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새겨야 하는 말

2009/05/02 06:42

마음이 어지러우면 염치 없게 찾곤 하는 '비아메디아'에서 귀한 말을 들었다. 이 귀한 말을 나 혼자 듣고, 나 혼자 위로 받는게 염치 없는 짓인 것 같아서 특히 나에게 깊이 머물렀던 문장들을 빌려온다. 물론 직접 가서 전문을 모두 읽고, 새기고, 그 말들이 그저 말이 아니라, 그저 의견이나 겉멋든 사상이 아니라, 그 마음이 소리가 되고, 그 마음 소리가 글이 되고, 그 글이 몸이 되는 육성의 호흡을 느껴보는 것. 그래서 그 말이 글이 소리가 몸에서 흐를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그 말들이 그저 모두 지워져도 상관 없도록 자신의 깊은 흔적이 되도록 거듭 자신의 욕망과 나와 당신과 우리들 사이의 단절을, 그 단절을 무한하게 확장시키는 세계를 둘러싼 권력의 탐욕과 영혼없는 속도와 경쟁을 되돌아보고, 그렇게 다시 스스로에게 돌아와 함께 소망한다는 것의 의미를 성찰해보는 것. 그것을 감히 권하는 바다. 석가탄신일 아침에, 예수와 석가가 어찌 다르다고만 하겠는가, 내가 내 자신의 졸렬함을 스스로에게 야단치고, 다짐해보는 것이기도 하다.


“교회는 그 원래 의미에서, 예수의 정치학을 행동하는 사회적 공간이다. [....] 이 말은 교회가 - 비그리스도인과 협력해서라도 - 평화와 자비의 공간, 정의로운 경제 교환의 공간을 창조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말이다.”

“교회가 폭력에 저항한다면, 교회는 그 사적인 개인주의에서 벗어나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지녀야 한다. 그것은 국가 권력을 다시 획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대해서 참된 말을 발설하기 위한 것이다”

“교회가 어떤 전쟁이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고 결정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 전쟁에서 싸우는 것을 거절해야 한다. 이것이 현재 미국 교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라 생각한다. 정당한 전쟁 이론이 한치라도 의미있는 것이라면, 그 때문에라도 교회는 정당한 전쟁에 대한 결정을 국가에 미룰 수 없는 것이다.”

“자유 시장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강박감을 갖게 되는가? 이론적으로, 자유 시장에서는 모든 개인은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무엇이 객관적으로 좋다는 감각이 없는 문화 속에서, 남는 것은 힘이다. 의지는 좋은 것(선한 것)으로 이끌리지 않고, 마케팅의 권력이 의지를 움직인다.”

““아직 아닌” 것은 우리가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그리 살아가고 있다. ”

- 주낙현, 전례와 정치, 고문과 국가, 그리고 현실주의 : '윌리엄 카버너의 인터뷰' 중에서

4.
어떤 전략과 전술도, 그리고 어떤 생존 훈련도 시키지 않은 채 밖에 나가서 정체성을 갖춰라, 성장시켜라 하고 윽박지르는 것은 앵벌이하라는 말이다. 그 앵벌이의 실체는 굽신거리고 거짓말하는 일이고, 좀 힘이 있을라 치면 그마저 없는 이를 ‘삥’ 뜯는 일이다. 앵벌이로 나서는 이들 역시 힘에 눌려 여기서 도망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 일이 반복된다.

6.
질투와 시기는 차이에 대한 비교에서 비롯된다. 차이가 만만한 것이라면 경쟁하면 될 일이고, 넘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차이에서 배우는게 남는 일이다. 질투와 시기는 경쟁을 통한 발전으로 이끌지도 못하고, 배움을 통해서 스스로를 먹이지도 못한다. 하느님께서 저마다 주신 다양한 은사를 늘 설교하면서도 자신은 그 말에 절대로 순응하지 않기에, 결국 복합 감정의 노예가 된다.

7.
가까운 사람들, 자신이 믿는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좀더 인색한 식별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도전해야 한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 가까움이 자칫 식별의 눈을 가리고 도전을 멈추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을 자주 경험하고 전해 듣고, 또 발견하게 된다. 그 잣대로 인해서 그와 멀어진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역으로, 무엇이든 받아주리라 생각했는데 애정과 합리로 도전을 해오는 이가 있다면, 그를 붙들어야 하겠다.

9.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더이상 그렇게 부르지 않고, “벗”이라 부르겠노라 하셨다. 서로들 벗으로 여기지 않으니 불행한 일이다. 어른이고 젊은이고 할 것 없이 이 “벗”에 대한 갈망과 실천을 말과 몸에 속속들이 배이도록 하지 않는 한, 결코 예수를 따르지 못한다.

- 주낙현, ‘성직자’ 잡감 2 중에서





어제 4월 29일은 용산참사 100일, 내일 모레 5월 2일은 촛불 1년이 되는 날이라고 한다. 기억나지 않는 기억이 바닥까지 말라버린 사회적인 죄의식과 짝꿍할 필요는 없다. 그 잊혀진 기억이 '아니 벌써!' 김창완의 놀란 목소리와 오버랩되더라도 우리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우리는 "너의 이름을 잊은지 오래"다. 나 하나 먹고 살기도 앞날이 깜깜 무소식이다.

다만, 문득, 불현듯, 이런 상상을 해본다. 무한도전에서 용산참사 시추에이숑 꽁트를 만들고, 촛불 일주년 시청앞 광장에서 진칠 것으로 예상되는 HID 북파 공작원 행님(명이행님이 떠오른다능...)들과 '일박이일' 소꼽장난하면 재밌겠다는 생각... 정말 그럴 수 있다면 타는 목마름으로 외치지는 않더라도, "대한민국 만세!" "민주주의 만세!"를 나는 외칠거다. 신경민이 열 짤려나가고, '조선일보 언터처블법'을 만들거나, '삼성 죄 있어도 죄없음 법'을 만들어도 나는 '대한민국 만세! 민주주의 만세!'를 외칠거다. 정말이다. 정말이라니까.

솔직히 무슨 대단히 투철한 사명감, 사회적인 연대의식... 그런거 난 쥐뿔 없다. MB를 심판하라... 우리가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하는 이유... 를 아무리 씨부려도 그게 나랑 무슨 상관? 차라리 '쭉빵녀와 화끈한 소개팅'을 용산 범대위나 촛불 관련 시민단체들이 기획하면 살짝 눈길을 줄 수 있겠지만은... 'MB 심판이라굽쇼?' MB가 누구세요? ㅡ.ㅡ;

그런데, 그러다가...

"5월초 전국 각지에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각종 불법집회 참가자들 전원을 현행범으로 간주하고 적극 체포하기로 방침" 세우신 우리의 위대하신 검찰과 뜬금없이 "의원도 수갑 채우는 미국 경찰" 배우자는 조선일보의 놀라운 준법정신, 법치주의를 접하면... 아, 씨바, 이 고결하신 ㅆㄲㄷ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 욕이 튀어나온다. '무한도전 : 용산참사편'이나 '일박이일 : 북파공작원과 함께'를 공상하던 나른한 봄날의 몽상이 확 깨진다. 알았다, 알았다고, 이 ㅆㅂ들아.

이런 고매하고, 우아하신 협박에 움추러드는 나는 무슨 벌레같은 건가... 대한민국에서 국민이란 건 이렇게 고상하게 일등신문 사설로 준법정신 투철하게 협박받는 존재인건가... 싶은... 그런 뭣같은 기분, 정말 거지같은 자존심이, 나는,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권자다, ㅇㅇ ㅆㅂㄹㄷㅇ, 외치고 싶은 객기가, 아, 정말 짜증난다고 말하기도 짜증나는, 그래도 내가 나가서 그 힘없는 촛불이라도 들련다하는, 그 뭔가가... 내 오장육부에서 솟구친다.

이런 벌레 같은, 가축 같은 취급 받고도 무한도전 쵝오, 일박이일 짱이삼, 김연아 넘 좋아효...의 세계에서만 빠져서(그 세계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나도 그 세계 좋아해... 오해하지는 마셈) 용산 나부랭이들 나랑 무슨 상관? 촛불이 불법이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 이러고 있으면...우리는...우리가... 정말 닭대가리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얘네들도 어떻게 나오는지 좀 똑똑히 봐야겠다.





4.29 재보궐선거 : 요약 및 기록보관용

2009/04/30 07:23
 4.29 재보선 요약

0. 투표율 : 매우 높은 편
ㄱ. 유권자 131만9614명 중 45만4714명 투표 34.5% 투표율(교육감 투표는 제외).
ㄴ. 국회의원 재선거 5개 지역 투표율은 40.8% (예년 평균보다 꽤 높은 투표 참여율)
ㄷ. "지난 2000년 이후 16번의 재보선에서 투표율이 30%를 넘은 것은 모두 7번이다. 특히 국회의원 선거만 따졌을 경우 지난 2001년 41.9%를 기록한 이래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가장 높게 나왔다." (연합뉴스, 안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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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관위 4.29 재보궐선거 안내 페이지의 도표를 바탕으로 선거 결과 보충 편집

1. 진보신당 & 민주노동당 : 기사회생 혹은 약진
ㄱ. 진보신당 (출범 13개월만에 드디어) 원내 입성
ㄴ. 민주노동당과의 전략적인 단일화 효력 발휘(조승수-김창현의 후보 단일화) : [조승수 당선소감] MB정권 심판을 위한 진보양당, 북구주민, 국민 공동의 승리입니다
ㄷ. 진보진영 내의 데탕트(?) 분위기 조성 가능성 : 10월 재보궐, 내년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
ㄹ. 광역의원/기초의원에서 민주노동당 후보 당선의 의미 : 국회의원 재선거 및 수도권 기초자치장 선거에서는 아직 민주당을 '(아직은) 대안적인 선택'으로 당선시켜줬지만, 호남에서 민주당이 민주동당후보에게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을 내줬다는 점은 눈여겨 봐야 할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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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웃는 진보신당 심상정 조승수 노회찬 (사진 출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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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나라당 참패

ㄱ. 박희태 체제 정치적 사망선고 (사진 출처 : 한겨레)
ㄴ. 박근혜 영향력 재확인 및 이상득의 "형님 정치" 영향력 급감 : 이례적으로 50%가 넘는 큰 참여율을 보인 경북 경주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이상득(이명박의 친형)이 민 (당근 친이명박 계열) 정종복 후보가 '나가리'되고, 친박근혜 계열인 무소속 정수성 당선. 친박 vs. 친이 당내 갈등 심화 가능성. 참고로 경주 투표율은 "지난해 4.9 총선 투표율인 51.9%보다도 오히려 1.9%포인트 높은 53.8%로 집계돼, 역대 선거사상 재보선이 본선을 앞지르는 첫 사례로 기록"(연합뉴스, 안영수)
ㄷ. 정몽준 영향력 하락 : 울산의 맹주를 자처하는 정몽준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박대동 한나라당 후보 조승수 진보신당 후보에 밀려 낙선.

3. 민주당 : 절반의 승리, 여전한 불안요인 잠복 
ㄱ. 핵심 수도권 방어 : 정세균 체제의 안정 요인으로 당분간 작용할 듯  
ㄴ. 정동영-신건 복당 변수 : 정세균 체제의 불안 요인
한겨레(손호진)는 수도권 선전으로 인해 정세균 체제가 당분간은 안정될 것임을 강조하는 입장인데 반해서 프레시안은 민주당의 불안요소를 강조하는 대조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실질적인 호남 승부처였던 완산갑마저 정동영 전 장관의 영향권으로 접수됨으로써 민주당은 심각한 내분에 휩싸이게 됐다."(프레시안)

4. 총평
ㄱ. 6월 국회에서 MB악법 저지할 수 있는 명분과 주도권 확보.
ㄴ.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 민주당에 대한 경고로 요약"(프레시안)
민의에는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징후 .... 반MB층이 본격적으로 결집하기 시작 ....민주당 역시 불신의 대상으로 굳어져...." (프레시안)

5. 요약 후기 (관심있는 사람만 읽기) 
다른 부분이야 고개를 끄덕거리지만, "반MB층이 본격적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이건 '희망사항'이 가미된 판단인 것 같기도 하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어떤 증오스러운 대상에 대한 감정만으로는 새로운 비전이나 희망을 만들어내기 힘든 것 같아서...그 증오의 이면에는 희망이라거나, 소망이라는 긍정적인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반MB층"이란 거에 그런게 있는지 좀 의문이다. 그냥 경제가 지랄 같다거나, 혹은 웹과 친한 블로거들, 네티즌들은 인터넷 정책이 맘에 들지 않는다거나, 언론정책이 심하게 짜증난다거나... 뭐 이런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대부분의 소시민적 욕망의 저변에는 여전히 '조선일보'처럼 언터처블한 권력에 대한 모방욕구가 압도적이지 않나.. 뭐 이런 생각이 든다.  F4는 조선일보의 드라마 버전 같다는 생각이 들고, 김연아는 조선일보의 스포츠 스타 모델 같다는 생각도 든다(김연아에 대해선 유감이 없으니 이 부분은 오해하지 마시라. 그 표상에 잠재된 욕망에 대한 모방심리랄까... 뭐 그런게 겹친다는거다). 온갖 이미지들의 상투형들은, 그게 무한도전이든, 일박이일이든, 전지현이든, 김태희든 간에, 나에게는 모두 삼성스럽다거나 조선일보스럽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게 무슨 강박증인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예민해서 추상적인 상상력 같기도 하다.

4.29 재보선은 꽤나 관심을 갖고 있던 이슈였지만, 그리고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솔직히 민주노동당에 대해선 그다지 큰 기대를 갖고 있지도 않고, 물론 한나라당이나 민주당보다야 평가하지만)이 선전해서 기분도 좋지만, 그냥 뭐랄까, 담담하달까, 냉랭하달까... 그런 느낌이 좀더 강하다. 정동영이 전북의 맹주 역할을 유지하던 말던, 정세균 체제가 유지되건 말건, 박희태가 넋 놓고 있던, 이상득이나 정몽준의 당내 입지가 축소되건 말건... 도무지 나와 무슨 상관? 이런 회의랄까, 압도적인 환멸이랄까... 그런 거... 물론 희망을 발견해내고 싶기는 하지만, 그런 관성화된 환멸감, 무기력이 나를 더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감수성인 것 같다...

* 관련 추천
한나라 '빵점', 민주 '20점'…'민심'은 분노했다 (프레시안, 임경구)
"여야 각 당이 집안싸움에 매몰돼 선거를 기형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민심은 그에 교란되지 않고 이명박 정부와 집권여당에게 명징한 경고장을 던진 셈이다." (프레시안, 임경구)
위 기사의 논평("집안사움에 매몰돼 선거를 기형화")과 관련해서 아래 연합뉴스 기사에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을 상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나라당이 엄연히 존재하는 '친박(친 박근혜) 정서'를 수용하지 않고 지난해 총선에서 패배한 친이(친 이명박) 후보를 내세운 것이나 민주당 지휘부가 당의 대선후보를 지낸 인물을 공천에서 배제한 기형적인 행태에 대해 표심은 거부감을 갖고 있음을 확인"(연합뉴스, 이우탁)

아싸 재보선 (capcold) : 작은 승리에 너무 도취하지는 말고, "제국의 역습"에 대비하자는 취지...지만 그래도 짧게나마 승리를 만끽하자는 글.

1년 내내 투표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이정환) : 딱히 4.29 재보선과 관련이 있는 글은 아니고. "박지웅 영남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수시 투표제와 투표 총량제를 활용해 투표권 회계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참신한 주장"을 했다는데, 이를 정리한 글. 글만 읽어선 참신하다는 생각보다는 좀 복잡하다는 생각이 우선 들기는 하는데.. 뭐, 물론 이렇게 되면 좋기는 하겠다.

보궐 이후 (행인) : 오랜만에 읽는 행인의 글. 그래서 더 반갑다능..

* 참조 : 재보궐선거 실시 사유 및 실시일 등



블로그래픽 제16차 공개회의입니다. 회의는 대외비로 할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공개를 원칙으로 합니다(2009년 1월 1일 부터.) 블로거라면(독자도 물론이구요) 누구나 회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1주 1회 원칙. 일요일 혹은 월요일을 공개 회의안 작성일로 정할까 합니다.

* 지난 주 글

1. 3분링크 [No.4] 4월 셋째 주 (2009.4.13~19) (2009년 04월 21일)
2. 지배 by nooegoch (2009년 04월 26일)
3. [블로그래픽] 'Blographer's pick'을 제안합니다. (펄)

1. 3분링크에 소개된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2. 누에님께서 형상화한 '지배'라는 이미지는 다음 텍스트가 재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3. 펄님의 글은 블로그래픽에 올려진 글은 아니고, 펄님의 개인 블로그에서 블로그래픽에 대한 제안을 담은 글입니다. 일단은 3분링크와 펄님께서 강정수씨의 논평을 참고삼아 제안한 위 안을 '교통정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의견 주시길 바랍니다.

★ 따끈한 이야기 ★

1. 3분링크와 'Blographer's pick' 의 교통정리
기존 3분링크와 일정부분 겹쳐지는 펄님의 제안이 있었습니다. 앞서 짧게 말씀드렸듯이 이 부분의 교통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요. 3분링크를 우선 정착시켜가면서, 위 펄님의 제안이 좀더 디테일한 부분에서 가미되거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아니면 펄님의 제안이 담긴 요소들을 통합해서 만들어가는 것이 좋을지를 결정하면 좋겠습니다. 의견 주시기 바랍니다.

2. 컨퍼런스의 주제와 형식 : 특히 바캠프안에 대해 (계속)
바캠프는 최소한의 형식으로 공통관심사를 갖는 다양한 성원들이 참여해서 '반드시 발언'한다는 원칙만을 지키면 되는 가장 자유분방한 형식의 '난장토론'인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준비작업은 매우 긴요할 것 같은데요. 우선 행사를 준비하는 참여 스태프들을 선정해서 스케줄을 좀더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ㄱ. 바캠프의 취지를 알리는 홍보활동 : 메타사이트 등에 협조 요청 여부
ㄴ. 참여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ㄷ. 준비과정에서의 스케줄 관리
ㄹ. 장소 섭외 및 당일 일정 관리
ㅁ. 온라인과의 연계 방식 : 사이트 개설 유무, 현장 실황 중계 여부, 현장 토론의 정리
위 개략적인 얼개들에 대해서 역할 분담 및 자발적인 동료블로거들의 참여방법을 모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3. 새로운 테마와 카테고리 (계속)
동인 각자가 책임지고 쓸 카테고리를 하나씩 마련하고, 나머지는 '공통 카테고리'로 묶어 최소화하는 이원화 체계를 가져갔으면 합니다. 이번주 내로 테마와 카테고리를 정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습니다.


★ 미지근한 이야기 ★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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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쓸거리]

more..


* 블로그래픽 홧팅!
http://blographic.net 

* 의견 주세용! ^ ^



대결적 블로깅 : 도장깨기 신화

2009/04/27 16:09
'인터넷 논객'으로 대표되는 우리시대의 '도장깨기' 신화는 '미야모토 무사시'류의 신화적 관극틀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  그 '논객'들은 학위가 있는가, 교수인가, 중앙일간지에 기고하는가, 방송에 출연하는가, 책을 냈는가 따위의 세속적이며, 과시적인 표지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일종의 외교술인 셈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대단히 유치하고, 또 실질적으로 위험한 표지들이다. 이것은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을만큼 자명하다. 지난 황우석 파동은 지식으로 치장된, 그리고 제도적인 조력을 받는 '구라'가 국가경쟁력이니 애국주의와 결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총체적인 혼란과 아수라장을 보여줬다. 이것은 자기 성찰 없는 지식이 갖는 파괴적인 속성과 야만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블로깅이 갖는 민주적인 속성, 그 가운데 내가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것은 '권위 저항적'인 속성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서로 다른 다양성의 목소리들이 수평적으로 대화함으로써 생겨나는 생명력, 그 가능성이다.  그것은 쉽게 말해 '실수를 통해서 성장하는 모델'이지, '실수를 통해서 붕괴하는 모델'은 아니다. 학위가 있는지, 기성언론에서 얼마나 노출도를 갖는지, 히트한 책을 냈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블로깅의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대화의 실질적인 풍경들이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즉 얼마나 많은 독자들에게 실존적인 울림을 주는가, 그 울림이 얼마나 지속적인 대화의 풍경 속에서 자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중요하다.

레오포드의 글을 읽다가 거기에 인용된 박권일의 글을 읽었다. 박권일이 블로그를 바라보는 방식은 대단히 아이러니한데,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대결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일종의 도장깨기 신화, 이 신화 속에서 블로거 혹은 논객은 일종의 무사시류의 '사무라이'가 된다), 또 말미에서는 이 도장깨기 신화 속에 잠재된 '권위저항적인 속성'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어 부분에는 찬동하지만, 그 과정을 바라보는 방식은 너무 위계적이고, 너무 대결적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박권일이 세운 전제는 대단히 위험한 전제라고 생각한다.

블로깅을 통해서 "자아가 붕괴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아가 견딜 수 있는 성찰을 이끌어내는 상처들이, 그리고 그 상처들을 극복해가는 자아의 성장이 생중계된다고 봐야한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또 누구나 잘못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자아가 붕괴'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블로깅은 도장깨기가 아니며, 블로거는 미야모토 무사시가 아니다.

이런 대결적인 블로깅의 전제에는 앞서 이야기한 세속적이며, 과시적인 표지에 대한 향수가 자리한다. 이런 퇴폐적인 향수 속에서는 블로깅이 그저 대화 시스템이며, 그 대화시스템이 갖는 유희적인 속성, 실존적인 속성, 수평적인 속성을 읽어내지 못한다. 혹은 그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넉넉하게 수용하지 못하고 너무 진지해진다.

블로깅은 그저 실수투성이의 대화이고, 그 대화가 논쟁의 형식인 경우에, 그 논쟁으로 인해 잠시 쪽팔릴 수는 있겠으나, 그것으로 자아가 붕괴된다면 원래 그 자아는 그 정도의 자아였을 뿐이다. 그저 블로깅을 통해 자신의 실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을 갖게될 뿐이다. 궁극적으론 다름을 통해 좀더 고양된 인식의 지평을 확보할 수 있는 내적 성찰의 기회를 갖는 삶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일 뿐이다. 논쟁을 통해 '자아가 붕괴'된다는 둥의 호들갑을 떨 일은 전혀 아니다. 한 광기어린 철인이 이야기한 것처럼 위대한 정신은 숭배받기 보다는 비판받기를 원한다. 그 비판을 통해 자아는, 정신은 자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뿐이다. 블로깅이 무슨 싸구려 놀이감으로 폄하되는 것도 이상하지만, 무슨 자아의 붕괴를 이야기할 정도로 괜한 신화적 관극틀을 통해 심각해질 필요도 전혀 없다.


* 발아점
레오포드의 글에 인용된 박권일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