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다이와 레시피

2009/02/13 20:39

1. 독고다이
최근 글에 '독고다이'라는 표현을 썼다. ( http://minoci.net/734 ) 일부러 그렇게 썼다. 그 글이 좀 딱딱하고, 밍숭밍숭한 느낌이라서. 적당한 긴장이완이랄까, 맛(?)을 주지 않을까 싶어서.  이게 일본에서 온 말이라는 것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좀 부끄럽게도) 정확한 어원은 모르고 있었는데, 지금 찾아보니 '(카미가제) 특공대'에서 온 말이란다. 카미가제 특공대라니... 이런 아픈 역사에서 나온 말인줄은 몰랐다....
"독불장군을 뜻하는 '독고다이'는 카미가제를 칭하는 특공대(特攻隊-とっこうたい/) 발음이 변한 것입니다. 톡꼬우타이가 독고다이가 된 것" (당그니. http://dangunee.com/132115 )
- 참조 : 카미가제는 '신의 바람'을 뜻하는 신풍(神風)에서 나왔다고 하더라. '신풍'의 어원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은 역시나 당그니의 글( http://dangunee.com/131994 ) 참조. 간단히 설명하면, 우연히도 불어와서 몽고 침입을 막아둔 태풍을 '신풍'(일본을 지켜주는)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2. 고마운 조언
같은 어감, 좀더 어울리는 우리말이 있었다면 그걸 썼을거다. 그런데 왠지 그 문맥에서는 그 단어가 떠올랐다. 그걸 꼭(까지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쓰고 싶었던거다.
독고다이라는 말. 요즘 네티즌에게는 뜻도 어렵고 어감도 좋지 않은데, '홀로형'이나 '독립형'으로 순화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 (김중태)

홀로형이나 독립형은 '독고다이' 같은 울림이 없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물론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지적이라고 생각하고, 또 고맙게 생각한다. 이 글은 위 조언이 기분 나쁘다거나, 틀렸다고 쓰는 글이 (전혀! 전혀!!) 아니다. 독거형... 이렇게 써도 비슷하겠지만 뭐랄까 너무 쓸쓸하기만한 느낌이라서... 왠지 자존심도 느껴지면서, 또 꿋꿋함도 느껴지지만 약간은 외롭고, 쓸쓸함을 주는 그런 단어가 필요했다. 그게 나에겐 '독고다이'였다.  (아마도 '고독'이 연상되서 그랬을거다) 독불장군... 이건 그 글을 쓰면서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적절하게 대체 가능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뭐랄까 너무 고집쟁이 같은 느낌이 있어서 '독고다이'보다는 별로다.

2-1. 그러니까...
"독고다이하는 성격이라 편할 때가 많아요."
순간 귀가 쫑긋해졌다. 그의 입에서 ‘독고다이'란 말이 나온 게 신기하다. 한국에 정착한 지 20년이 넘었다지만 겉모습은 천생 이방인 아닌가. ‘독고다이'란 ‘무리를 이루지 않고 홀로 하다'란 뜻의 일본식 단어인데 은어에 가까워 한국인들도 널리 쓰진 않는다. ‘국내 뮤지컬 음악감독 1호'로 꼽히는 박칼린(41)의 인생을 [....] 
- wild@fnnews.com 박하나,
http://www.playdb.co.kr/magazine/magazine_temp_view.asp?kindno=2&no=12832&page=1 중에서
위 기사에서 박하나가 쓰고 있는 것처럼 "무리를 이루지 않고 홀로 하다"라는 의미 정도로 쓴거다. 물론 기사에서까지 일본식 표현을 권장하고 싶지는 않다.하지만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니 그걸 옮기는 건 별 문제될 것 없다고 본다.

3. 원칙은...
나은 나는 가급적이면 쉬운 우리말 쓰자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같은 부피와 질량을 갖는 의미라면 가급적 쉽게, 가급적 우리말로 쓰자, 뭐 그런 입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고다이'가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건 물론 인정한다. (하지만 그 때는 그걸 꼭 쓰고 싶었다...;;; )

4. 좀 이상한 건...
굳이 일본어에서 온 말이기 때문에 쓰면 안된다거나 혹은 쓰지 말자고 하는건... 그건 좀 이상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가급적이면 쉬운 우리말을 쓰자는 입장이다. 이건 대원칙이다. 다만 각자 개성에 따른 자유로운 언어 행위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이것도 꽤나 중요한 원칙이다. 본론으로 돌아가면 왜 그런지도 잘 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라는 아픈 역사 때문에 그럴테다. 나도 한국사람이라서 이런 맘 충분히 이해한다.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뉴라이트의 사이비 실용사관(?)에도 몹시 비판적이다. 그러니 여전히 제대로 세워져 본적 없는 민족주의가 제대로 세워지기를 누구보다 바란다. 물론 그게 국수주의, 혹은 배타적인 애국주의로 흐르지는 않기를 바라지만.

5. 외래어
그런데 외래어도 우리말이다. 어쩔 수 없이 그렇다. 우리땅에서 처음 생겨난 토착 언어, 우리식 표기만으로 처음 쓴 순우리말이 적어서다. '한자'(중국어)에서 나온 한자어는 순우리말 보다 훨 많고, 또 요즘은 영어에서 온 말도 점점 많아진다. 물론 이게 바람직한 상황이라는 건 전혀 아니다. 우리말 발굴이라도 해서 좀더 많이 쓰면 나도 좋겠다.

6. 차별적 감수성 : 가령 레시피
다만 예외적으론 어떤 특정한 감정이나 상황이나 의미를 설명하는 적절한 외래어 표현이 있다면 이건 써도 괜찮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게 단순히 '일본(어)에서 온 말'이기 때문에 쓰면 안된다는 건 좀 이상하다는 거다. 언젠가 너바나나는 '요리법' 이렇게 하면 될 걸 왜 굳이 '레시피' 이렇게 쓰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나는 이 입장에 공감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레시피는 직관적인 의미전달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발음하기에 쉬운 표현도 아니고, '레시피'인지 '레피시'인지도 헷갈리고...
당최 조리법이란 얘기 대신 레시피라는 뭔가 초능력적인 단어를 쓰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고, 페이보릿이라는 곡식이 연상되는 저런 말을 쓰는 이유가 뭔지도 모르겠습니다. (....) 언어가 하나 사라질 때마다 그 언어에 담긴 인류의 지식과 생각도 하나씩 사라진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언어건 간에 그 언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고유의 감성과 생각이 있기에 이 언어가 사라지면 인류의 사고도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죠.
[....]
내 친구, 내 동료, 우리나라 사람과 대화를 하는디 영어를 몰라서리 불편한 사회가 되길 원치 않구만요. 단지, 영어를 못할 뿐임에도 그것을 열등감으로 느껴야 한다고 강요받는 세상을 원치 않구만요. 이 땅에선 한국어만 할 수 있어도 아무런 문제 없이 생활할 수 있고 블로그질 할 수 있으면 좋겠심다. 동동주 한 잔 시원하게 마시고 "달짝지근한 거이 좋다" 라며 장단 맞출 수 있는 곳으로 남았으면 하구만요.

- 너바나나, http://www.nirvanana.com/316 중에서
나도 처음에는 저게 뭔가? 이랬다. 요리법 대신에 '레시피'를 쓰는 유일한 이유는 그게 단순히 '폼나는' 외래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워낙에 영어라면 깜빡 죽는 나라이기도 하고... 솔직히 영어가 우리말을 어지럽히는 정도가 심하면 심했지, 일본어식 표현이나 일본어 어원을 갖는 표현이 우리말을 어지럽히는 건 적어도 현재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약과' 수준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게다가 영어는 오히려 쓰면 쓸수록 '폼난다'는 이상한 심리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실정이다. 도무지 뭐가 폼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독고다이'는 당연히 외래어로 인정되지 않는 말이다. 그럼 레시피는 어떨까? 궁금해서 한번 찾아봤다.

레시피 [recipe] 신어
[명사]음식을 만드는 방법. (네이버 국어사전)

7. 어떤 댓글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일본말이 한국말에 잔재만 남아있는건 아닙니다. 무작정 한쪽으로만 간다고 생각하는건 전근대적인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말이 일본어화된 것도 상당히 많고 일본말이 우리말화된 것이 물론 더 많겠지만요. [..중략..]문화가 서로 교류하듯이 언어도 서로 교류합니다. 그 일례는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시면 잘 알수 있습니다. 문화가 교류하는한 언어 또한 문화의 영향을 받는건 당연한 것입니다. 원래 일본어에서는 군이라는 말이 없었다고 하죠. 지금은 통칭으로 많이 사용하는걸로 아는데 이건 한국어에서 넘어간 일본어입니다. 한자발음이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인 경우도 상당히 많다는 걸 아실줄로 압니다.
- 그냥 적어봅니다 (임시필명), http://dangunee.com/132115 댓글 중에서 

위 당그니 글에 있는 댓글인데 인상적이다. 당그니 글도 물론 좋은 글이지만, 위 댓글도 음미할만하지 않나 싶다.
기본적으로 나는 이 댓글 입장에 가깝다. 물론 우리말 발굴작업 많이 많이 해서 쉽고, 아름다운, 그런데 잊혀진 우리말 많이 많이 찾아내고, 또 많이 많이 쓰면 좋겠다.


추.
언론계에서 사용한다는 일본말 은어들은 정말 사라지기를 바란다.
우리말을 가다듬고 발전시켜야 하는 대표적인 직업을 가진 이들이 이런 말을 쓰는 건 정말 심각한 자기 모순이다.
[온라인연재] [언론계 은어]
(1) 사쓰마와리(察廻)[미디어 오늘] 2000-01-11 
(2) 나와바리(繩張)[미디어 오늘] 2000-01-18
(3) 하리꼬미[미디어 오늘] 2000-01-21
(4) 도꾸다니(特種)[미디어 오늘] 2000-01-31
(5) `도꾸누끼`(落種)[미디어 오늘] 2000-02-14
(6) 반까이(挽回)[미디어 오늘] 2000-02-21
(7) 쪼찡(提燈)[미디어 오늘] 2000-02-28
(8) 당꼬(談合)[미디어 오늘] 2000-03-13
(9) 야마(山)-1[미디어 오늘] 2000-03-27
(10) ´야마´(山)-2[미디어 오늘] 2000-04-03
(11) ´우라까이´[미디어 오늘] 2000-04-10
(13) ´게찌(kechi)´[미디어 오늘] 2000-05-01
(16) 모찌[미디어 오늘] 200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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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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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퍼렁어 2009/02/14 00:15

    독고다이에서 친숙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독고에서 읽혀지는 고독이라는 단어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홀로형' 보다는 '고독한 남자의 길' 이 더 그럴듯하게 (느끼한건가?) 생각되어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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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2/16 15:10

      아마도 그런 발음상 유사점이 상당히 작용하겠죠. ㅎ

  2. 써머즈 2009/02/14 01:13

    독고다이의 음절을 재정렬하면,
    고독이다.

    독고다이
    고독이다

    왠지 고독한 단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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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2/16 15:10

      우연히 그런 것이겠지만 음절이 '왠지' 좀 고독하긴 합니다. : )

  3. 의리 2009/02/14 06:55

    원래 특공대였군요.
    전 그동안 고독의 계열인 줄 알았습니다. 왠지 강한 단어들의 합이랄까요. 고독과 영어의 다이를 연상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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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2/16 15:11

      고독 계열.. ㅎ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4. sleeepy 2009/02/14 10:26

    recipe와 조리법 혹은 요리법은 뜻의 차이가 조금 있지 않나요?

    paint회사나 ink, plastic회사들 경우에(공장 생산라인) recipe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때에는 조리법, 제조법 등의 방법상의 뜻이라기 보다는 조리원료, 제조원료 들의 배합비정도의 의미로 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요리법이라고 하면 그 요리를 만드는 전체적인 순서를 포함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요리recipe라고 하면 그 요리의 재료정도로 이해가 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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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2/16 15:11

      일반적인 그 용어의 용례를 살피시면 제 글에서 말한 취지가 이해되리라 봅니다만.. : )

    • sleeepy 2009/02/20 19:48

      말씀하시는 취지야 십분 이해합니다.
      아.. 제가 댓글 앞에 먼저 이말씀 드렸어야 했군요.
      손가락을 본건 아닙니다 :)

  5. nooe 2009/02/14 10:51

    독고다이...
    독한새끼...

    딱 떠오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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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나그네 2009/02/15 09:06

    그래서 결국은 변명질, 자기합리화네요...
    남이 일본말 쓰면 비난하고 자기가 쓰면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인가, 어처구니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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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2/16 15:14

      갸우뚱하게 되네요. : )
      왜 그렇게 화나셨나요?

      얼굴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블로그상 댓글 대화에도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점을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나그네님께서 제 글이 맘에 들지 않은 것은 제가 탓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리고 제 글에 대해 최소한의 논리와 입장을 갖고 비판해주시면 그것은 저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신경질을 부리시면 저희 사이에 무엇이 남는지 모르겠습니다...

  7. 화성인 2009/02/17 01:33

    이기호 님의 한뼘 에세이 "독고다이"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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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mindfree 2009/02/19 09:44

    오랜만에 블로그를 돌아볼 여유가 생겨 이제서야 읽어봤네요.
    얼마 전에 회의를 하던 중에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간략한 정보를 노출하고 좀 더 상세한 내용은 링크로 연결하자는 맥락의 토의가 진행된 이후) "그렇죠. 좀 더 deeply 찾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테니까"
    왜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Well, maybe there are some people who want to know..."라고 아예 영어로 하던가!
    저도 가급적이면 우리말을 쓰려고 애쓰는데, 여전히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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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2/21 01:12

      반갑습니다. : )
      깜박해서 이제야 답글을 다네요. ^ ^;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저도 영어나 어려운 용어들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쉬운 우리말로 소통하면 좋겠습니다.

  9. j준 2009/02/20 12:37

    말이라는 것이 뉘앙스가 있어서 말입죠. 분명 일본어라는 것을 아는데 그 뉘앙스를 대체할 만한 한국어를 찾기가 어휘력이 딸립니다.
    그래서 전 가끔 일어를 씁니다. 고향이 대구'촌'이라 더 그런진 몰라도;;;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02/21 01:14

      재준님 관련글 잘 읽었습니다.
      고향이 대구셨군요. : )
      전 서울촌놈입니다. ㅎ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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