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날 한겨레에서 블로그를 만든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주 어린 날들, 청춘이 피어나던 날들, 저에게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는 한겨레에서 블로그라는 걸 만든다고 했어요. 필진네트워크라는 곳이었습니다. 새벽 배달을 마친 어느 날 새벽, 피시방에서 첫 글을 썼습니다. '블로그 시대의 도래와 종이신문의 미래'라는 글이었어요. 2005년 어느 날의 일입니다.
하지만 한겨레에서 만드는 '필진네트워크'라는 곳은 우리가 기대하는 곳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는 (인터넷) 한겨레를 우리가 개혁하자고 했습니다. 잠자는 시간, 새벽에 배달하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온종일을 거기에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일년 남짓이 흘렀습니다. 한겨레는 필벗들에겐 또 다른 '조직'이었고, '권위'였습니다. 인터넷 한겨레 관계자들, 필넷 관계자들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너무 좋은 분들이시죠. 또 평범한 직장인이시기도 하구요. 하지만 야속한 마음이 커졌습니다. 우리 기대가 너무 컸나봅니다. 우린 그저 '사용자'일 뿐인데 말이죠. 그게 너무 싫었어요. 우린 그저 '서비스 사용자'일 뿐이라는 거요...그래서, 그렇게 저는 한겨레, 정확히 말하면, 필진 네트워크에서 나왔습니다. 왕족 기자/귀족 전문필자/평민 네티즌로 이뤄진 '봉건 네트워크'에서 나와 자유인이 되었습니다.(농담이예요...물론 농담유골입니다. ㅎㅎ)

아거님은 언젠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결국 아이폰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이제 침묵의 소용돌이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이 침묵의 소용돌이속에서 아래쪽으로 꺼지는 것은 오프라인상의 대화이고, 위로 계속 말면서 올라오는 것은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수다들이다.
- 아거, 아이폰과 침묵의 소용돌이
우리는 SNS와 모바일이라는 전혀 다른 환경을 만나고 있습니다. 소셜은 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점들을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하 간략하게 생각나는 순서로 서술합니다.
SNS의 문화적인 속성은 오프라인을 온라인으로 이식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이분법적 구별은 이제 무의미하긴 합니다. 하지만 블로그는 새롭게 스스로를 창조하는 온라인 실존의 집이었습니다. 블로그는 자신의 이야기들을 통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친구들을 사귀고, 대화를 만들어갔습니다. 거기엔 다양한 소망들과 욕구들, 자신의 이야기들이 존재했습니다. 그 친구들이 어떤 대학을 나오고, 어떤 지역 출신인지, 어떤 직장을 갖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점점 더 오프라인의 표지, 그것도 이왕이면 과시적인 표지들이 중요한 메커니즘의 요소로 작용합니다. SNS은 오프라인을 온라인으로 직접 이식하려는 속성으로 움직입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이상적인 상호작용이 아니라 오프라인이 온라인으로 급격하게 이식됩니다. 온라인에서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에너지들은 익명성, 혹은 온라인 실존성이라는 속성과 친합니다. 그 안에서 이상화된 자아, 오프라인을 숙주로 하지만, 그 오프라인의 실존과는 다른 온라인 실존은, 익명성, 새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전혀 다른 대지에서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트위터, 특히 페이스북을 통해서 이뤄지는 사귐의 메커니즘은 '콘텐츠'가 아니라, 듣보잡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프라인의 표지들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페이스북은 속물적인, 이것은 폄하의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의 과시욕구를 자극하는 장치들을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비리거들의 짝짓기 서비스로 페이스북이 출발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2. 트위터
트위터에 있는 건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의 흔적입니다. 사람의 정서와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물리적인 언어의 부피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트위터는 인간의 다양한 관심들이 정서적인 교감의 회로 속에서 작동하는 콘텐츠 필터링 기제입니다. 여기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새로운 형식으로 시작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는 소식들은 어떤 패턴들을 갖게 됩니다. 주로 기성언론의 속보형 기사들, 흔히 '이슈'라고 이야기되는 것들만이 주로 사람들에게 주목받습니다. 혹은 우리의 휴머니티를 자극하는 감상적인 화제들, 사회적 약자의 억울한 이야기들이 파편화된 채로 유통됩니다.
물론 그것이 갖는 사회적인 함의는 대단한 것입니다. '전두환 학살자'가 트위터의 재잘거림을 통해 새롭게 각인되고, '유성기업'을 억누르는 공권력의 야만을 다함께 고발합니다. 하지만 어느새 RT는 우리들의 사회적 관심과 참여의 알리바이가 됩니다. 우리는 할 일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 그 RT의 부피들이 다시 찌라시 언론들에 의해 재유통됩니다. 우리들이 만들어갔던 소박한 이야기들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성언론의 발빠른 속보들이 우리들의 타임라인을 채워갑니다. 명망가들의 재갈거림이 우리들의 작은 관심들을 장악해버립니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트위터의 공간은 그 자연스럽고, 당연한 욕망의 홍수들로 인해 그 말이 닿을 수 있는 종착지를 빼앗아갑니다. 노이즈는 메시지 도달률을 극단적으로 추락시킵니다. 여기에 한국식 '맞팔 문화'가 결합하면 사태는 더 악화됩니다. 자연스런 인정욕구를 저는 당연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숫자로 채워진 관계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처음 트위터를 시작했을 때 기대한 작은 이야기들이 점점 더 그 소용돌이의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구글폭탄 (이정환)소셜시대의 블로거 (민노씨)블로그와 SNS (펄)세번째 컨퍼런스 소셜? (하이커)SNS와 블로그 (필로스)왜 아직도 블로그인가, 몇가지 생각 (캡콜드)
* 이 글은 제3회 인터넷 주인찾기를 준비하기 위해서 쓰는 글입니다.
생각해보니 <반쯤 닫힌 웹의 월드 가든에서 아이폰 들고 블로깅 하기> 이런 글을 이미 썼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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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왜 아직도 블로그인가, 몇가지 생각.
Tracked from capcold님의 블로그님 2011/05/27 17:22 del.!@#… 현재 논의가 진행중이며 다음달에 개최될 예정인 인터넷 주인 찾기(이하 인주찾기) 3회 콘퍼런스의 테마가 “블로그와 소셜“로 좁혀지고 있는데, 직접 가서 한 꼭지 발표해주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응원차 생각거리라도 보태기 위해 몇가지 생각을 적어놓는다. 처음에는 개인적 블로그 경험 회고 같은 것으로 해볼까 했는데, 민노씨처럼 멋지게해낼 자신도 없고 해서 그냥 논리적 사유로 방향을 틀었다. 세부적으로 다듬어내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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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인터넷 주인찾기] 세번째 컨퍼런스 소셜?
Tracked from 몽상연구소™ 2011/05/28 17:10 del.'social'이란 말이 유행입니다. social network service, social commerce... (네이버) 사전을 찾아 보면 social 1. CONNECTED WITH SOCIETY | (명사 앞에만 씀) 사회의,사회적인(사회의구조와 관련된) 2. CONNECTED WITH SOCIETY | (명사 앞에만 씀) 사회적인(사회속에서 개인의 위치와 관련된) 3. ACTIVITIES WITH OTHERS | (명사 앞에만 씀) 사교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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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그 많던 블로거는 다 어디로 갔나?
Tracked from j4blog 2011/06/16 11:36 del.제목과는 다르게 아직도 수많은 블로거는 활동 중입니다. :) 하지만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입니다. 우선 제가 처음 이 j4blog를 만들었던 2007년은 거의 폭발적인 기세로 블로그가 성장했던 시기였습니다. 티스토리의 트래픽은 전년도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났고 메타블로그들도 급성장했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새로운 메타블로그들도 계속 생겨났었고 블로그 수익모델들도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이 강합니다만 2009년을 기점으로 블로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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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109. 소셜시대, 블로그를 돌아본다 (11.6.22)
Tracked from Forget the Radio 2011/06/22 02:13 del.1. 인터넷 주인찾기 세번째 컨퍼런스 : 소셜시대, 블로그의 재발견 (0:00) http://www.ournet.kr/1 2. 무엇이 나를 블로그로부터 멀어지게 하나? (7:08) 3. 무엇이 내게서 마이크를 빼앗나? (17:48) 4. 무엇이 내 팟캐스트로부터 청중을 빼앗나? (26:22) 5. 그럼에도 불구하고 (36:29) (다운로드 용량을 줄이기 위해 24Kbps 22050Hz Mono로 제작되었습니다.)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조금씩 틈틈히 쓰고 있는데, 이걸 공개할지는 잘 모르겠다. 아거님과 대화하면서 이런 글은 굳이 공개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며칠 전에 들기도 하더라.
헉! 처음 쓰기 시작한 날로부터 무려 열흘이 지났구나... 참 하는 것도 없이 시간만 잘 보낸다. 미래가 안타깝게 불안할 만큼 삶에 애착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뭔가 허전하다...
소용돌이의 비유 공감합니다.
특히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트위터의 공간은 그 자연스럽고, 당연한 욕망의 홍수들로 인해 그 말이 닿을 수 있는 종착지를 빼앗아갑니다" 이부분이 와닿네요.
계속 이어 써 주세요.
계속 써야하는데...
어제 새벽 뻘짓으로 날리고, 오늘 써야지 하다가 또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오늘 인주찾기 모임 갔다 와서도 다른 할일 때문에..ㅜ.ㅜ;
암튼 그 일만 끝나고 바로 이어서 쓰겠습니다!
오랜만에 펄님 댓글은 그야말로 '박카스'고만요. ㅎㅎ
http://gatorlog.com/?p=2509
항상 잃지 않으려 하는게 있습니다만 도구에서 의미를 찾지 않습니다. 도구를 쥔손에 있는 땀의 주인은 온건히 그 주인에게서 흘러나온 것이니까요 그 도구의 스민 땀의 흔적으로 도구가 아름다워보이는 것은 그 사람이 흘린 땀이 있기 때문이지 도구가 아름다운게 아닙니다. 블로그가 무어냐는 질문은 그 자체로 민노씨의 블로그에 대한 애정을 담은 말이겠지요 저는 이렇게 되묻겠습니다. 민노씨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요?
저는 '블로거들의 다정한 이웃'이 되고 싶습니다. : )
그래서 이웃들과 함께 뭔가 재밌는 걸 해보고 싶죠.
첫 블로그 글부터 뭔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이런 것이 준재와 저 같은 범인의 차이겠… ^^
오, 엔디님!
농담이 지나치시구먼요...
그나저나
오늘 오시는거죠?
수민씨도 함께 오시나요?
* 제목 수정
당신에게 블로그는 무엇이었나요? : 인주찾기 컨퍼런스를 준비하며
>>> 당신에게 블로그는 무엇이었나요?
* 3차 업데이트 / 2차 발행.
점점 썰렁해지는 저의 블로그를 보며 저도 이런 고민 많이 했는데... ^^)::
헌데 지금은 조금은 다른 이유로 블로깅이 어려워져서... ㅠㅠ
언제나 앞선 고민... 감사드립니다...
별로 앞선 것 같지 않고, 저 스스로는 늘 한 발 혹은 두 발 정도 늦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잊지 않고, 이런 분위기(?)의 글에는 어김없이 댓글을 주시니 새삼스레 반갑네요. : )
ㅋㅋㅋ '이런' 분위기... 어김없이!!!!
웃겨요!!!
요즘 제 유머 감각에 회의가 들곤 하는 순간들이 많은데요.
웃기시다니 참 고맙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