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드라마를 꽤 즐겨보는 편이다. 마니아라고 할 것 까지는 아니고, 그저 주변의 풍문을 통해 평가가 좋고 재밌다는 것들 가운데 한 두 편 보고 적성에 맞는 건 꾸준히 챙겨보는 편이다
(관련해서 shain이 요즘 통 블로깅 하지 않는 건 매우 아쉽다). 물론 영어 난청이기 때문에 우리말 자막의 도움이 매우 절실한데, 영어에 대한 압도적인 스트레스랄까 트라우마
(라고 할 수 있을만큼 개인적으론 꽤나 인생의 발목을 잡았던 기억) 때문에 자막과 영어대사가 어떻게 부합하는지를 들으려고 간간히 노력하는 편이긴 하다. 영어공부가 될까 의문이지만, 이왕에 보는 거 틈틈이 듣기 연습이라도 하지 뭐, 그런 심산으로 그렇게 한다.
그렇게 안들리는 영어로 씨부리는 미국드라마들을 보고(듣고) 있노라면, 유독 인상적으로 남는 단어가 있다. 그건 이 글 제목인 'deserve'다. 인상적이라고 내가 느낀 순간부터 그 단어가 자주 '인상적'으로 들리는건지, 아니면 드라마 속 줄거리가 그 'deserve'와 친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단어는 아주 중요한 순간들마다 울림을 갖고 들려온다. 그네들(미국인)은 무엇을 받을 만 하다거나 무엇을 할 만 하다는 걸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가? 뭐 이런 생각이 들 지경이다. 이건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이면서, 그 인간의 존재가치와 연결되고, 특히나 칭찬과 비난/비판과 연계된다. 그 deserve는 정말 중요한 국면에서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격려의 마음을 전하거나, 혹은 그 사람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비난하기 위해 사용된다. 좀 극단적인 연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네들의 문화는 'deserve'의 문화는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나는 미국이라면 그저 왠지 좀 짜증이 생기는 편견이 있는 편이긴 하지만 이 'deserve'와 관련해서는 그네들의 문화랄까, 인식과 판단의 태도랄까... 좋게 느껴진다
(물론 이게 내 과도한 해석이라는 걸 인정하는 전제에서 말이다).
여기서 당연히 우리네들은 이 'deserve'라는 거 얼마나 생각하나 뭐 그런 연상이 닿는다. 쥐뿔. 그런거 없다. 마땅히 상찬해야 하는 행위도, 마땅히 비판해야 하는 행위도, 그냥 좋은게 좋은거다라는 문화(?)에 모두 묻힌다. 그게 우리네 사고의 바탕이지 않나 싶은 그런 씁쓸함이 생긴다. 대통령은 대통령답지 않고, 정치인은 정치인답지 않고, 언론은 언론답지 않고, 이른바 "유력인사"들은 유력인사답지 않다.
그들은 'deserve'의 세계에 있지 않고, 그냥 '예외'와 '특권'과 '뻘짓'의 세계 속에 있다. 그들은 모든 것들을 초월해서 '무엇을 할 만 한 존재'라거나, '무엇을 받을 만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그냥 그럴만하지도 않은데 그러고, 그럴만하지도 않은데 모든 것을 누리는 그런 존재들로 보인다.
그럼 블로그판은 과연 어떤가? 모든 것들을 블로그계의 생리들, 그 안에서 유통되는 의미들의 흐름으로 되돌려 생각하곤 하는데, 블로그 역시나 'deserve'의 미덕과는 별로 친하지 않은 것 같다. 무엇을 할 만하다거나, 무엇을 받을 만 하다는 걸 생각하기 보다는 나랑 친한 블로그가 장땡이고, 그냥 좋은게 좋다는 식의 소극적이면서, 은밀한 처세가 장땡이다. 마땅히 칭찬하고 싶으면 칭찬해주고, 마땅히 비판해야 할 때는 그래야 하는게 귀찮은 것 같다. 그래봤자 돈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나만 고단하고, 혹시라도 괜히 '경찰'소리나 듣고. 나에게 별 이익되지 않는 짓을 귀찮고, 성가시게 할 필요가 뭐있나, 뭐 그런 게 이제 바야흐로 블로그계의 생리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언젠가
이정환이 블로그에 한번 써보고 싶었다던 마틴 니묄러(
Martin Niemöller. 1892–1984)의 시를
삼월의 마지막 칼럼에 박상주가 인용한다
(물론 박상주 칼럼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도 아니고, 동의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핵심 취지에 대해선 공감하고, 동의한다).
나치가 공산당원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니까.
Als die Nazis die Kommunist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Kommunist.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Sozialdemokraten einsperr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Sozialdemokrat.
그들이 노동조합원에게 갔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Gewerkschafter holten,
habe ich nicht protestiert;
ich war ja kein Gewerkschafter.
그들이 유태인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Jud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Jude.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항의해 줄 누구도 더 이상 남지 않았다.
Als sie mich holten,
gab es keinen mehr, der protestieren konnte.
- 마틴 니묄러 (Martin Niemöller)
칭찬받을 만하다거나, 존경받을 만하다거나, 사랑을 받을 만하다.
비판받을 만하다거나, 문제를 제기할 만하다거나, 책임을 질 만하다.
'deserve'의 세계에서 그게 향하는 대상은 궁극적으론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기 위해서, 재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계의 맥락 속에서 그 사람과 함께 나눠야 하는 세계를, 그 의미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거다. 그건 대한민국 버전으로 민쯩 까고, 화부터 내는 세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과연 'deserve'인가 아닌가를 그저 솔직하게, 때론 치열하게 대화하는 거다. 그렇게 함으로써 좀더 나은 세계에서 좀더 무엇할 만한, 무엇 받을만한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대답하는 형식으로 질문하고, 질문하는 형식으로 대답하는 거다. 무슨 자격증 타령하는게 아니라, 정말 실질적이고, 실체적인 이야기, 'deserve'인가 아닌가를 이야기한다.
그걸 블로그계로 돌리면 어떤 블로깅, 어떤 포스트, 그러니까 글과 그 글에 담긴 입장과 세계관, 그 의미에 대한 칭찬과 격려, 비판과 문제제기가 없다면, 그냥 좋은게 좋은거고, 나랑 친한 블로그가 장땡인 그 세계, 'deserve'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세계, 그저 나에게 불똥이 튈까 안튈까, 나에게 유리하나 유리하지 않나, 내가 편한가, 불편한가라는 그런 유아론적 세계가 계속 득세한다면, 비유적으로 '돈 되나 안되나'의 세계가 계속 커져가면... 그러니 'deserve'가 여전히 우리와는 별로 상관없는 단어로 남게 되면.... 마틴 니묄러의 시가 나치를 걱정했던 그 암울한 시대가 우리에게 기필코 온다. 그리고 그런 암울한 시대가 오면, 우리가 아무런 저항의 목소리도, 격려와 연대의 목소리도 내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를 위해 항의해줄, 아주 작은 목소리로나마 우리 스스로를 위해 우리를 대신했던 그 목소리는 더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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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j4blog
2009/04/02 13:29
del.
수많은 블로거들이 '소통과 교류'를 블로그의 덕목 중 으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블로거들은 블로그 = 생각의 교류로 생각하고, 그로 인한 집단지성의 탄생과 성장을 갈구합니다. 그런데 수많은 이슈들이 명멸해가는 블로고스피어 내에서 우리는 잠재적으로 타인에 대한 비판은 되도록 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하기 싫다'라는 동방예의지국스러운 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비판을 한 상대방과 적이 되기 싫다는 면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바캠프 관련 링크 몇 개
http://barcamp.org/BarCampSeoul2
http://www.likejazz.com/archives/52
http://www.flickr.com/photos/barcampkorea/sets/72157600299291273/
http://barcamp.org/FutureCamp (퓨처캠프)
새드개그맨님이 너무 늦게 오셔서 아쉬웠어요.
아참, 이 댓글은 같은 글이 세 개나 휴지통으로 직행했더만요..;;;;
바로 휴지통을 살폈어야 하는건데..;;
아무튼 복구했다능...(이 답글도 너무 늦었고만요. )
라이크재즈님 글 빼놓곤 다 읽어보지 않은 링크인 것 같네요.
링크 소개 감솨~!
새드개그맨님이 너무 늦게 오셔서 아쉬웠어요.
바캠프 관련 링크를 몇 개 달려고 했는데, 귀하는 차단된 사용자라면서 댓글이 달아지지가 않는군요; 뭔가 필터링이 과한 게 있는 듯 합니다;
이룬...;;;;
스팸 트랙백 때문에 htaccess파일에 ip단위로 굉장히 많은 필터링 목록을 남기긴 했습니다만... 관리자툴의 이름이나 사이트 필터링이라면... 뭘 찾아야 할지 모르겠고만요... 전화 드리겠습니당.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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