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의 특별한 '서민들'

2008/07/28 09:03

참여정부는 지난 2년동안 줄기차게 부동산 억제 대책을 쏟아냈습니다. 특히,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쳐왔습니다. [....] 갈 곳 없는 200조~300조의 부동자금, 3%대 사상 초저금리 등으로 서민들은 돈 굴릴 곳이 없습니다. 그나마 직장에서 상시 퇴출의 위협에 시달리고, 월급은 제자리걸음하고 있습니다. 부동산에 돈이 몰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엄포와 협박(?)을 통해 부동산 투자를 억지로 묶어놓으려고 합니다. [....] 그러나 서민들이 한푼이라도 벌겠다고, 내집 마련하겠다고 부동산 투자에 나서는 것을 모두 투기꾼으로 본다면 경제원리를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일입니다. 합리적 계산을 한 사람이 제대로 보상받는 사회. 경제학 원론에 나오는 이 이야기가 적용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대통령님 앞장서 주십시요.

- 조선일보 유하룡, 대통령 '집값 전쟁' 비웃는 재테크 고위공무원들 중에서
(2005.02.25)
http://www.chosun.com/politics/news/200502/200502250242.html

조선일보가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쓴 기사입니다. 비판을 위한 논거로 당시 고위직 공무원들이 부동산을 통해 재산이 늘었다는 걸 강조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물론 이 논거 역시 기사 전체의 취지와 논리필연적 연계를 갖지는 않지만요). 그런데 기사 결론이 엉뚱합니다. 그 결론은

"서민들"이 제발 '부동산 재테크'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둬!
'부동산 재테크'할 수 있게 제발 우리 "서민들"을 투기꾼으로 보지 말아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좀 의아해집니다. 
"서민들" 중에서 돈 굴릴 곳이 없어서 걱정하는 '서민'이 얼마나 될까요? 당시 200조~300조에 달했다는 부동자금 중에서 서민들 호주머니에 있었던 돈은 얼마나 되었을까요? "한푼이라도 벌겠다고, 내집 마련하겠다고" "부동산 투자"(!)에 뛰어드는 '서민'들은 또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반문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서민들, 정말 '서민들' 맞습니까?

위 조선일보 기사에서 걱정하는 서민들은 아마도 이런 서민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른바 '버블 세븐' 그 중에서도 강남에 사는 '서민들'말입니다.
조선일보의 '서민' 걱정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조선일보 기사에 대한 비판을 한자락 살펴보죠.

12억 원 상당의 아파트면 상위 1% 가구 안에 드는 수준이다. 이들이 265만 원이 부담돼서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외식횟수를 줄인다는 것은 엄살일 가능성이 크다. 만약 A씨가 265만 원의 세금을 부담할 형편이 도저히 안 된다면 다른 지역이나 좀 더 저렴한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게 맞다. 조선일보는 어설픈 부자들의 형편을 대변하고 있지만 정말 이들이 어설픈 부자라면 형편에 맞는 주거조건을 찾는 게 유일한 해법이다. 어설픈 부자라고 해서 세금을 깎아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 이정환, 조선일보의 '어설픈 부자'들 걱정.
http://www.leejeonghwan.com/media/archives/001162.html

최근 정부 여당에서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개편하자는 논의가 활발한 것 같습니다.
이혜훈 의원은 18대 제1호 법안으로 "1가구 1주택자를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에서 빼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종부세법 개정안을 제출"(지난 5월30일)했고, 이종구 의원은 "종부세 과세 기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리고, '세대별' 합산을 '개인별' 합산으로 바꾸는 내용"(7월 22일)의 좀더 파격적인 개정안을 국회에 냈습니다.(참조기사 : 한겨레 김영배, 2%를 위한 동종교배 정책.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01009.html)

위 법률안을 제출한 양(兩) 이의원의 지역구는 각각 서초갑과 강남갑입니다. 국민 전부의 대표가 아니라, 조선일보에서 특별히 걱정하는 '특별 서민'들을 위한 대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종구안으로 종부세가 개정된다면, "종부세 과세 대상은 38만명(작년 부과 기준)에서 7만~8만명으로 줄어들 것"(위 한겨레 칼럼)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국회의원과 고위공무원들의 '서민' 걱정은 자신들을 위한 걱정이기도 합니다.

"민주당 신학용 의원은 24일 "재산공개 대상자인 현직 고위공직자의 71%가 '버블세븐' 지역에 부동산을 갖고 있는 만큼  종합부동산세 과세기준 등 관련규제 완화시 직접적인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연합뉴스. 2008. 7. 24.)

그렇다면 진짜 서민들 사정은 어떨까요?

"지난 6개월 동안 빚이 늘었다는 응답자는 253명(21.3%)이었으며, 이들 가운데 500만원 이상 빚이 늘어난 사람은 160명(63.2%)이었다. 빚이 늘어난 이유로는 '생활비 부족'(31%)을 가장 많이 꼽았다. 또 다달이 빚 갚는 데 들어가는 돈이 월평균 소득의 20%를 넘는다는 응답자가 315명(26.5%) [....]"
- 한겨레 안창현, "6개월간 빚늘어" 21%…서민가계 '파산 위기'중에서 (2008. 07. 24)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00474.html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 기사를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적인 시민들이 걱정하는 건 값비싼 부동산으로 인한 '종부세'가 아닙니다. 치솟는 물가 걱정, 교육비 걱정만으로도 이미 그 걱정이 차고 넘칩니다. 여력이 부족합니다. 중소기업 과장인 조광우씨도, 경기 일산에 사는 공모원 손정수씨도, 경기 용인에 사는 중장비 운전기사 박선주씨도 그다지 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이들을 위한 세제정책이 '특별한' 서민들을 위한 종부세 걱정보다 우선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만 거듭 부탁드리는 바, 정부 여당과 (이른바) 보수언론은 '특별 서민들'과 '보통 서민들'을 혼동하지 말아주십시오.
특히나 조선일보는 특별한 서민들을 걱정하는 걸 탓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 '특별한' 서민들을 그저 '서민'들이라고 강변하지는 않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좀 더 많은 부동산 자산을 갖고 있는 국민에게 좀더 큰 부담이 따르는 세금제도는 그 자체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세제입니다. 이것이 조세정책의 정도(正道)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조세제도는 아직도 부에 비례한 정직한 세제라기 보다는, 여전히 '2%'의 특별 서민을 '보통 시민'들과 혼동하는 느슨한 조세제도라는 생각을 지울 길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조선일보에서는 이렇게 '물타기'합니다.

작년 대선과 올해 총선을 거치며 '세금당'이라는 비난을 들었던 민주당은 "거래세는 내리겠다"며 관련 법안을 냈고, 종부세에 대해서도 김종률, 이용섭 의원 등이 은퇴 고령자 중 실소유자에 대해선 종부세를 일시 유예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박병석 당 정책위의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보유세는 현실화하고 거래세를 낮추자는 것이 당론이지만, 개별 의원들이 낸 종부세 개정안에 대해선 서민보호 차원에서 신중히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정우상, 정치권 종부세 딜레마 중에서. (2008.07.28.)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7/28/2008072800050.html

민주당을 '세금당'이라고 비난했던 2%의 '특별 서민들'이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 곧 2%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조세정책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반감을 가진 준특별 서민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과연 조선일보의 지적처럼 민주당을 '세금당'이라고 비난하는 '보통 서민'들이 과연 얼마나 존재하는지는 의문입니다.

당신은 특별 서민입니까, 아니면 보통 서민입니까?
조선일보에서 특별하게 걱정하는 특별 서민이든, 아니면 그저 힘겹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보통 서민이든, 이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2%만을 위한 부동산 세제 정책은 있어서는 안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 이 글은 '에듀머니닷컴'에 수록될 글의 초안입니다(아직 에듀머니닷컴은 정식 출범하지는 않았구요. 오늘 낼로 정식 출범할 예정입니다. 오늘 이 초안을 다듬은 글(좀 추고할 부분이 많을 줄 알았는데, 별반 다르지 않은 글이 되었네요. ㅡ.ㅡ;) 로 정식 출범했습니다. 정말 소박한 출발이네요.. ^ ^;; 저는 에듀머니닷컴의 외부 필자이자 블로그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조언자 자격으로 참여합니다.  '민노씨.네'는 그저 평범한 경제문외한으로서, 배우는 입장에서 경제교육업체 에듀머니와 함께 우리 이웃들인, 그러니 나, 여러분, 우리와 같은 서민을 위한 건강한 가정경제를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이정환닷컴이나 foog.com과  같은 '선수급' 블로그들로부터 많은 교류와 배움을 얻기를 기대합니다.

덧. 아, 그리고 앞으로 에듀머니(현 종각역 앞 삼성증권 빌딩 20층) 회의실(3실. 각각 20명, 10명, 8명 정도의 회의가 가능한)은 어떤 주제의 블로거 간담회를 위해서도 일정한 요건(사전 요청 및 시간 조율을 통해)하에 '야간 개장'할 예정입니다. 진로 포도주든, 시원한 캔맥주든 이야기가 고픈 블로거들이라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저에게 연락주세요. 커피와 각종 차, 물은 무한 제공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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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종부세 내리니, 서민은 세금내라

    Tracked from ISSSSSUE 2008/07/28 12:22 del.

    9억 짜리 집 있는 강남 중산층과 6억가진 서민을 위해 종부세 제한을 9억으로 올리겠다고 하더니, 이제 저소득층에게 세금을 내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당연하죠, 세금 쓸 곳은 많은데 종부세, 법인세, 소득세, 재산세등 내리겠다는 말만 했으니 어디서 돈을 걷어서 메꿔야합니다. 과연 어딜까요? 정부 '감세 보전할 증세도 추진' "넓은 세원, 낮은 세율" 말이 좋습니다. - 근로소득공제나 16개 항목의 특별공제는 줄이겠다고 합니다. 소득세 조금 감소시키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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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히치하이커 2008/07/28 10:31

    경제를 들먹이며 종부세가 세금 폭탄이니 어저고 떠드는 놈들이야 그렇다손 쳐도 거기게 혹하는 '그냥 서민'들은 대체 뭘까 싶습니다.

    아니, 대체 부동산만 6억원짜릴 가진 서민이라니...상식적으로 말이 되나요.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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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28 15:32

      그게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한거라서... ^ ^;;
      시세를 기준으로 하면 훨씬 뛸 거라능... ㅡ.ㅡ;;

  2. brainchaos 2008/07/28 11:01

    사실 저런 기사들이 서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 주는 군요..

    결국 빈민이였네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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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28 15:33

      저런 기사들 때문에 안그래도 팍팍한 삶이 더 팍팍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괜한 환상(재테크 대박심리)에 빠지거나 말이죠.

      저와 동지네요. ㅎㅎ

  3. foog 2008/07/28 12:29

    에듀머니의 필자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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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28 15:35

      저 개인적으론 푸그님 같은 고수들께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싶습니다. 저 같은 소박한 문외한들이 함께 배우고 대화나눌 수 있는 서민 경제, 작은 경제에 관한 블로그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

  4. A2 2008/07/28 12:35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저런 기사를 쓰는 것은 싫지만 이해는 됩니다.
    이해가 안되는건 돈없는 진짜 서민(빈민?)이면서 저런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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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28 15:37

      자신이 누리고 싶은 그 욕망을 모방하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정말 이성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5. Draco 2008/07/28 13:19

    저는 정말 궁금한게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저런식의 논리를 쓰는것은..
    국민들을 속여서 부자들을 유리하게 만들려는것일까요,
    아니면 진짜로 저렇게 생각하거나 저런 논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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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28 15:38

      그 두개의 욕구(이기심)과 세계관(돈많으면 장땡)이 아주 강하게 결합된 구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6. DalKy 2008/07/28 13:36

    먼저 에듀머니의 필진이 되신것을 축하드립니다.
    가뜩이나 세금 나가는것도 빠듯한데 말려죽일려고 작정을 했나보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저 블로그 새로 개설하였습니다. 티스토리에서 다른곳으로 이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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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28 15:39

      앗, 달키님 이사하셨군요!
      화장지라도 사들고 집들이 가야겠습니다. : )

  7. bum 2008/07/28 14:29

    부동산을 재태크의 대상으로 볼 정도의 사람이 서민일지.
    제나이 30초반에 집한번 사볼려고 발버둥 쳐봐도 늘어가는 저축보다 몇십배 빠르게 올라가는 집값인데. 저는 저들이 말하는 서민 이하에 속하는 군요.
    영세민/서민/중산층/부자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저는 30초반에 대기업 직원이라죠..

    ps. 이번에 부동산관련 세금 내리고 빠지는 세금은 다른곳에서 충당한다는데 제게는 부자는 세금을 더 적게 내고 비는 세금은 부자 이하사람에게 걷겠다로 들리는군요. 성을 더 높이 쌓아올려서 밖의 사람이 절대 넘보지 못하게 하겠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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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28 15:44

      아직 나이도 어리시고, 대기업 직원이시라니...
      많은 분들이 부러워하는 조건이시네요.
      (약올리기용 댓글? ㅎㅎ 농담입니다. )

      bum님 같은 대기업(직원들)은 사정이 나은 편인 것 같습니다.
      최근 키코(kiko)사태를 보면 강만수의 머저리 같은 환율정책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더만요. 물론 계약의 일차적인 책임자들은 중소기업 본인이지만, 엉망인 국가 정책과 은행의 비도덕적인 일단 팔자 행태가 초래한 비극인 것 같습니다.

  8. 점프컷 2008/07/28 16:36

    에듀머니의 필자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2)

    방금 사이트 대충 둘러보고 왔는데...이런 사이트 아주 좋은거 같습니다. 에듀머니 좀더 지켜보고 관련 포스팅 해볼께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8/07/28 19:15

      점프컷님 말씀 고맙습니다.

      에듀머니 블로그도 개장했습니다. ^ ^
      http://edu-money.com

      지금은 좀 심심하지만, 솔직하고, 소박한 가정 경제이야기들로 따뜻해질 수 있다면 좋겠네요... : )

  9. 민노씨 2008/07/28 19:43

    추 말미 수정 입력.
    덧 입력.

    perm. |  mod/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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