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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잡생각.
한 일본인이 쓴 글을 번역한 글을 봤다. 새해 결심에 관한 글이었는데, 새해 결심이란 뭔가 다른 사람, 뭔가 좀더 좋은 사람이 되자는 다짐일 터, 그런데 그 일본인(당근 누군지는 모르겠다)은 결심이 부질 없다 말한다. 그 별로 길지도 않은 글을 다시 요약하면, ㅡ.ㅡ;

사람이 변하는 세가지는 1. 시간배분  2. 장소(옮기기) 3. 만나는 사람(바꾸기) 밖에 없다는 거다. 4. 가장 부질없는 것이 결의를 다지는 것이라고 하더라. (그 일본인의 텀블러. 트위터. 블로그)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게 좀 순환논법 같기도 하고, 도로아미타불식 이야기 같기도 하다. 1. 시간(배분) 2. 공간(이동) 3. 사람(교체)..  그 123을 위한 ‘결심’이 일단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각각에 대해서도 1은 결의(의지를 굳건히 세우는 일)가 지속적으로 필요하고, 2는 물리적인 한계(자금이랄지, 상황이랄지)가 클 것 같고, 3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왜 그토록 그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을까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뭐 결론이랄 것 까지는 없는데, 굳이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정리해보면, 막연하게 여겨지는 상식을 뒤집으면서(4.), 그 상식적인 이야기를 다른 식으로 , 좀더 구체적이고, 좀더 선언적으로, 그리고 좀더 상징적으로 풀어 놓으면(123), 그건 뭔가 그럴 듯 한, 섹시한 느낌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순환논법 비스무리라고 한거다. 아무튼 그렇다는 거다.


* 도로아미타불
나는 처음에 '도루아미타불'로 썼다가, 좀 갸우뚱해서 찾아보니, '도로아미타불'다. 우리말 '도로(다시)'+'아미타불'(아미타부처님)이 합쳐진 말이더라. 아래 서방정토와 타방정토는 같은 의미다. 타방정토사상는 정토가 서쪽에 있다는 사상이란다. 그리고 이 서방정토(극락)을 만든 게 아미타불이라고 한다. 정토가 내 마음에 있다는 건 유심정토(사상)이다. 

"10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공든 탑이 무너진 경우를 빗대어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10년 동안 아미타불(아미타부처님)이 서방정토에 계신 줄 알고 염불했더니, 그 서방정토는 내 마음에 있었구나'라고 하는데서 유래된 말이다. 즉 타방정토(他方淨土)에 가고자 지극정성으로 발원하고 기도했더니 그 정토는 저기 먼 곳이 아닌, 내 마음에 있었다는 유심정토(唯心淨土)라는 것이다."(정운

* 발아점
새해 결심과 인지적 부하 (아거)
http://gatorlog.com/?p=1840 강추.
: 아주 새로운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러니 위 일본인 글처럼 '섹시한 글'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담담하게 그래도 새해 결심을 하는게 낫다는 걸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 같다. 다만 그 결심이 너무 빡시지 않도록 조절하라는 당부도 덧붙이고 있는데(부하 걸리지 않게), 결심이 결심을 실천하는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주 소박한 새해 결심(댓글에 답글 달자!)을 한 바 있는 펄의 댓글이 있을 것 같았는데, 정말 펄의 댓글이 있다. ㅎㅎ.



LG(E) 블로그(제목이 '더 블로그'인데, 조어가 좀 과분하게 과감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뭐 잘 선점했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에서 오픈300일 방문자 30만을 기념해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한다. 이벤트 내용은 경품 걸고 오픈캐스트 구독자나 트위터 팔로워 늘리긴데, 경품은 명품 노트의 대명사인 '몰스킨' 10명, 친환경 연필세트 10명, 스타벅스 기프티콘 10명이다. 무슨 큰 미끼 경품은 아니고, 소박하다. 암튼 이에 관한 간단한 질문을 트위터에 올렸다. 생각보다 응답주신 트윗벗들이 많아(무려... 6명.. ㅎㅎ) 정리해서 옮겨본다.

* 미리 사족 : 생략 가능 ^ ^. 
블로거벗인 미도리에 대한 호감(종종 대화하면서 쌓인 미운정 고운정이랄까?)이 반영되어 그런지 몰라도, LG (E)블로그에 대해선 (잘은 모르지만) 호의적인 편이다. 체험치 극히 부족한 선입견일 수 있지만. 뭔가 열심히 하려는 것 처럼 보이고, 블로그와 호흡하려는 모습도 느껴지고, 그래도 (상대적으로) LG가 양반이군... 이런 정도 인상을 갖고 있다. 뭐 추상적인 감상일 뿐이지만. 물론 다른 기업블로그에 대해선 더더욱 체험치가 없고, 워낙에 블로그 마케팅 시장이 개판이라는 건 직접 목격하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듣기도 많이 들어서.. 암튼, 이 작은 설문(?)이 LG(E) 블로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본다.


*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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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oci  http://blog.lge.com/275 (비추. 필요링크라서) : 경품걸고 구독자(오픈캐스트) 팔로워모집(?)하는 방식. 직관적으론 거부감. 좀더 생각해보면 내가 좀 예민한가 싶기도. 왠지 자전거일보도 떠오르고. 트윗벗들 생각은 어떠신지요?


*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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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deModel 요즘 이런 거 많습니다, 수치로 보이는 게 보고에도 중요하다보니 여러 문제 알아도 어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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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rogge 아파트가 경품으로 나온 것도 아니고, 꽝 없는 백퍼 당첨도 아니고.. 평범한 사용자들도 배를 갈라보이는 용기만 있으면 시도해봄직한 정도로 보입니다. 초기 웹이 그랬듯 트위터도 곧 닷컴들이 몰려오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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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dweb 오픈캐스트는 구독을 증명할 방법도 없고 트위터는 이벤트 경품을 미끼로 팔로워모집을 하니 이벤트 끝나거나 득템 못하면 그냥 언팔하면 되지 않을까요? 서로 필요한 만큼 이용하고 이용당하면 될듯.. 신경쓸만한 일은 아닌듯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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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grey 갠적으로 숫자에 민감하게 지낸건 학창시절로 충분함 그래도일단 거부감들지만 운영자입장에선 달리 반짝아이템이 없었나보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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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rumaru 요새는 개인 정보 대신 팔로워를 모으나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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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listen2 경품만이 목적이라면 팔로윙의 의미가 없어지네요. 한편으로는 이용 당하는 느낌도 들고.



* 정리
정리라고 할게 있겠냐만, 러브드웹(윤초딩) 의견을 참조하면 이 이벤트로 구독자 배가 운동(ㅎㅎ)에 성공하더라도 장기 구독자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한편에선 일단 구독 혹은 팔로잉한 뒤에 그걸 다시 삭제하는 것도 귀찮아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뭐, 이승환의 지적처럼 일단 모집에 성공하면 '보고'하기는 좋겠다. "이용하고, 이용당한다"는 표현이 새삼 인상적이고, 약간은 씁쓸한 느낌이 들기는 한다. LG전자 블로그의 이벤트에 대해선, 물론 표본이 너무 적어서 객관성 확보는 어렵겠지만, 대체로 크게 무개념은 아니다라는 반응인 것 같고, 그럼에도 살짝 문제가 있긴 하다, 거부감이 좀 생기기도 한다 정도 정서인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블로그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물질적 대가 관계로 만들어선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독자의 자연스런 관심이 물질적인 대가를 낳는 건 자연스럽고, 또 권장할만 하다. 그게 구글애드센스 같은 것이든, 아니면 독자들의 관심과 신뢰를 통해 책을 내거나 어떤 사업을 구상하든, 그건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 하지만 독자의 관심을 경품이나 돈 같은 물질적 대가로 유도하는 건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블로깅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즉각적이든 잠재적이든 (물적) 대가에 대한 기대심리에 기반하고 있기는 하다. 그게  지금 당장의 직접적인 교환 방식이냐, 아니면 평판이나 신뢰를 쌓고, 좀더 먼 미래에 그런 평판이나 신뢰를 바탕으로 뭔가를 꾀할 수 있는 잠재적 차원이냐 뭐, 그런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점점 더 즉각적인 물질적 교환 방식이 주된 블로깅에 대한 생산자/독자들의 기대심리를 반영하는 하나의 경향이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이게 좀 아쉽다.

암튼 LG전자 블로그의 이번 이벤트를 곧바로 자전거일보식 홍보로 볼 수 있는지 여전히 갸우뚱하다. 경품으로 내건 물건들도 소소하고, 뭐 가볍게 보자면 훈훈한 이벤트일수도 있겠다. 구글 텍스트큐브닷컴처럼 아예 블로그를 옮기게 하는 맥북프로 쏟아지는 이벤트도 아니고, 뭐(나도 구글 맥북프로 때엔 좀 욕심이 나긴 하더라능... ㅎ). 하지만 나는 이런 방식이 별로 맘에 들지는 않고, 차라리 LG전자 블로그에 대한 체험치를 갖는 독자들에게 조언/충고/장단점 등등에 대한 의견을 문의하고, 그 중에서  좋은 의견에 경품을 주는 그런 방식이라면 낫겠다 싶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귀찮아서 응모(?)하지 않으려나? ㅡ.ㅡ;;

* 끝으로...
독자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간단하게 논평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




이명박 혐오와 동성애 혐오 : 차이점

2010/01/06 03:03

특히 이글루스 쪽에서 동성애 혐오에 관한 설왕설래가 있는 모냥. 그 설왕설래 와중에 동성애 혐오를 혐오하는 진보(?) 좌빨(?)들은 왜 이명박 혐오에 대해선 입다물고 있나, 이명박을 죽이고 싶다는 언어의 폭력성과 동성애자들을 죽이고 싶다는 언어의 폭력성은 뭐가 다른가, 이런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모냥. 이 글은 그 모냥이 왜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단상이다.

이명박이라는 이름은 고유한 인격체를 표시하는 이름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공적 정치행위의 상징이다. "나는 이명박을 죽이고 싶다."는 문장은 이명박이라는 고유한 인격체를 박살내고 싶다는 감정적 혐오에 기반한 게 전혀 아니다. 그 문장은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공적 정치행위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강하게 표현한 정치적 수사다. 그것은 정치적 의사표시다. 양심의 자유에 속한 문제고, 정치적 표현의 자유 한계 내에 존재한다. 이 발언에 폭력성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폭력성은 당대 권력, 좀더 순화시키면, 당대 시민사회가 쟁취한 공동체적 합의의 허용 한계 내에 있다. 그 자유의 한계는 물론 시대마다 달랐다. 박정희 시대에 "나는 박정희를 죽이고 싶다."는  소리했으면 바로 남산으로 끌려갔을거다. 그나마 이런 정치적 표현의 허용 한계를 우리는 조금씩 넓혀왔다. 그게 그냥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나? 우리의 선배 세대들,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이 권력에 매 맞아가며, 피를 뿌리면서 쟁취한거다. 대처 시대 탄광촌을 다룬 영국 영화들을 보라. 대처가 제발 좀 죽었으면 좋겠다는 대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아예 대처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교회에서 기도하는 장면도 나온다. 걔네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영화적) 표현을 쟁취한거다. 각설하고,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 이명박 혐오를 표현하는 말, 글에 나타난 과한 수사들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속한 문제다.

동성애는 공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성인들의 사적 생활에 속한 부분이다. 그래서 그걸  사생활이라고 하고, '성적 취향'이라고 한다. 이명박이 상징하는 공적 정치행위와는 논의 평면이 다르다. 이성애자들을 중심으로 한 다수 문화는 동성애와 양성애 박해를 당연시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그건 특히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 문화, 이슬람 문화권에서 강하다고 하더라(나도 잘 모른다). 암튼 우리나라 얘기를 해보면, 면면히 이어져내려오는 가부장적 유교의 관성도 당연히 이런 비이성애 혐오 이데올로기를 만들낸 것 같다. 즉 역사적으로 이 문제는 (다수) 권력의 횡포라는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러니 소수자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무슨 표현의 자유나 양심의 문제가 아니다. 이 존중 범위를 얼마나 두텁게 인정하고, 넓혀나갈 것인가. 그것이 그 사회의 성숙을 반영한다. 이명박 혐오와는 정반대 문제 되시겠다.

간단히 정리하면 "나는 동성애자를 죽이고 싶다."라는 혐오적인 이데올로기는 극복해야 하는 다수 문화, 주류적 권력이 만들어 낸 역사적 관습의 잔재일 뿐이지, 그걸 양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로 끌어와서 존중해야 하는 문제가 전혀 아니다. 이것이 정치적 성향과 아주 상관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가령 보수파는 동성애 문제에 부정적이고, 진보파는 동성애에 대해 긍정적인 점), 그런 정치적인 성향과 연계하기 이전에, 다수 취향을 가진 인간이 소수 취향을 가진 다른 인간을 그저 인간으로서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아직 그 존중이 당연하지 않은 우리시대가 그걸 얼마나 더 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끌어올 수 있는가라는 보편적 인간성에 관한 문제다. 그러니까 동성애 혐오를 무슨 표현의 자유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아해들(의 사고방식)은 존중 대상이 아니라, 극복 대상일 뿐이다.

한줄정리. 타인의 취향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들어 공격하는 행태를 우리는 흔히 '찌질하다'고 부른다.


추.
허지웅 글(추천)을 보니 도킨스를 인용했길래, 우연히 지난해 연말 선물로 받은 [만들어진 신]을 한번 훑어봤다. 내가 찾는 부분은 나오지 않고(아마 도킨스의 다른 책인 듯), 대신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동성애에 대한 공식적인 처벌은 사형이었다. 산 채로 묻은 뒤 그 위에 벽에 쌓는 고상한 방법을 써서 말이다. (....) 내 조국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영국에서도 동성애는 1967년까지 범법 행위로 취급되었다. 1954년 요한 폰 노이만(Johann Ludwig von Neumann)과 더불어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한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이 동성애자라는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뒤 자살했다. 튜링이 벽 아래 산채로 묻힌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는 2년 동안 감옥에 들어가든지(다른 죄수들이 그를 어떻게 대할지 상상이 갈 것이다) 가슴이 튀어나오게 하는 호르몬 주사를 맞고 화학적 거세를 당할지, 선택하라는 제의를 받았다. 결국 그는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는 것으로 개인적인 선택을 했다.
- 리차드 도킨스, '내가 종교에 적대적인 이유 : 신앙과 동성애',  [만들어진 신](2006), 이한음역, 김영사(2007), p. 439.

사족. 튜링과 애플
유명한 일화. 이 일화는 내가 거의 유일하게 즐겨봤던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인 [서프라이즈]에서도 나왔던 것 같다. : ) 튜링은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깨물어 먹고 자살했다. 1976년 애플을 창립한 스티븐 위즈니악과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의 아버지 튜링을 기리기 위해 한 입 베어문 사과를 로고로 선택한다.


* 관련 추천 : 모두 강추.
무엇이 보입니까? (아거. April 22, 2004)
http://gatorlog.com/mt/archives/001715.html

: '그것'이 보이는 순간 더 이상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 선입견이라는 괴물.

Is there a "Gay Brain"? (아거. April 28, 2004)
http://gatorlog.com/mt/archives/001726.html 
: 동성애가 생물학적 차이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혀낸 사이먼 리베이(Simon Levay. 1991년)와 딘 해머(Dean Hamer. 1995년).

"링컨은 게이(gay)였다"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든 생각 (아거. December 17, 2004)
http://gatorlog.com/mt/archives/001933.html
: 동성애 증오가 역사적/문화적 산물이라면, 이성애 증오가 생기지 말란 법 없다. 있을 때 (서로 서로) 잘하자.

련애박사의 고난이도 동성련애 108 법칙 (이정우. 2004년 2월 11일)  
http://chungwoo.egloos.com/275616 
: 전부 공감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아주 유쾌하고, 재밌는 글. : )




아바타 : 3D vs. 2D

2010/01/06 00:04

아바타, 시네마 묵시록에서 이어지는 글.

지난 주말에 두번째로 아바타를 봤다. 이번엔 2D로 봤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3D로 다시 볼걸 하는 실망감이 초반에는 강하게 들다가,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몰입감이 생기면서 그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더라. 그럼에도 다시 아바타를 보게 된다면 당연히 3D를 선택할 것 같다. 3D와 2D를 본 소감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스포일러는 (아주 예민한 독자라도 거의) 없다.

1. 아바타 2D와 아바타 3D는 서로 완전히 다른 영화다. 그런 의미에서 아바타 2D의 서사와 아바타 3D의 서사는 동일한 서사가 아니다. 즉, 아바타 2D와 아바타 3D에서 같은 건 '시나리오'일 뿐이다. 

3. 같은 시나리오임에도 서로 다른 서사라고 이야기하는 게 좀 궤변 같지만, 벤야민이 이야기한 원전성, 예술작품의 오리지널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우라'라는 개념을 원용해보면, 벤야민이 아우라를 파괴하는 기술복제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대중적 문화양식으로서 영화를 이야기하는 점에서 좀 역설적이긴 하지만, 아바타 3D는 오리지널이고, 아바타 2D는 카피본이다. 2D는 3D의 원전성을 흉내낼 수는 있어도, 그 압도적인 아우라를 도저히 쫓아갈 수 없다. 이건 내가 사본으로 본 아이리스와 눈 앞에서 본 아이리스가 전혀 다른 체험인 것과 같다.

5. 그 관점에서 2D를 본 뒤에 아바타의 서사적 취약점을 비판하는 관점은 설득력을 갖지만, 3D를 보고 아바타의 서사적 취약점을 공격하는 건 그 설득력이 급속하게 반감된다. 왜냐하면 양자는, 앞서 이야기했듯, 서로 다른 내러티브를 갖기 때문이다. 아바타의 내러티브는 끊임없는 '찰나성'에 있다. 특히 판도라 행성에서 제이크가 체험하는 그 일체감의 이미지들 그 자체에 아바타 내러티브의 핵심이 존재한다. 풀 3D 입체영상이 2시간 40분 내내 펼쳐지지만, 아바타 3D는 어떤 순간들을 마치 기적처럼 소망과 환희, 일체  그 자체로 형상화한다. 다만 그 소망과 환희와 일체로서의 이미지, 그 순간들을 우리는 그 이미지에 완전히 부합하는 언어로 고정시키지 못한다. 시각 이미지가 언어로 완전하게 고정될 수 없다면, 그래서 어떤 풍경들이 우리를 압도하는 놀라움, 경이, 감동에 대해 그저 '아...'라는 탄성을 내뱉을 수 밖에 없다면, 우리는 그 경이로움에 부합하는 언어들을 다시 겸손하게 찾아나서야 한다. 손쉽게 책장 속에 있는 메마른 언어를 불러오고, 그렇게 '시나리오'에 바탕해서 영화를 매장시키는 문자중심적 태도는 다소 유감스럽다. 그 문자중심적 사고는 아바타의 전언과 정확히 반대의 지점에 서있다. 영화와 시나리오는 전혀 다른 물건이다. 아바타 3D가 감히 창조의 영역이라고 했을 때, 여기엔 당연히 3D만 포함되고, 2D는 포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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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그림이 아이리스가 아니듯, 아바타2D는 아바타가 아니다.


추. 소요유님의 아바타 관련글에 남긴 댓글 
영화에서 3D 혁명을 ‘완성’ 단계로 진입시킨 아바타는 당분간은 이 3D라는 놀랄만한 테크놀로지의 유행 속에서 ‘작은 영화들’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more..


* 주말에 아바타 2D를 함께 본 블로거벗은 옥토님블루앤라이브님이다. : )

* 관련 : 무비토그 70회 : 아바타

* 관련 추천.
걸작! 아바타 (옥토)
http://mr-ok.com/tc/238 강추. : 카메론 마니아로서의 애정이 듬뿍 담겨 있는 글. 특히 카메론 영화가 과학에 바탕한 상상력을 추구한다는 점에 주목해서 판도라 행석의 매커니즘을 상술하는 부분이 참 좋다. 약간 과한 애정의 뉘앙스는 살짝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 ^;



꽃향기와 방귀냄새 : 부담스런 휴머니즘

2010/01/05 15:26
"그런데 그 냄새는 '나쁜' 것이 아닌 '익숙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초코파이. 인권운동 사랑방 활동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29164028 (그래도) 추천.  

도덕적 선의나 사회적인 비판의식이 (육체적) 감각을 일순간 변화시키거나 지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꽃향기는 꽃향기고, 방귀냄새는 방귀냄새다. 방귀냄새는 '익숙'하지만, '나쁜' 느낌이다. 꽃향기는 익숙하지만 (대체로) 향긋하고, '좋은' 느낌이다. 농촌의 퇴비 냄새나 어촌의 비릿한 냄새들을 노숙인들의 쾌쾌한 냄새와 같은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나로선 좀 이해가 안되고, "서양에서 목욕이 일반화된 것이 200년도 안 된 일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냄새, 위생에 대한 생각은 원초적인 것이라기보다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명도, 그게 역사적인 사실일 수는 있을지언정, 궤변이거나 주장을 위해 짜맞춘 가짜 근거 같다. 한마디로 좀 억지스럽다.

노숙인들의 불결함이 사회구조적 모순, 좀더 풀어 이야기하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주거권과 건강권 미비에 바탕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 복지정책의 미흡함(공동체 일원으로서 그 사회적인 부채의식)이 '나쁜' 느낌을 '좋은' 느낌으로 변화시켜주지는 않는다. 그러니 그런 '성찰적 앎'이 감각 자체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숙인의 '나쁜' 냄새는 '익숙하지 않아서' 좋지 않은게 아니라 원래부터 감각적으로, 최소한 수천년(?) 이상 인간의 후각 기관에 부정적인 시그널로 유전되어 어쩔 수 없이 좋지 않은('나쁜')거 아닌가 싶다.

노숙인을 인간적으로 존중하는 것과 노숙인의 냄새가 '부담'스러운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본다. 즉, 노숙인을 인간적으로 존중하기 위해서 노숙인의 역한 냄새를 향긋하게 맡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물론 좀 참을 수는 있겠지만. ㅡ.ㅡ;). 인권이나 도덕성이 인간의 후각기관을 교정하는 메스가 될 수는 없다. 차라리 나쁜 냄새를 필터링할 수 있는 약물이나 휴대장치 따위를 개발하는 편이 빠르지 않나 싶다. 주거권과 건강권을 강조하는 취지도 좋고, 좀더 예민한 공동체적 사회의식을 고양하자는 취지도 좋은데, 방귀냄새를 꽃향기로 둔갑시키는 억지 휴머니즘은 좀 부담스럽다.



* 발아점
"이런 개소리는 좀 그만 들었으면 좋겠다. 냄새가 역한건 역한거다. 이런 애들은 좀 말지랄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 (joeaney)
http://twitter.com/joeaney/status/7239224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