑아주세요 캠페인 (미디어스) (capcold) : 언론 십적을 단 몇 줄로 정리하는 탁월한 촌철살인의 엑기스 논평.






요 직전 포스트로 '훈훈한 올블 서비스 장애 안내문'이란 글을 썼다.
이 글에도 당연히 믹시 믹스업단추가 글 하단에 상자로 있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Endless9님외 1분이 mixUP해 주셨습니다" 바로 오른편 화살표를 누르면 내 글을 추천한 독자(이자 대개는 블로거일)들의 명단을 알 수 있다(뭐.. 이런 설명까지... 라는 생각이 문득... ). 자주 그러는 건 아니지만, 가끔씩 내 글에 어떤 분이 추천을 했을까 싶어 그 화살표를 누르곤 한다. 괜히 폼으로 있는 화살표는 아니니까. 특히나 추천이 적은 경우엔 더 고마운(?) 마음이 생겨서 그러는데... ㅎ

위 글 화살표를 눌러봤더니 이런 팝업메시지가 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나는 이 글을 삭제한 적이 없다.

시스템 오류인건가?
암튼 믹시 사용자 피드백 차원에서 간단히 포스팅한다. ^ ^




0. 지난 주 화요일(10월 14일)
'정보문화 교육을 위한 전문가 자문회의'(행정안전부 3층 회의식) 참석 후기.

이 글은 그저 기억이 허락하는 잔상과 그 잔상에 연원한 연상의 편린들일 뿐이다.



1. 참석자

참석 블로거는 다음과 같다.
링크 http://soriweb.com
엔디 http://endy.pe.kr/
필로스 http://philomedia.tistory.com/
그리고 나.

정부 참석자는 다음과 같다.
이윤숙(행정안전부 사무관)
한상필(한국정보문화진흥원 팀장)
김상준(한국정보문화진흥원 선임연구원)

그리고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은 약칭 'KADO'라는 곳은 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행안부 소속의 연구기관(?)인 것 같다.

여기 : https://www.kado.or.kr/


2. 전문가 자문회의..

나 스스로를 한번도 블로그 전문가(?)로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이런 회의 명칭은 뭐랄까, 그저 행정관청의 문건에 사용되는 형식적 명칭이긴 하겠지만...

'내가 전문가야?'

속으로 묻게된다.
물론 결론은 쥐뿔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괜히 어깨가 으쓱되기도 하는 그런 유치한 속물근성도 생겨난다.

그러니까 속으로 좀 웃기다.
물론 그 자문회의가 웃기다는 게 아니라, 나를 초대한 그 호의가 웃기다는 게 아니라, 그 사소한 명칭이 내 마음에서 만들어내는 그 풍경들이 재밌다.

언제 어른될래?
이런 생각이 드는거다.
그런데 나는 이미 어른이다.
슬프지만 진실.

아, 나는 정말 어떤 것에 대해서 '전문가'로 불려지는게 낯설거나 스스로 웃기지 않을만큼 열정과 그 열정에 비례한 어떤 성취를 얻을 수 있을까..

자괴감, 게으름에 대한 지겹다고 말하기도 지겨울만큼의 반성...
이런 것들 따위가 겹쳐진다.

언젠가 필벗 데카(주:
제가 읊조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말이 아니라 강유원씨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밝혀두어야겠습니다. 오래 되어서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정확한 표현도 저게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데카의 댓글 논평 )가 읊조린 어떤 문구가 떠오른다.

"나를 알아준다는 느낌,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인..."

그건 자주 스스로를 마비시키는 독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3. 이명박 정부의 공무원  

김상준 선임연구원이 메일로 처음 연락을 해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한 지인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다고 하더라.

이명박 정부의 정부 직속기관인 '정보문화진흥원'에서 블로거들의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그 취지가 참신했다.

하지만 그런 최소한의 대화 이전에 가장 즉각적으로 든 생각은 이런거다.

이게 뭥미?

괜히 들러리로 활용되는거 아닌가, 혹은 생색내기에 이용당하는 거 아닌가, 뭐 그런거 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드는 생각.
이것도 요즘 유행하는 '블로거 인플레'와 상관이 있는건가?

이런 마음..
이런 의심..

하지만 김상준 연구원이 메일을 통해 전해준 취지와 통화를 하면서 느끼게 된 직관들은 최소한의 신뢰를 갖기에 족했다.

만에 하나 이 회의가 이명박 정부에서 여전히 공무원으로 생활해야 하는, 그래서 국가정책을 지지해야 하는 (언젠가 인구에 회자되었던) '영혼 없는' 공무원들의 일상화된 관료주의의 한 파편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걸 확인해보는 것도 의미가 없지 않겠지,
뭐 이런 관념적인 생각도 들고...

결과적으로 본다면, 회의도 그 회의 뒷풀이도 꽤 즐거운 자리였다.
물론 그 즐거움이 얼마나 제대로 된 '정보문화 교육정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는 난 모른다.

하기는 이런 일회적인 회의를 통해 블로거로서의 의견이 크게 반영되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무리이긴 하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네 명의 블로거들이 정보원에 전달한 의견들은 그 자체로 좀더 구체적으로 정교화되어야 하는 다소 추상적인 의견들이기도 하다.


4.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던 블로거

김상준 연구원과의 대화를 통해, 어찌 어찌하다보니 그 날의 회의에 참석할 블로거 몇 분을 내가 추천하게 되었다. 결국 참석한 블로거들은 나를 빼고 3명이다. 그 외 , 너바나나, 새드개그맨, 이승환 등에게 전화로 꾜셔봤지만, 다들 왜 이렇게 바쁜건지.. ㅎ


5. 아쉽게 참석하지 못한... 블로거 이정환, 그리고 성광야학과 성동야학의 기억들  

원래는 참석 예정이었던 블로거 이정환이 참석하지 못했다.
블로거가 초대되는 자리에 몇번 스치듯, 혹은 악수 한번 쯤을 나누는 정도로 만난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어서.. 이번 회의에서 꼭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랐다(그런데 이번주에 잘 하면 볼 수 있을 것 같다.: ).

이정환과는 개인적으로 사소한 인연이 있다.
언젠가 인생이 너무 허무해서 이렇게 살면 뭐하나 싶은 시절(지금도 물론 대체로 그런데... )에 뭐라도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야학'이었다.

이정환은 당시에 '성광야학'에 참여하고 있었다.
물론 그 때는 이정환이 누군지 전혀 몰랐던 때였고..
하기는 지금도 이정환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가 굉장히 뛰어난 블로거이자, 또 기자라는 것 빼고는.  

암튼 네이버블로그(내가 처음 블로그를 사용한)를 통해 알게된 서진을 통해 그 성광야학에 참여할 뻔 했다. 하지만 '수습기간'이 끝나갈 무렵 성광야학에 참여하는 건 포기했다. 내 게으름이 견디기엔 성광야학은 너무 멀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사당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꽤 가야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행당동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 가까이 있는 야학을 찾아봤고, 그게 성동야학이다. 거기에서도 오래 참여하지는 못했다. 야학에 참여해야지 했던 그 허무주의적(?) 보람의 대상을 블로그(당시 한겨레 블로그인 '필진 네트워크'가 막 생겨났던 시기)로 바꾸기로 한거다. 암튼 그랬다.

성동야학에 오래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몇 가지 따뜻한 추억이 있다. 특히나 가장 멋진 기억은, 이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 한 편이 따뜻해지는데, 성동야학에서는 직접 밥을 해먹었다. 수업에 들어간 강학(선생) 말고 다른 강학들이 밥과 반찬을 마련해서 중간 휴식 시간에 학강(학생)과 함께 밥을 먹었다.

성동야학.. 아직 있나 모르겠다.

새벽까지 낯선, 하지만 금방 친해진 강학들과 근처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며 마르크스니 사회모순이니 꽤 진지하게 토론했던 기억도 어렴풋 떠오른다. 물론 여자 이야기도 빠지지는 않았지만.. ㅎ


7. 회의과 회의 뒷풀이에서의 이야기들

이윤숙 사무관을 비롯한 한팀장과 김연구원은 주로 청취하는 입장에서 회의에 참여했다. 이사무관이 주로 이것 저것 정리해가면서, 또 질문해가면서 회의를 조율했다.

인상적인 것 몇 가지.

ㄱ. 재량교과서

초중고등 교과과정에 이른바 '특별활동'(?)으로 기본교과서가 아닌 특수교재(?)로 수업을 할 수 있는데, 이게 정보원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아닌가 싶다(물론 아닐수도 있지만). 그걸 '재량교과서'라고 부른다던데,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교과서 분량은 학기 12시간 정도 수업분량이라고 한다.
이 교재가 제대로만 만들어진다면, 그 교육적 가치는 정말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나 블로그와 관련한 제대로 된 내용들이, 블로그가 갖는 학습가치와 미디어적 가치, 더 나아가 민주주의 시민사회의 기본이 되는 대화와 토론의 가치를 그 작은 교과서가 조금이나마 자극하고, 채워줄 수 있다면 이건 정말 가치있는 일이지 않겠나.

나는 주로 포털의 문제, 특히 검색과 실시간 인기검색어 시스템이 가져오는 폐해에 대해 꽤 강도 높게 비판했는데, 이 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반영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특정 기업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 교과서에 포함될 수는 없겠으나, 사실에 대한 냉정한 평가 정도의 수준으로 사례화될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덧. 이에 대한 엔디의 보충 논평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인정교과서'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국정, 검정, 인정 등 세 가지 교과서가 있습니다.

국정교과서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직접 만든 것으로 전국에서 공통으로 쓰는 것이고
검정교과서는 사설 출판사가 만들어 교육과학기술부의 검정을 통과하면 각급 학교에서 선택해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정교과서는 역시 사설 출판사가 만들어 각 시도 교육청의 인정을 받으면 학교에서 쓰일 수 있습니다.

검정과 인정은 검·인정의 심사 주체만 다른 게 아니라, 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검정교과서는 교과부에서 미리 과목명과 교육과정을 정해놓고 해당 과목에 대한 교과서를 제출받아 심사를 하는 반면, 인정교과서는 출판사가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과목을 설정하고 만듭니다.

당일 회의에서 초중고등학교의 재량수업에 쓸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의미는 이 '인정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인정교과서를 통해 교과부에서 미리 정해두지 않은 다양한 과목의 교과서를 학교에서 쓸 수 있지만, 교육과정상 정규 과목 수업 시간은 지켜져야 하므로 결국 재량수업 시간에 사용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선생님들은 재량수업 시간에 교육할 거리가 생기면 따로 수업 준비할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에 인정교과서 채택을 반기는 분들도 많으리라고 생각됩니다. ^^

- 엔디, http://minoci.net/630#comment13919



ㄴ. 링크, "직접 여러분들이 블로그를 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

정부 관계자로 참석한 공무원들 가운데 블로거는 없다.
링크의 말처럼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블로거가 되서 직접 웹상에서 쓰고, 읽고, 돌아다녀보는거다.

그런데, 물론 행안부 공무원만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이 꽤 빡쎈가보다. 보통 10시에 퇴근한다고 하더라. 그 날도 회의 뒷풀이를 행안부 건물 맞은 편 돈까스집에서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김상준 연구원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ㄷ. 필로스, "RSS!"

필로스는 강사로 인터넷이 낯선 청중에게 하나만 이것저것 복잡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면, 이거 하나는 제대로 알려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그건 RSS다.

글을 배급하는 입장에서도 RSS는 중요하지만, 독자의 차원에서도 RSS는 정말 너무 너무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점점더 블로그 문화, 인터넷 문화 전반에 걸쳐 생산자의 입장보다는 수용자, 것도 좀더 적극적인 수용자의 문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런 독자의 차원에서 RSS를 활용할 수 있다면 그 독자이자 비평가로서의 문화가 조금은 더 고양되지 않을까 싶다.

ㄹ. 엔디, "온/오프는 서로 다르지 않다.."

엔디는 정보문화 교육의 난감함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온/오프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고, 특히나 문화의 차원에서, 교양이나 관습의 차원에서 교육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인터넷을 활용하는 단순한 몇가지 기술들이 아니라, 정신으로서의 '교양' '교육'이라는 차원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이건 기억에 의존해서 옮기는 것이라서... ㅡ.ㅡ;

ㅁ. 김상준 연구원,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는... "

거의 매일 이렇게 늦게까지 업무에 치여 살면서도 공무원으로서, 그리고 정책을 지원하는 연구원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는 자신들의 연구성과가 법안으로 만들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 때는 동료들과 함께 축하주도 하고 그런다고 하더라.

나야 알 수 없지만, 그 뿌듯한 느낌들을 어렴풋이나마 상상해볼 수 있었다. 그 진지하고, 청년처럼 순수한 표정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ㅂ. 이윤숙 사무관, "???"

이윤숙 사무관은 시종일관 이런 저런 것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 그 내용을 정리해갔다. 회의 분위기를 적당히 이완시키고, 또 긴장감을 주는 아주 훌륭한 사회자 역할을 했는데, 그 모습은 약간 천진한 느낌마저 주는 것이었다.   


8. 블로거들만의 뒷풀이 1차.

굉장히 어수선한 근처 호프에서 맥주를 한잔 했다.
마치 80년대 대학가 호프집을 연상시키는 그 호프(세종문화회관 뒷편)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역시나 블로거들끼리만(?) 나눌 수 있는 그런 화제들을 주로 이야기했고, 필로스의 후기가 쓰고 있는 것처럼, 블로거로서 허심탄회하게 모여 이야기하는 자리는 뭔가 좀 편안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기억나는 건 링크의 한 마디다.

"메타블로그는 레드오션!"

올블이든, 블코든, 믹시든 간에 메타블로그를 '블루'오션으로 재도약시킬 수 있는 뭔가가 없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이건 뭐랄까, 꽤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링크의 지적처럼 시장이 커진다면, 포털이 달려들테고, 그러면 게임오버라는 인식에 대해 대체로 블로거들은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실은 블로그라는 매체는 시스템 종속적이라기 보다는 시스템 파괴적인 잠재력을 그 내부에 갖고 있는 매체다.

그 시스템 파괴의 잠재력은 물론 그 외적인 운동원리의 변수(메타환경)에 적극적으로 영향받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의 '의지'로써, 블로거들의 자율적인 선택과 네트워킹으로써 어느 정도는 저항 가능한 변수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는 무력한 블로거일 뿐이기 하지만... 


9. 새드개그맨 도착 : 블로거 뒷풀이 2차.

1차(회의), 2차(회의 뒷풀이)가 끝나고, 3차(블로거 뒷풀이) 끄트머리에 드디어 새드개그맨이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는 4차로 갔다.

우리는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차를 마셨다.
서빙하는 아가씨가 무척 친절했다는 것과 블로거 필로스의 증언처럼 그 아가씨가 보면 볼수록 청순한 느낌이 드는 미인이라는 건, 글쎄,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열혈 여성주의자 독자들이 혀를 쯧쯧할지도 모르겠으나, 이런 남자아이들(이런 순간에는 모두가 아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남자동물이 된달까?)끼리 공유하는 문화적인 관습들에 대해 나는 굉장히 호의적인 편이라서...

물론 블로거 필로스의 바람처럼 내가 대시를 하거나, 어떤 사연이 생기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새드개그맨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가 들려준 뮤지컬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새드개그맨은 그가 'Forget the Radio!'에서 들려주는 그 냉정하리만큼 이성적인 느낌과는 상반되게 굉장한 음악 애호가다. 물론 애가 그렇게 평가할 만큼 음악을 알지 못해서, 이건 그냥 구경꾼으로서의 느낌에 불과하긴 하지만.


10. 결 : 정보문화 교육은 정말 가능할까?

링크의 지적처럼 가장 좋은 건 직접 체험하는 거다.
그건 선생의 입장이든 학생의 입장이든 마찬가지다.
자신이 체험하지도 않은 걸 가르치는 일이 어렵듯,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것을 배우는 일도 매우 어려울 테니까. 그리고 웹을 기반으로 한 정보문화 교육은 어쩔 수 없이 블로그를 매개로 활용할 수 밖에는 없을거다. 나는 이 지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몹시도 몹시도 비판적인 나이지만, 그 이명박 정부 하에서도 공무원들은 그저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건 거친 인상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제도의 차원에서, 그리고 정부의 막강한 조직과 체계적인 지원으로 정보문화 향유자들이 좀더 만족스럽고,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모습으로 인터넷을, 웹을 통해 정보를 수용하고, 또 활용하고, 궁극적으론 스스로 그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는지에 대해선 나는 물론 회의적이다.

그것은 스스로 하는 것이고, 스스로 체험을 통해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공무원들의 노력을 폄하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제도와 정책을 통해 지원한다면 그리고 참여자들의 자율적인 의지와 문화를 통해 그런 총체적인 환경 자체가 고양된다면 그것은 더 없이 좋은 양 날개로써 정보문화라는 것을 키워낼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추.
소위 '최진실법?' (행인. 일독 강추)과 이번 회의는 별 관계가 없다. 물론 아주 관계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정보문화 교육은 최진실법이 왜 잘못된 시도인지 이성적으로 지적할 수 있는 비판적 시각을 그 교육목적의 하나로 삼아야 마땅하리라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 발아점 & 관련글
블로거 모임 2제 (필로스) : 이 글을 읽고 게으름을 극복하고 희미한 기억이나마 기록해보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펄과 전화로 이야기한 내용 중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체험, 그 체험이 그래도 유의미한 인상적 체험이라면, 그걸 글로 표현하지 않으면 그건 마치 기자가 취재만 하고 기사를 쓰지 않는 것과 비슷한 거 아니겠나.. 뭐 이런 이야기. 그건 최근 '블로그래픽'의 위기와 관련해서 나온 이야기인데... 요즘은 이것저것 하는 건 하나도 없으면서 마음만 바쁘고, 치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