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택 외 - 5월 5일

2007/05/06 04:31


  • "여기에서" 링크 쫓아 처음 듣게 된 곡이 있었는데, 그 곡을 들으니 "이 곡"이 생각났다. 그래서 오랜만에 들었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노래. 오전 11시 27분

  • 이영애 나온다는 [무한도전], 처음으로 생방 본방으로 봤다. 재미있긴 한데... 이영애가 그렇게 대단한 신비로운 무슨 범접하지 못할... 그런 배우였나? ㅡㅡ; 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여러가지 잡생각이 더불어 들었다. (참조 : 잡생각을 정리한 글오후 10시 26분

  • [지나간 이슈] 간만에 생각나서 블로그에 알라딘 TTB 플러그인 설정하려고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포기. 그런데 [알리딘 TTB 공식블로그] 가 보니까 방치상태인 것도 같고... 여러모로 궁금. 알라딘 TTB 이거 아직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건가요? 오후 10시 39분

  • [변신] 한겨레 18도에서 보헤미안 같은 이미지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을 연재했던 홍은택. 지금은 네이버 홍보이산가 뭔가.. 암튼 오늘 조선일보가 네이버를 까는 것도 아니고 안까는 것도 아닌 어중띤 기사를 썼는데.. 거기 홍은택 말쌈 인용하고 있다. 홍은택 왈..."구글만 선이고 포털 특히 네이버만 악이냐" 뭐 이런 발언

    홍은택씨의 '변신'(물론 자기로서는 변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피상적인 느낌일 뿐이다)이 좀 씁쓸하다.

    구글만 선이고 네이버는 악이냐?이런 반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종종 토론에서 이런 태도를 보게 되는데, 이런 식의 반문은 가장 대표적인 오류라고 생각한다. 비판받는 점이 있다면 거기에 답하면 된다.

    홍은택씨가 기자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나오진 않지만, 위 논평만을 보더라도 이건 '대답'이 아니라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엉뚱한 이야기를 한거지.

    홍은택 정도면 뻔히 네이버가 비판받는 이유를 잘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는데, 저런 식의 답변밖에는 못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언론에서 잔뼈가 굵었던 사람을 (홍보)이사로 내세우는 네이버의 전략(?)이 이런 기사들에서 빛을 발하는 건가.. 싶은 ... 좀 씁쓸한 느낌이 드는거다.  오후 10시 55분

이 글은 minoci님의 미투데이 2007년 5월 5일 내용입니다.



내 인생의 책들 1. (설문버전)

2007/05/05 09:04
문답
    
히치하이커님으로부터 받아왔습니다.
질문의 표현은 의미에 손상이 되지 않는 한도에서 수정했습니다.


Q1. 잘 지내셨습니까?
글쎄요. : )

Q2. 책읽기 좋아하세요?
글쎄요. : )

Q3. 그 이유를 물어 보아도 되겠지요?
안됩니다. ^ ^

Q4. 한 달에 책을 얼마나 읽나요?
18살 이후로 평균을 내보면... 한달에 열권 정도되겠네요.
물론 만화책 포함입니다.

Q5. 주로 읽는(읽은) 책은 어떤 것인가요?
0. 수량으로만 보면 평론서나 이론서
를 많이 읽었는데요.
그런 책들은 재미있는 책이 드물기 때문에 완독(최소한 이회독 이상)하거나, 계속 읽게되지 않는 것 같아요. 주로 한길사와 문지와 창비, 그리고 민음사에서 나온 비평서, 혹은 이론서들입니다.
주로 문학과 철학에 관한 이론서들을 많이 읽었던 것 같네요.

1. 마르크스주의, 실존주의와 (탈)구조주의, 그리고 프랑크푸르트학파에 관한 이론서들을 많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수용미학(독자반응비평)에 관한 책들도 몇 권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아, 그리고 '선영사'에서 나온 심리학 시리즈도 거의 빼놓지 않고 사긴 했는데, 재밌게 읽은 책은 '프로이트 심리학 해설'입니다. 원서를 번역한 원본(?)에 대해선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기억이 나네요. [정신분석입문]은 거의 억지로 읽었고, [꿈의 해석]은 재미있는 부분만 골라 읽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로선 지적 속물근성이 강했던 때라서, 상업출판사로 내심 낙인(?)찍었던, 그래서 별 기대없이 읽었던, 고려원의 현대문예비평 시리즈는,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리즈 중에서 [해체주의]가 기억에 남네요. 특히 해롤드 블룸의 [영향의 시학]을 설명하던 부분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론서, 혹은 비평서들 중에서는 김현의 책들을 가장 좋아합니다.
김현의 일기인 [행복한 책읽기]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이 책은 다른 좋은 책들로 안내하는 일종의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는 책입니다.

[행복한 책읽기]를 통해 소개받은 책 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책은 황지우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인데요. 워낙에 좋아하는 시인이라서 바로 사서 읽었죠. 처음에는 한마당인가에서 2천 얼마에 팔았던 기억이 얼핏 떠오르네요. 제가 읽은 산문집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한국어로 쓰여진 책입니다.  

2. 소설은 이상문학상 수상집이나 문지에서 나온 책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이청준이나 김승옥, 김원일, 이문열 등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박완서, 양귀자, 신경숙의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죠.
신경숙씨는 최근 조선일보에 소설 기고했던데...
솔직히 조선일보에 적극적으로 기고하는 작가들에 대해서는 쉽게 '용납'이 되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청준, 이문열, 박완서 그리고 정과리(평론가) 등등에 대해선 다소간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됩니다.

특히나 이문열의 경우엔, [변경] 전까지의 작품들은 거의 모두 읽었습니다.
정말 뛰어난 소설가죠.
하지만 그 소설적 성취는 별론으로, 역사의식의 관점에서(이에 대한 이문열식의 '변명'(?)은 [영웅시대]에 '노트'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죠, 솔직히 이 소설을 읽고.. 조금은 이문열에 대해서 이해하게 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쉽게 용납되지는 않네요.. 역사에 대한 이문열의 관점이 잘 드러난 단편은 '필론의 돼지'라는 소설인데요. 굉장히 시니컬하죠.

3. 시는 주로 문지에서 나온 시집들을 많이 읽긴 했는데...
가장 좋아하는 시집들은 물론 문지에서 나온 책들이 많긴 하지만, 풀빛에서 나온 황지우의 시집(나는 너다)와 박노해의 시집(노동의 새벽)은 굉장히 좋아하는 시집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김수영, 이성복과 기형도, 정현종을 꽤 좋아합니다.
장정일, 오규원, 고은의 시도 싫어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황지우, 이성복, 기형도, 정현종 만큼의 울림은 없는 것 같아요.

김지하 시인의 경우엔... [작가세계]라고 세계사에서 계간지로 나오던 잡지가 있는데, 제2호 특집이 김지하씨였어요. 시론 '풍자냐 자살이냐'는 김수영의 '시여 침을 뱉어라'(맞나?)만큼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적'은 생각보다 그다지 별 느낌은 없었구요.

다만 김지하의 경우에도 조선일보와의 밀월이 그다지 쉽게 용납되지 않습니다.
지식인에 부여된 그 최소한의 역사의식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조선일보에 적극기고하는 지식인.. 도저히 이해되지도 않고, 이해하기도 싫습니다. 솔직한 심정이 그렇습니다.
지식장사꾼이 될 수는 있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성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걸 문학의 장르로 넣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 무엇보다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은 월간 '노동해방문학'입니다(참조 사이트). 사노맹의 기관지 성격이었는데, 이정로(백태웅)씨와 박노해씨가 주도적으로 활동했죠.

3. 영화에 관한 책들 중에서는 정성일씨가 편집장으로 있던 잡지 [키노]의 열혈펜이었습니다.
창간호부터 대충 7, 80권까지는 줄기차게 열독했던 기억이 있네요.

4. 그리고 만화책에 대해서는 후루야 미노루의 [두더지]를 굉장히 좋아하구요. [이나중 탁구부]의 펜입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키튼] 이후의 작품들은 높게 평가하고, 아, 무엇보다 이토준지의 [호러 콜렉션]을 무척 좋아합니다.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선, 솔직히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허영만씨를 좋아하구요(타짜 정말 재밌더군요). 청소년시기에는 역시나 이현세의 비장감 어린 비극적 세계관(약간 허풍이 쎄긴 하지만)을 굉장히 좋아했죠.

Q6. 당신은 책을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대화.

Q7. 당신은 독서를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대화.

Q8. 한국은 독서율이 상당히 낮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상당히 낮나요? ^ ^;;
글쎄요..

Q9. 책을 하나만 추천 하시죠? 무엇이든 상관 없습니다.
하나만이라는 단서를 단다면, 역시나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추천하겠습니다.

Q10. 그 책을 추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읽어보시면 압니다.
이에 대해선 글을 하나 새로 써야 하기 때문에.. ^ ^;;
지금도 너무 길어진 것 같아서.. 이쯤하죠.

Q11. 만화책도 책이라고 여기시나요?
당근이죠.

Q12.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비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비문학. 7:3. 혹 6:4 정도 되는 것 같네요.

Q13. 판타지와 무협지는 "소비문학"이라는 장르로 분류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별 생각 없습니다. : )
그런데 판타지나 무협지도 나름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해요.

Q14. 당신은 한 번이라도 책의 작가가 되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 Q15.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그때의 기분은 어떻던가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 기분도 모르죠. : )
다만 몇 번 기고(청탁)한 적은 있는데, 기분 좋더군요.

Q16.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김현.
조세희.
황지우.
기형도.
이성복.
정현종.
김승옥.  
박노해.
곽윤직.
이재상.  
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리드리히 니체.
마르틴 부버.
허버트 마르쿠제.
발터 벤야민.
파블로 네루다.
쟈크 플레베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미셸 푸코.
에드워드 사이드.
피에르 부르디외.
아놀드 하우저.
후루야 미노루.
이토 준지.
우라사와 나오키.
허영만.
정성일.
이연호.
고종석.

그 밖에도 많을테지만.. (영화감독은 빼고).

Q17. 좋아하는 작가에게 한 말씀 하시죠?
(생존해계신 분들) 언제 한번 술한잔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

Q18. 이제 이 문답의 바톤을 넘기실 분들을 선택하세요. 5명 이상, 단 "아무나"는 안됩니다.
- 아거님
- 아틸라님
- 노바님
- 너바님
- 써머즈님
- 도아님
- newyorker님
- 노네(잡넘)님
- eouia님
- yes님
- 화분
- 땡글아버님
- 그로커님
- PRAK님
- 펄님
- 손윤님
- 미래주의님
- 미닉스님
- 호자이님
- 리드미님
- 아웃사이더님
- 띠용님
- 쿨짹님
- 겨울종소리님
- 설죽님
- 맨드롱따또님
- 키륵새님
- 달키님
- Jinny님
- 레이니돌님
- 써드타입님
- 마법소년님
- 들풀님
- 베스형
- 산하님
- 신생왕님
- 쟈칼님
- 골룸님
- 윤슬님
- 은물결님
- 국밥소년님
- 하땅님
- 취님
- 박형준군
- 하늘님
- 골빈해커님
- 홍커피님
- 제닉스님
- 2Z님
- 큐비오님
- 제로피시님

(덧. 가즈랑님은 히치하이커님께서 이미 적으셔서 뺐습니다. : )

- 그리고 이 글을 읽고 땡기시는 모든 분들.

이 중에 설마 한 분은 해주시겠죠? ^ ^


  • "행복은 행복의 부재를 통해서만 존재하기 시작한다. 행복은 불행이 낳은 천사이며 이미지다. 그것은 항상 이미지로서 존재한다. 그런데 행복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즉 행복이라는 이미지는 '우리' 속에서 탄생한다. 고통 속에 있는 우리들의 불가피한 사랑 속에 내재하는 행복의 이미지" - 정현종, [나는 별아저씨] 중에서  오전 7시 47분
  • [소통 불만족] 때론 독백이 편하다. 그 독백조차도 가상적인 독자, 내 자아란 것의 중재를 통한 내 욕망과 도덕적 초자아간의 줄다리기일 뿐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멋대로 지껄이고 싶은거다. 오전 7시 52분
  • [올블] 우려가 조금씩 더 현실화하고 있다. 고 나는 느낀다. (나쁜 의미에서의) 대중주의, 감성주의, 선정적인 선동이 먹히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오전 7시 55분
  • [습관] 포털은 갖가지 매체의 링크를 끌어다 쓴다. 그런데 (포털을 비판하는 블로거들도) 포털의 주소에 포섭된 링크주소를 그대로 갖다 쓰곤한다. 가령 한겨레기사로 직접 링크를 쓰지 않고, 네이버+한겨레(결국은 네이버의 PV를 높여주는)주소를 쓰는데.. 생각해 볼 문제. 그런데 이에 대해 nova님께서 답변을 주시길, 신문사 닷컴 기사들의 주소가 연간단위로 바뀐다는 문제를 지적해주셨다. 그렇다면 정말 문제다. 퍼머링크가 없다면, 어떻게 신문사닷컴 기사의 원문에 직접링크를 걸겠나? 오전 8시 10분

이 글은 minoci님의 미투데이 2007년 5월 4일 내용입니다.



포르노와 혁명

2007/05/04 14:59

#. 이 글은 예전에 쓴 글입니다. 한겨레블로그에 보관했던 글인데요. 간략히 현재 시점에 맞게 추고해서 옮깁니다. 분량은 좀 많이 줄이고, 특히 결어부분을 보충했습니다. 거기에 있던 글은 지웁니다. 공개만 하되, 발행(올블, 이올린 기준)하지는 않습니다(올블에서의 공개란 검색 제외설정을 의미합니다).






포르노와 혁명





0.
그건 하나다.
아니 그건 하나이여야 한다.


1. 두 개의 축제. 

일상은 축제면서, 기적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너무 허무하니까.
그건 '발견'해야 하는 축제면서, 기적이다.

소극적인 축제.
그러니까 그건 질주하는 숨가쁜 축제가 아니라, 문득 문득 흘러가는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는 축제다.
난 그게 더 좋다. 

가장 열띤 축제, 일상의 반대말로서의 적극적인 축제.
그건 혁명일테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혁명은 아마도 모두에게 다른 풍경일테니까.
모두가 함께 꿈꾸는 혁명은 없다.
난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러니까 '모두의' 혁명은 그 시작도 완성도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건 계속해서 모두가 각자 꿈꿔야 하는 그런 거.. 아닌가 싶다. 


2. 한 청년 혁명론자와의 대화

어떤 열혈청년이 있다.
그는 혁명을 꿈꾼다.
그런데 그 모습은 아주 아주 오래전의 내 모습과 조금은 닮아 있기도 해서.. 난 그가 참 좋았다.
물론 그는 나보다 더 용감하고, 똑똑한 것 같긴 하지만..

그런데 뭐랄까...
신념은 자기가 숨쉬고 있는 지금/여기를 초극할 수 있는 것 같은 용기, 혹은 환상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어떤 들뜬 마취 상태, 그러니까 목소리가 너무 높아지는거다.
이를테면 국가전복, 세계혁명, 완전한 자유, 관습적인 것들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
그런 사이키델릭 조명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조명은.. 물론 멋지긴 하다. 
거기서 미치도록 춤추고 싶긴 하다..

그런데 어차피 인간은 관념 속에서 살지 않고, 숨 쉬면서, 똥누면서, 이리저리 잔머리 굴리면서, 어떻하면 저 여자를 꼬실수 있을까, 어떻하면 저 녀석에게 이쁘게 보일 수 있을까... 이러면서 산다.

적어도 난 그렇다.
아주 쪼잔하게, 아주 궁상맞게 그렇게 사는거다.
혁명가도 똥누고, 섹스한다.
이슬 먹고, 구름똥 싸지 않는다. 

(필넷의) 비밀방명록을 통한 대화에서(비밀방명록이니까 직접적인 인용은 최소한으로 하고, 추정적 승낙을 예상한 정도로만 서술한다), 난 그 멋진 청년에게 현실적인 한계, 그 조건속에서 최선이 아닌 성취가능한 '차선'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나마 쟁취할 수 있는 실천적 방법론에 대해 고민하기를 권했다.

그러니까, 현재의 목소리 톤을 유지하고, 혁명, 국가전복의 사이키델릭 조명 아래서 구체적인 실천적 방법론에 대해 더이상 고민하지 않고, 현실과의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 싸움은 날 샜다고  좀 강한 톤으로 조언했다(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조언은 무슨, 그냥 그렇게 생각한 걸 말한거지).


3. 무거운 질문 - 어떻게 바꿀수 있는거지?

몇 번의 방명록 대화가 이어지고..
그 청년이 물었다.

"그렇다면 세상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난 솔직히 잘 모른다.
이런 거대한 질문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지식과 체험, 지혜.. 모두 난 갖고 있지 못하니까.

다만 난 내가 갖는 소망은 안다.
그건 다르더라도 공존하는 거, 모자라더라도 함께 하는 거,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거다.

가령, 조선일보 월드를 끝장내는 거.
막연한 추상의 대안들을 난 참 싫어하는데,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하면, 난 조선일보 월드를 가능한 한 축소하는 게 내 구체적인 수준의 목표라면 목표다. 그건 차이를 차별화하고, 소수가 다수를 대신해야 한다고 설파하고, 그런데 겉으론 그 경멸해마지 않는 '다수'들에게 말랑말랑한 마취제로 나는 당신편이야, 이렇게 생쑈를 하는 거대 스피커니까.

그러니까 난 가식적 기만의 코드로서의 휴머니즘, 흔히 감상주의의 가면을 쓴 상업주의, 소수의 재벌과 수구적인 권력의 편에 선 이기주의, 그 정신적인 본령으로서의 엘리트주의를 온 몸으로 구현하고 있는 조선일보가 이 땅에서, 궁극적으론,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바뀔 수 없다면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사라지나?
어떻게 바뀌나?
그건 현재로선 너무도 불가능한 꿈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최소한 그 기만의 매트릭스에서 한 명이라도 더 탈출하기를 나는 바라는 거지, 뭐.
조선일보라는 상징으로 대표되는 그 기만의 시스템에 균열을 내자는 거다.
그건 현실적으로 '다윗'만들기 일 수 밖에 없다.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건 '다윗' 밖에는 없으니까.

어떻게?
난 그 다윗이 현실적으론 '한겨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 블로그 시대의 도래를 맞아 [한겨레 블로그]가 그 미디어 한겨레의 든든한 주력 엔진으로 장차는 자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한겨레는 '다윗'의 상징일 뿐이고, 그게 어떤 다른 것이 되어도 상관없다. 그리고 그 다윗'들'은 연대해야 한다. 아니, 그 연대가 다윗이다.

그런데 블로그 시대, 이건 실체인가?
이게 신화이든, 또 다른 상업화를 위한 미끼이든, 아니면 모든 시민들의 일인 '미디어'로서, 커뮤니케이션의 진화를 이끌어낼  혁명적 물적 토대의 변화이든.. 난 그걸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그런데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의심하고, 비판하는 건 좋지만.


4. 너 하나 지랄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진 않아.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겠다, 이런 비전은 나에겐 없다.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이니까.

그런데 [한겨레 블로그](구 필진 네트워크)는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거다.
꿈이 컸던걸까?
참담한 기분이 든다.
역시 나 하나 지랄한다고 변하는 건 없는건가.. 싶은 패배감이 문득 문득 그렇게, 뽀샤샤한 아이처럼, 천연덕스런 표정을 하고서 아장아장 찾아오는 거다.

그런데... 

난 과연 얼마나 지랄 했나?
그 지랄은 얼마나 효과적이었나?
(효과적이지 못했다면)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지랄해야 하나?

사람은 실수를 통해 배운다.
그건 진리다.

그런데 가끔은 나처럼, 배우지 못하고, 쉽게 짜증만 내는 경우도 있다.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한겨레블로그에 대해선 난 잠정적으로 포기다.
[필통] 메인화면으로 들어가면, 여긴 작은 포털에 불과하다.
한겨레 미디어를 위한 장난감.
그게 현재의 [한겨레블로그]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일을 벌렸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다지 장사 잘 될 것 같지도 않다.
물론 장사 잘되더라도, 지금과 같은 그런 모습이라면 관심없다.
들어갈 때 마다 한숨 나온다.

각설하고...
글 마무리하자.


5. 한미 FTA는 섹스만큼 중요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말하자면, 정말 경제에 관한한 문외한인 나도 이게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 줄은 안다. 이 정도 사안과 견줄 수 있는 건, 내가 생각하기엔, 섹스 혹은 포르노 외에는 달리 없다. 섹스에 대한 관심처럼 자연스럽게 거기에 관심을 갖아야 할 만큼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지속적으로 우리의 삶의 조건에 영향을 미칠거다.

그건 확실해 보인다.
그건 섹스의 황도, 그 기울어진 쾌도를 따라 유형하는 포르노 위성만큼 중요하다.

난 억지로 뭘 하는 건 정말 생명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자주 말하지만, 가장 질긴 생명을 갖는 경우란, 그 문제가 생존과 직결될 때이다.
그건 어쩔 수없다.
먹고 살아야지!

그런데 살만해지면, 여유가 좀 생기면, 그 때는 재미가 중요하다.
[한미 FTA] 같은 사안은 그건 정말 다수에게 어떤 형태로든 '생존'의 문제로 장차 적용되겠지만, 그건 지금 당장 보이지도 않고, 피부로 감촉하기도 힘들다.

누군가 그 잘못된 협정 때문에 죽는다면,
그는 왜 자신이 죽는지도 모른채로,
그. 렇. 게. 서서히 죽을거다.

그 죽음의 인과를 파헤치려면 고도의 정치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아직 죽지 않은 죽음을 상상하는 건 그런데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게까지 머리 쥐어짜면서 상상하고 싶지 않은게 우리들이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는 '재미'가 가장 강력한 생명력이고, 어떤 액션, 어떤 운동의 동인이다.
그게 어떤 식으로든 재미가 있어야 오래 지속되고, 힘이 생긴다.
순수한(난 이 말 별로 안 좋아한다) 도덕적 사명으로 당신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짧다.

그 위대한 419혁명 세대도, 광주 세대도, 6월 항쟁 세대도 그걸 증명했다.
강만길은 [4월 혁명론]에서 그 혁명이 왜 미완인지를 정확히 지적했다.
그 혁명은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에 기댔기 때문에 실패했다.
'지저분한' 생존조건과는 별 상관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미완일 수 밖에 없었다.
난 전폭적으로 공감한다.


6. 우리들, 포털의 바다에 빠진 정치적 무뇌아들 

21세기 현재 스코어 우리들은 유난히 재미를 추구하는 유희적 인간이다.
또 전래 없는 나르시즘에 빠진 대책없는 자뻑들이다.
그러니까 재미없고, 잘난 맛 없으면 우린 시체다.
(우울하고 신나게도 이건 난 진실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그 재미가 네이버의 연예인 성형수술이 아니라, 싸이월드의 토도리 따먹기가 아니라, 일상 그 자체이길 바란다. 그 일상의 사소한 관심들이 정치적인 상상력으로 피어나길 바란다(왜냐하면 이 세상에 정치적이 아닌 건 없으니까). 그 상상력을 훈련하고, 그저 일상의 정치적 상상력들, 그 일상의 사소한, 그런데 너무도 커다란 의미들을 '놀이로서'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이 블로그가 되길 나는 바란다.

말이 쉽지.
우리들이 일상을,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정치를, 자본을, 그 권력을 재밌는 '놀이'로 만들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있는 재밌는 것들, 자극적인 것들, 꿀물 나오는 그 온갖 것들을 '소비'하기도 바쁘다.
입을 떡 벌리고, 그 재밌는, 말랑말랑한 것들을 침팬치처럼 받아먹는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더 바보가 되는거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이 있다.

그 재밌는 것들에 대해서 떠들지 말자는 건 아니다. 
더.불.어.
재밌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떠들자.

조금만 더 조그만 더 즐겁게 비판하고, 즐겁게 회의하자.
우리에게 있는 정치적 상상력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난 정말 그렇게 믿는다.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은 포르노에서 혁명의 상상력을 발견할 수도 있을테다.
연예인의 허벅지에서 세계평화를 위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을테다(이건 좀 과장이네 ㅡㅡ;;).

나는 누군가 [한미 FTA]을, [김승연]을 열나 재밌는 드라마로, 재밌는 영화로, 욜라 신나는 노래로 만들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상업자본은 그걸 영화로, 드라마로, 신나는 노래로 만들리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떠들자.
우리가 만들자.

조금 덜 재밌더라도..

^ ^;;



던킨 외 - 5월 3일

2007/05/04 04:31

이 글은 minoci님의 미투데이 2007년 5월 3일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