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죄형법정주의


근대형법의 기본원리는 죄형법정주의다.
죄형법정주의는 다섯 개의 하위 원칙들로 구성된다.
법률주의(관습형법금지), 소급효금지, 명확성,  유추해석금지, 적정성원칙이 그것들이다.

형법학계 거두인 이재상은 이렇게 말한다.  

죄형법정주의에 의하여 국가는 아무리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행위라도 법률이 이를 범죄로 규정하지 아니하는 한 벌할 수 없고, 또 그 범죄에 관하여 법률이 정하고 있지 않는 형벌을 과할 수 없게 된다. 죄형법정주의는 국가형벌권의 확장과 자의적 행사로부터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형법의 최고원리이며, 형법의 보장적 기능도 이에 의하여 비로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된다.

형벌권은 다른 어떤 분야와 비교할 수 없이 국민의 자유를 강력히 제한할 수 있는 국가의 권력수단이다. 국가는 이에 의하여 국민의 생명을 박탈할 수 있고, 그 자유를 무기에 이르기까지 제한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강력한 국가 형벌권의 행사가 무제한하게 허용될 수는 없으므로, 국가의 형벌권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죄형법정주의다.

헌법 제12조 1항은 "누구든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 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제3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한다"고 하여 죄형법정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1조 1항이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도 형법의 기본원리로서의 죄형법정주의를 규정할 것으로 볼 수 있다.

- 이재상, 형법총론, pp. 8, 9.



2. 법무부장관의 존재이유

검찰은 (그야말로) 국가형벌권을 상징한다.
검찰은 생리적으로 형벌권을 확장하고 싶어한다.
그런 검찰이 '정의의 수호자'라는 자기의 본래적인 존립근거를 망각하면, 그래서 촛불 잡아 족치는 정권 하수인으로 전락하면, 그야말로 민주적인 시민사회에 커다란 위협이 된다. 그 있을지 모르는 위협에 대한 방어막으로써 검찰 우두머리인 검찰총장을 법무부장관의 통제권 하에 둔다. 검찰은 준사법기관으로서 독립적인 기관이지만, 행정부의 국무의원인 법무부장관은 그 검찰의 수장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왜?
민(民)이 그 국가형벌권을 '지배'하라는 취지다.
시민의 자유와는 생리적으로 상극일 수 밖에 없는 국가형벌권을 '견제'하고, 민이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도록 하라는 국민의 명령인 셈이다.  그것은 국민의 명령이면서 헌법의 명령이고, 민주주의의 진화된 시스템, 그 시스템에 녹아 있는 무수히 많을 이름없는 역사적인 상처들(민주적인 헌법질서를 세우기 위해 뿌려진 그 많은 피들)이 저 지하에서도 눈 부릎뜨고 지켜보고 있는 요구이다.

그렇게 국가형벌권의 무분별한 확장을 제어하고, 또 그 형벌권의 무분별한 작용(촛불 관련 피디수첩에 대한 검찰조사, 조중동 불매 운동에 대한 검찰조사)을 견제해야 하는 자가 법무부장관이라는 자다. 그런데 무분별한 검찰권 남용을 견제하고, 제어해도 시원찮을 대한민국 법무부장관 김경한이라는 자는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하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3. 사이버 모욕죄가 反형법정신, 그 시대적 의미

사이버 모욕죄는 어떤 합리적인 시도나 노력도 없이, 그러니 근거 없이 무분별하게 국가형벌권을 확대하려는 경찰국가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이미 형법상 모욕죄가 존재하지 않나? 왜 굳이 거기에 '사이버'를 덧씌워 새롭게 범죄를 만들어내려고 하는가?(이건 사이버가 아니라 '사이비'다) 그 의도는 자명하다. 정권에 비판적인 의견을 잠재우려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그야말로 민주시민사회에 대한 폭거에 다름 아니다. 

'범죄'는 사회적인 합의다.
그건 사회성원들의 약속이다. 사회성원이 상식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최대한으로 애쓴 후에 범죄는 만들어져야 하고, 가급적 범죄는 새롭게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형법은 사회생활에 불가결한 법익을 보호하는 것이 형법 이외의 다른 수단에 의하여는 불가능한 경우에 최후의 수단으로 적용될 것을 요구한다. 이를 형법의 보충성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 다른 법률 수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법률효과이며, 형법의 지나친 확대의 금지가 형사정책의 영원한 요청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이 바로 비범죄화(기존에 있던 범죄를 없애는 것)의 요청이다. 이는 형법의 기능을 사회존립에 불가결한 사회적 기능의 보호에 제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비범죄화의 요청은 다원적 가치관을 인정하는 민주주의사회에서 형법의 기능이 헌법질서가 보장하는 시민의 자유로운 생활에 필요한 전제를 보호하는 데 제한되어야 하고, 국가가 형벌을 수단으로 특정한 종교적, 도덕적 가치관을 강제하는 것은 그것이 사회생활의 유지에 없어서 안되는 기능이 되지 않는 한 허용될 수 없다는 형법의 탈윤리화를 요구하게 된다.

- 이재상, 형법총론, p. 7.

즉, 범죄는 그 범죄를 고안하게 한 어떤 사회의 문제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들, 시도들이 좌절된 뒤에 만들어져야 한다. 간명하게 말하자면 범죄는 최후에 만들어져야 한다. 그것이 (위에서도 간략히 살핀) 형법에서 말하는 '보충성의 원칙'이다. 모든 시도들이 끝난 뒤에, 그 때에도 도저히 방법이 마련되지 못하는 때에, 그 사회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사회에서 인간의 공동생활을 보호"하는 사회 보장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거, 그게 '범죄'다.  즉, 형법에서 규정하는 '범죄'는 시민사회를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져야 하는 거다.

올해 신년사'법질서'를 강조했던(물론 이랬던 자가 법질서를 강조하는게 코믹한긴 했지만) 이명박이라면, 당장에 김경한을 해임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김경한의 '사이버 모욕죄' 신설 발상은 "국민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법치국가론의 등장"으로 퇴장한, 17, 18세기 중상주의 시대 유물인 경찰국가의 망령을 21세기 민주사회에 불러오려는 '법질서 파괴' 행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추.
1. 현재 진행경과가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한나라당 대변인 차명진이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고 한다.

"[...] 사이버 공간에 널부러져 있는 배설물들을 청소해야 한다"(차명진)
- 프레시안, '사이버 모욕죄' 신설 성큼…한나라 찬성


2. 연예계에서는 '사이버 모욕죄' 찬성이라고 한다.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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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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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노씨 2008/07/25 18:06

    제목에 부제 부가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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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xarm 2008/07/25 18:34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 지도 모르는 거 같네요.
    부메랑이 되어 자기들도 속박할 법률을...
    진짜 말도 안 되는 나라에 살고 있는 거 같아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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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25 18:43

      자신들은 '지배세력' '통치세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게죠. ㅡ.ㅡ;
      우리는 시간을 (뒤로) 달리는 이명박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3. 시퍼렁어 2008/07/25 18:48

    몰이해 불법죄도 신설하는게 어떨까요


    말을 해도 못알아들으면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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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25 19:12

      그렇게 되면 정치권이 감옥으로 대이동하겠군요. : )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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