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 글에서 출발했다.
좀더 적확히는 다음과 같은 인용 문구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글이다.
위 인용문구에 대해 민군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난 처음에 이랬다. 조중동 중 하나겠는데, 조선인가? 동아인가?
그렇지만 짐작일 뿐이다. 짐작은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그냥 짐작이지.
암튼 글 전체의 취지는 썩 마음에 들었다.
나랑 닉네임도 비슷하고, 민노씨, 민군. ㅎㅎ.
그.러.나!
항상 강조하지만, 주장의 무게와 근거의 무게는 비례해야 하고, 그 근거는 논리적인 추론에 의한 글이 아닌한은 최소한의 '사실'에 바탕해야 한다. 글을 읽으면서도 '저 기사 어디 어느 신문 기산가?' '저 기사 본문은 어떤 내용인가?' 궁금했는데... 마침 aa라는 임시닉네임을 쓰시는 분께서 다음과 같이 질문을 하더라.
위 도전적인(?) 댓글, 베끼다.. 란 표현이 과하긴 하지만, 있을 수 있는 호기심을 표한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덩달아 호기심이 증가했다.
더군다나...
민군께서 해당 글 말미에 정보의 정확성을 강조하는 결어를 쓰셔서 더더욱 호기심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그래서... 당연히 구글에 물어봤다.
신통치 않다.
'중앙'기사라는 글이 몇개 있었는데, 그래서 이번엔 조인스에 가서 위 기사가 정말 있었는지, 저런 문구의 제목이 있었는지 찾아봤지만... 내가 검색을 잘 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조인스닷컴의 검색시스템이 엉망인건지 찾아지지 않더라.
그런 와중에 다시, 구관이 명관이라고, 구글로 돌아와서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참 할일도 없지.. ㅡㅡ; 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으나, 이왕 궁금한거.. ).
그런던 중에 이런 흥미로운 글에까지 닿게 되었다.
위 글에 의한다면 2002년 동아일보 사설과 2007년 중앙일보 사설이 (그 의미가) 과장되게 와전된 것이 아닌가 추론하시던데... 정말 그런 '제목의 기사'가 있었는지 궁금하긴 하다. 아직 확인하진 못했다. 암튼 위 글의 추론을 따라가자면 다음 두 개의 서로 다른 두 대선에 대한 사설이 문제라고 hislove님은 보신다.
일단 2002년 대선에 대한 사설.
[사설] 국민과 나라의 승리되려면 (동아. 입력2002.12.20 18:43)
그리고 2007년 대선에 대한 중앙일보의 사설.
[사설] 경제의 성장엔진에 시동을 걸어라 : 이명박 정부에 바란다. (중앙. 2007.12.21 00:05 입력)
정리하자.
정리하고 말고할 복잡한 내용은 아니지만...
1. '반쪽 대통령'(2002년) v. '과반수 육박한 진정 국민의 대통령'(2007년) 이라는 악의적인(비방이나 폄하 목적의) 기사는 일단 확인하기 어렵다.
2. 그렇다면 hislove님의 추론처럼 위 사설들을 비교한 글(게시판글이든 블로그이든)이 내용과는 상관없이 일부의 표현을 다소 '과장'해서 부풀렸을 가능성을 큰 것 같다.
3. 물론 조중동의 악질적인 틀짓기에 대해 나는 매우, 매우 매우 비판적이다. 그 조중동이 가장 잘하는 게 어떤 '사실'의 한 단면을 과장해서 왜곡하는 일이다.
4. 그런데 그 조중동의 악질적인 틀짓기(나는 저널미장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를 비판하는 글이 조중동식 과장과 비약을 보여줘서야 안될 일일테다. 물론 나는 민군께서 쓰신 글(의 취지)에 깊이 공감한다. 그 거시적 취지에 있어서는(블로거는 기자다, 뭐 이런 건 빼고 ^ ^; ) 전폭적으로 동감을 표하고 싶다.
그.렇.지.만.
다시금 강조하건대 주장과 근거의 무게는 비례해야 하며, 그 근거가 '사실'을 바탕한다고 할 때, 그 사실에 대한 확인은 필수적이다. 이건 블로거든 기자든 불문하고 그렇다.
그러니 최소한 블로그상의 글쓰기에서는, 가령 '기사를 인용'한다고 했을 때 그 물적 근거의 표시로서 그 기사의 주소를 표시하는(링크와 인용은 이래서 중요하다) 것이 수반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나도 이런 확인을 게을리 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이 글도 민군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ㅡㅡ;
5. 논의를 조금만 확대해보자. (이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긴데.. ^ ^;; )
당신은 인터넷 정보, 블로그 콘텐츠 얼마나 신뢰하나?
블로그에 대한 신뢰성, 좀더 확대하자면,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정보에 대한 신뢰성, 그리고 '정보의 질'이라는 문제에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더 커지는 것 같다. 예전에 [손석희의 시선집중] 추석특집(그 주제가 '블로그') 방송에 나갔을 때도(이게 최초이자 마지막 방송출연이 아닐까 싶지만. ㅎㅎ) 손석희씨가 블로그, 인터넷상 정보의 질이라는 문제를 살짝 언급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저널리즘, 종이신문에서도 정보의 과장과 왜곡은 심각하다.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저널리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실에 대한 불가침' 영역까지를 적극적으로 왜곡하는 反저널리즘적 행태를 일삼는 언론(여러분이 짐작하는 바로 그 신문들)도 수두룩 빽빽이다. 여기에 '엘로저널리즘' 찌라시 업체들까지 계산하면, 사실 그 자체를 비판적으로 회의하면서, 의심하면서 기사를 읽어야 하는 새로운 정보 암흑기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아거님께서는 인터넷 혁명(혹은 지식경제의 발전)이 가져다준 정보 민주화의 가능성에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아거님의 비판적인 지적에 대해 일견 공감하면서도, 그렇다면 인터넷을 통한 정보 민주화 혁명은 전적으로 '환상'인가, '마케팅 용어'에 불과한 사탕발림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지금 우리는 왜 블로깅을 하는가?
웹 정보 민주화 혁명, 혹은 웹 2.0 혁명(그것이 마케팅 용어에 불과할지라도)의 총아로서 블로그는, 블로거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고민은 깊어지고, 해답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어떤 고급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블로깅하는 것이 아니고, 좀더 진지한 고민의 방식, 좀더 즐거운 대화의 방식을 스스로 '실험'하고자 블로깅한다. 그것은 어떤 고급 정보로도 대체할 수 없는 실존이 부딪히는 대화를 통한 '관계' 속에서 파생한다.
웹과 블로그가 자본주의의 이윤추구의 새로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더라도, '대화와 고민'의 장으로서 웹과 블로그는 여전히 '가능성'의 공간이며, 가장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공간이다.
즐겁게 고민하고, 즐겁게 저항하자.
좀더 적확히는 다음과 같은 인용 문구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글이다.
노무현 득표-48.9%
2002년 노무현 당선 당시 - 과반수에도 못미치는 반쪽자리 대통령
이명박 득표-48.7%
2007년 이명박 당선 - 과반수에 육박한 진정 국민 모두의 대통령
2002년 노무현 당선 당시 - 과반수에도 못미치는 반쪽자리 대통령
이명박 득표-48.7%
2007년 이명박 당선 - 과반수에 육박한 진정 국민 모두의 대통령
위 인용문구에 대해 민군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어느 신문인지는 대충 짐작이 가시겠지요?
저렇게 뽑힌 헤드라인을 보며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이것이 소위 이야기하는 '메이저 언론'의 사명감입니까?
저렇게 뽑힌 헤드라인을 보며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이것이 소위 이야기하는 '메이저 언론'의 사명감입니까?
난 처음에 이랬다. 조중동 중 하나겠는데, 조선인가? 동아인가?
그렇지만 짐작일 뿐이다. 짐작은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그냥 짐작이지.
암튼 글 전체의 취지는 썩 마음에 들었다.
나랑 닉네임도 비슷하고, 민노씨, 민군. ㅎㅎ.
그.러.나!
항상 강조하지만, 주장의 무게와 근거의 무게는 비례해야 하고, 그 근거는 논리적인 추론에 의한 글이 아닌한은 최소한의 '사실'에 바탕해야 한다. 글을 읽으면서도 '저 기사 어디 어느 신문 기산가?' '저 기사 본문은 어떤 내용인가?' 궁금했는데... 마침 aa라는 임시닉네임을 쓰시는 분께서 다음과 같이 질문을 하더라.
죄송한데 위에 반쪽짜리 대통령 확인하신건가요? 혹시 카더라 통신글을 그대로 믿고 그냥 배껴 오신거 아닌지요? (aa)
위 도전적인(?) 댓글, 베끼다.. 란 표현이 과하긴 하지만, 있을 수 있는 호기심을 표한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덩달아 호기심이 증가했다.
더군다나...
우리는 '기자'입니다. 정확한 정보와 우리의 생각을 방문자들에게 들려줘야 하는 의무와 권리가 있는거.. 맞지요? (민군)
민군께서 해당 글 말미에 정보의 정확성을 강조하는 결어를 쓰셔서 더더욱 호기심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우리는 '기자'입니다"에 대해 잠깐. 나는 블로거와 기자는 서로 다르고, 따라서 저널리즘과 블로기즘 역시 서로 다르며, 블로거가 기자라고 우길 필요도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특히 다음 블로거뉴스가 만들어낸 정체불명의 용어 '블로거기자'에 대한 불편한 감정인데, 다만 '정확한 정보'에 대해서만은 긍정한다. 암튼 각설하고. ㅡㅡ;
그래서... 당연히 구글에 물어봤다.
신통치 않다.
'중앙'기사라는 글이 몇개 있었는데, 그래서 이번엔 조인스에 가서 위 기사가 정말 있었는지, 저런 문구의 제목이 있었는지 찾아봤지만... 내가 검색을 잘 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조인스닷컴의 검색시스템이 엉망인건지 찾아지지 않더라.
그런 와중에 다시, 구관이 명관이라고, 구글로 돌아와서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참 할일도 없지.. ㅡㅡ; 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으나, 이왕 궁금한거.. ).
그런던 중에 이런 흥미로운 글에까지 닿게 되었다.
당선자 예우, 혹은 XX 빨아주기 [아마도 최종 수정] (hislove)
위 글에 의한다면 2002년 동아일보 사설과 2007년 중앙일보 사설이 (그 의미가) 과장되게 와전된 것이 아닌가 추론하시던데... 정말 그런 '제목의 기사'가 있었는지 궁금하긴 하다. 아직 확인하진 못했다. 암튼 위 글의 추론을 따라가자면 다음 두 개의 서로 다른 두 대선에 대한 사설이 문제라고 hislove님은 보신다.
일단 2002년 대선에 대한 사설.
[사설] 국민과 나라의 승리되려면 (동아. 입력2002.12.20 18:43)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대화와 타협으로 새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했다. 노 당선자는 패자인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축하전화를 받고 “나는 절반의 대통령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이 후보의 것이다”라고 말했다. 올바른 현실인식에 바탕한 덕담이다.
큰 그림으로 보면 ‘절반의 승리, 절반의 패배’라 할 수 있다.
‘절반의 승리’는 결코 ‘국민과 나라 모두의 승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절반의 대통령’임을 인정한 노 당선자가 초심(初心)을 견지하는 것은 국민대화합에서 가장 긴요한 조건이다.
- 위 동아 사설 중에서 발췌.
큰 그림으로 보면 ‘절반의 승리, 절반의 패배’라 할 수 있다.
‘절반의 승리’는 결코 ‘국민과 나라 모두의 승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절반의 대통령’임을 인정한 노 당선자가 초심(初心)을 견지하는 것은 국민대화합에서 가장 긴요한 조건이다.
- 위 동아 사설 중에서 발췌.
그리고 2007년 대선에 대한 중앙일보의 사설.
[사설] 경제의 성장엔진에 시동을 걸어라 : 이명박 정부에 바란다. (중앙. 2007.12.21 00:05 입력)
19일 국민들이 과반수에 육박하는 지지로 이명박 당선자를 대한민국의 17대 대통령으로 뽑은
- 위 사설 중에서
- 위 사설 중에서
정리하자.
정리하고 말고할 복잡한 내용은 아니지만...
1. '반쪽 대통령'(2002년) v. '과반수 육박한 진정 국민의 대통령'(2007년) 이라는 악의적인(비방이나 폄하 목적의) 기사는 일단 확인하기 어렵다.
2. 그렇다면 hislove님의 추론처럼 위 사설들을 비교한 글(게시판글이든 블로그이든)이 내용과는 상관없이 일부의 표현을 다소 '과장'해서 부풀렸을 가능성을 큰 것 같다.
3. 물론 조중동의 악질적인 틀짓기에 대해 나는 매우, 매우 매우 비판적이다. 그 조중동이 가장 잘하는 게 어떤 '사실'의 한 단면을 과장해서 왜곡하는 일이다.
4. 그런데 그 조중동의 악질적인 틀짓기(나는 저널미장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를 비판하는 글이 조중동식 과장과 비약을 보여줘서야 안될 일일테다. 물론 나는 민군께서 쓰신 글(의 취지)에 깊이 공감한다. 그 거시적 취지에 있어서는(블로거는 기자다, 뭐 이런 건 빼고 ^ ^; ) 전폭적으로 동감을 표하고 싶다.
그.렇.지.만.
다시금 강조하건대 주장과 근거의 무게는 비례해야 하며, 그 근거가 '사실'을 바탕한다고 할 때, 그 사실에 대한 확인은 필수적이다. 이건 블로거든 기자든 불문하고 그렇다.
그러니 최소한 블로그상의 글쓰기에서는, 가령 '기사를 인용'한다고 했을 때 그 물적 근거의 표시로서 그 기사의 주소를 표시하는(링크와 인용은 이래서 중요하다) 것이 수반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나도 이런 확인을 게을리 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이 글도 민군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ㅡㅡ;
5. 논의를 조금만 확대해보자. (이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긴데.. ^ ^;; )
당신은 인터넷 정보, 블로그 콘텐츠 얼마나 신뢰하나?
블로그에 대한 신뢰성, 좀더 확대하자면,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정보에 대한 신뢰성, 그리고 '정보의 질'이라는 문제에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더 커지는 것 같다. 예전에 [손석희의 시선집중] 추석특집(그 주제가 '블로그') 방송에 나갔을 때도(이게 최초이자 마지막 방송출연이 아닐까 싶지만. ㅎㅎ) 손석희씨가 블로그, 인터넷상 정보의 질이라는 문제를 살짝 언급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저널리즘, 종이신문에서도 정보의 과장과 왜곡은 심각하다.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저널리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실에 대한 불가침' 영역까지를 적극적으로 왜곡하는 反저널리즘적 행태를 일삼는 언론(여러분이 짐작하는 바로 그 신문들)도 수두룩 빽빽이다. 여기에 '엘로저널리즘' 찌라시 업체들까지 계산하면, 사실 그 자체를 비판적으로 회의하면서, 의심하면서 기사를 읽어야 하는 새로운 정보 암흑기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아거님께서는 인터넷 혁명(혹은 지식경제의 발전)이 가져다준 정보 민주화의 가능성에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요즘 미국 대학생들이 검색엔진때문에 바보가 되어간다는 기사를 읽은 일이 있다. 정보의 질을
분간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어 간다는 뜻이다. 미국 대학 도서관은 진짜로 유용하고 값비싼 정보를 가진 유료 데이터베이스를
무제한으로 학생들에게 제공하지만, 학생들은 그저 구글이 모든 대답을 줄 것이라는 착각속에 살고 있다. 실제로 정보나 지식을
찾아서 검색엔진에 들어가면 정보보다는 쓸데없는 “정보의 파편”속에서 헤메다가 나중에는 옆길로 새는 경우가 종종 있다.(중략)
이제는 인터넷이 이전에 텔레비전이 하던 역할을 대행한다. 텔레비전을 안보는 사람 없듯이 요즘은 인터넷 연결이 필수인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는 지식을 전달하는 매체가 될 수 없다. 오락 아니면 광고매체로 전락하기 쉽상이다. 그 와중에 돈되는 정보를 찾는 사람을 위한 시장은 눈에 드러나지 않게 숨어버린다. 모두들 공짜를 즐기고 있는 세상에 가진 자들은 거기서 멀어지려고 하거나 아니면 모두가 알고 있는 정보가 아닌 정보를 사냥해 나선다. 따라서 인터넷이 사회에 보편화되고 구글이 사람들을 평준화시킬수록 새로운 개념의 디지털 격차가 발생한다.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속도가 빨라지는것만으로 지식 네트워크의 일원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용하게 쓰면 고작해서 스카이프(Skype)의 고객이 되는 정도이고, 잘못쓰면 도토리 놀이에 빠지든지, 원하건 원치않건 탐(Tom)의 친구가 되어야 하든지 아니면 20억달러 베팅하는데 쓰이는 “봉”으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 아거,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중에서
이제는 인터넷이 이전에 텔레비전이 하던 역할을 대행한다. 텔레비전을 안보는 사람 없듯이 요즘은 인터넷 연결이 필수인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는 지식을 전달하는 매체가 될 수 없다. 오락 아니면 광고매체로 전락하기 쉽상이다. 그 와중에 돈되는 정보를 찾는 사람을 위한 시장은 눈에 드러나지 않게 숨어버린다. 모두들 공짜를 즐기고 있는 세상에 가진 자들은 거기서 멀어지려고 하거나 아니면 모두가 알고 있는 정보가 아닌 정보를 사냥해 나선다. 따라서 인터넷이 사회에 보편화되고 구글이 사람들을 평준화시킬수록 새로운 개념의 디지털 격차가 발생한다.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속도가 빨라지는것만으로 지식 네트워크의 일원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용하게 쓰면 고작해서 스카이프(Skype)의 고객이 되는 정도이고, 잘못쓰면 도토리 놀이에 빠지든지, 원하건 원치않건 탐(Tom)의 친구가 되어야 하든지 아니면 20억달러 베팅하는데 쓰이는 “봉”으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 아거,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중에서
아거님의 비판적인 지적에 대해 일견 공감하면서도, 그렇다면 인터넷을 통한 정보 민주화 혁명은 전적으로 '환상'인가, '마케팅 용어'에 불과한 사탕발림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지금 우리는 왜 블로깅을 하는가?
웹 정보 민주화 혁명, 혹은 웹 2.0 혁명(그것이 마케팅 용어에 불과할지라도)의 총아로서 블로그는, 블로거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고민은 깊어지고, 해답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어떤 고급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블로깅하는 것이 아니고, 좀더 진지한 고민의 방식, 좀더 즐거운 대화의 방식을 스스로 '실험'하고자 블로깅한다. 그것은 어떤 고급 정보로도 대체할 수 없는 실존이 부딪히는 대화를 통한 '관계' 속에서 파생한다.
웹과 블로그가 자본주의의 이윤추구의 새로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더라도, '대화와 고민'의 장으로서 웹과 블로그는 여전히 '가능성'의 공간이며, 가장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공간이다.
즐겁게 고민하고, 즐겁게 저항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