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스포일러 (전혀, 민감한 경우라면 거의) 없습니다.

날아라펜귄

0. 인권위에서 제작비 댄 영화. 정확한건진 모르겠는데 '만든 사람들 자막'에 올라간 제작자가 MB정부 비판하면서 떠난 전(前)인권위원장 안경환인 것 같다. 혹 동명이인인지 모르겠지만, 아, 인권위에서 제작하면 인권위원장이 제작자로 이름을 올리는구나... 싶어  신기했다.

1. 좋게 보면. 사교육. 직장내 소외. 기러기(펭귄)아빠. 노년(황혼이혼)이라는 일상적인 주제에 대한 균형감 있는 접근.

2. 나쁘게 보면. 중산층의 배부른 고민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는 면죄부.

3. 연기는 썩 훌륭하지도 썩 어색하지도 않은 기대에 딱 부합하는 정도. 문소리가 "요즘 젊은애들은..."하면서 어처구니 없어하는 정도가 인상적으로 기억난다. 손병호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배운데, 뭐랄까 좀 심심하게 역할 자체가 스테레오타입이다.

4. 실험적인 이미지, 전복적인 서사는 기대하기 어렵다. 몇몇 신경 쓴 디테일들(가령 거북이, 채식주의) 역시 좀 식상하다는 느낌이 앞선다. 특히 '나는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나?'... 좀 손발이 오그라드는 착함이랄까(그래서 그게 위선이라는 건 아니지만 좀 별종같다는 느낌, 친하지 않은 느낌.. 뭐 그런 것).

5. 결론은.. 보는 동안은 꽤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영화. 보고 나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40대 이상의 직장인 주부가 보면 꽤 좋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러니 임순례를 작가라고 기대한다면 피하길  권한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착하고, 적당히 문제의식을 담고 있으면서, 큰 과장 없이 담백하고, 맛깔스런 영화를 기대한다면 충분히 권할만한 영화라는 생각이다. 

추.
제목은 나름 미끼다(이게 솔직히 무슨 호기심을 자극하겠냐만..ㅎㅎ).
나는 이 영화가 싫지 않다.


참조. 영화 상영시각표 (2009-10-08 기준)
씨너스 이수 - 서울 동작구 사당동  :  09:30  13:45  18:00  20:10
CGV-압구정 - 서울 강남구 신사동 (구 씨네플러스) : 10:00  14:20  18:40  23:00
미로스페이스 - 서울 종로 : 11:30  16:00  18:20  20:30   
씨네코드(선재) - 서울특별시 종로 : 10:40  14:30  18:30  20:40
아트하우스 모모 - 서울 서대문구 : 12:40






* 주의 : 이하 스포일러 있습니다.








보충 : 중산층의 배부른 고민에 대한 고민 없는 면죄부
댓글로 궁금증을 표해주신 쉐부랑코님 덕분에 보충합니다. " 중산층의 배부른 고민에 대한 고민 없는 면죄부"라는 문구는 제목으로도 쓰인 문구인데, 가만히 보면 본문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이하 평서문으로 작성합니다. : )

[날아라 펭귄](이하 '펭귄')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특히 부부들의 직업과 거주환경은 다음과 같다.
1. 문소리(시청 공무원) + 박원상(회사원) 부부 : 아파트 거주.
2. 손병호(시청 공무원) + 김예령(전업주부. 조기유학한 아이들과 함께 외국에서 생활) 부부 : 아파트 거주.
3. 박인환(은퇴한 교육자?) + 정혜선(전업주부) 부부 : 아파트 거주.

아마도 서울 근교 시청 혹은 서울의 한 구청을 모델로 한 것 같은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고민은 자녀교육(1.2.)과 황혼이혼(3.)이다. 그 구도 안에서 문소리와 박원상은 자녀교육관 차이로 충돌하고, 손병호는 스스로 돈벌어주는 기계로 전락한 채 나머지 가족으로부터 소외를 겪는다. 박인환과 정혜선의 갈등은 그나마 자기 관여적인데, 그것은 가부장적 권위에 찌든 은퇴한 남편으로부터 이제 좀 자유를 만끽하려는 한 여자의 반란(가출)로 표출된다.

인물들의 갈등상황은 사회경제적인 모순 구조(특히 교육의 문제)에 기인하거나, 혹은 문화적 관습에 기인하고 있다.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설정이다. 즉, 이 갈등 구조는 대한민국 중산층의 고민을 대변한다. 그렇다면 감독은 당연히 질문한다. 이 대한민국 중산층을 둘러싼 모순은 어떻게 일상적으로 표출되는가? 표출된 모순과 갈등은 인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아쉽게도 표출되는 갈등의 모습도, 그 질문에 답하는 인물들의 행위들도 스테레오타입이다. 그러니 임순례는 이 영화 속에서 좀더 밀고 나가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멈춰선다. 여기에는 임순례라는 '작가'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타협하는 

승윤이의 일탈은 박원상의 우연적인 해프닝, 작은 선물(배려)로 마무리되고, 손병호의 실존적인 고민은 적당한 자기 타협으로 지워진다. 문소리는, 그 빼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 구조 속에서 여전히 낯선 타자처럼 대상화된 것처럼 느껴진다(물론 대부분 인물들이 그렇다). 그러니 모순적인 환경과 부조리한 구조 속에서 번민하고, 고뇌하는 인물들이 작가(임순례)의 고민어린 '선택'을 거쳐 영화로 형상화되었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관습적인 이야기 요소들이 '대한민국 중산층의 고민은 뭐야?'라는 라는 질문에 기계적으로 답해지고, 배치된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이것은 대단히 상식적이고, 또 건강하며, 도덕적으로 올바른 방향성을 갖는 것 같다.

다만 그것을 그저 건강한 상식주의라고 평가하기 어려운 건, 작가 임순례의 '선택'이라고 보기 어려운 건, 그 상식주의가 그저 기계적인 모범답안처럼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식주의 혹은 그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채 점점 더 미쳐가는 이 사회의 야만에 대해 인물들은 별다른 고민없이 낭만적으로 타협(박원상)하거나, 혹은 기계적으로 그 구조를 스스로 체현(문소리)한다. 나머지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마치 그들은 역할 기계들의 의미 조합처럼 단순화되고, 평면화된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임순례가 창조한 인간은 단 한명도 없다. 어디서 봤던, 그런데 그게 삶이 아니라, 삶을 표피적으로 모사하는 기존의 관습적 이야기 요소들에서 느꼈던 그 파편들이 그저 따뜻한 느낌으로 채색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가 실패작이라거나 혹은 쓰레기 영화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을 통해 일상의 고민들, 자신들의 고민들이 좀더 이야기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런 고민들을 적당한 수준으로 이끌어내기엔 충분히 훌륭한 영화다. 다만 그 모순의 밑바닥에 있는 질문을 탐구하거나, 고민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 중산층의 고민에 대해 별다른 고민없이 기존 이야기 관습의 요소들을 작가적 고민없이 배치하고, 조합한 영화다. 그것이 임순례라는 내가 애착하는 감독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박원순 이사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와 'Governance(가버넌스)'가 없는 이명박 정부의 실용정치에 상당한 위기감을 느낀다”면서 “실용과 거리가 먼 인사시스템, 진정성 없는 서민행보, Governance의 부재 등을 비판했다. 'Governance'는 시민 다수가 이익집단, 시민단체, 언론 등을 통해 다차원적으로 참여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박원순 이사는 “최근 영국에 다녀오면서 대중지성과 집단지성을 활용해 행정과 정부의 기능을 강화시키려는 노력을 많이 봤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Governance는 거의 실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 류정민(미디어오늘), 박원순 “MB정부, 한순간에 무너질 것”, 2009.10.05.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3287

1. 즉각적인 느낌은... 뭥미?

(구체적인 기억은 아니고, 추상적인 기억의 집적에 불과하지만) 류정민 기자에 대해선 꽤나 호감을 갖던 터에 이런 기사를 읽으니 좀 어처구니가 없다. 그다지 길지 않은 이 기사에서 '가버넌스'라는 단어가 '가버넌스(Governance)'도 아니고, 'Governance(가버넌스)'로, 그 뒤에는 그냥 'Governance'로 연달아 4연속콤보로 등장하는 걸 보자니, 나 역시 한글을 아름답게 쓰지는 못하지만, 좀 짜증스럽다.

언론은 우리말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구사하는게 기본 의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박원순이 '가버넌스'(발음으론 '거버넌스'에 좀더 가까운 것 같다. 이하 '거버넌스'로 쓴다)라고 말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기사를 위해 그걸 꼭 인용해야겠다고 생각했더라도, 더 어울리는 우리말 표현으로 바꿔서, 바꿀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최소한 한글로 표기하는게 상식아닌가? 왜 인용어구도 아닌 곳에서 '거버넌스'(혹은 '가버넌스')를 굳이  'Governance'로 표기해가며 그 뜻을 설명하느라고 진땀 빼나? 정말 이건 뭐하자는 시추에이숑인지 모르겠다.

나는 앞서 '뭥미'라던가, '시추에이숑'이라던가 하는 야리꾸리한 표현들을 썼지만, 나는 블로거고, 류정민은 기자다. 이게 무슨 블로거들은 막말, 비속어, 은어를 써도 괜찮고, 기자는 그래선 안된다고 말하려는게 아니다. 자유로운 언어습관이 '허용'되는 영역과 그것이 '제한'되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고, 상식적인 평균인을 독자로 가정하는 언론에선, 가급적 쉬운 우리말 표현을 지향해야 한다는 거다. 왜 괜히 기사내용에 별 도움도 안되는 영어를 쓰지 못해서 안달인가? 무슨 심오한 기사라고, 박원순 동정기사고만.

2. 거버넌스(Governance)는 무슨... 염병... 지적 된장질 같다.  
이거 무슨 지적인 유행언가? 지적 된장질이라는 생각이 즉각적으로 들면서, 이걸 우리가 익숙하게 써왔던 '참여민주주의'로, 혹은 '협력적 통치'(협치), '참여적 통치' 등등으로 번역하면 그 위대하신 '거버넌스' 아니 'Goverance'에 흠이 가고, 그 의미가 달라지는 건지 알 길 없다. 이건 무슨 엄밀한 개념규정을 요하는 법률용어나 철학용어인건가? 개뿔이란 생각이 들 뿐이다. 게다가 '거버넌스'도 아니고, 'Governance'라고 쓰면 뭐 폼나는건가? 뭐하자는 짓인지 모르겠다. 어릴 적, 초딩이나 중딩 때 영어쓰면서 잘난 척 하던 유치한, 나도 물론 그 유치한 녀석들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 녀석들에게 종종 하던 말이 생각난다.

세종대왕이 지하에서 울겠다.  ㅠ.ㅜ;


* 발아점
"자리를 지키기 위한 박기성의 애처로운 몸부림을 지켜보면서 또 하나 생각난 것은 이 정권이 1년 내에 일패도지할 것이라고 '예언'한 박원순이다. (....) 진보세력에게 대안을 가지라고 충고하는 박원순을 보면서 해주고 싶은 말은 다른 것이 아니다. 당신의 대안은 뭔가? 충고하는 거 빼고."
- 행인, 그 날이 오나? 중에서
위 행인의 글 중에서 "이 정권이 1년 내에 일패도지할 것이라고 '예언'한 박원순"이라는 부분에 걸려 있던 링크가 미디어오늘 류정민 기사다.

* 참조
1. 거버넌스에 관하여 - 2009년을 맞이하며 (백낙청. 2008.12.30.)
http://weekly.changbi.com/blog_post_336.aspx
영어의 거버넌스(governance)와 거번먼트(government)는 원래 '다스림[政]'을 뜻하는 동의어다. 다만 후자가 공권력을 갖고 다스리는 '정부'라는 뜻으로 자주 쓰임에 따라 더 넓은 의미의 이런저런 다스림을 가리킬 때 '거버넌스'라는 낱말을 택하기도 한다. 그래서 국가가 아닌 기업(business corporation)이 다스려지는 방식을 corporate governance라 하며 우리말로는 '기업의 지배구조'라고 (약간 부정확하게) 번역한다. 또한,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치하지 않고 시민사회의 여러 세력과 협동하고 합의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행태를 거버넌스라 칭하면서 더러 '협치(協治)'로 옮기곤 한다.
- 위 글 중에서
백낙청 덕분에 소위 지식인 사회에서 유행어가 된건가?
그런건가? 아는 분 댓글 플리즈~!  

2. 거버넌스(governance)와 거번먼트(government)
거번먼트(Government)가 정부 중심의 국정 운영이라면, 거버넌스(Governance)는 정부와 시민 사회가 협력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거버넌스'라는 용어는 정부의 의미 변화, 또는 공적인 업무 수행 방법의 변화를 지칭한다. '정부(Goverment)'는 공식적인 권위에 근거한 활동을 하는 반면, '거버넌스'는 공유된 목적에 의해 일어나는 활동을 한다.

이러한 논리에 근거하여 최근에는 '정부 없는 거버넌스(governence without government)' 또는 '정부에서 거버넌스로(from government to governence)로' 표현하기도 한다.

거버넌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중앙 정부, 지방 정부, 정치적 ·사회적 단체, NGO, 민간 조직 등의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강조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든 구성 요소들이 상호 독립적이라는 것이 모든 참여자가 동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정부는 기본적으로 동등한 입장에서 전체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조정자의 입장에 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네트워크의 연결성도 순수 시장 메커니즘보다는 종속적이지만, 계층적인 전통적 조직보다는 덜 종속적이다.

- 다음 카페 '계명대학교 경영정보학과(MIS)' 게시글 중에서
위 링크에 대해선... 나는 비회원이라 접근이 안된다.. 어떤 Q&A 게시판에서 출처로 표기되어 있길래 원문출처 우선원칙(ㅡ.ㅡ;)에 의거해서 굳이 카페 주소로 걸어본다. 카페들이 좀 문호를 개방하면 좋겠는데 말이지...

3. leopord가 남긴 인상적인 논평. http://leopord.egloos.com/
정치학에서는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에 꽤 유행했다가 지금은 좀 잠잠해진 걸로 알고 있는데, 냉전으로 상징되던 양극체제가 다극체제로 전환될 거라는 국제정치학상의 기대를 반영하는 개념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덧붙여 IT 거버넌스라는 개념은 탈산업시대의 네트워크 정치로서의 거버넌스가 경영 분야와 IT 분야의 변화를 설명할 수단으로 선택된 거라고 봐야겠고요(금융의 경우와 같이 경영과 IT는 20세기 말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기도 하고요.).

하지만 국제정치경제체제에서 글로벌 거버넌스가 보편화되었다고 성급하게 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국적으로 봐도 국가(정부)-시민사회-시장이라는 축 가운데 균형을 담당할 시민사회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함께 무너진 경향이 있고, 아프리카 등 시민사회가 심각하게 취약한 곳에선 폭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가-국경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자본(주로 금융) 사이의 담합 및 갈등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거버넌스는 일종의 수사로 그친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계급적 갈등을 부차적으로 보거나 혹은 근대의 유산 정도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고요. 정치학적으로 제대로 파고들지 못해 섣부른 판단일 수는 있지만 말입니다. 박원순 씨의 거버넌스 발언에는 '중도 실용' 이명박에 대한 '중도 실용'으로서의 배신감이 배어있지 않은가 싶네요.

- http://minoci.net/968#comment21079


* 추천
"외래어는 한국인이 편리하기 위해 표기하는 것이지, 외국 발음에 가깝게 쓰기 위해 표기하는 것이 아니다."  (리승환, 개념 번역보다 외래어 표기법부터)

재밌는 관련 페이지


부제 : 그래도 나영이 사건에서 보여준 언론의 호들갑은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내가 아는 법이라고는 면허시험 볼때 본 도로교통법의 법조문 몇 개와 드라마에서 본 그런 것들"(베둘레헴). 나 역시 쥐뿔 아는 것 없는 입장에서 매우 공감한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 독자들이 그럴테다. 그래서 근 일주일 가까이 틈틈이 블로그와 기사들, 그리고 관련 판례들을 살펴봤다. 내용이 어렵다기 보다는 마음이 뒤숭숭해서 정리가 잘 안되더라. 다만 독자와 동료 블로거들에게 참조자료나마 제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미처 정리되지 않는 글을 마저 써본다. 지난 글에서 미진한 부분(특히 2. '만취와 심신미약')을 정리해보자는 취지도 있다. 요 며칠 블로그나 기사들을 살펴보지 않아서 뒷북이 아닐까 심히 우려되지만, 스스로 공부하고, 정리하자는 취지로나마 굳이 남겨본다.

일단, 사람들이 제일 분노하는 게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혹은 심신상실로 인한 감형이라는 건데, 무조건 술을 마셨다고 해 심신미약 혹은 심신상실의 판정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 일각에서 떠도는 증거인멸을 위한 행위가 실제로 일어났다면 심신미약 혹은 심신상실이라는 것은 성립이 되지 않을 까 하는 것인데..
- 베둘레헴, 심신미약 혹은 심신상실의 근거는 대체 무엇인지? 중에서

0. 심신미약이란 무엇인가? : 범죄를 구성하는 삼각형 
이를 최소한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범죄가 어떻게 성립하는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범죄는 ㄱ. 구성요건 해당성 ㄴ. 위법성 ㄷ. 책임이 모두 존재할 때 성립한다. 심신미약은  행위자에 속하는 '책임' 요소로서, 그 행위자에게 과연 '기대가능성'(달리 표현하면 '비난가능성')이 있는가를 질문한다. '살인죄'의 예를 통해 살펴보자.

ㄱ. 구성요건 해당성 : 사람을 '고의'로 살해하는 '행위'가 필요하다. 가령 외과수술 중에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의사의 '과실'('고의'의 반대개념으로)이 인정될 수 있을지언정 고의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살인행위'가 인정되지 않는다.

ㄴ. 위법성
: 그 행위는 사회적으로 위법해야 한다. 가령 전쟁 상황을 떠올려보자. 이 때 아군을 위해 적군을 살인하는 행위는 살인이라는 행위라는 점에선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 군인은 살인죄가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훈장을 탄다.

ㄷ. 책임 :
구성요건에도 해당하고, 위법성도 충족한다고 치자. 마지막 책임 단계에서 그 행위자가 자기 행위를 지배할 수 있는 자유의사를 갖고 있는지 문제삼는다. 책임의 전제로서 책임능력이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즉, 법규범에 따라 행위할 수 있는 능력(책임능력)이 없다면 그 행위자를 처벌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행위를 지배할 수 있는 자유의지, 책임능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14세 미만의 미성년자('형사미성년자'. 형법9조)는 가장 대표적인 책임무능력자다. 행위를 비난하거나(비난가능성), 규범을 지킬 것으로 기대되기엔(기대가능성)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형사미성년자에겐 책임이 전제되는 '형벌'을 부과할 수는 없다. 다만 소년법에 의한 '보안처분'(형벌이 아닌 보완적 성격의 법적 처분)의 대상은 된다. 그리고 심신상실자("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형법 10조1항) 역시 형사미성년자와 같은 '책임무능력자'다. 나영이 사건에서 문제된 심신미약자("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형법 10조2항.)는 그 '책임이 한정(제한)'되는, 그래서 그 형이 감경되는, '한정책임능력자'다.

간단히 정리하면, 미성년자와 심신상실자는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 그래서 형벌을 부과할 수 없는 '책임무능력자'이고(보안처분은 부과가능), 심신미약자는 책임이 제한적으로 인정되는, 그래서 형을 감경하는 '한정책임능력자'다. 사족. 형법 11조의 농아자(농자이면서 아자인 자, 즉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자) 역시 한정책임능력자로 규정되어 있으나, 이는 입법론상 삭제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농아자 역시 통상의 책임능력자들과 다름없이 사물변별능력과 자유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1. 정말 '만취 = 심신미약'인가? : 언론의 여론 편승, 무지 또는 게으름
만약(정말 만약이다) 나영이 사건 일심 재판부가 단순히 술에 취했다는 사실만으로 조모씨의 심신미약을 인정했다면, 쉽게 말하자, 판사 자격 없다. 그럴 확률은 대단히 낮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알려진 최소한의 사실처럼 피고 조모씨가 '증거인멸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인정한 건 대단히 의문이고, 최근 대법원 판례 경향에 반하는 석연찮은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이 점은 추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나영이 사건 일심 판결문을 확인할 수 없어, 피고 조모씨에게 심신미약을 인정한 근거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이렇게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사건이라면 당연히 관련판결문을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점 역시 언론의 게으름 혹은 제도적인 미비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지난 글에서도 강조했지만, 단순히 술에 취했다는 점으로만 심신미약을 인정하는 정신나간 법체계나 법원은 없다고 믿는다. 최근 판례 경향(대법원)은 심신미약을 대단히 엄격한 조건 하에서 인정한다. 2007년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자(이하 '2007년 대법원 판례'는 아래 판결을 지칭).

대법원 2007.2.8. 선고 2006도7900 판결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강간등치상)·강간상해·강도·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13세미만미성년자강간등)】
[공2007.3.15.(270),462]
 
【판시사항 및 판결요지】
[1] 정신적 장애가 있는 자에 대하여 형법 제10조에 규정된 심신장애를 인정하기 위한 요건
: 형법 제10조에 규정된 심신장애는 ㄱ. 생물학적 요소로서 정신병 또는 비정상적 정신상태와 같은 정신적 장애가 있는 외에 ㄴ. 심리학적 요소로서 이와 같은 정신적 장애로 말미암아 사물에 대한 변별능력과 그에 따른 행위통제능력이 결여되거나 감소되었음을 요하므로, 정신적 장애가 있는 자라고 하여도 범행 당시 정상적인 사물변별능력이나 행위통제능력이 있었다면 심신장애로 볼 수 없다.

[2] 소아기호증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심신장애에 해당하는지 여부(소극) 및 소아기호증으로 인해 심신장애에 이르렀다고 보기 위한 기준
: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성격적 결함을 가진 자에 대하여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고 법을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기대할 수 없는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사춘기 이전의 소아들을 상대로 한 성행위를 중심으로 성적 흥분을 강하게 일으키는 공상, 성적 충동, 성적 행동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소아기호증은 성적인 측면에서의 성격적 결함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으로서, 소아기호증과 같은 질환이 있다는 사정은 그 자체만으로는 형의 감면사유인 심신장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봄이 상당하고, // 다만 그 증상이 매우 심각하여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이 있는 사람과 동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거나, 다른 심신장애사유와 경합된 경우 등에는 심신장애를 인정할 여지가 있으며, // 이 경우 심신장애의 인정 여부는 소아기호증의 정도, 범행의 동기 및 원인, 범행의 경위 및 수단과 태양,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행동, 증거인멸 공작의 유무, 범행 및 그 전후의 상황에 관한 기억의 유무 및 정도, 반성의 빛의 유무, 수사 및 공판정에서의 방어 및 변소의 방법과 태도, 소아기호증 발병 전의 피고인의 성격과 그 범죄와의 관련성 유무 및 정도 등을 종합하여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3] 범행 당시 피고인의 소아기호증의 정도 및 내용 등 여러 사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심리·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심신미약의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 대법관   김황식(재판장) 김영란 이홍훈 안대희(주심)

2. 2007년 대법원 판결의 의미
다시 확인하는 바, 위 대법원 판례은 불과 2007년에 있었다. 사건 유형 역시 나영이 사건과 흡사하다. '유아 성폭행(강간상해)'에서 피고인의 '심신미약'을 인정하는 요건이 문제되었다. 그리고 심신미약을 인정한 원심판단을 뒤집고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는 점에서, 나영이 사건에서의 검찰 항소 및 상고 포기와 관련해 더욱 시사하는 바 크다. 나영이 사건에서 법원과 검찰의 판단상 의문점(문제점)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본다.

1) 2007년 대법원 판결은 원칙적인 설시 내용처럼 심신미약을 인정하기 위해선 ㄱ. 생물학적 요건(쉽게 말해 정신병)과 ㄴ. 심리학적 요건을 충족해야 하고, 이런 상태가 범죄 행위시에 유지되어야지, 행위시에 '멀쩡하게 행동'했다면 심신미약을 인정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2) (이 대법원 판결의 원심 사건에서 문제된 구체적인 정신병 유형으로서) 가령 소아기호증(정신병) 환자라고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심신미약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법원은 다음 기준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은 심신미약 인정 여부가 정신과의사의 '감정서'에 좌우되는 '사실확정' 문제가 아니라, 그 '감정서'도 여러가지 참조 기준의 하나일 뿐인, 결국 판사의 '법률적인 판단'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대법원이 심신미약을 판단할 때 참조해야 하는 기준들로 예시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 소아기호증의 정도
- 범행의 동기 및 원인
- 범행의 경위 및 수단과 태양
-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행동 : 나영이 사건의 의문점
- 증거인멸 공작의 유무, : 나영이 사건의 의문점

- 범행 및 그 전후의 상황에 관한 기억의 유무 및 정도
- 반성의 빛의 유무
- 수사 및 공판정에서의 방어 및 변소의 방법과 태도
- 소아기호증 발병 전의 피고인의 성격과 그 범죄와의 관련성 유무 및 정도

3) 끝으로 대법원은 이 사건의 원심(2심)이 위와 같은 종합적인 판단기준들을 소홀히 살펴봄으로써, 심신미약을 인정하는 위법이 있다고 말하고 원심을 파기환송한다. 이 대법원 판례은 그 얼개로만 보면 정확하게 나영이 사건의 정반대 사례라고 할만하다. 즉, 원심이 인정한 '심신미약'을 대법원에서 뒤집고 있다. 이 역시 아래에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3. 2007년 대법원 판례를 통해 본 나영이 사건의 의문점
우선 나영이 사건 개요를 간략히 살피면 다음과 같다.
[나영이 사건 개요]

2008년 12월 11일 : 나영이 사건 발생
2008년 12월 13일 : 경찰 조모씨 긴급체포

2009년 01월 09일 : 검찰, 조씨 강간상해죄로 기소
2009년 03월 04일 : 검찰 무기징역 구형
2009년 03월 27일 : 1심 징역 12년 선고 (+ 7년간 전자발찌. 5년간 신상공개)

2009년 03월 30일 :  조씨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
2009년 04월 30일 : 검찰 항소 포기
2009년 07월 24일 : 항소심 항소 기각

2009년 07월 27일 : 조씨 상고
2009년 08월 03일 : 검찰 상고 포기
2009년 09월 24일 : 대법원 상고 기각

참조 : "항소포기·감형 납득 못해" 사법 시스템 질타 이어져 (한국일보, 이영창기자, 2009.10.02.)

1) 왜 재판부는 조모씨에게 '심신미약'을 인정했는가?
위 2007년 대법원 판례를 통해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의 심신미약을 판단하기 위한 여러가지 기준들 가운데 유독 눈에 띠는게 있다. "증거인멸 공작의 유무"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행동"이다. 언론보도가 아무리 엉성하고, 감정적인 여론에 편승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사실, 즉 조모씨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했던 행위나 범행 전후에 했던 행위들은 넉넉하게 그 행위들이 진실할 것으로 신뢰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위 2007년 대법원 판결에서 설시하는 것처럼 조모씨의 그 행위들은 심신미약을 인정하는 자료가 아니라, 심신미약을  부정하는 자료로 판단되어야 마땅하다. 즉, 조모씨는 강간상해 증거인멸 행위를 분명히 저질렀고, 또한 경찰 조사 과정에서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시도를 했음이 객관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렇다면 의문이 남는다. 나영이 사건 1심 재판부는 조모씨의 '증거인멸 공작 행위'와 '범행 전후의 행동'을 '심신미약'을 부정하기 위한 참조자료로 활용하지 않은 것일까? 혹은 이것을 참조했음에도 조모씨에게 심신미약을 인정할만한 좀더 강력한 자료들이 존재했던 것일까? 물론 나영이 사건 1심 재판부가 위 2007년 대법원 판례의 존재를 몰랐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심신미약'의 성립 조건을 이토록 엄격하고, 구체적으로 설시하고 있는 2007년 대법원 판례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영이 사건 1심 재판부에서 '심신미약'을 인정한 그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일부 언론이나 블로그에서 다소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단순한 음주 만취'만으로 심신미약을 인정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법률적인 기초개념의 ABC를 망각한 무개념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법원이 그토록 무지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조롱이 아니라 진심이다. 음주 만취로 '심신미약'이 인정되려면 그 음주행위에 ㄱ. 범죄의 고의 없이(고의에 의한 '원인에서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ㄴ. 음주 전력으로 기존에 유사범죄를 저지른 바가 없어야(과실에 의한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한다. 특히 ㄴ.의 측면에서 '음주에 의한 심신미약 인정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특히, 음주 교통사고의 경우. 아래 '원자행' 설명 참조).

* 참조 :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이하 '원자행'. 형법 10조3항)
1. 의의 :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 2항(10조 1항의 심신상실, 10조 2항의 심신미약)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형법 10조 3항) 즉, 행위자가 고의(사람을 상해할 목적으로 음주 대취)혹은 과실(가령 운전해야 하는데 이를 생각하지 않고 음주 대취하여 차사고)로 스스로 심신장애 상태에 빠지게 하는 경우에는 심신상실 혹은 심신미약에 의한 책임면제 혹은 감경을 인정하지 않는다.

2. 규정 취지 : 심신상실(10조1항)과 심신미약(10조2항)의 규정을 기계적으로 모든 범죄행위에 대입하면, 좀 과장해서 말해 술취하면 장땡인 상황, 즉 술에 떡실신한 상태로 범죄를 저지르면 형벌이 면제되거나 감경되는 아수라판이 벌어진다(물론 과장이다). 심신상실(10조1항)과 심신미약(10조2항)에 의해 있을 수 있는 가벌성 누수를 입법적으로 해결하고 책임주의를 엄격하게 유지하기 위한 규정이다.

3. 선례(리딩케이스) : 서장조카 사건(68년) 
ㄱ. 원자행을 최초로 적용한 판결.
ㄴ. 사건개요 : 한 마을의 서장 조카가 술에 취해 마을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린 사건.
ㄷ. 판결요지 : "피고인이 심신을 자극할 염려가 있는 음주같은 일을 엄금하여야 할 처지가 있었을 알 수 있는  경우 원심은 피고인이 범행당일 음주함에 있어 주취 후, 그의 정신상태에 이상적인 변화가 생길 것을 예견하였다거나 또는 예견할 수 있었던 것인가의 여부를 심리하여 본건 범행에 대한 형법 10조 3항의 적용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
ㄹ. 판결의 의미 : 본 판례는 '원자행'의 독자성을 강조하고, 봄건 범행 수개월 전에 피고인이 동리 사건들에게 비정상적인 행패를 부린 점, 그리고 피고인의 뇌막염 증세 등에 비춰 범행당시 피고인이 심신을 자극할 음주 같은 일을 엄금해야 할 처지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판결문에는 표현되지 않으나, 피고는 (과실에 의한) 원자행에 해당하여 그 책임이 감경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설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최근 판례 경향 : 음주운전에 의한 교통사고 - 음주뺑소니 사건(92년)
ㄱ. 고의에 의한 원자행 뿐만 아니라 '과실'에 의한 원자행을 정면에서 인정한 판례.
ㄴ. 사건개요 : 갑은 자동차를 가지고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음주 마취하여 자동차를 운전하다 행인을 치었다. 갑은 의식을 잃고 쓰러진 행인을 길옆 하수구에 버리고 도주하였고, 사고로 심한 상처를 입은 행인은 출혈과다로 사망하였다.
ㄷ. 판결문 : '원자행' 규정은 고의에 의한 원자행만 아니라 과실에 의한 원자행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위험의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경우도 그 적용대상이 된다. 피고인이 음주운전을 할 의사를 가지고 음주 만취한 후 운전을 결행하여 교통사고를 일으킬 위험성을 예견하였는데도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심신장애로 인한 감경 등을 할 수 없다.

2) 검찰은 왜 상고를 포기했나? : 안이한 검찰... 맞다.
나영이 사건에서 검찰은 항소(2심)와 상고(3심. 대법원)를 모두 포기했다. 따라서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변경금지원칙'이 적용되었다. 즉 더 높은 형으로 선고할 수 없게 된거다. 검찰은 일심에서 징역형 상한인 15년에 근접하는 12년형이 선고되었고, 항소심에선 형량이 높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안이한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한국일보 기사 참조).

2007년 대법원 판결은 앞서 간략히 설명했지만, 나영이 사건과는 정반대다. 원심에서 인정했던 '심신미약'을 검찰 상고로 대법원에서 부정하고, 파기환송했다. 검찰에 욕이 튀어나오는 건 그래서다. 검찰의 "안이한 판단"과는 정반대의 최신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검찰이 나영이 사건에서 조모씨의 심신미약 인정 여부에 대해 좀더 적극적으로 판단했다면 항소 및 상고했어야 마땅하다. 심신미약을 인정한 원심을 파기환송하고, 심신미약 판단 표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2007년 대법원 선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행을 핑계삼아 검찰이 항소와 상고를 포기했다면, 정말 그런 "안이한 판단"했다면, 검찰은 욕 먹어도 싸다. 촛불이나 언소주한테 보여줬던 그런 열정을 이런 사건에 보여줬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4. 형벌 강화 의견에 대해 : 양형기준제 보완으로 족하지 않나 싶다.
이 교수는 “앞으로 범죄자의 음주 여부도 구체적으로 들여다 봐야 한다”고 밝혔다. 만취로 인해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데 대해서는 감경을 해줘야 하겠지만, 대부분의 음주 후 범죄를 관대하게 처벌하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 서강대 이호중. 세계일보, 양형기준제 싸고 法-檢 논리대결…이호중 교수 ‘절충안’ 제시, 2008.06.18
형법상 강간상해(301조)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형벌로 규정한다. 이 형법규정에 대한 특별법으로 적용되는 성폭력특별법(9조)은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을 형벌로 규정한다. 이 이상으로 무거운 형벌규정을 갖는 형법 조항은 거의 없다. 그러니 '강간상해(혹은 강간치상)'에 관한 법정형은 대단히 무거운 편에 속한다.

나영이 사건을 통해 표출된 분노가 형벌만능주의로 변질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국가 형벌권은 아주 제한적으로, 정말 신중하게 확장되어야 한다. 시민사회 발목을 스스로 잡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다만 사회성원 대다수가 진심으로 염려하고, 기꺼이 동의하는 미성년자/아동 성범죄 문제에 대해선 별도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테다. 다만 개인적으론, 이번 나영이 사건을 통해 보더라도, 양형기준제를 보완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쓴 지난 나영이 글에서 meson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잔악한 행위는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인권인지 회의가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 대안으로는

1. 전자팔지 (전자발찌)
2. 중범의 경우 성적기능의 영구적 정지 (화학요법)
3. 유비쿼터스 기술을 이용한 위치추적 및 경고발생 등의 기술
4. 미국의 모 웹사이트(familywatchdog.us)처럼 지역 내 성범죄자들의 주소, 기록, 신상정보 공개를 철저히 하여, 주변지역의 주민들이 스스로 좀더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가 있다고 봅니다.

- meson의 논평 중에서 

1.전자발찌와 3.은 성질이 비슷해서 함께 묶을 수 있을 것 같고, 4.는 신상공개에 관한 부분이다. 잠시 이 분노를 가라앉히고, 나영이 사건에 대해 생각해보자. 징역형량이 불만스럽다는 건 차치하고(여전히 이 개새끼는 죽어도 싸다...는 게 내 솔직한 감정이긴 하다), 나영이 사건 가해자인 조모씨가 12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대략 70세)하면  그에겐 전자발찌 7년 + 신상공개 5년이 추가된다. 즉 위 meson이 주장한 대안의 얼개에서 '화학적 요법'을 제외하고는 이미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다(나는 이번에야 알았다). 

신상을 공개하는 구체적 수준에 대해선 지인이 절차상 난점을 들어 불만을 표하는 걸 들었다. 그리고 전자발찌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재범을 막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른다. 다만 '화학적인 요법(화학적 거세)'을 제외하고선 이미 강력한 재범 방지책이 가동되고 있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나영이 사건에서 나를 포함한 대다수 시민들이 분노하는 제도적 문제란 위 인용한 기사에서 이호중이 양형기준제 취지로 지적하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법원의) 양형 편차 등을 줄여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확고히 하자”는 것으로 일단은 좁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린이 4명에 대하여 각 1회씩 강간상해의 범행을, 어린이 1명에 대하여 1회 강제추행의 범행을 범한 피고인에 대하여 제반 양형자료를 참작하여 징역 20년의 중형을 선고한 사례.
- 대구지방법원 2007. 6.29 선고 2007고합23 【강간상해 등】
사건 개요가 아주 개략적으로만 적혀 있어서 나영이 사건과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얼개만 보면 유사한 사안으로 보인다. 아동 강간상해와 강제추행에 대해 20년형을 선고한 사건이다. 나영이 사건이 최소한 20년형 정도로 선고되었다면, 시민들이 이렇게까지 분노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나영이 사건의 그 깊은 어둠에 대해 고민하더라도, 일단 기존 제도를 보완하는 차원에서는 양형기준제를 보완하는 방안이 가장 실효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를 법원이 적극적으로 재판에 적용한다면 양형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어느 정도 사라질 수 있으리라 본다. 특히 이호중이 지적한 것처럼 ㄱ. 음주 후 범죄에 대해 관용적인 법원의 관행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ㄴ. 아동 성범죄에 대해선 양형기준을 대단히 무겁게 설정한다면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5. 정말 필요한 제도 : 피해자(가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보호
법무부장관은 "감형없이 엄격하게 형량을 집행하라"하라고 한 말씀하셨고, '중도실용'(무엇에 쓰는 물건인고...)으로 상한가 치는 이명박 각하는 국무회의 중에 "침통한 심정"을 피력한다. 이런 와중에 나영이 사건 때문에 가슴이 무너진 많은 시민들은 성금을 모은다(이명각 각하의 재단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문득 궁금하다. 이런 타이밍에 야리꾸리한 재단 만드는 대신에 재산헌납했으면 50% 지지율이 아니라 60% 지지율로 치솟는건데...). 그 성금을 나영이 가족에게 직접 전달하지는 못하고, 병원비로 전용한다고 한다. 지인이 말하길 나영이 가족에게 직접 전달하면 제도상 '수혜대상'에서 나영이 가족들이 제외된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렇게 돕는 것도 참 어렵게 눈치 봐가면서 도와야 한다. 세상에 이렇게 착한 국민들이 또 있을까 싶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정말 단순한 거다. 성범죄를 줄이고, 성범죄자의 재범을 줄이는 노력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간절하게 필요한 건 피해자들, 특히 아동 성범죄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좀더 실효적으로 제도화시키는 일이다. 성범죄 피해자들과 가족들을 실효적으로 돕는 길이다. 나영이 사건처럼 언론의 호들갑으로 일회적인 이슈가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끔찍하게 발랄야만적인 사회에서 숨겨져 있을 '나영이들'에게 국가가 정말 '우렁각시'처럼 조용히 하지만 지속적으로 그 상처를 나누고, 세금을 그 아이들에게 쓰는 일, 이게 정말 필요하다.

그러니까 형벌조항을 강화한다거나, 전자발찌, 화학적 요법보다 우리 사회에 숨겨져 있는 나영이들을 '숨어서' 돕는 일, 그 일을 국가가 정부가 해야 한다. 그래서 발끈하면 착해지는 시민들의 성금만이 아니라, 국가가 거둬들인 세금을 이런데 써야 한다. 한 블로거벗이 말한 것처럼, 세종시보다 이 일이 더 급하다. 그리고 이명박 시대 들어 "자기 성찰을 강요받는" 시민단체들, 그 중에 당연히 성범죄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단체들이 있을텐데, 이런 시민단체들을 국가가(정말 아무 때나 높으신 양반들 대신 개고생하는 국민들이 아니라) 도와줘야 한다. 언제까지 착한 국민들 성금에 의존할텐가. 이런 일 하라고 국가가 있고, 정부가 있는거다.

참고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중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정들은 다음과 같다. 이와 유사한 다른 성범죄 피해자보호에 대한 특별법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아시는 분은 댓글 플리즈~!), 정말 미약하기 짝이 없다. 성교육 및 성폭력 예방교육을 한다거나, 불이익처분을 금지한다는 선언적인 규정, 그리고 상담소를 설치, 지원할 수 있다는 정도가 다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중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정들

제3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

①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성폭력범죄를 예방하고 그 피해자를 보호하며 유해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필요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여야 한다.
②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청소년을 건전하게 육성하기 위하여 청소년에 대한 성교육 및 성폭력예방에 필요한 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
③제2항의 규정에 의한 청소년에 대한 성교육 및 성폭력예방에 필요한 교육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신설 97·8·22 법5343]

제4조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처분의 금지)
성폭력범죄의 피해자를 고용하고 있는 자는 누구든지 성폭력범죄와 관련하여 피해자를 해고하거나 기타 불이익을 주어서는 아니된다.

제23조 (상담소의 설치)
①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성폭력피해상담소(이하 "상담소"라 한다)를 설치·운영할 수 있다.
②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외의 자가 상담소를 설치·운영하고자 할 때에는 시장·군수·구청장(자치구의 구청장을 말한다. 이하 같다)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개정 1997.8.22, 1997.12.13, 2003.12.11]
③상담소의 설치기준과 신고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여성부령으로 정한다. [개정 1997.8.22, 2001.1.29, 2005.3.24, 2008.2.29 제8852호(정부조직법)]

제24조 (상담소의 업무)
상담소의 업무는 다음과 같다.
1. 성폭력피해를 신고받거나 이에 관한 상담에 응하는 일
2. 성폭력피해로 인하여 정상적인 가정생활 및 사회생활이 어렵거나 기타 사정으로 긴급히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병원 또는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로 데려다 주는 일
3. 가해자에 대한 고소와 피해배상청구등 사법처리절차에 관하여 대한변호사협회·대한법률구조공단등 관계기관에 필요한 협조와 지원을 요청하는 일
4. 성폭력범죄의 예방 및 방지를 위한 홍보를 하는 일
5. 기타 성폭력범죄 및 성폭력피해에 관하여 조사·연구하는 일

제33조 (의료보호)
①여성부장관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국·공립병원·보건소 또는 민간의료시설을 성폭력피해자의 치료를 위한 전담의료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다. [개정 1997.8.22, 2001.1.29, 2003.12.11, 2005.3.24, 2008.2.29 제8852호(정부조직법)]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지정된 전담의료기관은 상담소 또는 보호시설의 장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는 다음 각호의 의료등을 제공하여야 한다.
1. 성폭력피해자의 보건상담 및 지도
2. 성폭력피해의 치료
3. 기타 대통령령이 정하는 신체적·정신적 치료


7. 그를 향한 분노가 아닌 우리를 위한 분노를...
나영이 사건에 대한 분노는 정당하다. 하지만 그 분노가 정당하기 위해선 그 근거, 그 분노의 재료에 대해 좀더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왜 우리가 분노하는가에 대해 좀더 냉정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개인을 향한 분노, 어떤 하나의 단편적인 사건에 대한 분노만으론 부족하다. 그 분노를 사회 전체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로, 그 야만적인 사회가 유지되는 야만의 메카니즘에 대한 분노로 그 방향과 색깔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나영이 사건은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아니 나영이 사건이 다시 반복되더라도 그 '나영이들'와 더불어 희망을 이야기하는 날은 영영 불가능할 것이다.




추. 언론의 심신미약 : 한겨레 기사의 경우 

법무장관 “나영이 성폭행 범인 가석방 없다”(한겨레, 김남일, 황준범. 2009.9.30.)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9637.html
위 한겨레 기사를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그 개념미약이 다른 동일 주제 기사들에 비해 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지루하고, 무지막하게 긴 글을 그래도 통독한 독자라면 아래 한겨레 기사가 왜 기념미약 기사인지 판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기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참 불성실하다.

ㄱ. "1심과 항소심은 알코올중독자인 조씨가 술에 취해 '심신미약'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해" (한겨레)
이번 사건이 공론화되는 과정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건 심신미약에 대한 법률적인 개념 혼동을 언론이 부추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 사건을 공론화하는데 [시사기획 '쌈']은 물론이고, 대다수 언론들에서 '음주만취 = 심신미약'인 것처럼 보도하고 있거나, 혹은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큰 표현을 쓰고 있다. 물론 기존 판결(아래 인용한 판결 참조)에서도 이런 혼동을 부추기는 판결문들이 존재하고, 지난해 양형기준제 논의에 과한 기사를 보더라도 "대부분의 음주 후 범죄를 관대하게 처벌하는 관행"이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니 언론만 탓할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1985. 4. 9. 선고  85노262 【강도상해피고사건】[하집1985(2),299]  
범행당시 음주만취되어 심신미약의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한 사례
: 피고인이 범행당시 평소의 주량을 훨씬 초과하여 2홉들이 소주 2병을 2명이 나누어 마신 후 피고인 혼자서 다시 같은 소주 3병을 더 마셔 만취된 상태였고, 피고인이 재물을 강취하려 한 피해자도 피고인이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이로 피고인의 거소까지 잘 알고 있는 점 및 범행후 피고인이 신발을 신은 채로 방안에서 잠을 잔 점등을 모아 보면, 피고인은 범행당시 술에 취하여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ㄴ. "강간치상죄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에서 감형한 징역12년형과 출소 뒤 7년간 전자발찌 부착을 선고" (한겨레)
나영이 사건에 대한 최소한의 사실관계를 확인해봐도 이 사건이 '강간치상죄'로 기소된 사건이 아니라, '강간상해'로 기소된 사건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아래 동일한 사안에 대한 다른 기사들을 잠깐 훑어보자.
예1. 현행 양형기준은 13세 미만 아동 강간상해죄에 대해 원칙적으로 징역 6∼9년, 가중사유가 있으면 징역 7∼11년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률전문 인터넷신문=로이슈]신종철 기자

예2. 현행 양형기준은 13세 미만 아동 강간상해죄에 대해 6∼9년, 가중사유가 있으면 7∼11년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ㄷ. "13살 미만 어린이에 대한 강간치상의 법정형량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한겨레)
특별법 우선 원칙이라는 건 한번쯤 들어봤을거다. 형법301조에서 강간치상과 강간상해를 규정한다. 여기선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이 맞다. 다만 이에 대한 특별법으로서 성폭력특별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9조 1항에서 강간치상과 강간상해를 특별히 따로 규정한다. 여기에선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특별법 우선 원칙으로 성폭력특별법이 적용되는게 상식이다. 따라서  앞서의 '강간치상'이 잘못된 것은 차치하고,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이라는 표현 역시 잘못이다.  기사는 이 경우에 성폭력특별법이 적용된다는 것에 대한 감각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이런 정도의 법률지식을 위해선 무슨 법학을 전공하거나, 법률상식이 풍부할 필요도 없다. 나 같이 법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문과대 출신도 대충 시간 들여서 살펴보면 아는 거다. 하물며 취재하고, 조사하고, 검토해야 하는게 직업인 사람이다. 그게 기자다. 정말 불성실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성폭력특별법에서 관련 조문들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성폭력특별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정의)
①이 법에서 "성폭력범죄"라 함은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죄를 말한다.
3. (전략...) 제301조(강간등 상해·치상) 및 제305조(미성년자에 대한 간음, 추행)의 죄

제8조의2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 강제추행 등)
①13세 미만의 여자에 대하여 「형법」 제297조(강간)의 죄를 범한 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②13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폭행이나 협박으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1. 구강ㆍ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내부에 성기를 넣는 행위
 2. 성기ㆍ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일부나 도구를 넣는 행위
③13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형법」 제298조(강제추행)의 죄를 범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1천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9조 (강간등 상해·치상)
제8조의2(13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 강제추행 등)의 죄를 범한 자가 사람을 상해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2008.6.13]
짧게 요약하면, ㄱ. 기자들 괜히 이 부서, 저 부서 뺑뺑이 돌리지 말고 전문기자체제 도입해라. ㄴ. 물론 이 사안은 최소한의 취재(사실확인)라도 열심히 하자..이긴 하지만.


* 참조
대법원 2007.2.8. 선고 2006도7900 판결 (이하 '전문'포함)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강간등치상)·강간상해·강도·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13세미만미성년자강간등)】
[공2007.3.15.(270),462]

【판시사항】 【판결요지】 생략 (이 글 본문 참조)
【참조조문】  [1] 형법 제10조 / [2] 형법 제10조 / [3] 형법 제10조
【참조판례】  [1] 대법원 1992. 8. 18. 선고 92도1425 판결(공1992하, 2805) / [2] 대법원 1994. 5. 13. 선고 94도581 판결(공1994상, 1752), 대법원 1995. 2. 24. 선고 94도3163 판결(공1995상, 1515)

【전 문】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검사
【변 호 인】 변호사 이우윤
【원심판결】 서울고법 2006. 10. 19. 선고 2006노898 판결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본다.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피고인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 피고인이 중학생이던 1983.경 9세의 여아를 강간하여 학교를 더 다니지 못하게 된 점, 피고인에 대한 누범전과의 내용도 어린 나이의 여아를 강간한 것인 점, 피고인에 대한 임상심리검사 결과 피고인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로부터 성적 폭행을 당하였다고 주장하는데, 그 후부터 지속적으로 나이 어린 여아에 대하여만 성욕을 느끼고, 소녀와의 성행위 내지 성적 공상에 탐닉하여 왔고, 피고인의 자아 이미지가 매우 부정적이고 기능이 매우 손상되어 있으며 불안정, 우울, 충동성 등 정서적 문제가 발견되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피고인에게 변태성욕의 일종인 소아기호증이 존재하는 것으로 진단되고, 이 사건 범행 당시에도 피고인은 소아기호증이라는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심신미약의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위와 같은 정신감정 결과, 피고인의 범행전력, 이 사건 범행 내용 및 횟수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당시 소아기호증으로 인하여 범행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서 의사를 결정하거나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형법 제10조에 규정된 심신장애는 생물학적 요소로서 정신병 또는 비정상적 정신상태와 같은 정신적 장애가 있는 외에 심리학적 요소로서 이와 같은 정신적 장애로 말미암아 사물에 대한 변별능력과 그에 따른 행위통제능력이 결여되거나 감소되었음을 요하므로, 정신적 장애가 있는 자라고 하여도 범행 당시 정상적인 사물변별능력이나 행위통제능력이 있었다면 심신장애로 볼 수 없는 것이고 ( 대법원 1992. 8. 18. 선고 92도1425 판결 등 참조),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성격적 결함을 가진 자에 대하여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고 법을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기대할 수 없는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사춘기 이전의 소아들을 상대로 한 성행위를 중심으로 성적 흥분을 강하게 일으키는 공상, 성적 충동, 성적 행동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소아기호증은 성적인 측면에서의 성격적 결함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으로서, 소아기호증과 같은 질환이 있다는 사정은 그 자체만으로는 형의 감면사유인 심신장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봄이 상당하고, 다만 그 증상이 매우 심각하여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이 있는 사람과 동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거나, 다른 심신장애사유와 경합된 경우 등에는 심신장애를 인정할 여지가 있을 것이며( 대법원 1995. 2. 24. 선고 94도3163 판결 등 참조), 이 경우 심신장애의 인정 여부는 소아기호증의 정도, 범행의 동기 및 원인, 범행의 경위 및 수단과 태양,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행동, 증거인멸 공작의 유무, 범행 및 그 전후의 상황에 관한 기억의 유무 및 정도, 반성의 빛 유무, 수사 및 공판정에서의 방어 및 변소의 방법과 태도, 소아기호증 발병 전의 피고인의 성격과 그 범죄와의 관련성 유무 및 정도 등을 종합하여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대법원 1994. 5. 13. 선고 94도581 판결 등 참조).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이 범행 내용을 비교적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실, 피고인이 이 사건과 같은 소아에 대한 성범죄로 종전에 재판받을 당시 소아기호증 등의 질환이 있다는 사정을 주장하지 않았던 사실, 피고인이 이 사건 이전에 소아기호증으로 치료를 받았다고 볼 자료가 전혀 없고, 원심 재판 진행 중 소아기호증으로 진단을 받아 진단서를 제출하기는 하였으나 위와 같은 진단을 받은 이후에도 전혀 치료를 받지 않았고, 오히려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보이는 사실, 피고인이 범행 장소를 사전에 답사하기도 한 것으로 보이는 등 이 사건 각 범행이 우발적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이는 사실, 피고인이 약 3년 만에 처와 헤어진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 사건 범행 이전에 성인 여성과 결혼을 하여 아들을 두기도 하는 등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각 범행 당시에도 직업적으로 운전을 하는 등 사회적, 직업적으로 지장을 받고 있다고 볼 자료가 부족한 사실, 피고인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의 의식은 명료하고, 시간·장소·사람에 대한 지남력은 보존되어 있으며, 특별한 감정의 고조나 우울감은 관찰되지 않으며, 사고과정 및 내용상 망상은 없고, 지각 장애도 의심되지 않으며, 시험적인 판단력은 보존되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었으며, 피고인의 소아기호증이 이 사건 범행에 끼친 영향은 적고, 정신과적 치료 효과도 제한적이라고 하면서, 피고인의 소아기호증이 이 사건에 적은 부분 영향이 있었을 것이며,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적은 정도의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한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당시 소아기호증이라는 정신적 장애가 있다는 사정 이외에 더 나아가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였다고 인정할 수 있을지, 피고인의 소아기호증의 정도가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이 있는 사람과 동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인정할 수 있을지 의문의 여지가 있다.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피고인의 소아기호증의 정도 및 내용, 이 사건 각 범행의 동기 및 원인, 범행의 경위 및 수단과 태양,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행동, 범행 및 그 전후의 상황에 관한 기억의 유무 및 정도, 수사 및 공판정에서의 방어 및 변소의 방법과 태도, 소아기호증 발병 전의 피고인의 성격과 그 범죄와의 관련성 유무 및 정도 등에 관하여 나아가 심리한 다음, 피고인에게 인정되는 소아기호증이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을 가진 사람과 동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것인지, 피고인에게 소아기호증의 정신적인 장애가 있다는 사정 이외에 그로 인하여 사물 변별능력이나 의사결정능력이 감소된 상태였다고 인정할 사정이 존재하는지를 검토하여, 피고인이 심신장애 상태에서 이 사건 각 범행을 범한 것인지의 여부에 대하여 판단하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이러한 사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심리,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판시와 같은 사정만을 근거로 피고인이 이 사건 각 범행 당시 심신미약의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한 것은, 심신장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저지른 경우에 해당하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으로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황식(재판장) 김영란 이홍훈 안대희(주심)  


* 관련
나영이사건 단상 : 경건한 분노

* 발아점
베둘레헴, 심신미약 혹은 심신상실의 근거는 대체 무엇인지?

* 추천
얼굴 공개 논쟁... 인권이라는 불편한 노력 (정정훈. 2009.7.20): 강호순 사건 관련글. 스스로를 "자칭 인권변호사"라고 소개하는 다소 유치한 구절로 시작하는데, 글은 엄청 좋다. "아Q언론의 정신승리법"이라는 표현은 참 절묘하다.



나영이 사건 단상 : 경건한 분노

2009/09/30 11:33
0. 너는 그냥 죽어라.
지인에게 사석에서 잠깐 들었다. "12년이 선고되었다구요? 그럼 꽤 중형이네요." 이랬다. 그렇게 말했더니 어린 딸아이를 키우는 그 분이 한참을 어처구니 없어 하더라. 그러다 트위터에서 이 소식을 전하는 아고라 청원글을 봤다. 아, 이 개새끼는 죽는게 낫겠다. 치가 떨린다는 말, 온몸으로 실감한다. 치가 떨린다.  근육이 뻣뻣하게 굳고, 목에 경련이 인다. 이 새끼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폭력성에 대해, 휴머니즘이라는 손쉬운 동감 속에 감춰진 폭력성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 개새끼에게 인간으로서 보낼 수 있는 내 연민의 바닥이다. 물론 그건 그 개새끼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막연해서 잡히진 않지만, 그 개새끼들과 뒹굴어야 하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실은 우리들이 내내 그렇게 일조하고 있는 세상의 보이지 않는 야만, 그 깊은 어둠의 구조에 대한 분노가 좀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 만취와 심신미약 : 분노의 재료  
http://bit.ly/2abxmI 아고라 청원. 최소한 무기징역으로 선고해야 한다는 청원이다. 좌측 상단 첨부파일로 올려진 스틸사진(아주 작게 보여 클릭하기도 쉽지 않은)을 보면, 감정을 추스리가 좀 힘들어진다. 그래도 일말의 이성을 다시 건져내서 판단해보자. 방송국 제작인지 손수제작인지 모르겠지만, 심신미약에 대한 괄호 설명(만취)에 대해선 갸우뚱하다. "만취자 = 심신미약자'이라고? 그래서 형을 감경한다고? 이런 지랄 같은 법이 어딨어!"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많더라. 명백하게 착오라고 판단하고, 그렇다면 적어도 그 부분은 정당한 분노의 재료가 될 수 없다. 

이건 명백하게 착오다. 형법상 심신미약자는 그 형을 감경'한다'(형법10조2항). 형을 반드시 줄여준다. 그런데 술취한 놈, 만취한 놈은 심신미약자라서 감경해준다고? 그럼 그럼 누구나 술 처먹고 범죄 저지르게? 그럼 형이 감경되는데? 술취한 놈을 심신미약으로 인정하는 허술한 법체계가 있을리 없다. 판사가 제정신이 아니고선 만취했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심신미약은 결국은 판사가 판단하는 법률적인 개념이 맞다. 하지만 마음대로 판단하는게 아니라 ㄱ. 생물학적 장애, 가령 정신병질(노이로제)와 ㄴ. 그 병리적인 심리상태가 더불어 인정되어야 한다(복합적 판단). 즉, 단순히 만취상태라서 심신미약이 인정되지는 않는다. 덧붙이면, 행위자(범죄자)의 책임능력을 한정해서 그 형을 줄여주는 심신미약, 즉 책임한정능력에 대해선 당연히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운 행위'(형법10조3항) 이론이 적용된다. 즉, 그 심신미약 상태를 초래한 원인제공자가 자기 자신이라면, 즉 생물학적으로 불가항력인 질병을 갖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책임이 경감되거나 면제되지 않는다.

간단히 정리하자.
술취한 놈에 대해선 '정상참작' 없다. 즉, 단순히 만취상태라서 심신미약을 인정하는 멍청한 판사나 허술한 법체계는 없다.

2. 나영이 : 희망의 재료
그 사건을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니 상상하기 싫다. 사건을 묘사하는 글 몇줄만 읽어도 눈물이 나려고 하는데,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자기 살을 면도날로 긁어버리는 자해행위 같다. 그래도 기억해야 한다. 나영이라는 아이의 고통을 기억해야 하고, 이런 인간아닌 행위가 가능한 그 깊은 어둠을 직시해야 한다. 그건 마치 전두환과 노태우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와 하등 다름이 없다. 그 분노가 사라진다면 인간이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가치들을 모두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분노를 기억하는 방식, 그 분노를 통해 좀더 나은 사회, 좀더 인간적인 사회를 꿈꾸는 일이다. '나라면 저 개새끼 죽이고, 나도 죽는다'는 어떤 댓글, 그 분노에 깊이 공감한다. 하지만 나영이(가명)라는 상징, 그 기억은  좀더 차가운 이성으로 조율되어야 한다. 그건 저 인간아닌 행위에 대한 인간적인 분노를 사회적인 분노로, 사회적인 희구와 소망으로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인간아닌 행위에 대한 분노가 그저 분노에 그친다면, 그래서 너도 죽고, 나도 죽자는 극단의 감정으로 치닫는다면, 해결은 항상 '망각'으로 끝나버리곤 했다. 지금 노무현이 그렇고, 용산에서 치솟은 불기둥이 그렇다. 분노는 함께 더불어 따뜻하게 살 수 있는 희망의 재료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3. 경건한 분노
분노는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다. 그것은 복수를 꿈꾼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아지고, 사회라는 것이 만들어지면서 사적인 복수는 금지되었다. 이제 인간아닌 행위에 대해선 국가의 이름으로, 사회의 이름으로, 제도의 이름으로 공적인 복수가 행해진다. 그 복수는 '정의'라는 채색되지만, 아직 이 땅에서 약한 자들을 위한 정의가 세워진 적은 없는 것 같다. 그 정의는 권력에 따라 그 모습을 바꾸고, 지위와 부에 따라 그 색을 바꿔왔다.

나영이라는 상징은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어둠, 인간에 대한 증오와 불신을 불러온다. 하지만 나영이와 더불어 함께 꿈꿀 수 있는 사회가 그 증오와 불신으로 세워질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분노와 이 모든 증오의 감정은 경건하게 다시 세워지지 않으면 안된다. 이 분노는 희망의 재료가 되어야 한다. 다만 그것이 희망의 재료가 되기 위해선, 야만에 대한 분노의 방식이 야만이어선 곤란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 분노를 스스로에게, 우리가 침묵하고, 우리가 외면했던 기억들에 돌리고, 그 기억들을 다시 꺼내와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 발아점  
안산 9세여아 등교길 강간치상 사건 (캡콜드, 2009. 09. 30.)
http://capcold.net/blog/4737
내가 항상 그 의견을 주의 깊게 경청하는 블로거 캡콜드가 '나영이 사건'에 대해 썼다. 이번에는 그 의견과 판단근거 등에 대해 이견이 없지 않았다. 물론 더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고, 동의하지만. 망설이던 참에 부족한 의견이나마 보태보자는 차원에서 써본다. 사족. 검사의 기소내용에 대해선 정확히 모르겠으나, 후에 접한 문건들을 통해 보건대, 피해자로서 당연히 정황의 과장이라는 심리적 반응을 넉넉히 인정한다는 전제에서도, 이 사건이 '강간치상'이라는 건 좀 이해되지 않고, 마땅히 '강간상해' 혹은 '강간살인'에 준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시는 분이 계시면 조언을 부탁드린다. 물론 중요한 건 아니지만.

추.
이번 사건을 공론화한 매체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당한 분노를 일깨운다는 점에선 그 취지와 성과를 인정하지만, 그 방법론, 그 수위조절(가령 위 아고라 글에 담긴 스틸사진들이 방송사에서 제작한 것이라면)에 대해선 한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좀 늦었다. 기억에 의존해서 쓴다. 작성자의 편견과 주관적 인상들에 의해 그 기억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우선  밝힌다. 핵심 논의 사항들만 적는다. 어떻게 정리하는게 효율적인가 생각해 봤는데, 각 참석자들을 기준으로 각자 강조한 주제들을 우선순위별로 요약하는게 그나마 복잡한 논의를 시간순으로 적어 퍼즐 만드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다. 혹여라도 잘못 서술된 부분에 대해선 참석자들의 적극적 논평을 부탁드린다.

참석자(가나다) : 강정수. 민노씨. 써머즈. 이승환. . 한날. 진민정(객원).

일시
: 2009.9.16.수. 저녁 7시~11시 (4시간).
장소 : 서울 종로 인사동 '박씨 물고온 제비' 
비용 : 7인 참석, 11만 9천원(8천원? 헷갈림. -.-;). 외부 전문가 초대 없었음. 지원금으로 충당(예정).
후원 : 언론재단 블로그연구모임 지원금으로 충당(한도 월 1회 모임 총 3회지원. 1인당 2만원. 외부전문가 초대시 20만원까지 지원).


[논의 주제](참조 : 블로그 연구모임 : 개요 )
1. 팀블로그 / 블로그 네트워크 왜 안되나? 무엇이 문젠가?
2. 팀블로그 / 블로그 네트워크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연구모임 성원들이 대부분 팀블로그 블로그래픽 동인이었는데, 그래서 이 날 논의는 블로그래픽의 시행착오에 바탕한 진술들이 많았다. 예상했던 바이고, 또 그것은 구체적인 체험적 사례로서 논의 주제의 일부로 예정된 것이었으나, 이에 대해 다소 예상외라는 참석자도 있었던 것으로 판단. 이는 참석자에게 논의주제를 사전 전달하는 과정에서 다소간 착오가 있었지 않았나 싶다. 리승환은 1시간 쯤 뒤에 도착했고, 한날은 1시간쯤 먼저 자리를 떠났다.

      강정수. 인터넷 권리장전을 만들자! 감동을 주자! 
- 주로 위 주제 2.에 대해 의견 개진. 가장 적극적인 참석자. 마지막에 인사 없이 사라짐!(흥~! ㅎㅎ. 농담)
1. (가령) 인터넷 권리장전이 필요하다. 온라인 권리침해에 대한 보호가 절실하다. 인터넷 공화국! 인터넷에 기반한 정당도 만들수 있다면 만들어야 한다!
2. 열정과 감동 등의 정신적 가치들 역시 '이익'이고, 또 추후에는 '현실적인 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3. 오프라인 매체를 만들 필요도 있다(오프라인과의 연계성. '와이어드'의 사례).  언론사는 왜 못만드나? 그리고 오프라인 매체의 특성과 온라인 매체의 특성에 대한 차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4. 네트워크 인적 요소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방향성이 중요하다. 감동을 만들고, 독자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민노씨. 팀블은 해드쿼터 역할만. 링크 인덱싱 작업을 해보면 어떻겠나?
- 각론을 강조. 자주 쓸데없이 발언에 끼어들다가 펄에게 핀잔 받기도. ㅡ.ㅡ;;
1. 기존 팀블로그가 안된 이유는 게으름이다. 시간+열정의 조건이 모두 만족되기 어렵다. 과도기로 팀블로그는 해드쿼터 역할만 하는게 좋겠다. 이는 블로그래픽이 잘 안된 기술적인 문제는 기존 블로그와의 관계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2. 일단 팀블로그에선 '링크 인덱싱'(어떤 개별 주제-중분류 정도 부피의-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작업에 주력하면 어떤가? 이는 우리나라 매체의 고질병인 '이슈 완결성'을 확보하고, 이를 보완하는데 긴요하다.
3. 초기 투자비용 - 상근직 관련 : 에디터가 아니라 '매니저'가 필요하다.

      써머즈. '팀'이나 '블로그'라는 형식에 얽매일 필요 없다!
- 형식적 틀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 성원의 다양성을 묶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
1. 팀이나 블로그라는 형식에 얽매일 필요 없다. 실질적인 네트워크의 산출물이 중요하다.
2. 다양한 성원들의 개성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기존 블로그래픽는 거시적인 차원에선 뜻을 함께 했지만, 동상이몽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 같다.
3.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 대한민국 IT산업은 본질적으로 규제적이다. 왜 신제품 얘기만 하나? 
1. 초기 투자비용은 필수적이다. 팀블로그가, 어떤 네트워크가 그 실질을 갖기 위해선 최소한의 초기 투자비용이 필요하다. 블로그래픽은 이게 없었다. 상근직이 필요하다.
2. IT산업의 본질은 규제적이라는 점이다. 이걸 적절하게 지적하는 매체가 없다. 이런 걸 팀블로그에서 쓸 수 있다면 좋겠다. 이 연장에서 IT 사이트, IT 기자들 좀 아쉽다. 왜 신제품 이야기만 하나?
3. 전문성을 기반으로 권위를 확보할 필요성. 이를 중심으로 여론형성이 가능한 정도를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4. 공통 주제와 구체화된 목표가 필요하다.

      한날. 초기 투자비용은 필수다. 자율적인 협업 모델은 다 망했다! 先브랜딩.
- 주로 논의주제1.과 관련해서 의견 개진. 추후 연구모임 참여 불투명(주관적인 느낌. 아니라면 좋겠지만..^ ^).
1. 팀블로그에서 자율적인 협업 모델은 다 망했다. 그리고 초기 투자비용은 필수다. 그게 '문턱'을 넘겨야 한다. 이걸 해결해야 한다. 블로그래픽은 이걸 못했다.
2. 아직까지 온라인은 오프라인을 보완하는 성격이 강하다. 온라인이 주라는 건 착각이다. 기술적 관점에서, 온라인은 서치에서 강점을 갖지만, 여전히 브라우징(가령 책을 읽는 경우 시각적 쾌적도)는 오프라인이 앞선다.
3. 先브랜딩의 필요성. 뜻있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잘 되겠지, 콘텐츠가 축적되겠지 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리승환. 전문가가 되는 두 가지 방법! 1. 졸 잘난 경우 2. 졸 뻔뻔한 경우 
1. 브랜딩 방법론과 관련 :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얻는 두 가지 유형 혹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해당영역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출중한 지식과 인식을 갖는 경우다. 나머지 하나는 자신감 하나로 밀어붙이는 경우다. 우리나라 경우 99%는 후자다.
2. 협업 형식 관련 : 툴은, 가령 그게 위키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
3. 오늘 모임이 그나마 그간 (옵저버로) 참여했던 블로그래픽 준비모임보다는 훨 낫다.

      진민정(객원). 이론 연구모임인줄 알았는데 아니네.
- 옵저버 역할(논문 자료 조사 목적). 주로 논의를 경청. 후에 간단한 소감.
1. '연구모임'이라고 해서 이론 논의를 주로 할 줄 알았는데, 다소 의외다(실무적 논의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
2. 약간 오덕스런 느낌이 없지 않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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