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처받은 연약한 사춘기의 감수성을 불러오는 귀엽고, 민감하며, 사색적인 사운드.

2.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환멸스런 기억. 그런데 사무치게 그립다. 연애란 게, 사랑이라고 채색된 그 환장할 감정이 실은 얼마나 가증스러운 제비뽑기인지 깨닫게 되었던 순간.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순간. 내 마음 속에 영원히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울음이 싹트기 시작한 그 때. 마치 내 몸이 눈물로 만든 껍질 같던 그 때. 남은 삶이란 그저 개에게 줘 버려도 좋은 부록같은 것이 되어버렸지만... 그래서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수는 없"(앵콜금지요청)지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때 그 맘"을 간절하게, 간절하게 원하는.



* 발아점
눗의 블로그 



추1.
브로콜리 너마저 (@마이스페이스) : 일단 노래들은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
http://www.myspace.com/broccoliyoutoo

추2.
브로콜리 노래들 구입하려고 정말 오랜만에 벅스에 갔다.
FF에선 버벅대고, IE에서도 뭔가 좀 짜증스러워서(액티브엑스 설치해야한다는) 일단 후퇴.
요즘은 거의 모든 MP3파일이 DRM-FREE인 상태로 유통되는 것 같다(나름 신기하고, 반가웠다).
한편, 그 MP3파일 구입시 이용권한이 내 (설치형) 블로그에 내 독자들을 위해 함께 듣자고(다운로딩하라고가 전혀 아니라) 올리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건지 궁금하다(아마도 아닐 것 같지만).

추3.
컬러링 아주 아주 오랜만에 '앵콜금지요청'으로 바꿔볼까 생각중(지금 컬러링은 유키 구라모토, '숲의 소네트').
벅스에서 1300원이더라. 다른데도 그렇겠지? 약간 비싸단 생각도 얼핏.




며칠 전 베를린로그의 강정수가 귀국해 과 함께 만났다. 강정수의 주된 관심주제 중 하나가 온라인 저널리즘, 그 시장성이다. 더불어 웹에 기반한 블로기즘, 저널리즘의 영토를 오프라인과 연계시켜 확장하는데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몽환 같은 혁명의 꿈. 그 꿈을 꾼 자들의 머리맡에 남겨진 눈물 같은 잔상들. 그 저주이자 축복인 꿈, 그 꿈을 다시 꿀 수 있다면 실패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누군가는 이 초라한 실패들을 다시 이어갈 수 있으리라. 벌써 희미해진 기억에 의존해서 옮기면 우리가 이야기한 풍경들 가운데 일부는 이런 것들이었다.

꿈을 꾸는데도 이제는 돈이 필요하다. 정확히 말하면 그 꿈을 계속 꾸려면 돈이 필요하다. 종종 하는 이야기. 버지니아 울프는 아주 단정적으로 말한다. 여자가 아직 인간이 아니었던 시절, 여성의 선거권과 돈, 이 둘 중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그건 당연히 돈이라고(자기 혼자만의 방). 블로그 수익모델 이야기다. 네이버에서 성업중인 요리 블로그, 인테리어 블로그는 이 모델과 그다지 상관없다. 네이버만은 못하지만 다음뷰와 같은 (전문 메타의 유통규모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거대 유통망과 짝짜궁인 블로그도 이 모델과는 크게 상관없다. 그러니 기성 온라인 저널리즘의 거대 트래픽 모델과는 별 상관 없는 이야기다.

heterosis @aleph_k 이젠 돈 안되는 글은 안쓸거야. 이상한 사람들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 같아서. 돈되는 글에 필요한 공부만 하고 돈되는 글만 써서 블로그 따위엔 공개 안할거야. 트위터는 그냥 스트레스 푸는 걸로 돈버는 거임.
- 김우재의 트위터

그렇다고 별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예상했겠지만,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책 제목을 빌려온거다. 기존 블로그 매개 마케팅와 연계한 블로그 수익모델은 '선불제'였다. 그것은 블로그의 자율성을 마케터의 요구에 종속시키는 모델이거나, 적어도 양자의 긴장 관계에서 마케터가 주도권을 갖는 모델이다.

후불제 블로그는 종종 주장했던 '소액 결제시스템'의 연장이다. 그걸 좀더 직관적인 비유로 표현한 거다. 왜 블로그 테마(스킨)는 점점 더 더디게 공개되나. 왜 김우재 같은 블로거는 "이상한 사람들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 같다"는 불만을 갖는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블로깅 했던 김규항은 블로그와는 전혀 상관없이 '예수전'을 출판하나(물론 홍보는 블로그상으로도 꽤 되고 있는 것 같지만).

돈이다. 블로그 시대에 어떻게 뉴미디어 활동과 돈이라는 시스템의 요구는 상호 조화와 긴장 관계를 갖고 조율될 수 있는가. 문제는 블로그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활동이 지속적인 에너지를 갖는 방법이다. 그 지속성이 독자적인 자율성을 견지하면서 에너지를 확장하는 길이다. 여기에서 돈은 (아주 예외적인 몇몇의 블로그들을 제외하면) 필수불가결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행위가 적어도 지금 당장은 돈이 되지 않더라도, 돈이 될 수 있는, 혹은 그것과 맞바꿀 수 있는 가치라는 기대를 줘야 한다.

기존 트래픽 모델은 아무리 생각해도 블로그계의 자율성과 독립성, 그리고 다양성을 견인하기 어려운 모델이다. 한국어라는 한정적인 부피를 갖는 언어의 규모로도 그렇고, 네이버로 대표되는 독점적 유통시스템(검색엔진)과 블로그 메타의 지지부진을 봐도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블로그계 수익모델은 개별 블로그 단위에선 트래픽에 기반한다. 그게 상품홍보(IT, 요리, 인테리어 등등)이든 메타(포털과 메타블로그)의 간접적인 미끼질에 봉사하는 활동이든(특히 연예계 이슈 포스팅) 마찬가지다. 트래픽 모델은 어쩔 수 없는 잘 팔리는 이슈에 대한 편중과 미끼질을 양산할 수 밖에 없는 모델이다.

'후불제 블로그'라고 명명한 블로그 수익모델은 기술적으론 '소액결제 시스템'과 연계한다. 블로그 문화의 차원에선 그 상품(블로그는 웹상의 출판물이고, 그것은 광의로 포섭하면 의미상품으로 유통된다.)의 질적 수준과 대중성에 따라 독자권력(비평권력)과의 창조적 긴장관계를 노정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델이 보편적인 방식, 적어도 의미있는 방법론으로 정착하기 위해선 제도적인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 제도적인 보완은 우선 차치하고, 적어도 이제는 정말 진지하게 독자권력의 실질을 논의할 시기에 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수동적이고, 일방향적인 수익모델과 연계하는 방식의 기성 '선불제'가 아니라, 독자권력, 비평권력을 더불어 추구하는 '후불제'가 되어야 한다.

적어도 블로그계의 발전에 눈꼽만큼이라도 관심이 있는 전문 메타사이트들, 그리고 블로그 미디어 네트워크를 꿈꾼다는 태터앤미디어 등은 이 모델이 현실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 마땅하다. 이미 늦었다. 더 늦어져선 안된다. 후불제 블로그는 '그 시장의 난장이들'이 블로그시대에 맞게 적응하고, 생존하는 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이 글은 블로그 연구모임 준비작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 최근 네이트 블로그독(블독)이 문 열었다. 불평불만 짧게 적어본다.


1. 프레이밍 링크 (프레임 주소) : 주소 왜곡하기

가장 맘에 안드는 거다. 다음뷰도 프레임주소를 개선한다는 판이다. 블로그독은 후발주자다. 새로워도 시원찮다.  그런데 기존 악습을 퇴행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골룸은 솔직하게 말한다. 아직은 "쿨하기 어렵다"고. 좋다, 인정한다. 쿨한 것까지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른 메타블로그의 프레임 주소보다 더 악질은 되지 말아주세요!' 이런 차원이다. 나는 언젠가 좀 과격한 비유를 동원해서 이런 메타서비스의 행태를 비판한 바 있다. 블로그 창씨개명이다. 그 생각 변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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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이름 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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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폭소노미 분류에 기반한 검색 : 불완전한 검색
'폭소노미'라는게 있다. 무슨 폼나는 말 같다. 별거 아니고, 기존 위계적 정보분류가 아닌 수평적 정보, 특히나 사용자 참여의 태그(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분류(에 따른 검색) 방식을 말한다. 어감이 지적 된장풍이라서 겉멋은 있지만, 이거 개인적으론 메타블로그 검색시스템의 취약성을 반영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 분류 및 검색의 장점을 취하기 위해선 좀더 엄격한 노이즈 필터링이 필요하다. 현재의 빈약한 컨텐츠 부피로도 불필요한 정보(노이즈)가 꽤나 심하다. 골룸은 키워드 단위의 정보 수집(블로그 단위 정보 수집이 아니라)은 "블로그 하나를 구독하면 그곳의 모든 글들이 따라온다"고 기존의 블로그 단위 정보수집 방식의 난점을 지적한다. 블독에서도 노이즈 필터링이 구현되지 않으면 이 난점은 여전할 것 같다. 더불어 이 기능이 구글알리미(키워드 RSS)와 같다고 말하는 골룸은 "왜 달라야 하나?"라고 반문한다. 같으면 다행이다. 솔직히 같지 않다. 추출되는 컨텐츠 풀의 부피도 그렇거니와 필터링 품질에 있어서는 블독이 현저히 밀릴 것으로 확정적으로 예상한다.

그러니 이 방식으로 효율적인 정보 수집/관리가 가능할 것 같지 않다. 부피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 그럴거다. hof의 댓글 설명처럼 이게 대중적인 기호에 부합하는 방식인지도 좀 의문이다. 차라리 포털식 떠먹여주는 백화점 방식(현재 블코의 방식)이 대중적인 기호에는 부합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족. 이 방식을 계속 유지할 생각이라면, '검색'이라고 하지 말고, 사용자 이해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키워드 검색' 혹은 '태그 검색'이라고 좀더 그 의미를 한정해서 알려주면 좋겠다. 복합한 형태(가령 문장형태)로는 잘 검색되지 않는다.

4. 단순이즘(미니멀리즘)인가? 썰렁이즘인가?
UI는 모든 것이다. 블코는 포털의 백화점식 표시체계를 전략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뷰는 표시체계의 외적 객관성을 추구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내재적 편집권한을 나름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 같다. 올블은 헤드라인 박스에 여전히 목숨거는 것 같다(추천글 시스템은 이제 거의 손 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믹시는 모든 것들을 다 구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나머지 직관적인 접근성을 현저히 약화시키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단순이즘이 가장 필요한 메타는 믹시라고 개인적으론 생각한다.

네이트 블로그독은 단순이즘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뭐, 좋다. 그런데 이건 단순이즘이 아니라, 썰렁이즘 같다. 나는 메타가 정보를 나름의 메타 철학으로 분류해서 그것을 가장 짧은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그리고 좀더 바라면 이슈의 완결성을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회고적 아카이브의 구성)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블독으로 이것이 가능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블독이 기대하는 전략적인 타켓층 바깥에 내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5. 결 : 메타블로그는 평판시스템이다.  
블로그계에서 전문화된 메타 블로그의 존재는 여전히 대단히 필요불가결하다. 네이버 제국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웹에선 더더욱 그렇다. 네이버는 여전히 기대하기 어려운 엉터리 검색엔진을 운용한다. 웹 콘텐츠의 조화로운 순환은 네이버라는 블랙홀 속에서 증발한다. 네이버는 쌔삥하고, 자극적인 연예 키워드, 이슈 키워드 중심으로 트래픽 유치하고, 화면 잘 꾸며서 뺑뺑이 돌리고(가두리 양식), '키워드 광고'로 돈 벌면 땡이다. 이런 판국에 블로그를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은 획일적인 의미편중 시스템의 변방으로 계속해서 밀려난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웹2.0이라는 이제는 정말 오래된 유행어의 그 '집단지성' '대중의 지혜'를 빌려오는 '평판시스템'의 온전한 구현은 더 간절한 것이다.

종종 강조했지만, 궁극의 메타는 블로그 그 자신이다. 하지만 우리는 친구를 원한다. 블로그독은 '평판시스템'이라는 메타의 본질요소, 이걸 내 개인적인 관점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에 대해선 아무런 대답을 주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친구를 기대했던 나로선 대단히 아쉽다.


. 가입과정 - 제한적 본인확인제 때문에 살짝 짜증.

참조. 제한적 본인확인제 - '망법'(소위 '정보통신망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5 (게시판 이용자의 본인 확인)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게시판을 설치ㆍ운영하려면 그 게시판 이용자의 본인 확인을 위한 방법 및 절차의 마련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필요한 조치(이하 "본인확인조치"라 한다)를 하여야 한다.
1.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 제3항에 따른 공기업ㆍ준정부기관 및 「지방공기업법」에 따른 지방공사ㆍ지방공단(이하 "공공기관등"이라 한다)
2.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서 제공하는 정보통신서비스의 유형별 일일 평균 이용자 수가 10만 명 이상이면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되는 자
② 방송통신위원회는 제1항 제2호에 따른 기준에 해당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본인확인조치를 하지 아니하면 본인확인조치를 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③ 정부는 제1항에 따른 본인 확인을 위하여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④ 공공기관등 및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제1항에 따른 본인확인조치를 한 경우에는 이용자의 명의가 제3자에 의하여 부정사용됨에 따라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줄이거나 면제받을 수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9조 (본인확인조치)
법 제44조의5 제1항 각 호 외의 부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필요한 조치"란 다음 각 호의 모두를 말한다.
1. 「전자서명법」 제2조 제10호에 따른 공인인증기관, 그 밖에 본인확인서비스를 제공하는 제3자 또는 행정기관에 의뢰하거나 모사전송ㆍ대면확인 등을 통하여 게시판이용자가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할 것
2. 본인확인 절차 및 본인확인정보 보관시 본인확인정보 유출을 방지할 수 있는 기술을 마련할 것
3. 게시판에 정보를 게시한 때부터 게시판에서 정보의 게시가 종료된 후 6개월이 경과하는 날까지 본인확인정보를 보관할 것

제30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중 본인확인조치의무자의 범위)
① 법 제44조의5 제1항 제2호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되는 자"란 전년도 말 기준 직전 3개월간의 일일평균 이용자수가 10만 명 이상인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를 말한다.
② 방송통신위원회는 법 제44조의5에 따른 본인확인조치에 필요한 준비기간, 적용기간 및 제1항에 해당하는 자 등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방법으로  공시하여야 한다.




소셜서비스는 시한폭탄, 2PM 박재범 사례… (그만,  09.9.6.)
당신도 박재범이 될 수 있다. (리승환. 09.9.7.)
한국비하 분개드립, 소셜미디어의 속성에 대처하기 (캡콜드. 09.9.7.)

#. 이 글은 생각나는대로의 무책임한 단상이다. 비판의견은 물론 환영.


1. 다양성 : 소통한다는 환상
문제의 본질은 소셜미디어가 다양성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지지하는 척하는 기만적인 상징으로만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소셜미디어는 유행어로 유통한다. 트위터나 미투데이 같은 마이크로 블로그, 혹은 SNS가 소셜미디어적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처럼 광고되지만, 정말 그렇게 광고만 된다. 이것이 '광고'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시장의 요구, 무선웹 시대에 IT관련 산업들의 돈벌이를 가능하게 해줄 다양한 상품의 가능성을 획일적인 욕구에 종속시킨다. 즉 거꾸로다. 다양한 의견과 사상과 취향의 가능성을 다양한 상품들이 지지하는 형태가 아니라, 그런 환상적인 소통이 획일적인 이윤추구의 목적 하에 다양성으로 채색된다. 실은 다양성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이라고 착각하는 새로운 상품(이른바 소셜미디어)를 소비함으로써 다양성이 확장된다고 착각만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환상이 생겨난다.

그리고 여전히 기존의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며, 좆같은 관습적 패턴은 내내 안녕하시다. 그래서 대한민국이라는 좆같은 시스템에서 특히나 더 더욱 새로운 미디어의 잠재력은 기존의 제도적, 문화적 관습에 잠식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무선웹과 연동하는 단문 위주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인맥서비스), 가령 트위터와 미투데이, 싸이월드 등은 이런 획일화된 시장욕구의 얼굴마담 역할을 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 보인다.

2. 맥락
특히 트위터나 미투데이와 같은 단문 위주의 커뮤니케이션 기제들은 맥락을 거세시키고, 단편적인 편린들을 직관적인 형태로 수용하는 심리적 수용패턴을 구조화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가장 발전한 것으로 알려진 특유의 한국적 저널리즘, 소위 '미끼저널리즘' 혹은 '찌라시즘'의 훌륭한 먹이가 된다. 여기에서 다양성을 소구할 수 있는 '맥락'은 철저하게 축소되거나 증발해버린다.

그리고 결국 맥락이 거세된 '이슈'는 한겨레 같은 이른바 진보매체도 지지해마지 않는 애국주의 마케팅의 도구로 전락한다. 그것은 마케팅 도구면서, 그 대상이며, 동시에 감각적이고, 자극적이고, 정치적인 담론기제다. 획일화된 관극틀은 일단 편리하다. 그리고 순발력 있는 담론생산과 유통, 그리고 선정적인 틀짓기를 가능케 한다. 이른바 흑백논리와 이분법적 시선은 늘 당신의 심장에 불을 지른다. 이것이 전적으로 부정적인 속성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늘 민주주의와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3. 시장의 논리 : 애국주의 마케팅
일이십대 빠돌군과 빠순양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표피 그 자체가 본질인 현상들을 만들어낸다. 스타일과 섹시함이 지고의 가치로 떠오른다. 그리고 이제 그것들을 상품화하는데 전력을 기울임으로써 소위 일이십대 문화의 내면적인 상징이었던 '저항문화'는 구호의 수준으로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붕가붕가와 러브러브가 그 구호를 대신한다. 미끈하고, 단순반복적인 유치원 타입 사이키델릭(가령 소녀시대의 '지지지'나 손담비의 '토요일밤에' 같은)이 우리 시대의 문화의 주류가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박재범의 하소연, 혹은 불평불만은 대단히 정치적이고, 비판적인 맥락을 갖는다. 그런데 그 맥락은 물론 거세된 채로, 대한민국 찌라시즘과 애국주의는 손쉬운 마녀사냥에 돌입한다. 그리고 그 마녀사냥의 회오리 바람에서 이른바 그 실체가 의심스럽기 그지 없는 '네티즌'이 동원된다. 네티즌은 마치 찌라시즘의 일당 없는 노예같다. 그리고 그게 그대로 여론이 되고, 그렇게 쓰레기로, 맥락도 없고, 철학도 없고, 고민도 일절 없는 쓰레기 그 자체로 유통된다. 그러니까 저널리즘은 자신의 직무를 적극적으로 유기했으면 좋겠을 바로 그 수준으로까지 스스로의 정체성을 쓰레기 통에 쳐박고, 아주 불쌍할만큼 타락한 극저질의 구역질나는 쓰레기들만을 유통시킨다.


4. 결 : 요약.
(문득 여기까지 읽은 독자의 노고에 글을 빨리 끝내는게 보은하는 길이라는 깨침을 얻어.. 서둘러 끝낸다.)

트위터나 미투데이로 대변되는 소셜미디어의 사회적 잠재력은 '다양성'의 확장에 있다. 그것은 물론 앞서 지적한대로 표피적인 가짜 상징들, 고리타분하고, 관성적인 권위주의, 그리고 한국적 찌라시즘의 구조, 그리고 시대정신 그 차체인 붕가붕가와 러브러브의 철학없는 문화적 토양 아래서 목하 그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기 보다는 아예 기대조차 불허하는 것 같다.

웹은 물론 도구다. 그것은 도구이며, 그 안에 내재적인 철학과 그 잠재적 가능성을 담고 있는 대단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도구다. 그런데 그 다양성도, 현재 스코어, '소셜'이라는 대단히 바람직한 '가식'을 장착한 채로, 이른바 '스타 트위터' '유명인 트위터'의 연예인 우상화 구조로 변질된다. 이런 변종스럽고, 퇴행적인 현상을 한겨레나 시사인 같은 이른바 진보언론들에서도 앞장서서 두둔한다.

리승환이 지적하는 것처럼 "한국은 좆같은 나라"이기도 한데, 그 맥락은 거세되고, 고민할만한 가능성,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증발한 채로, 그 불경한 목소리만 거룩하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 그 고결한 시장의 법칙에 의해 '일망타진'된다.

좆같다.


* 발아점
한국비하 분개드립, 소셜미디어의 속성에 대처하기 (캡콜드. 2009. 09. 07) 



#. 2009-09-07일자
#. 조선, 경향, 한겨레 사설을 읽었다. 오늘중으로 한국, 동아 사설도 보충할 수 있으면 할까 싶은데... 하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ㅡ.ㅡ;

* 오늘의 사설
[조선] '외국인 모욕' 첫 기소, 부끄러운 편견 바로잡는 계기돼야
검찰이 외국인을 차별한 혐의로 첫 내국인을 처음으로 기소(약식기소)했다는 소식. 지난 한겨레21에서 관련기사를 낸 바 있는 소식이다. 사설에선 "인종차별의 무의식적 기반이 단일민족"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것보다는 내면화된 오리엔탈리즘, 서양(특히 미국)에 대한 한편으론 맹목적이고, 한편으론 구조화된 무비판적 동경이 좀더 큰 심리적 기제로서 역할 하지 않나 싶다. 여기에 조선일보의 엄청난 기여가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무튼 조선일보에서 이런 소식을 사설에 올린다는게 좀 신기하긴 하다. 이게 이른바 조선일보식 휴머니즘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찌되었던 오늘의 사설.

* 관련 기사
냄새나는 한국인의 인종차별 (한겨레21 09.8.14. 773호)  : 이 소식 처음 다룬 한겨레 21.
‘외국인에 인종차별 발언’ 첫 기소 (한겨레, 09.9.7.)
특히 위 한겨레 21 기사는 대단히 많은 관심과 호응을 받은 기사. 나 역시 매우 평가하고 싶은 기사다. 그래서 좀 싫은 소리를 구태여 해본다. 조선일보 사설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한겨레21의 논점 역시 '일방적인 선'의 입장에서 '일방적인 야만/미성숙'을 전적으로 질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과연 유효한 방식이고, 관점인지 의문이긴 하다. 안수찬과 김하늬, 한겨레21 (+독자)는 그토록 순결하기만 한가.. 뭐 그런 의구심... 바깥에서 그 비판의 대상을 찾아내기 보다는 스스로 먼저 자기 안에 있는 행태들, 내면화된 찌꺼기들을 스스로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물론 대단히 공감가는 문제의식이긴 하지만, 다소 예민하다는 느낌, 그러니 역편향의 느낌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러니까..."정말 그런가?" 싶은 부분도 없지 않다.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너무 범죄 피해자의 '정황상 과장'의 연장에서 그것이 일상적인 폭력으로 행사되는 듯 묘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좀 오버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다. ( 트위터 단상 참조.)


1. 북한의 임진강 댐 방류 의혹 관련

[조선] 댐 수문(水門) 연다 전화 한 통화 안 한 북(北)
6일 새벽 임진강 야영객 6명의 실종사건과 인근 북한쪽 댐의 예고 없는 방류간의 인과관계 추정에 관한 사설. 관련 만평 제목이 "진짜 구제불능 집단"인데, 이것이 남쪽의 야영객에 대한 살인(?)을 의도한, 적어도 미필적인 고의에 의한 것이라면 대단히 비인도적인 행태라는 점은 나 역시 충분히 인정하지만, 추정만으로 "진짜 구제불능 집단" 운운은 좀 지나친 선입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나 역시 둘다 구제불능 집단이라는 생각이 잠깐 스치기도 하지만.

[경향] 유감스러운 북한 임진강댐 방류
"2005년 7월 경제협력 10차 추진회의에서는 남북이 ‘북측의 댐 방류계획 사전 통보’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제도화 되지 않았다." 그동안 남북간 대화에서 임진강 하류 주민들의 홍수 위험에 관한 논의가 주요논제였다는 점에서 특히 이번 사건의 아쉬움을 전하고 있다.

2. 총부채상환비율(DTI)규제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
[경향] 부동산 안정, 대출규제만으론 부족하다
지 난 주말 정부의 총부채상환비율(DTI)규제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 저소득권에선 이번 대출규제로 오히려 주택구입이 어려울 수 있고, 대출규제는 단기처방에 불과하며, 장기적으론 "투기적 자금 유입의 차단"에서 문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사설. MB의 세제, 부동산 정책이 투기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를 무력화했음을 지적하며, "개발이익 환수장치 및 고가주택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 오늘의 사설.  

[한겨레] DTI 규제만으로 집값 잡을 수 있을까
이번 조처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으로 평가하면서, 다만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금리인상과 부동산 보유세제 강화" 등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3. 기타 : 경제. 지자체 통합, 행정도시(정운찬), 한나라당 대표 교체 등
[조선] 경기 살아났다지만 가계 빚이 37조원 늘었다
뭔가 수치와 퍼센트, 통계 이야기를 잔뜩하고 있지만 결론은 "보완책과 일자리 창출" "세심한 정책관리와 ... 경각심" 따위의 한심한 이야기.

[경향] 자치단체 자율 통합에도 ‘큰 틀’은 있어야
1. 주민 뜻을 존중하고, 2. 전국 단위의 행정체제 개편이라는 큰 틀을 마련한 상태에서 3. 자치와 분권의 지방자치제도의 본질을 훼손함이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상식적 이야기.

[한겨레] 갈등과 불신 심화시키는 행정도시 축소론
정운찬의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계획 수정론(축소론)에 따른 파장. 정부와 청와대에선 겉으론 충청권 민심 동요를 의식해서 '원안'대로 한다지만, 이것도 의심스럽다는 입장. 경제논리만으로 행정도시를 바라봐서는 안된다고 한겨레는 말한다.

[한겨레] 한나라당 대표 교체, 집권당 책임 높이는 계기로
떠나는 박희태에겐 아주 확인사설 하고, 새로 대표를 맡는 정몽준에겐 갸우뚱할 정도로 호의적인 사설. 박희태에게 논설위원이 무슨 감정있냐, 뭐 이런 댓글도 있다. ㅡ.ㅡ; 나로선 정몽준에게 왜 이리 호의적인지 그게 오히려 궁금하다.


#. 보유. 2009-09-05 일자
[조선] 핵(核) 포기 의사 없는 북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북한이 안보리 의장에게 전달한 북핵 관련 서한(09.9.3.)과 관련한 사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잘' '적절히' ㅡ.ㅡ; 북핵 문제는 외교적인 노력(6자회담이나 북미대화)으로 해결될 가능성보다 "북한 체제와 운명을 같이한다"고 보는게 현실적이라고 말하는데, 그 양자(외교적 노력과 체제유지)가 어떻게 분리되는지에 대해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