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위 사설로 촉발된 논쟁이(한창? 이란)다.
소유유 블로그에 갔다가 이제야(오늘 새벽) 알았다. 간단히 쓴다.



1. 논점

1) 전직 대통령의 정치활동은 전적으로 금기시되어야 하는가?

전직 대통령이 직접 토론사이트를 개설해 운영하는 건,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불필요한 논란을 확산시키며 정치적 ‘반목과 대립’만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의 전통이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 현실에선 전직 대통령들 스스로 좀더 조심스런 태도로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는 게 바람직하다.

친노 인사들은 정치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그들이 정치세력화를 추진하든 안 하든 그건 스스로 결정할 문제고, 나중에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다만, 전직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세 결집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적절치 않다.

- 한겨레 사설 중에서

위 문장들이 핵심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렇다.
전직 대통령은 정치활동(이라고 의심될 수 있는 활동까지 포함해서) 하지 마라. ㅡ.ㅡ;

2) 이 '게시판'은 민주주의 2.0이 맞나?

3) 이 '게시판'은 과연 성공하겠나?


2. 전직 대통령의 정치활동은 전적으로 금기시되어야 하는가?


위 논점을 다룬 미디어오늘의 '누리꾼 인용' 기사를 보자.

위 기사는 일견 한겨레 사설의 입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겨레가 말하는‘존경받는 전임 대통령의 전통'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묻고 싶다”면서 “‘존경받는 전임 대통령의 전통'이라는 수사를 앞세워 전임자의 현실정치 참여를 막는 이와 같은 문화는 과연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미디어오늘 기사 중에서)

하지만 기사 말미에 '전망'을 겸한 한겨레 사설 옹호론을 예시하면서 균형(?)을 맞춘다.
솔직히 말해서 토론 사이트는 공정하고 중립적인 기관(다음 아고라 등)에서 운영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 이 누리꾼은 “마찬가지로 노공이산이 개설한 이 토론사이트에도 당연히 ‘노사모’ 성향의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 ‘용(노)비어천가'를 합창할 것이며, 현 집권자를 ‘쥐박이'니 뭐니 하면서 온갖 폄훼와 비방을 일삼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한겨레가 우려하는 것이 바로 그런 편파적인 패거리들의 짓거리를 경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디어오늘 기사 중에서)

나는 전자, 전직 대통령의 정치활동에 대한 (마치 그게 상식인양 당연하게 언급되는) 금기가 정당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사설에서는 의도적으로 누락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니 이 질문은 민주주의 2.0 사이트가 어떻게 굴러갈 것인지를 '전망'하는 것보다 선행해서 마땅히 질문되어야 하는데, 그게 생략됐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이것은 정치활동 재개가 아니다"라고 변명(?)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가 한겨레 사설에는 없다. 그리고 나는 그게 좀 궁금하다. 사설은 그냥 마땅히 그렇다는 식이다.

한겨레 사설에서 제시한 논거라는게 그냥 당연히 그렇잖아라는 식의 선언이거나, 국민감정(ㅡ.ㅡ;)에 대한 막연한 추정이다. 가령 이런거, "얼마 전 노 전 대통령 핵심 측근 두 사람이 골프장에서 사돈을 맺고, 노 전 대통령은 결혼식 주례를 보고, 친노 인사들이 대거 집결한 걸 보면서 많은 국민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게 무슨 논설인가? 이건, 이런 말은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조중동 사설에서 자주 나타나는 논리(라고 하기에는 좀 뭣한) 전개방식이다.

한겨레 사설는 문제제기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나, 상황판단이 생략된 선언적이고, 감상적이며, 예언적인 동어반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논리구조는 이렇다.

전직 대통령이 정치활동 재개하면 나쁘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나쁘다고 할 것 '같으니까'
국민들은 그게 왜 나쁜지 뻔히 알고 있으므로 '나쁘다'에 대한 설명은 생략.  

그런데 나 같은 무식한 국민들은 그게 왜 '당연히' 나쁜지 잘 모르겠다.

물론 이런 생각은 든다.
광주학살을 비롯한 그 무수히 많은 정치적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전두환이나 노태우 같은 이들이 아직도 떵떵거리면서 29만원으로 골프치며서 간간히 뉴스에 등장하는 그 '섬뜩한 코미디'는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정의는 상식적인 시민들의 수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파워엘리트들의 손아귀에서만 존재하는 '신비로운' 권력 미학일 뿐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러니까 대외적으로 전노정권에 대한 정치적 정의(쉽게 말하자면 역사적인 복수)가 실현된 바 없기 때문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아주 막연한, 주술같은 '부정적인 선입견'이 정당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3. 이 '게시판'은 민주주의 2.0이 맞나?

'2.0'은 이제 무슨 세일 구호같다.
여기에는 이제 어떤 감동도, 어떤 울림도, 어떤 실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각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2.0의 바로 그 '2.0'을 표방한다는 건데 그 형식이 '게시판'이라는 건 좀 의외다.

물론 게시판은 죽은 형식, 블로그는 장땡.
이런 소리 할 생각 전혀 없다.
그래도 좀 이상하다는 거지.

'민주주의 2.0'은 그 표피적인 얼개만으로 거칠게 인상비평하자면, 좀 심하게 어처구니 없는 수준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충 이런 모습이다.
RSS도 지원하지 않으면서 무슨 2.0이라는건지 알 길 없다.
트랙백도 당연히(?) 안되고, 그냥 게시판에 '모여서' 토론하라는 것 같다.
그러니까 민주주의 2.0은 그냥 요즘 유행이라니까 '2.0'을 그냥 광고문구처럼 차용하고 있다고 밖에는 평가할 수 밖에 없겠다.

제일 한심한 건 이런 화면을 만났다는 거다.
사이트 바닥에 있는 '약관 / 이용안내 .. ' 등의 링크를 클릭하면 이런 친절한 화면으로 안내해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 이 '게시판'은 과연 성공하겠나?

난들 알겠나.
솔직히 난 이 게시판의 성공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래도 성공하길 조금은 바란다. 
노무현과 그 일당들(이건 우호적인 표현이다. 딴지 반사)이 조중동과도 좀 제대로 싸워주고, 이명박 정부의 대언론정책, 대포털정책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공론화하는데 도움을 주고, 블로거들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뭐 그러면 나쁠거야 없잖나, 싶은 그런거지, 뭐.

그런데 (물론 현시점에서 거칠게 전망건대) 성공할 확률은 매우 적은 것 같다.

ㄱ. 위 미디어오늘에서 적절히 인용한 것처럼 소위 '노무현 지지자'들의 일방적인 목소리만 응집되는 공간이 될 확률이 매우 높아 보인다. 그러니까 '토론'과는 상관없는 공간이 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

ㄴ. 더구나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개방적 소통기제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특히나 블로그와의 연계는 전혀 고려사항이 아닌것 같다).

ㄷ. 결정적으로 노무현 전대통령은 직접 (사이트 운영에)'참여'하는 건 아니란다. ㅡ.ㅡ; (이건 뭐 허무개그도 아니고... )

언젠가 블로거 소요유는 '노무현 대통령은 블로거가 되라'고 주문했다.
이런 이름만 '빌려주는' 게시판보다는 블로거 노무현을 보고 싶다.
 



추.
나는 '대추리의 기억' 때문에...
(특히 그 때부터) 노무현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참조 : http://www.hani.co.kr/arti/SERIES/57/122428.html )



* 발아점
한겨레신문의 살리에리 중후근 (소요유)


* 이 글 제목과 주소
민주주의 2.0 단상 : 차라리 블로거 노무현을 보고 싶다.  http://minoci.net/603




비유 : 키스하기 vs. 사진찍기

2008/09/23 01:15

키스할 때 여자분께 물어보고 하시는지요?
여자분들의 증언을 빌리자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 합니다.
그러나 물론 따귀를 맞을 수도 있는 일이지요.

만일 물어보시는 것이 여전히 편하신 분이시라면
글쎄요…
사진도 물어보고 찍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 박노아님의 댓글 중에서 



좀 다른 문제 아닌가요?

1. 키스하기는 사적인 관계에 있는 당사자간 사정이고, 물어보든 물어보지 않든 자기들 맘대로인 영역이라면
2. (거리에서) 사진찍기는 직접적으로 제3자의 초상권이 사진찍을 권리(행복추구권 ㅡ.ㅡ;?)보다 보호되어야 하는 것 같은데 말이죠. 절충하자면, 적어도 일단 찍은 뒤에는 찍힌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과정을 거쳐야 맞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찍힌 상대방이 싫다면 포기해야죠, 뭐.


이제 이곳을 메인블로그로 사용하시는건가요?
댓글로 써도 족한 글이지만, 반가운 마음에 뭐라도 하나 기념할까 싶어서... 이렇게 포스팅합니다.


추.
1.에 대해 아주 살짝만 더 쓰면
키스할 때 물어보고, 물어보지 않고를 기준으로 낭만적이다/낭만적이지 않다를 가늠하는 것도 그건 그저 일반적 상식의 연애적 각본에 의한 '확률'(?)일 뿐이지, 얼마든지 물어보고 하는 키스도 달콤할 수 있다는 쪽입니다. ㅎ



덧.
그런데 직접 박노아님 블로그에 가서 그 사진들을 보니... ㅡ.ㅡ;
deca님 말씀처럼 직접 물어보고 찍는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경우도 많겠군요. ㅡ.ㅡ;;;
피사체가 된 분을 특정할 수 있는 정도(얼굴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정도?)를 기준으로(ㅡ.ㅡ; ?) 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문득... 이래저래 참 미묘한 문제네요. 



* 발아점
키스 (deca)




개방형 블로그 단상

2008/09/22 22:51
* 예전에 쓰다가 만 글 마저 씀.


0. 이 글은 마키디어 블로그의 어떤 글(이 글은 블코에서 읽은 어떤 글 때문에 우연히 읽은 글인데)에 등장한 표현(물론 그건 "개방형 블로그"인데)에 대한 단상이면서, 그 연상이다. '개방형 블로그'란 표현, 난 처음(?) 들었다. 정말 처음은 아니었을 확률이 높지만, 처음처럼 느껴졌다. 암튼 나는'개방형 블로그' 표현이 참 재밌다고 답글에 남겼고, 블로거 마키디어는 이렇게 답했다.

'개방형 블로그' 용어 자체에는 별다른 의미는 두지 않았습니다. 티스토리, 이올린, 텍스트큐브같은 블로그를 서비스형블로그 또는 개방형 블로그라고 많이 불리는 것 같아 편의상 빌려쓴거에요. '독립형 블로그'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것도 진짜 독립형이 맞냐고 철학적으로 따지면 모호한 것 같기도 합니다. 용어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생각해보진 않았네요. (마키디어)


답글을 읽으면, 태터툴즈에서 연원한 블로그 툴과 그 툴에서 작동하는 메타(이올린)을 통칭하는 것 같다. 설치형 태터툴즈에서 서비스형 티스토리가 나왔고, 텍스트큐브가 테터툴즈에서 진화(?)했으며, 이 양자는 '이올린'이라는 특정 메타와 연동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1. '개방형 블로그'의 어원(?)

구글링해봤더니 '개방형 블로그'는 '티스토리'가 런칭하면서 홍보용 기사 문구로 많이 쓴 것 같다.

"다음, 개방형 블로그 '티스토리' 인수"
"다음, 테터툴즈와 개방형 블로그 사이트 오픈"
"다음, 개방형 블로그 '티스토리' 정식 서비스"(머니투데이)

뭐 이런 식으로.

물론 티스토리를 '개방형 블로그툴(혹은 서비스)'로 (느슨하게) 평가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레진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비스형 블로그 툴 가운데에선 그래도 상대적으로 두터운 독립성과 개방성을 지원한 건 건 사실이니까(텍스트큐브닷컴은 많이 사용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암튼 개방형 블로그에 대해 좀더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2. 물적 요건 : 개방형 블로그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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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방형 블로그의 몸과 마음

툴이 개방적인 철학을 내재하고 있다고 해서 그 '블로그(블로거)'가 개방형이 되는 건 아니다.
물론 그런 개방적인 철학을 구현하는데는 유리하겠지만.

같은 차원에서 서비스형 블로그를 사용한다고 해서 폐쇄적인 블로그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 툴이나 연계 서비스의 얼개들이 추구하는 경향에 휩쓸릴 공산은 커지겠지만.

하지만 모든 서비스(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만든)는 어떤 식으로든 블로그의 개방성과 독립성의 잠재적 불안요소이면서, 장애요소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웹구조(포털의 폐쇄구조, 삥뜯기 구조)을 생각하면 이건 정말 자명하지 않나 싶다.

엄밀하게 말해서 티스토리는 그 서비스에 '가입'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그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한 각종의 정책들에) 동의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독립 블로그라고 말하기 어려울 거 같다. 독립성을 지원하는 서비스형 블로그라고 하면 몰라도. 블로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서비스의 정책이 구현된 어떤 장치들, 시스템의 하위 얼개들이 직간접으로 블로깅에 개입한다. 그런 의미에선 티스토리는 독립(형) 블로그와는 많이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블로그의 독립성과 개방성은 서로 딴 몸이 아니다. 그건 어쩔 수 없이 상호 불가분으로 작용한다.  

티스토리는 블로깅의 '독립성'과 '개방성'을 다른 서비스형 블로그보다 그 툴의 얼개가 기술적 확장성이 '지원'한다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독립적이고, 개방적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으나, 티스토리 블로그를 독립(형) 블로그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암튼 좀더 뻔한 소리 이어가자면, 모든 블로그 서비스는 자사 내의 트래픽을 증가시키기 위한 시스템 얼개들을 만들어내고(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를 바탕으로 자사 내의 수익모델을 추구하게 된다(이게 전적으로 나쁘다는 의미는 또 아니다). 이건 티스토리라고 해서, 텍스트큐브닷컴이라고 해서 다른 건 아니다.
좀 딴 얘기지만, 오랜만에 가 본 네이버 블로그도 꽤 많이 개선된 것 같다(관리툴). 네이버 블로그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한 블로거벗을 통해 이제야 알게된 사실이지만, 구글을 통한 검색도 이제는 가능한 것 같다.

티스토리는 수익모델이 약하긴 하지만 '다음 블로거뉴스'라는 콘텐츠 유통 서비스과 좀더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고, 각종의 광고제휴모델을 개발하고 있다(참조 : 블로거뉴스 Ad의 플래시 떡칠에 대한 너바나나의 비판. http://www.nirvanana.com/360 ). 텍스트큐브닷컴은 '관심블로거' 같은 SNS와 좀더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건 일견 당연하면서, 그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지불해야 하는 대가와 같다.  

그렇다고 해서 설치형 블로그만 독립 블로그다, 이렇게 말할 수 있나 보면 또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설치형 블로그를 사용한다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무슨 소박한 자부심이 되는 것은 별론으로, 그게 대단한 벼슬(?)이라도 되는 양 하는 태도는 유치하고, 우습다.



4. 결

글이 늘어져서 마무리하련다.
누에를 빌어,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개방형 블로거가 되기 위해선 이렇게 하면 된다. : )

ㄱ. 개방적인 블로그를 만들어야 한다.
ㄴ. (개방적인 블로그를 만들기 위해선) 개방적인 블로깅을 해야 한다.
ㄷ. (개방적인 블로깅을 하기 위해선) 개방형 블로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 발아점.

블로그의 계급분화 (태극)

이 글을 블코에서 읽었다.
그 글에서 마키디어의 글을 비판적으로 링크 인용하고 있는데, 내용인 즉, '왜 사용하는 툴(혹은 서비스)의 차이로 블로거들이 유치하게 차별적인 의식을 갖나?' 뭐, 이런 우려을 (말미에, 전반부는 솔직히 좀 서설이 너무 길었던 것 같고) 담은 글이라고 (나는) 읽었다.

이게 좀 난감하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하면...

네이버 블로그 쓰면 네이버스러워진다.
한겨레 블로그 쓰면 한겨레스러워진다.
다음 블로그 쓰면 다음스러워진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지엽적이고, 부차적인 것이라는 전제에서 나는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툴과 서비스의 차이만으로 어떤 블로그가 갖는 가치를 쉽게 평가하는 일은 정말 위험하고, 유치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아니 대개 유치하다.



* 대상(댓)글
크롬 열기로 가득한 개방형 블로그 (마키디어)



* 관련 추천글
이것이 파워블로거다 (누에)
: 파워블로그를 어떤 물적인 조건(특히 트래픽)으로만 평가하려는 손쉬운 태도는 지양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트래픽, 관심도가 과연 스스로 창출한 트래픽인지, 아니면 메타(특히나 다음 블로거뉴스와 같은 거대 플랫폼의 정책과 메카니즘)에 순응하면서, 스스로 종속적인 패턴을 학습하면서 얻어진 트래픽인지(물론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생각해 볼 문제다.


블로거뉴스 AD 차단법 (너바나나)
: 나는 광고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은 없는 편이지만, 블로거뉴스 (플래시) 광고는 좀 심하게 역동적이다. ㅡ.ㅡ; 거기에 RSS 리더기에서도 작동하는 건... (개선되었을지도 모르겠으나...)


* 이 글 제목과 URL
개방형 블로그 단상. http://minoci.net/601



고딩 호러물 : '피의 중간고사' 단상

2008/09/22 11:49
* 스포일러의 불안을 고려함.


0. 고딩 호러물.

가장 가시적인 대한민국의 암적인 문제는 교육과 부동산문제일테다. 부동산 무비(?)는 영화화에 난점이 느껴지지만, 교육, 특히나 고딩용 호러는 그 사회적인 함의가 매우 중대할 뿐더러, 영화화하기 쉬운 소재다. '고사'는 이 소재를 적당히 감각적으로, 추리물의 기법을 도입해서 풀어간다. 극 초반에는 이른바 신세대의 문화코드(그게 요즘은 홍대클럽인가보다)를 적절히 양념처럼 배치하기도 한다.

이런 고딩호러물이 가능한 나라는 얼마나 될까?
아마 일본이나 한국 정도가 가능할 것 같다... ㅡ.ㅡ;

암튼, 출발은 적당히 흥미진진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가장 코믹한 장면은, 역시나, 남규리다. 다른 학생들과도 매우 두드러지게 도드라져 보이는 얼굴의 과잉 파운데이션이야 그렇다 치고, 화면을 압도하는 과도한 '서클 렌즈'(아니면 눈동자가 원래 그렇게 큰가?), 그리고 명료하지만, 기계적인 대사 강독은 코믹하다. 대사 자체나 연출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연기의 문제인 것 같다.  물론 윤정희에 비한다면 그래도 나은 수준이긴 하다.

2. 중후반부터는 영화의 속도감이 살짝 지루한 수준으로 떨어지고, 이제 뭔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지루함이 영화의 가장 큰 잔상으로 남겨질지도 모를 그런 수준으로까지 추락한다.

3. 영화는 마지막 시퀀스에 의해 '기적'의 수준은 아니지만, 이 낯선 감독의 다음 작품을 충분히 기대할 만큼의 수준으로 구원받는다. 특히나 엔드 크래딧과 등장하는 아주 짧은 에피소드는 그게 얼마만큼 많은 관객들에게 호소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용감한(?)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도는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스탠리 큐브릭이 시도한 비전같기도 하다.



무의미한 장면들

윤정희가 나오는 모든 장면은 거의 무의한 수준이다. 그녀의 마지막 대사도, 물론 이해하는 바 없지 않으나, 그녀의 무의미를 구원하지 못한다. 없어도 될 뻔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다만 윤정희가 일종의 영화적 위장물로써 기능했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이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무의미가 구원되는 수준은 아니지만. 영화적 위장으로 역할을 부여했다면 좀더 디테일한 장치들이 설치되어야 했을텐다. 그런데 물론, 그런 촬영분이 있는데, 러닝타임 때문에 자른 건지는 또 모를 일이지만.


약한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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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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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글
소득세 인하와 피의 중간고사



깊은 밤님의 진지하고, 고마운 논평에 대한 짧은 답글...

1.
저도 요즘 뉴라이트의 발흥과 그들의 비이성적인 태도에 대해 조금 생각 중입니다.
주류나 엘리트로 분류됐던 점잖은 인사들이 그들의 당파성을 드러내게 된 결정적인 지점은 노무현의 집권이었다는 게 일단 제 입장이죠.
그러면 저런 댓글러들 모두 엘리트며 주류인가? 아니면 이 모두가 언제나 한국사회의 상식을 무너뜨리는데 앞장서는 좃선에게 반복학습된 결과란 말인가? 이렇게 저렇게도 단순하지 않은 현실이 우릴 생각하게 만들고 문제에 새롭게 접근하게 합니다. 하지만 어렵고 답답한 건 여전하네요. 부끄럽지만 저런 저들이 너무 싫다는 심정이 앞서는 것도 이런 문제와 끈기있게 진지하게 대결하지 못하게 하고요.

- http://minoci.net/597#comment13292 중에서



한 때 유행(?)했던 '일상 속의 파시즘'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이율배반의 주제, 그것도 소위 진보라는 가치를 가진 사람들의 배반적 모순을 가장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은 정지우 감독의 '생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죠,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의 '독선적인 계몽주의'나 소위 보수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의 '욕망 학습'이나 방구나 뽕이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양자 사이에 담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인 공생관계, 쉽게 말하면 역할놀이만 있고, 실질적인 대화나 토론, 혹은 (전면적인) 투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제스처만 있고, 그렇게 담론들은 마치 케이블TV의 선정주의적인 프로그램들처럼 '쇼'로서  지나가버리고, 다시 또 재생되고를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쇼는 게다가 재미도 없는 쇼죠.

그 틈 바구니 사이에서 소위 대중들은 자신의 삶과 유리된 표피적인 사상들을 마치 자신을 치장하는 악세사리처럼 수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이런 비유도 꽤 오래전부터 유행했던 표현이지만, '몸'(욕망)과 '사유'가 서로 따로 노는 이상한, 세상을 바라보는 관극틀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요.


2.
요즘 블로그 자체에 대해 회의도 들기도 합니다. 민노씰 통해 새롭게 블로글 열게 되면 진지하게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서 뜸을 길게 들이는 거 같습니다. 최근 여차저차한 경로로 여러 블로글 봤거든요. 특히 요리와 관련한 아줌마들의 블로그를 많이 구경해봤는데(대부분 네이버 블로그), 그들의 소통의 목마름과 보이고 확인하고 싶은 욕망에다 그들을 주고객으로 상대하는 다양한 주방가전업체의 상업적 목적과 결합해 아줌마들의 블로그는 날로 번성하는 거 같더군요. 어떤 주방가전 업체는 새로 제품 카페를 열면서 이벤트에 블로그 운영자 우대라고 명시하기도 하고요(제가 너무 이런 세계를 모르고 살았던 거 같습니다. 워낙, 나이롱 주부였거든요..;;).

- http://minoci.net/597#comment13292 중에서

블로그는 좀더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하고, 그것이 저는 블로그의 가능성이자 놀라운 잠재력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굉장히 혁신적인 패러다임의 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것 같아요. 특히나 마케팅이라는 경제적 활동의 일부에만 국한한다고 해도 말씀해주신 예시처럼 이제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만남을 '주선'했던 '매개'들은 점점 더 단축되어가고 있고, 그 매개 단축의 가장 큰 이유는 블로그의 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매개 단축적 도구로서의 블로그는 현상황에서 여전히 좀더 거시적인 매개들의 하부구조로 자리하고 있기는 하지만요(각종의 서비스형 블로그들과 이들이 운영하는 콘텐츠 유통의 구조적 얼개들).

이제 상품는 그 자체로 소비되지 않고, 그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쉽게 말해서 '문화적인 소통 구조' 속에서, 그 문화적 소통구조에 엉켜진 정치경제적인 욕망구조 속에서 유통됩니다. 그 상품이 굴뚝공장의 상품이든, 아니면 의식산업에서 생산하는 상품이든 간에, 그 편차에도 불구하고 점점더 그런 경향은 가속화되겠죠. 이제 정말 점점 더 미디어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오고 있고, 그것은 이른바 정치권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더라도 어느 정도는 자명한 것 같습니다(노무현의 발군의 미디어친화력이나 이명박의 청계천 효과,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각종의 미디어 권력간의 당파적 전투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죠).

그런 이전투구 속에서 블로그는 자신의 다양한 진실을 그 '날 것'의 목소리로, 기존 미디어들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자율성'을 바탕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매우 중대한 미디어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저는 평가합니다.


추.
일시 귀국이신가요?
한국 들어오시면 연락 주십시오. ㅎ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