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디어 칸막이’ 걷어내야 민주화 완성된다 (2009-02-12)
http://www.donga.com/fbin/output?rss=1&n=200902120092
[....] 세계에서 가장 앞선 디지털미디어 기술을 가진 우리나라가 시대착오적 아날로그 시대의 법을 고집하는 좌파 수구세력에 발목 잡혀 있다.
0. 좌파 수구세력이라... 민주화의 완성이라...
'MB 언론 악법'(그들은 '미디어 관련법'이라고 부르는)을 반대하는, 가령 민주당 같은 (대단히 보수적인 우파)정당을 '좌파 수구세력'이라고 선언해버리는 사설이다. 그냥 우선 좀 골 때린다. 근거는 조중동류에서 사랑해마지 않는 '선진국'들에서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하는데, 그걸 막으니까 수구세력이다.아날로그/디지털이라는 기술적인 중립성은 허구인데, 왜냐하면 과학기술에도 다분히 정치적인 고려는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백보 양보해서 이걸 중립적인 과학시술의 '진보'라고 하고, 그래서 이게 이른바 미디어 컨버전스(융합, 융복합)가 대세인데, 이걸 반대한다면 그건 '수구세력'이다....라고 치자.
과학기술이 한 축에서 그 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상징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건 그 사회의 경제적 진보, 정치적 진보, 사회적 진보, 그리고 문화적인 진보라는 '총체적인 진보'의 일부일 수 있을지언정, 그것 자체가 절대선으로서의 '진보'가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 과학기술, 혹은 경제적인 진화의 방향, 전세계 선진국들의 동향 따위가 미디어 융합을 지지하는, 그런 방향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그게 어떻게 제 사회의 영역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가령 그 미디어 융합이 과연 경제, 정치, 사회,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모두 물어 본 뒤에야 그 기술발전의 방향을 지지하는 것이 '진보'인지 '수구'인지가 결정되는 거다.
디지털미디어 기술을 가진 나라라고 해서 그걸 무조건 제도화해야 하고, 온갖 미디어들을 짬뽕해야 한다는 논리는, 쉽게 말해서 '초딩'적인 단세포적 사고를 유감없이 드러낸 무지의 소지라고 이야기할 수 밖에는 없겠다.
이하는 좀더 이어지는 단상들...
1. '수구[守舊]'
사전 의미로만 보면 "옛 제도나 풍습을 그대로 지키고 따름"이라고 한다. 부정적인 느낌은 강하지 않다. 그러니 사전 의미로만 보면 '보수[保守]'("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와 같거나 유사하다. 하지만 21세기 초 대한민국 정치 비평(?) 언어로서 '수구'는 명백하게 '보수'라는 표현보다 강한 공격성과 경멸을 담고 있는 것 같다.2. 왜냐하면
말은 태어나고, 자라고, 죽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걸 언어의 역사성이라고 배웠다. 언어를 자라게 하는 건 물론 욕망이다. 거기에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권력이 개입한다. 그건 언어의 정치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어의 취사선택'은 매우 정치적인 행위다(foog).박노해가 지적했던 것처럼 '노동자'라는 말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피를 뿌렸나, 그리고 근로자라는 말은 얼마나 사용자스러운가? 근로자라는 말도, 사용자라는 말도 노동과 자본의 적대적 관계를 의도적으로 지우기 위한 정치 수사학이다.
3. 그런 의미에서
어떤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있는 구체적인 언어, 말, 단어, 표현에는 그 말을 쓰는 자의 정치경제적 이해가 깊이 베어 있다. 어떤 놈은 'A'라는 말만 죽어라 쓰고, 어떤 놈은 'B'라는 말만 죽어라 쓴다. 그래서 언어는 어떤 '놈들'(세력)의 전유물과 같은 것이 된다.꼴통, 정당, 신문 등과 함께 즐겨 쓰였던 '수구'를 한겨레나 경향, 오마이나 프레시안에서 읽는다면 별로 이상할게 없다. 하지만 그 표현을 동아에서 발견하면, '어, 이게 뭐지?' 하게 되는거다. 그 말은 '동아'가 가지고 있어서는 안되는 말인데 사용하네? 이렇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4. 그런데 우리나라에 정치노선이란게 있나?
진보/수구(보수) 노선이 과거에는 명백했다. 프랑스 혁명에서 자코뱅과 지롱드의 대립이 그런 대표적인 예다. 같은 공화파이긴 했지만, 농민과 수공업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코뱅과 지주와 상공업자의 지지를 받았더 지롱드는 당연히 루이16세의 처형을 두고 다툴 수 밖에 없는 정치경제적인 이해의 대립을 형성했다. 자코뱅은 당근 목을 쳐야 마땅하고, 지롱드는 그건 너무 심하지, 이럴 수 밖에 없는거다.그런데 우리나라엔 그게 없거나 희미하다.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나 방구나 뽕이나.
뭐 그런 거.
그럼에도 동아일보에서 민주당을 수구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좀 (많이) 웃긴 일이다.
5. 대한민국에서
수구는 정치세력과 긴밀한 담합관계를 형성하는 '권-언-(자) 복합체'를 비판하기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지, 너희가 그 말을 빼앗아 '우리'를 비판하기 위해 사용하면, 쉽게 말하자, 벙찌는거다. 물론 민주당이 나에게 '우리'인지는 모르겠다. 솔직하게 말하면 한나라당, 조중동과 뭐 그리 다른가... 싶은 생각 없지 않지만 암튼 한나라당 입장에 선 정치적 당파로서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정말 말은 말 아닌게 되어 버린다.6. 말이 말이 아닌 시대
언어가 가져야 하는 투명성이 사라지고 있다. http://fairdream.net/288 언어는 관계와 그 관계 사이에 엉킨 욕망을 가급적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제 언어는 그 관계가 만들어놓은 욕망의 그물 속에 갇혀 버린다. 언어는 그 언어가 지시하는 의미를 배반한다. 신문마저, 아니 신문이야말로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좌파 수구세력'는 그 한 예다. 이런 어처구니를 우리는 2006년 '좌파 신자유주의'(노무현)이라는 표현으로 이미 강렬하게 접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상식적인 홍세화의 비판. via 류동협의 글 )최근에 말을 말 아닌 것으로 몰고 가는 현상을 우리는 신해철의 "CF는 아티스트 표현의 일종"이라는 말 아닌 말에서 확인한 바 있다.
7. 다시 돌아가서... 진보/수구...
수구/진보는 단순히 어떤 기술과학의 성취가 얼마나 있는 그대로 드러나고 있나, 그것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경제적인 시스템으로 사회 정치 문화적인 시스템으로 수용하느냐에 따라 나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보/수구는 그 기술과학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특정한 세력의 이해에 부합하는 것인지를 기준으로 논의되어야 마땅하다.다소 경직된 마르크스 교조주의를 반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 동독에서 출간된 철학사전(우리나라에서는 동녘에서 출판된)에서 '진보'를 설명하는 이런 문장이 있다.
발전된 사회주의 사회를 이룩하는 데 기본적인 과제는 경제적 진보와 과학-기술의 진보 그리고 사회적 진보를 올바르게 서로 결합하는 데 있다.
- 철학소사전, 표제어 '진보', p.355. 동녘. 1990.
- 철학소사전, 표제어 '진보', p.355. 동녘. 1990.
그리고 개인적으론 꽤 좋아하는 다른 '철학사전'(도서출판 친구. 1987. 물론 절판..)에서는 '진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다소 교조적인 서술 부분까지를 모두 좋아하는 건 아니고(이건 아마도 동유럽 마르크스 철학 사전을 참조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
낮은 것에서 보다 높은 것으로, 단순한 것에서 보다 복잡한 것으로서의 전진운동. [....] 인류사는 이러한 진보의 실현과정이다. 계급사회의 이행 속에서도 인간은 보다 나은 생활을 실현해 왔는데, 가령 노예제 하에서 노예주의 완전한 종속물에 불과했던 노예의 상태보다도 봉건제하의 농노의 생활은 더욱 개선된 것이었고, 농노보다는 자본주의하의 노동자의 생활은 보다 큰 인격적 독립을 획득한 것이다.
계급사회에 있어서 진보는 극히 모순적으로 이루어져지지만(예컨대 원자력이 인간의 살육에 이뇽되는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하의 과학의 진보는 지배계급의 이익에만 봉사함으로써 오히려 사회전체의 진보를 가로막는 결과를 자아낸다)[....]
- 철학사전, '진보', p.90, 도서출판 친구. 1987.
계급사회에 있어서 진보는 극히 모순적으로 이루어져지지만(예컨대 원자력이 인간의 살육에 이뇽되는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하의 과학의 진보는 지배계급의 이익에만 봉사함으로써 오히려 사회전체의 진보를 가로막는 결과를 자아낸다)[....]
- 철학사전, '진보', p.90, 도서출판 친구. 1987.
동아일보에서 주장하는 '디지털시대'에 대한 그 애정과 열정이 추구하는 미래상이 '사이버 모욕죄'가 입법되고, 용산 참사와 같은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를 신문과 방송에서도 동시에 스테레오로 찬양하는 이명박식 '왕정복고'(행인)라면... 그건 진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아무런 관계가 없을 뿐더러, 우리는 그런 걸 흔히 '역사의 후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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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한자의 뜻은 여태 되새겨 본적이 없는데 글을 읽어보니 음...
잘읽고 갑니다 (여전히 글빨없는 ㅡ.ㅡ). 좋은 하루 되시구요.
아이고.. 벌써 하루가 다 갔네요...;;;
한국씨께서도 남은 시간 즐겁게 보내시구요.. : )
대한민국에 무슨 얼어죽을 정치적 노선이 있습니까?...안중근 의사 저렇게 되고, 김구 선생 살해되고 부턴 우리나라에 정치 노선이란건 존재하지 않습니다...그래도 믿었던 노무현 전통의 노선도 지금 뭐 완전히 쓰나미 맞고 나가 자빠진 상태인데요 뭐...뭐, 꿋굿이 진중하게 밀고 나가는게 없이 그저 이리 흔들 저리 흔들이니 뭐...건 그렇고요, 쥔장님, 제 개인 블로그 개장했습니다...블로그계의 거사들의 한 줄 충고가 아쉬운 시기입니다...오셔서 다금한 한줄 충고 날려 주십시요...^^...바쁘실려나?...
격정이 대단하십니다. : )
저도 우리나라 정치판, 언론판 꼬라지 보면 화딱지 나죠.
아주 많이 몹시 무지 무장.
별말씀을요.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좌/우/진보/보수'라는 말은 개념의 영역이 최소한의 합의된 바도 없이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문, 사회, 정치 뭐 어떤 분야에서나요.)
그래서 그냥 '욕찌그레기' 정도로 사용할 수 있는 개념 이상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 같거든요.
(민노씨의 글, 의미있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논의를 해나가고 합의를 쌓아가는 시도, 블로그 세상에서라도 해나가고 싶고요.)
휴...동아일보는 찌질함이 이제 하늘을 찌르는군요. 똥아! 일보니? 라고 불러줘야겠습니다.
누에님께서 지적하시는 불만은 꽤 많은 분들께서 크게 공감하시는 것 가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구요. : )
그저 상식적인 차원에서 일반인들이 그 용어들을 사용할 때 최소한의 합의가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적어도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에서 이야기하는 '진보/좌파/수구..' 이 언어들은 현실을 반영한다기 보다는 기만하고 왜곡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 같아서 말이죠.
http://nooegoch.net/388
즉흥적 문구가 나름 '낙서예술'(패러디)로 승화되었습니다.
즉흥적 문구를 나오게 해주신점 감사드립니다.
이 댓글은 놓쳤던 댓글인데 아래 새로운 댓글 덕분에 발견하네요. : )
트랙링크 ㅠ.ㅠ
http://nooegoch.tistory.com/408
아뉘 그런데 왜 우십니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