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반쯤 닫힌 웹"의 "월드 가든"에서 블로깅한다는 것의 의미

어제 새벽, 아니 정확히는 오늘 새벽 리수령에게 전화가 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 그 대화를 발아점 삼아 이런저런 상념들을 정리해본다.

1. "반쯤 닫힌 웹" (크리스 앤더슨)  
[와이어드](Wired)의 크리스 앤더슨이 "웹은 죽었다"고 선언 하면서 했다는 소리. 예전에 관련글 몇 개를 읽긴 했는데, 크리스 앤더슨이 뭐라고 이야기했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나를 둘러싼 웹의 공기들을 어떻게 느끼고, 판단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관련 추천글 : '웹 사망선언' 비판 )

"실시간 메시지 릴레이"(아거) 서비스는 '트위터'로 수렴된다. 오프라인을 온라인에 완전하게 '이식'하려는 '페이스북'은 전 지구를 집어 삼킬 기세로 의식과 연계된 거의 모든 상품시장 영역에 침투한다. 그리고 이제 블로그는 그 모든 잠재력들을 무기력하게 빼앗겨가고 있는 것 같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아니, 생성하느냐, 소멸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2. 웹이라는 개방형 플랫폼에서 거대 서비스 매개 플랫폼으로 
1) 트위터, 감당할 수 없는 노이즈, 그리고 소통의 환상
개방적인 API 정책. 각종의 다양한 위성들(클라이언트 서비스)을 거느리며 거대한 트위터계를 구성한다. 하지만 검색은 취약하다. 이것은 의도적이다. 또 장단점이 있다. 떠오르는 단상들과 쏟아지는 뉴스들을 마치 나이아가라처럼 흘려보내는 트위터. 그 일상적 잡담과 예외적 통찰, 그리고 쏟아지는 뉴스의 흐름 속에서 트위터는 '회고적 기록매체'인 블로그와는 다르게 생동하는 삶의 편린들을 마치 길거리의 바람처럼 느끼는 매체다. 아거가, 굳이 거칠게 이분하여, 트위터를 '감성적 매체'라고 평가하고, 블로그를 '지적인 매체'로 평가하는 건 이런 의미다.

트위터는 파편화된 의식들이 모아진 거대한 조각들의 집합이고, 흐름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집합으로서의 흐름을 조율할 수 있는 조정자, 모더레이터(moderator)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보완할 트위터 검색엔진(Topsy) 혹은 트위터 콘텐츠 편집 클라이언트 서비스들(TweetMix 등)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그 흐름을 개개 사용자들이 스스로 조율할 수는 없다. 이건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한국적인 상황을 들여다보자. 세속화된 비교경쟁의 강박은 소위 '맞팔'이라는 병맛스런 유행을 파생시킨다. 이 병맛 문화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실질적인 커뮤니케이션 밀도가 급속하게 낮아진다. 그런 지배적 흐름 속에서 '배우'와 '관객'의 이분화된 관극틀(링크된 글의 추신 참조)이 강화된다.

개개의 인간이 갖는 지적 능력(관심)을 분배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상한선은 그렇게 높지 않다. 그 절대적인 숫자가 존재한다. 그 숫자는 아무리 뛰어난 뇌구조를 갖고, 아무리 '리스트' 기능을 잘 활용하더라도 대체로 100명을 넘지 못한다. 나머지는 허수다. 그 허수를 위해, 혹은 그런 허수가 되기 위해 재잘거린다. 아무도 당신의 트윗을 거들떠보지 않는 구조로, 그런 매커니즘으로 트위터는 '진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트위터에서 재잘거리는 의미는 뭐냐고? 대부분은 극소수 '배우'를 위해 존재하는 철저하게 수동화된 관객으로, 우리가 숭상하는 '숫자'들을 채우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당신은 트위터에서 "나 소통하러 왔으니 내 얘기 좀 들어달라고 계속 말을 건다". 하지만 당신을 위해 귀를 기울여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사라져간다. 왜냐구? 당신은 듣기 위해 오지 않고, 일방적으로 들어달라고, 보채기 위해 왔으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노이즈가 점점 더 압도적으로 당신의 의식을 잠식하고, 교란하는 방향으로 트위터는 나아간다.  

"자신의 생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진짜 소통을 원하고 있는데도 본체만체 들은체 만체 계속 겉돌고만 있다. 그러면서 정작 초대받지 않은 트위터 같은 공간에는 어떻게든 끼어보겠다고 머리를 들이민다. 나 소통하러 왔으니 내 얘기좀 들어달라고 계속 말을 건다."
- 아거, 아이폰과 침묵의 소용돌이 중에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트위터에서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형들은 '시민'으로서의 '우리'가 아니다. 관습화된 기성세계의 명망가들, 자신의 온라인 진지를 구축한 블로거들, 바이럴 마케팅의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 잔머리 굴리는 각종 마케터들, 사진 찍기 좋아하는 아리따운 여자들 뿐이다. 그러니 트위터는 웹 거주민의 잠재력, 그 생동하는 일상의 에너지들을 잠식하는 패턴을 쫓고 있다. 여기에 시민은 없다. 여기에 네티즌은 없다. 온통 나 좀 봐달라는 병맛 문화와 소통하고 있다는 착각들, 그런 제스처들만 만발한다.

이런 지배적인 패턴들, 통속적 문화 흐름 속에서 트위터의 긍정적인 가능성들은 사라진다. 작은 목소리들이 의미있는 관심들로 피어나고, 그 작은 목소리가 '집단지성' 필터링을 통해 전혀 새로운 아젠다 세팅 역량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든다. 트위터는 오히려 기성 미디어의 목소리를 단순하게 확대 유통해주는 공간, '이미 결정된' 아젠다 세팅을 확대 변주하는 공간으로 그 의미가 한정되고, 가능성이 축소된다.

"특정 분야의 전문 논객 역할을 하면서 빼곡한 텍스트 사이로 수많은 인라인 링크를 거는 블로거들과는 달리, 진입장벽이 낮고 전달할 수 있는 말이 제한된 트위터상에서 사용자들은 기본적으로 기존 매체에 대한 링크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논평보다는 링크가 생명이 된다. 링크도 한 트윗에 한 개가 기본이다. 매우 기존 매체 친화적인 시스템이다. 미국의 주요 매체들은 이제 트위터와 유튜브를 통한 컨텐츠 교차 홍보가 자신들의 트래픽의 젖줄이 되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파악했다."
- 아거, 누구의 튜브? 중에서


2) 가두리 양식장의 세계화 : "페이스북은 월드 가든"(팀 버너스-리)
"페이스북은 객체(주: 개체)로서 서로 통신하는 구조를 가진 인터넷을 잠식해가는 단일 플랫폼 서비스..."
- 써머즈, 짧게: 페이스북의 새로운 메시징 시스템 설명을 듣고

"페이스북은 '월드 가든'(Walled Garden)" 어제 인주찾기 회의에서 강정수가 전해준 이야기. 웹의 아버지 팀 버너스-리가 페이스북에 대해 쓴소리를 했단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페이스북은 가두리 양식장".


3) 아이폰 1년, 아이폰이 우리에 준 선물
강정수의 바람처럼 "제2, 제3의 The 나은 프로젝트가 시작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1970년대 장 뤽 고다르는 자신의 모든 영화를 비디오 테이프로 배급하겠다고 선언했다. 누벨바그라는 거대한 프랑스 영화 사조를 이끈 이 혁신적인 감독은, 지금 식으로 이야기하면, 아이폰 내장 캠코더를 통해 영화를 찍고, 그 영화를 자신의 블로그나 아이튠즈, 혹은 유튜브나 블립, 비메오 등에 올려 직접 소비자에게 배급하겠다고 선언했던 셈이다.  물론 그 실험은 실패했다.

미셸 공드리의 [비 카인드 리와인드](Be Kind Rewind. 2009)는 거대 유통권력이 지배하는 저작권 체제 하에서 일상 속의 창작이 어떻게 무참하게 패배할 수 밖에 없는지를 동화적인 감수성으로 그려낸다. 온갖 기성영화들을 자기식으로 재해석해서 만드는 '비디오 가게 루저들'이 어떻게 그 엉성한 영화들로 마을 공동체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지, 그리고 그 공동체적인 가능성이 어떻게 거대 기업과 그 기업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저작권 시스템을 통해 초토화되는지를 한편으론 따뜻하게, 또 한편으론 가슴 아프게 그려낸다.

다시 우리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지금 손바닥에 HD가 지원되는 캠코더를 하나씩 들고 다닌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정말 상전벽해의 변화다. 10년이라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스마트폰 내장 캠코더를 통해 고다르의 실험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 공드리 영화의 슬픈 엔딩을 해피 엔딩으로 바꿔낼 수 있을까? 기대할 수는 있지만 전망이 밝지는 않다. 강정수는 의도적으로 희망 섞인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지만, 아이폰과 안드로이드가 지배할 모바일 환경은 여전히 크리스 앤더슨이 이야기하는 "반쯤 닫힌 웹"의 조건 속에서, 단일 단말기와 그 단말기에 호응한 단일한 플랫폼(아이튠즈 등)에 의해 유통될 것이 뻔하다.

이것이 잘못이라는 게 아니다. 이것이 부정적인 파국을 예정하고 있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그 유통망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콘텐츠는 [비 카인드 리와인드]에서 만들어내는 소박한 동영상, '더나은 프로젝트'에서 만들어내는 "기계치 민노씨"의 동영상일 확률보다는 거대 기성 콘텐츠 제작자들의 화려하고, 쌔끈한 콘텐츠일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그리고 그 화려한 엔터테인먼트 상품들, 각종의 (소셜) 게임들은 압도적으로 새로운 유통시장을 채워갈 것이고, 절대 다수의 소비자들은 그 문화코드에 익숙해질 것이다.

의미 향유자들이 스스로 의미 생산자가 되지 못하면, 자신들의 독립적인 기반을 산업적 '토대'로서, 문화적 '토양'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러니 강정수가 이야기하는 "제2, 제3의 더나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수천, 수만의 '더나은 프로젝트'가 만들어지지 못하면, 의미 유통 시장의 문화적인 경향은 수동적인 상품소비를 구조화하는 방향으로, 좀더 자극적이고, 좀더 현란한 프로페셔널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강정수 식으로 말하면, "우리가 우리를 살찌우는" 그런 기술과 제도의 결합, 문화적인 토양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새로운 방식의 문화 식민지가 펼쳐질 것이 뻔해 보인다.

그것은 아거가, 닐 포스트만을 인용하며 염려했던, 적극적인 자기 순응화를 통한 지배 매커니즘이다.

"헉슬리가 Brave New World Revisited 에서 언급했듯이, 오웰의 1984에서는 사람들이 지독한 고통에 의해 통제될 것이라고 보았지만, Brave New World에서는 지독스러운 쾌락에 의해 통제될 것으로 보았다. 간략히 말해, 오웰이 두려워 했던 것은 우리가 증오하는 것들이 우리를 지배할 것을 두려워 한 반면, 헉슬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망칠 것을 두려워했다"
- 아거, 닐 포스트만의 타계에 부쳐


3. 다시 블로그로!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고? 다시 블로그로 돌아와야 한다. 강정수가 지적했듯, 트위터를 하건, 페이스북을 하건, 온라인 실존의 근거지로서 블로그를 갖고 있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는 정말 다른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득세로 아무도 찾지 않는 곳으로 블로그가 남게 되더라도, 그렇게 외로운 웹의 베이스캠프로 남더라도, 자신의 독립적인 온라인 실존을 구축하려면, 당신은 결국 블로깅을 해야 한다.

왜냐구? 현재 블로그를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미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독립적인 온라인 실존의 기반으로서 블로그를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블로그를 대체할 수 없다.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블로그는 자기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자기 완결적 시스템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아무리 진화하더라도, 아무리 커다란 즐거움을 주더라도, 그 공간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각 서비스사의 정책에 의해 결정되어질 공간이다.

가정해보자.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블로그를 '어쨌든' 대체하는 순간, 20세기 말에 시작된 웹 미디어 혁명은 완전히 종식된다. 그게 어떤 의미냐구? 인류가 이전까지 가져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창작 /소비/유통 시스템', 그 대화 시스템의 정치적, 문화적 잠재력이 완전히 소멸한다는 이야기다. 창작과 소비를 겸한 프로슈밍 공간으로서의 블로깅에 내재된  잠재력이 완전하게 '특정' 서비스에 편입되어, 다시 특정 소수의 머리 속에서 디자인 된다는 이야기다. 블로그에 기반한 지극히 평범하지만, 창조적인 실험이 종식되면 남는 건, 자신이 만들어내는 의미, 소비하는 의미가 어떤 의도에 의해 '디자인 되고' 있는지도 느낄 수 없는, 그렇게 평균화되고, 순응화된 개체들이다.


* 이 글은 어떤 공동 프로젝트에 넣을까 싶어 쓴 초안인데 역시나 정리가 안된다..(엉성, 난잡..;;;)
특히 페이스북은 체험치가 너무 낮아서...
너무 부정적인 어감으로 쓴 것 같기도 한데...
나중에 기회되면 대안과 가능성을 좀더 강조해서 이어 쓸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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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소셜미디어 정보 공유에 대한 잡설

    Tracked from Sociable Blog 2010/11/26 09:06 del.

    소셜미디어 채널과 유용한 정보의 신문기사, 하루에도 무수한 정보에 접하는 요즘, 문득, 이 정보를 내가 소비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소화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때가 있다. 어쩌면 의구심이 든다는 것 자체가 그 무수한 정보들을 앞에서 나만의 생각이 자리잡게 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지 싶다. 특히 PR 필드가 다변화 하고 있는 이시점 소셜미디어를 통해 개인이 만들어 둔 트렌드나 PR관련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무의식적...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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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퍼렁어 2010/11/26 01:37

    도리도리.. 그건 아니라능 빵이없으면 과자를 먹으라는 명박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은 빵도 먹고싶어 하고 과자도 먹고싶어 하는게 인지 상정임.. 문제는 우리는 빵은 지겹게 먹었지만 과자는 별로 먹고 크지 못한거임... 뭐 비비꼬아서 이야기는 여기까지하고 그대로 이야기 하자면 결론은 우리는 혼자 너무 혼자 아무도 모르고 살을 맞대고 즐겁게 자라지 못해서 그런거라능 어릴때 부비부비 하고 자란 어르신들이야 그 감수성이 남아 지금 세상에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힘을 얻겠으나 지금의 청춘은 부비부비할 그 감수성 어린 시절이 거의 없거나 아예없다능 그래서 블로그 보단 트위터가 더 신기한거라능 블로그는 이미 자아가 생성된 이후부터 대입때까지 지겹게 일기장에 써놓았을거라능 (지식적으로가 아닌 감성적으로) 그런데 거기다 다시 일기장이 중요해 라고 해봐야 어린시절 그추억만 생겨날뿐... 이럴땐 차라리 좀더 부비고 타인과 동등해지려는 (혹은 그렇게 느낄수 있게 하는) 부분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능 겉으로는 (배운바대로) 동등한 시민이고 친구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는 현실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나는 판단한다능 따라서 트위터에서 블로그로 회귀 보다는 트위터를 더 트위터 답게라고 말하고 싶다능 (물론 블로그도 중요하지만) 이만 잡설을 끄덕거리고 돌아갑니다. (흙 이거 내 블로그 포스팅 보다 더 긴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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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11/26 06:42

      시퍼렁어님 덕분에 무플 면하네요. :)

      시퍼렁어님 말씀도 참 일리가 있는 말씀인데요. 제가 좀 갸우뚱하는 것은 트위터의 '접촉감'(?)이 과연 시퍼렁어님께서 기대(?)하는 그런 인간적인 친밀감, 공동체적인(?) 감수성을 불러올 수 있는 매커니즘으로 운동하고 있는가...라는 점입니다. 저는 제스처에 훨씬 더 가깝거나, 시퍼렁어님 말씀처럼 신기한(?) 유행 편승에 훨씬 더 가깝지 않나 싶어요. 제가 예전에 '트위터와 소통강박증'이란 글을 쓴 이유도 그런 이유구요. ( http://minoci.net/1117 )

      더불어 승환씨가 쓴 글('우려되는 트위터 사회')의 몇몇 지적과 인용들은 음미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 http://www.realfactory.net/1339 )

    • 시퍼렁어 2010/11/26 15:40

      신기한 유행 강박증에선 이제 좀 벗어난듯 싶은데요.. (아니 내 팔로우 리스트만 그런건지도 몰라... 으헝헝) 어쨌든 제가 하는 트윗은 블로그 보다는 훨씬더 접촉이 느껴지는 그런 상황이라서 그렇게 말씀드렸을뿐... 다른사람들은 다르긴 하겠죠 뭐 김주하나 이외수 따위와 노닥거리고 싶어하는 족속들은 (대책없이 비난하고 헐뜯고있다.. ㅠㅠ)

    • 민노씨 2010/11/26 18:53

      가장 중요한 문제는 '관심/시간/여가'의 기회비용입니다.
      아거님 말씀을 빌자면, 매체소비(시간)의 상대적 불변원칙이 여전히 지배할 것이 분명한데, 대다수 온라인 실존의 독립적 근거지를 갖지 못한 '트위터러'와 '페북시민'들은 결국 거대 서비스의 매커니즘 속에서 '자발적 통제상태'에 빠질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블로깅도 하고, 페북도 하고, 트위팅까지 할 '시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시퍼렁어 2010/11/27 22:00

      뭐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all or not 이라고 봐요 사실 무언갈 하는데 가장 시간이 많이 드는곳은 블로그인데 우습게도 가장 많이 쓰는게 트위터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할순 있겠지만 그건 제생각이지만 고치려 해서도 안되고 분노해서도 안되는게 아닐까 싶네요.. 스스로 자문하고 판단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강제하지 않아야 하는게 순리니까요 (뭐 그런점에서 저는 슬슬 악당이 될 준비중인지라..)

    • 민노씨 2010/11/28 13:41

      제가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센터 상담 소비자처럼 느껴졌어요? ^ ^;
      트위터를 쓰건, 블로그를 쓰건 그 자율성을 전적으로 존중합니다.
      어떤 행위를 '교정'("고치려"?) 하려는 거 굉장히 싫어해요.
      누군가 저에게 그러는 것도 싫고, 제가 다른 분들께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싫습니다.
      다만 제 서툰 기준으로나마, 어떤 특정한 개인들이 이나라, 어떤 행위 유형들에 대해서 비평을 가할 수는 있는 것이죠. 이것은 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퍼렁어님께서 이렇게 의견을 전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제가 '어떤 특정인'에게 '어떤 특정한 행위'를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나보죠? (이런이런...)

      그건 그렇고, "악당" 이야기는 왜 나온건가요? :)
      (맥락이 잘 이해가 안되서...;;; )

    • 시퍼렁어 2010/11/28 21:31

      강제하려구요 타인을 구속되게 하려구요 그래서 악당이 되려 합니다. 훗훗

    • 민노씨 2010/11/29 16:42

      착하고, 정많은 시퍼렁어님께서 악당이 되시려고 한다니... : )
      모쪼록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흐흐.

  2. sociallog 2010/11/26 09:04

    민노씨님 참 간만에 왔어요. 아거님 트윗 보고 왔답니다. 참 장문의 글이네요. 글에 대해 공감이 갑니다. 저도 의견을 적자면 국내는 네이버가 매트릭스 역할을 했지요. 검색을 중심으로 네이버 인터넷관을 소비자에게 심어 주었으니까요. 이제는 페이스북인건가요? 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경험해 보면서 저도 그무수한 정보들이 제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보면 블로깅과는 다른 이야기 인데, 사실 블로그에 글 쓰는 숫자가 예전 보다 크게 줄은건 사실 이죠.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향후 미디어가 될 것인가?! 소통의 수단이 될것인가 어느정도 그림이 그려 집니다. 트랙백 감히 하나 남기고 가요. 사실 민노씨님의 피드백 무섭긴해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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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11/26 18:54

      앗, 소셜로그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
      저도 오랜만에 소셜로그님 블로그에 가봤네요.
      찬찬히 제 부족한 생각이나마 보태겠습니다. ㅎㅎ

  3. noneway 2010/11/26 11:07

    폐쇄적인 페이스북이 개방적인 블로그보다 더 각광받고 있는 것은 개인들의 무력감이 극에 다달아 있음을 반증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나는 더 이상 불특정 다수를 향해 소리치지 않겠다"라는 의사표시와 다름없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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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11/26 18:55

      아주 중요한 부분을 지적해주셨네요. :)
      그나저나 요즘에도 줄기차고, 가열차게 삼성이란 화두를 붙잡고 계신지요? ^ ^

  4. icelui 2010/12/15 17:22

    이거 글은 정말 흥미로운데 딱히 건드린 SNS가 없으니 논리의 정합성을 판단할 수가 없네요. 고개는 자꾸 끄덕끄덕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트위터를 (페이스북은 아예 모르겠고) 통해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서로 다른 지인들이 섞여드는 게 무척 불편합니다. 근데 이건 그냥 개인적인 감정이고...

    트윗의 소통이라는 게 너무 경쾌하지 않느냐는 느낌도 들어요. 아마 그게 트윗에 손을 안 대는 가장 큰 이유...이거나 혹은 남들 다 하는 건 무조건 하기 싫은 철없는 반항심이 더 주된 이유같기도 하고;

    쨌든 이미 윗리플에서 지적된 것처럼, 블로깅이 가장 많은 공을 들여야 하고 그 대척점에 있는 게 트윗 몇 줄 스맛폰으로 끄적끄적하는 것인데... 촌철살인의 묘미는 블로깅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범주이니(그렇다 해도 블로깅을 트윗 단문 같은 호흡으로 주고받고 여럿이 공유할 수 없다는 건 꽤 차이가 있지만;), 결국 블로깅을 하기엔 어쩐지 버거운 환경을 제외한 트윗은, 필요할 때도 필요하지 않을 때도 너무 쿨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그 시원시원스러움이 사실은 무게가 거의 없는, (아무리 블로깅이라도 낱말 하나하나에 진심을 싣지는 않겠지만, 하다못해 포스트 하나를 관통할 만큼은 되는 어떤 균일한 무게감이 생략된 것이라,) 공허한 말놀음에 지나지 않는 듯해서 썩 좋아지지가 않나 봅니다. (이 글 읽고 리플을 달아보려 하니 불현듯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네요.)

    바로 윗분 리플도 생각해 볼 만한데, 그런 걸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가타부타는 얘기를 못하겠지만, 트윗에 대해서도 저는 동일한 감정을 가집니다. '나는 이런 주고받지 않는 것과 대개는 거의 다름없는 소통은 필요없노라고.' 물론 (트윗이 아니고서는 대체할 수 없는) 오가는 생각의 기회를 대체로 늘려주는 트윗질도 상당히 있겠지요. 어느 쪽이 많을 것 같으냐면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을 하기는 하지만.

    종종 디씨에서 인증놀이를 하고 리플 느는 것으로 보람을 느끼곤 하는데('꺅 >_<;;;...', 바로 이런 식으로 '꺅'이라든지 '>_<'' 따위를 오프라인의 지인들에게 보이기가 불편해서 트윗은 영...) , 트윗의 팔로잉이란 게 제게는 그와 같은 맥락으로 다가와요(어쩌면 나 아닌 상당수 트윗터들에게도). 그 결말이 시간이 지나 제가 종종 돌이키는 결론과 같다면, 그건 그저 허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데 동의합니다.

    나는 아마도 외로울 테지만, 그 고독은 고요 속에서보다 소란 속에서 더 선연하지 않을까 하는, 바꿔 말하면 나는 무의미한 외침에 지쳐있지만 그러나 산뜻함이 지나쳐 산만함으로 쉽게 물드는 그런 소통의 확장은 아귀처럼 더 큰 허전함을 향해서만 뻗어가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드는데, 트윗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하네요.

    이 글에 대한 단상 하나는 그 정도로 정리가 되고, 아니 정리가 안 되네;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퍼렁어님이 처음에 지적한 내용이 많은 걸 설명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어요. 트윗 못잖게 스맛폰의 인기로 카톡의 확산도 주목할 만한데... 그 카톡이란 걸 사용하는 사람들 보면 심심해서=외로워서 별 의미없는 말들을 한없이 반복한다 싶어요. 그게 우리가 감정이 풍부해져서 소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게 딱히 아니라고 본다면, 결국 그게 정서적 공유의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든 다른 어떤 이유에서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고독해하기 때문에, 누구더라... 배철수 씨였나 현각 스님이었나... 누군가의 인터뷰에서 읽은 대로, 연인조차도 커피 한 잔씩을 앞에 놓고 금세 할 말을 잃어 서로의 스맛폰을 꺼내 서로를 마주보는 대신 스크린을 향한 응시를 택하는, 그리고 그건 어쩌면 그 스크린을 통해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를 정도로 우리가 커뮤니케이션에 미숙해져 있기 때문에, 어 그러니까 표정과 목소리에 감정이 드러나는 그런 섬세하고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에는 점점 미숙해지고, 문자와 그림으로 강렬하지만 단순한 감수성을 - 대개는 재미만을 - 주고받는 기형적인 소통에만 점차 능숙해지고 있기 때문에, 트윗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블로깅은, 그런 미숙한 표현력과 의지로 감당하기에는 꽤나 벅찬 활동이니까요. 어라... 시퍼렁어 님의 리플에 공감하며 적은 내용인데, 적고 보니 이 흐름은 정서적 접촉과 공감의 긍정적 확대로 가기보다는 나약한 동질감의 관성적 연대로 자랄 소지가 훨씬 많아 보이네요. 본문에서 염려하는 대로, 잘 나가는 컨텐츠에 순응하고, 잘나가기 위해서는 이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기도 십상이겠고요.

    ... 정리가 안 되니 이쯤하고 자렵니다. 적는 동안 생각이 서너 번은 변하고, 글도 너댓 번은 고쳐야 하는 이런 경험 역시, 트윗은 줄 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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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12/14 01:30

      와우!
      안그래도 뭐하고 계시나 요즘 종종 생각하던 참인데..
      텔레파시가 통한건가요? ㅎㅎ
      연말에 뭐하세요?
      얼굴 한번 보죠, 우리! :)

      (선답글 후숙독)

    • 비밀방문자 2010/12/15 17:33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5. 민노씨 2010/12/14 02:20

    * 관련 메모

    블로그소비의 상대적 불변이론 1 http://bit.ly/f1fHPF
    블로그소비의 상대적 불변이론 2. http://bit.ly/evKtCR

    미디어 소비의 상대적 불변 이론(맥스 맥콤스)에 대한 아거님의 고찰.
    2005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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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카나리아 2011/06/30 16:12

    시퍼렁님 말에 기본적으로 공감하며, 이글의 내용에 어느정도 공감하기는 하지만, 조금 '블로그 편향적' 인 내용이라는 생각도 들긴 하네요

    페북/트위터가 블로그를 대신할수 없다는거에는 찬성하나 [여기에는 시퍼렁님 의견 쪽에 가까운 셈] 온라인 실존이 블로그밖에 없다는 말은 부정적이네요.

    트위터와 페이스북도 엄연히 온라인 실존으로서 존재할수 있는데다, 그것들을 제외해도 디시인사이드에서 고정닉으로 활동하며 글을 쓰는 사람 [유명한 사람 뿐만 아니라 유명하지 않아도 해당 갤러리에서 노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사람], 각종 난립한 커뮤니티에서 글을 쓰는 사람[역시 DC 고정닉과 마찬가지], IRC나 메신저같은 채팅방에서 고정닉으로 활동하는 사람, 온라인 게임 등에서 활동하는 사람 [유명한 케이스로는 용개나 뿌뿌뽕 같은 사람이 있겠지만 유명하지 않더라도 그것으로 의미가 있겠죠?] 같은 걸 찾아볼수 있겠죠. 언급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한다면 '온라인 실존' 이라는건 더더욱 넓은지언데 블로그만이 유일하다는건 조금 이해하기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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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1/07/01 02:58

      카나리아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제 취지가 잘못 전달되었거나, 제 표현이 부족해서 오해(?)를 만들어낸 듯 합니다.
      저는 '온라인 실존'이 "가장 적합하게 구축될 수 있는 공간"으로서 개개의 독립적인 블로그를 이상적인 '도구'로 생각합니디만, 카나리아님 말씀처럼 유명 여부를 떠나, 이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죠, 일정한 페르소나를 유지하는 무수히 많은 익명들, 필명들 모두가 각자의 온라인 실존을 실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평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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