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시대를 말한다

2007/04/29 22:46

#. 제가 존경하는 한 블로거께서 한화 김승연 사건에 대해 '다시 박정희 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는 절망감을 개인적으로 토로하십니다. 현재의 진행경과를 보니... 그 절망감에서 쉽게 빠져나오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불난데 기름 붇고", 거기에 "가스통 던진" 형국이네요.

박정희 시대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 줄로 압니다. 저 역시 그러합니다. 다만 아주 조금은 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바가 있습니다. 이
글이 그 '박정희 시대'를 이해하는 작은 참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 글은 제 주관적인 단상에 불과합니다. 이 글은 2001년, 혹은 2002년에 쓰여진 글인데요, 중간에 두 번 정도 추고한 글이고, 한겨레블로그에 일년 남짓 보관했던 글입니다. 이 글은 메타에 발행되었던 적 없던 글이라서 이미 공개된 글이지만 발행할까 합니다. 한겨레블로그에서 글을 굳이 옮겨오는 사유는  한겨레 블로그의 공식적인 정책에 대해 이견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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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대를 말한다.

 

Ⅰ. 서  

우리는 구체적인 '사회/문화/역사' 속에서 산다. '사회/문화/역사' 속에서 산다는 말은, 그 의미는 '지금/여기'에 함축된, 스며들어 있는 '그때/거기'의 관성과 토양 속에서 산다는 의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사회/문화/역사 속에서 산다고 말할 때 그 '우리'는 인류 전체, 인간 전체를 가리키는 보편적인 표현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공동체'를 가리키며, 그것은 그래서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인 한반도의 남쪽에 사는 '우리'를 지칭한다. 우리는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중화문명의 변두리에서 생겨나, 반만년 시간의 고속도로를 통과하여, 지금,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긍정하는 체제 혹은 사회 또는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지금'의 구조 혹은 그 토양을 이야기하기 위한 한 방법은 통치구조 형태를 살펴보는 일이다. 우리는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강력한 대통령제를 통치구조의 주축으로 하는 정치제도를 갖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은 우리 삶의 조건이 되는 제도다. 그것은 우리 삶의 토양을 구성하는 강력한 요소들 중의 하나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나간 시대를 통칭하는 표현으로 대통령의 이름을 수사로 하여 이승만 시대, 박정희 시대, 전두환 시대 등등으로 지나간 시대를 함축한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는 고유명사에 불과했을 그 이름들은 보통명사가 된다.

'보통명사化'된 대통령의 이름들 중에서 가장 강력했던, 지금도 여전히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름을 하나만 뽑아야 한다면 그 이름은 박정희가 될 것이다. '박정희'라는 이름은 해방 이후 현대사에 있어, 그리고 지금도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그것은 단지 과거 한 시대를 지칭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이데올로기' 형태를 띠며 아직도 '지금/여기'에 부딪히고 있다. 그것은 관성으로서의 '과거'가 아니라, 그 관성이 시스템을 구축하여, 지금 여전히 우리에게 스며들어 있는 강력한 담론구조의 핵심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금은 일단락된 송두율 교수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 시대의 정체를 밝혀야 할 때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화두다. 송두율 개인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은 유보하더라도, 최소한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독일이라는 분단국에서 성장하고 학문적인 성취를 이루어오던 한 진보적인 지식인이 독일의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자신의 모국에 큰 맘 먹고 돌아온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는 '건국 이래 최대 간첩'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수감된다. 역사의 가정만큼 어리석고, 무용한 일은 없겠지만 '박정희 시대'가 없었다면, 송두율이라는 '경계인'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며, '김일성'이라는 또 다른 보통명사도 그 존립이 그다지 용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박정희 시대는 60년대 초반에서 70년대 말까지의 한국사회와 북한 사회를 규정하면서, 아직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그 그림자를 드리우며, '살아 있다'.

이 글은 그 박정희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다. 어떤 한 시대를 분석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꼭지점 세 개, 즉 정치, 경제, 문화 측면에서 박정희 시대를 고찰하고자 한다. 1) 정치이데올로기로서의 '반공' 2) 개발독재 신화 3) 문화 ( 달리 말하자면 사회구성원의 내면적인 의식의 풍경) 영역에서 박정희와 그 시대를 살펴보도록 한다. 그 작업이 지금/여기의 우리를 돌아보며, 내가 나아가야 할 지향의 지침을 마련하는 작은 연습이 될 수 있다면, 이 글이 감상적인 에세이에 그치더라도,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의미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Ⅱ. 정치이데올로기 ; 반공
반공이라는 한국전쟁 이후 남한을 규정하는 최대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국민들 대다수 의식에 내면화된 시대는 박정희 시대였다. 그것은 남한이 취한 생존 전략이었으며,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박정희 정권이 취한 생존 전략이었으며, 그럼으로써 김일성 주의의 한 대척점이 된다. 박정희 시대의 '반공'과 김일성 시대의 '주체사상'은 그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그것은 서로에게 타자였다. 그리고 그 정치적 지배 이데올로기는 서로를 극단적으로 타자화하면서,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정당성을 구축하면서 공생한다. 그 둘은 서로에게 반대말이 아니라, 마치 서로에서 있어 동전의 뒷면과도 같다.

비유하자면, 반지를 구성하는 것이 구멍과 동그라미라면 그래서 동그라미만 있어도, 혹은 구멍만 있어도 완전한 반지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양자는 서로에게 동그라미와 구멍이 된다. 그 동그라미라는 울타리 안으로 자기 진영을 결속시키고, 구멍에 무한한 공포와 증오를 쏟아 붇는다. 그 구멍은 무한하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양자는 극히 이례적인 '장기 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우선 타자에 대한 간략한 의미규정이 있어야겠다. 타자는 국어사전을 찾아볼 것도 없이 쉽게, 우리의 일상적인 의미회로 속에서 말하자면, ‘남‘이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서구 철학은 그렇게 우리를 학습하고 있으며, 그 서구 개인주의적 전통과 주체철학은 우리들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강제적‘으로 내면화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 범위와 테두리와 영역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개별적인 개인을 기준으로 하자면 위의 의미규정이 맞지만, 범위를 확대하면 ‘나-우리‘와 ‘그-그들‘이 대립항으로 존재할 때 우리 속에 있는 ['나'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남이 아니다.

나는 홀로 스스로를 규정할 수 없다. 나는 남자이며,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며, 특히 수도 서울에 살고 있으며…라고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관계‘의 그물망에 내가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그 관계의 그물망에 포획되지 않고선 나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내가 나를 ‘세우기‘위해선 타자들과의 관계를 필연적으로 필요로 한다. 내가 나 홀로 [나]일수는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최초 논점으로 돌아가 보자. 남한의 존립근거는 북한이다(혹은 이었다). 남한 권력은 스스로의 이름과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타자로서 북한을 설정했다. 북한 역시 남한에 대하여 그러했다. 남한은 북한을 타자로 설정하고, 스스로를 소외시킴으로서 주체를 확립할 수 있었다. 주지하는 것처럼 남한 군사독재정부는 북한을 철저하게 타자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아니 그 순서를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북한을 철저하게 타자화시켰다. 그것이 극명하게 노출된 것은, 극도로 심화되어 정점에 오른 시기는 박정희 시대일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유신체제가 가능했던 근거 중 하나가, 그 ‘야만‘이 존립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북한 유일지도체제라는 것도 사실이다. 유신과 유일지도체제는 서로를 극단적으로 타자화시킴으로써 스스로 정당성을 획득했다.

박정희 시대는, 그 시대 남한은 북한이라는 ‘괴물‘로부터 스스로 도피하고, 스스로를 소외시킴으로써, 그리고 그 ‘괴물‘을 더욱 흉칙하게 만듦으로써 자기 스스로는 빛나고,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으로 포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기만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으며, 그 자기 모멸이 심화될수록 북한에 대한 타자화는 가속되었다. 그런 야만의 시대가 가능했던 것은 ‘혼자서 말하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타자-북한이 ‘지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주체-남한이 혼자서 말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북한의 입장에서 타자-남한이 지옥이 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주체-북한이 혼자서 말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인과를 엄밀히 따지면, 주체-남한이 스스로를 위해서만 말했기 때문에 북한은 타자가 된 것이며, 북한 역시 남한에 대해 그러했다.


Ⅲ 경제 ; 개발독재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새마을 운동'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신화를 이야기한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6,70년대 눈부신 경제 성장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낭만적인 향수를 자극하는 가장 커다란 유혹이다. 그래서 정치적인 측면에서 폭압 정치와 공작정치, 더 나아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반민주적인 유신헌법을 통해 영구집권을 꾀했다는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는 점만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면제부로 작용하곤 한다.

규모 면에서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 성과는 '파이'를 키웠다. 그래서 그 '파이의 분배'이전에 그 규모 측면에서만 말하자면 박정희 시대는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파이가 커질수록 배가 불렀던 사람들은 정말 극소수 자본가들뿐이었다. 세계적으로도 그 고유한 의미로서는 하나뿐이라는 '재벌'이 생겨나서 심화된 것도,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무자비한 방식으로 탄압하고, 전태일이 그렇게 자기 몸을 산화하며 죽어간 것도 박정희 시대였다.


박정희 시대 경제개발 성공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공은 박정희라는 개인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반문하고 싶다.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에 저임금과 가혹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 몫을 찾을 생각도 해보지 못하고, 그렇게 자기 노동을 착취당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들이 실은 [한강의 기적]의 주역이다. 기적은 그런데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감동적인 모습으로 그들 삶으로 스며들지 못했고, 자신이 받아야 하는 정당한 파이를 주장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당장 회사에서 쫓겨나거나,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끌려가 고문당해야 했다. 반면에 해외 차관을 싼 값으로 기업에 빌려주고, 그 돈으로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려 성장 기반을 확보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했던 기업들은 지금은 거대 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이것이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의 본질이다. 그래서 그 야만적인 경제구조의 편파적 분배는 아직까지도 우리의 지금/여기에 작용하고 있다. 재벌개혁을 외치고, 평등한 분배을 주장하는 시민사회가 그 작은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87년 6월까지 기다려야 했으며, 그 87년 위대한 여름을 지나고서도 아직까지 분배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없다.


Ⅳ 문화 ; 자기 검열
의식이 자기 스스로를 주인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 노예가 되는 가장 치욕적인 방식은 스스로를 ‘타인’의 시선으로 감시하고,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흔히 '검열하는 자'의 시선을 자기 내면에서 심어서 자기 자신이 검열자가 되어 스스로를 사지절단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내면을 파괴하고, 황폐화하며, 그는 정당한 주체가 되지 못한다. 그는 조정 당하는 자이며, 누군가로부터 감시 받는 자이며, 국가라는 거대한 감옥에 수감된 자이다.

그 감시 기제들, 방법들은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제도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방식을 통해 사회 안의 개인에게 작용한다. 박정희 시대에 억압장치들은 가장 왕성하게 노골적인 형태를 갖고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조정했으며, 끊임없는 순응화를 시도했다. 甲은 밤 12시가 지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아니면 구치소 신세다. 밥 딜런과 비틀즈 팬인 乙은 머리를 기를 수 없다. 당장 순경이 '바리깡'을 들고서 乙 앞머리를 밀어 버린다. 甲, 乙, 丙, 丁은 길을 걷다가도 5시가 되면 얼어붙어 국기 하양식을 지켜보며 왼쪽 가슴에 손을 갖다 대아야만 한다. '박정희'라는 이름은 함부로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되는 이름이다.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대통령'이라거나 '각하'라는 명칭을 그 뒤에 존경의 형식으로 붙여 써야 한다. 아니었다가는 '국가원수 모독'혐의에 걸리는 수가 있다.


긴급조치 시대,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은 휴교로 빈터가 되고, 시위를 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인혁당 사건이라는 세계 사법사상 더없이 치욕스런 사건을 조작해내서 그 최종판결 다음날 죄 없는 목숨을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는 시대. 그런 시대에 양심에 따라 자신의 사고를 비판적으로 무장하고 자기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곧 목숨을 내놓는 일이다. 그러니 어떻게 신념의 자유, 양심의 자유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박정희 시대는 개인의 양심이 국가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에 무참하게 압살 당했던 시대였다. 그래서 순응적인 인간, 새마을 운동정신으로 근면성실하게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그저 아무런 비판정신 없이 살아가면 그는 '모범시민'이 된다.


예술은 세종문화회관의 거대한 장식들 속에 갇히고, 일상의 차원에서 샘솟는, 말 그대로 [삶을 위한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 무수히 많은 국민들은 몇몇 엘리트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며, 그 성취에 존경만을 보낼 자격만을 갖게 될 뿐이다. 스스로 무엇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선, 그것이 국가에 '흠'이 되지는 않는지, 박정희 각하에게 노여움을 사지 않는 것인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그러한 자기 검열을 의식하지 못하고, 스스로 검열하고 있다는 사실마저도 망각할 때, 그 자기 검열을 자기 내부에 이식하고, 스스로 완전히 내면화하여 그 검열이 습관처럼 작용해야만 '평온'을 얻는 시대. 박정희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커다란 흉터는 자기 검열의 내면화다. 자기 검열과 스스로를 타자화하는 극단적 소외의 집단화는 우리가 그 적극적인 거부로써 87년 6월의 시청 앞 광장 체험을 획득하기 까지 우리 사회 전체를 보이지 않는 감옥으로 만들어 놓았다.


Ⅴ 결: 우리의 매트릭스, 우리의 시온 

부버는 두 개의 근원어를 말한다. ‘나-너‘라는 근원어와 ‘나-그것‘이라는 근원어다. ‘나-그것‘의 관계에서는 오직 메마른 지식과 지배/복종과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진정한 관계가 아니며, 가상인 관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정한 만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때 남는 것은 자기 내부의 소외다. 나는 스스로에게 멀어지며, 나는 결국은 내가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타인은 지옥
일 수 있지만, 그 타인에게 손을 내밀어, 진정한 관계를 가진다면, ‘나-너‘라는 근원어의 관계를 만들 수 있다면, 이미 그 때 그 타인은 ‘너‘가 된다. 그 ‘너‘는 이미 ‘나‘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혼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또 다른 나와 분열적인 ‘복화술‘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로서, 주체로서, 나와 너로서 대화하는 것.


정치로서는 민주주의를, 경제로서는 사회주의적 자본주의를, 문화로서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유주의를 지향하여야 하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 선택'이라면, 박정희 시대는 그러한 시대를 만들어가야 하는 우리에게 적지 않는 과제를 남긴다. 그것은 부정되어야 하며, 청산되어야 하는 유산이자 부채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보전해야 하는 유산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성원들이 아직도 많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게 우리는 '아니다'라고 말해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렇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존중해야 한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은 박정희라는 그 개인이 아니다. 우리가 부정해야 하는 것은 박정희라는 인물로 상징되는 그 시대, 쉽게 말해서 [박정희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하는 것은 박정희라는 그 개인의 치적이나 과오가 아니라, 그 박정희라는 시대, 박정희라는 '시스템'의 관성이 아직도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사회 여기저기를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거기에서 박정희의 그림자를 사라지게 하는 일이다.


우리는 박정희 시대가 남긴 아픈 흉터들을 통해 그 흉터가 보이 싫다고 외면하거나, 무조건 비판하는 극단론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박정희를 부정하면서, 그 박정희 시스템을 흉내내고, 다시금 확대 재생산하는 어리석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가 갖는 이데올로기적 속성과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반동성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지양하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반대자들을 포용하되, 그들과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서로 대화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그럴 때 박정희 자체를 옹호하든 비판하든, 우리는 [박정희 시스템]이라는 '매트릭스'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우리의 '시온'이 어디이며, 어떤 모습일지는 '지금/여기',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치열한 노력들, 존중과 관용과 대화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 한화 김승연 '아들 복수 사건'와 관련해서 한겨레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원래는 아래 있는 글(김회장 조폭 데뷔 축하 포스트)에 '보충'하는 차원에서 기사 몇 링크하고, 간단한 코멘트로 마무리 하려고 했는데요.

워낙에 제가 한겨레를 아끼는 까닭(진담)에 굳이 시간 좀더 내서 검토합니다.
한겨레 뒷북이 꽤 요란합니다.





 

한겨레와 김승연, 신중보도인가? 뒷북인가?

- 김승연 조폭 데뷔 축하 포스트 2.







0.
"김승연 한화 회장이 직접 때렸다" (종이 1면 헤드라인, 3면 메인에 계속)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05741.html
특별취재반이라는 이름으로 보도하고 있네요.

이게
A - 신중하고 책임있는 보도를 위한 것인지,
B - 아니면 다른 곳(연합, 오마이, 특히 조선일보 25일. 만평과 8면)에서 이미 터뜨렸으니 이제 정말 가만있을 수 없다인지..

솔직히 저로선 잘 구별이 안됩니다.

아무튼 오늘자(07년 4월 27일) 종이신문 헤드라인과 현재시각(27일 오전 8시쯤) 인터넷한겨레 헤드라인은 '김승연'입니다.

관련기사도 꽤 됩니다.
사설에도 등장하네요.

이하 관련기사들 살펴보죠.



1. 종업원들 한달넘게 침묵 왜? (3면 좌측 최하단 짧은 3단)
“경호원 옷사이로 생선회 칼 보여서”…사장도 “덮고 가자”
기사등록 : 2007-04-27 오전 07:37:24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05740.html

☞ 역시 예상가능한 평범한 기사네요.
(인터넷한겨레로 보면) 12줄 기삽니다.
굳이 읽을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2. 김승연 회장은 누구? 미 명문대 세아들 자랑 대단 (3면 좌측 하단 3단 박스)
기사등록 : 2007-04-27 오전 07:33:25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05739.html

☞ 김승연씨에 대한 이모저모네요. 딱히 인상적인 내용 없습니다.


3. “한화회장 자녀가 가해자” 첩보받은 경찰, 한달간 ‘내사’ 시늉만 (4면 메인)
기사등록 : 2007-04-27 오전 07:28:55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05738.html

☞ 읽으면서 뭐랄까...
그동안 한겨레는 그동안 뭐했나.. 싶습니다.
[친절한 금자씨] 생각나네요.
'그 유명한' 대사는 생략합니다.


4. 한화그룹 ‘이미지 악영향’ 초상집 분위기 (4면 우측 긴 2단)
기사등록 : 2007-04-27 오전 07:25:34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05737.html

"26일 밤 텔레비전 뉴스에서 김승연 회장이 용역회사 직원까지 포함된 경호원들과 함께 직접 종업원을 폭행했다는 진술이 나오자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 (후략)"


5. [사설] 믿기지 않는 재벌총수의 보복폭행
기사등록 : 2007-04-27 오전 07:23:10

역시나 별 내용 없습니다.
경찰의 엄정한 수사를 당부하고 있네요.

사설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이 사건은 피해자 합의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순 폭행사건이라면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반의사불벌죄'가 맞습니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 처벌할 수 없죠.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의심되는 혐의가 단순 폭행이 아닙니다.
이건 야간에 집단(단체, 혹은 다중)이 피해자를 '납치'해서 '폭행(혹은 상해에 이른)'한 사건입니다. 집단이든, 야간이든.. 이건 이미 단순 폭행이 아니라 '특수'가 그 앞에 붙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론 '폭처법(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의 규율을 받겠지만요. 피해자의 고소나 의사와 상관없이, 공권력이 그 반사회적 행위에 대해 조사하고 평가해야 하는 사건입니다. 단순한 폭행사건과는 그 범죄의지와 불법의 크기가 비교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공인이, 우리나라 유수 재벌의 회장님이 그랬습니다.
더더욱 그 비난가능성은 크다고 생각합니다.

경찰 수사는 당연히 심도깊게 진행되어야 마땅합니다.
우리도 짬짬이 이 사건의 진행경과를 지켜봅시다.

그저 기억에서 좀더 오래 붙들어 놓을 수만 있어도 의미가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억합시다.
조금만 더 오래.


6. 결
연합과 오마이와 조선(만평과 8면 사회), 중앙(이니셜 보도)과 공중파 텔레비전에서 이미 터진 사건을 이제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한몫 챙기려고 한다는 혐의가 느껴진다면, 제가 너무 악의적인가요?

물론 이제서나마 사건의 중대성과 언론상품으로서의 가치에 대해 주목한다는 건  저널리즘의 관점으로도, 그리고 언론'회사'의 관점으로도, 불행 중 다행이긴 합니다. 그리고 이런 정말 문제있는 사회의 병리현상을 좀더 큰 범위에서, 뒤늦게나마 공론화하는 역할에 주목했다면, 그것 역시 인정합니다.

다만 좀 민망한 느낌이 사라지지는 않네요.
그다지 심층적인 취재의 흔적도, 개인적으론 느껴지지 않습니다.
물론 관련기사도 많고, 지면도 많이 할애하긴 했지만요.

무엇보다도...
한겨레의 기사(4번)에서 말하고 있듯 26일에 이미 공중파에까지(?) 방송된 내용입니다. 인터넷한겨레의 기사들은 대부분 27일 오전(대개의 기사등록시간을 보니 오전 7시 대에 집중되어 있군요)에 등록되었네요(위 기사들의 등록시각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물론 위 링크된 기사들, 기사제목 우측의 괄호 설명처럼 종이신문에 모두 나온 내용들입니다.
그러니 인터넷한겨레에서는 받아서 등록한 것 뿐이죠.
일반적으로 인터넷한겨레에 먼저 기사가 등록되거나, 올라오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뭐, 확실하진 않지만요. 다만 칼럼이나 사설의 경우엔 확실히 인터넷에 먼저 등록되는 것 같습니다. 

서툴게 추론하자면, 일단 특별취재반 구성하고(급조하고), 기사 대충 만들고, 종이신문에 넘긴 다음에, 인터넷한겨레에 다시 넘긴 것 같습니다. 물론 이건 제 주관적인, 그리고 다소간 콧방귀 나오는 한겨레의 뒷북이 못내 서운해서 좀 감정적으로 추론한 것에 불과하긴 합니다.

이래서는 '고급지' 소리 들을 수 없습니다.
이래서는 '뒷북신문'이란 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이죠.

지난 황우성 파동에서도 몇 개의 단편적인 칼럼과 사설로 일관했다고 저는 평가합니다. 적극적인 문제제기, 적극적인 취재를 통한 심도 있는 기사들.. 솔직히 발견한 적 없습니다. 여론 눈치 보면서 다른 매체의 보도 이미 모두 나간 뒤에 '뒷북'으로 일관했다고 느낍니다.

황우석 파동에 대한 글을 한겨레 블로그에 올리면서, 이미 했던 비판이었고, 또 아쉬움이었습니다. 거기에 어떤 독자께서 그래도 마지막엔 한 건 했다는 말씀 해주시더군요. 솔직히 마지막 한 건을 정말 한겨레가 한건지도 저는 잘 모르겠지만요. 마지막 한 건도 프레시안이 했다고 기억하고 있어서요.

각설하고..
앞으론 마지막에 한 건 하는 신문이 아니라,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적극적으로 취재하고, 앞장서서 공론화할 수 있는 신문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런 한겨레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공중파에서 이미 나와 공론화된 이야기를 한겨레가 뒷북으로 그래도 한겨레니까 이런 거 이렇게 터뜨리지! 이런 모습 기대하는 것 아닙니다.

한겨레 기자 여러분,
많은 분들이 여러분을 그래도 믿고 의지하고 아직은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부지런해지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함께 읽기 - 작성순서]
아거
, "아버지의 이름으로" (김승연 회장) 취재 미스테리
http://gatorlog.com/?p=732

민노씨, 한화 김회장 조폭 데뷔 축하 포스트
http://minoci.net/60

레이니돌, 또 다른 회장님의 방침
http://www.rainydoll.com/649

도아, 한화 김승연 회장 = 마피아 두목?
http://offree.net/844


[참고할 만한 기사]
(미디어 오늘) 한겨레, 한화 회장 폭행사건 침묵하는 이유 
[기자칼럼] 사흘째 관련보도 전혀 없어
2007년 04월 26일 (목) 13:06:40 조현호 기자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572
- brise님께서 '김승연 조폭 데뷔 축하 포스팅'에 댓글로 알려주셨네요.  고맙습니다.


[보충1] [추가 참고 기사] 070428. 오전 10시 30분 쯤.

marishin님께서 다음 기사를 소개해주셨습니다.

부연설명하자면, 제 글은 전체적인 균형을 다소간 일탈한 글로 스스로 생각합니다.
한겨레에 대한 다소 큰 기대와 주관적인 애정이 역설적인 방식으로 드러났고, 그렇게 표시된 글의 메시지가 한겨레를 편향되게 비판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네요.
적어도 평가할 것은 평가했어야 했는데, 그 점에서 균형감을 많이 상실한 것 같습니다.
여러번 제 글을 다시 읽어보니 그런 혐의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 점은 제 부족한 관련자료 검토와 성급한 판단, 그리고 편향적인 관점..
무엇보다 균형감각 상실을 스스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오늘자(4월 28일)  조선일보 1면은 전 국세청장과 그 아들을 전면에 내세웠더군요.
제목은 "안정남씨의 축재의혹 강남땅에 / 외아들이 200억 건물 짓는다"
저는 이 기사는 명백한 '물타기' 시도로 판단합니다.

반면 한겨레는 김승연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제 공중파 9시 뉴스의 첫뉴스도 김승연이었습니다.

사건의 뉴스가치로 본다면 이는 당연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전적으로 '보도 상업주의, 선정주의'의 혐의가 전혀 없다고는 느껴지지 않지만..
그것보다는 사안의 공적인 중대성이 훨씬 더 커보입니다.
한겨레가 끝까지 이 사건을 추적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기를 이제는 기대합니다.

그런데 오늘자 종이신문들의 태도는 다소 의외입니다.
물론 종이신문 그 자체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종이신문의 1면을 반영한다고 생각되는 오전 인터넷판으로 추정해보면...
그다지 적극적으로 '김승연' 문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따로 포스팅을 할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덧. 물론 안할 수도 있지만요. ㅡㅡ; ).
사설이 너무 길어졌네요.
아무튼 아래 오마이뉴스의 기사 일독 권합니다.
한겨레에 다소간 과도한 칭찬을 보내고 있는 것 아닌가 싶긴 하지만,
큰 차원에서 의미있는 평가로 생각합니다.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06956&ar_seq=2


고맙습니다. : )



#. 이슈를 확장하기 위한 포스팅입니다.



 

한화 김승연 회장 조폭데뷔 축하 포스팅






한화 김승연 회장님께서 20살 대학생 아들이 룸살롱에서 직원들에게 맞고 오자, 경호원 대동하시고 그 룸살롱  종업원들에게 '피의 복수'를 감행하셨다고 하네요.
정말 장하십니다.
조폭 데뷔를 축하드립니다. : )




블로그는 그 자체로 바이러스입니다.
그 바이러스는 또 다른 바이러스 매개인 다른 블로그에 옮겨 붙어 웹이란 불가사의한 공간들을 떠돌아 다닙니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링크죠.

링크 뒀다가 뭐합니까?

블로그를 통한 이슈확산을 기대합니다.
정말 너무 화가 나는군요.

두 가지 입니다.

1. 언론의 직무유기를 성토합니다(이것이 본질적이라고 생각합니다).
2. 한화 김승연 회장님의 조폭 데뷔를 축하드립니다(진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아버지의 이름으로” 취재에 얽힌 미스테리(by 아거)



위 글을 읽어주시고,
이 소식을 널리널리 퍼뜨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블로거는 진실을 전파하는 바이러스입니다.


정말 더러운 세균이 온통 들러 붙어 있습니다.
그 세균들을 세상에 퍼뜨립시다.
그 세균들이 널리 퍼져갈수록 신비롭게도 우리는, 우리사회는 튼튼하고, 건강한 육체를 얻을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바이러스가 됩시다.


이상입니다.




~~~~~~~


[보충]

1. 유일하게 진실을 외치는 조선일보
25일자 만평. 그리고 25일자 8면 4단 기사로 위 김회장님 조폭 데뷔 관련기사가 나갔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아래 펄님의 댓글 논평을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실무현장에 있는 기자로서 좀더 실체적이고, 신뢰도 높은 정보에의  접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저는 펄님의 견해는 어느 정도는 '개연성'을 갖는 가설이라고 평가합니다.

펄님의 말씀(가설)을 정리하자면

ㄱ. 조선일보 보도는 김회장의 위법을 고발하고, 진실을 밝히는 의미에서 보도한 것이 아니라,
ㄴ. 중앙선데이(중앙의 일요일자 신문)에 편애적(?)으로 광고를 의뢰한 한화가 조선일보의 괘씸죄에 걸려서
ㄷ. 조선일보 자사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악용(?)한 케이스라고 '추론'(확정 아닙니다)해 볼 수 있습니다.


2. 저로선 아쉬운 것은 한겨레의 태도입니다.
일단 인터넷한겨레의 검색으로는 관련 기사를 단 한줄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제가 사용한 검색어는 [김승연, 한화그룹, H그룹 K회장]이었습니다.
그리고 25일자, 26일자 기사를 검토한 결과 역시 관련기사는 발견되지 않는군요. 

한겨레는 고급지를 선언했고(작년), 또 올해 초 스스로 '취재보도 준칙'을 마련했습니다.
그 취재보도 준칙의 1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목은 '진실 추구'죠. 

(진실 추구) 국내외의 주요 사안 또는 사건의 진실을 최대한 완전하게 취재해 독자에게 알린다. 모든 형태의 권력을 감시하고, 부당한 권력과 부정부패에 맞서 사실을 찾아내고 진실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한다. - 1항

그리고 41항에 보면 진실보도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진실보도 우선) 신문사나 기자 개인의 이익보다 진실을 앞세운다.
독자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신문사나 기자의 불이익도 감수할 수 있다. - 41항

한겨레 취재보도 준칙 (2007. 1월) 중에서




이래서는 고급지선언 약속도, 그리고 진실보도를 외치고, 자사의 이익마저 그 진실을 위해 포기하겠다는 한겨레의 결연한 의지도 신뢰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겨레의 각성을 촉구합니다.

한겨레가 이럴진데 다른 종이신문들(위 조선일보의 예를 제외하구요)은 안봐도 비디오일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덧. 070428] 중앙일보 26일자에 작은 박스기사로 살짝 이니셜로 보도되었습니다.

레이니돌의 글에서도 지적하고 있듯, 우리나라 언론의 이중잣대, 약한 자에게는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한, 혹은 그 강한 놈들끼리도 서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물어 뜯는 모습은 정말 씁쓸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르네요.

이를 아거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힘없는 자들은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고
힘있는 자들에게는 꼬리내리는 전형적인 하이에나 저널리즘"

-
http://www.rainydoll.com/649#comment3523  중에서



이라고요.



언제까지 조폭 재벌과 하이에나 언론에 얻어맞고 물어뜯겨져야 하는지요?
블로거 여러분의 관심을 당부드립니다.


이상입니다.



p.s. 이 글은 논의를 조금이나마 확산하고자
올블 [나의 추천 글] 에 올립니다.
올리는 시각은 대략 070426 오후 3:15 이후 입니다.  



[후속 포스트]
한겨레와 김승연, 신중보도인가? 뒷북인가? [보충 1.]

http://minoci.net/61






#. 출범(07. 03. 26.)  한달을 맞아 이모저모 살펴봅니다.
최소간략원칙하에 살펴보죠. ^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잇다넷 현황
- 출범 한달을 돌아봅니다




 

Ⅰ. 동인 현황

- 참여순서 (괄호는 블로그연결 가부) * 특기사항

1. 민노씨 (O) 
2. 하늘이 (X) * 올블
3. 쌈바이 (X) * 올블
4. 홍커피 (O) * 올블
5. 너바나나 (O) * 가장 적극적인 의견제기 동인

6. 베네치안 (O)
7. nova (O) * 운영자
8. 골빈해커 (X) * 올블 
9. 박군 (O) * 올블
10. KJ (O) * 운영자

11. 써든리 (X)
12. 네구 (O)
13. Magicboy (O)
14. SuJae (O)
15. jclove (O)

16. 아거 (X)
17. 띠용 (O)
18. 늑대호수 (O)
19. 혜민아빠 (O)
20. R (O) * 올블 

21. 아르 (O)
22. S2day (X)
23. 청풍명월 (O)

참여동인은 현재 모두 23명입니다.
블로그를 연결한 동인의 수는 17명이네요.
운영자로는 nova님과 아틸라님(KJ님)께서 활동해주고 계십니다.
올블(스텝)에서 참여한 경우는 6명이네요.

[검토]
올블에서 형식적(?)으로 참여한 경우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 ^;;
물론 이는 반갑긴 하지만, 올블스텝이라서 억지로(?) 참여할 이유는 없을 것 같네요.
여기에는 어떤 감정(?)도 없습니다.
오히려 죄송스런 마음이 생긴다면 모를까요.
다만 올블스텝이든 아니든 형식적인 참여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

덧. 070426 오전 7:47]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위 문단은 좀 무례한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네요. ^ ^
저는 올블에 대한 이런 저런 비판의견을 남긴 바 있지만..
그 비판의견은 올블에 대한 애정어린 기대에 의지하고 있다고 스스로는 자부하고 있습니다.
위 문단의 취지 역시 올블 스텝들의 노고에 대한 염려, 그리고 우리나라 특유의 예의문화(?)에 대한 사소한 기우에 불과합니다.
혹여라도 오해가 있다면, 이는 모두 제 취지가 제 표현으로 표시되지 않은 제 불찰입니다. ^ ^;;
위 문단은 가급적 너그럽게 해석해주시길 바랍니다. : )

Ⅱ. 수집된 글의 수

78개입니다.
초기에는 전체설정이었습니다.
현재는 태그를 표준으로 수집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Ⅳ. 글 분류 (태그) 에서 좀더 다루도록 합니다.


Ⅲ. 개설취지

블로그와 블로그를 잇-다.
하단 관련글 참조 부탁드립니다. : )


Ⅳ. 글 분류 (태그)

전체글 (기본설정)
블로그 (블로그. 블로거. 블로기즘)
메타블로그 (올블. 올블로그. 메타블로그)
언론 (언론. 온라인저널리즘. 저널리즘)
종이신문 (신문. 한겨레. 조선일보)
잇다넷 (잇다넷. 블로그카페)
저작권 (저작권. 저작권법. 불펌)
(책. 서평. book)
- 보기는 비회원도 가능하구요. 내보내기는 당연히 정회원만 가능합니다.


[검토]
1.
현재로서는 카테고리를 좀더 세분하고, 좀더 실질적인 포스팅과의 접점을 좁힐 수 있는 테마들이 없을까 나름으론 고민하고 있습니다. ^ ^;
동인분들을 비롯해서,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께도 조언을 부탁드리고 싶네요.

2. 가령, 블로그에 대해선 현재는 블로그와 메타블로그, 이렇게 양분 분류체계인데요.
개인적으론 잇다넷의 설립취지에 맞게 '추천 포스트' 혹은 '포스트 리뷰' 혹은 '블로그 리뷰' '추천 블로그' '추천 블로거' 뭐 이런 좋은 숨겨진 블로그(거)를 발견하는 포스팅을 유도하는 차원에서 이런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고 싶기도 하네요.

3. 또,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담을 수 있는 카테고리(가령, 일상. 이라던가.. )도 만들까 싶구요.

4. 그리고 정치/사회/당장의 쟁점에 관한 카테고리도 신설해볼까 싶습니다.
가령, '애드센스'(+애드클릭스)에 관한 카테고리도 신설할까 싶네요. 이는 애드센스로 돈버는 법. 뭐 이런 논의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애드센스와 블로깅의 상관관계에 관한 논의를 하고자 합니다. 물론 이건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5. 아, '책'에 관한 카테고리는 신설했습니다.

6. 끝으로, 특히 적극적 참여 동인이신 너바님께서 음악에 관심이 깊으신 것으로 아는데요.
너바님께서 새롭게 블로그카페를 운영하실 계획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시로라도) 음악에 관한 카테고리도 신설하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음악은 모두에게 공통적 흥미요소인데요. 그런데 블로고스피어에서는 약간은 마이너화된 주제이기도 해서.. 저도 관심이 있습니다.


Ⅴ. 스킨 - 표시체계에 대해서

운영자로 참여하고 계신 nova님께서 정말 많이 애써주셨는데요.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 -)(_ _)

일명 삼색스킨(빨강-좌측.노랑-중앙.초록-메인.이건 즉흥적으로 저혼자 이렇게 불러봤습니다)은 여러모로 호평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곧 이미지 올릴게요).




여기에 대해선 좀 할말이 많은데요.
물론 참여동인의 일인으로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스킨제작에 관해서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스킨에 관해서 기술적인 이해가 높은 참여동인들의 관심을 좀더 부탁드리고 싶은 마음이네요. ^ ^;
특히 nova님(기술담당 운영자)께 부탁드리겠습니다.

1. 상단의 분류탭

1) 영어로 되어 있는데, 이거 우리말로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HOME / ABOUT / BBS / USER / ADMIN  현재는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특히나 ABOUT과 USER의 경우에, 제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좀 헷갈립니다.
현재는 ABOUT에 참여동인에 관한 정보가 USER에 참여동인들 각자의 등록한 정보 표시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게 제 언어적 감수성으로는 좀 바뀐 것 같기도 해서요. ^ ^;; 



한글화가 가능하다면..
HOME - 앞마당. 혹은 마당. 광장. 외래어표기로 메인. 홈. 
ABOUT - 참여동인. 혹은 동인들. 잇다동인. ^ ^;
BBS - 뒷마당. (메인에 표시된 식으로, 정겹게) 왁자지껄. 혹은 평범하게 게시판.
USER - 내정보. 내얼굴. 나. (이런 식으로..)
ADMIN - 설정. 설정관리. 관리. 관리자. 운영. 운영자. (뭐, 이정도로.. ^ ^)

2) 분류탭이 좀더 컸으면 좋겠어요. ^ ^;;

2. 회원가입단추

이게 현재는 빨강(좌측) 상단에 있는데요.
일단 단추가 좀 작은 것 같습니다. ^ ^;
그리고 가능하다면 상단 최우측, 즉 HOME / ABOUT / BBS / USER / ADMIN 에도 함께 구현하면 어떨까 싶네요. ^ ^

3. 동감단추 현출문제

이에 대해선 저는 솔직히 반반입니다.
현재는 초기화면에서는 보이지 않는데요.
초록(메인)에 표시된 최근 수집글들을 누르면 그 해당 블로그로 이동했다가, 다시 돌아오면 나타나는 구조입니다.

이게 물론 좋은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글 자체에 주목하게 되는 점은 장점인 것 같아요.
다만 블로그카페가 올블 전체 시스템의 추천참여도를 높이도록 '보완'하는 기능도 갖는 점에서는 좀 생각할 여지도 있는 것 같습니다.

4. 노랑(중앙)이 밑으로 사라지는 문제

초록 메인에서 글(혹은 댓글)을 누르면 노랑이 아래로 꺼져버립니다. ^ ^;;
nova님께서 시간이 허락하시는데로 좀 수정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혹은 공동운영자이신 아틸라님께서 도움을 주실 수 있다면, nova님과 함께 논의해주셔도 좋을 것 같네요.




5. 빨강(좌측) 아래 [링크?]

이거 어떻게 하는 건지.. ^ ^;;
저도 잘 몰라서요.
스킨을 담당해주신 nova님께서
"여기엔 추천 홈 링크나 회원들 홈 배너를 달면 좋을 것 같아요."
라고 써주셨는데요.
그걸 어떻게 달수 있는지.. ^ ^;; 저는 잘 모릅니다.
역시 nova님께서 좀 도와주셔야 할 것 같네요.
부탁드립니다.




6. 노랑(중앙) 공감 TOP 10

여기에는 많은 공감(추천)을 받은 글이 상위로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 단위가 며칠인지 모르겠어요.
무조건 가장 많이 공감받은 글이 영원히 그렇게 현출되는 것인지.. ^ ^;
저로선 그 기간 단위를 운영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이건 올블에게 드리는 부탁드립니다.
물론 현재의 설정도구들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면 누구든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

7. 초록(메인) 댓글단추

이건 게시판의 기능과 중복이고, 현실적인 필요도가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게 기본설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없어도 상관없지 않나 싶어요.
혹은 여기에 댓글을 달면 원래 블로그 해당 포스트에 댓글이 표시된다면 또 모를까.. ^ ^;


Ⅵ. 잇다넷 의사결정절차(간략한 정관) 및 활성화 방안

이건 아직 구체적으로.. ^ ^;;
제가 좀더 생각하고, 동인여러분께 조언을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잇다넷은 블로그에 조력하는 기술적인 매개이고, 도구라고 기본적으론 생각하기 때문에 잇다넷에 대해서 너무 필요이상으로 정력과 시간을 드리는 것은 제가 개설자이면서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
그냥 가볍게 어떤 의견이든, 원활한 운영과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의견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덧. 070426 오전 8:25]
이에 대해 마법소년(Magicboy)님께서 위 신설 예정인 [추천 블로그(거)]와 연계해서 '이벤트'를 하면 어떨까 라는 좋은 의견을 주셨는데요. 즉, 잇다넷 선정 추천 블로그가 되겠네요.
저로선 전폭적으로 환영합니다.

1. 우선 그 선정의 시간 단위가 문제일텐데요.
월, 격월, 봄여름가을겨울, 상반기하반기, 연말... 이렇게 여러가지 표준이 있겠죠.
당장 월단위로 하는 것은 좀 힘들 것 같고.. ^ ^;
상반기하반기, 혹은 봄여름가을겨울.. 이렇게 시작해서 좀더 간격을 좁혀가는게 좋지 않나 싶습니다.

2. 그리고 잇다넷의 설립취지상 많은 분들께 알려진 블로그 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블로그를 위주로 선정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를 어제만 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가만해 생각해보니 어떤 의미에서는 역차별일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좋은 포스트라면, 좋은 블로그라면 그 선정에 차별을 둔다는 것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것 같고 말이죠.

이에 대해선 특히 의견 부탁드립니다. ^ ^;


Ⅶ. 마지막으로..  

블로그카페 잇다넷은 블로그와 블로그, 블로거와 블로거를 잇-는 도구이자, 매개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매개로서, 그 가교로서의 잇다넷이 요즘은 너무 썰렁하네요. 물론 제 가장 큰 책임(?)이기도 하겠지만.. ^ ^;; 저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구요. 앞서도 말씀 드렸듯이 그저 가볍게 편안하게 잇다넷을 보아주시길 바랍니다. 하루에 한번쯤 들러서,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정도의 관심을 주시길 동인분들께, 그리고 블로거분들께 부탁드리고 싶네요.

잇다넷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
물론 잇다넷의 개설취지에 찬성하고, 잇다넷을 통해 즐겁게 블로거들과 교류하시길 원하시는 모든 블로거 여러분들을요. : )

개인적으론 영입(?)하고 싶은 동료 블로거분들이 꽤 많으신데요.
부담느끼실 것 같아서.. ^ ^;; 참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 필벗들께서도 참여해주시면 참 반갑겠네요.
물론 관심이 생기시면 말이죠.

이상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




 





p.s.
일단 등록하고 이미지는 곧 삽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지 올렸습니다. : )




#. 홍아저씨께서 좀 헷갈리신다고 하셔서요. ^ ^
글을 초대부분과 간략리뷰 부분으로 나눕니다.




Ⅰ. 미투데이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좀 (많이) 뒷북인데요.
그래도 한 분이라도 희망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 ^;

가입방법은 다들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1. 오픈 아이디를 마련하시고,
2. 오픈 아이디와 함께 이메일 주소를 댓글에 남겨주시면 확인하는 대로 초대장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혹시 몰라서.. ^ ^;;
위 오픈 아이디는 http://myid.net 에서 금방 만드실 수 있습니다.

[ 도움이 되는 포스트  - 이하 nova님 ]
미투데이 초대장이 풀렸다. 오픈 아이디를 준비하자. http://trivial.tistory.com/60
미투데이 사용설명서 http://trivial.tistory.com/61



Ⅱ. 미투데이 간략 리뷰


개인적으론 [미투데이](혹은 플톡) 같은 마이크로 블로그는
1. 긴(?) 블로그를 보완하고(그 때 그 때의 아이디어를 보관하는),
2. 순발력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매개로 이용할 수 있으며,
3. 의미있는 글이나 기사등을 링크를 통해 홍보할 수 있는 기능도 갖는 것 같습니다(여기에는 자신의 글도 물론 포함이겠죠? ^ ^; ).

저는 아직 [미투데이]의 정책이나 철학에 대해선 꼼꼼하게 리뷰를 작성할 만큼의 체험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럴 역량도 되지 못하지요.


다만 제 짧은 체험을 통해 [미투]에 대해 간략하게 쓰자면..

1. 좀 느립니다. (단점)
ㄱ. 상대적으로 IE에서 더 느리더군요.
ㄴ. 사업적 비전(모바일 미투 가능합니다)에 대한 기대가 높다고 종종 듣습니다. 어서 수익 많이 내셔서 서버 증설해주셨으면 좋겠네요. ^ ^;

2. 저야 문외한이지만 디자인 수준과 안정성은 상대적으로 높은 것 같습니다.
웹표준을 준수하려고 노력한 사이트로 알고 있습니다. (장점)

3. 친구정책 

1) 친구신청할 수 있습니다.
2) 그런데 그걸 거절할 수는 없는 시스템입니다. ^ ^;;
[수락]을 선택하거나, 내삐두는 구조인데요.
이는 좀 보완되기를 개인적으론 바랍니다.

3) 희망 개선안 : A와 B가 있을 때요.
ㄱ. 좀 냉정하지만, [거절]이 당연히 [수락]의 쌍으로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거 '거절'하기란 쉽지 않겠지만요. ^ ^;;

ㄴ. 그렇다면
일방만이 친구신청한 경우(A->B 혹 B-> A)
쌍방이 서로 친구신청한 경우(A<->B) 를 나눠서 표기한다면 어떨까 싶네요.
네이버블로그의 방식이죠. 

a. 일방이 신청한 경우 [희망친구] 뭐 이렇게 표기하고.
b. 쌍방이 신청한 경우 [친구] 혹은 [친친](혹은 친한친구) 이렇게 하면 좋겠네요.
c. 구현되는 모습은 상단의 탭을 하나 더 만들거나 ^ ^; 혹은 상단 [친구들은]을 클릭했을 때 펼쳐지는 친구들의 최신 글에 개별적으로 [희친]과 [친친]을 그 옆에 부착하는 방식도 간단하니 좋겠네요.


4. 공개정책 - 친구정책과의 관련 하에서

현재는 모두에게 공개하는 정책인데요.
친구정책을 고수한다면, 그 친구정책과 짝으로 공개도 희망친구에게만 공개 / 모두에게 공개 / 친친에게만 공개 이렇게 나눠야 하지 않나 싶네요.

덧] 이 공개가 미투데이 블로그 단위가 되어야 하는지, 그 미투블로그에 속한 개별 글 단위가 되어야 하는지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요. 너바나나님의 의견을 듣고나니 그 표준도 중요하겠네요. 개인적으론 '개별 글' 단위로 설정이 가능하다면 좋겠는데, 이게 당장 기술적으로 구현이 어렵다면(솔직히 이게 어려운 건지 어쩐건지 전 잘 몰라서요.. ^ ^; ), 블로그 단위로나마 일단은 그 공개 수준에 대한 선택권이 확보된다면 좋겠네요.



사설이 길었군요.
이상입니다.

개인적으론 한 분이라도 초대장을 희망하시는 분이 계시면 참 반갑겠습니다.
정말 이상입니다.

: )



아, 그리고 ... (정말 끝으로)
미투데이와 플레이톡 유저간의 다소간 갈등(?)이 있는 것도 같은데요(기우겠지만요).
다 재밌자고 만든 서비스고, 사람을 사귀자고 만든 서비스입니다.
사람이 우선이지 서비스가 그 사람을 나누는, 판단하는 표준은 될 수 없겠죠.
이는 정말, 감히 말씀 올리건데, 가장 천박한 사고방식으로 생각합니다.
미투든 플톡이든 각자의 취향에 맞게 잘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양사 모두 선의의 경쟁을 펼쳐서 그 과실이 모든 사용자에게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p.s.
잇다넷( http://it-da.net )에 대해서 써야 하는데..
이거 또 엉뚱한(?)을 글을 썼네요.
자꾸 신중하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미루게 되는 것 같습니다. ㅡㅡ;;
잇다넷 동인 여러분 잠시만 기둘려주세요. ^ ^;;




[덧]
이 글의 부족한 논의는
마법사님의 글
http://blog.magicboy.net/258
을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