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왕가위(혹은 하루키)는 자위 따위의 너저분한 행위를 쓸쓸한, 혹은 낭만적인 예술의 감수성으로 승화시킨 작가다. 이건 조롱이 아니라 존경의 의미다. 지난 주엔 틈틈히 TV판 에반게리온 26부(이하 에바)를 다시 봤다. 억압, 소외, 각성, 폭주, 해방. 그리고 위로... 로봇만화과 가벼운 학원포르노의 감수성으로 소년소녀의 실존적 소외를 테마로 삼은 에바는 의심할 여지 없이 걸작이다.

극단적인 정적 프레임으로 인물들의 심리적인 상처를 가두고, 에바라는 경이로운 생명체를 통해 그 억압된 심리를 폭주시키며, 파괴와 고통에서 풀려난 해방적 판타지를 다시 실존적 성찰로 이끌어내는 이 걸작은 [아키라]에서 표현된 바 있는 무한증식하는 자아, 신을 추구하며 극단적으로 폭주하는 자아의 정반대 편에 서서, 물론 에바의 각성과 폭주에선 그 무한증식하는 이미지들을 빌려오긴 하지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침잠하는 미시적 자아의 풍경들을, 미소년/소녀들의 이율배반적인 성적 판타지의 이미지들을 끌어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파괴적인 이미지로, 그래서 더 고통스럽고, 쓸쓸한 이미지로 표현한다. 그들은, 우리는 여전히 이 빌어먹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는 짐승들"이다.



추.
1.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서구화된 미소년/소녀의 이미지는 물론 에바에서도 여전하다. 얼굴 모습이나 신체비율이 좀 심하게 비동양적(?)이다.
2. 오프닝 주제곡 '잔혹한 천사의 테제'(残酷な天使のテーゼ. Cruel Angel's Thesis)는 쵝오! (유튜브 링크)


- 이하 스포일러 관련 (약간 아리까리한 궁금증. 아시는 분 조언 부탁. 보충. 가급적 비밀글로 부탁. ^ ^)

more..




모빌은 왜 모바일로 불리기 시작했을까?

2010/01/29 09:00

어떤 표기나 단어 의미가 아리까리하면 마치 재채기 하기 직전 간지러움 같은 느낌이다. 물론 그러다가 그 간지러움이 멈추기도 하고,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사전을 찾는다,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많은 독자들, 블로거들이 그러리라. 하루에도 가장 자주 반복해서 들춰보게 되는 건 각종 (백과)사전들이다. 주로 한국어 위키백과, 구글사전, 네이버 (백과)사전를 이용한다. 더 좋은 온라인 사전이 있다면 소개 부탁.  ^ ^


1. 모빌/모바일

mobile [móubəl, -biːl] [US]   [-bail] [UK] 
흔히 휴대용 통신기기를 표현하는 말로 쓰이는 '모바일'은 미국식 발음이 아니라 영국식이다. 미국문화가 거의 모든 문화의 기준처럼 작용하는 우리나라에선 좀 특이한 현상같다. 미술작품이나 장신구로서 사용되는 움직이는 조각을 표현할 때는 또 '모바일'이라고 쓰지 않고, '모빌'이라고 쓴다. "가느다란 실, 철사 등으로 여러 가지 모양의 쇳조각이나 나뭇조각을 매달아 미묘한 균형을 이루게 한 움직이는 조각"(한국어 위키 '모빌'). 양자를 구별하기 위해서 이렇게 된건가? 그건 아닐 것 같은데 왜 모빌을 모바일로 쓰기 시작했을까? 광고문구의 어감 때문이었을까? 궁금하다.

* 보충. 엔디의 설명 (댓글 논평을 본문에 인용 보충. : )
엔디  2010/01/29 09:45
의외로 미국식이거나 영어식이 아닌 외래어들이 많습니다. 별다른 기준은 없는 것 같고 용어의 도입 초기에 많이 쓰던 말이 굳어졌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에 산업자원부에서 '국제 기준'에 맞춘답시고 (주로 독일어식)화학용어 표기를 (영어식으로) 바꾸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영어'가 표준인 한국에서 영어식이 아닌 다른 나라 말도 많다는 한 반증이 될 것 같습니다.

나트륨을 소듐으로, 비타민은 바이타민으로, 비닐은 바이닐로 쓰라는 둥 아주 국제화(=미국화)에 앞장선 발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가 화학에 문외한이라 전문용어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지만요. (관련링크) '게놈/지놈' 논란도 참고할 만합니다. 원래 독일어로 '게놈'이라고 쓰는 게 맞는데 중앙일보에서는 '지놈'이 맞다고 지놈들만 우기고 있습니다. (샘숭의 국제표준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ㅎ) (관련링크)

덧붙여 mobile이 모빌이 아니라 모바일이 된 것은, /자음/i/자음/e나 /자음/a/자음/e의 경우 대개 '아이', '에이'의 발음을 살리려는 한국인의 습관도 반영된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2. 프리젠테이션 / 프레젠테이션 혹은 시청각설명회.
위키백과에서 '프리젠테이션'을 검색하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시청각설명회
시청각설명회(視聽覺說明會) 또는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은 정보 전달 수단의 일종으로, 듣는 이에게 정보, 기획, 안건을 제시하고 설명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국립국어원은 프레젠테이션이라는 쓰임말(용어)을 사용하지 말고 시청각설명회라는 쓰임말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외래어(들온말) 표기법에 따른 표준어로서 "프리젠테이션"은 프레젠테이션의 잘못이다. 네이트온 메신저의 경우 버전이 갱신되면서 환경 설정에서 이러한 잘못을 바로잡은 바 있다.
'프리젠테이션'이라는 표기가 왜 잘못인지 모르겠다. 한국어 위키의 설명이 잘못(착오)된건가?
presentation [prìːzentéi∫ən,prèzən-] [US] [prè-] [UK]

늘 느끼는 거지만 당대에 유행하는 선망으로서의 비교표지, 지적 우월이나 과시로서의 비교표지에는 항상 외래어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 같다. '시청각설명회'라는 우리말 표현은 왜 촌스럽게 느껴지는건가? 영어는 쥐뿔도 못해서 나솔에게 블로그 영어과외를 받으면서도, '시청각설명회'라는 명쾌하고, 직관적이며, 소박한 우리말표현이 촌스럽다는게 좀 스스로에게도 어벙벙하달까...살짝 한심하달까 그렇다. 물론 당대 평범한 일반인의 자연스러운 언어습관이 우리말 사랑이라는 '계몽'으로  바뀐다는 순진한 생각은 별로 하지 않지만.


추.
예전엔 이런 글을 쓰면 곧잘 엔디가 달려와서 아주 친절하고, 정확한 설명을 해주곤 했는데... : ) (보충. 엔디가 고맙게도 보충댓글을 남겼다.. 땡큐베리감솨! )



* 발아점
아거의 멋진 분석글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튀어서 쓰다가... 말고, 다시 이어서 마저 쓴 글
그런데 위 아거의 글은 현재시각, 그러니까 아침부터, 트래픽 초과로 접속 불가..ㅜ.ㅜ;;



아이패드(iPad) 관련글 추천

2010/01/28 13:03
역시나 애플의 탬플릿 PC '아이패드(iPad)' 관련글이 웹을 뒤덮고 있다. 나같은 기계치, 게다가 애플 물건은 아직 아이팟도, 아이폰도 구입한 적 없는, 평범에서도 멀어지고 있는 블로거 역시 관련글들을 읽게 된다. 주로 트위터를 통해서 읽은 글들인데, 그들 가운데 인상적인 것 몇 개.

강추) 아이패드, 기대와 실망의 협주곡(블로터, 강정수) http://bit.ly/8YpgaW
아이패드가 가져올 각 시장영역의 희비쌍곡선을 예상한 글이다. 본인 블로그에도 같은 글이 있는데, 제목이 "아이패드. 절반의 성공 : 산업별 영향 예측"으로 좀더 직접적이다. 글맛이 참 좋다. 묵시록투 수사들이 왠지 이런 주제엔 어울리는 것 같다. 강정수는 아이패드가 가져오 시장판도 변화를 다음과 같이 예측한다. 일단 테크노 긱(Geek)들의 실망('덩치만 커진 아이팟')은 차치하고, 기대시장은 ㄱ. 전자책 시장 ㄴ. 공중파/케이블 시장이다. "게임오버"로 표현한 시장은 ㄱ.연성게임시장 ㄴ. PMP 시장이다. "게임오버"는 애플이 그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는 표현이다.

개인적으론 가장 궁금했던 언론시장 경우엔 여전히 모호한 느낌이다. "‘언론사’를 위한 메시아는 오지 않았다."며 그 '언론사의 실망감'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좀더 지켜봐야 하지 않나 싶다. 이에 대해선 강정수가 운영하는 베를린로그의 '애플 iPad와 종이잡지의 미래'와 함께 읽으면 더 흥미로울 것으로 생각한다. 이 글은 애플과 구글의 거시적 철학과 비전의 차이를 통해 애플 전략을 은근히(?) 비판하는 글이라서, 후속글을 몹시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굳이 사족을 붙이면, 전자책 시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한 부분은 인상적이다. "아직도 ‘전자책’을 거부하는 출판사들이 존재할까? 만약 있다면 출판사업을 접는 것이 그들의 다음 수순이다."(강정수) 

펄의 트윗 '도와줘요!' ㅎㅎ 요청으로 김주희가 추천한 관련글 몇 개 : iPad 자체에 대한 기술적인 설명들.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도 보심 좋을 듯
RT @HanBaDa_:
http://j.mp/dsVXbK
http://j.mp/bOMSrZ
http://j.mp/9wU4C1
IPad에 대해 RT한 트윗 모음입니다. 참고하세요. ^_^
http://twitter.com/pariscom/statuses/8305977132

이정환의 우려
애플의 독점이 가져올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애플이 본격적으로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면 세계적으로 언론사들이 애플에 줄을 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애플의 플랫폼을 대체할만한 다른 플랫폼이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이다.
http://twitter.com/leejeonghwan/statuses/8306433946


[관련글 보충] 
아이패드 발표를 보고(써머즈) http://bit.ly/duWlhb
대중화 전략(애플유저 확대)이라는 관점에서 1. 전자책 시장 장악 2. 넷북 틈새 공략을 강조. 킨들(아마존의 전자책)과의 비교가  표로 잘 정리되어 있다.

iPad의 아쉬운 점들..(Gerry) http://bit.ly/977d5w
원제목에서 "노트북, 넷북을 대체할까"라는 표현은 좀 과장한 수사같고, 넷북과 경쟁력 있을까란 질문에 대해 회의적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특히 가격경쟁력에서, 일반적인 평가와는 달리, 그 역시도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아이패드와 애플에 관한 짧은 트윗대화 (캡콜드) http://capcold.net/blog/5494

무언가 불편한 진실 http://bit.ly/9o2E4h (양주일)
: 맥 아이패드와 어도비 플래시의 사랑과 이별의 대서사시... 아주 재밌는 글 :D

아이패드에 대해 미처 못 한 얘기들 (coolpint)
http://www.journalog.net/coolpint/23565

나도 아이패드 이야기 (아틸라)
http://blog.lawfully.kr/2010/2/2/ipad
"... 대충 이제 스티브 잡스가 그리는 컨텐츠 플랫폼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윤곽이 싫다."




아파트, 극락 같은

2010/01/27 23:53

* 발아점 : foog트윗
http://twitpic.com/10002v - 21세기 대한민국 서민의 환타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C)문화방송


이건 마약이다. 이 마약은 우리시대의 대통령을 결정하는 강력한 주술이고, 용산의 불기둥을 차가운 물대포로 지워버리는 망각의 샘이며, 그 영혼들을 그저 알박기의 화신으로 냉소해버릴 수 있게 하는 자본주의적 자기 정당화의 근거다. 이 마약은 바위 위에서 죽어간 대통령의 유훈을 농담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마약을 통해 우리는 정치적 상상력을 인테리어적 상상력과 맞바꾼다. 그리고 그 인테리어적 상상력 속에 놓여 있는 저토록 탐스럽고, 저토록 아름답게 빛나는 아, 저 명품들을 한없이 한없이 행복하게 꿈꾸며... 우리들은 그 뽀샤샤한 욕망이 만든 괴물같은 감옥의 수인이 되어간다. 우리는 결코 그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아니 나올 생각 없다. 이 성스런 감옥을 파괴하는 자에겐 죽음만 있으리, 우리는 다짐한다. 우리는 기꺼이 그 감옥으로, 감옥으로 자진해서 스스로를  밀어넣고, 그 감옥에 성공적으로 입성한 그 누군가를 한없는 질투와 시기로 끊임없이 모방한다.


* 글 제목은 이강백의 희곡, '느낌, 극락 같은'을 차용했음을 밝힌다.



* 지난 글 마저쓰기 차원.
지난 2009 올블 어워드에서 개인적으로 재밌었던게 특별상 다섯 부문이다. 나는 거기에 아래 블로그들을 추천했다. 그런데 이게 좀 웃긴게(혹은 당연하게도?), 올블에 가입하지 않은 블로그들은 추천이 안되더라. 그래서 최종 입력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시 짤방도 있긴 한데, 뭐 지난 일이니 생략한다. 아무튼 위 형식에 맞춘 좋아하는 블로그들에서 느낀 내 나름의 단점(?) 아쉬움(?)을 적어본다. 그냥 가벼운 놀이차원으로 적는 글이다. 무슨 심각한 비판이나 그런거 아니니까 너무 진지하게 읽진 않길 바라며.. 이 블로그들은 당연히 모두 초강추!


1. 유용한 블로그... 클릭 한방!
단점을 발견하기 어렵다는게 단점이다. 무결점주의(ㅎㅎ). 그런데 노출도는 내가 기대하는 것만큼 높지 않은 것 같기도 해서, 쇼맨쉽(ㅎㅎ)이 다소 부족해 그런건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굳이 단점을 들면 스테이지 매너(?).. 가령  제목이 내용에 비해서 좀 심심하단 생각을 종종한다. 최근 업데이트도 꾸준하고, 가장 탐독.

2. 만나고픈 블로그... 클릭 한방!
스스로 핍박받고 외지로 유배된 고고한 선비(?) 이미지가 가끔은 좀 비현실성을 갖게 한다. 체험치가 별로 없는 평범한 독자로 나 자신을 가정해보면 뭐랄까, 좀 벽을 쌓는 느낌이다.

3. 디자인 예쁜 블로그... 클릭 한방!
현재는 여기에서 디자이너로 일한다. 개인적인 인연 때문에 물론 더 애정이 간다. 블로그는 그냥 순수하게 장난(?)처럼 운영하고 있어서 딱히 아쉬움을 말하긴 좀 민망하다. 의외로(?) 코믹하고, 유쾌한 이미지.
 
4. 영감을 주는 블로그... 클릭 한방!
너무 무겁고, 진지하며, 근엄한 이미지다. 그래서 좀 근접하기 어려운 아우라를 풍긴다. 주로 미국쪽의 섹시한 칼럼니스트 혹은 최근의 이론적 경향을 출처나 글의 발아점으로 삼는 경향이 고정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그의 실존이, 욕망이 강하게 개입하는 이야기들도 가끔은 듣고 싶다.

5. 유쾌한 블로그... 클릭 한방!
오프라인 뒷담화투로 말하면, 솔직한 건 좋은데 가끔은 지나치게 버르장머리가 없다. ㅡ..ㅡ; 이른바 오프라인서 잘나간다는 블로거에게 아부하는 이미지를 블로그에서 느낄 때가 있다. 정말 정치술, 외교술인건가? 내 느낌으론 농담반 진담반의 유머같다.

가만히 생각하면, 내가 좋아하고, 애착하는 블로그들을 통해서 결국 보게 되는 건 내 욕구들, 내 결핍들이다. 이건 이토록 훌륭한 블로그들 뒷담화(?)까면서 나중에 괜히 쑥쓰러워져서 꺼내는 면피용 이야기가 아니다. 정말 써놓고 보니 그들에게 내 욕망을, 내 결핍을 본다.


* 누가 이런 형식으로 릴레이 이어가줬음 좋겠다... : )
여기에 쓴 다섯명의 블로거가 이어가주면 정말 좋겠지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고.. ^ ^;;
이런 주제로는 J준, 캡콜드, 레오포드, 너바나나, 달키...가 쓰면 잘 쓸 것 같기도 한데... 아참, 요즘 거침없는 필력을 뿜어내는 필로스를 빠뜨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