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소셜시대, 블로그를 돌아본다 (Sadgagman)
0. 언젠가, 아주 오래 전, 아거의 글에서 처음 접한 매슬로(Maslow)라는 학자의 욕구 5단계설.
1) 가장 낮은 단계로서 생존 욕구, 2) 외부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고자하는 안전욕구, 3) 어딘가에 소속되어 안전과 애정을 충족하고자 하는 소속감 욕구, 4)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인정, 자존심욕구, 5) 그리고 궁극적인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존재욕구.
매슬로의 욕구위계설에 대해 나는 눈꼽만한 식견도 없고, 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가설들은 그 자체의 진실성이 중요하기도 하겠지만, 나로선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을 부여한다는 것으로 족하다. 매슬로의 욕구 위계설은 웹을 둘러싼 거대한 전쟁, 그 안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전투들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공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는 도식적인 계층구조와 행렬로 짜인 정보는 대체로 잘 관리하지만, 인간정신은 어떤 데이터 조작이라도 연관시킬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나는 때로 쓰고도 강렬한 커피 향을 맡으면 옥스퍼드 시절 커피 가게 건너편의 작은 방에서 공부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나의 뇌가 연관작용을 일으켜, 순간적으로 나를 그때 그곳으로 데려다 주는 것이다. (22)198년 나는 제네바에 있는 저명한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인 CERN에서 단기 소프트웨어 컨설팅 작업을 맡게 되었다. (.... ) 나는 이렇게 생각해보았다. 컴퓨터가 어디에 있든 그 곳에 저장된 모든 정보를 연결시킬 방법이 없을까. 또 무엇이든 서로 연결되는 공간을 내 컴퓨터에 마련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할 수는 없을까. 이것만 실현되면 CERN과 지구상의 컴퓨터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모든 정보를 누구라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 규모의 단일한 정보공간이 생겨나는 셈이다. (23)
현대 가장 대중적인 인터넷인 월드 와이드 웹은 인간정신의 특이성을 컴퓨터와 컴퓨터의 연결된 네트워크로 구현하고자 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원래 인터넷은 핵 전쟁 위협이 상존하던 냉전시대의 산물이다. 미국 국방성이 주도한 최초 인터넷 프로젝트인 '알파넷(ARPANET)'은 소련의 핵미사일 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테이터베이스 구축이 목적이었다.
IT저술가 팀 오라일리라는 20세기 말 '닷컴 버블'로 붕괴된 IT산업, 그 지옥에서 살아남은 새로운 기업군의 비즈니스 속성, 매커니즘을 추출해 '웹 2.0'이라는 매력적인 신조어로 만들어 퍼뜨리는게 크게 공헌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태어난 블로그는 웹 2.0의 총아로 위키백과의 성공과 함께 널리 회자된다. 그리고 트위터가 생겨나고, 페이스북이 생겨난다. 팀 버너스-리는 페이스북이 닫힌 성을 쌓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기에 이른다.... 어째 글이 좀 산으로 가는 기분도 들고, 이런 표피적 약사가 무슨 의밀까 싶기도 해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자. 그 이야기는 물론 내 이야기고, 나를 둘러싼 우리들의 이야기일테다.
4. 트위터, 페이스북, 그리고 블로그 : 해방구 혹은 식민지
새드개그맨의 이야기처럼 모바일과 결합한 SNS은 새로운 시대를 반영한다. 그것은 PC에 기반한 상대적인 장문 텍스트 중심의 콘텐츠 생산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같다. 그럼에도 껍데기 웹 2.0이라고 하더라도 블로그의 짧은 전성기 동안 우리는 웹이 우리의 해방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해방구가 새로운 유행과 새로운 상업세력에 그 빛을 잃어, 우리들의 또 다른 식민지가 되어가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한다.
물론 과장이다. 세상을 이런 양극단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일은 대단히 편리한 일이긴 하지만, 그만큼 무의미하다. 그 편향은 독선에 빠지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나는 이 독선과 편향이 어쩌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식자층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기득권은 이미 자신의 확고한 성을 쌓았다. 오프라인은 그들의 것이다. 그리고 온라인은 이제 새로운, 전혀 새로운 '수동성'을 많은 시민들에게 학습시킨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규격화된 '틀' 속에서, MB시대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효율성과 속도, 그리고 나 좀 알아달라는 '인정욕구'의 화신이 되어 우리는 웹이라는 평평한 대지를 여행하며 꿈꿨던 그 모든 꿈, 스스로가 스스로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자유의지를 잃어간다.
우리를 둘러싼 서비스들, 모바일과 SNS은 우리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회로들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자유의지를 박탈당한다. 무엇인가에 항상 노출되고, 이끌린 채 나도 뭔가 보여줘야 할 것은 강박이 서서히 우리를 파고든다. 그 안에서 열심히 열심히 세상 소식들을 퍼나르고, 140자 혁명 선언문이라도 낭독하듯 비장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명품 사진을 올리며 된장질도 하고, 페이스북 어플을 통해 실시간으로 세상의 풍경을 찍어 전송한다.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회로들, 운동의 매커니즘은 내가 나를 결정하는 행위의 가능성을 높여주기 보다는 그 '틀'과 '회로' 속에서 내가 마치 능동적으로 이 소비사회의 최첨단, 이 커뮤니케이션이 최첨단을 구현하고 있다는 착시적 포만감을 안겨즐 뿐이다. 거기에 있는 건 당신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은 소비하면서 생산하는 자가 아니라, 소비를 위해 생산하는 자가 된다. 그게 지적인 콘텐츠 상품이든, 물적 상품이든 마찬가지다. SNS은 궁극적으로 개별화된 이야기가 배제된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하고, 그것을 구조화해서 소비성향의 완전한 알고리즘을 파악하는 걸 목적으로 삼는 것 같다. 이제 개성은 상품 선택에 의해 '부여'되고, 그렇게 이식된 착시효과로서의 개성이 세상을 채우며, 우리는 다시 개성있는 실존으로 스스로 착각하는 마케팅 타켓이 된다. 우린 다시 숫자로 수렴하고, 평균화하며, 객체화된다.
* 또 다른 발아점
새드개그맨의 팟캐스트도 그렇고, 이 글도 그렇고, 인터넷 주인찾기 세 번째 컨퍼런스 '소셜 시대, 블로그의 재발견'이 그 발아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매슬로우 5단계설은 대체로 사장된 가설이라는것을 덧붙이고싶네요;;;; 글세요 90년대의 온라인 사람들과 10년대의 온라인 사람들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싶네요 ... 머드게임을 하나 mmorpg를 하나 핵심은 비슷한듯... 좀더 말초적이 되었다면 맞는건가 싶기도... (응? 야동의 역사인가...)
사장된? 그런가요?
본문에서도 썼지만 그 가설이 사장인지(부장인지 과장인지....좀 썰렁한가요? 나름 유머..ㅎㅎ;; )에 대해선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굳이 댓글을 "사장된 가설"로 시작하시는 취지를 잘 헤아리기 어렵네요. '왜'(이유/근거)가 빠져있잖아요? 사장된 가설이라는 학계의 평가(그런게 있다면) 그게 사장된 이유를 설명해주시는 게 좀더 유익한 대화를 위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나름 배우게 될 수 있겠구요.
더불어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말씀 역시 그게 주관적인 체험을 있는 그대로 진술이라는 점에서 뭐라고 첨언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물론 제 글도 주관적이고, 사적인 감정의 토로에 가깝기 때문에...;;;
그런데 시퍼렁어님 제 글이 좀 못마땅하신가요? ^ ^
시퍼렁어님 알고 지낸지 꽤 오래되었지만, 최근 댓글을 보면 약간 제 글에 불만이 계신 것 같기도 해서요.
이건 블로거로서 오랜 블로거벗에 대한 솔직한 궁금증입니다.
굳이 불만을 말하자면... 딱딱하다는 느낌이겠네요 재밌는 드라마를 공문서로 보는 느낌이랄까요... 이외의 불만은 없지만... 리플에서 그렇게 느끼신다니 저도 문제가 많군요 ㅎㅎ
매슬로우의 가설은 너무 단순하고 낡은 모델이라
교과서 정도에서나 언급됩니다.
짧은 댓글을 단 사람한테 추궁하듯 답문을 주는 모습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군요,
그랬나요? 시퍼렁어님과는 오랫동안 교류했습니다. 그래서 허심탄회하게 답한다는게 그렇게 비춰졌다니 제가 과했나봅니다. 다만 짧은 댓글이고, 긴 댓글이고, 교과서에서나 나오고 나오지 않고 상관없이 저는 그저 솔직한 제 의견을 전했을 뿐입니다. 음님께서 지금 그러시는 것처럼 말이죠. 다만 반대의견이나 다른 의견을 전하고 싶다면 그에 합당한 내용있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진짜 예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이 "단순하고, 낡"기 때문에 어떤 사유의 모티브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의견은 도무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의견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