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IP 블루스 : 전기통신사업법 54조 문제
more..
0) IP 주소
IP 주소(Internet Protocol address, 표준어: 인터넷규약주소) 1) 인기협, 전기통신사업법 54조를 따지다.
별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한 지엽적인 논점이다. 미네르바 음모론(가짜/진짜 관련)을 제외하고 뭐 하나 진지한 관심을 못받는 판국이긴 하다. 이 논점이 주목받지 못하는 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워낙에 스피커(담론권력이라는 차원에서)가 작기도 하고. 인터넷기자협회(이하 인기협)는 좀 작은 군소 온라인 언론사들 단체다(몇몇 언론사 빼곤 나도 거의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
http://home.kija.org/intro5.html 암튼 인기협은 미디어다음이 미네르바의 IP 주소를 검찰에 제공했다고 비판한다. 이 관점은, 업계 vs. 권력기관이라는 현실적 권력관계를 보건데 지나치게 엄격한 관점이긴 하지만 한번은 생각해볼만한 관점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검찰은 (특히) IP 주소를 주요한 근거로 미네르바가 바로 '그 미네르바'라고 밝힌 바 있다.
2) 전기통신사업법 54조의 성격
: 예시 조항으로 볼 것인가? (한정적) 열거 조항으로 볼 것인가?
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 (통신비밀의 보호)
③ 전기통신사업자는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군 수사기관의 장, 국세청장 및 지방국세청장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 정보수사기관의 장으로부터 재판, 수사( 「조세범처벌법」 제11조의2제1항, 제4항 및 제5항의 범죄 중 전화, 인터넷 등을 이용한 범칙사건의 조사를 포함한다),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하여 다음 각호의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이하 "통신자료제공"이라 한다)을 요청받은 때에 이에 응할 수 있다. [개정 2002.12.26, 2007.1.3]
1. 이용자의 성명
2. 이용자의 주민등록번호
3. 이용자의 주소
4. 이용자의 전화번호
5. 아이디(컴퓨터시스템이나 통신망의 정당한 이용자를 식별하기 위한 이용자 식별부호를 말한다)
6. 이용자의 가입 또는 해지 일자
제69조 (벌칙)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4. 제54조제3항의 규정에 위반하여 통신자료제공을 한 자 및 그 제공을 받은 자
ㄱ. 예시조항으로 보면.
위 전기통신사업법 54조 각 호를 예시 조항으로 본다면, IP주소는 성명이나 주민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나 가입 혹은 해지일자와 같은 류의 정보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 된다. 따라서 검찰이 IP 정보 제공을 요청한 것고, 미디어다음이 이를 제공한 것도, 적어도 이 법률 조항에 따른다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ㄴ. 한정적 열거 조항으로 보면,
하지만 이 조항을 한정적인 열거 조항으로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검찰은 IP제공을 다음에 요청할 수도 없고, 미디어다음은 이를 제공해서도 안된다.
형법적 성격을 갖는 법률조항들(광의의 형법)은 매우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국가공권력이 자유로운 한 개인의 재산을 빼앗거나(벌금),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거나(징역), 심지어는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사형) 사회적인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 상식적인 바탕에서 위 조항은 한정적인 열거 조항으로 해석해야 마땅하고, 그렇다면 같은 법의 69조 벌칙 조항에 따라 미디어다음과 검찰은 어떤 법률적인 근거도 없는 불법을 저지른 셈이 된다.
이것이 인기협에서 문제제기하는 근거이다.
참조.
"포털 다음, 미네르바 신상정보 불법유출 의혹 해명해야"
인터넷기자협회 "전기통신법상 자료제출요청 대상 아닌 IP주소 확보? 해명 없으면 고발" (미디어오늘, 조현호)
http://www.mediatoday.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762733) 김새는 이야기
그런데 결정적으로 김새는 이야기.
IP라는 웹 식별표시는 그 정보 가치가 그다지 높게 인식되지 못한다. 이게 얼마나 '보호되어야 하는 정보'인지에 대한 감수성 자체가 정립되지 못한 채로 남겨 있달까? 나조차도 IP 주소라는 정보가 얼마나 보호되어야 하고, 보호되어야 마땅한 정보인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IP 주소는 (몇몇) 블로그에서도 운영자에게 제공되고 있는 정보다(댓글이나 트랙백을 남긴 방문자의 IP). 그 만큼 노출 가능성도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인터넷상에선 대놓고 방문자 아이피 주소를 확인해주는 서비스를 하는 사이트도 있다.
참조.
4) IP 세탁이 유행한다는 어떤 쓸쓸한 기사
"꼭꼭 숨어라 IP 보일라!"…'미네르바 구속' 후폭풍 (데일리노컷, 지봉철)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035659
검찰이 인터넷주소(IP)추적을 통해 미네르바를 체포했다고 발표하자 자신의
아이피(IP)를 숨기는 이른바 'IP세탁'이 네티즌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대표적인 IP세탁 방법으로는 '프록시 서버를 통한 우회접속', '가상 사설망(VPN)을 이용한 IP변경', '터널링 서비스', '해외 IP세탁 사이트를 통한 접속' 등이 있다.
하지만 'IP세탁'이 완벽하게 익명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현행 통신법상 검찰이 수사상 필요하다며 IP정보 등을 요구하면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는 영장 없이도 관련정보를 제출할 수밖에 없다. 즉 다음, 네이버 등 글을 쓴 인터넷 사이트에 처음부터 자신의 실명으로 회원가입을 했다면, 'IP세탁'을 통해 글을 쓰더라도 최소한 글쓴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있게 된다.
이번에 검찰도 다음에서 제공한 아이디(ID)와 주거지 등 기본적인 정보와 함께 글을 쓸 때 남겨지는 IP를 대조해
'진짜' 미네르바를 찾아냈다.
- 위 기사 중 발췌
위축된 네티즌 심리를 적절히 지적하고 있는 기사라는 생각이 든다. 미네르바 구속 사건이 내포하는 심리적 폭압성, 그 파장은 아마도 즉각적으론 이런 것이리라. 겁주기다. 공권력의 야만에 다름 아니다. 비교적 괜찮은 관점으로 쓰여진 위 기사에 대해 짧게 첨언하자면, 기사는 IP 주소가 검찰 수사 필요상 당연히 '관련법에 의거'해서 제공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그 '관련법'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적어도 위 '전기통신사업법' 54조를 한정적 열거 조항으로 해석한다면, 전기통신사업법은 위 '관련법'이 될 수 없다.
4. 미네르바 진짜 가짜 논란 : 가설들
1) 가설들
ㄱ. 가짜설 (조작설) : 열혈 미네르바 지자들의 경향(아고라), 블로그.
ㄴ. 진짜설 (검찰 입장) : 조중동.
ㄷ. 막내설 : 미네르바팀의 막내라는 설. 특히
신동아 17 혹은 18일 발표 예정과 관련 주목받는 설(
기사 참조).
2) 현재 스코어 : 신동아 중대 발표 개봉박두?
어떤 기사는 송문홍 신동아 편집장과의 인터뷰를 인용하면서 미네르바가 '한 명'(박대성씨)가 아닌 여러 명이며, 구속된 송씨는 그 그룹의 막내에 해당하다는 '가설'에 힘을 싣고 있다.
3) 흥미 만빵, 영양가는....
검찰에 붙잡힌 미네르바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이건 그야말로 흥미진진이다. 이건 그야말로 대박 쇼비지니스의 세계 같다. '30대 백수' '30대 무직자'라는 세속적 틀짓기는 그 관점이 다를지언정 대다수 언론의 제목과 본문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쓰는 표현들이다. '진짜/가짜'논의가 그와 연계되는 적지 않은 파장과 의미를 넘어서, 과열 양상, 소모 양상으로 전개된 게 전적으로 언론탓이다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속물적 관점, 비생산적 논의를 부추긴 게 대한민국 언론의 천박함이라고는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이건 정말 우리나라 언론의 '저열함'을 그대로 까발긴 사건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여기에는 물론 조중동이 맹활약했다. 이 점은 미디어오늘 '아침신문 솎아보기'에서 분석한 1.9일자 일간신문들 참조하면 좋겠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249이하에서 좀더 이야기해보자.
5. 당신들의 미네르바
1) 미네르바라는 '가십'
미네르바 진위 논란는 병맛 대한민국의 뼈 속까지 파고든 학벌에 대한 봉건적 사고, 권위 순응적 사고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런 인식들이 아고라와 블로그에서 꽤나 열띤 논쟁의 형식으로, 감정적 편가르기식 싸움으로 확대된 점은 아쉽다기 보다는 절망적이다.
물론 이건 여러가지 다양한 풍경들의 일면이테다. 한 개인 안에서도 이런 저런 다양한 관점과 관심사들이 겹쳐 있는 바에야 그 중 하나가 도드라져서 과장되었다고도 본다. 다른 한편으로 '진짜/가짜 논란'은 그 자체로 자극적 흥미 요소, 세속적 호기심 요소가 너무도 강하다. 나도 검찰이 잡은 미네르바가 진짠지 가짠지, 아니면 막낸지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건 좀 지나치다.
이 이슈 때문에 미네르바 사태의 본질, 그러니 국가공권력의 야만성을 비판하는 관점이 묻히는 지경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건 아쉽다. 이건 타이밍상 MB 악법과 언론 악법 이슈에 대한 일시적 피로감
(지난 몇 주 동안 그래도 꽤나 반짝 했던 이슈였으니까, 물론 지금은 소강상태에 접어 들었지만) 때문에 '표현의 자유'니 '국가공권력의 폭압'이니 '자의적인 검찰권의 남용'이니.... 식상할 수도 있다.
옳은 주장이긴 하지만 밋밋하고, 좀 뻔한 지적과 분석들보다는 이런 '추리소설'풍 이야기들은, 마치 연예계의 가십들이 아무런 의미는 없지만 누구나 이야기하는 것처럼, 좀더 많은 노출도를 가졌으리라 추측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짜/진짜 논란은 필요이상으로 과열되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내 부족한 체험치
(지난 며칠 동안 그래도 꽤나 많은 포스트들, 기사들, 아고라의 글들을 읽었는데...)로 판단건데 좀 심하다 싶을만큼 과열이다.
2) 병맛 엘리트주의
가짜/진짜 논쟁이 갖는 위험은 이런거다. 병맛 사이비 엘리트주의는 조중동이 가장 강조하는 고전적인 틀짓기 유형 중 하나다. 너희들은 우매한 중생들이고, 너희들 먹여살리기 위해선 엘리트(지도자)가 필요하며, 그건 우리처럼 가방 끈 길고, 돈 많고, 세금 내는 건 싫어하는 폼나는 상류층이다. 이 확고한 틀과 구도에서 거의 모든 칼럼과 기사들은 쓰여진다.
그런데 조중동을 비판한다는 블로거들이 이 틀짓기의 심리적 기제들을 그대로 모방한다. 홍세화식 식상한 수사이긴 하지만, 한국사회의 최첨단(까지는 아니겠으나, 적어도 가장 활발한) 토론 문화가 발화하고 있다는 블로그와 아고라에서조차
'자기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는 만연하고, 이를 미네르바 사태가 키우고 증폭시킨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미네르바 할배는 30대 백수가 아니어야 한다!
미네르바는 럭셔리 증권맨이거나 0.1% 상위층, 혹은 저명한 (은둔) 재벌이어야 한다!
이건 논리적인 판단이나 의견이라기 보다는 종교적인 신념이다. 아니 종교적인 신념이라기 보다는 한국적 정신분열증의 쓸쓸한 예시다. 이 신념, 이 정신분열증은 다음 아고라를 '좌파 포털'이라고 인식하는 착시보다 더 어처구니 없다. 이 이율배반은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였던 마르크스에게 '당신은 개털이니 꺼져주셈!'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물론 '가짜론'을 지탱하는 이런 저런 이유들이 이런 저런 근거들이 제시된다. 백보 양보해서 박대성이 가짜라고 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검찰에 의해 긴급체포되고 구속영장 청구된 그 자체, 그 '몸통'에 대해선 비판해야 한다. 박대성이 최소한 검찰의 조작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배우'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판단한다면 그래야 한다. 그를 '메시아 미네르바'를 지키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쉽게 버릴 수 있는 '짝퉁'이라고 매도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역시도 이 야만의 시대에서 피해자이고, 우리들의 이웃이며, 우리사회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박대성 '가짜론'에만 몰입하는 이 풍경은, 크리슈나무르티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런 풍경이다. 불난 집이 있고, 불 끄러 나온 사람들 있다. 그러면 함께 불을 꺼야 한다. 그런데 저 사람 머리는 갈색이군, 저 사람은 체격에 비해 너무 물을 많이 길어왔잖아.... 이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질문해 보자.
미네르바가 주장하는게 0.1% 럭셔리맨 되자는거였나?
미네르바가 분노했던게 국가권력의 기만과 월권과 만용이었나, 아니면 30대 백수였나?
이건 미네르바를 구원한다고 하면서 미네르바 현상이 갖는 최소한의 사회적 함의, 공동체적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똥통에 처박는 짓인거다.
각설하고, 이런 구도에서는 어떤 논의도 다 뻘짓이 된다. 행위가 아니라 행위자로 평가되고, 내용이 아니라 악세사리로 판단된다. 딱 봉건적 귀족사회다. 그러니까 이런 인식들이 득세하면 21세기 인터넷강국 대한민국 수준이 딱 봉건사회라는 걸 증명하는 것일 뿐이다.
3) 조중동과 검찰, 그리고 리만 브라더스가 원하는 것.
미네르바라는 현상과 그 현상을 가져온 현실의 모순, 그 미네르바가 이야기했던 메시지(행위)가 30대 백수인가 아닌가(행위자, 행위자 조건)에 의해 파기되는 구도는 조중동이 그토록 간절히 바랬던 바로 그 구도다. 가슴 따뜻한 초일류 지휘자 강마에가 '똥.덩.어.리'들 모두 구제하지 않으면 쥐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바로 그 구도.
이게 현실이라구?
이건 냉정한 현실인식이 아니라 현실 순응이고, 현실 추종이고, 현실이라고 말해지는 위선과 가짜 권위를 내심 닮고 싶다는 욕망일 뿐이다. 그 욕망이라는 이름의 똥덩어리, 그 이율배반의 분열적 감수성을 가슴에 품은 채로 초일류에게 투항하는 노예근성이다. 그걸 강마에는 똥.덩.어.리.라고 불렀다. 혹은 거지근성이라고 불렀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전언이 진정성을 갖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비록 강마에는 미네르바가 아니고, 미네르바는 강마에가 아니지만, 그 둘이 통하는 지점은 이런 지점이다. 거짓 권위
(학벌, "이거 왜 이래, 나 이래봐도 음대 나온 여자야"라는 식의)과 위선
(실력? 돈 없으면 꺼져주셈!)의 성채로 쌓여진 대한민국 그 자체가 똥/덩/어/리/라고 그들은 분노했고, 우리들은 그 분노에 기꺼이 동참했다.
김우재는 적절하게 이 모순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그가 미네르바인지 아닌지는 그냥 검찰과 언론에 맡겨두어도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터넷에 우국충정으로 올린 글로 인해 네티즌이 잡혀 가는 이 웃지 못할 사태에 대한 저항뿐이다. 또한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종교성에 덧붙혀 이야기하자면 지금이야말로 미네르바에 대한 추종이 종교적 색채가 아니었음을 보일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4) readme의 아메바 엘리트주의 발언
미네르바 친구를 자처하는 'readme'가 박대성이 가짜라는 근거로 다시 화제다.
"명문고"
"대한민국 재계의 유명인"
"훌륭한 사회활동도 많이 하여 존경받는 기업인"
"이 정권의 존립이유와 권력유지의 동인으로 삼았던 1% 상위층 중의 상위에 속하는 0.1% 극상위층"
reasme가 미네르바가 자신의 친구 'K'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했었단다.
감동적인가?
폼나?
이건 정말 개소리다. 이게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상관없이 개소리고, 개뻘짓이고, 어처구니다. readme라는 자칭 경제학 교수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정말 친구를 걱정해서 그랬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개소리다. 거지근성이다.
위 readme 발언들이 가짜 미네르바를 증거하는 근거로 제시되는 순간 미네르바 현상의 궁극적인 에너지는 모두 거세된다. '0.1% 극상위층' 같은 개뻘짓 수사가 박대성을 가짜로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순간 미네르바고 나발이고, 다함께 똥덩어리 되는거다. 이건 마치 강마에에게 '똥.덩.어.리' 취급 받으면서 헌신적인 사랑을 바치는 이상한 나라의 '두루미'거나, 한나라당 비판하고, 조중동 비판하면서 초일류, 성공신화 기도문 외우는 정신분열 만개한 광신다.
참조.
이외수 라디오 방송 인터뷰 인용 기사 (오마이) : 이외수 라디오 인터뷰를 기사화한 오마이. 너무 뭉뚱그려서 감성적으로 이야기하긴 하지만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관점
5) 그래도 궁금한걸!
나도 박대성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미네르바팀 막내인지 아닌지, 정말 궁금하다. 그런데 이거 좀 질리지 않나? 조금만 누르자.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언론이 알아서 호들갑 대신 다 떨어준다. 아주 적나라하게 거의 스트립쇼 수준으로 발가벗고, 생쇼 다 해줄거다. 장담한다.
그래서 이제 미네르바는 '사회' 이슈가 아니라, '연예' 이슈에 가까운 방식으로 소비될거다. 박대성이 가짜거나, 혹은 '미네르바팀'의 막내로 밝혀지면, 그 타격은 주중동과 검찰과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 기득권이 고스란히 돌아갈 수 밖에 없다.
뭐가 그리 조급한가? 우리가 나서서 미네르바 탐정놀이 해봤자 쥐뿔 우리에게 남는 건 없다. 물론 탐정놀이 할 수 밖에 없게 하는 믿을 수 없는 떡검, 찌라시즘... 안다, 알지만 우리라도 좀 자중하자. 탐정놀이 하면서, 내가 맞네, 니게 맞네 치고 받으면서 얻어지는게 없지는 않을거다. 하지만 그렇게 얻어지는 것보다는 잃을게 많아 보인다. 우리 스스로가 상위 0.1%의 메시아를 기대하는 천민들임을 스스로 자백하게 될 것 같아 걱정이다. 내 안에 있는 감정적인 아수라로 스스로를 그 똥통에 떠밀까봐 당신이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가 걱정된다.
6) 노예근성, 거지근성, 메시아 신앙 버리기
스스로 주체가 되어 이야기하지 못하면, 자기가 뿌리내린 자기의 계급성과 당파성을 당당하게 직시하지 못하면, 미네르바 현상에 함께 동참했던 그 모든 기억들은 조중동이 그토록 바랬던 "30대 백수에게 놀아나는 대한민국"이 되고, "MBC에 놀아났던 광우병 사태"가 된다.
이 구도에선 그 메시아 '정체'에 따라서 모든 스케줄이 결정된다. 우리가 믿는 건 그저 미네르바라는 메시아였을 뿐이니까. 우리는 그저 영주에게 영혼을 저당잡힌 불쌍한 농노들이었으니까. 우리는 그저 넋놓고 메시아 영화 보던 찌질한 관객들이었으니까.
우리들은 결국 주체적인 역량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그저 거대한 조중동의 틀짓기, 혹은 그 적대적 공생 관계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 풀어내는 소위 진보파 언론의 틀짓기 구도에서 이 편 혹은 저 편을 선택할 수 있었을 뿐인 가짜 진보, 혹은 악세사리 진보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딱 '좌파 포털'이라고 이야기하는 멍청이에 불과했을 뿐이다. 우리 안에 있는 이 속물근성, 그 똥.덩.어.리.의 논리적 귀결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분노했던 그 모든 것, 우리가 소망하고, 열망했던 그 모든 것. 그건 미네르바가 30대 백수라면 무너지고, 그가 50대 럭셔리한 증권맨이거나, 신비로운 베일로 가려진 (준)재벌이면 살아난다.
미네르바가 럭셔리 증권맨이거나 (준)재벌이면 뭐하나?
결국은 우리 자신이 똥.덩.어.리.인걸. * 관련 추천기사
미네르바 비웃기와 MB 코미디 비웃기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249"폐쇄적인 담론 구조가 미네르바 신드롬 만들었다."
http://www.leejeonghwan.com/media/archives/001330.html"미네르바는 어떤 한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필요로 했던 현상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미네르바는 체포될 수 없다"
http://www.leejeonghwan.com/media/archives/001327.html* 관련 추천글
그는 미네르바이며 그래야만 한다미네르바의 역설 : 강추.
사이버모욕죄, 무척 관계 있다니까.잡담: 2mb, 쇠고기, 촛불 그리고 minerva별 볼일 없는 학벌 : 강추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귀찮으셔도 자주 올려주세요. 저좀 읽고 가게요.ㅎㅎ
항상 잘보고 갑니다.
큰 힘이 되는 말씀이시네요. : )
고맙습니다. ㅎㅎ
추천크게 3방 누를려고 하는데 집에 컴에선 추천이 안되네요. 같은 우분투 파폭이라도 회사에서는 잘만 추천되는데 말이죠. endless님 혹 원인이 뭘까요? (보고 계시다는 가정하에...... ^^)
저는 아직 쓰기 위해서 읽는 편에 속하나봅니다. 뭔가 다독하는 과정 속에서 체계가 바로서고 사유가 더욱 깊어지니 말입니다. 저 역시 게으를뿐더러 그 모인조작들을 온전히 풀어내는 재주가 부족한지라 늘 읽는 시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직은 욕심도 많고 잘쓸려고 하는 강박감에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일까요? 글쓰기 아울러 블로깅은 빠지면 빠질수록 더욱 힘든 작업같네요.
오늘은 '귀찮다'와 '아름답다'는 결국 '인식' 과 '실천'에서 비롯된 단어라는 것을 깨닫고 갑니다. :)
엔들리스나인님께서 몸살이라도? : )
엔들리스나인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보고 계실 것 같다는 발상이 참 재밌습니다...하긴 그럴만하지만요. ㅎㅎ
블로깅하면서 느끼는 두 가지 커다란 억압이 있는데요.
하나는 '정답' 강박증이고, 다른 하나는 '참신' 강박증입니다.
뭔가 항상 정답을 써야 할 것 같고, 또 다른 사람들이 쓰지 않은 참신한 뭔가를 꺼내놓고 싶은 건 당연한 심리적 욕구이긴 하지만... 그런 억압이 글쓰기를 글읽기를 방해하는 수준이 되면 곤란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블로깅은 재밌는, 재밌어야 하는 거 아닐까용?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아름답다의 어원에 대해 언급했던 적이 있어서 찾아보니까 '알 만하다'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하네요.[86p, 아름다운 여자]
귀찮다의 어원은 묘하게 설득력 있는데요? ㄷㄷ
그렇군요. : )
김현의 설명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네요.
귀찮다는 정말 그렇죠? ㅎㅎ
알흠답지 못한 댓글을 남길까 두려워 추천버튼만 누르고 가렵니다...
위트 넘치는 아름다운 댓글이십니당..ㅎㅎ
'영향의 불안'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그렇게 깊숙히 숨어있는 생각들까지 찝어내서 분석하는 모습이요. 이게 어쩌면 '나와너'에 이어 민노씨 덕분에 구입하는 또다른 책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굉장히 장문의 답글을 쓰고 있었는데, 답글 중간에 제가 예전에 썼던 다른 글 링크 인용하려다가 다른 분(미도리님) 댓글에 답글 잠깐 달려고 클릭했다, 가즈랑님에 대한 답글을 날렸네요...;;;;
짧게 다시... 달면요..;;;
1. 해롤드(혹은 '해럴드'로 표기되는) 블룸의 '영향의 불안'에 관한 책들은 저도 직접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각 인터넷서점(알라딘과 Yes24)에서 검색해본 결과 그 책들이 번역되지도 않은 것 같네요..;;;; 물론 최근에는 블룸의 책들이 번역된 것 같지만요.
참고로 블룸의 '영향의 불안'에 관한 시론(비평이론)이 담긴 대표적인 저작으로 뽑히는 책은 70년대에 출간된 책들인 것 같습니다.
- 영향의 불안. The Anxiety of Influence. 1973.
- 오독의 지도. A Map of Misreading. 1975.
- 시와 억압. Poetry and Pepressoin. 1976.
위 블룸의 책들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책들 가운데 하나인 김성곤의 '미로 속의 언어'(민음사. 1986)(이것도 아쉽게 절판이거나, 혹은 다른 제목으로 재출간된 것 같지만... 검색을 통해 보건대 절판 쪽이 확률이 높은 것 같습니다) 중 '비평' 파트의 서문(개요적 성격)에 해당하는 '신비평 이후의 미국문학비평' 중에서 '예일학파' 부분 중 블룸의 서술 부분을 참조한 것입니다.
위 책 가운데 한 권(아마도 첫번째)를 번역했던 것으로 보이는 고려원에서 낸 책이 있기는 한데... 아쉽게도 절판입니다. ㅡ.ㅡ;;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6000013128
2. 제가 읽은 블룸은 지극히 '요약 정리'된 (2차)비평서에서 읽은 것에 불과합니다(위 '미로 속이 언어'를 포함해서요). 그 중에서도 고려원에서 나왔던 '현대문학비평' 시리즈 중 '해체주의'에서 예일학파 혹은 해롤드 블룸에 관한 두 편 정도의 짧은 논문이 있었던 것 같네요(물론 기억에 의지하는 것이라서...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국내 비평가가 쓴 하나와 혹은 조나선 컬러가 쓴 하나.
이 책도 아쉽게 절판인 것 같습니다.
검색이 아예 안되네요.
3. 그러니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적어도 위에 예시한 세 권의 책들 가운데 현재 국내에 번역된 것은 없는 것 같고, 제가 읽었던 2차 비평서들도 절판되거나 혹은 아예 검색이 안됩니다...;;;;
4. 다만 김성곤이 쓴 다른 책 가운데....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114777&CategoryNumber=001001017001006
위 책 중에서 10.해체주의...를 참조하시면 그래도 가장 무난하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참고로 해체주의와 관련해서 '이광래'의 번역 및 저작이 굉장히 많은 편인데요... 저로선 절대적으로 비추입니다.
귀찮음을 이겨내는 것도 대단한 일인겁니다.
맞습니다. : )
쓰는건 귀하지 않습니다!!! (라고 쓰고 자신이 블로그에 글 안쓰는것을 정당화 하려는 인간)
^ ^;;
뭔가 찔리는군요...ㅠ.ㅜ
저는 아주 많이 깊이 찔립니다....ㅡ.ㅜ;;
오독의 역사, 혹은 잘못된 기억의 역사를 정리해보면 재미있겠군요. 마침 유홍준은 답사기 첫 장에서 김지하의 시를 잘못 기억한 사례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 김지하 역시 수영의 시를 잘못 기억한 적이 있고요... 설이라 48시간 휴무를 받고 잠시 나왔습니다. 내일 새벽 복귀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엔디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 )
엔디님이라면 정말 그런 주제로 멋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짬이 나시면 조금씩 정리하시는 것은 어떨는지요?
추.
무슨 군대훈련소에 있는 것 같은 무시살벌한 댓글을 남겨주셨고만요. ㅎ
잘 적응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언제쯤 짬이 나실런가...???
* 제목 수정.
귀찮다와 아름답다의 어원, 그리고 블로깅
-> 귀찮다와 아름답다의 어원, 그리고 '읽기'로서의 블로깅
'읽기로서의 블로깅'이란 말은 blogging as a reading을 우리말로 옮기신 거죠? 즉 무의식 중에 영어로 말을 구성한 다음 우리말로 옮겨 표출한 거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만일 '읽는 블로깅'이라고 했다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까요? 혹은 의미는 전달되었을지라도 '읽기로서의 블로깅'이라고 썼을 때 기대되는 어떤 느낌은 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느낌이란 건 글 쓴 사람과 읽는 사람 중 어느 쪽을 만족시키는 거였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적어 봅니다.
어딘가에서 들은 얘긴데, '아름답다'가 '앓다'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더군요. '앎'이 아니라 '앓음'에 '-답다'가 붙었다는 거죠.
그런 관점은 대상을 객체(인식할 대상)로 보기보다는 대상의 고통을 내것으로 가져와 같이 앓을 만한 존재로 본다는 면에서 더 감성적이기도 하고, 피아 구분을 허무는 지경이라는 면에서 동양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말씀처럼 어색한 번역투네요. : )
다만 저는 영어를 '무의식'적으로 먼저 떠올릴만큼 영어를 잘하지 못합니다.
( http://feeds.feedburner.com/~r/lawfullykrblog/~3/458349529/otl-english )
말씀처럼 '쓰는 블로깅' '읽는 블로깅'이 좀더 간결하고 담백하네요.
왜 '쓰기'/'읽기'라는 명사형으로 굳이 수식해야 했는지... 저도 지금 생각해보니 잘 모르겠습니다.
name님의 조언을 받아서 제목을 다시 한번 수정해야겠네요.
고맙습니다.
앎음...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 설도 의미의 울림이 깊네요...
* 확장점 링크 추가.
http://zombi.co.kr/798 (좀비씨)
* 제목 수정
귀찮다와 아름답다의 어원, 그리고 '읽기'로서의 블로깅
-> 귀찮다와 아름답다의 어원, 그리고 '읽는' 블로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