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포털이라는 감옥, 혹은 포털 콘텐츠에 대한 실질적 선택가능성에 대한 단상
부제 2 : 손태영 교복 자작극 사건에 휘말리다.

#. 이 글은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통계에 의해 조력받는 글은 아니다. 그러니 이 글은 그저 내 제한된 체험과 그 체험들이 통과하면서 얻어진 어떤 완성되지 않은 관점과 그 한정된 체험적 직관에 의해 쓰여지는 글에 불과하다. 이 글은 그러니까 그냥 잡생각에 불과하다.  



0. 점점 더 감옥이 되어가는 포털

블로그 혁명의 가장 커다란 아군이자 적은 포털이다. 다만 현재로선 아군이 될 가능성은 그다지 커보이지 않으며, 개방과 분산화된 확산, 그리고 그 가운데 아주 작은 관계망들이 갖는 공동체적 가치와 친한 블로그는 기본적으로 포털과 서로 조화로운 상생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다음(daum)의 시도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깊은 호감을 갖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크다.

포털은 이제, 웹이라는 광활한 세계로 나아가는 대문이 아니라, 점점 더 감옥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포털의 생존전략, 혹은 이익창출의 손쉬운 방식으로 고정되어간다. 그 전략은 어쩌면 당연하기조차 하다. 이제 웹은 포털의 수중으로 떨어졌고, 포털은 이미 제국으로 군림하고 있으니까. 포털에 대한 몇몇 블로거들의 투정과 비판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포털이 당신에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나에게 가장 먼저 들어오는 이미지는 그 규모를 측정하기조차 어려운 광대한 시간의 낭비다. 그것은 그저 시간낭비에서 끝나지 않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의 왜곡을 어쩔 수 없이 수반한다. 포털이 악의적으로 이런 과점의 왜곡을 의도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건 포털을 매개로 한 콘텐츠 소비패턴의 전체적인 양상이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다소 추상적으로 고정한 표현에 불과하다. 다소 무책임하게, 하지만 내가 느끼는 바를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다.

포털은 결과적으로 불필요한(혹은 그럴 확률이 매우 높은) 콘텐츠에 대한 소비를 유도하고, 촉진하며, 그것을 패턴화(습관화)한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그 습관적인 포털 콘텐츠의 소비는 (아마도라는 편리한 한정적 수사를 동원하자면) 네티즌들의 비판적 사회참여의 가능성을 현저히 축소시키며, 세속적인 비교욕망을 가속화하는데 기여한다.

이 글은 네이버를 주된 대상으로 한다.


1. 네이버라는 감옥  

인터넷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사이트.

Next Human Network의 약자인 NHN에서 제공하는 포털사이트 네이버(navigate항해하다 + 접미사 -er)는 인터넷포털사이트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현실은 위 정의와는 그다지 상관없어 보인다.
웹이라는 바다를 항해하고, 넥스트 휴먼 네트워크를 지향한다는 네이버의 명칭은 바뀌어야 한다. 네이즌(nason)이라고 하면 어떨까(naver + prison).  

이 글은 물론 개인적인 체험담이며, 이것이 일반화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 개인적인 체험담에 불과할지라도 포털에서 소비되는 시간과 그 콘텐츠 소비시간이 만들어내는 어떤 심리적인 패턴에 대한 아주 작은 참조는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글이 그 풍경의 말단이나마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2. 시선이 꽂히다.

전체글수 623,436개 누적 방문객 18,091,226명인 네이버카페를 미투데이 윤수아씨님 글알게되서 심심풀이 삼아 둘러본다. 예전에 있었다는, 나는 처음 본, 손태영 교복자작극 사건이 눈길을 끈다. 실은 눈길을 끈다고 표현했지만, 그 사건(?), 그 가십을 담은 이미지와 몇 줄의 글이 담긴 포스트는 내 시야에 와서 박힌다. 나는 그 뻔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신현준을 찾아보게 되고, 쿨케이를 찾아보게 되고, 손태영이 쿨케이와의 이별 때문에 "...손태영은 이별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뉴욕으로 보름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고"라는 개인적으론 가장 싫어하는 '연예인 신변잡기 뉴스'를 기어코 읽고야 만다.

후회해도 이미 늦다. 소비된 시간과 거기에 소요된 불필요한 정신적 관심은 보상 받을 길 없다. 아마도 나는 몇번 쯤은 그런 '유혹'과 '미끼질'을 거절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도 포털에 잠시라도 머물게 된다면, 그 유혹과 미끼질에 언젠가는 걸려들 확률이 훨씬 더 높을테다.

그러니 우리들의 만개한 세속적인 호기심을 거절하면 그만이라고 말할지 모르테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포털관련 주소를 발견하는 즉시 거기서 빠져나오면 그만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 이건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포털에 걸려들 그 순간은 너무도 우연적이지만, 그것은 이미 계획된 그물이며, 덫이다. 사방이 포털이고, 포털이라는 그물은 점점 더 웹의 공기처럼 숨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포털은 모든 것들을 빨아들인다. 포털은 블랙홀이다.


3. 실시간 인기 검색어

이 문제는 '포털'이 언론인 이유와도 상통한다. 그것이 '뉴스 자체에 편집권'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해당언론사가 갖고 있다고 강변하는, 그래서 우리는 결코 언론이 아니라는 네이버가 언론인 이유이기도 하다.

언론은 어떤 '보도가치 있는 사실'을 ㄱ. 취재하고, ㄴ. 기사로 작성하며, ㄷ. 그 기사들을 배치(편집)한다. 일견 포털이 행하는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보이는 이 일들을 포털은 그대로 수행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언론들, 특히나 포털에 기사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포털 하청언론', 즉 군소 인터넷언론들은 '포털'에 내걸기 위해 어떤 사실을 ㄱ. 취재하고, ㄴ. 기사로 작성하며, (포털은) 그 기사들을 (사용자들의 선택권을 점차로 보장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포털에 걸어준다. 이때 그 기사들이 '걸리는' 표시체계의 얼개는 이미 편집 그 자체다. 본질적인 것은 사용자들의 선택가능성이라기 보다는 포털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이 표시체계의 얼개들이다(ㄴ.의 부분에는 소위 프로슈머로서의 블로거 및 카페커뮤니티 회원들이 연계되어 있다. 이 부분은 생략한다.).  

가령 네이버는 '실시간 (인기) 검색어'라는 기본적인 표시체계를 선택한다. 그 실시간 관심 키워드에는 휘발성 강한 세속적인(주: 세속적인 가치를 무쟈게 긍정하는 나이지만, 여기에 쓴 '세속적인'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거다) 키워드들이 다수(혹은 거의 전부)가 입력된다. 그리고 그 키워드들은 '주로' 앞서 말한 포털 하청업체들의 기사들과 손쉽게 연결된다. 그러니 우리는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나 혹은 유명 연예프로그램에서 이야기된 지엽말단의 가십과 소문에 대한 소비를 강요받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 인기키워드가 네티즌들의 다양한 관심을 반영하는 민주주의적인 소통의 기제일까? 홍은택 NHN이사는 "이용자 관심의 흐름을 중계"한다고 항변하면서, "대중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이렇게 실시간으로 끄집어낼 수 있었던 적은 없었다."고 뿌듯해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미국의 구글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와 개념이 같은 ‘핫 트렌드’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칼럼의 말미에 살짝 물타기를 시도하면서, 이에 대해 "동병상련"을 느낀다고, "반갑다"고 반색한다.

이용자의 관심은 유도되었고, 조종되고 있으며, 방송사 연예프로그램들의 기본적인 생산시스템과 그 콘텐츠의 경향에 종속되어 있을 뿐이다. 이를 "이용자 관심의 흐름을 중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연코 이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나는 판단한다. 이런 노골적인 NHN에 대한 홍보와 그 비판에 대한 아리까리한 항변을 위해 '한겨레'라는 매체을 이용한다. 솔직히 이런 칼럼은 NHN 사보에서 봐도 충분하다.

이는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에서 현실적인 경쟁자로 성장한 포털을 견제하기 위해 공명심 강한 한 얼치기 논객을 '반포털의 상징'인양 이용해먹는 조선일보의 행태와, 본질적으론, 그다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서로 이용해먹는 셈이다(이 글의 3 참조). 이빨과 발톱은 숨기고 있을 뿐이며, 해당언론의 정치적 포지션과 현실적인 역학의 차이일 뿐이다.


4. 결 - 포털에서의 콘텐츠가 소비되는 패턴

나는 네이버를 대문(포털)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버의 그물에 종종 걸려든다. 그리고 항상 후회하는 편이다. 이렇게 후회하는 나이지만, 언젠가는 또다시 네이버라는 그물에 걸릴테다. 하물며 네이버 그 안에서 활동하는 대다수 네티즌들은 말해서 무엇할까. 그들이 아직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하지 못한 나이 어린 청소년이라고 할 때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물론 나는 엄숙주의자가 아니고(아니라고 생각하고), 교조적 계몽주의라면 질색하는 사람이다. 메마른 교과서에, 혹은 두껍기만한 사회과학 서적에 세상의 진실이 무슨 대단한 삶의 지혜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가십류 콘텐츠의 생산 및 소비 및 그 유통이 갖는 긍정적인 요소, 가령 비판적 저항정신을 기저에 담고 있는 패러디나, 가벼운 농담따먹기류가 주는 심리적인 이완효과 등등을 인정하는 바다.

다만 현재의 포털에서 생산되고, 또 주로 소비되는 콘텐츠와 이를 매개로 한 의미소비의 패턴은 가학적이고 물신주의적인 비교심리를 부추기고,  그다지 칭찬만은 할 수 없는, 그리고 그 사회적인 책임에는 둔감한 기업에 자발적으로 공헌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소비패턴이 습관화되면서 최소한으로 견지되어야 하는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학습할 기회를 상실하고(기회비용의 차원에서),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에 과도하게 몰입되어 물신적 비교심리를 내면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에서 몹시 우려스럽다.


* 내용이 바뀌지 않는 한도에서 추고할 예정입니다.
* 민노씨.네 관련글


* 제목을
포털 단상 - 1. 콘텐츠 소비패턴 (에서)
포털 단상 - 1. 콘텐츠 소비의 악순환 (으로) 바꿉니다.
(그리도 다시)
포털 단상 1. 포털이라는 감옥 ; 콘텐츠 소비의 악순환과 실시간 인기검색 시스템(으로) 바꿉니다.





솔직히 정당정치니 정책선거니 매니페스토(공약검증운동)니 뭐니 별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회창씨가 드디어 대선 삼수의 대장정(그런데 그 장정의 마지막은 그다지 길지도 않을 것 같지만, 선거 며칠 안남았으니까)에 올랐다.

언론들은 정치공학적 통빡 굴리기에 여념없다. 그리하야 독자들로 하여금
정책과 공약에 집중하게 하기 보다는 각 정치세력간의 이합집산이나 유불리에 몰두하도록 관극적 틀을 구성하는 것 같다.

'프레시안'도 예외는 아니다. 늘 프레시안의 깊이있는 기사들, 칼럼들에 고마움을 느끼는 나이지만, 이번에는 여느 저널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조선일보는 보수-보수 구도를 염두에 둔 틀짓기 인상이 강하고, 한겨레는 그래도 이회창 대선출마 공식 발표의 변을 나름으로 분석하고, 이를 정치철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권태호 기자).

위 프레시안 기사 서두에서도 잠깐 언급하고 있지만, 이회창 출마의 정치사적 의미는 단순하다. 그것은 21세기 대한민국 정치를 20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결단'에 불과하다. 이 사건은 그 어떤 정치공학적 통빡굴리기로도 상쇄할 수 없는 후진적인 정치문화을 그대로 증거하고 있다. 

20%를 상회하는 여론의 지지를 근거삼아 이회창은 출마했다.
그리하여 이미 죽어버린 정당정치는 부관참시되었고, 정책선거는 여전히 실종상태다.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사소한 보충 및 추고.


* 추천포스트
foog,
이회창 홈페이지를 갔다가 모욕감을 느끼다



0. 올블에 들렀다 DyNast님께서 쓰신 추락하는 네이버.. 흐뭇한 다음..이란 글을 읽었다. 어제의 추천글에 링크되어 있어서 당연히 눈길이 갔는데... 내용에 대해서는 별론으로 다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ㄱ. 통계수치에 근거해서 포스팅하는 경우에는 그 통계수치가 어떤 조사기관의 통계수치인지에 대해 밝혀야 한다. 이는 그 통계수치가 갖는 신뢰성을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에 근거한 글쓰기, 혹은 어떤 근거를 제시하는 글쓰기에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최소한이다. 물론 이 점에서는 나 역시 반성하는 바이고, DyNast님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반성하고자 함을 밝히는 바다.

쉽게 말해서 '출처'를 표시해야 한다.

ㄴ. DyNast님께서 주장하시는 바의 상당부분에 대해 공감하고,나 역시 네이버에 대해 몹시 , 아주 몹시 비판적이지만, 그 비판의 내용에 부합하는 근거들이 너무 단편적이고, 추상적이며, 또 감정적이라면 합리적인 토론이나 대화보다는 일방적인 '비난'과 '성토' 혹은 격렬한 찬반 양론으로 나뉘게되기 쉬운 것 같다. 이 점에서 아쉬움을 전하고 싶다.


2. 비교적 신뢰도가 높다고 알려진 '랭키닷컴'( http://www.rankey.com )에서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다. 살펴본 바로는 다음과 같다.

물론 나는 회원이 아니라서(여기는 유료회원제니까. ㅡㅡ;; ) 자세한 내용은 살펴보지 못했고,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공개자료(카테고리 순위나 분야별 점유율, 전체순위 등)만을 살짝 들춰봤을 뿐이다.


ㄱ.
사용자 삽입 이미지

ㄴ.
사용자 삽입 이미지

ㄷ. 왜 구글은 없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검색' 카테고리에 수록되어 있다.
참고로 구글 한국어는 전체순위 24위. 구글닷컴 전체순위 29위
라이브닷컴(live.com)은 전체순위 38위다.


* 참고 : 랭키닷컴의 조사방법

1. 랭키닷컴의 순위 산정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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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순위측정지표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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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랭키닷컴의 순위 측정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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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블로그는 자본과 외부의 권력적, 정치적 역학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그것은 블로깅이 갖는 비판정신, 시민사회의 의식적 하부로서의 블로그가 갖는 가장 커다란 잠재력이라고 나는 평가한다. 그런 자유로운 발언과 주장, 그리고 목소리들이 세상에 널리 퍼지고, 토론되고, 논의될 때 '블로그로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그저 마케팅 표어가 아니라, 그 실질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자유롭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리뷰어'로서의 블로거들이 지켜야 할, 그리고 그런 블로그들을 보는 독자로서의 블로거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은 '사실은 불가침'이며, 주장의 무게는 거기에 부합하는 최소한의 근거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이상이다.



p.s.
DyNast님의 넉넉한 이해를 구합니다.
강조하지만 이 글은 DyNast님의 글을 매개로 삼아 블로깅에서 흔히 생기는 근거의 과장, 근거적시의 소홀함 등등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기 위해 적은 글입니다. 그리고 DyNast님께서 주장하시는 바의 근본적인 취지에 대해서는 저 역시 공감하고 있음을 다시금 말씀 올립니다.



0. 그다지 큰 관심이 생기는 주제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궁금해서 몇몇 저널과 블로거들의 글을 읽어봤다. 흥미로운 건 조선닷컴에서 읽었던 '신사임당은 억울하다'라는 칼럼이다. 이게 nova님께서 예전에 미투로그에 짧게 기록한 그 입장과 거의 유사하더란 거지.

자칭(타칭?) 페미니스트 nova님의 입장과 보수를 넘어서서 수구 소리 듣는 조선일보의 칼럼 입장이 거의 유사하다는 점이 좀 신선(?)했다.

암튼 한겨레와 조선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상징적으로 말할 수 있을 수 있을 듯 한다.



위 ㄱ. 한겨레 기사는 일반 기사고, ㄴ. 조선 쪽은 칼럼이다.


1.
한겨레 안선희 기자는 여성계의 반응으로 썰을 풀면서 대중적인 감수성의 대변자로서 '네티즌'을 동원한다(네티즌은 동네북이다). 그런데 물론 그 네티즌들은 '고액권'에 신사임당을 선정한게 그다지 달갑지 않은 네티즌이렸다.

내용은 그런데로 무난하다. 무난하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뭐, 그다지 신선하다던가, 혹은 깊이있는 분석이 있다던가, 그런 건 발견하기 어렵고, 그냥 '한겨레에서 읽을만한 기사군!'이란 느낌이란 소리다. 한은이 황당하다면서 뽑은 제목은 좀 자극적이면서, 그래서 더 식상한 기분이 든다.

물론 신사임당과 '교육열풍'을 연결시킨 부분에 대해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지만 말이다(이 글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서도). 다만 그것 역시 식상하게 풀어낸 것 같아서...


2.
반면 박선이 칼럼은 꽤 참신하다.
제목부터가 신사임당스럽다.

'신사임당은 억울하다.'

오, 참신하다.
여성계의 단편성이나 스테레오타입을 공격하면서, "전복적 상상력"이라는 '진보진영의 관용어'를 끌여들어서 여성계의 반응은 좀 고리타분한 반응이라는 투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꽤나 설득력이 있고, 세련된 형태라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입장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거시적으론 보수적인 관점을 갖지만 사안에 접근하는 방법론, 글쓰기의 태도에 대해서는 진보적 분석력을 보여준달까 뭐 그런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 진보적 페미니스트 '베티 프리던'(이 사람이 뭐하던 사람인지 나는 모른다)을 간접적으로 인용하면서 자신의 주장에 지적 권위를 은근히 씌운다. 여러모로 탁월한 (전략의) 칼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걸 조선닷컴에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 좀 살짝 아쉬긴 했다.


3.
나는 딱히 고액권 초상이 누가 되어야 한다던가(이미 물건너 갔잖오. ㅡㅡ;; ), 한국은행의 '신사임당' 선정사유가  굉장히 골때린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한겨레에서 한은의 선정이유라고 기사제목으로 뽑은 “어진 아내에 영재교육에 남다른 성과” 는 좀 의도적으로 '선동적인' 풍이라서 그다지 한겨레 안선희 기자의 입장에 공감이 커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런 기사제목은 좀 지양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너무 작위적이고, 전략적인데, 그 전략적인란게 너무 촌스러워서 그다지 설득되지 않으니까.

오히려 조선 박선이 기자 칼럼의 경우에는 목소리 톤을 낮추고, 차분하게 여성계의 비판 입장이 갖는 상투성과 스테레오타입을 공격하고, 비판함으로써 오히려 더 커다란 설득력을 갖는다. 그 기사가 서로 반대 매체에 실렸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상상도 살짝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소리가 뭔고 하니...
뭐 별거 없다.
자신의 입장을 사람들에게 설득시키기 위해서 때로는 선동적인 문구, 자극적인 고성이 효과적일 수도 있을테다. 하지만 때론, 특히나 이런 '신사임당' 건의 경우에는 좀더 차분하게 자신의 입장을 목소리 낮춰 이야기하는 전략이 훨씬 더 유효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4.
나는 조선일보에 적극 기고하거나, 혹은 조선일보에 종사하는 정신노동 종사자들의 역사의식은 빵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편견인 줄은 알지만, 이 편견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조선일보가 걸어온 그 길을 돌아보면 바로 답 나온다고 본다.

조선일보를 인정할 수 있는 '보수'신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조선일보는 '보수'라는 가치를 존중하고, 지향하는 신문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과 이익 만을 위해 움직이는 '집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건 '보수'라거나, 혹은 '진보'라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거다.

그런 의미에서 박선이 기자의 맛깔스런 칼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쿨한 칼럼이,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있고, 매우 효과적인 방법론으로서의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조선일보'라는 거대한 틀에 갇혀 버릴 것이라는 걸,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조선일보의 이익을 위해 '활용'되고, '소비'되어 버릴 것이라는 걸 확신한다.

글이 좀 이상한 쪽으로 흐른 것 같은데...
아무튼 그렇다는 거다.


5.
아, 그리고 블로그 쪽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글은 바로 바로 이 글이다!

이승환, [2007/11/06]
고액권 인물 선정에 부쳐

읽다가 웃겨서 혼났다('유니' 부분은 빼고).
이런 정도의 상상력과 재기발랄이라면 얼마든지 목소리 높이지 않고도 즐겁게 자신의 입장을 세워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p.s.
난 개인적으론, 역시, 유관순을 선호한다.
물 건너 갔지만.



0.
좀 지겹게 반복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간단히 적는다.


1. 레드써니의 글 '나는 파워블로거가 아니다'
글을 요약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전문을 일독하길 권한다.

1. 400만에 가까운 조회수! 이것은 컨텐츠의 힘?
아니다. 이건 단지 네이버 메인에 많이 노출되어서 얻어진 효과다

2. 3000여 명에 가까운 이웃추가
..라고 해도 지금 나와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워지고 있는 블로거들은 30명도 채 안될 것이다.

3. 21000회의 스크랩? 그래봤자..
다 심슨빨이다.

4. 꽤 많은 영화리뷰 스크랩?
그래봤자 내 글빨이 아니라 그 영화가 그저 인기있었을뿐.

5. 그래 앞에 설명 다 필요없고, 어쨋든 나는 네이버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 그래도 결국 나는 파워블로거가 아니라는 결론은 변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내가 아무리 셀레발을 친들, 한 명의 독립된 블로거가 아닌 블로그를 하는 네이버 유저일 뿐이다.

- 레드써니, 나는 파워블로거가 아니다 중에서
* 네이버블로그는 특히나 본문 긁기나 오른쪽 클릭을 제한한 블로그들이 너무 많다. 네이버사이트 내로의 스크랩 편의성, 접근성은 그렇게 높은데, 외부블로거들이 네이버블로그 내의 콘텐츠를 '공정 이용'하려는 경우(공개된 콘텐츠의 합법적인 비평 목적 인용) 너무 힘들 경우가 많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ㅡㅡ;

2. 네이버블로그와 웹2.0

네이버블로그는 내가 가장 먼저 블로그를 시작한 곳이고, 아직 나는 네이버블로그를 갖고 있다.  자주 가지는 않지만, 소수의 블로거 친구들과 아주 가끔이나마 교류하고자 그 네이버 블로그에 가끔씩 찾는다.

각설하고, 블로그는 개방적인 육체를 가졌으며, '관계'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도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울타리'로서의 '블로그 사이트' '블로그 서비스'는 개방과 관계 친화적인 도구들을 발전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자기 사이트 안으로 블로그의 팔다리를 묶어두려고 노력한다. 그게 네이버블로그의 한계이면서, 실은 대한민국 블로그 관련 서비스의 현실이기도 하다.

웹 2.0이 그저 일개 마케팅 용어에 불과할지라도, 거기에 담긴 최소한의 함의를 긍정한다면, 참여, 개방, 공유라는 가치는 그게 마케팅 용어든 아니든 상관없이 의미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이것들과 네이버와는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제 아무리 멋진 수사로 NHN 홍은택씨가 한겨레라는 진보적인 삘나는 매체에 칼럼을 써재껴도, l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이건 네이버블로그에, 네이버라는 포털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다음도 엠파스도, 그리고 대표적인 메타블로그인 올블도 여기에서는 예외가 아니다(hof의 올블 툴바에 거듭된 지적). 다만 네이버는 그 문제가 좀더 심각하다는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3. 시스템 종속성과 블로그의 독립성

시스템, 더욱이 거대 블로그 사이트를 자신의 일부로 구성하고 있는 포털이라는 그늘을 벗어나서 독립성을 추구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문제다. 최소한 현재로서는 그렇다. 대한민국 웹의 지배적인 얼개로서의 포털이 제대로 된 검색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 스스로 블로거이자 네티즌인 포털 유저들의 콘텐츠 소비 패턴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은 블로그가 갖는 미디어성, 블로그가 스스로 독립된 미디어로서 역할하고, 그렇게 긍정적인 대안적 미디어로서의 영향력을 확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미디어 다음의 블로거뉴스는 소수의 편집자들의 '알려지지 않은' 가이드라인에 의해 그 콘텐츠의 편집(그러니 대외적인 노출도와 영향력)이 결정되고 있고, 가장 객관적이고, 참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올블의 경우에도 메인의 '태그 중심 표시체계'는 거대 이슈에 대한 종속적인 경향성을 강화하고(이것이 갖는 미디어적 중요성, 공적인 토론의 활성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요소도 물론 있다고 보지만), 자신의 개성과 관점으로 '자기실존'을 투사하는 블로깅보다는 현상적인 이슈 추종적인 블로깅을 양산하는 부작용을 갖는다.


4. 파워블로거와 블로그 민주주의의 이상

나는 파워블로거라는 말을 그다지 신뢰하지도 않고, 그 파워블로거라는 말이 갖는 유치함과 속물근성에 대해, 나는 물론 속물이지만, 그다지 찬성하지 않는다. 다만 블로그의 발전모델로서 '블로그는 무엇인가'라는 블로기즘의 철학과 블로그의 미디어성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그리고 블로그가 미디어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는 '블로그 리뷰어로서의 블로거', 그리고 그 실질적인 역할을 각 분야에서 선도적으로 수행하는 이른바 파워블로거의 존재는 긴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니 나는 블로그계에는, 모든 세상이치가 그렇듯, 좌우의 날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소위 파워블로거들이 좀더 많아져야 하고, 그 블로거들의 권위가 온전히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스스로에 대한 고민은 현실적으로 블로그의 개방적인 툴을 지원하는 RSS 관련 서비스, 혹은 좀더 커다란 부피를 갖는 메타블로그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올블의 성장속도나 이올린, 블코, 그 밖의 새로운 '관계형 서비스'들의 모습을 보면 솔직히 아쉬움이 크다. 좀더 발전해야 하고, 좀더 새로운 블로그 문화를 창출할 수 있는 진보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와 함께 블로그에 좀더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참여적 블로거들, 관계형 블로거들도 좀더 많아지고, 이런 블로깅 문화가 어느 정도의 저변을 형성해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현재로서는 아주 미미한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블로그계는 그런 소수의 파워블로거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그건 '블로그 혁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블로깅을 그저 즐거움으로, 사적인 교류로,  때론 세상에 자신의 실존을 공적으로 투사하는 열린 공간으로 그렇게 일상으로서의 블로깅을 만들어가는 그 무수한 "익명들의 관계망, 그 총합으로서의 블로그"(아거)는 여전히 블로그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이자, 파워블로거(라는 허망한 수사)가 아닌 '블로그파워'의 본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일상적인 대화와 토론을 즐겁게 수행하는 블로그의 영향력이 '거대 대중매체'가 지금까지 수행해왔던 '정보와 의미'의 생산, 소비, 유통의 크기에 비견할 만큼 성장할 수 있다면 그 때 비로소 '블로그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물적 기제, 시민사회의 의식적 하부기제로서의 블로그는 그 역사적인, 정치적인, 문화적인 의미를 획득할 수 있으리라.



* 발아점
네이버 파워 블로거의 고백?  [2007/11/06] (그만)


* 일단 등록하고 본문내 링크 보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