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에 혐의없음 판결을 받았습니다. (도아)

위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기기 위해 관련 자료 살펴보다가 비교적 최근 꽤 중요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는 걸 발견해서요.
이 판결은 동료 블로거들께서 주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은 민사에 관한 소송사건입니다.

판시사항 : 언론매체가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의 위법성조각사유 및 인터넷상의 가상공동체의 자료실이나 게시판 등에 게시·저장된 자료에 터잡아 사실관계의 조사나 확인 없이 명예훼손행위를 한 경우,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소극)

판결요지 : 언론매체가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도 그것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에는 적시된 사실이 진실이라는 증명이 있거나 그 증명이 없다 하더라도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었고 또 그렇게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위법성이 없다. (이상은 명예훼손에 대한 위법성 조각의 조건을 설시하는 대법원의 확고한 입장입니다)

인터넷에서 무료로 취득한 공개 정보는 누구나 손쉽게 복사·가공하여 게시·전송할 수 있는 것으로서, 그 내용의 진위가 불명확함은 물론 궁극적 출처도 특정하기 어려우므로, 특정한 사안에 관하여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접속하는 인터넷상의 가상공동체(cyber community)의 자료실이나 게시판 등에 게시·저장된 자료를 보고 그에 터잡아 달리 사실관계의 조사나 확인이 없이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판을 저하시킬 만한 사실의 적시를 하였다면, 가사 행위자가 그 내용이 진실이라 믿었다 한들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출처 : 대법원 2008.4.24. 선고 2006다53214 판결 【손해배상(기)】 [공2008상,779])

보시는 바와 같이 인터넷상 게시판이나 저장된 정보에 터잡은 사실에 대해서는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명예훼손상 위법성 조각사유)를 쉽게 인정할 수 없다는 판례입니다. 사건 피고는 언론매체지만 이는 블로그에게도 곧바로 해당될 수 있는 사례라고 봅니다. 이 판례의 입장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타당하다고 평가합니다.

다만 '공짜'("무료")이기 때문에 신뢰성이 없다고 한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뢰성을 높이려고 법률정보들은 그렇게 돈을 많이 받는건가요? 국가는 최소한 법률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현재보다는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현재는 유료정보들인 너무 많아요... 국가가 돈주고만 볼 수 있는 법률 논문이나 판결 전문에 대한  DB를 구성해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현재는 너무 미흡해 보입니다. -_-; 


판결의 시사점

아무튼 판결은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해요.

0. 여전히 공인/공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대법원은 확고한 판례로서 표현의 자유를 상대적으로 널리 보장하는 입장입니다. 즉 명예훼손의 성립을 제한하는 것이죠. 이런 판례들로 인해 공적 사안/공인에 마땅히 확보되어야 하는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지는 않기를 바라봅니다. 즉, 양심과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들에 바탕한 정당한 비판행위는 여전히 보장되어야 마땅하고, 또 널리 권장되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1. 인터넷 정보의 신뢰성에 대한 저평가는 나름으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복제와 가공 편집이 용이한 인터넷 정보(특히 문자텍스트)의 특질에 기반하겠죠.

2. 판결을 가만히 살피면(반대해석하면) "사실관계의 조사나 확인" 노력이 있었다면 이는 명예훼손을 조각하는 사유를 충족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판행위에 있어 마땅히 기울여야 하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사실관계 조사나 확인이 용이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런데 사안이 갖는 공익성이 크다면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기울인 노력이 어느 정도라면 그 위법성을 조각할 수 있는지를 평가해줄 수 있는 가이드라인 혹은 그런 법률적인 조언을 확인할 수 있는 기구(민간이든 국가이든)가 존재한다면 좋겠네요. 언론사에서 이런 공익(?)활동을 조력할 수 있다면 좋겠지요.

3. 인터넷 정보에 대한 신뢰성을 확인/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인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국가기관이 직접 개입하는 방식이 아닌 민간의 자율성에 바탕해, 이를 국가가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정도의 수준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전기통신망법의 개악이 이런 정보의 신뢰성 재고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관련. 대화당사자의 비밀 녹음테이프의 증거능력

흔히 착각하기 쉬운 것이 있는데요.
타인의 음성을 녹취하는 것은 당연히 도청이 됩니다.
이것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이죠.

다만 음성 녹음이 '직접 대화 당사자'에 의한 것이라면 이 자체로는 불법이 아닙니다.
(주의 : 물론 이것을 타인에게 공개하는 것은 따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
대화당사자에 의한 비밀 녹음테이프의 증거능력을 우리나라 대법원은 확고한 판례로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학설 역시 다음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증거능력 인정설이 다수설입니다.

ㄱ. 대화당사자의 녹음과 제3자의 녹음은 구별해야 한다는 점
ㄴ. 대화당사자 사이에는 프라이버시 보호의 필요성이 없거나 약화되고 통신비밀보호법이 타인 간의 대화비밀만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당사자에 의한 공개는 현행법상 위법하다고 할 수 없는 점

다만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 증거능력이 인정됩니다.
아래 판례는 형사사건에 관한 판례입니다.

판시 사항 : 사인(私人)이 피고인 아닌 자의 대화내용을 비밀녹음한 녹음테이프 또는 비디오테이프 중 진술부분의 증거능력

판결 요지 : 수사기관이 아닌 사인(私人)이 피고인 아닌 사람과의 대화내용을 녹음한 녹음테이프는 형사소송법 제311조, 제312조 규정 이외의 피고인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서류와 다를 바 없으므로, 피고인이 그 녹음테이프를 증거로 할 수 있음에 동의하지 아니하는 이상 그 증거능력을 부여하기 위하여는 첫째, 녹음테이프가 원본이거나 원본으로부터 복사한 사본일 경우(녹음디스크에 복사할 경우에도 동일하다)에는 복사과정에서 편집되는 등의 인위적 개작 없이 원본의 내용 그대로 복사된 사본일 것, 둘째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에 따라 공판준비나 공판기일에서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하여 그 녹음테이프에 녹음된 각자의 진술내용이 자신이 진술한 대로 녹음된 것이라는 점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고, 사인이 피고인 아닌 사람과의 대화내용을 대화 상대방 몰래 녹음하였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조건이 갖추어진 이상 그것만으로는 그 녹음테이프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며, 사인이 피고인 아닌 사람과의 대화내용을 상대방 몰래 비디오로 촬영·녹음한 경우에도 그 비디오테이프의 진술부분에 대하여도 위와 마찬가지로 취급하여야 할 것이다.

(출처 : 대법원 1999. 3. 9. 선고 98도3169 판결)

참고, 민사소송의 경우.
자유심증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 민사소송법하에서 상대방 부지 중 비밀리에 상대방과의 대화를 녹음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녹음테이프가 증거능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고, 그 채증 여부는 사실심 법원의 재량에 속하는 것이며, 녹음테이프에 대한 증거조사는 검증의 방법에 의하여야 한다.
대법원 1999. 5.25. 선고 99다1789 판결


* 발아점
명예훼손에 혐의없음 판결을 받았습니다. (도아)


* 관련 추천
077. 통신비밀보호법안의 참모습 (1) (09.02.18)
078. 통신비밀보호법안의 참모습 (2) (09.02.18)

쌔깽님께서 오랜만에 마이크를 드셨군용. : )



도덕의 가면 (clockoon)
http://clockoon.egloos.com/2274543 


1. 도덕
저는 도덕의 (상대적) 우위를 평가하는 일은 여전히 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도덕이 어떤 행위에 대한 절대적인 판단기준을 제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덕은 추상적이고, 때론 상대적이며,  더 나아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모순적이기도 하죠.  하지만 여전히 도덕은 어떤 특정한 사회, 특정한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어떤 행위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준은 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동어반복적인 논리겠지만) (매우 불완전한 것이긴 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회에서 도덕을 만들어낸, 도덕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돈보다는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이것이 우리시대가 도달한, 하지만 동시에 적극적으로 배반하고 있는, 도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이 허울일 뿐인 명목상 도덕일지라도 이는 매우 중요한 가치일 뿐더러 유용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생각해요.


2. 동화를 꿈꾸는 드라마적 관극틀
용산참사를 바라보는 시각들 가운데, 약자(철거민, 전철연?) = 도덕, 강자(경찰, 검찰, 용역업체, 용산구청...) = 비도덕 이런 동화적, 혹은 드라마적 관극틀에 따른 획일적인 이분법에 저 역시 반대합니다. 이런 획일적 관극틀은 문제 해결을 오히려 방해하죠. 선/악 대결로 몰고 갑니다. 우리/저들이라는 명징한 이분법이죠. 저들은 악마이고, 비도덕이며, 타도되어야 하는 어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그저 천사만은 아니라는 걸. 우리 안에서도 '타워팰리스'를 갈망하는 욕망이 있다는 걸요. 우리가 실은 이명박 시대를 만들어낸 주역이라는 걸, 우리는 압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어울리는 정부를 가졌을 뿐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수가 이웃이라거나, 공동체라거나, 사회적인 약자라거나.... 이런 것들에 대단히 무관심하다는 걸, 정의, 도덕.. 이런 것들에 대단히 무감각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 일 아니라면 무슨 관심이나 있나요? 그저 드라마를 보듯 흘겨 볼 따름입니다. 누가 불에 타서 죽든 말든, 그저 휴먼 다큐멘터리의 한 꼭지를 보며 감동하는 것처럼, 그저 한 방울의 눈물로 우리들의 무관심과 방관과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이기심을 고해성사하며 이 모든 것들을 쉽게 망각 속으로 흘려보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막장 드라마를 열심히 시청합니다. 그 욕망을 기꺼이 학습합니다.그게 대부분의 우리들입니다.

"도덕적인 의도 = 정당한 행동입니까? 역겨운 논리입니다. 도덕이란 가치는 대부분 사실관계를 흐리고 팩트를 왜곡합니다. 이 글은 전철연을 '가족같은' '연대감'등의 단어로 이익단체의 얼굴 위에 약자의 탈을 뒤집어씌웁니다. 이런 행위가 바로, 저들이 그렇게 씹어대던 '물타기'입니다. "
- 도덕의 가면 중

그게 이율배반으로 영혼까지 염색된 우리들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덕적인 취지를 가진 행위가 곧 정당한 행동이라는 등식은 물론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은 우리는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도덕를 폐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는 그 도덕 자체를 폐기하려고 하는 시대입니다. 도덕은 어떤 사회 속의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최소한의 상식, 규범, 관습의 총체입니다. 도덕이 권력의 시녀, 욕망의 꼭두각시, 기만의 화장술이 되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입니다. 우리시대는 그 불행을 적극적으로 욕망하는 끔찍한 시대입니다.

3. 도덕의 효용
김용태의 주장(요지 : 농성자 23명 중 20명은 이른바 '알박기')이 전적으로 사실이라고 치죠. 용산참사는 알박기 철거민들이 떼거지로 전철연 꼬임에 빠져 좀더 많은 돈을 받아내기 위한 집단 이기주의, 과격한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사건이라고 해보자는 겁니다.

두 개의 욕망이 충돌합니다. 23인 철거민들의 욕망과 이 떼거지들을 진압해서 국가의 권위와 질서를 유지하려는 공권력의 욕망이 충돌합니다. 둘다 대화도, 타협도 없는 비도덕이고, 무력이라고 하더라도, 그래서 둘 모두 비도덕이라고 하더라도 양자를 비교하는 일은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이들 양자의 도덕성을 비교하는 일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원칙이나 기준, 제도라는 것, 특히 법이라는 것은 당대의 약육강식, 즉 정치적인 권력 역학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고, 강한 자에게 아부하고 있죠. 이 법을 집행하는 권력 역시 그러합니다. 이것이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말해지는 법의 현실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도덕에 대한 강조, 가령 공익성이나, 약자에 대한 배려는 이런 약육강식의 야만에 대한 항체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이 '도덕'이라는 가치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약자'에게 '이익'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런 역할은 좀더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회 전체의 합리성을 견인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제가 약자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라도 이런 도덕을, 공익을,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겠습니다.

가령 복지정책에 대한 예산을 줄이는 일은 전체로서의 경제지표 향상을 위해선 '합리적'일 수 있지만, 여전히 다수의 사회적인 약자들을 보호하는 일을 신경써야 하는 국가의 '도덕성'에 대한 비난을 가능할 수 있게 하고, 그런 차원에서 복지정책에 대한 재고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로 유효하다는 생각입니다.

4. 용산참사와 이기적인 약자
A. '이기적인 약자'의 반사회적인 행위(알박기에 바탕한 점거 농성)가 갖는 비도덕성,
B.  이를 진압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조급하고, 강압적인 공권력 행사가 갖는 비도덕성

양자를 비교한다면, B에 대한 도덕적인 비난가능성(책임)이 훨씬 더 크지 않나 싶습니다. 이들 양자가 비도덕이기 때문에, 양자 모두 규범의 파괴이기 때문에, 그 비도덕으로 인해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양자 모두 비도덕했다고 해도, 그래서 규범을 파괴했다고 해도 그 크기는 비교해야 합니다.

A. 검찰은 농성자21명을 무기징역이 가능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의 공동정범으로 기소했습니다.
B.국가의 과실(혹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행위에 대해선 무혐의라고 판단했습니다. 우리는 비도덕행위의 무게와 그에 대한 엄정한 중립자로서, 정의의 구현자로서의 국가공권력(검찰)의 판단, 그 '결과'를 비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중립적인 심판자로서의 국가권력은 국가권력이 수행해야 하는 중립성의 가치, 그 도덕성을  실추시켰습니다. 이것은 유치원생이 봐도 명백하게 형평의 파괴이고, 정의의 파괴이며 도덕적인 훼손입니다. 즉 국가권력이 드러낸 이런 합법적인 야만은 국가와 공권력에 대한, 그 총체적인 시스템, 그런 시스템의 조율자, 보이지 않는 그 베일 뒤의 어떤 권력에 대한 비난가능성을 훨씬 더 무겁게 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이것은 대한민국의 권력 역학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또 정권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A에 대해서도 그 비도덕성을 성찰하고,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욕망을 성찰하면서, 반성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다만 동시에 B영역에서 그 모순과 도덕적 비난가능성을 고발하고, 주목해서 그 도덕성을 회복시키는 일에 주목하는 것은  좀더 큰 '가중치'를 가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니 A 영역에서 그 행위의 비도덕성에 대해 비판할지언정, 그리고 그럼으로써 합리적인 원칙과 기준을 모색하는 일을 수행할지언정, 그 A에 대한 비판이 B 영역에서 벌어지는 비도덕성을 '무효화'시키는 작용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물타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답해주신 바, '도덕적 우위'가 합리적인 해결방식을 모색하는 과정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에는 일견 공감합니다만, 그 말씀이 도덕의 절대적인 '무용'을 피력하신 것이라면 이에 대해선 이견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A를 근거로 B의 비도덕성을 무효화하는 시도들이 생겨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철거민의 이기적인 욕망을 막연한 동화적 관극틀이 아닌 좀더 냉정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일은 중요합니다. 다만 이와 더불어 국가공권력의 비도덕성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또 이를 비판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로 용산 참사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 김용태의 주장이 전적으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물론 과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용산 제4재개발 지역의 23인의 철거민들이 알박기로 자신의 이익을 탐한 비도덕적인 철거민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그 대가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그 비도덕의 대가로 '무기징역이 가능한 형'으로 기소되는 일은 최소한의 정의('도덕'과 불가분이죠)를 붕괴시키는 일이라고 평가합니다. 도덕의 중요한 덕목이 책임이라면, 좀더 엄격하게 그 무게를 짊어져야 하는 건 '국가(경찰)'입니다. 그런데 그런 국가는 '무혐의'입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에 도덕이 더 더욱 절실하게 필요함을 방증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의의 수호자인 대한민국 검찰은 '도덕의 최소한'을 적극적으로 기만하고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우리들이 상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어야 합니다. 지금 이 땅에 그런 최소한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관련 추천
때 아닌 풍년어, 법 (송지영)


* 발아점
용산참사, PD수첩 그리고 정직한 목격자 (하민혁)
도덕의 가면
(clockoon)


* 무조건 강추!
얼굴 없는 목소리  (미닉스)



블로그래픽 제6차 공개회의입니다.
회의는 대외비로 할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공개를 원칙으로 합니다(2009년 1월 1일 부터.)
블로거라면(독자도 물론이구요) 누구나 회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공개 회의 절차 안내]

1주 1회 원칙.
일요일 혹은 월요일을 공개 회의안 작성일로 정할까 합니다.


[지난 주 쓴 글]

블로그래픽 이야기1 (진간장비빔밥) : 블로그래픽에 대한 내부 비판.
저널리즘의 미래 암울하기만 할까 (펄) : 우울한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해 적극적인 활로 모색에 대한 기대와 다짐(?)를 담은 글.


[함께 쓸거리]

0. 각 동인들께선 언제든지 자유롭게 각 카테고리에 글을 올릴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1. 2008년 블로그계 10대 사건(마감)
2. 언론 7대 악법 검토 (마감 미정)
이 주제에 대해선 다시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큰 이슈(용산참사 등) 때문에 아직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떠오르진 못한 것 같네요.

3. 미네르바 (마감 미정)
미네르바 이슈는 이제 완전히 수면 아래로 내려간 것 같습니다.
다만 블로그계에 있는 기존글들에 대한 논평과 동인분들의 글들을 엮어서 그 의미를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4. 용산 참사 (마감 미정) : 이하 사건 경과
사건 발생 (1월 19일)
....
PD 수첩 (2월3일) : 경찰과 용역업체의 짝짜꿍 고발 
검찰 수사결과 발표 (2월 9일) : 경찰에 면죄부 부여 (점거 철거민 농성자 21명 기소, 경찰 무혐의) 
국회 긴급현안질의 중 김유정(민주당) 의원의 고발 (2월 11일) : 청와대(행정관)가 강호순 이슈를 용산참사에 대한 물타기용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음모를 고발. 

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902/h2009021203393221060.htm
: 김유정 의원의 고발 내용을 전하는 한국일보 기사.

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902/h2009021403120021080.htm
: 김유원 의원의 폭로가 사실이었음을 (간접)시인한 청와대. "이메일을 보낸 청와대 직원은 청와대 홍보기획관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의 이성호(5급) 행정관으로 이기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아들"(기사 중에서)

국회 긴급현안질의 중 김용태(한나라) 의원의 임대차 계약서 공개(2월 11일) : 23명 가운데 20명이 이른바 '알박기' 의혹있다. 뭐 그런 내용. 

http://www.donga.com/fbin/output?f=a__&n=200902120118
: 김용태의 주장을 전하고 있는 동아일보 기사.
이상한 건 이후 관련 기사들이 확인되지 않는다. 김용태 주장의 파장을 고려하면 꽤나 이례적이다. "사실 검토 없는 일방적인 발표"라고 반응했던 대책위 반론(12일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에서는 전하고 있다) 역시 이후 보도를 통해서는 찾아지지 않는다.(구글링) 이 점도 이상하다.

http://clockoon.egloos.com/2274543
: '전철연은 식구'라는 다소 동화적인(부정적인 의미에서) 감수성에 바탕한 자그니글에 대한 비판글.

http://blog.mintong.org/462
: 김용태의 주장(전철연 소속 23명의 조합원 가운데 20명이 용산 재개발 발표 이후 전입했다는 주장)을 근거로 PD수첩 보도는 기초적인 사실 확인(용산참사의 현실적인 배경은 '알박기'다..뭐 이런 종류?)을 하지 않은 편향된 보도라고 비판하는 글.  

한겨레(21) 특종 :  제748호. 2009. 02. 20일자.
조합과 계약한 용역업체 소유주는 용산구청장과 친한 지인, 그리고 계약조건도 시중 가격 두 배.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4348.html
: 용산4구역 재개발 조합과 계약한 정비용업체가 알고 보니 용산구청장과 잘 아는 지인이었고, 그 계약조건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두 배 이상 뻥튀기된 것이라는 고발 기사.

5. 강호순 얼굴 공개 과연 알 권리인가? (마감 미정)
이 이슈는 자연(?) 소멸했다고 평가합니다.

6. 리뷰 / 광고의 경계 설정. 
현재 블로그계 현안(?)이라면 현안인데요.
블로거인 우리에게는 가장 가까운 영역의 주제이기도 하죠.
블로그를 매개로 하는 PR활동, 특히나 상업적인 영역, IT 상품 PR에 있어서 리뷰와 광고의 경계에 관한 글을 써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 단상
지난 회의안에서 뭔가 가벼운(?) 이야기로 몸풀기를 하자고 했는데요.
역시나 제가 게으름을 피우는 바람에 그 몸풀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원래는 '바통놀이'할 수 있게 질문지를 만들어볼까 싶었습니다만...
암튼, 리뷰/광고의 경계 설정에 대한 글, 혹은 올블 어워드에 관한 글을 가급적 빠른 시일 내로 블로그래픽에 올릴까 싶습니다.



[제안]

1. 온라인 컨퍼런스 준비 위원회 구성 [아직 미진]


온라인 컨퍼런스를 준비하고 운영할 위원회를 구성하면 좋겠습니다.

1. 준비위원회에서 책임감 있게 참여해주실 수 있는 동인 여러분과 동료 블로거들의 협조가 절실합니다. (_ _)
2. 주제에 대한 논의는 준비위원회가 가동되면 논의해야 하는 문제겠습니다.
그래서 물론 미정입니다만,

논의 주제 예시.
- 블로그 콘텐츠의 유통 구조 (포털, 메타블로그, 특히 다음블로거뉴스와의 상관관계 속에서)  
- 블로그의 미디어적 가능성 및 영향력
- 블로기즘과 저널리즘의 관계 설정 ... 이상 기존 제안
- 블로그 마케팅의 이상적인 발전 모델에 대한 모색 (즉흥적으로...;;; )

온라인 컨준위는 최소 2월 중 구성 가급적 빨리, 다만 투명한 참여 원칙을 통해 내실을 기해 구성하고, 실질적인 온라인 컨퍼런스는 가급적 3월, 4월, 늦어도 5월중에는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컨퍼런스 기간 : 일회성의 '행사'가 아닌 실질적인 회의가 될 수 있도록 최소 보름 이상으로 (물론 미정)
회의 방식
- 단계별 발제 : 발제자가 단계적으로 전체 주제를 조율할 수 있는 글을 발표
- 토론 지정 패널 : 위 발제에 대해 의무적으로 참여
- 자유 참여 패널 :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


2. 책임 카테고리제 [진행중]

동인 일인당 하나씩 카테고리를 책임지고, '책임 연재' 하는 방식입니다.
기존 블로그와의 교통정리 차원에서 기존 자신의 쓰던 카테고리의 하나는 '포기'(!)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진행 경과](가나다순) 
- 민노씨 : 블로그 서비스, 기존 민노씨.네 카테고리 중 '메타블로그' '블로그 서비스' '포털' : 연재 제목은 미정.
- 진간장비빔밥 : 블로그 마케팅(블로그 매개 PR)를 비롯한 블로그 리뷰 : 연재 제목은 미정.
- 펄님 : 미디어 부문 : 연재 제목은 미정.

나머지 동인들께서도 자신이 담당하고 싶은 카테고리(주제)를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새로운 동인 [진행중]

신입 동인을 모셔오기 위한 내부적인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동인들께선 포럼 참고)
가장 큰 참여 기준은 당장의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블로그래픽의 미래에 함게 동참한다는 자발성입니다.


[알림]

펄님께서 산후 조리원에서 나오셨다고 하네요.
그래서(?) 당분간 '잠수'를 선언하셨습니다. : )


[기타 등등]

블로그래픽 개별글에 클릭이 안되네요...;;;;




* 블로그래픽 홧팅!
http://blographic.net 

* 의견 주세용! ^ ^




진보로 돈벌기 : 초안

2009/02/13 22:20
그냥 잡생각이고, 초안인데, 이 잡생각마저 날아가기 전에 잠시 붙잡아 둔다.

진보는 시장에서 돈이 안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진보라는 가치를 표방하는 상품은 없거나 있더라도 거의 상품성이 없다. 진보가 돈이 되면 너도 나도 진보할거다. 사람들이 진보적인 정치이념이나 진보적인 사회사상을 가지고 있어도 정말 진보로서 실천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진보는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별 다른 이유를 아무리 생각봐도 다른 이유는 없다.

우리나라는 미완이긴 하지만 4.19가 있었고, 물태우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87년의 영광을 거쳤던 매우 정치적인, 그것도 꽤나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국민들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건 "97년 체제"(신기섭의 표현을 빌자면)에 의해 붕괴된다. 그러니까 현재의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시대정신은 87년 체제가 아니라 97년 (IMF)체제다.

민주화니 뭐니 시국은 어수선 했지만 그래도 나날이 커나가는 국가였고, 일자리 걱정은 상대적으로 별로 없는 나라였는데, 그리고 그나마 분배 정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는데 IMF가 터진거다. 그나마 허물뿐인 중산층은 점점더 몰락하고, 장롱에서 돌반지까지 탈탈 털어서 나라를 살려놨더니만 남은 건 정리해고에 비정규직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돈 강박증에 걸린 나라가 되어버렸다.

물론 아주 국지적인 지엽적인 '사상 시장'(혹은 좀더 넓게 보면 문화 시장의 일부)에서 진보는 돈이 된다. 진중권이 그렇고, 신해철이 그렇다. 물론 신해철은 그렇게 번 돈이 얼마 되지 않았는지 커밍아웃했다. '나 원래 그런 놈이야, 그런데 니들은 뭐 다르냐? 븅신들'  뭐 이런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걸 메시지라고 해석하는 건 좀 너무 후하긴 하다.

신해철이 악질이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진보 이미지 상품성 키워서, 연예인에게 상품성은 그 이미지 자체다, 그 가치를 정면에서 역 멋이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론 얼마를 벌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걸 '용돈'으로 표현하는  걸 보고 정내미가 뚝! 떨어졌다. 참 대단한 '아티스트'이긴 한 모양이다.

아무튼 진보로 이미지 키우고, 그걸로 장사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다면 아마도 학원광고 따위는 하지 않아도 좋았을테지. 하지만 진보는 시장에서 돈이 안되고, 진보는 상품성이 없다. 물론 아주 지엽적으로 사상 시장에서는 돈이 살짝 되기도 하지만.... 그런데 정말 본격적인 화폐로 교환가능한 시장에서 '진보'는 정말 돈이 안된다. 지금까지 진보가 히트상품이 된 일은 한번도 없다.

진보 휴대폰?  이런 건 없다. 진보 자동차, 진보 냉장고, 진보 MP3, 진보 인터넷, 진보 포털?(ㅎㅎ)

최근에 무슨 무슨 교재작업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었다. 성인강좌을 위한 글 하나에는 프로슈밍 시대의 미디어 : 블로그를 중심으로. 라는 가제를 붙였다. 그리고 그 글을 위해 참고삼아 '부의 미래'를 읽었다. 언젠가 아틸라가 '그저 그런 책 아니예요'라고 했던 그 책이다(그게 떠올라서 대충 읽고 덮었던 책인데 다시 그나마 통독해봤다).  거기에서 강조하는게 '보이지 않는 경제'(프로슈머 경제)를 발견해내고, 키워내는 일이다. 그건 블로그와 몹시 닮아 있다.

암튼 진보가 살아남으려면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시장을 붕괴시키고, 뒤집는 혁명은 이미 종친지 오래다. 뭔가 '진보 상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물론 그게 어떤 형태,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진보가 돈 되면 그 때, 역설적으로 혁명은 일어날 수 있다. 이게 모순이란 걸 잘 안다. 이게 말장난이란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뭔가가 필요한 시기다.


추.
블로그는 아마도 진보가 상품이 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시장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블로그는 삼성이 돈 만들어주고, LG가 돈 만들어주는 시장이다. 그 현실을 비판하는 일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너무 핏대세우면서 그 현상의 표피만 비판하는 건, 혹은 때로 수위 넘어 저주하는 건 좀 보기 안좋다. 다 함께 잘 살자고 하는 일이지, 누구를 경멸하기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돈 되는 진보를 구상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게 블로그에서 가능하다면 정말 그럴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블로그 혁명일텐데...


* 관련 참조
http://minoci.net/733 : 진보 / 수구(보수)에 대한 개념상 혼란에 대해



독고다이와 레시피

2009/02/13 20:39

1. 독고다이
최근 글에 '독고다이'라는 표현을 썼다. ( http://minoci.net/734 ) 일부러 그렇게 썼다. 그 글이 좀 딱딱하고, 밍숭밍숭한 느낌이라서. 적당한 긴장이완이랄까, 맛(?)을 주지 않을까 싶어서.  이게 일본에서 온 말이라는 것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좀 부끄럽게도) 정확한 어원은 모르고 있었는데, 지금 찾아보니 '(카미가제) 특공대'에서 온 말이란다. 카미가제 특공대라니... 이런 아픈 역사에서 나온 말인줄은 몰랐다....
"독불장군을 뜻하는 '독고다이'는 카미가제를 칭하는 특공대(特攻隊-とっこうたい/) 발음이 변한 것입니다. 톡꼬우타이가 독고다이가 된 것" (당그니. http://dangunee.com/132115 )
- 참조 : 카미가제는 '신의 바람'을 뜻하는 신풍(神風)에서 나왔다고 하더라. '신풍'의 어원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은 역시나 당그니의 글( http://dangunee.com/131994 ) 참조. 간단히 설명하면, 우연히도 불어와서 몽고 침입을 막아둔 태풍을 '신풍'(일본을 지켜주는)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2. 고마운 조언
같은 어감, 좀더 어울리는 우리말이 있었다면 그걸 썼을거다. 그런데 왠지 그 문맥에서는 그 단어가 떠올랐다. 그걸 꼭(까지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쓰고 싶었던거다.
독고다이라는 말. 요즘 네티즌에게는 뜻도 어렵고 어감도 좋지 않은데, '홀로형'이나 '독립형'으로 순화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 (김중태)

홀로형이나 독립형은 '독고다이' 같은 울림이 없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물론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지적이라고 생각하고, 또 고맙게 생각한다. 이 글은 위 조언이 기분 나쁘다거나, 틀렸다고 쓰는 글이 (전혀! 전혀!!) 아니다. 독거형... 이렇게 써도 비슷하겠지만 뭐랄까 너무 쓸쓸하기만한 느낌이라서... 왠지 자존심도 느껴지면서, 또 꿋꿋함도 느껴지지만 약간은 외롭고, 쓸쓸함을 주는 그런 단어가 필요했다. 그게 나에겐 '독고다이'였다.  (아마도 '고독'이 연상되서 그랬을거다) 독불장군... 이건 그 글을 쓰면서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적절하게 대체 가능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뭐랄까 너무 고집쟁이 같은 느낌이 있어서 '독고다이'보다는 별로다.

2-1. 그러니까...
"독고다이하는 성격이라 편할 때가 많아요."
순간 귀가 쫑긋해졌다. 그의 입에서 ‘독고다이'란 말이 나온 게 신기하다. 한국에 정착한 지 20년이 넘었다지만 겉모습은 천생 이방인 아닌가. ‘독고다이'란 ‘무리를 이루지 않고 홀로 하다'란 뜻의 일본식 단어인데 은어에 가까워 한국인들도 널리 쓰진 않는다. ‘국내 뮤지컬 음악감독 1호'로 꼽히는 박칼린(41)의 인생을 [....] 
- wild@fnnews.com 박하나,
http://www.playdb.co.kr/magazine/magazine_temp_view.asp?kindno=2&no=12832&page=1 중에서
위 기사에서 박하나가 쓰고 있는 것처럼 "무리를 이루지 않고 홀로 하다"라는 의미 정도로 쓴거다. 물론 기사에서까지 일본식 표현을 권장하고 싶지는 않다.하지만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니 그걸 옮기는 건 별 문제될 것 없다고 본다.

3. 원칙은...
나은 나는 가급적이면 쉬운 우리말 쓰자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같은 부피와 질량을 갖는 의미라면 가급적 쉽게, 가급적 우리말로 쓰자, 뭐 그런 입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고다이'가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건 물론 인정한다. (하지만 그 때는 그걸 꼭 쓰고 싶었다...;;; )

4. 좀 이상한 건...
굳이 일본어에서 온 말이기 때문에 쓰면 안된다거나 혹은 쓰지 말자고 하는건... 그건 좀 이상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가급적이면 쉬운 우리말을 쓰자는 입장이다. 이건 대원칙이다. 다만 각자 개성에 따른 자유로운 언어 행위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이것도 꽤나 중요한 원칙이다. 본론으로 돌아가면 왜 그런지도 잘 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라는 아픈 역사 때문에 그럴테다. 나도 한국사람이라서 이런 맘 충분히 이해한다.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뉴라이트의 사이비 실용사관(?)에도 몹시 비판적이다. 그러니 여전히 제대로 세워져 본적 없는 민족주의가 제대로 세워지기를 누구보다 바란다. 물론 그게 국수주의, 혹은 배타적인 애국주의로 흐르지는 않기를 바라지만.

5. 외래어
그런데 외래어도 우리말이다. 어쩔 수 없이 그렇다. 우리땅에서 처음 생겨난 토착 언어, 우리식 표기만으로 처음 쓴 순우리말이 적어서다. '한자'(중국어)에서 나온 한자어는 순우리말 보다 훨 많고, 또 요즘은 영어에서 온 말도 점점 많아진다. 물론 이게 바람직한 상황이라는 건 전혀 아니다. 우리말 발굴이라도 해서 좀더 많이 쓰면 나도 좋겠다.

6. 차별적 감수성 : 가령 레시피
다만 예외적으론 어떤 특정한 감정이나 상황이나 의미를 설명하는 적절한 외래어 표현이 있다면 이건 써도 괜찮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게 단순히 '일본(어)에서 온 말'이기 때문에 쓰면 안된다는 건 좀 이상하다는 거다. 언젠가 너바나나는 '요리법' 이렇게 하면 될 걸 왜 굳이 '레시피' 이렇게 쓰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나는 이 입장에 공감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레시피는 직관적인 의미전달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발음하기에 쉬운 표현도 아니고, '레시피'인지 '레피시'인지도 헷갈리고...
당최 조리법이란 얘기 대신 레시피라는 뭔가 초능력적인 단어를 쓰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고, 페이보릿이라는 곡식이 연상되는 저런 말을 쓰는 이유가 뭔지도 모르겠습니다. (....) 언어가 하나 사라질 때마다 그 언어에 담긴 인류의 지식과 생각도 하나씩 사라진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언어건 간에 그 언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고유의 감성과 생각이 있기에 이 언어가 사라지면 인류의 사고도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죠.
[....]
내 친구, 내 동료, 우리나라 사람과 대화를 하는디 영어를 몰라서리 불편한 사회가 되길 원치 않구만요. 단지, 영어를 못할 뿐임에도 그것을 열등감으로 느껴야 한다고 강요받는 세상을 원치 않구만요. 이 땅에선 한국어만 할 수 있어도 아무런 문제 없이 생활할 수 있고 블로그질 할 수 있으면 좋겠심다. 동동주 한 잔 시원하게 마시고 "달짝지근한 거이 좋다" 라며 장단 맞출 수 있는 곳으로 남았으면 하구만요.

- 너바나나, http://www.nirvanana.com/316 중에서
나도 처음에는 저게 뭔가? 이랬다. 요리법 대신에 '레시피'를 쓰는 유일한 이유는 그게 단순히 '폼나는' 외래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워낙에 영어라면 깜빡 죽는 나라이기도 하고... 솔직히 영어가 우리말을 어지럽히는 정도가 심하면 심했지, 일본어식 표현이나 일본어 어원을 갖는 표현이 우리말을 어지럽히는 건 적어도 현재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약과' 수준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게다가 영어는 오히려 쓰면 쓸수록 '폼난다'는 이상한 심리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실정이다. 도무지 뭐가 폼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독고다이'는 당연히 외래어로 인정되지 않는 말이다. 그럼 레시피는 어떨까? 궁금해서 한번 찾아봤다.

레시피 [recipe] 신어
[명사]음식을 만드는 방법. (네이버 국어사전)

7. 어떤 댓글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일본말이 한국말에 잔재만 남아있는건 아닙니다. 무작정 한쪽으로만 간다고 생각하는건 전근대적인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말이 일본어화된 것도 상당히 많고 일본말이 우리말화된 것이 물론 더 많겠지만요. [..중략..]문화가 서로 교류하듯이 언어도 서로 교류합니다. 그 일례는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시면 잘 알수 있습니다. 문화가 교류하는한 언어 또한 문화의 영향을 받는건 당연한 것입니다. 원래 일본어에서는 군이라는 말이 없었다고 하죠. 지금은 통칭으로 많이 사용하는걸로 아는데 이건 한국어에서 넘어간 일본어입니다. 한자발음이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인 경우도 상당히 많다는 걸 아실줄로 압니다.
- 그냥 적어봅니다 (임시필명), http://dangunee.com/132115 댓글 중에서 

위 당그니 글에 있는 댓글인데 인상적이다. 당그니 글도 물론 좋은 글이지만, 위 댓글도 음미할만하지 않나 싶다.
기본적으로 나는 이 댓글 입장에 가깝다. 물론 우리말 발굴작업 많이 많이 해서 쉽고, 아름다운, 그런데 잊혀진 우리말 많이 많이 찾아내고, 또 많이 많이 쓰면 좋겠다.


추.
언론계에서 사용한다는 일본말 은어들은 정말 사라지기를 바란다.
우리말을 가다듬고 발전시켜야 하는 대표적인 직업을 가진 이들이 이런 말을 쓰는 건 정말 심각한 자기 모순이다.
[온라인연재] [언론계 은어]
(1) 사쓰마와리(察廻)[미디어 오늘] 2000-01-11 
(2) 나와바리(繩張)[미디어 오늘] 2000-01-18
(3) 하리꼬미[미디어 오늘] 2000-01-21
(4) 도꾸다니(特種)[미디어 오늘] 2000-01-31
(5) `도꾸누끼`(落種)[미디어 오늘] 2000-02-14
(6) 반까이(挽回)[미디어 오늘] 2000-02-21
(7) 쪼찡(提燈)[미디어 오늘] 2000-02-28
(8) 당꼬(談合)[미디어 오늘] 2000-03-13
(9) 야마(山)-1[미디어 오늘] 2000-03-27
(10) ´야마´(山)-2[미디어 오늘] 2000-04-03
(11) ´우라까이´[미디어 오늘] 2000-04-10
(13) ´게찌(kechi)´[미디어 오늘] 2000-05-01
(16) 모찌[미디어 오늘] 2000-06-12

via
http://dangunee.com/132115. 링크 재인용, 재배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