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씨네21 경품 이벤트 의혹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써머즈님의 트윗에 올라온 링크를 접하고, 궁금한 마음에 '씨네21'에 전화해서 이런 저런 의문을 여쭙고, 이를 담담하게 기록한 글이죠. 씨네21을 고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글도 아니고, 그렇다고 씨네21을 두둔하기 위해 쓴 글도 아닙니다. 그저 제 나름의 호기심이 그저 개인적인 것만은 아닌  소비자로서의 공적인 알권리 추구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글을 썼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선 써머즈님께서도 자세한 후속글을 써주셨고요.
씨네21 니콘카메라 가짜 이벤트 의혹 사건 [잠정종결] : 사과문 / 당첨자 재공지 (2009/06/09)
씨네21 니콘카메라 가짜 당첨자 사건에 대한 의문 (써머즈, 2009.6.9)

아무튼 우연히 리퍼러 검색어를 확인하다가 권지현씨 관련 기사를 봤습니다. 아마도 제 글, 혹은 써머즈님 글을 바탕 혹은 참조하여 기사를 쓰신 것 같더군요. 이런 제 추정이 맞다는 전제에서, 왜 제 글을 참고했는데 그 흔한 '출처' 표시도 없으냐고 따지려고 이 글 쓰고 있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출처는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지만, 그래서 캡콜님'백투더소스' 운동까지 펼치고 계십니다만, 그렇다고 참조 출처 표시가 없다고 해서 그것을 무슨 대단히 비윤리적인 일로 성토하고 싶은 생각, 개인적으로, 별로 없습니다. 이런 일이야 뭐 블로그든 기성언론이든 상호간 비일비재하니까요. 오히려 앞서 제가 이야기한 소비자로서의 알권리 차원, 그 문제의식을 확산한다는 차원에서는 권지현씨 기사가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물론 사소한 아쉬움이 없지는 않습니다. "기사에 참조하겠습니다" 정도의 댓글로도 "참 개념 충만한 기자로고만"이렇게 호의적으로 여길 블로거들이 대다수라고 생각해서요.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좋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기사에 참조하고 말고를 블로거에게 물어야 한다는 의미도 전혀 아닙니다. 그럴 의무도 전혀 없고요. 더군다나 대부분의 기성언론 기사와는 다르게, CC(창조적 공공재) 라이센스를 채택하고 있는 대다수 블로그들은 정보의 공유와 확산에 대해 매우 호의적입니다. 저 역시 그렇고요. 제 댓글 창의 대화는 출처도 없이 인용하시면서, 또 그 기사 말미에 예외없는 부착된 "무단 전제 및 재배포 금지"라는 엄포스러운 저작권 안내문구는, 물론 권지현씨와는 상관없이, 아쉬운 마음이 생깁니다.

서설이 길었는데요. 제가 굳이 이런 짜잘한 글을 쓰는 이유는 권지현씨 기사에 삽입된 익숙하지만, 기괴한 짤방에 눈길이 머물러서 입니다. 권지현씨께서 기사 참조 이미지로 사용하신 제 씨네21 관련글 댓글창의 대화를 캡처한 '짤방'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씨네21' 가짜 이벤트 의혹, 결국 당첨자 '재공지'
(디시뉴스 권지현, 세계일보 송고분, 기사입력 2009.06.11 (목) 13:31)

어디서 많이 보던 댓글창인데, ^ ^, 농담이고, 제 해당글 댓글창 대화를 캡처하셨더군요. 그런데 왜 필명을 지우셨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한편으론 필명을 사적인 정보로 여기셔서, 인격권을 존중하기 위해서 그러셨나?' 싶은 생각도 들긴 했습니다. 다만, 댓글 대화를 나눈 동료 블로거들과 저는 '블로그'라는 공개된 웹의 페이지에 자신의 의견을 자신의 필명으로 당당하게 밝힌 것입니다. 그러니 이 필명들을 지울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요. 이렇게 처리하시면 오히려 다음과 같은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1.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 씌우게 됩니다.

이렇게 필명을 가리고 모자이크 처리하면 그 의견이 당당하지 못하거나, 근거 없는 비난인 것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2. 피인용자의 저작인격권을 무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위 짤방은 기사 안에서 그 내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선명합니다(제가 캡처한 것은 이미지를 약간 축소한 것이고요). 그렇다면 이 짤방은 '피인용된 의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필명을 훼손(^ ^?)하는 건 오히려 그 의견을 공개적으로 자신의 필명을 걸고 전한 분들에 대한 인격적인 무시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피인용된 의견'이라면 당연히 그 출처(적어도 필명)을 표시해주는 것이 그 의견을 인용하는 최소한의 예의가 되는 것이겠지요.

3. 하나 더요.
위 캡처한 의견들 가운데 가령, 이바닥(ebadac)님 의견은 기사 본문에 인용하셨다면, 기사의 빈약함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보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생깁니다. 물론 그 때에는 "블로거(혹은 '네티즌') 이바닥은 "@$@#$@%@#"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정도로 표시하실 수 있겠지요.

4. 좀더 바라면...
피인용된 블로그(블로거)의 블로그 URL(주소)를 링크인용하면 금상첨화겠고요. 링크와 인용은 블로그에서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것이니까요. 이것은 온라인언론사들에서도 좀더 자각을 갖고 인용시에 숙고하셨으면 하는 부분입니다.

아, 참고로 위 짤방에서 필명이 피의자 사진처럼 모자이크 처리된 블로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
써머즈
인디아나 밥스
이바닥(ebadac)


* 관련
씨네21 니콘카메라 가짜 이벤트 의혹 사건 [잠정종결] : 사과문 / 당첨자 재공지 (2009/06/09)
씨네21 니콘카메라 가짜 당첨자 사건에 대한 의문 (써머즈, 2009.6.9)



* 이 글은 가벼운 단상, 초안의 성격에 불과하다.

블로거들의 독립을 위하여 (김우재, 2009/06/09)
http://heterosis.tistory.com/184

위 글이 주장하는 내용을 간략히 (내 식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블로그(뉴미디어)는 여전히 기성언론(김우재 글에선 "언론")에 종속되어 있다.
2. 이 종속현상을 블로그의 벗인 메타블로그들은 오히려 가속화한다. 왜냐하면 메타의 지배적 분류시스템인 '태그'(폭소노미)는 나름으로 장점을 갖는 분류방식인데, 정작 메타블로그는 태그의 다양성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태그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표현체계의 문제다. 메타블로그의 표시체계는 특정 핫이슈에 속한 한정된 관련글만 보여주는 '인기이슈 자동화 시스템이다. 추천제도는 제한적인 종속 변수로만 작용한다.
3. 블로그는 고유한 문화생산자로서의 독립성을 구현해야 한다. 그것은 블로그식 콘텐츠 생산 유통방식(가령 '릴레이' '논쟁')을 좀더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시스템 속에서 촉진될 수 있다.
4. 그 역할을 메타블로그가 수행해야 하는데, 사정은 앞서 본 것처럼 그렇지 못하다.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5. 제안하자면, 블로그라는 독립적인 문화주체로서의 정체를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하다. 그것은 역량있는 '직업적 편집인 시스템'의 도입으로 가능할 수 있다. 그것은 새로운 메타블로그의 출현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위 글에 대한 간단한 단상. 

1. 블로그는 기성언론 따까리?
기성언론에 대한 비평적 기능은 블로그가 갖는 메타비평적 속성을 떠올린다면, 폄하되어선 안된다. 블로그가 수행하는 다시 틀짓기(리프레이밍 기능)는 오히려 블로그의 매우 중요한 영역과 속성으로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더불어 체계적인 취재시스템으로서의 '기성언론'이 갖는 노하우는 블로그를 월등히 앞서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을 블로그에 종속'시킨다는 건 바랄 수는 있어도 당분간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기성언론을 통해 유통되는 뉴스의 상당수는 '그저 광고가치를 위해 전적으로 휘발적으로 소비되기 위해서 만들어진 쓰레기'이긴 하다.

2. 상업화의 가능성

우선 이 모델이 가능하려면 매우 충성도 높은 열혈 유저들의 부피가 필요하다. 현재는 이런 열혈유저(특히 독자, 소비자라는 측면에서)의 부피는 담보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새로운 매력적인 시스템이 수요를 만들어낼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열혈 블로거들은 이제 메타를 통해 이슈를 소비하지 않고, 기존의 RSS리더를 통해 이슈를 소비한다. 그리고 트위터와 같은 새로운 방식의 SNS를 통해 이슈를 소비한다. 그러니 김우재가 제안한 모델이 가능성 있고, 의미있는 제안이며, 상업화가 가능한 모델이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이 모델은 너무 이상적으로 착한 소비자와 근면성실한 소비자들을 상정하고 있다. 그런데 체계화된 이슈의 완결성을 제공하는 사이트가 생겨나도 그 의미 가치는 차치하고, 그것이 얼마나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유희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상업적인 시스템으로 편입되기 위해선, 달리 말해 수익모델을 안정화시키려면 앞서 말했듯 열혈 소비자(주로 열혈 블로거일 확률이 높은데)가 필요하다. 최소한의 부피가 필요하고, 또 지속적 참여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전제되어야 하는 건 이 소비자들과 부합하는 상업적인 창출효과의 가능성이다. 김우재 모델에서 상정하는 독자(소비자)들이 과연 광고주 입장에서 유익한 매력적인 소비자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모델의 새로운 수익모델로서의 또 다른 가능성은 '자발적 후원 모델'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공짜'라는 인식은 이제 뼈속까지 파고든 뿌리깊은 것이다.  

결국 이 모델을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부피 확보라는 문제, 그리고 그 부피는 전체의 부피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소수일 것은 자명할 것인데, 이 첫 단추부터 희망적이라기 보다는 유보적이다.

3. 편집인을 바라보는 관점
끝으로 '역량있는 편집인의 수작업을 통한 편집 시스템'은 매우 이상적이긴 하지만, 그 (극소수) 편집인이 다양한 관심사를 균형감있게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편집인의 "독선"이라기 보다는 '잠재된 편향적 관심'이 문제되는 상황), 그 극소수 편집인이 투여하는 노력의 양이 과연 고효율을 창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즉, 투여 대비 산출의 효과가 미미하지 않을까(극소수는 이런 시스템의 편리성을 취하고, 좋아하겠지만) 싶다. 이는 역시 부피의 문제로 환원된다.

4. SNS와 소셜뉴스의 성장이라는 환경적 요인

뉴미디어로서의 블로그가 주목해야 하는 영역은 온라인 뉴스 플랫폼의 미래형으로 전망되는 소셜 뉴스이다. 그리고 시스템 자체가 '편집 기능'을 수행하는 트위터와 같은 정보관여형 SNS의 비약적인 성장 가능성이다. SNS와 소셜뉴스의 성장은 블로그를 상대적으로 위축시키는 작용을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어쩌면 블로그의 독립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희망적인 환경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구체적인 전망은 좀더 가시적인 환경의 변화가 이뤄진 뒤에야 가능할테지만 말이다. 물론 그 환경변화에 블로거들 역시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량으로 개입해야 함은 당연하다. 블로그가 SNS와 소셜뉴스의 의미있는 변수로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장하려는 시도와 방법론이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5. 결 : 토양을 위하여
나는 김우재의 의견을 비판하기 위해 이 글을 쓴게 전혀 아니다. 오히려 공감하고, 경청할 부분들이 많기에, 김우재가 제안한 논의가 좀더 생산적으로 확장하는데 눈꼽만큼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이런 글 썼다.

현재의 이슈 편향, 그리고 블로그 특유의 현상을 자신의 에너지로 흡수하고 있지 못한 메타블로그를 비판하는 김우재의 취지에 물론 공감한다. 하지만 이것이 '소수의 역량있는 편집인'이 중핵인 시스템을 통해 해소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이 영역은 어쩔 수 업이 블로그 상호간의 비평 문화를 발전시키고, 그런 토대 위에서 '전문 편집인의 기능'을 수행하는 전문적인 블로그의 출현(이런 점에서 블로그래픽을 언급한 것이가.. 그런 생각도 든다)이 좀더 활성화되고, 그런 토양이 마련된 뒤에야 그 가능성을 논의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블로그, 우리나라 같은 X같은 환경에서, 스스로의 미디어성을 확보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김우재와 같은 도전적인 제안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리고 그 논의가 좀더 활발해질 수도록 블로그의 독립성이라는 가치는 조금 더 진전할 것만은 분명하다.

더불어 메타블로그의 분발을 바란다.





* 트위터에 단상으로 적었던 걸 정리한 글. 아래 정리된 글은 대개는 시간순입니다. 단상 중간 중간 트윗벗들의  관련 코멘트와 대화를 몇 개 삽입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야, '공포'
       
가장 먼저 나에게 온 것.          
방금 돌아왔다. 역시 거리의 싸움은 이명박 정권을 움직이기엔 턱도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건 패배주의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현실인식이다.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mepay
뙈넘들 속담에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있죠. 누군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그나마 누리고 있는 것도 잃을 수가 있는데.. 이 정권을 어떻게 움직여야 되나..

도착하다, 떠나다.
7시10분쯤 도착. 종로쪽에서 내려, 일행과 함께 서울광장 쪽으로 걸어갔다. 보신각 부근의 청계천을 넘어서자 경찰차와 경찰들이 압도적으로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게 심리적인 위축효과를 노린건지 어쩐건지, 아니면 오늘 경찰에서도 그만큼 긴장했던건지, 둘 모두였겠지만, 걸어가는 내내 긴장을 주기에 충분했다. 자리를 떠난 건 11시 10분 20분 쯤.

두 개의 서로 다른 풍경 : 광장과 도로
집회는 서울광장의 공식행사와 대한문에서 조선일보쪽으로 향하는 도로에 진치고 있는 시민/경찰의 대치로 완전하게 나뉘었다. 서로 다른 동네 분위기. 지난 영결식 후 노제 뒷풀이에서도 이런 분위기였다. 왜 같은 목적으로 나온 집회인데 이렇게 둘로 나뉘어야 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거기에 딴지를 걸자는 것은 아니다. 서울광장에서는 주로 '프로그램에 맞춰진 행사'가 진행되고, 도로에는 중구난방이다. 앞쪽(광화문쪽)은 전선을 형성하는, 그러니 대치하는 경찰과 시민들이 있고, 뒷쪽(대한문쪽)은 촛불을 바닥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한가하고, 일견 여유로운 풍경들이 펼쳐지곤 한다. 나는 주로 도로쪽에 있었다. 지난 노제 뒷풀이에서도 그랬지만. 거기서 동행한 벗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실은 서울 광장의 공식행사에서 꼰대들 하는 이야기는 별로다. 차라리 거리에서 시민들이 즉흥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난 좋다. 물론 이번에는 스피커용 차량이 준비되지 않아서 그런 일은 없었다.

시청역 3번 출구 : 경찰, 인도를 막아서다.

- 인도 통과 금지 : "예외를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사건은 시청역 3번출구 인도쪽에서 벌어졌다. 미쳤다고 밖에는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경찰들(실은 그런 지시를 한 지휘관)이 인도를 막아섰다. 영국대사관쪽(조선일보, 광화문쪽)으로는 누구도 , 단 한명도 들어가지 못했다. 시민들은 격렬히 항의했다. 내가 거기에 있던 시각은 9시쯤부터 11시 가까이. 시청역 3번 출구 인도에서 시민들과 경찰은 서로 실랑이를 벌였다. 영국대사관(마당세실 극장, 서울 성공회 성당 부근)에 차를 대놨다는 아이 둘을 각자 무등태운 부부도 "예외를 인정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인도를 막아선 경찰을 뚫지는 못했다. 황당했다. 시민이 도로를 점거한 것도 아니고, 인도를 걸어가겠다는데 막아서는 경찰을 이해할 어떤 논리도 생각나지 않는다. 함께 동행한 벗이 경찰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왜 인도를 막아서는가'라고. 아직 앳띈 얼굴을 한 경찰이 뭐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는데, 폭력을 행사하는 시민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그 비슷한 취지로 대답했던 것 같다.

mepay
마스크, 촛불, 아이들 무등 태우는거, 그 모든게 그들에겐 위협의 대상인가 봅니다.
조금 있으면 인간이 직립보행 하는것도 막을 태세입니다.

- 각목과 휴대용 찍찍이, 그리고 물통과 소주병 
한 번은 어떤 취객이 경찰에게 각목을 휘둘러 살벌한 풍경이 잠시(2,3분남짓) 벌어졌다.  각목은 즉시 치워졌고, 그 취객도 단 한번 각목을 휘두르곤 경찰의 즉각적인 응전과 시민들의 비판 목소리에 자취를 감췄다. 동행한 벗 둘은 경찰 바로 앞에서 종이피켓을 들고 계속 항의했다. 그 중 한 벗은 눈에 찍찍이(휴대용 최루액인듯)가 뿌려져 한동안 빨갛게 충혈됐다. 그 벗(형)의 말을 빌면, 간이 최루액은 예전에 자신이 학생운동하던 시절의 최루탄에 비해선 꽤 약한 농도인 것 같다고 말하더라. 뒤에서 누군가 찍찍 하고 휴대용 찍찍이를 찍찍 간헐적으로 시민들을 향해 뿌려댔다. 찍찍!!

몇몇 흥분한 시민(취한 듯)은 물병을 던지기도 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소주병이 날아오기도 했다. 다행히 전경의 벽 바로 옆 가로등에 맞아 박살나기는 했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즉각 이 병에 대해 불쾌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극히 일부의 편린이 합법준법 좋아하는 거룩한 해당언론사에서는 폭력시위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포착되겠지. 나에겐 그 어떤 폭력보다 사람이 걸어가라고 만들어 놓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깐 인도에서 사람이 걸어갈 수 없다는 그 아이러니와 압도적인 비상식이 너무도 절망적일만큼 서러웠다. 어떤 시민(초로의 아주머니)는 "이렇게 사람들 살살 약올리는거구나...내 살다살다 이런 황당한 꼴을 보네..." 한탄하셨다.

- 경찰 벽 뒤의 막대 사진기 : "인도에 있는 시민들을 왜 찍어요? 이거 불법이예요!"
인도에서 "걸어가겠다"는 걸 항의하는 시민들, 그걸 항의해야 하는 상황도 골 때리지만,  경찰 벽 뒤에는 길다란 막대기 위로 플래쉬 사진기가 시민들을 향해 있었다. 인도에서 걸어가겠다는 것도 '채증'의 대상이 되나보다. 정말 미친 것 같다. 주변에서 왜 인도에 서있는 시민들을 찍느냐며 항의했다. "내 잘생긴 얼굴 실컸 찍어라" 어떤 사내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고성을 내질렀다. 정말 그 3번 출구 인도는 그 날 완전히 미쳤다.

- "한 명씩이라도 통과하게 해주세요" "예외는 없습니다"
시민들은 광화문쪽(실은 대부분은 영국대사관 쪽)으로 꼭 가야 하는 사람을 위해 한사람씩이라도 통행이 가능하도록 한줄만 인도에 공간을 내달라고 이야기했다. 역시나 예외는 허락되지 않았다. 인도를 막아선 불법 경찰에게 인도에 선 시민들이 하소연을 하는 풍경은 코믹하다기 보다는 서럽더라. 인도는 당연히 사람인 시민들이 걸어갈 수 있어야 하는데, 시청역 3번 출구 인도에서는 누구도 광화문 쪽으론 단 한발자국도 옮길 수 없었다. 흥분한 시민들은 꽤 심한 욕설을 경찰들을 향해 내뱉었다. 그게 이해되기도 하고, 그게 좀 싫기도 했다. 욕설은 산발적으로 파편화된 유리조각처럼 간헐적으로 내 뇌리에 와서 박혔다. 어떤 아저씨는 이런 비상식적인 지시를 내린 지휘관이 누군지를 따지며, 이게 경찰과 시민들의 충돌을 유도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경찰들에게 지속적으로 고성을 질렀다. 정말 그 지휘관, 누굴까, 도무지 어떤 정신세계를 가진 이라서 인도를 막으라고 지시한 걸까... 정말 그 정신세계를 이해할 길 없다.

광장을 떠나다. 
실랑이 벌이던 시민들도 지쳤는지 삼삼오오 그 3번출구 인도를 둘러싼 작은 전선에서 이탈해갔다. 우리도 10시 40분쯤에 거기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우리 뒤로는 더 이상 시민들의 무리는 없었고, 지친 패잔병들처럼 울분과 어이 없는 표정으로 가득한 시민들만 남겨졌다. 3번출구 인도에서 떠나기 직전에 새드개그맨이 합류했다. 아니 새드개그맨이 겸사겸사 그 3번출구 옆 인도에서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행사를 벌인 서울광장은 거의 텅 비워져 있었다. 몇몇 작은 무리들만이 남아서 삼삼오오 이야기했다. 우리가 통과한 도로 위에도 역시나  시민들은 눈에 띄게 줄어있었다. 원래는 한바퀴 휭하니 둘러보고 좀더 이야기하다가 가려고 했는데, 그냥 발걸음을 계속했다.

아쉬웠던 것...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나.
가장 아쉬웠던 건 너무 사람들이 적었다는 거다. 광장은 모두 채웠지만, 거리에선 대한문~시청3번 출구까지의 도로를 아주 헐겁게 채울만큼만 모인 것 같다. 내 기대보다는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이었다. 도로 위에선 단 한 대의 스피커차량도 없었다. 그래서 물론 시민들의 즉흥연설도 없었다. 하기는 그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채운 08년의 촛불시위에서도 이명박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지만... 이명박은 이제 거리에서 선 사람들을 두려워하지도, 그들을 자신이 봉사해야 하는 국민으로도 생각하지 않는건가... 그런 생각도 잠시 머물렀다.

내가 원한 것.
나는 무엇을 원해서 광장에 나간걸까? 물론 청와대로 밀고 나갈 수 있을 거라거나, 여기에 모인 시민의 힘으로 MB를 하야시킬 수 있 있을거라는 그런 몽상을 하지는 않았다. 오늘 돌아오는 광장과 거리는 유난히 쓸쓸한 느낌이 강하다.. 지난해 촛불은 꽤 재밌었는데.... 동행한 벗은 그저 시민으로서 항의 의사를 전하고 싶었을 뿐이고, 그게 현재로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이라고 말했다. 그런 최소한들이 모여져서 좀더 나라가 살맛나고, 이명박 정부가 좀 정신차리고... 그런 소박한 것들. 나 역시 원하는 건 그런 소박하고, 상식적인 것이지 무슨 거창한 건 아니다. 이 놈의 나라에선 이런 소박한 게 너무 너무 힘들고, 상식적인게 별천지의 마술처럼 낯설다.


여담.

- 거리에서 이상형을 보다 : 검정색 아식스 운동화, 하얀 티셔츠, 청바지, 안경
여담. 8시쯤(?) 이상형에 몹시 가까운 한 여성을 봤다. 담배 피우는 동성친구와 함께 우리 부근에 서 있었는데, 웃는 모습이 참 이쁘더라. 마치 커피캬라멜처럼. 검정색 아식스 운동화를 신은 약간 작은 키. 뿔대안경(?)에 웃는 모습이 참 착해보이는 순한 인상의 나이를 나늠하기 어려운 어떤 여성. 청바지. 가디건. 나머지는 까먹었다..ㅡ.ㅡ
혹시라도....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갑자기 이런 이산가족찾기 노래가 떠올랐다능..) 

- 아주 비싸고 짠 오뎅
주변 포장마차 노점상의 폭리가 꽤 심하다. 핫도그 2천원이야 그렇다치고. 오뎅꼬치 하나 보다 조금 더 들어간 오뎅 한그릇이 5천원. 정말 이건 좀 심하게 비싸다. ㅠ.ㅜ; 그래도 날개 돋힌듯 팔리더라. 자리를 잘 잡으신 한 초로의 오뎅장수 부부. 오늘은 두분께서 위너십니다~!

- 야4당은 뭐한거지?
광장에서 '행사'를 벌인 야4당은 거리(도로)에선 볼 수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새드개그맨과 잠시 뒷담화. "쟤들은 쇼하러 온건가? 뭐 이래?" 광장을 무대 삼아 사진 찍으러 온 모델 같이, 홍보를 위해 극장순회하는 영화배우같이... 니들도 그런데 시민들은 무슨 용가리 통뼈냐... 아, 이정희 의원은 어서 쾌유하시길 빈다...

- 돌아오는 거리에서

광장에서 인권위건물 도로를 끼고 집으로 가기 위해 걸어갔다. 광화문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경찰은 그 부근을 말그대로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 풍경이 참 묘하게 쓸쓸하고, 묘하게 측은하기도 하더라. 물론 기본적으론 참 엿같은 느낌...


아, 노무현...!!
아, 그런데 왜 노무현은 구호로 외쳐지지 않은걸까. 노무현이라는 상징을 내가 너무 과대평가한건가? 아니면 그 상징은 여전히 잠복되어 있는 앞으로 더 거대해질 상징인건가? 물론 그 시간의 변수들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일이지만...

weisskatze
저는 당연히 노란색이 많이 펼쳐져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없었습니다.
서울과 상황이 다르긴 하겠지만 상당히 안타깝더라구요.
Laputian_
불안감일수도있습니다. 보수언론에게 꼴통노빠로 취급받을지도 모른다는 류의 불안감. 그리고 지금은 '노무현'이라는 의미 집약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민주주의 보장' 등의 구호를 사용하는 편이 훨씬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Laputian_
노무현 자체는 훌륭한 상징이나, 그 상징이 구호로써 외쳐질 정도의 힘을 지니기 위해선 아직은 숙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노무현이 의미하는 바를 더욱 구체화하는 작업도 필요하겠죠.
viamedia
현재 그 상징과 구호에는 어떤 간극이 있고, 노무현은 좀더 긴 상징화의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다만 그의 모순적인 면모들이 좀더 깊이 성찰되고, 그 모순에 대한 애증이 우리의 위선을 치고들어올 때.. 아니면, 힘없는 구호만 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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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진실은 죽었다'

남은 것.
남은 건 기록과 기억의 싸움뿐인 것 같기도 하다. 그건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들이 많아지면, 인도에서 사람이 걸어가지 못하는 일은 생겨나지 않을거다. 기억하라, 그리고 기록하라. 이 재미없는 글을 쓰는 이유도 그래서다.

viamedia
좀더 자세히는 기억하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요. 기억이라는 차원에서 냄비근성은 한국의 근대화 프로젝트로 형성된 것이라 보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기억하는 방식을 상실해 버린거죠. 기억의 매개는 모두 고물상에 내다 팔았어요.
민노씨(이하 '나')
상징과 구호의 간극, 기억하는 방식.. 모두 정말 중요한 지적이십니다.. 특히나 기억하는 방식, 일상 안에서 정치를 살려낼 수 있는 기억할 수 있는 능력과 방법은 정권과 결합한 언론들을 통해 더욱 강하게 거세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viamedia
결국 본뜻의 미디어가 문제겠는데요. 큰 매개 말고, 우리 일상에서 자잘한 기억의 매개가 상실되었다는 것에 관심이 가요. 그게 사회의 집단적 기억상실증의 자원이 된 셈이겠다는... 언론을 이걸 먹이감으로 삼은거고요.
나.
특히나 이분법(남/북, 귀/천, 부/빈, 영남/호남..)식 논리가 심리적인 관극틀을 획일화하고, 일상/정치라는 변질된 이분법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일상 안에서 정치적 상상력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작동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더불어 일상안의 유희성과 욕망의 문제를 죄악시하는 표피적인 도덕정권(박정희가 대표적이겠죠)은 이런 변질된 이분법(일상/정치, 세속/고결)을 심리적으로 내면화하고, 세속에 둘러쌓인 일상에서 정치를 추방해버린 것 같아요.
viamedia
흥미롭게도, 매개(media, sacrament)를 상실한 말씀중심주의, 이분법, 유희와 욕망에 대한 정죄(위선적으로), 성과 속의 구별 등은 한국 개신교(미국식 우파 복음주의의 유산으로서)의 프로파간다였죠. 2mb는 그 결정체고요.
나.
탁월한 지적이시네요. 다만 MB(시스템)은 자신의 도덕적 타락이 신성으로 인해 포괄적 면죄부라도 받은 듯이 행동하는게 유별난 것 같습니다. 타락을 위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락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로서의 신성의 도구화랄까..
viamedia
바로 칼빈주의신학(장로교)의 한 왜곡장인데요. '이중예정' 교리(구원받을 자와 아닌 자는 예정되어 있고, 그 예정은 변치 않는다)가 그런 '타락을 가능케 하는 전제'로 작동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또 선민주의와 파시즘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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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한 벗의 후기
겨울종소리, 빡세게



블로거 시국선언문

2009/06/10 17:2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헌법 1조는 국민주권을 천명하고 있다. 이러한 국민주권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함은 불문가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갖은 편법과 권력의 오남용을 통해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다. 이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공화국의 정신 즉,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침해행위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는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는 기본권 영역이다. 표현의 자유가 실존의 개인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양심의 자유에 바탕한다면, 집회의 자유는 그런 자유로운 양심에 바탕해서 그 개인이 집단으로서 정치에 참여하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표현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이 양자를 모두 옥죄고 있다.

하나, 정부의 언론장악 음모를 비판한다. 언론관계법을 통한 합법을 가장한 언론장악 시도는 지금 이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낙하산 인사를 통한 언론의 친정부화 시도는 MBC와 YTN 노조의 파업사태를 불러일으켰고, KBS의 인사이동 이후 KBS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불러왔다. 이 일련의 행위는 정치언론을 부활시키고, 국민을 길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언론을 전락시키려는 시도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둘, "개인의 명예를 훼손한다." 라는 미명 하에 그 자신 국민이자 시민인 네티즌이 정당하게 행사해야 하는 마땅한 표현의 자유까지 억누르고 있다. 개인의 인격권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를 핑계로 정당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어선 안된다. 이명박 정부 하의 검찰은 듣도 보도 못한 모호한 법률규정을 근거로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네티즌을 구속하는 유례 없는 만행을 저지른 바 있다(미네르바 사건). 이는 정당한 정치적 의사표현를 위축시키고, 네티즌이 스스로를 검열하는 자기 검열의 내면화를 유도하고 있다. 반면, 정부 정책에 반하는 공적 인물이나 유명인의 경우엔 공소사실이나 사생활까지 무책임하게 드러내는 등 차별적인 법 집행을 자행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라는 국가적인 비극을 불러온 큰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셋, "불법 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라는 실현되지 않은 자의적 추정만으로 평화로운 집회를 원천봉쇄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 서거 첫날에는 대한문 앞 조문객을 경찰벽으로 막는 반인륜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그 어느 민주국가가 국민들이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그 어느 민주경찰이 촛불을 든 아이를 무등태운 시민에게 촛불을 들고선 출입할 수 없다고 막아서는가?  이명박 정부는 이런 일련의 행위를 통해 스스로 민주 정부임을 포기하고 있다.

넷, 국민들은 정말 끈질긴 인내로 참아왔다. 지난 해 광화문을 가득 채운 촛불의 바다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 반성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실천은 명박산성으로 표현되었다. 이제 더 이상 말로만 소통을 외치고, 말로만 반성을 외치는 때는 지났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여전히 발견되지 않는다. 이에 국민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우리가 이명박 정부에 원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상식을 원하고, 민주주의를 원하고, 표현의 자유를 원한다. 그리고 자유롭게 모여서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개진할 수 있는 '열린 광장'을 원한다. 이것이 왜 실현되지도 않은 자의적 우려에 의해 원천봉쇄되어야 하는가? 이러고도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 공화국의 정부임을 자임하는가? 과연 이명박 정부가 원하는 것은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졌던 그 권위주의 정부인가? 우리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이명박 정부의 시계를 이대로 둘 수 없다. 더 이상 침묵하는 것은 4.19 혁명과 5.18 광주민주화항쟁, 그리고 6.10 대항쟁의 역사를 되돌리려는 반역사를 묵인하고, 추인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무수히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흘린 그 피의 가치를 그저 지워버리겠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고, 피와 땀으로 성취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민주주의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우리 블로거는 시민의 일원으로서 작은 목소리나마 현 시국에 보태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블로거들은 현 정부의 오만을 성토하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과 대한민국 국민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하여 이명박 정부와 여당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일체의 언론장악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언론 관계법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하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 특히 온라인 계엄령이라고 할 수 있는 지난 4월 국회 통과된 저작권법은 전향적으로 재개정되어야 한다.
하나. 집회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라. 원천봉쇄의 주술을 당장 거두라.
하나. 이명박 대통령은 비판적인 국민의 목소리에 경청하고, 자신의 실정을 반성하고, 사과하라. 그리고 작금의 총체적인 문제에 대한 납득 가능한 합리적인 해법을 제시하라.



* 위 글은 2009.6.11.오전 8:49.에 3차 추고한 글입니다.

* 이 글은 트위터를 중심으로 뜻을 함께한 블로거들이 의견을 모은 시국선언문 기초안을 바탕으로 제가 임의 편집한 글입니다. 아래 링크로 표시된 블로거 시국선언문을 기초로 재편집이 가능하고, 그 초안을 그대로 복사/배포하는 것도 물론 가능합니다. 같은 취지로 제 편집본을 복사/편집/배포하는 것 역시 전적으로 자유입니다. 이 글은 저작권을 일절 주장하지 않습니다. 동료 블로거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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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일린 : http://happyray.com/1429
- 도아 : http://offree.net/entry/Blogger-Declaration-1

- 링크 추후 보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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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곧 광장으로 갑니다! : )



6.10에 부쳐 : 지금/여기가 87년이다!

2009/06/10 00:13
민주·민노·진보신당·창조한국당 등 4개 야당과 진보연대를 비롯한 수백 개 시민사회단체가 오는 10일 전국에서 '6월 민주항쟁 계승 및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6·10 범국민대회'를 열기로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국민 문화제'도 함께 진행한다는 것이다.  [.....] "22년 전 함성을 그리워한다"는 말은 듣기에 따라선 국민의 입이 정권에 의해 틀어막혔던 1987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도 좋으니 자기들이 박수받는 세상만 오면 된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 [조선일보 사설] 도심(都心) 점거 투쟁에 더 이상 민주(民主)란 말 붙이지 말라 (2009.6.9.일자) (클릭 절대 비추. 읽어봐야 읽을 것도 없다. 내가 대신 눈버리고 말지.)

합법, 준법 좋아하는 거룩하신 해당일보사에서 똥줄이 타긴 타나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우라지게 거룩한 종자들아. 6.10 광장에 서는게 시간 남아돌고, 심심해서는 아니거덩. 너희들이 그렇게 염려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이란다. "국민의 입이 정권에 의해 틀어먹혔던 1987년의 상황"이 지금 '2009년'에 다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란 말이다. 그 87년으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지금이 87년이라는 말이다, 이 합법, 준법 좋아하는 거룩한 인간들아. 그 87년의 야만이 연일 이 최첨단 인터넷 시대에 무지하게 재미없는 재방송으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한민국 일등 신문에 "인터넷의 저질들은 (보이지가 않아서) 총이 있어도 쏠 수가 없다"는 고결한 칼럼이 버젓이 실리고 있어서란 말이다. 광장에 "인터넷의 저질들" 많이들 갈테니 그때 원없이 총질하던가. 너희들은 정말 눈이 있어도 볼 수 없고,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고, 마음이 있어도 느낄 수 없고, 대가리가 있어도 정말 생각이란 걸 할 줄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이란 연민이 들 뿐이다.

인터넷 중생들 주눅들게 하는 시범케이스로 미네르바가 긴급체포하고,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게 '잡범' 취급 받으면서 불려다니고, 여당에서는 '촛불이 북한 사주'라는 엄청난 "학자의 견해"(행인) 피력하는 치매의심 환자 강사로 불러와서 지들끼리 옥신각신하는 해프닝을 연출하고... '국민의 입'을 제대로 막아보겠다는, 아니 국민들 아가리를 니들 구미에  안성맞춤시키겠다는 '미디어 패키지 악법'(캡콜드)에 여전히 너희 거룩한 인간들이 골몰하고 있어서... 정말 이 팍팍한 삶에 쌀 한톨 나오는 것 없는 그 거리에서 서서 그저 구경이라도 해야 이 응어리라 조금은 풀릴 것 같아서 그래서 거리에 나서려고 하는 거란 말이다.

인터넷을 하루 아침에 뽕빨낼 수 있는 저작계엄령법이 이제 막 기지개 하려는 이 꽃같은 대한민국을 그래도 사람 숨결이 흘러다닐 수 있는 인간다운 땅으로 만들어보겠다고, 그래도 모처럼 6.10이라서, 그 역사의 숨결에 조금은 인공호흡이라도 해야 살 것 같아서, 그래서 거리에 가자고 이 지랄을 하는거다, 이 ㅆㅂㄹㄷㅇ.

아, 정말 이 거룩한 인간들은 해도 해도 너무해. 정말 어제 오늘 거의 10초도 못자서 내일, 아니 오늘은  미안하지만 늘어지게 잠이나 자려고 했더니 그걸 안도와주네.
에잇 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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