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터에 짧게.

며칠 전에 곽현화 가슴노출과 관련해서 이슈(?)가 된 적 있다.
이 이슈에 접근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1. 이런 이슈가 있구나~!
2. 이런 이슈가 이슈가 되다니 문제다!!

특히 연예/스포츠 뉴스를 '전문'으로 다루는, 이 때의 '전문'을 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암튼, 연예 찌라시 저널리즘은 종종 2의 관점을 은근히 강조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합리화하는 경향을 강하게 갖는다.

가령, nKing 뉴스('소비자가 만드는 뉴스')라는 나로선 난생 처음 듣는 인터넷 언론에서 연예계 가십을 다루는 방식을 보자.

ㄱ. 임수정 얼굴 안 늙는 이유 있네 (송숙현 기자. 2008-01-13)
ㄴ. 곽현화.이윤지와 4억 소녀 "노출이라고 다 같은 것 아니야" (송숙현 기자. 2008-01-13)

ㄱ.을 접할 때는 왠지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자고로 이것이 연예 찌라시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지.. 암.. 이런 평온감말이다.

그런데

ㄴ. 처럼 '노출'을 구별하면서, 연예계에서의 노출은 '자발적 노출'과 '비자발적 노출'로 나뉜다(오, 심오한 관찰이다), 이것이 마치 무슨 대단한 도덕적 판단 근거의 차이인 양 이야기하면... 뭐랄까, 좀 어처구니가 없어진달까... 그런 느낌이다.

이런 어설픈 도덕적 비판 혹은 차이를 강조하는 관점은 그 소비적인 이슈를 확대재생산하면서 '미끼질'하는 스스로에 대한 합리적인 면제부랄까, 그런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도  쪽팔린 걸 아는거지. 그러니 어떻게 하면 이 자극적인 이슈를 한번 더 우려먹을까를 고민하다가, '노출'이 갖는 차이(자발적인가, 비자발적인)를 고안해낸거다(그 노력은 높게 평가한다).

젖가슴 보이거나 말거나.
그럴수도 있지, 뭐, 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ㅡ..ㅡ;
이게 세속적 관심 대상이 된다는 걸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그 이슈를 무슨 대단한 도덕론을 내세워서 차이를 만들거나, 비판하는 척 하면서 그 소모적인 이슈에 동참하는 일은 좀 안했으면 한다(내가 지금 하고 있는게 그런 것일 수도 있다. ㅎㅎ).

그런데 한편에서 생각하면 어떤 이야기를 하건간에, 그 표현의 자유, 주제 설정의 자유는 불가침이다. 그런 차원에서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참 웃기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연예 찌라시 저널리즘이 너무 압도적으로 포털을 점령하고 있는, 아니 포털과 포털의 하청 연예 찌라시업체들이 짝짜꿍하는 이 판국이 정말 염려스러워서 짧게 한마디 해봤다.

그래도 공적으로 그 의미가 고민되고, 소통될 만한 뉴스와 그저 연예인 신변잡기에 '관심'을 '강요'당하는 그 콘텐츠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웹상에서는 현저히 그 균형을 상실했으리라 예측하는바다. 연예인 신변잡기 뉴스가 필요없다는 거 아니고, 그렇다고 심각한 정치, 사회 이야기만 하자는 건 더더욱 아니다. 다만... 불균형이 너무 심하고, 연예이야기 하더라도 좀 창의적으로 하자는 그 말이 하고 싶었다.


요즘 포털에 우연히라도 발을 들여놓으면...
그런데 내가 여기 왜왔지... 하는 순간을 '기어코' 만나게 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무관심이 최고다. ㅡㅡ;







손학규에 훈수두는 조선일보 사설

2008/01/11 13:40
간단하게.
조선일보 삽질 사설에 대해

신당이 손 대표를 내세운 것은 당장의 총선 때문일 것이다. 당의 이념적·행태적 좌편향을 대선 대패의 핵심 원인으로 읽고 손 대표의 경기지사 경력을 수도권 총선에 활용하면서, 당 호적부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흔적도 최대한 묽게 해 보려는 생각이다. 실제 손 대표 카드를 밀고 나간 사람들은 수도권의 386 세력이었다.

1. "당의 이념적 행태적 좌편향"
이런 무식하게 정교한(?) 표현을 보면, 그냥 뭐, 쉽게 '벅유'를 날려주고 싶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통합신당, 그 전신인 열우당(+민주당)의 이념적 행태적 좌편향의 사례들을 알고 계신 분은 댓글 플리즈~!!!


이해찬 전 총리가 "손 대표가 정치 생활을 했던 한나라당의 정치적 지향은 내가 추구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라며 이날 탈당했다. 이런 '이념형 탈당' 세력은 더 나올 가능성이 높다. 신당 충청권 의원들은 총선에서 살기 위한 '생계형 탈당'을 모색하고 있다. 새 정부의 기세가 높은 상태에서 이렇게 신당이 안에서부터 무너지면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어떻게 치를지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2. "이념형 탈당"
ㅎㅎㅎ

3. "생계형 탈당"
ㅋㅋㅋ

이래서 김훈이 '조선일보 사설 읽으면 소름끼친다'고 했던건가?(이게 나쁜 뜻이 아니라 너무 잘쓴다는 의미로다가. 한겨레 21 쾌도난담인가 뭐시긴가에서 '내 딸은 페미니즘같은 이상한거 물들지 않아서 다행이다'랑 이 조선일보 사설 발언 문제되서리 한겨레에서 나왔다고 하던데...맞나? 기억이 희미해서리... 뭐, 그래도 솔직하니까 좋긴 하다.)


손 대표는 한나라당에 오래 몸담았지만 정치 노선 자체는 중도 진보 쪽에 가까웠던 사람이다. 이제부터 신당은 이명박 정부의 실용적 신보수주의 기조에 대항하는 구체적 정책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4. "실용적 신보수주의"
ㅎㅎㅎㅎㅋㅋㅋㅋ
오, 폼난다.

나 혼자 웃기 아까워서 그냥 끄적거려봤다.
조선일보, 말장난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힌다.
김훈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해서... 예전엔 김훈이 미쳤나, 이랬었는데....

나는 조선일보가 두렵다.
이런 말장난을 심각하게, 폼나게 하는 조선일보가 정말 두렵다.



p.s.
사설 제목 및 링크 주소 댓글창에.




존대로 글 쓰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 )

태안 삼성호 사건과 관련해서 우리나라 언론사의 보도행태를 검토하고 있는데요. 연합뉴스 인용 저널리즘이라고 부를만한 하더군요. 각 개별 언론사에서 작성한 기사들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가령 지난 한 달 동안(2007. 12. 7. 사고발생일 ~ 2008. 1. 10.)까지 조선닷컴을 기준으로 살펴보면(검색어 : 삼성중공업) 대략 40 여개의 기사 중에서 조선에서 직접 작성한 기사는 10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도, 조중동별, 연합뉴스 인용기사별, 한겨레 프레시안 기사 등등으로 정리하려니 시간이 걸리네요.

읽으시는 분들의 가독성 및 주제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하니 작성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글등록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차라리 삼성호 사건과 엑손 발데즈호 사건 비교의 각 논점 주제별로 언론사들의 보도물을 인용하는 방식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잠정적입니다).

여기서 일단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 언론사들이 과연 태안 삼성호 사건과 관련해서 사건 및 향후 제반문제를 취재하려는 의지가 있는가라는 점입니다. 물론 최근 MBC의 보도(MBC, '태안 사고' 삼성에 정조준 - 미디어오늘)는 그 의미를 평가합니다(덧. 이메가 정권에서는 공영방송 MBC가 민영화-그 실질적 의미는 사영화-될 것 같은데요. 그러면 이런 보도 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한겨레 21의 특집(2007. 12. 20.)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태안 삼성호 사건과 비교되어 종종 언급되는 사건이 있었죠. 맞습니다. 세계적인 정유기업인 '엑손모빌'
이 막대한 '징벌적 배상'판결을 받은, 미국 최대의 환경 재난으로 뽑히는 '엑손 발데즈'호 기름 유출 사건입니다. (참고 : 지난 2006년 엑손모빌이 벌어들인 연간 수익은 모두 395억달러. vs. 삼성중공업 2007년 11월까지 수주실적은 96척 184억 달러. 현대重, 올해 수주실적 '200억불' 돌파 .기사 참조. 한쪽은 수익이고, 한쪽은 매출이라서 일단 비교는 안되는 수준이긴 합니다)

다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습니다.

한편 지난 2006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재계와 일부 언론의 반발로 실패했다.

김성호 당시 법무부 장관은 "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이 날로 증가하고 그 종류도 새로워지고 있지만 손배소로부터 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하다"며 "경제 활성화를 위해 혁신적이고 역동적인 기업들의 경영활동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
MBC, '태안 사고' 삼성에 정조준 - 미디어오늘 중에서

그래서 궁금해서 한번 찾아봤아 봤습니다.
특히 '하트브레이크'님께서 정리한 자료(하필 조선닷컴 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글이었지만요)가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합니다.
글 부피상 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덧. 주제 단일성이나 집적이익, 독자 편의를 위해 이 글에 이어서 씁니다. ㅡㅡ;

0. 삼성호 사건

"충돌사고가 일어나면 공식 명칭이 삼성 선박 명칭을 딴 것이어야 한다는데 아직 태안 사건으로 불리고 있군요" - shain

이제부터라도 태안 사고라고 부르지 말고, 삼성호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떨는지요? 그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연 재해가 아닌, '인재'인 것이 이제는 분명하다면 더더욱 사건의 일차적인 책임 제공자인 '삼성(호)'를 그 사건 명칭에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건, 사고는 사전적 의미 차이는 크지 않겠습니다만, '사고'가 그 어감상 인간적인 제어가 불가능하다는 어감이 강한 반면, '사건'은 그 어감상 인간적인 개입이 좀더 가능한 차원에 속한 것 같기도 해서(이럴 땐 '엔디'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네요. ㅎㅎ), 굳이 사고라고 하지 않고, '사건'이라고 표기합니다. 앞으로 소송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지금까지 거의 모든 언론보도물들(특히 조중동)에서는 '삼성호'보다는 '태안'을 강조해왔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의도적이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진 함의는 두 말하면 잔소립니다. 다만, 많은 분들께서 '태안'이라는 이미지가 익숙하시니 이 글에서는 '태안' + '삼성호'를 붙여 '태안 삼성호' 사건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이하 인터넷상 자료를 취합해서 간략하게 양 사건을 비교합니다.



1. 원유 유출량

엑손호 : 약 4만 Kl
삼성호 : 약 1만 2천 5백 Kl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유조선과 해상크레인 충돌사고로 1만2547㎘의 원유가 유출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해양수산부는 사고 유조선인 허베이 스피리트호의 원유 선적량과 하역전 잔량 차이를 조사한 결과 1만2547㎘(1900M/T)가 해양으로 유출됐다고 19일 밝혔다.

이는 사고 직후 발표된 원유 유출량 1만500㎘ 보다 2047㎘(19.5%)가 많은 것으로 지난 95년 전남 여수에서 발생한 씨프린스호 원유유출 사고 때의 5035㎘에 비해 2.5배가 된다. 출처 : 머니투데이


1-1. 기름유출 사고시 톤을 쓰지 않는 이유

: 조선일보의 12월 18일자 '해양수산부는 해양오산부' vs. 해양수산부의 해명 자료
   
[심층 분석] 해양수산부는 해양오산부? / 이진석 기자 (조선일보)

물은 1㎘가 1t이지만, 기름은 1㎘=0.7t 정도에 해당된다. 따라서 유출된 기름 부피 1만500㎘를 중량으로 환산하면 8000여t이 된다. 이런 기초 상식을 몰라 잘못 계산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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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심층분석은 아니고, (노무현 정부하) 해양수산부 한번 까보자는 취지라고 보여집니다.


이에 대한 해양수산부의 해명 요지

이러한 이유로 이번 사고의 기름 유출량의 단위를 톤으로 환산하여 적용하기 곤란했으나, 해양수산부에서는 사고 첫날 발표시 일반 국민들이 씨프린스사고 때의 유출량(1995년 사고당시에는 유출된 기름이 단일 종류로서 톤으로 환산하여 통용)과 비교하기 쉽게 하기 위하여 용적톤의 의미인 톤을 사용한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이유로 톤 적용이 부적정하여 이후부터는 일관되게 기름 유출량의 단위를 ㎘로 발표하여 왔고 취재기자에게도 ㎘ 단위를 사용토록 권고하여 왔습니다. 따라서, 물과 기름의 비중에 차이가 있다는 기초 상식을 몰라 잘못 계산한 사실이 아님을 밝혀 둡니다.  - 위 해명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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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유출된 원유의 회수 가능성

ㄱ. 일반적인 회수율


"사고11일째인 17일까지 수거된 기름은 전체유출량의 28.5%인 3090여kl에 불과하다"는 보도에 대하여 바다에 유출된 기름을 100% 전량 회수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며, 국제적으로 대형 기름유출사고의 경우 회수율이 20∼30% 정도면 높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99년 발생한 에리카호 유출사고의 경우에도 유출원유 1만4천톤 중 유회수기 등을 통해 회수한 양이 400여 톤(약3%)에 불과하였습니다.

- 위 조선일보 보도에 대한 해양수산부의 해명 중에서


ㄴ. 액손 발데즈호 사건의 경우


올 초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기름이 유출된 지 18년째를 맞았지만 사고 해역엔 여전히 10만ℓ(약 630배럴) 이상의 기름이 남아 있다. 한 해 자연 분해되는 양은 전체 잔존 기름의 4% 남짓에 불과하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여전히 남아 있는 기름에서 새나오는 독성 물질이 생태계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이다.

- 18년도 기름을 지우지 못했다.(한겨레21) 중에서


ㄷ. 더불어 - 원유 회수를 위한 유처리제 문제

유처리제의 통상회수율은 20%, 20~30% 증발, 50%가 생태계 잔류(김상진 박사, 해양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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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후속글로 [연재 2/2]로 이어집니다.
덧. 여기에 이어서 씁니다.

후속글에서는

2. 피해규모
3. 배상금액
4. 결 - 결국은 돈문제

를 목차로 삼아 쓸 예정입니다. (덧. 쓴다 쓴다 하면서 못쓰고 있네요. ㅡ.ㅡ;)


* 특히 도움이 된 글.

하트브레이크님 정리글 (조선닷컴 의견 게시판)


* 이 글은 관심 환기를 위해 올블 [나의 추천 글]에 올립니다.




* 관련 추천글

액슨 발데즈호 사건의 처리 과정을 보면 국민을 배려하는 정부와 그렇지 못한 정부 사이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정부는 직간접 피해 보상은 물론 청소비용까지 남김없이 지급하게 했다. 책임감 있는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셈이다. 시프린스호 사건 때 청소비용은커녕 피해 보상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우리 정부의 무능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중략)

울고 있는 태안을 달랠 유일한 방안은 직간접 피해 전액을 보상해 주는 것밖에 없다. 억울한 피해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나와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과실을 입증해 사고 유발 기업에 무한책임을 묻든지, 아니면 정부 스스로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만이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가 피해 주민에게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국민의 권리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는 세금을 거두어갈 자격이 없다.

- 이준구, 한겨레 칼럼 '태안이 울고 있다' 중에서




다소 아쉽지만, 반가운 소식이라서 짧게 요약.


"처분적 법률이지만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위헌 아니다" (헌재)


* 동행명령제만 위헌 (영장없이 동행명령할 수 있다는 규정은 위헌)
* 나머지는 합헌
* 결론적으로 합헌 결정.
* 따라서 정호영 특검은 오는 1월 14일부터 최장 40일간 수사에 착수할 수 있게 됐다.

1. 대법원장이 특검 추천 : 합헌. 대통령 임명절차 있으므로 권력분립에 반하지 않는다. 지난 7일 노무현 대통령이 정호영 전 서울고등법원장 임명.

2. 참고인 동행명령권 : 위헌 (법무부가 특히 위헌 의견을 냈던 부분)
동행명령권에 대한 관한 규정은 위헌판결을 받았지만, 수사는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참고인 소환에 대한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 예상된다. 따라서 기존 검찰수사(이명박에 대한 무혐의결정) 외의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우리나라 수사기관은 본래 참고인 구인제도 없이 수사를 해왔고, 여론을 고려해 참고인들이 마냥 출석을 거부할 수는 없어 특검수사에 큰 차질을 빚지 않을 것이라는 반대 의견"(연합뉴스)도 있다. 


3. 정치권 반응 (YTN 참조)
ㄱ. 한나라. 매우 아쉽지만 수용한다.
ㄴ. 청와대. 헌법재판소 결정을 존중한다. 국민들 의혹 해소되기를 기대한다.
ㄷ. 나머지 생략. ㅡㅡ;


4. 결

검찰은 이명박 후보와 BBK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이명박 후보 자신의 언론인터뷰, 명함, 이력 에 대하여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명함을 직접 그로부터 받았다는 지인에 대하여, 그리고 이명박 후보가 BBK와의 관련성을 스스로 인정한 수차례에 걸친 별도의 인터뷰 과정이나 내용조차 조사하지 아니하고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지난 대선기간 중 원로 7인 성명서 중에서)

ㄱ. 언론 인터뷰 부분 (아참, 광운대 동영상도 꼭!)
ㄴ. 명함 부분 (이장춘)
ㄷ. (명함의) 이력 기재 부분

개인적으론 동행명령권이 없는 점이 몹시 아쉽다.
흐지부지 안되길 바랄 뿐이다.
지난 떡검처럼 개판치면 정말 화가 많이 날 것 같아서 말이지.
최소한 위 세가지 부분에 대해선 꼭 좀 명쾌한 수사와 결론을 국민들에게 알려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명박 당선자도 꼭 좀 소환해서 조사하고 말이지.



p.s.
처분적 법률과 518 특별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 처분적 법률 (處分的 法律, Maβnahmegesetz)

(개념) 처분적 법률은 행정적 집행을 매개로 하지 아니하고 직접 국민에게 권리나 의무를 발생하게 하는 법률, 즉 자동집행력을 가지는 법률을 말한다. 따라서 처분적 법률은 일정한 범위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어떠한 처분이나 조치 등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항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취지) 이러한 처분적 법률은 현대사회국가에 있어서 일반적 법률만으로는 국민의 생존과 복지를 충분히 보장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비상적 위기상황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하여 집행을 매개로 하지 아니하고 직접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처분을 내용으로 하여 그 필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유형) 처분적 법률은 일정범위의 국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개별인 법률(예: 이명박 특검법), 개별적, 구체적인 상황 또는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개별 사건법률(예: 518특별법), 시행기간이 한정된 한시법률 등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우리나라의 처분적 법률을 예를 들면, 개별인법률로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정치활동정화법, 부정축재처리법, 정치풍토쇄신을위한특별조치법 등을, 개별사건법률로는 긴급금융조치법, 긴급통화조치법 등을, 한시법률로는 재외국민취적, 호적정정및호적정리에관한임시특별법 등을 들 수 있다.

출처 : Law4u(법률위키)


1. 절대주의시대에서는 특권계급의 특권을 보장하는 개별 법률로 인해 다수 시민이 차별받았다(특히 경제적인 차별). 근대입헌주의시대에 들어서 시민세력은 이러한 차별을 배제하기 위해 법을 '일반화, 추상화'하게 된다(평등을 강조).

2. 하지만  현대사회적 법치국가에서는, 역으로, 적극적인 사회적인 불평등을 시정하고, 사회적 정의의 실현을 위해 일반적 법률 뿐만 아니라, 처분적 법률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3. 헌법상 처분적 법률은
ㄱ. 권력분립원리상, 즉 행정부의 집행과 사법부의 재판을 거치지 않고, 직접 권리, 의무를 부과(자동집행력)을 가지므로 행정부와 사법부의 권한을 침해할 소지가 있고, ㄴ. 이명박 특검법처럼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평등권상 문제된다(일반적인 추상적 법률 외의 이중의 법규제를 받는 점에서).

4. 다만 처분적 법률은 실질적인 평등과 적극적인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또 사회적인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허용될 수 있다. 또 518 특별법과 같이 사회적, 역사적 의미가 큰 경우에는 그 공익을 위해 인정될 수 있다.

5. 그러나 극단적 개별적, 구체적 처분은 불가능하다. 사회적 기본권과 관련해서는 허용될 여지가 크지만, 특히 자유권, 참정권을 제한하는 처분적 법률은 그 허용이 매우 제한적이다.


* 518 특별법 사건
헌법재판소 1996.02.16 96헌가2 96헌바7 96헌바13 전원재판부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제2조위헌제청등】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특별법 제2조가 개별사건법률로서 위헌인지 여부 (X)

개별사건 법률은 원칙적으로 평등원칙에 위배되는 자의적 규정이라는 강한 의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지만, 개별법률금지의 원칙은 법률제정에 있어서 입법자가 평등원칙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규범(518특별법을 가리킴)이 개별사건법률에 해당한다고 하여 곧 바로 위헌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차별적 규율이 합리적인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에는 합헌적일 수 있다. - 헌재 판결문 중에서




* 관련 추천 기사
동아, "BBK 수사 물 건너 갔다" 노골적으로 환영 (미디어오늘, 김수정)





0. 제닉스블로그의 '태안 음모론'에 대한 비판글 때문에 솔직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격려도 있었고, 욕도 먹었는데... 결론은 나 역시 '방향' 설정에 실패하고 있다는 반성이다. 오버하지 말자고 해놓고 나역시 오버한 민망함이랄까.

해서 논의를 생산적인 방향과는 전혀 상관없이 과열시킨 것 같다. 그래봤자 쥐똥만한 블로그판에서 웅성웅성하는 수준이긴 하지만...이게 현실이긴 하다. 아직 블로그는 찻잔 속에 있다. 물론, 나는 블로그의 가능성을 누구보다 신뢰하고, 기대하는 사람이다.   

암튼 2008년 블로깅 컨셉(ㅡㅡ;)이랄까, 2007년에는 너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한 채로 속으로만 웅얼웅얼거린게 아닌가 싶어서... 그런 마음 때문에... 좀더 솔직하게, 욕먹더라도, 내 천박한 속물근성이 들키더라도 좀 과감하게 저지르자 싶었는데... 역시 하던대로 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살짝 들고...

어떤 사안이든, (궁극의) 메시지에 대한 (내적) 긴장과 갈등이 없는 글은 좋은 글이 되기 힘들다는 평범한 진실을 다시 깨닫는다.

'태안 음모론'에 대한 비판글에 대한 과열된 반응, 그리고 내 스스로에 대한 반성, 내 속물근성에 대한 짜증 때문에, 원래 쓰고 싶었던 (다른 주제의) 글까지 못쓰고 있다(사형제도와 금자씨에 대해서 쓰고 싶었는데 말이지. 나는 사형폐지에 찬성하지는 않는다. 그 밖에도 이런 저런 글들.. ).

그래서...
어쨌든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간략하게 쓴다.
물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내가 간략하게, 혹은 짧게라고 했을 때 그게 정말 간략하거나, 짧은 경우는 별로 없다. 처음에는 분명히 간결하고, 짧게라고 생각하고 정말 최소한으로 쓰겠다고 굳게 다짐하지만.. 쓰다보면 길어진다.

암튼 짧게.


1.
태안 음모론 포스트에 대한 비판글(내 글)이 갖는 문제는 '선정성'과 '무책임함'에 대한 '비판'에 치중한 나머지, 묻히고 있는 문제를 어쨌든 공론화한 공로(문제제기)에 대한 '평가'의 부분에 소홀했다는 점이다. 인정한다. 물론 마지막 단락에 문제제기의 일부 긍정적 취지를 인정한다고 썼지만, 전체적으로 그 메시지는 글 전체의 구도 속에 그냥 묻혀버린 것 같다. 내가 봐도 그럴만하다.

이하 반성과 항변(변명)을 겸해서 지난 하루 반나절 동안의 소동을 정리해본다.


2. 같은 형식의 반대 메시지

조중동식 틀짓기의 특징은 사실의 단면을 확대과장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는데 있다. 태안 음모론에 대해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건 그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닉스님에 대한 개인적인 선입견도 일정부분 작용한 것 같다. 그러니까 발랄상큼하긴 한데... 뭔가 겉멋든 명망을 찾는 거 아닌가 싶은... (왜 그런 선입견이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점 역시 반성한다).

그런데 명망을 구하지 않는 블로거는 솔직히 단 한명도 없다. 누구나 (그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마찬가지지 뭐. 물론 평판을 쫓는가, 인기를 쫓는가는 구별되어야 하고, 그건 경험을 통해 저절로 구별되긴 한다. 하지만 나는 제닉스 블로그에 대한 체험치가 거의 없다시피하다. 그러니 이 피상적인 선입견에 대해선 스스로 반성한다. 이 점에 대해선 부족하지만, 이 자리를 빌어 제닉스님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3. 그 문제제기의 가치만은 긍정한다면 논의를 좀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돌려야 하는 것 아니었나?

글을 쓰면서도 속으론 꽤 고민했던 부분인데(그렇다, 변명이다), 댓글 논평을 읽으면서, 소요유님의 트랙백을 읽으면서, 그리고 새드개그맨님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더 그런 반성을 한다. 너무 비판에 치중해서, 덩달아 흥분하고, 목소리를 높인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 논조와 방향 설정에 대한 방법론에서 실패한 것 같다. 가장 깊이 반성하는 부분이다.

물론 여전히 블로거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수사관'이 되어 조사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는 영역이 분명히 있을테지만, 최소한 이번 태안 사고의 경우에는 열혈블로거들이 그저 단편적인 인터뷰 몇개 만으로 총체적, 실체적 진실을 '확정'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제닉스님께서 취재한 그 동영상을 어떤 방향에서 활용했어야 했는가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깊었다.

사족으로, 본문에 링크를 남기고 싶은 생각 없다고 말한 건 '동영상 + 글'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가치평가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제기의 차원에서 '동영상' 부분은 충분히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최소한 그 문제제기의 의미부분은 충분히 평가했어야 했는데, 너무 감정적으로 편협하게, 혹은 나름의 블로깅 방법론에 대해 엄격하게 생각한 것 같다.

동영상 1. 유튜브
                     동영상 2. 유튜브
                                          제닉스님의 최근 글(태안사태 마지막 보고서)


이에 대한 새드개그맨님의 논평.

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인터뷰 자체의 자료로서의 의미는 크다고 봅니다. 다만 인터뷰 자체가 전부인 양, 그리고 더 나아가 조작이네 음모네하고 포장한 행위의 경솔함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제닉스님께서 취재한 그 동영상을 어떤 방향에서 활용했어야 했는가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깊었습니다."라는 민노씨의 의견과 일치한다고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새드개그맨)


4. 블로그 콘텐츠에 대한 신뢰 문제 (선정주의의 만연) 및 명예훼손 문제

다만 '정황의 과장'을 들려줄 것이 당연한 피해 어민의 인터뷰만을 근거로 사안을 확대과장하는 것은 오히려 (이 문제가 제닉스님의 의도처럼 ‘삼성 음모론’으로서 공론화되었을 때) 블로그에 대한 평가저하(무책임, 선정주의) 뿐 아니라, (공론화를 피하려는 삼성의 의도상 그럴 확률은 적겠지만), 명예훼손의 혐의마저 강해보입니다. 그랬을 때 공익과 '정당한 오해' 가능성의 차원에서 제닉스님의 주장과 그 주장의 근거들이 위법성을 조각할 것 같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내가 새드개그맨님께 남긴 댓글 중에서)

이게 정말 제닉스님을 걱정한 건지, 혹은 코딱지만한 블로그판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닉스'라는 (나름) 명망있는 블로그라서 좀더 비판적이 된건지, 아니면 정말 블로그계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의 신뢰도에 대한 염려였는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내 마음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생각이 없지 않았다. ( 관련글 : 인터넷은 과장과 왜곡의 산실인가? )

이에 대해 새드개그맨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주셨다.

명예훼손과 관련해서 말씀드리자면 문제화 되기 상당히 어려운 구조지만 (공론화를 피하고자 하는 삼성의 의도 뿐만 아니라 '삼성이 일개 네티즌과 싸운다' 이거야말로 국민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삼성의 위상이 땅에 떨어지는 자충수가 되겠지요), 명예훼손 여부가 이슈화 된다 하더라도 명예훼손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지 않을까 (즉 구성요건 자체가 성립이 안될 것 같다) 하는 생각입니다. 얼마전 서부희 사건 판례 해설 때 논란이 되었던, 이슈 내지 관련당사자가 공인이냐 사인이냐를 기준으로 판단하자는 민노씨의 기준에 입각하더라도 제닉스님의 형사책임이 인정되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판례는 아닙니다만 이랜드 관련 노조원들의 명예훼손성 게시물에 대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정통윤의 판단도 있었지요)

위 답변과 관련한 팟캐스트는 다음 링크를 참조.
 
위 관련링크에 대한 댓글에 명예훼손과 관련한  '공적/사적, 공인/사인'에 대한 좀더 자세한 내 의견이 있다.


4-1. 명예훼손에 대한 사족. (사족이라 숨기기 기능 사용).

more..



5. 이슈 환기의 방법론 : 블로기즘과 저널리즘.

방법론적 차원에서 진실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것과,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확정해서 선동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블로거들이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영역은, 저널리즘이 '이것은 진실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영역보다 넓지 않다. 물론 양자 모두 협소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조직의 유기적인 조력을 받는 기업화된 저널리즘 생산시스템은 기초되는 사실 취재에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사실은, 잦은 경우에, 주관적인 가치판단을 넘어서, 진실과 닿아 있는 수가 많다.

블로기즘은 '진실은 이것이다'를 말하는 속성보다는 '진실에 대한 관심'을 자극하고, 호소하는 기능을 주로 갖는다. 특히나 이해당사자가 대립하는 영역에서는 절대적인 진실이 있기 보다는, '상대적인 진실', '선택적인 진실'이 문제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는 당연히 감정과 도덕에 대한 윤리적, 관습적, 문화적 판단이 내재된다. 이건 저널리즘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문제, 이건 정말 어려운 문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사실' 그 자체에는 종속된다.

어떤 가치판단보다 압도적인 진실을 갖고 있는 '사실'이 많다는 점에서 블로기즘은 저널리즘과 '사실 취재' 경쟁을 하기보다는, 저널리즘이 기만적으로 위장하는 당파성의 한계를 까발기고, '선택적 진실'의 영역에서 그 위선을 폭로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지 않나 싶다. 물론 제한적인 영역에서 사실 취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거대담론, 거대이슈의 무게를 뛰어넘는 일상 속에 있는 '작은 이야기'들의 진실한 감동은 그 모두가 미시적인 영역에서의 체험(취재)에 바탕한다고 말할 수다. 거대담론만이 세상은 아니다. 암튼 하던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

조중동은 물론이거니와, 한겨레조차도 대외적으론 '불편부당'과 '객관성'을 표방하지만, 그들이 가장 잘 하는게 '진실'을 확정하고, 그 자신들의 진실을 위해 '틀짓기'하는 거다. 조중동은 메시지에 대한 내적 긴장이 전혀 없는 점에서(자기이익에 부합하는가가 유일한 기준이다) 반저널리즘이라고 할 만하고, 한겨레는 그래도 그 내적 긴장, 사회와 역사, 도덕에 대한 반성적 사유가 있는 점에서 그래도 인정할 수 있는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당파성 매체로서의 미디어, 특히나 신문 매체의 특질에 대한 추상적이지만 유효한 판단기준인데, 가령 오늘자(2008. 1. 9.) 조선일보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에 대한 감동적인(잘못 쓴거 아님) '사진'을 일면에 실었다. 어제는 당연히 일면 상단 전부를 할애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냉동창고 화재사건 피해자인 '조선족'에 대해 정말 눈꼽만큼도 관심이나 애정이 없는 매체다. 조선일보 일면에 강조하는 메지시란 '감상주의' '휴머니즘' 이런거다. 사진 보면 정말 짠하다. 그런 누구나 피상적으로 감정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눈물 한방울 찔끔하면 끝나는 그런거.

조선족이 한국내에서 어떤 노동조건 속에서 일하는지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 이성적인 고민... 이런거 조선일보에 없다. 조선일보가 관심있는 건 '민족사관고' 아이들이 아이비리그에 몇 명 갔다더라, 뭐 이런거, 우리나라 대학교가 전세계 100위 안에 몇개나 들어갔나, 이런거, 재벌 총수님들 오늘은 무슨 좋은 일하셨나, 뭐 이런거다.

블로기즘은 이런 감상적 선정주의의 유혹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이 말은 그렇다고 해서 블로그가 재미없는 주제를 골 때리게 어려운 말로 풀어가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오히려 그 반대다). 다만 블로거들은 감상적인 선정주의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환경(포털의 실시간 인기 검색어 시스템이라는 그 미로, 각종 메타사이트의 이슈 종속적 포스팅 강화 기제들, 다음 블로거뉴스가 표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유사 저널리즘의 유혹)이므로, 좀더 강한 내적 긴장이 요구된다고 나는 본다.


6. 음모론의 긍정적 확장 - 사건의 재조사 : 삼성(중공업)의 책임 부분이 명확해진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태안 음모론이) 사건의 투명한 재조사를 촉구하고, 삼성(중공업)의 보험상의 책임 뿐만 아니라, 그 후속 책임까지를 분명히 할 수 있도록 여론을 각성하는 방향이 강조되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아가, 조중동의 악질적인 프레이밍과 삼성과 이명박이 서로 어떻게 담합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에 '방점'이 찍혔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이 아쉬움을 새드개그맨님께서 적절하게 메워주시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보험'이 삼성의 경제적 책임 부분을 보완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삼성(중공업)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가중되었을 경우(그럴 확률은 적지만요), 그리고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사건의 재조사를 통해 그 책임소재가 좀더 분명하게 가려지고, 삼성호에 대한 책임(비중)이 좀더 분명해지는 경우 '삼성이 여유있게 웃을 만큼' 그 보험이 삼성의 위험을 완벽하게 커버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남습니다. 만에 하나(더 확률적으론 희박한 이야기지만), 엑손사례처럼 법원이 삼성의 책임 부분을 확정할 수 있다면... 삼성이 여유롭게 웃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싶기도 해서요. (새드개그맨님에게 남긴 댓글)


이에 대해 새드그개님께선 다음과 같은 비관적인(?) 전망으로 답하셨다.

사건을 재조사 한다 치더라도 삼성중공업의 책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강한 풍랑이라는 환경적 요인, 그 와중의 와이어 파열에 따른 긴급 상황 등을 감안할 때 고의성을 인정하기는 힘들 것이며 책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선장의 업무상 과실책임이 주이고 삼성중공업에는 선장을 고용한 업주 입장에서의 사용자책임 정도를 지게될 것입니다. 따라서 삼성중공업에게 법적 위험성은 현재로서는 없어보입니다. (떡검, 떡판 들이 관련된다면 더욱 볼 것도 없겠구요)

정말 정말 만에 하나 삼성중공업의 책임이 일부 인정된다 하더라도 조중동을 비롯한 찌라시 언론들에 의해 여론과의 접촉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역시 만에 하나 이슈가 된다 손 치더라도 "태안 자연 살리기 기금 1조 쾌척!" 이러면 게임 끝이죠. 유조선 건조로 번돈 수십조 중에 1조 쾌척이면 할 만한 장사 아닌가요? (새드개그맨)

'조선업계 음모론'(?)에 의한다면... 이런 전망이 무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와 관련한 법제와 판례들, 그리고 해외의 사례들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강하게 든다.

삼성(중공업)에 대한 시민사회의 압박이 유효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면,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삼성의 의미있는 (사회적) 액션을 유도할 수 있다면,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가는 현재보다는 훨씬 더 의미가 있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이슈에 대한 참여'의 체험이 갖는 민주적인 가치 또한, 지금 당장 보이지는 않아도, 매우 큰 가치라고 생각한다.


7. 이하 인상적인 관련 포스트와 관련 코멘트.

7-1. 가장 인상적인 포스트는 뭐니 뭐니 해도 새드개그맨님의 팟캐스트다.


이 팟캐스트 하나만 청취해도 태안 사태 주요 논점과 의미있는 고민의 방향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태안 음모론에 대한 가장 이성적이고, 냉철한 논평을 만날 수 있으며, 가장 바람직한 논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덤으로, 새로운 음모론(?)을 만날 수도 있다(조선업계 음모론. 농담, 농담유골).
음모론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일독, 아니 일청(?) 당부드린다.

위 새드개그맨님 문제의식을 확장, 구체화해서 조중동 및 기성언론이 '태안'을 바라본 방식, 삼성과의 암묵적 담합, 그 틀짓기의 단계와 방향에 대해 관련 포스팅을 준비할까 싶다. 위 팟캐스트에 의한다면 조중동의 태안 관련 기사(검색어 '삼성중공업')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수준인데, 이건 꼭 확인해보고 싶다.

위 글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있는 논평이 있다.
이번 음모론, 아니 태안 사고를 바라보는 다수 블로거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논평이 아닌가 싶다. 그 마음을 함부로 '부화뇌동'이라고 표현한 점 사과드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의 '음모론사건'이 블로거들 사이에서 화자가 된 이유는 분명 그 재앙이 인간의 실수로 인해 발생한 인재(人災)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명확한 책임의 소재가 밝혀지지 않은 것에 대한 블로거들의 '분노'가 이번 '음모론'을 낳게 한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략)

짧게 얘기하자면 이번 '음모론'의 본질은 원유유출사건을 저질러놓고도 사과 한 마디 없는 '뻔뻔하기 그지없는 가해자들'의 눈꼴시린 행태에 오직 '분노'로만 대응할 수밖에 없는 블로거들의 또다른 '분노표출방법'이었다고 보여집니다.

확실한 것은 그들이 제때 사고의 과실을 인정하고 신속한 사후처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을 했었다면 적어도 많은 시민들은 순수한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을텐데, 지금처럼 범인이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상황에서의 복구지원활동은 그저 '범죄은닉'의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으므로, 결국 지금도 태안반도에서 기름을 닦고 있는 선량한 사람들은 본의와 달리 삼성의 뒷치닥거리나 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니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범벅이)

이에 대한 새드개그맨님의 논평.

일단 삼성에게 지워져야 할 책임의 내용 및 범위에 대한 획정이 필요합니다.

이번 "삼성호 유조선 충돌 사건"과 "삼성중공업 분식회계사건"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삼성호 유조선 충돌사건은 해양 "사고"를 일으킨 배의 주인이 삼성중공업인 것 뿐입니다. 선장이나 선원들의 판단이 빨랐거나 뭔가 다른 조치가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인 것입니다. 삼성중공업 입장에서는 "아, 왜 하필이면 우리 배냐 재수없게" 하고 한탄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법적 책임을 지운다고 하더라도 1차 책임은 운전을 잘못한 선장의 책임일테고 삼성중공업은 왜 직원 관리를 제대로 못하느냐는 미약한 2차책임을 질 뿐입니다. 반면에 삼성중공업 비자금 사건은 삼성중공업이 고의로 기업의 재정상태를 취약하게 하여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범죄로서 삼성중공업이 범죄의 주체가 되는 사건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유조선 기름유출사건에서 삼성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도의적 관점에서의 사과이며 지울 수 있는 책임은 사회적 책임인 것입니다. 따라서 피해자에대한 직접적인 무한책임은 바랄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삼성'이 갖는 의미가 상당히 부정적이기에 감정적인 책임지우기 시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봉사"의 의미가 남용되고 있다는 의견에는 일부 긍정하나 이를 "범죄은닉"으로 보는 것은 너무 앞서간 판단이 아닌가 하는 의견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참 착하죠? IMF 때는 금모으기를 하더니 이번에는 '태안의 기적'을 만들어내고... (새드개그맨)

범벅님 블로그로 이동해봤다.

왜 삼성이라는 굴지의 대기업이 싸지른 똥을 힘없는 당신들의 돈과 노력으로 치워야만 하는지, 한없이 답답할 뿐이다.

- 범벅이, 왜 당신들은 '봉사'를 하는가! 중에서


7-2. 그리고 소요유님의 지적도 나에게는 자성을 가져다 준 글이다.

특히나 '태안 음모론'에 대해 너무 엄격하게 비판의 잣대를 들이민 내 성급함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 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요유님께서 평소 써오신 글(그 개성과 명확한 관점)에 대한 내 나름의 신뢰가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 같다. 소요유님의 견해 전부에 대해 동의하지 않지만, 거시적인 문제제기의 방향에 대해 크게 공감하고, 또 동료 블로거에 대한 넉넉한 신뢰라는 부분에서 크게 반성한다.



7-3. 끝으로 너바나나님의 글.


이런 글을 읽으면 그냥 흐뭇하다.
봉사와 참여는 무슨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다. 그냥 거기가서 그저 즐겁게 즐기는 거다. 그게 재미가 없다면, 왜 거기에 가나.. 무슨 대단한 도덕심이나 사회적인 양심, 이런 걸 스스로에게 강요하면서 가는 '봉사'란 얼마나 위선적인것인가. 태안에서 데이트를 즐기자는 너바나나님의 글은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물론 태안가지 않았다고 해서, 태안 갈 생각 없다고 해서 핀잔을 주거나, 그 '선의를 강요하는 건' 그 선한 취지가 나쁜 방법을 만나서, 결국은 그 메시지 자체가 변질되는 경우라 하겠다.


7-4. shain님의 글은 뒤늦게 읽었다.


지엽적인 부분에 있어 논점이 다소 불명료하다고 느끼지만, 그 마음이 향햐는 진실이 갖는 소박함과 진정성에 대해선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엉뚱한 소리지만, 키에슬롭스키에게 물었다.

=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입니까?
- 좋은 영화는 머리와 가슴 그 모두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나는 머리가 따뜻해지기 보다는 가슴이 너무 먼저 불붙는 것이 아닌가 염려했다. 다만 그 가슴이 가득하다면, 그래서 그 온기가 오래도록 남아 있다면, 머리까지 그 온기가 전해질테다.



8.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쥐뿔 생산성 없는 감정다툼과 편가르기다.

나 역시 이런 우려할 만한 상황에 적극적으로 일조한 것 같아 크게 반성한다.
하민혁님과 김기자님의 대화는, 그 나름 의미가 없지 않겠지만, 대체로 소모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이미 끝났을지도 모르지만). 물론 싸움 구경이 재밌긴 하다.

그래도 진지하게 하민혁님과의 대화를 시도한 글은, 혹은 하민혁님의 논의 전개 방식을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글은, 또 다시 만나게 되는, 범벅님이다.


솔직하고, 과감하게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것과 대화의 상대방을 조롱하고, 폄하하며, 무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자신의 메시지를 좀더 부각시켜주는 개성있는 레토릭(수사)과 자신의 의견에 반한다고 해서 조건반사식으로 불쾌감을 표하는 것은 다르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는 늘 칭찬을 바랄 뿐인 연약하기 그지 없는 존재들이니까. 위대한 정신은 비판받기를 원한다(니체)는 잠언은 우리들 대부분에겐 해당사항 없다.

하민혁님의 직설적인 문제제기 방식과 격정적인 토론 방식의 장점이 분명히 없지 않겠지만, 많은 경우에 그 유효한 한계를 넘어서시는 것 같다.

가령 지난 디워 논쟁에서, 개인적으론 진중권에 실망한 게 뭐냐면, 메시지와 방식의 부조화다. 디워는 나쁜 영화니까, 좀더 좋은 영화에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선(이게 진중권이 디워에 대해 갖는 일차적인 메시지다) 디워에 대해선 짧게 코멘트하는 것으로 그치거나, 혹은 디워에 쏟아지는 관심을 다른 좋은 영화로 유도하기 위한 '항체'로서의 담론 생성이었을테다. 그런데 불필요한 과잉대응을 통해 (결과적으론) 디워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그 때 진중권은 무슨 토론에 "예의"가 있나, 이런 식으로 오마이뉴스에  기고했다는데... 토론에 예의가 왜 없나. ㅡㅡ; 토론에도 예의가 있다. 이건 정말 해괴한 주장이다.

물론 개성있는 표현과 무례 사이, 메시지에 어울리는 형식과 배타적인 감정적 배설의 차이를 판단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각자의 언어습관, 선입견이 그 해석과 판단에는 강하게 개입된다. 또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양시론, 혹은 이것도 잘못, 저것도 잘못이라는 양비론은 어떤 명확한 '선택'이 긴요한 순간에 그 선택을 회피하고 싶은 유혹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론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선택을 통해 편을 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좀더 분명한 논쟁점을 구성하고, 그 논쟁을 통해 의미있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 그렇다.


자명한 것은 '형식'과 '메시지'는 서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메시지는 그 메시지에 어울리는 형식을 원하고, 또 형식은 그 자체로 메시지다.



* 한줄 메시지.
민노씨.네는 이런(요기) 저런(저기) 이유로 (당분간) 다음 블로거뉴스에 송고하지 않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