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종종 생각했던 문제인데, 한번쯤 포스팅할만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건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한데요.

제가 최근에 굉장히 맘에 드는 스킨을 발견해서 교체했습니다.
hi8ar님의 '화이트보드'(whiteBoard for Textcube)죠.
그런데 이 스킨은 높은 해상도를 가진 모니터 환경에서는 굉장한 쾌적함을 주지만, 반대로 해상도가 낮은작은 모니터 환경에서 브라우징하는 경우에는 꽤 신경이 쓰이는 '가로 스크롤바'를 만들어냅니다. 화이트보드를 사용하시는 '탱쟈'님의 경우에도 이 문제 때문에 hi8ar께 문의를 하셨고, hi8ar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포스팅까지 하셨죠.

더욱이 제 경우에는 사이드바를 블로깅의 꽤 주요한 소통 수단으로 활용하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믹스업 위젯과 확장점 위젯 같은), 사이드바 가로폭이 좀 큰 편이고, 본문도 평균적으론 글이 긴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본문의 가로폭을 줄이는 것도 어느 정도는 한계가 있습니다.

너바나나님의 세심한 조언이 없었더라면 마음으로만 생각하고 있다가 말았겠는데요.
조언에 따라 일단은 가로폭(300에서 250으로)과 좌측 여백(마이너스 80)을 조정했습니다.(총 130px)
가로폭 1280에서는 모두 들어오는 것 같은데요.
여전히 가로 해상도 1024에 모든 블로그가 보여지는데는 택도 없더만요.
이 문제로 너바나나님과 꽤 오랫동안 전화로 이야기했는데 했는데, 꽤 흥미로운 '선택'의 문제더군요.

이 문제는 해상도 최적화의 우선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이건 세 가지 조건에 얼마만큼의 가중치를 두는가의 문제, 그 조율에 관한 것이죠.

1.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는 '블로거'의 모니터 환경에 가중치를 부여할 것인가?
2. 아니면 그 블로그를 직접 방문하는 '독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모니터 환경에 무게를 둘 것인가?
3. 아니면 그 블로그를 직접 방문하는 독자들이 사용하는 '최저 모니터 환경'에 무게를 둘 것인가?


- 제 경우

1. 제 모니터 환경은 가로 해상도 1680입니다. 본문이 좀 길고, 사이드바가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죠.
2. 현재 제 블로그에 직접 방문하는, 그래서 제가 가장 먼저 배려해야 하는 독자들의 모니터 환경, 그 가로해상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릅니다.
3. 현재 일반적으로 최저 모니터 환경은 (가로) 1024겠죠.


- 문제 : 편의상 무슨 무슨 설이라고 해보죠. ^ ^;

1. 블로거 우선설 : 주인장 블로거 환경에 최적화
해당 블로그에 가장 많이 방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그 블로그를 운영하는 해당 블로거겠죠. 그래서 이 요소가 무시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 블로그를 (주로) 자신만을 위한 아주 내밀한 사적 공간으로 생각하는 경우에는 2, 3번 문제에 대해 크게 고민할 필요 없겠죠. 자신의 모니터 환경에 맞춰서 블로그 스킨의 해상도를 선택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이런 블로거들은 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잠재적으로나마 독자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정말 극소수라고 생각합니다.

2. 다수 독자 우선설 : 가장 많이 방문하는 다수 독자들의 환경에 최적화
블로그를 방문하는 독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브라우징 환경에 최적화하는 방식입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끌어내는 방식이겠네요.

3. 소수 독자 우선설 : 최소 해상도 환경을 가진 독자를 기준으로 삼는 방식
이건 너바나나님과의 통화를 통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지만, 가장 추천할만한 방식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런 표현이 좀 뭣하지만, 소수자를 배려하는 가장 윤리적으로 훌륭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너무 오버인것 같기도 하지만요).
너바나나님 사례를 말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너바님 경우에 20인치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는데, 가끔은 사이드바를 넓게 사용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되곤 하지만(그리고 너바님의 경우에는 스킨을 제작 수정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적인 지식을 갖고 계시구요), 1024에 맞추기 위해 그 개인적인 욕구를 자제한다고 합니다(사적인 대화지만 이런 정도는 공개해도 될 것 같아서.. 너바님의 양해를 구합니다. 넉넉한 추정적 승낙을 기대합니다. ^ ^;; ) .


부탁 말씀

그래서 저로서는 제 블로그를 직접 방문해서 제 (볼 것 없는) 글을 읽어주시고, 저에게 블로깅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독자들께서 사용하고 계신 모니터의 해상도 환경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위 세 가지 입장(설)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하는 입장은 어떤 것인지도 더불어 알려주시면 제가 스킨 레이아웃을 재조정하는데 큰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굳이 필명이나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실 필요도 없고, 그저 의견만으로도 족합니다.
부탁드립니다. (_ _)



* 발아점
탱쟈
너바나나
작은 해상도에서의 whiteBoard 스킨.(hi8ar)




어떤 재밌는 글을 읽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그 재밌는 글의 '주제'에 대해선 따로 글을 쓰고 싶을 정도다)

너무 헷갈린다.
(참고로 헛갈린다가 아니라, '헷갈린다'가 맞는 표현. 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헛갈리다'도 이제 표준어가 된건가? 아니면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건가. 각설하고, 맞춤법에 대해 예민한 편은 아니지만, 일단 눈에 들어오면 신경이 쓰이긴 한다. 물론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파괴하는 경우, 그러니 일종의 개성 표현, 수사인 경우에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그리고 맞춤법을 지적하는 댓글은 가급적 비밀글로 쓰면 좋겠다. 그건 글의 주제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거니까, 그게 작은 배려가 아닐까 싶다)


0. 사전 정의

A. 중개 [仲介] [명사] 제삼자로서 두 당사자 사이에 서서 일을 주선함.
intermediation;mediation(조정)
―하다 mediate;intermediate 《between two parties》;act as go-between;intercede

B. 중계 [中繼] [명사]
1 중간에서 이어 줌.
2 <언론>=중계방송.
relay;hook-up《미》 ―하다 relay


1. 구별 표준 : 매개의 주체성. 제삼자.

A. 중개는 매개의 주체성이랄까 활동성을 요구한다. 여기에는 제삼자(사람)을 개념 필요적으로 요구한다.

B. 중계는 매개의 주체성이나 활동성에 주목한 표현이 아니라, 어떤 단순히 물리적인 '연결(잇다)'에 주목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제삼자'가 개념필요적 요소가 아니다. 물론 매개하는 것(가령 '위성을 통해 중계한다'고 했을 때의 그 '위성')은 필요하다.

이 차이가 '중계무역'과 '중개무역'의 차이인 것 같기도 하다.


2.  좀더 생각하기

A. 중개 : A인 내가 B와 중개하는건 불가능하다. 가령, 마봉춘이 야구경기를 중계할 수 있도록 C가 프로야구 사무국과의 사이를 중개한다는 가능하지만, 마봉춘이 야구경기 자체를 자신에게 중개할 수는 없다. 야구경기는 매개자가 필요한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고, 마봉춘은 제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B. 중계 : A인 내가 B를 중계하는게 가능하다. 가령, 마봉춘이 야구경기를 중계를 한다고 했을 여기에는 제삼자가 필요없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야구경기를 위성이든, 뭐든을 통해 TV 단말기 브라운관 상으로 전송할 수 있도록 '잇기'만 하면 그 '중계'의 의미를 모두 소진한 것이기 때문이다.


3. 문제

그렇다면 문제.
마봉춘은 야구경기를 시청자에게 (방송 기자재를 통해) 중계방송 한다.
야구경기(갑) - 마봉춘(을) - 시청자(병) 이라는 삼각형 구도에서 생각해보자.

마봉춘은 야구경기를 시청자에게 중계하는 것일까, 중개하는 것일까?   


4. 외우기?  

위 전제가 맞다면 이렇게 외우면 헷갈리지 않을 것 같다.

마봉춘은 야구'중계'를 시청자에게 '중개'한다.

나는 처음에는 마봉춘은 야구'중계'를 시청자에게 '중개'한다.라고 이 헷갈리는 걸 외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확신했는데, 지금은 또 헷갈린다. 확신이 안선다.


5. S0S

이상은 물론 개인적인 추론이다.
이럴 땐 이렇게 외치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엔디님 도와줘요!"




추.
구글링했더니 중앙일보에서 이 차이를 설명한 작은 우리말 칼럼이 있더라(링크는 그 칼럼을 스크랩한 글).
그런데 그걸 읽고도 명확하게 정리가 안되서 한번 써봤다.

적고 봤더니, 이런 생각이 뒷통수를 때린다.
뭘, 이런 걸 다...
쓰다만 글이나 마무리하지..
그리고 이게 맞는다는 확신도 없고...  
암튼...
궁금해서...




* 발아점
어떤 재밌는 글 : 앞으론 종종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러면 아무래도 궁금해져서 한 명이라도 더 클릭하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ㅎ




사용자 삽입 이미지
블코에 갔다.





[여기는 건너 뛰고]














<==  '블로그 이용패턴과 인식조사'라는 심플한 배너가 눈에 띄어서, 한번 눌러봤다.




그랬더니 이런 대문이 나를 맞이하더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http://www.expressme.co.kr/index.jsp


대학원생들이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하는 것 같은데, 암튼 10만원 미끼가 좀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도 했지만, 운 좋으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용돈 생기겠군!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고 학생들 논문 작성에 도움도 주고...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식으로 설문이 설정되었는지도 궁금하고 해서 겸사겸사 참여하기 단추를 눌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모습이다.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미투로그에 글을 썼다가 쿨짹이 댓글로 지적해줘서 그제야 알았다(2번설문).

이글루스가 없다. ㅡㅡ;

아, 물론 이글루스 블로거들이 상냥하게 '기타'에 체크할 수도 있겠지만... 뭐랄까, 이건 좀 너무한다.
가장 대표적인 전문 블로그 서비스가 증발했다.
이걸 발견한(?) 어느 정도 경력이 된 블로거들이라면... 
이런 설문응답을 계속 할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할 수 밖에 없어지는 설문인 셈이다.
내가 만약 쿨짹이 지적한 이글루스 증발을 미리 알았다면 3번째 페이지까지 넘어가다가 그만두지도 않았을 거다. 그 첫페이지 2.번 질문에서 쫑냈겠지.

이글루스 블로거들이야 말해서 뭐하나.
대체로 이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부터 좀 맘에 안드네요. (2번부터…) 쩝… 얼음집주인은 찌그러져 있어야하는 건지.. ㅎㅎ (쿨짹)



질문도 정리를 위해 획일화하고, 표준화했다는 걸 아무리 감안하더라도 3페이지부터는 정말 재미가 없어서 계속 하고 싶은 생각이 완전히 사라져버린다(나는 앞서 말했듯 3페이지에서 포기했다).

끝으로 10.번 질문은 뭐랄까, 그래도 커뮤니케이션 연구소란 곳에서 하는 설문조사인데, 너무 성의 없달까, 피상적이랄까, 블로그에 대해 뭘 좀 체험이 있긴 한건가...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설문이다. 블로거뉴스가 '뉴스서비스'라는 건 정말 금시초문이다. 블로거뉴스는 메타블로그 서비스이지, 여기서 무슨 '기자단'을 조직한다고 해서 '뉴스'를 공급하는 건가?(이 블로거 기자단이라는 건 그냥 마케팅 조어지 저널리즘을 연구하는 곳에서 그대로 빌려쓸 그런 용어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블로거뉴스가 무슨 뉴스 서비슨가? 나는 '블로거+기자'란 조어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블로거+뉴스'라는 조어는 더 이상하다. 이에 대해 언젠가 아거는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현재로선 블로그를 비공개 처리했기 때문에 링크는 생략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배너까지 계약한 블코와 올블, 믹시는 어딨나?

아, 그리고 이 설문은 8-1로 시작되는데, 그럼 이번이 8번째 설문이라는 의민가?
정말 마지막으로 이 설문은 몇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는지도 안내해주지 않고 있다(대문에 이런 간략한 설명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싶은데...).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공부하느라 짬내기 어렵겠지만, 최소한 블로깅도 직접 몇 달 해보고, 블로거들과 함께 교류도 해보고, 메타블로그들도 직접 체험하고 나서 이런 설문조사를 해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설문 모양새만을 보면 최소한 이 설문을 작성한 학생은 블로그에 대해 거의 체험치도 없고, 최소한의 고민도 없는 친구인 것 같다. 이건 이 설문 작성자를 비난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는 있는거니까.

개인적으론 설문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구성 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추.
지난 5월 연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생이라고 밝힌 학생이 이메일로 연락을 해와서 그 학생들과 동네 근처 까페에서 꽤 오랫동안 인터뷰 한 적 있다(이건 6월 초). 꽤나 즐거운 분위기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참 많이 했다. 이 설문을 작성한 학생이 그 학생들 중 한명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때 이후로도 프로젝트 팀장 역할을 맡은 학생이 메일을 몇 통인가 보내왔고, 논문도 세미나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하고... 최근에는 학술대회 준비중이라고 하던데...



드디어 악당들을 처단하려는 숭고한 십자군이 일어섰다.
악플 없는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나경원을 필두로 한 일군의 나부랭이들이 들고 일어난거다.

한나라당 제6정책조정위원회(위원장 나경원)와 미디어발전특별위원회(위원장 정병국)는 사이버모욕죄의 신설과 인터넷 분쟁조정제도 개선을 뼈대로 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3일 발의했다. (미디어오늘, 한나라당, 사이버모욕죄' 입법 발의)

0.

나는 솔직히 별다른 감흥이 없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정도의 감흥만 남았을 뿐이다.
법이 통과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거대 이명박당이 통과시키겠지.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시나리오 인터넷 파트(의 일부)인 이 법안이 통과되면 시민들의 정치적인 의사표현의 자유는 상당히 위축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쉽게 말하자면 벼룩 한 마리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이런 억압적 형벌제도를 별다른 저항 없이 밀어붙이는 상황 자체가 절망스러울 뿐이다.

시민들은 관심 없다.
될대로 되라. 이런 심리도 아니고, 그냥 아예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다고 해도 아주 피상적인 관심, 어떤 고민도 없는, 뇌세포를 사용하길 정말 무쟈니 아까워하는 절약정신 동원된 그런 정도의 관심이 있을 뿐이다. 아니다, 이것도 아닌 것 같다. 최진실 죽인 그 악당놈들을 처단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권리를 기꺼이 '양보'하는 희생정신, 혹은 감상적인 휴머니즘이 있을 뿐이다. 물론 나도 그런 시민들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정말 힘이 없다.
아무리 지랄발광을 해도 올 것은 온다.
거듭 이야기하거니와 관심 자체가 별로 없다.
이거 지금 당장 여론조사하면 아마도 찬성하는 입장이 훨씬 많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내가 하루하루 힘겹게, 혹은 그럭저럭 살아가는 내 이웃들을 욕하자는 건 아니다. 내가 나를 욕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데, 뭐. 그냥 무기력증이 생겨버려서...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의 손발을 묶는 법안에 이토록 잔잔하게 대처한다는 건 좀 그렇다. 그런데 딱히 어떤 대응방법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촛불?




 

1. 발의자 명단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이 지랄옆차기 법안 발의에 찬동한 의원나부랭이들은 내 두고 두고 기억하리라.



나경원
            홍준표
                        임태희
                                    강승규
                                                김재경
                                                            이계진
                                                                        정병국
                                                                                    조해진
                                                                                                주광덕
                                                                                                            진성호
                                                                                                                          허원제
                                                                                                                                      안형환


2. 바뀔 법조항들


제44조의 7(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에 '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하는 정보'를, 그리고 제70조(벌칙)에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 등이 신설됐다. 형법상 모욕죄의 처벌 조항인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 벌금' 보다 처벌 강도가 높다. 아울러 현행 형법상 모욕죄가 친고죄인 반면 사이버모욕죄는 고소가 없더라도 수사착수가 가능한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했다. (미디어오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망법' 혹은 '망법')
44조의7 (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①누구든지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를 유통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음란한 부호ㆍ문언ㆍ음향ㆍ화상 또는 영상을 배포ㆍ판매ㆍ임대하거나 공공연하게 전시하는 내용의 정보
2.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사실이나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정보 [이하 생략] [전문개정 2008.6.13] [시행일 2008.12.14]
제70조 (벌칙)
①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 제1항과 제2항의 죄는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전문개정 2008.6.13][시행일 2008.12.14]


ㄱ. 새롭게 도입되는 '사이버 모욕죄'의 의미 : 형법상 명예훼손, 음란에 이어 모욕죄도 망법에 도입.

위 44조의 7 제1항 제1호가 형법상 음란죄를 정보통신망법에 도입한 것이라면, 제2호는 형법상 명예훼손을 망법에 도입한 거다. 이제 '사이버 모욕죄'가 신설된다면 형법상 모욕죄까지 망법에 도입된다. 국가형벌권이 더욱 확장되고, 강화되는 셈이다. 이들은 각각 형법의 특별법으로 적용된다. 즉 특별법 우선원칙이 적용되어 웹을 통해 이런 구성요건, 즉 범죄가 충족되는 경우 망법 적용을 받게 된다.


ㄴ. 형법상 명예훼손, 모욕죄
제307조 (명예훼손) : 반의사불벌죄
①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사실에 관한 명예훼손)
②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이하의 징역, 10 년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허위 사실에 관한 명예훼손)

제311조 (모욕) : 친고죄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이 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12조 (고소와 피해자의 의사)
①제308조와 제311조의 죄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②제307조와 제309조의 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형법상 명예훼손과 모욕죄는 개인적인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범죄다.

ㄷ.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
친고죄는 일단 범죄 피해자(및 고소권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하다.
반의사불벌죄는 일단 국가사법기관의 '인지' 수사가 가능하고, 그 인지수사의 결과로 범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을 때 범죄 피해자에게 그 고소를 묻는 방식이다.

그러니 위 양자와의 관계 속에서 쉽게 생각하면 이렇다.
친고죄는 그 법정형이 약할 뿐더러, 약한 죄질의 범죄에 적용되는 것이고, 반의사불벌의 경우에는 그 법정형이 친고죄로 규정된 범죄보다는 높고, 상대적으로 강한 죄질에 적용되는 처벌조건에 관한 규정이다.

얼마전에 있었던 한 영화잡지(프리미어) 간담회(최진실법과 관련한)에 동석한 블로거 행인이 강하게 지적한 것처럼 친고죄를 반의사불벌로 바꾸고, 그 실효성을 추구하려면 국가기관이 인터넷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결과가 된다. 이건 가능한지 여부를 떠나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3.  이 법에 반대하는 이유 (요약정리)


ㄱ. 이 법안은 논리필연적으로 자살을 합리화하는 법안이다.
최진실과 관련해서는 이런 법규정이 만들어진다면, 국가가 나서서 '자살'을 합리화하는 꼴이 된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자살의 원인이 '모욕'(혹은 명예훼손, 쉽게 말해 악플)이라고 국가가 나서서 선언하는 꼴이다. 좀 과장하자면 국가가 자살을 타살인 것처럼 제도화하는 셈이다.

형벌 규정은 '책임 범위'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요구한다. 그것은 한 개인을 죽일 수도 있고,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으며, 돈(재산권)을 빼앗을 수도 있는 국가공권력의 최후보루이자, 시민의 자율성에 대한 최후보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진실 자살 사건에 쏠린 대중적인 여론에 편승해 이런 법안이 마련된다면, '자살' 그 자체가 '개인의 책임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

모욕죄가 살인죄가 아닌 이유는 그 모욕죄에 부가한 약속 때문이다. 모욕죄는 모욕죄에 규정된 형벌로 처벌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현 나경원법은, 적어도 그 맥락으로 본다면 모욕죄를 마치 '살인죄'의 일부인것처럼 사회성원들이 착각하도록 만들 여지가 강하다.

ㄴ. 국가 형벌권 강화 규정 마련은 거듭 신중해야 한다.
국가의 형벌권이 강화되는 규정을 마련하기 위해선 시민사회의 동의는 물론이고, 치밀한 사전 준비 작업이 있어야 한다. 악플이든 모욕이든 간에 사회과학적 실증 조사가 반드시 필요적으로 선행되어야 그것이 상식일 것이다. 지금 이런 과정이 있는지, 있었는지 의문이다.

ㄷ. 이 법률은 실효성도 강하게 의심된다.
평균적인 시민들, 그러니 더도말고 나같은 경우에 어떤 모욕행위에 대해 법적인 구제를 요청하는 일은 드물수 밖에 없고, 그런 선택을 하는 경우에 감당해야 하는 시간적, 정신적, 물질적 염려에 때문이라도 이런 법적인 장치가 사사로운 개인들의 인격권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자신들에 대한 담론들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정도의 거대권력에서 바라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ㄹ.  이 법안은 문화의 자율성을 억제하는 반문화적인 방법론이다.
인터넷, 웹의 여론이나 의사표현은 자율적인 정화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사인(시민)간의 모욕 행위에 주목하면 주목할수록, 그 행위에 필요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면 부여할수록, 자율적인 정화에 대한 기대심리는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달리 표현하면 토론과 대화를 통한 사상시장의 메카니즘에 의한 해결 가능성은 낮아 질 수 밖에 없다.

ㅁ.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이 법안이 최진실이라는 사회적 상징에 대한 연민에 의해 더욱 촉발되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연민이라는 그토록 인간적인 감정의 결과가 제도적인 억압과 규제, 그리고 인간에 대한 불신이라면 이것처럼 아이러니한 게 또 어딨겠나.

합법적인 얼굴을 한 야만에 다름 아니다.  




* 내 관련글
사이버 모욕죄와 죄형법정주의, 그리고 경찰국가의 망령 http://minoci.net/550
최진실 일발 장전. http://minoci.net/612
최진실 자살 단상 : 악플과 찌라시즘 그리고 희생양. http://minoci.net/617
숭고한 사회의 악당들 : 사이버 모욕죄와 나경원법. http://minoci.net/621
송원섭, 박수나를 조롱하다 : 자기배반과 사이비 오리엔탈리즘. http://minoci.net/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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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2008/11/04 21:26
내가 시작된 나이.
나는 늘 그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그건 아마도 내가 김현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고, 그냥 겉멋든, 유치한 감상이기도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0.
그건 마치 자위행위에 대한 죄의식과 비슷하다.
몸과 영혼, 영혼이라구... 어떤 심리말야.
암튼, 그 몸과 마음이 서로 극단으로 빙글하고 어긋나는 그런거.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니 그건 눈을 감을 필요도 없다.
그건 나를 둘러싼 내 투명한 공기들 사이에 새겨진 어떤 무늬같은 거다.
파란 대문에 그 아이가 강아지를 바라보고 있는거다.
노랗고 환한 햇빛들이 거기에 쏟아졌다.


1.
그 때는 모든게 지랄같았다.
학교는 나를 사육했다.
나는 그 사육의 정치권력에 아주 적극적으로 동조하기도 했다.
아주 안락한 사육.

그런데 문득 역겨운 피냄새가 나더라구.
그게 싫었다.
원치 않았다구...
정말?
잘 모르겠다.
아직 그때는 혁명이라는 아주 식상한 구호들의 잔상이 남아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아주 어렸다.


2.  
그건 아주 고전적인 권력모델의 원형 같은 거.
폭력에 대한 두려움.
폭력에 대한 역겨움.
그런데.. 그건 말야.


3.
어제부터 이 문장이 머리 속에 떠다닌다.
"남자는 빌고, 여자는 씨발 좆까"
그건 권상우가 '야수'에서 지랄발광하던 모습과 또 겹쳐진다.
그리고 물론 그건 내 열여덟과도 겹친다.


4.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라는 노래를 듣고 있어서, 그래서 그런거다.
완벽하게 저작권 위반인 노래를 들어도 완벽하게 감상적이 되는데는 별로 지장이 없다.
씨발 좆까.


5. 왕가위와 하루키의 공통점 같은거.

나오코가 펠라치오하거나..
어떤 이쁘장한 타락천사가 자기 허벅지를 비비는 그런거.
아주 정치적인 자위행위.
아주 감상적이고, 시적인 자위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