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 늘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선 경건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말이 그 하나이고, '죽음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라는 말이 그 다음에 떠올리는 말이다. 모든 것을 허용하는 죽음 앞에서, 하지만 우리는 죽음에 대해 경건하지 않으면 안된다. 장자연 자살 이슈에 대해선 가급적이면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피하려는 입장이었는데, 세속적인 호기심이 이를 허락할리 만무하다. 그래서 몇몇 블로그들의 글을 읽었다. 그 글들에 대한 몇 가지 단상들.

1. 송원섭의 글(클릭 비추)은 KBS 보도가 쓰레기라고 고발하는 놀랍도록 경건한 글이다. 연예인의 죽음이라는 가장 선정적인 이슈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송원섭은 마치 종교적인 경건함을 요구하는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한다. 세칭 '연예인 X파일'로 불리는 연예인의 상품가치에 대한 보고서의 자문위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도덕적인 태도를 강변하면서 KBS의 보도태도를 문제삼는 건, 뭐랄까, 좀 난감하다. 살아 있는 자의 명예에 대해선 한없이 오만한 태도를 보여줬던 자가(송원섭, 박수나를 조롱하다 참조) 어떤 연예인의 자살과 매우 인과관계가 높은 어떤 글(세칭 '유서'로 불리는)이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에 대해선 이토록 놀라운 도덕적 경건을 강요하는 태도는 도무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나는 알고 있다.

예수는 "너희들 가운데 죄 없는 자,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고 이야기한다.
"너희 중에 죄없는 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성서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이 말은 <요한복음 8:11>에 나오는 일화에서 비롯한다. 서시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자를 끌고와서 예수에게 그 처벌을 묻는 장면이다."모세는 율법에서 우리가 이런 여자를 돌로 칠 것을 규정하였습니다. 당신은 무엇이라고 말씀 하시겠습니까?"그들이 답을 재촉하자, 예수는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몸을 일으키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너희 중에 죄가 없는 자,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
- 참조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중에서 
그렇게 우리들 자신의 성찰을 요구한다. 이런 지고지순의 도덕, 높은 차원의 자기 성찰을 송원섭의 글이 보여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든다. 하지만 글쎄, 이런 나에겐 여전히 사이비 도덕의 호객행위로 보여진다. 좀더 명시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장자연의 자살을 둘러싼 '사회적인 문제'(연예인과 기획사의 노예적인 계약관계와 관행, 연예인이 이른바 뜨기 위해서 행해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권력작용의 일환으로써 성상납의 메카니즘...)와 그녀의 죽음에 대해 경건해야 한다는 건 서로 별개로 취급해야 마땅하다. 어떤 한 개인의 죽음이 담고 있는 사회적인 모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어떤 개인의 죽음에 대해 경건한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송원섭의 글(클릭 비추) 중에서

자신은 타인에게 그 문서에 대한 해석을 유보하라고 이야기하면서, 스스로는 "대중 앞에 공개하려 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라고 '확정'하고 있는 자신감은 도무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확신하는가? 그렇게 장자연의 '문서'를 해석하는 근거를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2. 무한의 글은 글쎄 잘 모르겠다. 한편으론 부분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지만, 왠지 글 자체에 저항하게 된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무한의 글 역시 너무 무겁게 죽음에 대한 침묵을 권하는 류의 글이라고 읽혀서인 것 같다. 무한의 글이 비판하고 있는 어떤 어린 여대생(이건 일부러 이렇게 썼다. 무슨 성차별 하자는 의도 전혀 아니다)의 글에 대해선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여대생의 글이 죽음에 대한 성찰을 이끈다거나, 죽음에 대해 무슨 경건한 태도를 담고 있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지만... 하지만 뭐 내 글도 그렇고, 누구 글도 그렇고... 읽는 사람의 주관성이 깊이 개입하는거니까.  

3. 이런 이슈가 등장하면 늘 나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죽음으로 미끼질하지 말라거나, 혹은 '두 번 죽였다'식의 도덕적 훈계(송원섭 글의 제목이 "장자연을 두 번 죽인 KBS 보도")...

다음 블로거뉴스는 송원섭의 글이 가치 있는 글이라고 여겼던가 보다. 거기에 20만이 넘는 트래픽을 안기고 있다. 죽음은 마치 블로그계에서는 어떤 의미에서든 광고 수익과 연계되는 '트래픽'으로 환산되는 어떤 것인가...라는 씁쓸한 생각마저 든다. 송원섭 블로그는 그 글 상단에 정말 보기 민망할만큼 커다란 광고 박스로 세 개나 달고 있어서 더 그렇다(역시나 죽음과 미디어는 친하고, 미디어와 광고는 친하지만, 죽음과 광고는 서로 어울리진 않는다). 죽음으로 장사하건,  아니면 죽음으로 장사하지 말라고 장사하건 간에 죽음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경건해야 하지만, 그 경건이 무조건적인 침묵을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러니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침묵을 강요하는 그 아가리나 닥치시라.

그저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우리들은 죽음을 사랑한다. 우리에게 죽음은 맛있는 먹이감이다. 그게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이자 방식이다. 나는 이런 태도를 비난하기 위해 쓰고 있지 않다. 다만 그 속에서 앞으로 남겨진 삶의 의미를 조금이나라도 고민할 수 있다면 그 세속적인 고민 만큼, 그 성찰 만큼은 그 죽음이 경건해질 수도 있으리라...

이 글은 어떤 유사 저널리즘 유통망에 송고한다.


* 관련 추천
보이는 것들과 감추인 것들… (주낙현)
보이는 것들과 감추인 것들 2
이미지와 이콘 사이에서 - 보이는 것들과 감춰진 것들 3

현재 상황 (손윤) : 아직 팩트를 확정할 수 없다는 입장.

* 보충. 특히 위 손윤님의 글을 읽고...
제 글은 KBS의 보도를 '상식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바탕에서 쓰여진 글이 맞습니다. 송원섭씨께서 '반증'을 확실하게 제시하고 있는 글을 쓰셨다면 저로선 송원섭씨 글을 매우 높게 평가했을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 글이 담고 있는 메시지 자체에 대해선 이견이 없지 않았겠지만요.

손윤님의 우려대로 KBS가 희대의 사기극에 놀아났다고 한다면(이것도 명백한 '가설'의 형태일텐데요), 그 책임은  주로 KBS에게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최대의 방송사인 KBS의 보도를 '상식적으로 신뢰한' 사람들이 소박한 마음에서 관심을 갖고, 그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했던 그 모든 행태들이 KBS 보도가 (만에 하나) 사기극에 놀아난 오보라고 해서 덩달아 도매금으로 비난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너무 성급하게 사안을 확정하고, 또 사안의 의미를 극단적인 감성적 편향으로 몰고가는 것은 저 역시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요.

[덧.] 권력적 위계에 의한 '성상납'이라는 '권력에 의한 강간'행위에 대해선 이것이 우리사회에서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는 행위라는 저간의 인식(그것이 과장된 것이든 아니든 간에)이 이미 자리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특히 이 먹이사슬에서 '신인급 여자 연예인'이 그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고들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계기를 '장자연씨의 자살 사건'은 만들어줬다고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가령 강부자씨가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난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고, 그걸 이른바 문화평론가(?)라는 하재근씨는 '아 그렇군요!' 이렇게 맞장구치며 넘어가는 (어처구니 없을만큼 투명하고, 맑고, 순진한) 풍경에서 좀 자극적인 방식일지언정 '문제의 공론화'가 가능해지고, 그래서 좀더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서는 이런 '소동'도 의미가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말씀하신 엄밀한 팩트에 기반한 신중론 역시 물론 존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특히나 이 이슈의 직접적인 공격 대상인 '아직 확정되지 않은 혐의자(피의자)'를 위해서라도 더더욱 그래야 겠죠. 다만 구체적인 혐의자를 배제한 영역에서 위에 말한 '권력에 의한 강간'이라는 사회적인 문제 영역에 대해선 오히려 좀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 알림 : 제목 수정
'광고 블로그 알림 캠페인' -> '광고글 알림 캠페인'으로 수정합니다. '블로그'가 일반적으로 '글 단위'라기 보다는 '블로그 전체 단위'로 인식되는 것 같아서요. 광고글이라는 단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제목을 수정합니다. 보보님께서 '선의의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하셔서요. 그런 우려를 불식하고자 하는 취지도 담겨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광고글을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블로그 안에서도 광고글을 쓸 수도 있고, 리뷰를 쓸 수도 있고, 다양한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광고글 하나를 썼다고 해서 그 블로그 전체가 '광고 블로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점 보보님과 독자들께 너른 이해를 구합니다.
                                                                                                                                                     
"쓰는 사람들은 써서 이익을 보시고, 읽는 사람들은 안 읽어서 시간절약 해주시라. S사를 싫어하시는 분이라면 리뷰써서 돈도 갈취하고 대신 대가 리뷰 안읽기 캠페인을 벌여서 주목도도 낮춰주시면 금상첨화 되시겠다." (이바닥)
(내가 좋아하는) 블로거 이바닥의 글 중 일부다. 그런데 시간 절약하려면 일단 그게 광고인지 리뷰인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도통 아리까리한거다. 글머리에 '이 글은 광고캠페인에 참여한 글이다' 이렇게 알려주면 참 좋을텐데, 그러질 않는다. 광고글이지만 글쓴이를 믿고 계속 읽을 것인지, 아니면  광고글이라서 제낄 것인지를 해당 블로거가 알아서 알려주면 참 좋을텐데 그걸 잘 안한다. 물론 이런 차원에서는 TNM가 도리어 억울(?)하게 너무 투명한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물론 TNM에서 앞으로 대행할 광고캠페인을 이야기하는 거다). 그러니 독자나 동료 블로거들이 그 일을 대신해서 알려주는 수고가 생긴다. 블로그래픽에 함께 참여하는 '진간장'도 이런 알림 캠페인(광고를 리뷰라고 주장하는 글을 리뷰하는 연재)을 준비중인데, 소식이 없길래 조금이나마 자극이 될까 하는 의미에서 먼저 올린다.

0. 광고글이라는 건 말 그대로 광고글이라는 의미다. 여기에는 어떤 경멸이나 조롱의 의미도 없다. 왜 광고가 경멸이나 조롱의 어감을 걱정해야 하는 단어가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약간은 알겠지만). 말 그대로다. 광고글이라는 의미다. 다만 광고글을 '리뷰'라고 주장하는 민망뻘쭘한 일은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냥 돈 받았다, 물건 지원 받았다, 기분 좋다. 광고글이지만 유익하고 재밌는 글 쓰련다. 이러면 얼마나 좋은가? : )  

광고글이 가치가 없다는 건 전혀 아니다. 광고글도 가치 있다. 오죽하면 '광고 문화'라는 말을 하겠나? 하지만 광고글을 리뷰라고 주장하는 기이한 문화(?)가 융성하다보니 광고는 광고라고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필요하다고 본다. 솔직히 이런 일이 뭐가 그리 즐겁겠나. 이런 일 한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즐거운 것도 아니다. 즐겁기는 커녕 찜찜한 일이고, 솔직히 폼도 안나는 일이다. 이런 글을 즐거운 마음으로 쓸 수 있는  블로거들이 몇 명이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지만 광고글은 광고글이라고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 블로그계의 자정 기능이랄까, 상호 비평 기능을 강화하는 아주 작은 실천으로 이런 캠페인에 동참하는 블로거들이 좀 많아지면 좋겠다. 그런 블로거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상호 건전한 비평 문화가 정착하면, 굳이 내가 나서서(내가 뭐라고..;;;) 이럴 필요도 없다. 그러면 나도 내가 쓰고 싶은 글 쓰지 이런 글 안쓴다.

1. 굳이 사족을 달면 광고와 리뷰의 경계는 '자율성'이다. 광고주의 특정 상품 홍보 목적이 없었다면 쓰여지지 않았을 글, 상당한 물질적 대가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쓰여지지 않았을 글. 그 물적인 대가과 '리뷰로서의 가치'간 불균형이 현저한 글. 그런 글이 광고글이다. 즉, 특정한 상품 마케팅과 종속적인 관계를 갖는 글은 광고글이다. 일방적인 홍보 목적에 저항하는 글, 그러니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확보한 글은 '광고성 리뷰' 혹은 '리뷰성 광고'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그런 글 역시 본질적으론 '광고글'이다. 상품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을 갖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 '리뷰'와 '광고/광고성 리뷰/리뷰성 광고'는 전혀 다르다. 리뷰는 상품 '소비'와 관련을 맺지 않고, 상품'가치'와 관련을 맺는다.

1-1. 물론 예외적으로 '리뷰'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글, 즉, 리뷰어의 내공과 깊이와 철학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는 글, 그래서 그 리뷰 자체로 '물건 받고, 돈 받을만 하군!'이라고 '독자(소비자)의 입장'에서 인정되는 글(물론 주관적이다)은 광고가 아니라 '리뷰'라고 인정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광고주에게 인정받을 만한 글'이 아니라 '독자(잠재적 소비자)에게 인정받을 만한 글'이라는 점이다. 이런 글은 마케팅에 종속되는 글인 아니라, 그 자체로 독자에게 그 글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글이라는 의미인데, 즉 독자가 부여해야 하는 대가를 '광고주'가 대신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어쨌든 간에 리뷰과 대가의 비례관계를 충족하는 글은 '광고글'에서 예외로 한다. 물론 지금까지 그런 글은 거의 본 일 없다(물론 내가 상품 리뷰 자체에 별 관심이 없어서 더 그럴테지만).

2. 블로그를 활용한 마케팅 활동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평 권력, 소비자 권력이란게 생겨야 한다. 현재는 기업쪽 움직임, 기업과 함께 마케팅 영역을 확장하려는 소위 '빠워 블로거'들의 움직임은 꽤 자주 포착되는데, 그 반대편에서(이건 적대적이란 의미가 전혀 아니다) 소비자, 독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움직임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건 상호 발전을 위한 블로그계의 균형과 토론 문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양자 간 상호 견제와 긴장이 생긴다면 이건 기업에게도 광고 블로그에도 궁극적으론 좋은 일이다.

3. 블로그란게 어떤 용도로 쓰느냐에 따라서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적인 메시지로 기능할 수도 있고, 상품 홍보를 위한 '광고'가 될 수도 있고, 삶의 소박한 철학이 담긴 에세이나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세상살이의 즐거움과 슬픔을 노래하는 시가 될 수도 있다. 육아일기가 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연애편지가 될 수도 있다. 광고는 상품에 보내는 연애 편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광고 블로깅도 다양한 블로깅의 풍경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광고는, 황지우의 어투를 빌자면, 결핍을 선물한다, 그래야 욕망이 생기니까. 이런 경향이 너무 득세하면 그것도 좀 곤란하다.

4. 나는 솔직히 광고 블로그에 대해 그다지 큰 유감은 없다. 공짜 카메라에 공짜 노트북에 거기에 더해서 무슨 무슨 행사에 초대받고, 거기서 맛난 음식 먹고, 또 무슨 무슨 광고 마케팅 회의에 초대받고 거기서 맛난 음식 먹고, 또 돈 받고...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어디서나 균형이 문제다. 이런 광고 블로그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는게 문제라는 거다. 이런 한편의 불균형한 득세는 블로그의 잠재력을 현저히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기능하리라 생각한다.  블로그가 그저 광고판이라는 인식이 확대되면 그 피해는 광고블로그에도 그대로 돌아간다. 이렇게 되면 블로그계 전반은 물론이고, 기업에게도 별로 좋을 거 없다. 물론 가장 큰 피해는 블로거들과 그 독자들에게 돌아가겠지만.

5. 아참, 광고글이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시작하는 글에 대해선 굳이 알리지 않는다. 글머리에 상식적인 독자라면 그게 광고글임을 인지할 수 있도록 밝힌 글은 굳이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너무 썰렁한가?), 가령 '이벤트 참여'라고 밝힌 글은 '광고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는 글이란 걸 밝힌 것으로 본다. 물론 '이벤트'라는 아리까리한 말 대신, '광고 캠페인'이라는 말을 쓰면 좋겠다.

6. 광고 블로그 모범 예시. 가령 이런 이벤트 참여글 가운데 '필름보이닭껌' 블로그의 광고글들은 정말 참신하고, 재밌다. 그 자체로 꽤나 의미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필름보이닭껌' 블로그에는 일등 먹으라고 격려 댓글 달곤 한다. 이런 블로그는 '광고'를 그 자체로 '예술'(ㅎㅎ)의 경지로 올려놓은 멋진 광고 블로그(여기에서 '블로그'는 '글''포스트'라는 단위로 쓰인 거임)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그렇다.

7. 다시 한번 인용하는 이바닥의 글.
"쓰는 사람들은 써서 이익을 보시고, 읽는 사람들은 안 읽어서 시간 절약 해주시라. S사를 싫어하시는 분이라면 리뷰써서 돈도 갈취하고 대신 대가 리뷰 안읽기 캠페인을 벌여서 주목도도 낮춰주시면 금상첨화 되시겠다." (이바닥)
왜 나한텐 이런 접촉이 없는지 모르겠다. 내가 무늬만 빠워블로거라서 그런가보다. 동영상 나오는 폼나는 광고글을 쓸 수는 없겠지만, 소박한 소비자로서 솔직한 '광고글'을 쓸 용의가 있다는 점을 홍보업계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는 바다. 의뢰하시라, 나도 그럭저럭 광고글은 쓸 수 있다! (위 광고 의뢰가 안오면) 내 블로그 조언자인 Y양이 리승환 동무의 '역 블로그마케팅' 아이디어를 참조해서 돈 벌면 딱이겠다, 뭐 이런 농담을 했는데, 이것도 한번 생각해 볼만 하겠군, 이런 생각이 든다. 물론 농담이다, 그리고 물론 농담유골이다. : )


아무튼 최근에 읽은 광고글 몇 개

센스있는 여성들의 선택! 1,220만 화소 초슬림 디카 ST50 (호박툰)
http://hobaktoon.com/414
너바나나의 글 덕분에 읽은 글인데, 너바나나의 지적처럼 제목이 참 노골적이다. 댓글로 '협찬을 받은 물건인가요?' 물어보니 "늦게나마" 지원받았다는 걸 본문에 '살짝' 첨가하셨다고 한다. "베트남&캄보디아 6일 여행을 코앞에 두고 1,220만 화소를 자랑하는 디지털카메라 ST50님이 호박손에 들어오셨습니다^^ 지원을 받은게지요~"(호박툰의 글) "지원을 받은게지요~"가 새롭게 '살짝' 첨가된 문장인 것 같다. 위 글에 있는 댓글들 가운데 '리더유'란 블로거가 쓴 댓글이 재밌어서 따라가봤다. 광고글이 꽤 많은 블로그인 것 같다. 최근글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프리미엄 노트북은 포장부터 남다르다? LG XNOTE P510 개봉기. (리더유)
http://www.leaderyou.co.kr/368

덧.] 아래 두 글에 대해선 리더유님께서 댓글로 이견을 주셨습니다. 이에 보충합니다.
화제의 노트북, XNOTE P510 런칭 Party 생생한 그 현장! (리더유)
http://www.leaderyou.co.kr/349
후기는 제 개인적인 일기인거지 전혀 상관 없는 것임을 알아주세요(리더유).

똑똑한 소비! 가입하면 무조건 이득보는 모바일 정액제 서비스가 있다? (리더유)
http://www.leaderyou.co.kr/365
그리고 모바일 서비스도 제가 그런 서비스를 발견하고 정말 이색적인 서비스인거 같아 테마를 잡아 글을 쓴거지 이런 서비스를 광고하기 위하여 글을 쓴건 아니었음을 전해드립니다(리더유).

최근글만 몇 개 읽었는데도 광고글이 꽤나 많은 것 같다. "이상 지름신을 부르는 리더유였습니다. ^__^*"(리더유) 이런 말미 멘트가 있는 글도 있는데, 뭐랄까, 좀 민망뻘쭘한 느낌이 든다.  내가 마케팅 담당자라면 이런 노골적인 광고글들은 좀 반갑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광고는 광고임을 소비자(독자)에게 알려줘야 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광고요~!!'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



추.
이 주제는 앞으로 '블로그래픽'에서 진간장님 주도하에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동료 블로거들이 이런 캠페인을 각자의 블로그에서 벌여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다만 광고글 아닌데 광고글이라고 올린 글이 있다면 해당 블로거든 아니면 독자든 언제라도 오류를 지적해주길 바랍니다. 제가 블로그래픽에서 이 캠페인에 참여하는 경우에는 해당 블로그에 꼭 트랙백을 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메타블로그 관련 연재 빨리 써야겠군요...;;;;



* 발아점
이바닥의 글.
너바나나의 글.



네오비스, 블로그 랭킹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 (스마트플레이스)

위 글에 대한 두 번째 단평입니다(첫 번째 글 :블로그 평가의 신뢰도 1. 블로그얌의 "신뢰도 높은 데이터"?). 정확히 말하자면 위 네오비스님 글을 분석하는 글은 아니고, 네오비스님께서 다룬 글감, 소재나 주제에 대한 보충의견 내지는 연상작용입니다. '블로그얌'을 제외한 글 전반의 문제의식에 대해선 공감,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간단하게 제가 떠올린 인상들을 열거하자면 이렇습니다.

1. 야후 블로그 랭킹에 대해
네오비스님께선 야후와 블코의 블로그 랭킹을 상호 비교하셨는데요. 솔직히 야후 블로그 랭킹은 막순위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펌질 수치'를 포함시키는 한은 그다지 관심주지 않아야 하는 랭킹이 아닌가 싶어요. 블로그는 펌질지수는 포털에서 유도한 시스템입니다. 그것은 링크와 인용의 가치를 현저히 하락시키는 그다지 권장할만하지 않은 블로그 간 의미공유, 대화방식입니다.

아무튼 최근에 자그니님께서는 야후 블로그 순위가 너무 내려갔다고 살짝 불만이신 것 같은데, 별로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로선 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전 50위 안팎이었던 순위는 합리적인 순위라고 생각하시고 그 딱지를 사이드바에 올리셨는지요? 그 때나 지금이나 그냥 막순위라고 생각하시면 마음이 편하실겁니다. 저로선 오히려 현재는 그나마 조금씩 개선이 있지 않나 싶기는 합니다(물론 추정입니다. 야후가 이 서비스를 계속할 생각이 있다면 그저 상식적인 차원에서 예전보다야 좋아지지 않았겠나 뭐 이렇개 생각하는 겁니다). 예전엔 내 순위가 높아서 올려뒀다가, 지금 보니 순위가 5만등 하락해서 내리겠다는 건... 뭐랄까 좀 갸우뚱합니다.

제 편견이라면 편견 가운데 하나가 '야후 블로그 랭킹 순위' 딱지를 사이드바에 붙인 블로그에 대한 것입니다. 솔직히 그런 블로그들을 만나면 내심 마이너스 0.5점입니다. 올블이나 블코의 어워드, 블로그랭킹도 그게 무슨 마케팅 기제인 것이지 대단한 권위와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올블 어워드 같은 이벤트에서 아주 지엽적이나마 수상하면 기분도 좋고, 또 블로깅하는 약간의 보람도 생깁니다만... 여전히 놀이에 가깝고, 마케팅에 아주 많이 가깝지, 객관성이 최소한으로 담보되어야 하는 랭킹이나 어워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덧.] 지금 확인해보니 자그니님께서 제 질문에 답을 주셨네요. 솔직담백한 답변이지만, 뭐랄까, 좀 허무한 답변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 ) 아무튼 궁금하신 분은 읽어보십시오.

more..


'순위'라는게 대단히 속물적인 경쟁욕구를 자극합니다. 그러니 더 더욱 그 최소한의 객관성은 강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순위놀음을 아예 없애자는 주장은 도덕적으론 찬성할만하지만, 메타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그리고 순위놀이의 유용성도 있을 수 있고요. 아무튼 각각의 메타 평판시스템 특성에 따라 어떤 구체적인 철학을 강조하더라도, 그것이 관객들로부터(상 받는 사람이나 상 주는 사람보다 더 중요한 건 메타로서는 '관객'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소한 그 '상식적인 근거'들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앞으로는 블로깅의 속물적인 욕망을 적당히 자극하면서, 또 독자들에게는 설명적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좀 제대로 된 블로그 랭킹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그냥 '순위놀이' 그것도 정말 그 최소한의 객관성을 인정(하고 싶지만 점점 더)하기 어려운 순위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판단입니다.


2. 테크크런치의 테크노라티 비판에 대해
네오비스님 글의 발아점 역할을 한 것 같은데요. 저는 솔직히 테크노라티 만큼이라도 객관적인 수준의 메타블로그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저것 볼 것 없이 테크노라티가 블로그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인용) 링크'을 중심에 놓고 블로그 평판시스템을 운용한다는 점은 올블이든, 블코이든, 야후 블로그랭크이든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소한 테크노라티는 '평가표준'에 있어서 블로그를 아는 업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블로그의 육체적인 본질은 링크인 것입니다. 콘텐츠의 개방적인 확장성, 의미 유통과 대화 시스템의 민주적인 확장 가능성은 링크에서 나옵니다.다시 한번 강조합니다만, 블로그는 링크입니다.

글을 쓰던 와중에 네오비스님께서 답글을 주셨습니다.
블로그 평가를 위해 블로그얌에서 평가하고 있는 정량적 데이터(포스트 수, 댓글수, 트랙백수,...)는 일반적으로 블로그 서비스(네이버, 다음, 티스토리)에서 제공해주지 않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블로그얌의 경우 로봇이 분석해서 수치를 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분석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립형 서비스의 분석이 상대적으로 힘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술적 기반이 제가 개인적으로 블로그얌을 높게 평가한 부분이었구요.

물론 야후의 경우도 검색을 위해 크롤링한 데이터를 통해 정량적 수치를 구하고, 랭킹을 제공하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블로그에 특화된 정보보다는 기존 검색엔진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링크를 중심으로 평가되고 있어 상대적 우위를 이야기한 부분입니다.

품질은 개인마다 선호도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서비스가 맞다고 판단하지 않고, 어떤 서비스가 좋다 나쁘다라고 평가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 글은 IT 엔지니어로서 바라봤을 때 순전히 저의 개인의 취향임을 다시 한번 밝혀드립니다. (후략)

- 네오비스 2009/03/12 22:41

[덧2.] 위 댓글에 대한 너바나님의 의문
일반적인 블로그 서비스에선 이를 제공해주기에 이를 바탕으로 한 분석은 가능하나 독립형은 이를 제공하지 않기에 분석하기 어렵다라고 하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헌디, 제공해주지 않는 것을 분석하는 기술이 있는디도 독립형은 지대로 분석을 못한다는 얘기를 어케 이해해야할지 우둔해서 모르겠구만요.
- 너바나나 2009/03/13 17:24

물론 네오비스님께서 말씀하신 취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포털에 치중한 하위 블로그 서비스를 위주로 블로그를 평가한다는 블로그얌의 데이터는 그것이 링크를 중심으로 한 평가시스템을 보완하는 작용을 할 수 있다면 그 데이터의 가치나 그 평가방식의 "상대적 우위"를 인정할 수 있을지언정, 링크는 도외시하고, 포털의 서비스형 블로그에만 집중하는 블로그얌의 평가시스템은 저로선 도무지 인정하려고 해도 그 평가시스템을 인정할만한 어떤 근거도 확보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쉽게 말해서 한국적인 특성을 일반화하려는 시도보다는 기본에 우선 충실하고, 그 뒤에 뭔가 부족함을 채우려는 노력이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플러스 알파라는 말은 기본이 된 상태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그런 기본도 없는 상태에서 '플러스 알파'만으로 블로그를 '평가'하겠다는 그 발상은 저로선 이해하기 어렵네요.

하이퍼텍스트 링크는 여전히 웹의 핵심이고, 블로그의 핵심입니다. 링크는 대화시스템을 골격으로 한 블로그에서 대화의 가장 강력한 매개이자, 그 자체로 상호 존중과 상호 조력의 가능성을 포괄합니다. 링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포털이 지배하는 폐쇄적인 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문화적인, 기술적인, 정치적인 잠재력은 링크와 인용이 그저 일상적인 블로깅의 일부로써 작동할 때 비로소 발화할 수 있습니다. 저로선 링크를 인용하는데 인색하셨던, 혹은 그 중요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셨던 많은 블로거들께서 대화의 무한한 확장성과 접근성을 열어주는 블로깅의 기본 방법론인 링크와 인용의 문화를 좀더 적극적으로 실천하시고, 파급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너바나님께서 쓰신 글을 하나 링크 인용합니다. 소셜 북마크 '마가린'을 이용해서 그동안의 링크 기록들을 블로깅하셨는데요. 이렇게 "좋거나 나쁘거나"한 링크들을 좋은 건 권장하고, 나쁜 건 비판함으로써 블로그라는 거대한 대화시스템이 그야말로 풍성한 가능성의 대화들로, 집단지성의 활발한 토론장으로, 분산화된 민주적인 네트워크로 뻗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셜 북마크를 이용한 이런 간단한 비평이 일상적인 블로깅의 일부로 정착하면 좋겠습니다. 저도 딜리셔스 이용해서 이런 간단 블로그리뷰 꾸준히 해보고 싶네요!


* 관련
블로그 평가의 신뢰도 1. 블로그얌의 "신뢰도 높은 데이터"?


* 추천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1 (너바나나)



네오비스, 블로그 랭킹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 (스마트플레이스)

위 글에 대한 단평입니다. 그런데 쓰다보니 글이 길어져서(주제도 좀 나뉘는 것 같기에) 둘로 나눕니다. 우선 가장 하고 싶은 말부터 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어갈까 합니다. 위 글에서 '블로그얌'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는 구절이 나오는데요. 개인적으로 블로그얌에 대한 체험치가 높지는 못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었습니다.

국내의 경우 블로그얌의 블로그 가치평가를 통해 다양한 블로그들의 영향력과 가치를 평가해주고 있으며, 여러 팩터를 이용해서 가치를 구하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가장 신뢰도가 높은 데이터로 보입니다. 다만, 일반 메타블로그처럼 가입한 경우에만 비교하기 때문에 전체 블로고스피어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 네오비스, 블로그 랭킹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 중에서

이 글을 쓰게 한 동기는 그 직관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삘'이죠. 제 삘이 이야기하길 블로그얌은 그냥 '블로그 가치 평가'라는 해외에서 한때 유행했던 위젯놀이를 벤치마킹해서 블로그 매개 마케팅으로 뭔가 해보려는 업체.. 뭐 이런 정도의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블로그얌에 대해선 솔직히 잘 모릅니다. 물론 일전에 블로그얌의 한 스태프분께서 블로그 마케팅 체험 뒷담화를 공개하셔서, 이견을 남긴 글을 쓴 적이 있긴 합니다. 그 뒤로는 또 잊고 지냈죠(왕서방의 순진한 뒷담화 : 블로그얌의 심각한 판단착오). 아무튼 위 네오비스님 글에 대해선 이런 댓글을 남기고 말까 싶었습니다.
이 글만으로는 블로그얌이 신뢰성 있는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는 말씀에는 전혀 동의하기 어렵군요. 독립적인 도메인을 가진 블로그는 아예 데이터 분석에서 제외하고 있는 서비스를 높게 평가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좀더 풀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댓글창 오류인지 뭔지...때문에 남기지 못한 댓글

아무튼 그래도 IT 짬밥으로 단련된, 스마트 플레이스라는 그래도 알아주는 IT전문 팀블로그의 필진이신 네오비스님의 의견이라서 '블로그얌'에 한번 가봤습니다. 역시나 그다지 인정할만한, 평가할만한 서비스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체 블로고스피어에 대한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의 부분인 것 같습니다.
서비스형 블로그들만을 상대로 하네요...

저는 블로그를 그 블로그가 가입한 서비스로 평가하는 태도는 대단히 잘못된 편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네이버 블로거'라거나, '다음 블로거'라는 식의 편견은 대단히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전히 네이버에도 블로그를 가지고 있고, 제 블로깅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한겨레블로그에도 블로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물론 제대로 관리하고 있지는 못하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치형 블로그에 대해선 어쩔 수 없이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데요. 티스토리가 등장한 마당에 설치형 블로그들을 그래도 붙잡고 있는, 그래서 그 이런저런 관리상의 불편과 경제적인 대가를 감수하고 있는(물론 대체로 그게 일년에 몇 만원에 불과하지만요) 블로그들은 뭔가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블로거들이 존중할만한, 평가할 만한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우수블로그와 티스토리 천하). 그런데 블로그얌에서 설치형 블로그들은 아예 그냥 평가대상에서 '제외'네요. 이런 '평가시스템'을 평가해줄 이유는 더 더욱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블로그얌에 가서 블로그 검색으로 스마트플레이스를 검색해봤습니다.

이에 대한 평가는 그냥 '생략'합니다.
이런 처참한 광경을 보여주면서 무슨 블로그를 평가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네요. 제가 IT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로선 그저 어처구니가 없을 뿐입니다. 자신(네오비스)이 참여하고 있는 팀블로그조차도 제대로 검색해주지 못하는 서비스를  네오비스님께서 '높게 평가'하시는 그 이유를 도무지 알 길 없습니다. 혹여 누구라도 그 이유를 아시는 분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물론 네오비스님께서 직접 설명을 주시면 가장 좋겠지만요.


 * 이 글은 블로그 평가의 신뢰도 2. 야후 블로그 랭킹과 링크의 중요성 로 이어집니다.


보충.
"글쎄요"라는 임시필명으로 의견을 주신 분이 계셔서요. 참조할만한 좋은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블로그얌이 모습을 드러낸지도 거의 2년이 되어가는 듯합니다.
초기 공개했을 당시에도 여러번 독립형 블로그에 대한 평가는 언제될지 물었는데 차차 서비스가 무르익으면 지원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곧 이루어지리란 기대를 가졌지만 그 후 독립형블로그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이루어 지지 않고 이내 다른 서비스만 연달아 추가되었습니다. 링크얌, 서치얌 등의 서비스인데 크게 다루지 않고 제가 추가라고 단언하는 이유는 그 두가지는 구글과 타 블로그검색엔진의 가치평가 기준에 속하는 몇가지를 별도의 서비스라고 분리해놓은 모양새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그거란 말입니다.

물론 벤쳐기업으로 소수의 개발인력일 것이 분명해 보여 동시에 여러 서비스를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블로그얌, 링크얌, 서치얌 등 순서대로 런칭하는 것은 너그러이 볼때 분명 그들이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부터 서비스형 블로그에 한해 가치평가를 제공하던 이유는 분석에 필요한 요소를 결정하고 수집하기위한 다양한 가능성의 삽질을 피하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몇가지 서비스에 최적화시키고 많은 블로그를 등록 시키며 사업을 안정화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용자가 있는 워드프레스. 무버블타입 같은 설치형 블로그에 대해 똑같은 지원을 하려면 개발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요. 기타 외국형서비스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블로그얌은 국내에 국한되는 서비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노력들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댓글과 트랙백의 숫자와 그에 대한 가치 결정, 파워블로거의 인과관계는 블로그얌이 계속해서 공격받는 이유입니다. 댓글이 많지 않은 양질의 글을 쓰는 수준급블로거도 있고 이슈에 따라 펌블로거로 활동하며 큰 가치를 평가 받는 블로그도 있습니다. 특히 이런 경우는 네이버같은 펌블로그를 양산하는 시스템에는 분명히 적용됩니다. 알려지지 않은 블로그얌만의 특화된 가치평가기준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업의 중요기술을 공개할수도 없습니다.

제 의견의 결론을 적겠습니다.
블로그얌은 블로그의 가치평가를 제공하고 단번에 눈에 보일 수 있는 포털형 블로그 위주로 진행하며 기업의 가치를 부풀려왔다고 생각합니다. 단기간에 지표를 올리고 평가를 내고 투자를 받는 것은 하루살이 벤쳐기업에 있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초기에 사업의 가능성만을 내놓았을뿐 그 이상의 기대는 가질 수 없습니다. 가치평가라는 컨셉을 내세운 서비스 일뿐 블로그평가의 바로미터가 되는 서비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2년이 되도록 포털블로그를 제외한 나머지 블로그들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고 여러 서비스를 공개하는 것은 마치 와이셔츠를 윗 단추 몇 개만 잠그고 넥타이 매고 그 위에 슈트를 입어 가리는 느낌입니다.

제 블로그도 아닌데 상당히 글을 길게 적게 되었습니다. 이미 스마트플레이스에서 글을 읽으며 블로그얌을 크게 평가하는 내용에서 꺼림칙했습니다. 마침 민노씨님의 글도 보게되어 제 생각을 털어놓게 되네요.


이고잉(egoing)님 말씀처럼 댓글 대화를 제대로 읽을 수 없을 만큼 댓글창이 혼란해진 을 최근에 썼는데요. 오늘 또 어떤 익명께서 댓글을 주셨네요. 거기에 하민혁씨께서도 찬동하는 답글을 주셨구요. 하민혁씨께서 굳이 답글을 쓰지 않으셨다면 그냥 그려려니 했을텐데, 민혁씨께서 만세 부르시는 통에 굳이 이 글을 씁니다.

깐죽이 2009/03/11 20:28
아유 복잡하게들 사시네요...
조선과 한겨레 또는 경향신문을 같이 1달만 구독해보세요.
물론 자전거도 돈도 생기지만
신문의 퀄리티가 아주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엔 개나 소나 언론행세를 해서 신문사 쉽게 생각하시는데...
순전히 신문사의 논조를 떠나서
신문 기사, 사설, 섹션의 질을 비교해보세요,
조중동 읽지 않고 비판하는 것은
정말 양심을 버리는 비겁한 행동입니다. perm.

  • 하민혁 2009/03/11 20:42
    만쉐이~ 드뎌 바른 소리 하는 분 한 분 납셨습니다.
    3개 신문 한 달 간 보고 난 결론은..
    '한겨레신문, 똥딲이로도 안 쓴다'에 한 표 던집니다. ^^
    <덧> 경향신문의 경우는 사설/칼럼란은 아예 휴지통에 던져놓고 보시면 그럭저럭 볼만 합니다. perm.
  • 위상 2009/03/11 21:10
    기숙사에 다 같이 있어서, 다 읽어보는데, 전혀 못느끼겠어요. 죄송해요.perm.
깐죽이 2009/03/11 20:36
그리고 마지막으로 딱! 한마디만 할께요.
주장하고 자기가 옳다는 놈들 투성이고
듣고보니 잘못했다고 정정한다는 놈은 한 놈 두 없네요...
이래서야 결말이 나겠나요?
우리나라 정치가 꼭 이렇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도 우리나라 국회의원 욕하시면 안됩니다아아...

읽지도 않고 비판하지 않습니다.
도무지 왜 이런 쓸데 없이 무례한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주신 말씀이라면 동아와 중앙은 별론으로, 조선일보는 온오프를 통해서 비교적 꾸준히 읽어왔습니다. 특히나 황우석 파동 때는 그 파동이 시작되고, 마무리되기 까지의 거의 모든 관련 기사들을 모니터링 했었습니다. 지금은 그저 사설이나 관심있는 이슈가 있으면 온라인으로 그 주장이 어떤가 살펴보고 있는 정도지만요.

혹여 저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댓글을 남기신 독자와 동료 블로거들께 남긴 말씀이시라면 그것도 참 무례하기 짝이 없습니다. 왜 굳이 한달씩이나 구독을 통해 비교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의무라도 되는 것입니까? 그 때 그 때의 이슈에서  각 언론사닷컴들의 사설과 기사들을 꾸준히 체험하신 분들이 제 글에 댓글을 남기신 대부분의 독자들과 동료 블로거들일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도무지 이런 무례한 어투로 어떤 근거도 없이 상대방을 깔아 뭉개고, 또 비난하시는 것은 '비겁한 행동하지 말라는 분'의 행동으로 어울리는 행동인지 여쭙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런 글에 만세 부르시는 분은 도무지 어떤 '용감한 마음'으로 그러시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민혁씨께서 기꺼이 공감하신 분께서 "마지막으로 딱! 한마디만 할께요."라고 남기신 말씀은 "주장하고 자기가 옳다는 놈들 투성이고, 듣고보니 잘못했다고 정정한다는 놈은 한 놈 두 없네요..."라는 극도의 무례입니다.  타인을 무시한다고 해서 스스로가 존중받는 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존경이란 관계적인 맥락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토록 손쉽게 관계의 상대방을 깔아 뭉개버리면 스스로 스스로의 인격을 짓밟는 것이 되고 맙니다. 솔직히 이런 부연을 하기에도 일고의 가치가 없는 댓글이긴 합니다. 그냥 스스로에게 욕을 하는게 더 나을만한 그런 댓글입니다.

아무튼 다시 하민혁씨 답글로 돌아가면, 이 답글이 하민혁씨께서 쓰신 글이 맞나 싶을만큼  실망스럽습니다. 저는 '실망'이라는 말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기대하는 게 있고, 최소한의 애정이 있기에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서 그렇습니다. 저는 하민혁씨께 상당한 호의를 갖고 있습니다만, 이번만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답글은 도무지 어떤 취지로 남기셨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진영논리를 거절하자는 분께서 이런 대단히 무례하고, 무책임하며, 또 어떤 대화의지도 발견할 수 없는 의견에 이렇게 만세를 부를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진영논리를 거절하지만, 자신 편에서 해석하는 분은 예외인가요? 내 편이면 장땡인가요? 정말 알 길 없습니다.

아무튼 내용으로 들어가면 말씀하신 '질'이 어떤 질을 말씀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논조"를 떠나서 '저널리즘의 질'을 평가할 수 있다는 말씀도 저로선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만, "논조"를 떠나시자면서 "사설"을 저널리즘의 질을 평가하는 대상으로 예시하시는 건 또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네요. 물론 말씀하신 취지는 '정치적인 당파'를 떠나서 기사가 그럭저럭 볼만하다, 뭐 이런 말씀이신 것 같은데요.

부분적으로 조선일보가 뛰어난 영역이 분명히 있습니다. 연예, 스포츠, 문화, 경제, 사교육 섹션의 '사진발' '편집발'은 대단히 뛰어납니다. 저는 저널미장센으로 부르는 일반적인 정치기사, 사회기사의 편집실력도 그 철학에 찬성 여부를 떠나 굉장히 뛰어납니다. 인터뷰이 섭외 능력도 대단히 뛰어나죠. 예전에는 조선일보와는 인터뷰 안한다는 고매하신 양반들도 이제는 너도 나도 조선일보에서 인터뷰하자면 좋아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기사의 '표면적인 질'을 본다면 대체적으로 기본적인 글쓰기 훈련은 잘 되어 있다고 봅니다. 소박한 문외한들도 알아먹기 쉽게 쓰는 기사의 기본이 잘 훈련되어 있고, 괜히 잘난척 하는 글들도 별로 없습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저널리즘의 질'을 평가하신다면 좀 아쉽습니다.

한겨레, 경향.. 물론 아쉬움이 큽니다. 경향에 대해선 체험치가 높지 못하지만, 한겨레는 초기 한 5, 6년을 관련 특집 기획들 스크랩한 스크랩북이 그 페이지로 수 천 페이지는 될 겁니다. 현재는 솔직히 잘 읽지 않습니다만, 사설은 꾸준히 챙겨 읽는 편이고, 관심 있는 이슈가 생기면 한겨레 기사들은 살펴 보는 편입니다. 엉성한 기사들 꽤 눈에 들어옵니다. 예전에 읽었던 그 감칠나는 맛도 지금은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해서 예전보다 눈에 들어오고, 마음을 움직이는 기사들, 칼럼들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한겨레가 맛이 갔다고 해도 조선보다는 훨씬 뛰어난 저널리즘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저 그 신문사의 '정치적 당파'에 대한 호불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널리즘을 평가하는 제1의 표준은 세상을 세상의 의미 그 자체로 드러내는 '언어의 투명성'(노네님의 표현을 빌자면)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을 흔히 저널리즘의 객관성, 정론의 가치, 불편부당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죠. 저널리즘의 가치는 저널리즘이 가장 우선해서 추구해야 하는 정론으로서의 가치, 객관성에 대한 억압과 당파성에 대한 유혹 사이의 발전적인, 창조적인 긴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이유는 조선일보는 이런 '긴장'을 전혀 발견할 수 없는 신문이기 때문입니다. 객관성의 추구와 당파성의 유혹 사이에서 항상 조선일보는 당파성, 아니 당파성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극도로 제한적인 집단 이기주의의 편에 섭니다.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거죠.

한겨레와 경향도 자신들의 당파성을 위해 사실을 계산적으로, 전략적으로 취합하고, 또 편집합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틀짓기, 좋게 말하면 의제설정을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한겨레와 경향은 최소한 자신의 당파성과 객관성을 중재하려는 저널리즘의 긴장, 그 실존의 떨림을 보여줍니다. 조선일보에는 이런 것 없습니다. 짜장면 먹고 싶은 아이처럼 욕망에 충실하고, 자신의 집단적인 이익에 충실합니다. 이런 욕망 앞에서 일관성과 객관성에 대한 가치는 정말 휴짓조각 그 이상의 가치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조선의 의제 설정 역량은 정말 탁월합니다. 그 의제는 사회가 고민해야 하는 가치나, 대한민국이 다시한번 되돌아 봐야하는 상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순전히 자기 이익만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건 의제 설정이라기 보다는 '틀짓기'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그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틀짓기에 반항하는 세력이 등장하면 이 신문사는 무슨 군사집단, 이리떼 같이 변신합니다. 한 번 물면 아주 끝장을 보죠. 사방에서 눈을 부라리면서 먹이감을 향해 대오를 짜고 조금씩 조여옵니다. 정말 무섭습니다. 그게 사회와 정의를 위해서 무서운 것이라면 참 좋겠는데, 순전히 지들을 위해서만 이렇게 무섭습니다.

저널리즘에 있어서 '언어의 투명성'은 당파성과 진실,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과 고민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사실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저널리즘이 만들어내는 고민의 성숙도, 세상을 바라보는 그 관점의 깊이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노네님께선 '이런 상'이라는 글에서 미국 오웰상을 소개한 적 있으시죠.

"투명하고 정직한 公적 언어를 위해 뚜렷이 기여한데 대해 영어교사들이 수여하는 상". 미국의 전국영어교사평의회(National Council of Teachers of English, NCTE)가 1975년 제정한 오웰상 Orwell Award의 정식이름이다.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니...ABC나이트라인의 진행자 테드 코펠 (1984),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1987,1989), 만화 둔스베리의 작가인 게리 트루도(1994) 등이 눈에 뜨인다.

가령 코펠과 트루도가 수상한 이유는 각각 이렇다:
모범적 지성, 잘 준비된 관심, 사회적 문제에 대한 깨어 있음, 유려한 언사, 논란의 대상인 인물들에게 공정하고 엄격하게 질문하기....공적 담론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정직과 열린 마음, 명징함과 일관성을 추구해온....a model of intelligence, informed interest, social awareness, verbal fluency, fair and rigorous questioning of controversial figures. . . . [who has sought] honesty and openness, clarity and coherence, to raise the level of public discourse

미국인의 일상생활의 모든 측면에 걸쳐서 문화적-정치적 스펙트럼의 전부분을 망라하여 자행되는 이중적 발언에 대한 일관된 공격 consistently attacking doublespeak in all aspects of American life and from all parts of the cultural and political spectrum

- 노네, 이런 상 (2008/01/28) 

누누히 강조합니다만, 일제시대나 전두환 신군부 이렇게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황우석 파동을 떠올려보십시오, 그 놀랄만한 선동질과 뻔뻔함과 둔갑술을 생각해보십시오. 조선일보의 '질'을 강조하고, 거기에 만세 부르는 분은 저로선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게 제 주관적인 해석에 불과한 것이라면(물론 깐죽님이나 하민혁씨께서도 그 '주관적인 해석'에 불과한 것은 마찬가지지만요), 위에 노네님께서 인용하신 오웰상 수상자의 선정 사유를 한번 읽어보십시오. 이것이 상식적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선정 사유를 조선일보에도 대입해보시고, 경향이나 한겨레에도 대입해보십시오. 아니 어떤 언론사, 어떤 블로그라도 좋습니다. 그리고 깐죽님께서 '양심없다'고 질책하면서까지 강조한  각각의 "질을 비교"해보세요.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