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 로맨스...

처음엔 그저 작은 위로였습니다.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 아이는,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들이 다 그렇듯, 지금 저와 함께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그게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마음이란게 투명하게 지워지고, 그게 풍경이라면 거기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사람들 얼굴 보지 않아도 되는, 새벽 배달일을 하면서 옥탑방에 웅크려 있었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도 별 미련이 없을 것 같았어요. 어떻게 살든 그게 뭐 큰 일인가요...  그렇게 새벽엔 배달하고,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엔 좋아하는 책들을 읽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겨레에서 블로그를 만든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주 어린 날들, 청춘이 피어나던 날들, 저에게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는 한겨레에서 블로그라는 걸 만든다고 했어요. 필진네트워크라는 곳이었습니다. 새벽 배달을 마친 어느 날 새벽, 피시방에서 첫 글을 썼습니다. '블로그 시대의 도래와 종이신문의 미래'라는 글이었어요. 2005년 어느 날의 일입니다.

필진네트워크에서 참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먼 사촌보다는 가까운 분들이 되었죠. : ) 전라도에서 돼지농장 관리자로 계시는 '키륵새'님, 오늘 아침에도 전화통화를 했는데, 요즘은 구제역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항상 '한겨레 가족님'이라고 우리를 불러요. 우리는 서로를 '필벗'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가진 것이 많거나, 무슨 대단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한겨레를 사랑하는 마음, 한겨레가 우리 시대에 여전히 우리를 지켜주는 가치로 존재해야 한다는 소박한 믿음을 대체로 공유했습니다. 그런 우리가 서로 작은 힘이나마 모아서 인터넷 한겨레를 멋지게 도와보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겨레에서 만드는 '필진네트워크'라는 곳은 우리가 기대하는 곳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는 (인터넷) 한겨레를 우리가 개혁하자고 했습니다. 잠자는 시간, 새벽에 배달하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온종일을 거기에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일년 남짓이 흘렀습니다. 한겨레는 필벗들에겐 또 다른 '조직'이었고, '권위'였습니다. 인터넷 한겨레 관계자들, 필넷 관계자들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너무 좋은 분들이시죠. 또 평범한 직장인이시기도 하구요. 하지만 야속한 마음이 커졌습니다. 우리 기대가 너무 컸나봅니다. 우린 그저 '사용자'일 뿐인데 말이죠. 그게 너무 싫었어요. 우린 그저 '서비스 사용자'일 뿐이라는 거요...그래서, 그렇게 저는 한겨레, 정확히 말하면, 필진 네트워크에서 나왔습니다. 왕족 기자/귀족 전문필자/평민 네티즌로 이뤄진 '봉건 네트워크'에서 나와 자유인이 되었습니다.(농담이예요...물론 농담유골입니다. ㅎㅎ)

그리고 여기에서 '민노씨네' 글방이 아닌 민노씨.네(minoci.net)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이 네이버인줄 알았던 제가 온전하게 저 만의 공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진 공간이라곤 남자 둘이 누으면 꽉 차는 작은 월세 옥탑방이 전부인 저에게 "자기 혼자 만의 방"이 생긴겁니다. 그건 마치 버지니아 울프가 먼 친척에게 유산으로 물려받은 돈 월 500파운드가 그녀에게 선물한 "자기 혼자 만의 방"처럼 온전하게 저에게 속한, 저 만의 공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집'에 그렇게도 애착하는데, 왜 블로그는 셋방살이로 만족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화려한 셋방살이라도 그건 셋방살이잖아요. 주인(서비스 사업자)와의 계약이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일정한 요건으로 양도하게 됩니다(약관을 통해서 그렇게 하잖아요). 저는 아무리 초라해도 제 집이 생긴게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5년 남짓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제가 왜 이런 감상적인 글을 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감상적인데다 또 어느 정도는 미화되기까지 했습니다. 그게 아무리 솔직한 제 마음 속 이야기라도 우리는 항상 스스로를 미화하니까요. 블로거들은 나르시시스트들입니다. 하지만 그 자기애는 '대화'를 통해서 '우리'와 만나는 자기애입니다. 서로를 따돌리고, 경쟁을 통해 성취를 얻는 욕심이 아니라, 아주 적은 독자라도, 블로거벗이라도 그저 대화를 통해, 함께 하고, 나누는  꿈을 통해 뭔가를 궁리하는 그런 일이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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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가 멈춘 글을 다시 시작합니다.
지금은 2011-05-25 오후 5:52 입니다. 곧 인권센터 건립을 위한 강연회에 나가봐야 합니다. 삼십분 남짓 글을 쓰고 거기까지 쓴채로 발행할까 싶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웹의 발전 속도는 우리의 사고가 거기에 적응하기 어려울만큼 빠릅니다. 아, 그런데 그건 식상한 사회교과서의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블로그는 이미 고리타분한 어떤 것이 되어 버린 것 같으니까요. 이제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시대입니다. 웹 '서비스'는 눈부시게 인간의 소통 욕구를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시킵니다. 거기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트랜드를 열심히 쫓아갑니다. 그게 어떤 건지 느낄 새도 없이 그렇게 새로운 웹 문명을 열심히 열심히 만들어갑니다.

아거님은 언젠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결국 아이폰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이제 침묵의 소용돌이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이 침묵의 소용돌이속에서 아래쪽으로 꺼지는 것은 오프라인상의 대화이고, 위로 계속 말면서 올라오는 것은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수다들이다.
- 아거, 아이폰과 침묵의 소용돌이 
저 소용돌이 그림을 가끔씩 떠올립니다. 그리고 요즘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욕망은 소용돌이처럼 위로 넓게 펴쳐지고 솟구칩니다. 우리의 이야기들, 우리의 말과 글들은 세상을 모두 뒤덮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거기에서 우리는 또 다른 소외를 만들어냅니다. 안으로 안으로 꺼져들어가는, 그렇게 한 점으로 작아지는 자신을 느낍니다. 인정받기 위해선 말해야 하고, 또 설득하기 위해선 말해야 합니다. 트위터에서 페이스북에서 한참을 떠듭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이야기만 하고, 듣지 않습니다. 이제 그 욕망은 노이즈가 됩니다. 그 소통하고자 했던 바람들은 자신을 덮어버리는 소용돌이가 됩니다.

우리는 SNS와 모바일이라는 전혀 다른 환경을 만나고 있습니다. 소셜은 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점들을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하 간략하게 생각나는 순서로 서술합니다.

1. 오프라인과 온라인
SNS의 문화적인 속성은 오프라인을 온라인으로 이식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이분법적 구별은 이제 무의미하긴 합니다. 하지만 블로그는 새롭게 스스로를 창조하는 온라인 실존의 집이었습니다. 블로그는 자신의 이야기들을 통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친구들을 사귀고, 대화를 만들어갔습니다. 거기엔 다양한 소망들과 욕구들, 자신의 이야기들이 존재했습니다. 그 친구들이 어떤 대학을 나오고, 어떤 지역 출신인지, 어떤 직장을 갖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점점 더 오프라인의 표지, 그것도 이왕이면 과시적인 표지들이 중요한 메커니즘의 요소로 작용합니다. SNS은 오프라인을 온라인으로 직접 이식하려는 속성으로 움직입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이상적인 상호작용이 아니라 오프라인이 온라인으로 급격하게 이식됩니다. 온라인에서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에너지들은 익명성, 혹은 온라인 실존성이라는 속성과 친합니다. 그 안에서 이상화된 자아, 오프라인을 숙주로 하지만, 그 오프라인의 실존과는 다른 온라인 실존은, 익명성, 새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전혀 다른 대지에서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트위터, 특히 페이스북을 통해서 이뤄지는 사귐의 메커니즘은 '콘텐츠'가 아니라, 듣보잡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프라인의 표지들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페이스북은 속물적인, 이것은 폄하의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의 과시욕구를 자극하는 장치들을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비리거들의 짝짓기 서비스로  페이스북이 출발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2. 트위터
트위터에 있는 건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의 흔적입니다. 사람의 정서와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물리적인 언어의 부피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트위터는 인간의 다양한 관심들이 정서적인 교감의 회로 속에서 작동하는 콘텐츠 필터링 기제입니다. 여기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새로운 형식으로 시작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는 소식들은 어떤 패턴들을 갖게 됩니다. 주로 기성언론의 속보형 기사들, 흔히 '이슈'라고 이야기되는 것들만이 주로 사람들에게 주목받습니다. 혹은 우리의 휴머니티를 자극하는 감상적인 화제들, 사회적 약자의 억울한 이야기들이 파편화된 채로 유통됩니다.

물론 그것이 갖는 사회적인 함의는 대단한 것입니다. '전두환 학살자'가 트위터의 재잘거림을 통해 새롭게 각인되고, '유성기업'을 억누르는 공권력의 야만을 다함께 고발합니다. 하지만 어느새 RT는 우리들의 사회적 관심과 참여의 알리바이가 됩니다. 우리는 할 일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 그 RT의 부피들이 다시 찌라시 언론들에 의해 재유통됩니다. 우리들이 만들어갔던 소박한 이야기들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성언론의 발빠른 속보들이 우리들의 타임라인을 채워갑니다. 명망가들의 재갈거림이 우리들의 작은 관심들을 장악해버립니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트위터의 공간은 그 자연스럽고, 당연한 욕망의 홍수들로 인해 그 말이 닿을 수 있는 종착지를 빼앗아갑니다. 노이즈는 메시지 도달률을 극단적으로 추락시킵니다. 여기에 한국식 '맞팔 문화'가 결합하면 사태는 더 악화됩니다. 자연스런 인정욕구를 저는 당연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숫자로 채워진 관계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처음 트위터를 시작했을 때 기대한 작은 이야기들이 점점 더 그 소용돌이의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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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어갑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글은 제3회 인터넷 주인찾기 컨퍼런스를 준비하는 목적을 겸해서 쓰는 글입니다. 그동안 많은 블로거벗들께서 글을 써주셨는데요. 간략하게 메모하고 넘어가죠.

구글폭탄 (이정환)
SNS와 블로그 (필로스)


위 필로스님 글에 댓글로 남긴 의견인데요. 주로 트위터에 대한 의견입니다. 추고해서 생각을 좀더 정리해봅니다.

1) 정보 습득 공간으로서의 트위터
콘텐츠 필터링 차원에선 RSS리더가 갖는 고요하고, 정적인 느낌보다 트위터가 주는 생기발랄하고, 살아 숨쉬는 느낌이 훨씬 매력있죠. 이건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뭔가 살아 있는 느낌, 시골장터 같은 훈훈한 느낌, 그런 인간적인 매력 때문에 트위터에 습관적으로 들르게 되는 것 같아요. 다만 그 인간적인 정보 필터링(정보 소개)가 갖는 한계와 부작용도 명백한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죠. 산만하고, 정신없다. 장기적으론 효율성이 낮아질 수 밖에 없는 경향을 갖는 것 같아요. 체감효용도 낮아지고, 처음에는 너무 훈훈하고 좋았던 인간의 목소리들, 정감어린 정서적 콘텐츠 필터링이 이제는 피로감으로 쌓이죠. 그리고 정보 습득체계가 산만해지는 걸 느끼게 됩니다. 네이버가 제공하는 백화점식 콘텐츠에 길들여지는 것처럼, 이제는 트윗벗들의 중구난방 즉흥적인 정보소개에 길들여져서 또 다른 '수동성'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2. 자극적인 속보성 콘텐츠 편중
또 하나 지적해야 하는 건, 언젠가 아거님께서도 지적하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요즘은 다수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속보성이 강조되는 자극적인 이슈들이 아무래도 가속화되는 현상이 경향화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나마 소극적인 팔로잉 정책을 사용해서 그 정도가 덜한 것 같기도 하지만, 수천 명 이상을 팔로잉하는 경우에는 정보 습득을 위한 콘텐츠 필터링 용도로서의 타임라인은 완전히 무의미해지는 것 같아요.

2-1. 타임라인과 리스트 : 타임라인의 게토화, 그래도 왜 타임라인은 존재하는 걸까요?
물론 리스트를 잘 관리한다고 이야기들 하시는데, 그 나름의 장점을 분명히 인정하지만, 리스트만 따로 읽는다면, 트위터의 메인공간이랄 수 있는 타임라인 공간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죠. 점점 타임라인은 별 의미없는 공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게 존재해야 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신이 따라 읽는 팔로워에 대한 형식적인 존재 근거이기 때문이죠. 인간의 인정 욕구(맞팔로 팔로워 늘리기!)과 자기애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방치되는 공간이랄까요? 타임라인은 점점 더 게토화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3. 블로그와의 관계, 제로섬인가 플러스섬인가?
이게 헷갈리는 문제인데, 사용자에 따라서는 블로그를 기반으로 그 블로그 콘텐츠를 좀더 널리 즉각적으로 유통시키고, 그 블로그 포스트에 대한 사랑방(?) 공간으로서 트위터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여전히 하지만, 실제로 사람이 매체에 사용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은 지극히 한정적이고, 기성언론 위주의 자극적 속보형 기사들에 트위터 콘텐츠 유통의 대부분이 장악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어서, 현재로선 확실하게 제로섬 관계이고, 그 경향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유지될 것 같습니다. 블로거들이 뭔가 특별한 의식적 노력을 기울이거나, 트위터 문화 패턴 자체에 충격을 주지 못한다면 말이죠.


* 이 글은 제3회 인터넷 주인찾기를 준비하기 위해서 쓰는 글입니다.
앞으로 당분간은 이 글에서 인주찾기 컨퍼런스 관련글들을 소개하고, 이 글에서 관련 업데이트를 계속할까 싶습니다.

* 관련 글
생각해보니 <반쯤 닫힌 웹의 월드 가든에서 아이폰 들고 블로깅 하기> 이런 글을 이미 썼었구나....;;;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선거법을 상식적으로 개정하려는 캠페인을 준비 중입니다. 저는 우연한 기회에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지난 4차에 걸친 준비 회의를 통해 골격을 만들어가는 초기 과정입니다. 일단 연대체 이름이 정해졌는데요. 이름하여 "유권자 자유 네트워크"입니다. 줄여서 "유자넷"(youja.net)이죠. 사이트는 아직 오픈하지 않았고요. 지금 오픈을 위한 콘텐츠 작업이 한창입니다.

<유권자 자유 네트워크>(유자넷)에 참여하는 단체는 참여연대함께하는 시민행동, 진보넷,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친환경무식연대, 여성단체연합, 환경운동연합, YMCA, 민언련 등등입니다. 현재 17개 단체가 참여중이고, 앞으로 참여규모는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참여 단체들 가운데 특히 무상급식연대 배옥병 대표는 선거법 위반과 관련한 공판이 진행중이시죠.  

어제 4차 회의에서는 유자넷에 참여하는 '재능기부자'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꼭지로 있었는데요. 이왕에 있는 이름은 "유권자 자유 수호천사"입니다. 참 구리죠잉? 지난 3차 회의에서도 이구동성으로 참 구리다, CF 카피와도 겹친다 등등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참여연대 실무진들께서 4차 회의를 앞두고 한 시간여 참신한 표현 뭐 없을까 궁리하셨다고 하던데요. 결국 마땅한 대체 표현을 아직은 찾지 못한 실정이죠.

그래서 독자 여러분, 블로거 동료들께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저 개인적으론 "수호천사"라는 게 참 좋은 표현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낯간지런 느낌이고, 또 한편으론, 특히 젊은 층에겐, 구린(ㅡ.ㅡ;)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서 <유권자 자유 네트워크>에 참여하시면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으세요? ^ ^

어떤 이름으로 불리면 여러분의 친구들, 동료들께서 이 운동에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인 이미지들을 갖고, 관심을 확대하는데 도움이 될까요? 트위터에서도 트윗벗들께 여쭤봤는데요. 이런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1. 유권자 도우미 : "'유권자 도우미' 좀 밋밋한가?" (@chunsoo)
2. 유자 농부 : "유자넷 잘 키우는 유자농부 어때요?" (@sinbi)
3. 유자씨 심는 사람 / 유자씨 뿌리는 사람 : "유자농부 하니까 더불어 떠오르는 건데요. '유자씨(유권자 자유의 씨앗)를 뿌리는 사람' 혹은 '유자씨 심는 사람'이렇게 풀어서 해보면 어떨까요?"  (@minoci)

그 밖에 어떤 좋은 표현이 있을까요?  ^ ^
아이디어 한방 쏴주십쇼! ^ ^;;


이어지는 고민 _ 참여의 보람?

@chunsoo님께서 이런 말씀을 주셨어요. "이런 귀한(?) 의견을 내었는데, 어케 상품으로 팔자 좀 고쳐주시면...."(^ ^). 가볍게 주신 농담이지만, 그야말로 농담유골이죠. 저 역시 유자넷이 참여자에게 일방적인 '도움'만 바라는 곳이 아니라 도움과 보람을 서로에게 주고 받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마땅히 그래야 하구요. 물론 유자넷에 참여하는 시민단체들은 활동을 위한 참여 분담금?을 내가면서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저도 무급 자봉이랄수 있구요. 그렇다 하더라도 시민들에게까지 대가 없는 참여, 소위 '순수한 참여'만 요구하는 건 '무책임한 징징거리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래서 제 고민은 자발적인 재능기부자들께 어떻게 하면 참여 보람을 '되돌려줄까'(구체적인 피드백)에 있는데요. 무조건 "참여해주세요!" "도와주세요!"로는 한계가 뚜렷한 것 같아서요. 이에 대해 신비(@sinbi)님께선 이런 말씀을 주셨어요. 참 의미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얕은 경험으로는, 자원활동에 있어서 가장 큰 보람은 다른 어떤 보상보다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에서 오는 것 같더라구요. 다 잡아놓고 시키기만 하면 절대 보람 못느낄 듯. 팀플레이, 더 나가서는 그분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컨셉! (@sinbi)

저는 유자넷이 아주 의미있는 시민들의 네트워크가 되길 바랍니다. 제가 무슨 큰 힘이 있거나, 대단한 능력를 갖고 있진 않지만,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죠, 선거법... 이거 정말 문제라고 생각해요. 독자 여러분들, 블로거 벗들께서도 그런 문제의식을 공유하시는 분들은 참 많으리라 여깁니다. 유자넷이라는 공간이 폐쇄적인 시민단체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과 살아 숨쉬는 그야말로 창조적인 네트워크가 되길 바랍니다. 저는 그 테두리의 안과 바깥에서 우리들의 상식적인 문제의식이 모이고, 또 퍼져나가는데 제 작은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 함께 해주시면 좋겠어요. 남의 일 아니니까요... ^ ^


* 알림!
오늘과 내일 두 번 남았네요.
저녁 7시 30분 카톨릭 청년회관 '다리'
에서 '인권센터 만들기 연속 강연회'가 있습니다.
오늘 강연자는 가장 먼저 실천하고, 끝까지 고민하는 노동운동가 '하종강' 선생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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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화) 25(수) 26(목) 삼일 동안 계속됩니다!

이제 오늘까지 이틀 남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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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청년회관 위치 (다음지도)





* 제주7이 뭐야? 하시는 독자들은 이 페이지들부터!

* 인터뷰이 : 피타고라스
* 인터뷰어 : 민노씨

* 약어
- 제주7 : 제주도와 세계 7대 자연경관 인기투표를 둘러싸고 벌어진, 특히 2011년 4월의 논란
- 삼인방 : 피타고라스(@pythagoras0), 가을들녘(@AF1219), 넷롤러(@Netroller)를 통칭.
- 피타의 창 : ‘피타고라스의 창’(블로그) http://bomber0.byus.net/
- 오마이 인터뷰 : 아래 기사를 가리킴
      "비행기에 결함 있다는 주장... 정밀검증 해보자"
      [인터뷰 전문] '세계 7대자연경관'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누리꾼들
      (오마이뉴스, 구영식, 2011.04.20) http://bit.ly/eSAqbm

* 글 구성
1. 소목차
관련 글, 기사, 자료 및 단평
질문1. 블라블라블라
답변 _ 피타고라스 : .....

* 피타님께 드리는 이메일 질문지에 첨부한 문단 : 질문은 삼인방과 공유하셔도 당연히 무방할 뿐더러, 오히려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질문은 피타고라스님의 블로그 및 스프링노트를 크게 참조했습니다. 아무래도 블로그에는 연대기로 축적된 자료들이 있어 긴 사유의 궤적을 살피기에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다만 질문의 큰 두 갈래 중 하나인 <제주7과 삼인방>은 삼인방 모두를 염두에 둔 세부 질문이 많습니다. 따라서 가을들녘님과 넷롤러님께서도 마음과 시간이 허락하신다면 고견을 주시길 바라봅니다. 다시 한번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제주7과 삼인방>



0. 삼인방  


질문 0. 삼인방은 어떤 계기로 의기투합했나? 예전부터 잘 알던 사이였나? 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궁금하다. 더불어 협업/소통의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달라.

피타고라스 : 지난 3월 초 가을들녘이 이 문제에 대해 알아본 것이 있는데 이상한 점이 많다면서 상의를 하자고 했다. 가을들녘과 넷롤러는 가까운 곳에 있으며 서로 잘 아는 사이로 처음부터 이 문제를 함께 논의한 것으로 안다. 나는 이들과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는 아니다. 만난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엄밀히 말하면 저 두 사람이 박사과정에 있는 유학생들인지도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지난 2008년 쯤에 서프라이즈에 글을 많이 썼는데, 가을들녘도 역시 서프라이즈에 글을 썼고, 이러한  계기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었고 이후에 트위터를 통하여 여러 대화를 나눠오며 동료 의식과 신뢰감을 키워왔다.

주로 트위터의 쪽지를 통하여 수시로 정보를 교환하며,  문서작성은 구글닥스에서 협업을 통해 이뤄져 왔다. 특별한 협업/소통의 노하우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삼인방의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 장점들이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느낀다. 목표를 공유하는 팀 구성원들의 상호 신뢰가 지금까지 협업이 비교적 무난하게 진행되어 오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본다.


1. 합리와 거리가 먼 믿음의 세계 : “진실은 두 번째 고려사항”

 
'세계7대경관' 주관 N7W재단 실체 논란
[분석] 세계유산 보존 위한 비영리재단? 인기투표로 돈벌이하는 조직?
(구영식, 오마이뉴스, 11.04.15) http://bit.ly/hFhKp4

(...전략...) 돈,명예 개인영달만이 목표가 아니라 이 척박한 땅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제주도에 터전을 잡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움직임이었습니다. 이번 세계7대자연경관도 정치적인 색깔 때문에 상처는 제주도민들에게 남겠네요...
(위 기사에 대한 독자 댓글 중, 제주별 외계인 ddplan)  http://bit.ly/fz7MI9  

제주에서 일어나는 집단적 광기?
(제주도민일보, 현충열 <제주씨네아일랜드 이사장>, 2011년 3월31일)  http://bit.ly/gLGTDX  
: 위 칼럼에서 현충열은 "이 국제적인 사기극의 전말이 모든 언론에서 밝혀질 것"이고, "이 문제에 등을 돌리고 있는 언론들은 제주언론 밖에 없"으며, "제주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일상의 집단적 광기"라고 매우 강도높게 '제주7'과 맹목적 애국(애향)주의을 비판하고 있다.

순수하게 투표하는 분들이 자신의 푼돈을 그들에게 지불하려고 하는 것까지 막을 생각도 없다. 누차 말하지만, 우리가 문제제기하는 것은 이런 상술에 왜 국가가 앞장서서 물적, 인적 자원을 투입하는가?라고 하는 정당성에 관한 것 (…) 참고로 28개 후보지 중에 하나인 '그랜드캐년'의 추진위원회는 '후알라파이 인디언' 부족들이 중심이 되어서 만들어졌고 활동하고 있다. 그 위원회 위원장이 인디언 부족장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런 수준에서 활동한다면 우리도 이런 문제제기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 2007년 리우데자네이로의 "예수상"을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올려놓은 브라질의 경우, 외국 관광객 수는 2007년에 +0.2%, 2008년에 +0.5%에 그쳤고, 2009년에는 오히려 -4.9%였다고 보고되었다. (….) 문화체육관광부, 제주도, 추진위원회의 전면재검토가 필요하며 지금과 같은 국가아젠다로서 추진하는 것은 중단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오마이 인터뷰 중에서)

"정치에서 고귀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런 일상이 괴로워요.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기 위해 야수적 탐욕을 상대하며 짐승 같은 비천함을 감수하는 일, 절대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 (유시민 인터뷰, 시민광장, 2009-6-10)  (….)  "당신이 철학자가 되고 싶다면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합리적인 정당화와는 무관한 믿음의 세계 속에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과 어떤 한 사람의 믿음의 세계는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일치하지 않기가 쉽기에, 그 둘 다가 옳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의견은 보통 그들의 마음에 편한 쪽으로 형성된다. 진실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두 번째 고려 대상이다."(버트런드 러셀)
- 피타의 창, 정치에 대하여 http://bomber0.byus.net/index.php/2009/10/12/1554  

질문 1-1. 삼인방의 합리적 비판의식과 이를 지탱하는 성실한 객관 자료 축적은 놀랍다. 그럼에도 “합리적인 정당화와 무관한 믿음의 세계”에서 “마음 편한” 대로 생각하고 행위 하는 유형들은 (‘그들’ 뿐만 아니라 ‘우리들’ 안에서도) 여전하다. 이런 비합리의 뿌리, 왜곡된 믿음의 뿌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식견 있는 시민(informed citizen)"의 성장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피타고라스 : 나는 합리적인 사고의 핵심이 어떤 주장이나 정보를 그 근거만큼 받아들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체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시민으로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만들고 다듬고 버리는 과정을 반복하며 살아가게 된다.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 사회란 시민들의 이러한 취사선택의 과정에서 근거만큼의 견해가 채택되는 과정이 건전하게 이루어지는 사회일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장애물은 인간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성향이 아닌가 싶다. 사람에게 한번 만들어진 견해란 좀처럼 바뀌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신이 가진 기존의 견해를 수정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고통스런 과정일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게도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자신의 견해를 새로운 정보에 기반하여 교정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없다면, 사람은 쉽게 완고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노력이 상당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일이라는 점이라고 보는데, 이에 대해 나는 전형적인 계몽주의자의 견해를 받아들여 교육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의 교육은 근거만큼의 견해를 갖도록 하는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고 자신의 견해를 끊임없이 수정해 나가는 일의 필요성을 가르치는데 매우 무능하다. 나의 경험에 비춰볼 때 학교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공부라는 것이 이미 주어져 있는 사실들의 단편적인 암기라는 편견을 심어준다. 이는 해악이 크다.

역사에서 한 세대의 상식이 지난 세대의 이단인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학생들이 학교를 벗어나 시민으로서 접하게 될 논쟁의 대부분은 주장부터 근거까지 어느 하나 깔끔하게 완성된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 한 때는 옳은 것으로 보이는 것들도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여지들이 생겨나는 경우도 많다. 학생들이 세상엔 모호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이렇게 모호한 것들을 적절하게 다루는 경험들을 제공해 주는 것이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할 시민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거창하게 들려도 상식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새로운 정보를 얻을 때는 정보의 근원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따져보기, 남의 말을 옮길 때는 한번 더 생각하기, 모르는 부분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 않기 등이 그것이다. 학교가 이러한 습관을 길러줄 수만 있어도 시민 교육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돌이켜보면 나에게는 대학 시절에 수학을 전공한 것이 이러한 것에 대하여 소중한 훈련의 기회를 제공했다. 수학과 대학생으로서 전공 과목의 숙제를 하는 것은 중고등학교에서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경험이다.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모호하게 은근슬쩍 넘어간다거나, 필요한 단계를 건너 뛴다든가 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을 갖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합리적 사고를 강조하는 버트런드 러셀의 글들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우고 영향을 받았다. 만약에 대학 시절에 이러한 경험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 생각들은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질문 1-2. 그 왜곡된 믿음이 이성과 합리주의, 계몽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가?

피타고라스 : 이성에 기반한 합리성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것이며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까지 사람들이 도달한 결론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 제주7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을 때 그러면 자발적으로 투표 독려 활동에 동참한 제주 사람들이 사기꾼이냐며 도리어 발끈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더 구체적으로 인간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과 인간의 행동 양식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카스 선스타인) 라는 책은 사람들이 세법을 더 잘 지키도록 하기 위한 실험의 사례를 소개한다. 사람들이 세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 받게 되는 처벌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는데, 대다수의 시민들이 세법을 지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행동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 요지다. 다른 사람을 따라하는 인간의 성향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다.  

사람들이 세법을 더 잘 지키도록 유도하자는 목표를 가졌어도 그 다음의 호소와 설득의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실행되는가는 결과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 인간의 마음에 대한 사려깊은 이해없이 계몽주의 프로그램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 양식에 대한 이해를 가진 섬세한 계몽주의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 나는 아직 별로 익숙하지 않고 아는 것도 부족하니 이 정도로 말을 줄이려 한다.


질문 1-3. 그렇게 왜곡된 믿음이 구조화된 세계 속에서 합리적인 이성의 도전은 오히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무력감, 좌절감을 만들어내진 않았나?  

피타고라스 : 질문 2-1에서 자연7 활동의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겠지만 무력감과 좌절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제기한 이후 주류 언론의 무관심은 상당한 실망감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현실이 바라는 만큼 빨리 변하지 않는 데서 오는 무력감과 좌절감이 없을 수 없다. 어쩌면 그런 부분이 더 긍정적인 생각보다도 훨씬 클 것이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때에 시지프의 이미지를 생각하는 것이 마음을 추스르는데 도움을 준다. 돌이 다시 떨어질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다해 돈을 밀어 올림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 것 같다. 최선의 지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은 할 수 없는 것이다.


2. 삼인방, 기성언론을 학습시키다.


<오마이뉴스>에서 관심을 갖고 계속적으로 보도하고 있듯이 이미 몇몇 중앙 언론사들도 우리에게 취재가 개시되었음을 알려오고 있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아 아쉽지만, 그래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이 사안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을 환영한다. 벌써 제주 지역언론들은 이전과 확연히 다른 관점으로 기사들이 나가고 있다.(오마이인터뷰)

상업이벤트에 들썩이는 대한민국
7대경관 선정하는 ‘뉴세븐원더스재단’ 실체와 상업마케팅
[0호] 2011년 04월 24일 (한종수, 제주도민일보)

질문 2-1. 오마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오마이뉴스 뿐 아니라 지역신문들, 심지어 가장 친자본적이고, 권력추수적인 중앙일보의 칼럼에서까지, '삼인방'의 문제제기가 영향을 준 흔적들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그런 기분 들지 않나?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다.

피타고라스 : 지금까지의 활동을 돌아보면 여러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을 한다. 뉴세븐원더스 재단과 제주7의 많은 문제점들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한 성과이다. 그리고 문제를 제기한 직후인 4월 초에 제주 지역 공무원들이 근무시간에 강제로 투표하는 문제에 눈에 띄는 개선이 있었고, 투표 활동을 봉사 활동으로 인정해준다는 학교 공문을 공개하면서 교육청의 입장 표명을 끌어내기도 하였다. 제주 지역의 학부모로부터 공문내용을 전달받고, 현장에 있는 공무원으로부터 직접 상황을 전해 들어가면서 문제를 파악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국제사기단을 일망타진한 수준의 결과는 커녕 제주7 문제가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까지 들지는 않는다. 보람을 느낀다고 하는 정도가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4월말에 어떤 공무원이 서귀포 지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자비를 들여 제주7 투표를 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한 설문조사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그래서 문건을 전달받아 공개했고, 이어 오마이뉴스에서 기사화되었다. 이 일은 복합적인 감정을 가져다 주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어이없는 지시에 거역하기 힘든 일선 공무원들에게 그래도 우리의 싸움이 힘이 되어줬구나 하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사안의 성격으로 보면 공익제보에 가까운 것으로 이것이 왜 언론이나 정치인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은 역시 화가 나고 서글픈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질문 2-2. 다만 '삼인방'이 취합해 정리한 자료들을 짜깁기에 한 것에 불과한 기사들이 많은 것은 아쉬움이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피타고라스 : 우리가 트위터 상에서 말하는 것들이 언론 기사를 통해서 공식화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언론에서 추진위원회와 제주관공서에 직접 내용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반론도 받으면서 사실 관계를 분명히 해준 부분들이 있다. 이 점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기사들이 애초에 내가 기대했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얘기해야 할 것 같다. 내가 기대했던 수준은 언론들이 가진 자원들을 활용해 우리가 단순히 파악하기 힘든 것들을 더 깊이 알아내는 것이었다. 언론에서 소개된 기사가 우리가 파악해서 알린 것들을 넘어서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삼인방이 문제제기를 시작했고 꾸준히 목소리를 열심히 내 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에 관해 남들보다 좋은 정보에 더 쉽게  접근할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삼인방이 제주7문제에 대하여 새로운 사실을 계속해서 먼저 알릴 수 있었던 점에는 인터넷이 가져온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반영되어 있다. 트위터가 없었더라면 애초에 문제를 알리는 일부터 상당히 막막했을 것이다. 트위터는 또한 제주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 (학부모와 공무원)과의 접촉을 매우 효율적으로 가능케 해주었다. 구글문서와 같은 협업도구는 문서의 신속한 작성과 공개에 활용되었다. 인터넷은 인도네시아나 몰디브에서 벌어지고 있는 뉴세븐원더스 관련 외신 기사를 확인하는 것에 있어서 개인이 언론에 비해 크게 불리한 위치에 있지 않도록 해준다. 유엔에 파트너쉽과 관련해서 공개된 이메일 주소를 이용해 유엔협력사무국에 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받은 것도, 큰 수고가 필요했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직접 현장의 제보를 받아 공개하고, 유엔에 직접 접촉하는 것과 같은 일들이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어쩌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공무원에게서 우리가 직접 정보를 전해 받는 과정이 여러 위험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취재원 보호와 같은 원칙들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잘못된 정보를 전달받는 경우 이중삼중의 체크를 한 다음 공개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유엔에 메일을 보내는 일도 기자가 언론 기관의 배경을 가지고 보내는 것과 문제에 대한 의문을 가진 개인으로서 보내는 것은 답변자의 자세와 책임감에 큰 영향을 준다.

기자들이 직업이 바로 이러한 일들에 훈련이 되어 있고 취재 과정에서도 권위를 가지며, 이러한 일들에 대한 대가로 보상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제주7 문제에는 언론의 직무유기가 분명히 있다. (질문 8에서 더 언급함) 최초의 문제 제기는 문제점을 먼저 포착한 삼인방이 하는 것이 가능해도,  그 이후 후속 보도와 심층 취재는 언론들이 이어받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3. 주체를 지우는 표현 “누리꾼”


'7대경관 경제효과' 1조3000억원이라더니...
[현장] N7W 제주선정기원 축제... 정운찬, 더이상 언급 안 해
(오마이뉴스, 최지용, 유성호, 11.04.24) http://bit.ly/gHZRLY

"뉴세븐원더스 재단은 그동안 유엔 협력사무국과 파트너 관계라고 주장해 왔지만 최근 누리꾼들에 의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위 기사 중에서)

질문 3. 위 기사뿐만 아니라 대부분 기사에서 삼인방은 ‘누리꾼’으로 통칭되고 있다. 그나마 삼인방을 소개하고 있는 기사들 역시 ‘유학생 수학도’ 내지는 ‘박사과정 유학생들’ 정도로 언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블로거가 어떤 언론의 특종을 인용함에 있어 언론사와 기자를 특정하지 않고 “최근 기자들은 ~~~라고 밝혔다”라고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전체 네티즌(누리꾼)들 혹은 대단히 많은 수의 네티즌들이 제주7을 반대하기 때문에 온라인 대표성을 내세워 그렇게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삼인방 활동이 "누리꾼"이라는 보통명사로 (특정되지 않고, 추상적으로) 지칭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피타고라스 : ‘누리꾼’ 이라는 표현에 특별히 문제 의식을 그렇게 느끼지는 않았다. 질문에서 지적한 오마이뉴스의 기사는 제주7과 관련한 후속기사로서 삼인방의 트위터 아이디가 소개된 기사 링크를 달고 있기 때문에, ‘누리꾼' 정도로 지칭해도 이 기사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오마이뉴스의 관련기사들은 우리의 트위터 아이디를 대부분 명시했다. (질문 4에 대한 답에 이와 관련 있는 문제의식이 등장함)


4. 링크 없는 온라인 & 네트워크의 거리  


"7대자연경관 N7W재단 UN 파트너 아냐"
한나라당 의원도 우려 "전화사기 아닌지?"
누리꾼들 UN 협력사무국으로부터 답변 받아... 공신력에 타격
(구영식, 오마이뉴스, 11.04.16) http://bit.ly/eFgcKw

제주도를 알리는 일이니 그만 까라고? 헐~! 사기 칠 때 나쁜 일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거 보셨습니까? 그 좋은 명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국제전화를 걸고 시간과 열정을 낭비했는지 아십니까? 세상에 한 나라의 총리까지 지낸 분이 범국민적으로 하시는 일이 고작 얄팍한 인터넷 사기에 넘어가는 것이라면 그게 제대로 된 나라입니까? 얼마나 나랏일을 허술하게 하고, 시스템이 천박했으면 이런 호들갑을 떨겠습니까? 단 돈 백 원을 쓰더라도 제대로 쓰게 해야죠. 이렇게라도 네티즌들이 하면 잘난 윗분들도 조금 더 고민하고 검토하면서 일들을 하시겠죠. 그래야 세금 낭비도 안 되고, 정부의 공신력도 높아지고요. un까지 이멜을 보내 확인하신 분들 자랑스럽습니다.
위 기사에 대한 댓글, 용산댁, http://bit.ly/hd4fq1  

'제주 7대 자연경관 선정 관련' 문건 작성... 트위터 등으로 공론화 시도
(구영식, 오마이뉴스, 11.04.02)
: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만, 본격적으로 '제주세븐 3인방'의 문제제기를 조명한 위 오마이뉴스는 1) 청와대 트위터와 블로거 '아임피터'의 글, 그리고 M7W재단 홈페이지와 인도인 블로거의 블로그 링크를 본문에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제주세븐 3인방'의 트위터 링크, 인용한 관련문건들의 출처는 전혀 링크 인용하고 있지 않다.

제주-세계7대자연경관 투표, 한남자의 사기극? (김민경 인턴, 머니투데이) http://bit.ly/gL9Bkm
: 위 머니투데이 김민경 기사를 보면 아임피터 블로그가 문제제기 진원지인 것처럼 쓰고, (아마도 전화) 인터뷰까지 인용하고 있다 (물론 아임피터의 참여는 반가운 것이지만).

백투더소스와 오마이 인터뷰  
백투더소스(블로거 capcold가 시작한 출처명시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스피노자의 사과나무>, 단테의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  (이 글 쓰는데 도움이 되었는데,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시민운동으로서의 백투더소스"란 글에서는 "한국처럼 익명 취재원을 마음껏 인용할 수 있는 언론의 폐해"을 지적하고, <백투더소스와 시민적덕성>에선 "식견 있는 시민(informed citizen)"을 강조했다.

질문 4. 삼인방 활동이 “자랑스럽다”고 밝힌 시민들은 ‘용산댁’만은 아니고, 마음으로 그런 응원을 보내는 시민은 참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관심과 성원에 보람을 느끼리라 본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이런 관심과 성원이 삼인방 활동과 연계하고, 실질적인 조력으로 이어지지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맥락에서 온라인 언론기사들이 삼인방 온라인 활동 근거지(트위터 주소나 블로그, 구글닥스 링크 등)조차도 제대로 소개하지 않는 점은 무척 아쉽다. 그건 말그대로 출처이면서 연결고리(링크)이기 때문이다. 특히 ‘백투더소스’ 활동에도 적극적인데 이런 언론의 행태는 문제 아닌가? 어떻게 생각하나?

피타고라스 : 일반적인 이야기 전에 언급한 기사들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하겠다.

(구영식, 오마이뉴스, 2011-4-2) 기사의 경우는 아마도 우리가 기자에게 직접 제공해준 정보가 이미 있었다는 점이 링크를 누락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삼인방의 구글문서와 같은 내용의 문서를 기자가 전달받았기 때문에 굳이 링크를 달 필요성을 못 느꼈을 수 있다. 기자에게 있어서 소스는 전달받은 문서이지 트위터 상의 구글 문서가 아닐 수 있다.

(김민경 인턴, 머니투데이, 2011-3-31)  기사를 보면 기자는 트위터가 아닌 아이엠피터의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접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엠피터의 글이 삼인방의 문서를 특별하게 소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자 입장에서는 우리의 존재를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사실 초기에 이 일이 널리 알려지고 이슈화되는데는 아이엠피터의 글의 역할이 컸다. 기자가 트위터를 통해 정보를 접하지 않았다면 아이엠피터가 최초로 문제 제기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고 본다.

온라인 언론들이 기사에서 다른 소스나 관련된 정보에 링크를 거는데 인색한 점에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종이 신문에 비하여 온라인 언론이 가진 장점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연결고리를 가진 기사는 독자로 하여금 기사를 더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게 해주고 풍요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몇 가지 원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훗날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염두에 두지 않는 일회용 기사라면 출처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내가 알 때 쓰고 말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하도 새로운 일이 빠르게 터지기 때문에 과거의 기사를 다시 돌아볼 여유도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를 개선하는데 어려움을 준다. 기록의 문화가 잊혀지고 억눌렸던 현대사의 경험들도 있었다. 기록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그것들을 활용하는데 더 익숙한 사회가 된다면 기사에 출처를 표시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개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알고 있는 내용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도 함께 전해주는 것에는 또 다른 미덕이 있다. 정보를 전달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과 평등하고 수평적인 위치에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더 배려 받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 이것은 민주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지적인 생산물에 대한 기여자에게 그 공을 명확히 밝히고 크레딧을 주는 문화가 아직 보편적으로 정착되지 않았는데 이러한 것들이 함께 개선되면 좋을 것이다.

덧붙여 얘기하자면 나의 경우엔  박사 과정 공부를 하면서 출처와 인용과 같은 문제의 중요성에 대하여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다. 학술 논문에는 거기에 담긴 결과들이 어떠한 기존의 성과에 기반하고 있는지가 참고 문헌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온 지식의 체계를 받아들이는데 매우 유용한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과거의 지식이 온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일이 가능해진다. 여러 세대의 수학자들이 계속해서 이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발견하고 잊고 재발견하는 일을 반복해왔다면 수학의 진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앞 세대에겐 최전선에 있었던 지식이 다음 세대에게 기초가 되었기 때문에 수학의 모습은 끊임없이 달라질 수 있었다.


5. 필립 코틀러


질문 5. 최근 범국민추진위의 항변논리는 필립 코틀러 교수의 책인 것 같다. 최지용/유성호 기자의 기사(24일자 오마이뉴스)를 보면 "세계 석학 필립 코틀러 교수는 저서에서 뉴세븐원더스의 7대 불가사의 이벤트를 국제관광 신장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소개하”면서, "2007년 새로운 세계7대 불가사의 선정을 통해 50억 달러의 경제효과를 창출했다"고 (아마도) 그의 책을 인용하는 부분이 나온다. 한종수 기자의 글(24일자 제주도민일보)에도 말미에 "'마케팅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립 코틀러..."라고 필립 코틀러를 인용한다. 필립 코틀러의 해당 저서가 무엇인가? 혹 그 저서 해당부분에 대한 검토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피타고라스 : 코틀러의 ‘Marketing: An Introduction’라는 책으로 두 페이지 가량 뉴세븐원더스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추진위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뉴세븐원더스의 홈페이지를 살피는 과정에서 가을들녘이 발견하여 나에게 알려준 적이 있었다. 유네스코의 문화유산 관리 정책이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만 가능한 형태임에 비해, 뉴세븐원더스의 활동은 그러한 자원 투입 없이도 매우 효율적인 방식으로 중요한 유산들에 큰 홍보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핵심적인 주장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코틀러의 주장에는 문제점들이 있다. 뉴세븐원더스의 활동이 문화유산의 보존에 기여하는가가 일단 매우 의문스럽다. 유네스코의 활동과 같은 선에서 놓고 비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홍보 효과가 컸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의 대부분은 뉴세븐원더스가 내놓은 자료에서 온 것이었다. 하지만 뉴세븐원더스의 자료는 전혀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삼인방이 작성하여 공개한 문서가 있고 계속 업데이트가 진행 중이다. 실현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뉴세븐원더스 자료의 문제점들에 대해 어느 정도 준비가 된 이후에는 코틀러에게도 질문을 던져 보자는 것도 하나의 안으로 가지고 있다.


6. 정보 인권 철저히 무시하는 권위적 행정 폐습


제주도, 공무원 가족 개인정보 강요… 왜?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임창준, 세계일보, 2011.03.08) http://bit.ly/g6aKyr

“세계 7대 경관 이유로 도민 개인정보까지 수집하나” 반발
전공노 제주시.서귀포시지부 9일 “도청, 도민 사생활 유린” 성토
(제주의 소리, 김봉현, 2011.03.09) http://bit.ly/eOmOnm

‘제주 7대 경관 투표’ 道는 뭐하나… (세계일보, 임창준, 2011.03.31) http://bit.ly/gaKzS8
: 공무원 수 많은 제주'도' 보다 공무원이 적은 제주'시'와 서귀포'시'에서 공무원 전화투표 성과가 좋다며, 제주'도'는 각성하라는 기사.

질문 6. 비교적 사태 초기 기사 중에서 '제주도청이 공무원을 상대로 가족 개인정보를 강요한 모습은 전근대적 국가주의의 유산, 권위주의적 행정 폐습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더불어 도청의 ‘분발’을 독려하는 기사는 이런 권위주의적 행정 폐습의 관성에서 가능한 기사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생각하나?  

피타고라스 : 전근대적 국가주의의 유산은 여러 장면에서 보여진다.

공무원들의 가족들에게 투표를 요구하고 확인까지 받아오라고 한 것은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공무원들의 행정전화 투표를 문제 삼으니 나중에는 공무원들의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반강제적인 투표를 끌어내려 했다. 당연한 것이지만 공무원 가족은 공무원이 아니다. 그리고 공무원도 집에 가면 자유로운 개인으로, 휴대전화를 어디다 어떻게 쓸 것인지는 전혀 정부에서 간섭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행정기관이 공과 사를 혼동하여 공무원의 사생활에 개입하려 한 문제도 있고, 개인정보의 보호와 같은 문제에 대한 감수성도 아직 보편화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중앙 언론도 마찬가지였지만 대다수의 제주 지역 온라인 언론들은 제주7 문제에 대하여 비판적인 의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오는 기사의 수준을 보면 행정기관의 입장을 전달하는 홍보 수단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것은 도저히 정부와 언론의 건전한 긴장 관계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제주 지역 언론 생태계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행정의 책임자들이 여전히 제주7과 같은 인기투표 수준의 문제에 행정력이나 세금같은 공적인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아쉽지만 현실인 것 같다. 그나마 공무원들이 행정전화를 이용하여 제주7 투표를 하는데 행정력과 세금을 낭비하는 것은 언론에서 보도된 이후 많이 개선되었다. 언론이 비판적인 보도를 하면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애국심에 호소하며 제주7 투표에의 동참을 호소하는 모습들에서 제주7에서의 승리를 한국 선수가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하는 것과 비슷하게 여기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식민지 시대를 겪고 전쟁을 겪은 이후 자부심을 느낄 것이 부족했던 현대사의 경험, 현실의 불만족을 엘리트 체육에서의 승리로 달래려 했던 권위주의 정부의 전략이 관성으로 남아 계속되고 비슷하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 생각한다.

전화투표를 열심히 해서 세계적인 경관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관주도의 투표 결과로 자연경관 1위가 된다고 해도 그 결과로부터 도저히 자부심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메달 획득을 목표로 선수가 흘린 땀과 같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전혀 찾아볼 수도 없다. 근거를 가지고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제주도의 고위 정치인들이 현안 문제(해군 기지 건설 등)에 대한 논의를 일정 부분 덮는 수단으로 활용한 측면은 없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7. 최초의 언론보도 : 2008년 12월 4일


제주, ‘세계7대 자연경관’ 이름 올릴 수 있을까?
제주관광공사,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 위한 전략수립…“일단은 투표 참여부터”
(제주의 소리, 좌용철, 2008.12.04) http://bit.ly/i6kuLJ
: 제주관광공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받아쓰기 기사.

'제주-세계7대자연경관선정범국민추진위원회' 개소식
(연합뉴스 송고, 네이버 뉴스, 2010-12-13)   http://bit.ly/gjvfsJ

질문 7. 2008년 12월과 2010년 12월에는 주로 뭘 하면서 지냈나? ^ ^ 혹시라도 이런 일에 말려들(?)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

피타고라스 : 질문의 성격상 가볍게 답한다. 2008년 12월이라면 스프링노트에 ‘시민민주주의를 위한 정치개혁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도 했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봉하마을의 노무현 대통령 팀과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인지 희망에 찬 모색도 진행되던 때였다. 2010년 12월은 특별할 것 없는 박사과정 대학원생의 일상이었다.


8.  아쉬운 한겨레와  경향

제주 ‘세계 7대 경관’ 향해 뛴다
범도민추진위 출범…스위스 비영리단체가 선정 주관
후보 28곳에 들어…내년 11월까지 전화•인터넷 투표 (한겨레, 허호준,  2010-12-31)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456580.html  : 단편적인 보도자료 받아쓰기 기사인 듯.

[트위터브리핑] 나라 체면 살리는 온 국민의 클릭질? (한겨레, 김외현, 2011-03-31)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70862.html  
: 웬 클릭질? 온라인 투표는 한 번밖에 못하고, 뉴세븐원더스에서는 돈 되는(!) 전화투표를 강하게 유도한 것으로 보이는 점에서, 전화유도에 관한 언급이 없는 점은 기초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부실한 취재에서 비롯한 듯 하다.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도 좋지만…제주도, 공무원 동원 전화투표 409만여건
지난달만 310만건 넘어…1인당 평균 678번 투표한셈
교육청선 학교별 실적 게시…“관 주도 지나쳐” 비판 (한겨레, 허호준, 2011-04-14)  
: 단편적인 사실, 의견(인용) 전달에 그친 기사.
 
제주 세계7대 자연경관 투표, 문자로도 가능
(경향, 강홍균, 2011.3.29.)
http://bit.ly/hQh37S  
: "70초라는 긴 투표시간으로 인해 투표율이 48%..."이라는 문구는 기사를 작성하면서 비판적 관점도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무비판적 언론보도행태의 경계로 삼을 만한 아쉬운 기사.

질문 8. 한겨레나 경향의 관련 기사들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오마이뉴스를 제외한 소위 ‘진보언론’(가령 프레시안과 미디어오늘)에서는 제주7에 별 관심이 없거나, 수수방관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판단하나? 의견 전달 노력 등을 기울인 적 있는지도 궁금하다.

피타고라스 : 그 언론들에 직접적으로 의견 전달 노력을 하지는 않았지만, 트위터를 통해 우리가 말하는 것들이 충분히 해당언론사의 몇몇 기자들에게까지 전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사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언론사 입장에서 이 일이 큰 비중이 있는 일이 아니라고 보고 적극적인 취재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봐도 이 문제가 엄청나게 중차대한 것도 아니고 큰 뉴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훨씬 중요한 일들이 하루가 멀게 터져 나오는 곳이 한국이 아닌가.

그러나 한겨레나 경향이나 제주7 투표에 참여하라는 홍보용 보도자료 받아쓰기에 가담했다는 점을 명확히 지적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제주7 사업이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고 확장되는데 그들도 기여를 했으며 분명한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인방의 문제제기 이후에 별다른 취재 노력이 없다는 것을 보면 이들이 매우 무책임하다는 것을 느낀다. 제주7처럼 별 갈등 요소도 없어 보이는 일에 홍보성 보도자료를 베껴 기사화 하는 일은 별로 힘도 안들고 크게 손해볼 일도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겪으며 그들에 대한 신뢰를 많이 거두게 된다.  

9. 제주7의 오적(五賊)

질문 9. 김지하의 오적에 빗대어 보자. 제주7이 삼인방 주장 처럼 ‘국력과 세금 낭비’에 불과하고,야바위꾼에게 국가 전체가 놀아난 것이라고 판명된다면, 그 가장 큰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판단하나? 재미 삼아(물론 현재 상황이 재밌는 상황은 아니지만..;;;) 다섯 명(혹은 단체)만 뽑아본다면? 그리고 간단한 선정 이유도 덧붙여주면 좋겠다.

피타고라스 : 우근민, 제주 지사로서 제주7 사업이 커지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고, 제주 공무원 사회가 제주7 투표로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하는데 크게 책임이 있다. 기사화된 발언을 통해 보면 사업에 대한 문제 의식도 없는 것으로 보이며, 사실 관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확신에 찬 발언을 거침없이 하는 위험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정운찬, 전직 총리 명함을 가지고 제주-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아 제주7 사업이 확대되는데 이름값을 했다. 공적인 자원인 전직 총리 명함의 무게를 너무나 값싸게 팔아먹었다.
정병국, 문화부 장관으로서 제주7 이 제주를 벗어나 중앙정부가 관여하는 ‘국가아젠다’로 격상시키는데 기여했다.
이명박, 자신도 제주7에 투표했다며 매우 중요한 홍보 역할을 수행했고, 부인 김윤옥 여사는 ‘범국민추진위원회'의 명예위원장을 맡아 뉴세븐원더스의 홈페이지 대문 화면을 빛내 주었다.
천정배, 민주당 세계 7대 자연경관 제주선정위원장”을 맡아 야당이 이번 일에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문제를 제기하니 심층 검토했으며 계속 추진하겠다는 발언을 하여 이번 일이 장기전이 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10. 앞으로의 활동 계획

개인들의 네트워크가 곧 언론인 시대가 거의 다 왔죠 이제...

“다들 고깝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그냥 뒤에서만 호박씨 까는 사회. 이런 거 정말 지긋지긋 하지도 않은 걸까.” (피타의 창, 우리에겐 직접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질문 10-1. 앞으로 삼인방의 활동 계획은?

피타고라스 : 7대자연경관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계속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의견개진을 할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구글문서를 통해 작성한 자료들을 트위터를 통해 공개하고 구글사이트에서 축적하는 것에 더해 블로그 활용을 늘릴 것이다. 하나둘씩 쌓이고 있는 영문 자료를 통해 싸움의 무대를 서서히 넓힐 생각도 하고 있다. 개인들의 네트워크로 언론보다는 문제점을 알리는 시민운동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질문 10–2. 2007년 1월, “우리에겐 직접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블로그에 썼다. 여전히 그 믿음은 유효한가?

피타고라스 : 2부의 질문 2-1과 비슷한 점이 있으므로 뒤에서 답하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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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2011/05/19 07:23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이명박 후보)

"엄청난 검증의 쓰나미가 몰아 닥칠 것입니다."(박근혜 후보)

- 2007년 8월 5일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경선 광주합동연설회(광주 구동체육관) 중에서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살짝 떴다가 잠잠해진 것으로 보이는 이 정치적 유행어는 이중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하나는 물론 당사자의 발언 취지처럼 대통령 후보 경선 시절 자신에 대한 음해(?)가 거짓이라는 항변일테다. 다른 하나는, 이게 참 묘한 울림을 주는데, "이거 다 ( = 지금 제가 하는 말까지 포함해서, 아니 그것을 적극적으로 포함해서 모두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처럼 들린다. 즉, 자신이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강변처럼 들린다. MB 치하에서 겪은 체험적 맥락이 겹쳐져서 더 그렇게 들리나보다.

정치가 바로 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언어 투명성의 실종이다. 말은 그 자체로 맥락이지만, 현실의 맥락이 말의 맥락을 복잡하게 만들어놓는다. 말이 말로 서지 못하고, 이율배반의 맥락들은 중층적으로 의미들에 겹쳐지고, 그 의미를 교란시킨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의 거리는 극단적으로 벌어진다. 말은 있되 의미는 사라지고, 선언은 있되 행동은 없다.

자기가 자신에게 면죄부를 부여한다. 나는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 왜냐하면 나는 "이게 다 거짓말"이라고 선언했으니까. 거짓말을 이미 밝히고 스스로 용서(?)받았으니까 나는 거짓말 해도 돼. 거짓을 당당히 선언하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방식을 우리는 흔히 뻔뻔함이라고 부른다. "부끄러운 줄" 모른다. 그게 한국정치 메뉴얼 1장 1절이다.

잠깐 웃자고 쓴 글이지만, 한 정치인의 발언이 이토록 배반적인 울림으로 다가온다는 현실 자체가, 코믹스럽다기 보다는 공포스럽다.


* 관련 영상
MBC 보도 (원출처인 듯)
활용 버전 (축약형)
레이디 가카 포커 페이크 버전 : 이거 참 재치있다. : )


* 관련 추천글
오매와 오오미 : 정치와 말 (엔디. endy)


* 발아점
가카의 이 절실한 외침을 흘려들어선 안된다 http://goo.gl/0PRH



어느 봄밤

2011/05/18 03:08
아버지 제사를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판에서 나물이며 야채를 파는 초로의 아주머니께서 아주 늦은 밥, 맨밥에 김치 반찬, 드시는 모습을 봤다. 너무 쓸쓸해서 심장이 터져버리는 것 같은 순간들. 달려가서 손잡고 싶은. 그저 바라보고, 옆에 있어주고 싶은 순간들. 하지만 영원히 잡을 수 없을 저 갈라진 손, 아무리 용기내도 도저히 마주칠 수 없을 것 같은 저 눈동자. 거기엔 내 유년의 어미가 있다.

봄밤. 아이폰에 담긴 음악들. 레이디 가가가 좋을 때도 있고, 크렌베리스가 좋을 때도 있다. 오늘은 유키 구라모토가 참 좋다. 레이디가 나오면 짧게 두번 누른다. 다시 유키. 음악 속으로 들어가니 세상이 한없이 한없이 아름답게 부질없다. 황학동의 낡은 거리를 걸으면서 갈아진 것, 상처난 것, 해어지고, 낡아빠진 것들을 떠올렸다. 어떤 얼굴, 어떤 눈동자. 나와 같고, 나와 다른 사람들.. 그리고 한 번, 한 번만 부여 안고 휘이 돌고 싶은... 그 아이도 떠올랐다.

Almost Famous(2000.카메론 크로우)는 놀랄만한 걸작은 아니지만 사랑스러운 걸작이다. 조숙한 열 다섯 살 소년의 통과의례에 관한 이 영화는 문득 떠나는 소풍같은 들뜸의 판타지 속에서 그 환상의 껍질이 벗겨지는 순간의 아픔을 그린다. 마치 오래된 일기의 추억을 회상하듯 그 아픔은 따뜻하다. 그리고 어느새 소년은 남자가 된다.

#. 주인공 윌리엄 밀러와 그의 멘토 레스터 뱅스의 통화

레스터 : 우린 쿨하지 않으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여자가 늘 문제지만, 대부분의 위대한 예술은 바로 그 문제를 다루지. 잘생긴 사람들은 알맹이가 없고, 그들의 예술은 오래 가지 못해. 뭐, 결국 걔네들이 여자를 얻겠지만, 우린 더 똑똑하잖아!

윌리엄 : 네, 이제 분명히 알겠어요.

레스터 : 위대한 예술은 죄책감과 갈망, 섹스로 가장한 사랑, 사랑으로 가장한 섹스에 대한 거니까. 인정하자. 이제 실마리를 잡았지?

윌리엄 : 집에 계셔서 다행이예요

레스터 : 난 늘 집에 있어. 난 쿨하지 않으니까

윌리엄 : 저도요 ㅡ.ㅡ;

레스터 : 넌 잘하고 있어. 이 부도 맞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통용되는 통화는 니가 안 멋질 때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바로 그거야. 내가 너에게 조언하고 싶은건, 니가 그들을 친구로 생각하는 건 알겠지만, 니가 정말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다면, 정직하고, 무자비해야 돼

블로깅은 가장 소박한 자기 위로다. 내가 너무 불쌍해서 못 살겠어. 내가 너무 잘난 사람이라서 쓰는게 아니라 내가 너무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이라서, 부족한 사람이라서, 따뜻하고 싶어서, 그걸 쓰는거다. 그 자기 위로는 나와 당신에 대한, 우리에 대한 연민에 다름 아니다. 그 연민이 공동체적인 상상력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서로의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것, 그게 우리들의 블로그에 기대하는 내 작은 바람이다. 요즘은 너무 속도에 치여 거대하고, 복잡한 쳇바퀴의 작은 톱니가 되어가는 기분이랄까...

트위터에서 한시간 남짓 아주 쓸데없는 싸움의 공방들을 읽었다. 쓸데없다. 자주 있는 시간낭비이긴 하다. 그리고 나는 시간낭비에 대해선 전문가니까. 죽은 사람의 말들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니.. 어처구니 없다. 칸트건 헤겔이건 마르크스건 지라르건 지금 여기의 삶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다. 사유 그 자체의 논리적 완결성을 위해 자족적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다. 당신과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야 하는, 당신이 바라보기엔 무지하고, 감정적이며, 어리숙한 그 사람들을 위해서 죽은 자의 말들은 존재한다.

인간을 좀더 풍성하게 느끼고, 삶을 좀더 입체적으로 헤아릴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하는 글이라면, 말이라면, 사상이라면, 그건 도대체 뭘까. 반지성주의를 탓하기 전에 그 죽은 이의 말들이 여전히 살아 숨쉬게 한 그 정신이라는 것의 본체가 뭔지, 그것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건 뭔지, 생각했으면 좋겠다. 만약에 마르크스가 한국어를 쓰는 블로거였다면, 그랬다면 네이버에서 블로깅하고 있었을까? 그것부터 생각해보는게 사회주의자 1만 서명을 위한 첫걸음일 것 같다. 자신이 블로거이면서, 자신이 발딛고 있는 블로깅의 토대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는 건 죽은 자의 위대한 말뿐이다. 그러면서 사회의 토대를, 제도와 문화를 이야기한다. 그 영민한 청년들의 독선이... 아쉽다.


*  
이 글은 주낙현 신부님 때문에 쓰는 글이다.
주신부님께서 블로그에 글 너무 안쓴다고 하셔서...
주신부님, 항상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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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머즈님 트윗 소개로 조용필 노래를 오랜만에 들었는데,
예전엔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