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 동안 강호순 관련 사설들.  

[조선] 반(反)사회적 범죄자 얼굴 공개하는 게 옳다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01/2009020100791.html


[중앙] ‘흉악범 유전자은행’ 도입하자 [☆]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478678&cloc=rss|news|column

[동아] 경찰 ‘부실 수사’가 연쇄 살인 키우지 않았나 [☆]
http://www.donga.com/fbin/output?rss=1&n=200901310020

[한겨레] 연쇄살인 공포, 예방 대책이 절실하다 [★★☆]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336013.html

[경향]연쇄살인마들이 불거져 나오는 사회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310006095&code=990101

[한국] 피의자 얼굴 공개 포퓰리즘 경계를 [★★★★]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902/h2009020302274076070.htm


1. 확실히 조중동의 사설은  '자극적'이다.
이와 비교한다면, 한경한의 관련 사설들은 점잖다 못해 심심하다.

2. 한겨레와 경향의 관련 사설은 사건 초기 사설인데, 뭐랄까, 너무 심심하다.
같은 메시지라도 좀더 그 형식(수사)를 신경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3. 조선일보는 가장 뻔뻔하다.
조선일보의 '알 권리' 존중 덕분으로 많은 독자들이 자사의 '조선닷컴'을 찾았다고 사설에서 자랑질이다. 참 잘났다. 그 근엄하신 신문사에서도 이제 '미끼질'을 자랑하는 시대가 도래했도다.

4. 뚝심의 동아일보

이런 흉악범의 얼굴을 끝까지 가려주는 경찰청 훈령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전까지는 모자와 마스크를 씌워 얼굴을 완전히 가려주다 이번에는 마스크를 벗겼지만 얼굴을 못 알아보기는 마찬가지다.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하면 제보가 이어져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사건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그의 초상권(肖像權)이 흉악범으로부터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고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이게 동아일보의 입장인데, 이런 입장은 지난 2008년 10월 23일자 사설에서 이미 노골적으로 표명된 바 있다(방화살해범 정상진 사건). 

[동아] 反인륜 범죄자 ‘마스크와 모자’ 벗겨야 (2008-10-23)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10230102

MB와의 밀월이 갖는 그 구조적인 권력과의 담합관계나 벗겨냈으면 좋겠다.


5. 중앙일보는 뭔지 모르겠다.
자신의 입으로 "물론 유전자 정보는 유출되거나 악용될 경우 심각한 부작용과 인권침해를 부를 수 있다. 특정 유전자를 가졌다는 이유로 건강보험에서 차별받거나 회사가 고용을 기피하는 사례를 외국 일로만 치부할 것도 아니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내무부와 경찰이 축적한 DNA 데이터베이스의 4분의 1가량이 무고한 시민으로 드러나 큰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라고 그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중략) 법안 도입을 언제까지나  미룰 일"은 아니란다. 도무지 우리나라의 '정보 관리' 체계를 너무 무책임하게 신뢰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옥션이며, 다음이며, KT까지 뻥뻥 뚫리는 판국이다. 게다가 무슨 대단한 인권의식을 갖고 있는 문화적 토양이 마련된 나라라고 이런 경솔한 주장을 하는건지 모를 지경이다. 수구신문들이 지적하는 것 가운데 일말의 진실이 담겨진 게 하나 있다. 인터넷에서의 빈번히 행해지는 마녀사냥과 과도한 포퓰리즘이 그것이다. 개똥녀가 그 대표적인 사건이다. 개똥녀를 '개똥녀'라는 의미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별론으로, 그 개똥녀 얼굴을 인터넷 천지사방에 '효수'해서 잔인하게 부관참시하는 행태가 개똥녀 보다 하등 나아 보이지 않는다.

6. 한국일보의 오늘자(2월3일자) 사설은 그 중 돋보인다.
물론 식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강호순 얼굴 공개 사건의 이모저모를 균형잡힌 상식의 언어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아래와 같은 지적은 담담하지만, 귀담아 들어야 하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조선과 중앙과 동아에서는 이런 '자극적인 이슈'에 대해선 전적으로 '대한민국 국민 쵝오'를 외치는, 그런 싸구려들이다. 거기에 동참하는 독자들, 시민들... 그 심리는 '싸구려'가 맞다.
일본과 미국 등의 언론이 얼굴을 공개하고 있다지만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다. 피의자의 가족과 친지 등에까지 적개심이 발산되지 않는 문화, 피해를 제대로 보상 받을 수 있는 법과 제도 등 그들 나름의 사회적 합의가 깔려 있다.


7. 언론이 정말 벗겨내야 하는 것.
대한민국 언론이 정말 벗겨내야 하는 건 가장 먼저 자신들의 저열한 상술과 천박한 당파적 편향이다.
지금 연쇄살인마의 '모자'나 '마스크'를 벗겨내는 일이 중요한 게 전혀 아니다.

미네르바 사건의 아리까리한 진실게임으로 장사하려는 그 천박한 상술을 먼저 벗겨라.
MB 언론 악법이 초래할 표현의 자유 위축, 그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미래상을 벗겨라.
그리고 용산 참사가 갖는 기만적인 대한민국 모순 구조를 벗겨라.

이것들을 먼저 벗겨내고, 그 뒤에  '연쇄 살인마' 모자 벗기고, 마스크 벗겨서 장사하든지 말든지...


* 관련 추천
강씨 사진 공개로 공익신문된 조선·중앙 (미디어스 블로그)



블로그래픽 제4차 공개회의입니다.
회의는 대외비로 할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공개를 원칙으로 합니다(2009년 1월 1일 부터.)
블로거라면(독자도 물론이구요) 누구나 회의에 참여할 수 있고, 그래주시면 오히려 고맙겠습니다. : )
원래는 1월 단위로 동인들이 돌아가면서 회의를 주재해야 하는 것인데요, 당분간은 사정이 그럴 것 같지 않아서 2월도 제가 회의를 주재하는 것으로 할까 합니다.


[온라인 공개 회의 절차 안내]

1주 1회 원칙이고요.
앞으론 가급적 일요일 혹은 월요일을 공개 회의안 작성일로 정할까 합니다.
(원래 어제 올렸어야 하는건데, 오늘도 하루 늦어졌네요.... 지송.... )
회의 기간은 그 해당 일주일 단위인 셈이죠. 각 회의 단위 기한 내에 의미있는 업뎃이 있으면 따로 글을 쓰지는 않고, 해당 글을 그 때 그 때 재등록할까 싶습니다.   


[지난 주 쓴 글]

없습니다...ㅡ..ㅡ;;;;;


[함께 쓸거리]

0. 각 동인들께선 언제든지 자유롭게 각 카테고리에 글을 올릴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1. 2008년 블로그계 10대 사건(마감)

2. 언론 7대 악법 검토 (미정)
이건 ㄱ. 여야 타협 ㄴ. 파업 잠정 중단 ㄷ. 미네르바 돌발 변수로 인해 2월까지는 소강상태일 것 같습니다.
마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구요.

3. 미네르바 (미정)
미네르바 사태는 그 중요성과 대중적인 관심도에 있어서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이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해선 저는 제 블로그에 연재를 쓰고 있는데요.
정리되면 글 하나로 묶어 블로그래픽에 올릴까 싶습니다.

4. 용산 참사 (미정)
사후 방지책, 즉 제도적 보완에 관한 글들을 쓰면 좋겠습니다.
가장 장기적으론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역시나 좀 심심한 영역이라서 논의가 다소 미진한 것 같습니다.

5. 강호순 얼굴 공개 과연 알 권리인가? (미정)
조선, 중앙을 필두로 얼굴 공개 바람이 불어오고 있더만요.
한겨레, 경향, 한국은 비공개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외부 칼럼이긴 합니다만(김창룡), 미디어오늘 쪽에서 조선와 중앙의 얼굴 공개를 무슨 "용기"있는 행위인 양 평가한다는 점입니다.



[제안]

1. 온라인 컨퍼런스 준비 위원회 구성 (매우 중요) : 계속


온라인 컨퍼런스를 준비하고 운영할 위원회를 구성하면 좋겠습니다.
주제는 미정입니다만, 기존에 논의했던 주요 주제들 가운데 하나를 선정하는 것도 좋겠고요.
의견이 있다면, 그러길 몹시 바랍니다, 다시 협의를 통해 주제를 선정해도 좋겠지요.

논의 주제 예시.
- 블로그 콘텐츠의 유통 구조 (포털, 메타블로그, 특히 다음블로거뉴스와의 상관관계 속에서)  
- 블로그의 미디어적 가능성 및 영향력
- 블로기즘과 저널리즘의 관계 설정 ... 이상 기존 제안


온라인 컨퍼런스 준비위원회는 최소 2월 중 구성하고, 실질적인 온라인 컨퍼런스는 3월이나 4월, 늦어도 5월중에는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는 구체적인 회의를 통해 결정해가야겠지요.

온라인 컨퍼런스 기간은 일회성의 '행사'가 아닌 실질적인 회의가 될 수 있도록 최소 보름 이상으로 할까 합니다. 회의는 각 발제자가 단계적으로 전체주제를 조율할 수 있는 글을 발표하고, 토론 지정 패널는 여기에 의무적으로 논의에 참여하며, 자유 참여 패널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2. 블로그래픽 카테고리 재조정 제안

블로그래픽 카테고리는 현재 그 실효를 거두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특히 **님,  **님 등과 온라인 회의(스카이프)를 통해 협의한 바, 새로운 카테고리는 '책임 카테고리' 제를 제안하고 싶습니다(물론 초기 논의에서 나왔던 의견 중 하나입니다).
즉, 동인 일인당 하나씩 카테고리를 책임지고, '책임연재'를 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기존 블로그와의 교통정리 차원에서 기존 자신의 쓰던 카테고리의 하나는 '포기'(!)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새로운 동인

신규 동인을 수혈할 필요성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
사안은 대외비를 원칙으로 하는 만큼 포럼에서 의견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님과 **님 등과는 온라인 회의(스카이프)를 통해 협의했습니다.
이는 신중하게, 하지만 게으름 피우지 않고 진행해볼까 싶습니다.


[알림]

1. 다음세대재단 문의에 대한 회신에 대한 답신 
세대재단측으로부터 넉넉한 양해를 표한다는 고맙고, 반가운 회신이 왔습니다.
동인들께서는 블로그래픽 포럼 ( http://blographic.net/forum )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2. 펄님 출산, 득녀를 축하드립니다. : )
펄님은 출산 때문에 앞으로 당분간은 참여가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 블로그래픽 홧팅!
http://blographic.net 

* 제발 의견 좀 주십시용!!! ㅡ..ㅡ;;;


강호순 사건, 연쇄살인마와 카사노바

2009/02/02 13:47

강호순 사건, 두 번째 글.

0. 이슈 유통의 제로섬(zero-sum) 현상 : 식상한 이야기

늘 반복되는 소리지만 간단히 하고 넘어가자.
이슈 유통의 제로섬 현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강호순 이슈는 그 이슈가 갖는 실질적인 중요성 보다 훨씬 더 소모적인 방식으로 다른 이슈(MB 악법 이슈, 미네르바 이슈, 용산 참사 이슈)를 잡아 먹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선과 중앙의 얼굴공개'는 수구적 담론권력으로서의 전략적 고려가 강하게 개입되었으리라 추정한다. 이들의 선정적인 도발에 편승해 독자 알 권리 운운하는 건, 뭐랄까, 알면서 그러는 건지, 모르면서 그러는 건지... 너무 순진하다.

언제부터 공익과 국민의 알 권리에 그토록 민감했던 신문사였나?
조중(동)은 이런 '선정적인 흥미 요소'에 대해서는 어떤 신문들보다 '용감한 신문'으로 둔갑한다. 거기에 자신들이 '지워야 하는 이슈'(MB악법, 용산참사 등등)이 있으면, 타이밍도 참 절묘하지, 아주 올인한다. 이들은 언론사라기 보다는 일종의 정치 파파라치다. 독자들이 정말 고민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그 본질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봉사하지 않고, 독자들의 '세속적 호기심'을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 왜곡하고, 조절하기 위해서 그 정치 파파라치는 움직인다.

물론 강호순 사건 자체에도 다양한 흥미 요소, 고민 요소들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흥미 요소가 있다고 해도 저널리즘은 그 흥미 요소를 사회적인 고민이 필요한 공적 요소와 비교형량해야 한다. 내가 조선과 중앙의 '얼굴 공개'를 비판하는 이유는 이상에서 간략히 이야기한 맥락적인 고려, 관계적인 고려에 기반한다.

하지만 난감한 게 있다.
이런 선정성 매우 강한 이슈에 대한  '몰입적 감수성'(냄비근성)은 한번 불 붙으면 자기 운동적으로 확산하는 경향을 갖는다. 강박적인 심리기제가 작동한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여기에 대해 '우리 강호순에 대해 그만 떠듭시다'라는 류의 '순진한 설득'은 그다지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강호순 이슈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고민한 뒤에 가급적 빨리 놓아주는게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취할 건 취한 뒤에, 다른 공적 이슈들에 할당된 사회적인 고민를 위한 '뇌세포'를 사용하는게 좋겠다는 말이다. 혹은 강호순을 이야기하면서, 또 용산과 미네르바와 MB 악법, 좀더 거시적이고, 본질적인 차원에서는 담론권력의 정치적인 작동기제들을 더불어 문제삼을 수 있다면 좋으리라.


1. 조선일보, 중앙일보의 얼굴 공개에 대해

공익을 위해서라고?
알 권리를 충족하기 위해서라고?
삼성 X파일 같은 사건, 삼성 비자금 사건 같은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사건에 대한 알권리나 제발 좀 충족시켜주시지?  

공익이나 알 권리나 모두 꽃 같은 소리다. 정치적인 담론권력으로의 전략적인 고려가 없었다면 어느 정도 긍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고려 없이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장사 잘한다"는 류의 인식에 대해선, 글쎄, 꽃 같은 건 꽃 같다고 얘기해야지, 무슨 거기에 장사 잘한다는 소리를 하는건지, 그게 무슨 저널리즘의 의무라고 이야기하는건지 모르겠다. 독자의 변덕스럽고, 별로 존중하고 싶지도 않은 요구에 잘 적응한다고 상찬하는지 나로선 알 길 없는 거다. 지들이 '비판할 때는 '냄비근성'이고, 지들이 장사하기 위해선 그 냄비근성도 '알권리'로 둔갑한다.

독자들의 파괴적이고, 세속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일이 저널리즘의 사명이라면 잘하는 일 맞다.
그런데 혼자서 근엄한 척 다하고, 별별 사회적인 고민은 혼자 다하는 것 처럼 설레발치고,  국가의 앞날을 혼자서 짊어지고 나갈 것처럼 호들갑 떠는 우리나라 소위 '일등' 신문, '이등' 신문이 이런 짓거리를 한다. 언론의 공공성이라는 그 최소한의 기준으로 볼 때 "용기있는 도전으로 한국사회에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노력의 일환"(미디오늘 김창룡 칼럼)이라고는 도저히 못 봐주겠다(김창룡은 도무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거지같은 칼럼을 쓰는건지 모르겠다).

강호순 신상공개, 세가지 전제조건 (2009년 01월 31일 (토) )
[김창룡의 미디어창] 연쇄살인범 신상공개 논란에 대해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862
짧게 부연하자면 김창룡 칼럼에 있는 논리적 모순은 정말 심하다. 특히 개별 사안의 구체성에 대한 고려가 없이 논거들을 무분별하게 대입하는 모습들에선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굳이 그 처참한 논리적 오류들을 확인하려면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무슨 공익? 무슨 놈의 용기있는 도전?
수구 담론권력의 선정주의적 도발일 뿐이다.
이를 합리화하려는 꽃 같은 논리들이 지랄같이 피어나지만, 꽃 같은 건 꽃 같은 거고, 지랄은 지랄일 뿐이다. 

이에 대해선 더 떠들어봐야 입 아프다.
사안의 여러 논점들을 잘 정리한 새드개그맨과 행인을 참조하기 바란다.

강호순의 얼굴(1) : http://sadgagman.tistory.com/85 :
강호순의 얼굴(2) : http://sadgagman.tistory.com/86 : 특히 강추(후반부).
그놈 얼굴 : http://blog.jinbo.net/hi/?pid=1131
사자성어 : http://blog.jinbo.net/hi/?pid=1132


2. 강호순 사건과 남인수 사건 : 연쇄살인마와 카사노바

카사노바 남인수 사건이라는게 있다.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은 사건 개요를 얻을 수 있다.

1년간 70여명의 미혼 여성을 농락한 혐의로 기소됐던 박인수(당시 26세)가 혼인빙자 간음죄에 대해 무죄.

1955년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라는 희대의 명판결문에 의해 면죄부를 받은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은 남성적 시각에서 바라본 정조 개념..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情操)만을 보호할 수 있는 것...."
- 재판장 권순영, 선고 중에서

웬 뜬금없는 남인수?
김창룡 칼럼의 마지막 구절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남의 인권을 유린하고 이를 인정한 범인들에게까지 인권의 이름으로 신원을 공개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일종의 사치에 불과하다. 법은 보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권리만을 보호해야 한다."

그 구절 때문에 남인수 사건이 연상됐다.
남인수 사건 선고문에서 권순영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일부 극우 논객들에 의해 '법은 지킬 가치 있는 표현의 자유만을 지킨다'는 엉뚱한 주장의 논거로 사용되고 있더라. 그러니 사이버 모욕죄나 MB 언론악법을 찬성하는 논거로 둔갑해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법은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권리만 보호해야 한다는 김창룡의 주장과 남인수 사건에서 권순영이 이야기한 '법은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게 한 당대의 사회적인 인식과 어떤 담론권력 혹은 제도권력이 작동하는 '구조적 관점'은 몹시 유사하다.

참조. 남인수 사건의 무죄 배경.
물론 사안의 구체성에서 강호순 사건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남인수 사건은 당시의 사회적인 인식 - 권력 작동(최후적 권력 장치인 법제도)구조에서 결론적으론 합리적인 판단을 이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논거로 그 당대의 인식, 즉 봉건적인 가부장의 인식이 사용되었다.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관점으로 볼 때 남인수의 무죄는 타당하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 근거는 남인수와 관계한 여성들이 법에 의해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여성라고 봤을 뿐이다(즉, 범죄의 객체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물론 혼빙간에 대해선 비범죄화가 맞다.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의 자유를 부정하는 봉건적인 입법의 잔재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물론 '정조'와 '인권'을 동일 평면에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다만 '인권'이건, '정조'건 간에 그 당대의 지배적인 인식('상식' 혹은 '관습', '법제도')의 한 유형이다.
그러니 인권 역시도 역사적으로 '발명된 개념'이다.
노예에게 인권이 있었나? 
하나의 물건, 주인의 재산일 뿐이지 무슨 인권?

인권의 개념요소로서의 보편성,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인권이 있다(천부인권)는 그 인식은 생겨난지 얼마 되지 않은 거다. 양반이나 지주나 귀족에게만 있었던게 인권이다. 왜냐하면 그들만 사람이었으니까. 역사 시간에 배우지 않았나? 그러니 '인권'은 하나의 역사적인, 사회적인 인식일 뿐이다. 그것은 생성, 발전, 그리고 소멸할 수도 있는 역사적인 어떤 것이다. 위 남인수 사건의 '정조'개념이 점차로 사라져가는 하나의 관념, 그 관념에 엉킨 관습과 제도의 총체인 것처럼 그런 것일 뿐이다. 

인권은 인간이라는 가치를 지탱시키는 궁극의 가치, 포기할 수 없는 어떤 것인 것처럼 '이제서야'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적어도 대외적으로, 교과서적으론 그렇게 떠든다.
그 고생 고생을 거쳐 여기까지 온거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대한민국에 과연 인권이란 어떻게 대접받고 있나?
용산 참사에서 그 떨거지들에게 인권이 있었나?
미네르바 사건에서 국가공권력이 발동하는 방식은 어떤가?
거기에 인권이라는 요소가 눈꼽만큼이나 있었던가?

아가리 권력과 정치권력과 담합한다.
그 위에서 돈지랄 권력이 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이런 대한민국판에서 인권은 무슨 인권?

그저 아가리 권력들이 현실을 가리는 환상기제로 사용하는 '표피적인 인권'이 있을 뿐이고, 강호순 같은 '명백한 공적'이 등장하면, 그 만만한 놈을 재물삼아 인권 그 자체에 대한 '반동'적인 시도들이 자행된다. 미국이니, 일본이니, 프랑스니 하는 아리까리한 수사를 동원해서 말이다.

대한민국 '인권' 개념이 5, 60년대 '정조' 개념보다 뭐 그리 나아졌나?
그 양자간 인식적 성숙도는 얼마나 서로 다른가?
우리는 얼마나 진지하게 인권에 대해 고민했고, 또 그 인권이라는 인식을 고양시켰나?
뭐, 정조 관념 논하는 수준이나 조선과 중앙에 편승하는 수준이나 방구나 뽕이나인 것 같다.

그러니 '저 쳐죽일 놈'이라고 분노하는 그 당연한 감정이 과연 그 감정을 만들어낸 '인간애' 와 '휴머니즘'에 얼마나 가까운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극도로 정치화하고, 상업화한 이기적인 언론집단의 감언이설이 당신의 인권과 알 권리에 얼마나 보탬을 줄 수 있는지 정말 냉정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권력의 야만이 작동하는 기제로서 '지식'은 그 당대의 관습과 인식에 개입하여 그것을 '조종'한다.
주로 그것을 담당하는 기구는 거대 담론집단, 강호순 사건을 통해 본다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다.
그들은 '알 권리'와 (당신들의 인권)을 위해 복무할 생각 전혀 없다.
권력과 담합하거나, 스스로의 권력을 확대재생산하기 위해 복무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모르겠나?

하지만 그들은 당신의 그 알량한 세속적 호기심에 불과한 '알 권리'를 위해 복무하겠노라고, 아리까리한 논리의 떡칠을 한 이런 저런 꽃 같은 근거을 앞세우고, 다 함께 저 '살인마'를 쳐부수자고 당신의 '극도로 분노한 감정'을 선동한다(전두환이라는 희대의 살인마에게는 역사와의 화해, 김대중 잘한다고 상찬했던 바로 그 신문사들이다!! 제발 좀 기억하자).
당신은 기꺼이 편승한다.
그건 우리의 알 권리이자, 사회적인 정의라고 굳게 믿는다.

참 쌍으로 화기애매하게 놀고들 있다.



* 관련글
강호순 사건, 중앙일보은 "유권해석"의 근거를 당장 제시하라.


* 관련 추천 포스트
강호순의 얼굴(1) :  : 강추.
강호순의 얼굴(2) :  : 특히 미디어오늘의 김창룡 칼럼 부분과 후반부 강추
그놈 얼굴
사자성어 
흉악범죄자 얼굴 공개 떡밥



* 이 글은 예외적으로 정체불명의 유사 저널리즘 유통매체에 송고합니다.


이슈유통의 시의성을 고려해서 일단 짧게 쓴다.


중앙일보, 공익 위해 연쇄살인범 강호순 이름·얼굴 공개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3475906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법적 논리와 국민의 법감정 사이의 간극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좁힌 뒤 공개하는 것이 옳다”(황용석 건국대 신방과 교수)는 의견도 많았다. 흉악범의 얼굴이 공개됨으로써 ▶사회적 응징에 의한 범죄 예방 효과 ▶공분의 해소 ▶추가 범죄에 대한 제보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본지는 이 같은 찬반론과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 끝에 강호순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키로 했다. 강이 범행을 자백하고, 증거도 명백해 공익을 위해서라도 실명 및 얼굴 공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번 사건처럼 사회적 파장이 클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을 축소 해석할 수 있다는 법원의 유권해석도 받았다. 본지는 앞으로도 정치인, 고위 공직자 등 공인과 함께 증거가 명백한 연쇄살인범에 대해선 실명과 사진을 공개키로 했다.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독자들의 제보를 활용해 경찰의 추가 수사를 도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김승현 기자 (2009.01.31 01:52 입력 / 2009.01.31 02:50 수정)


* 나와 같은 소박한 독자를 위해 '유권해석' 부분 사전적 정의 인용.
유권해석 [有權解釋, authentic interpretation]
국가기관에 의해 행하여지는 구속력 있는 법의 해석. 공권적 해석(公權的解釋) 또는 강제적 해석이라고도 한다. 학리해석(學理解釋), 즉 문리해석(文理解釋) ·논리해석에 대응된다. 해석하는 기관에 따라 입법해석·행정해석·사법해석으로 구분되나, 협의로는 입법해석에 국한된다. (중략) 사법해석 : 법원, 특히 대법원에 의해 행하여지는 해석으로 이는 최종적인 구속력을 가진다.



나는 너희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알 권리 차원에서 묻는다.

일단 법원이 정말 '무죄추정의 원칙' 제한 조건을 설시한 판례가 있는지 검색해봤지만 찾아지지 않는다.
이건 정말 금시초문이라서, 중앙일보 주장대로 정말 그런 '유권해석'이 있다면, 이는 중앙일보가 반드시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는 강호순 얼굴 공개로 이상 과열된 중앙과 조선의 의도적인 선정주의에 의해 어지러운 판국에, 그 관련 이슈들 가운데에서도 정말 중요한 논점들 중 하나다. 이는 형법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엄청난, 정말 울트라 메가 쇼킹한 주장인거다.

형법의 제왕적 원칙이 '피의자 얼굴 언론 공개'라는, 당장은 언론사의 이익은 말고는 그 이익을 발견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 언론사가 얼굴 공개하는 이유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법원의 유권해석을 얻었다구?
좋다.
'법원의 유권해석' 그 정체를 알고 싶다.
이게 너희들이 그토록 떠벌리는 '알 권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앙일보는 "법원의 유권해석" 근거를 당장 공개하라.




* 이 글은 강호순 사건, 연쇄살인마와 카사노바 로 이어집니다.


* 관련 추천
강호순의 얼굴(1) (새드개그맨) 강추.
그래, 그래서 그랬단 말이지? (비틀)
강씨 사진 공개로 공익신문된 조선·중앙 (미디어스 블로그)


* 이 글은 예외적으로 정체불명의 유사 저널리즘 유통매체에 송고합니다.

앞으로 시의성에서 좀 자유로운 동일 주제의 확장, 혹은 변주(이 조건에서 벗어나는, 즉 시의성을  강하게 고려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오히려 꽤 잡스런 단상을 휘갈리는 포스팅이 잦아질 것 같기도 하다)에 대해선 가급적 이왕에 썼던 글을 재발행하는 방식으로 업데이트할까 싶다. 지금 생각으로는 그렇다는 거고, 또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생각나는 이유들(및 재발행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기억.
이전에 내게 머물렀던 생각들을 다시 살펴보고, 내가 얼마나 나아갔는지, 혹은 물러섰는지, 그리고 나와 나를 둘러싼 풍경들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의미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를 설레게 한,  혹은 나를 분노하게 만든, 또는 나에게 따뜻하게 머물렀던 그 모든 기억들은 나에게조차 너무 쉽게 잊혀진다. 기억을 좀더 오래 붙잡고 싶다. 그게 그저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기억은 대상적으로 사물화한 '과거'라기 보다는, 본질적인 '현재'를 가능하게 하는 관계의 고리들이다.

2. 처녀
소설이든, 시집이든 처녀작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들을 흔히 한다. 새 글이라고 하더라도 기존에 했던 생각들, 표현들의 지루한 반복이거나, 재탕인 경우가 잦다. 그런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보다는 이왕에 썼던 글에 부족하더라도 좀더 다른, 새로운 사유의 풍경을 보태는 편이 현명하겠다는 생각이다.

3. 죽음
블로그 포스트의 생명력은 '시의성'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가치에 의해 너무 쉽게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그 경향은 점차로 강화되고 있다고 느낀다.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러니 시의성의 한계를 견디는 주제들에 대해서는 좀더 긴 생명력을 갖는 글로 다듬고 싶다.

4. 한 줄 혹은 천 줄
재발행 원칙은 물론 새롭게 쓰여지는 부분이 하나의 글로서 온전하게 완결성을 갖는가라는 그 기준이다. 그러니 새롭게 쓰여지는 부분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글이어야 한다. 그 물리적인 부피는 한 줄일수도 있고, 천 줄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 '글 하나로서의 완결성'이라는 기준은 매우 자의적인데, 아마도 한 줄을 더해서 재발행하는 일은, 한 줄이 나조차 놀랄만큼 영감과 자극을 주는 '한 소식'이 아닌 한은 없을 것 같다. 물론 나는 단 한 줄을 더하는 재발행을 하고 싶을테지만.

5. 역사
글이 자라가는 과정은 글 서두에 표시하고, 이왕에 글을 읽었던 독자들이 시간 낭비 하는 일이 없도록 편집에 신경을 쓸까 한다.

6. 추고
이 과정에서 지난 글에 대한 추고도 동시에 병행한다.  다만 최소한 댓글이나 외부의 트랙백, 피인용 링크로 거론된 표현이나 주장, 입장을 수정하는 경우에는 그 수정 과정을 반드시 표시(취소줄 따위로)하도록 한다. 특히 의미있는 댓글에 대해서는 그 댓글을 통해 이뤄진 대화들을 최대한 본문에 수용하도록 한다.

7. 기대 
기존 글들도 꽤나 길다는 불만을 듣고 있는 터라서 이런 글쓰기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자신을 배려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독자를 배려해야 하는 블로거로서 쉬운 결정만은 아니었는데, 다만 너무 너무 빠른 속도로 이슈들이 서로를 잡아 먹는 이 살벌한 '의미 폭주' '의미 과잉'의 속도전 시대(푸른 지붕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누구를 위해 기도하는지는 알 길 없는, 어떤 사람이 떠오른다)에 이런 시도들이 블로그계 한 구석에서나마 공감과 동의, 그리고 또 다른 실천을 얻기를 기대한다.



이 방식을 처음 적용하는 글은 가즈랑이 쓴 글에 대한 단상이다. 으로 하려고 했는데... 미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