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잉 인터뷰 S#4. 인터넷

2012/01/18 23:52


인터뷰이 : 이고잉

인터뷰어 : 민노씨


일시 : 2011년 12월 30일 2시 17분 ~ 11시 15분

장소 : 한남동 복합문화공간, 그리고 밥집과 커피전문점.

1. 인생이란 진지한 표정으로 거론할 수 있는 그런 하찮은 게 아니다

2. 마당

3. 탐앤탐스


1. 이고잉 egoing 

2. 블로거 이고잉

3. 생활코딩

4. 인터넷

5. 스트림과 아카이빙
6. 트위터

7. 허무에 대하여

8. 우린 그냥 좀더 이야기하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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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운동회, 꼴등으로 들어오는 이고잉의 미소가 해맑다



S#4. 인터넷

"....독점 문제는 자칫 지식의 결을 대패질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늘 그랬듯 최근에도 인터넷의 미래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한다.

“이 시대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나는 IP를 꼽는다. IP는 주소다. 모든 디바이스들이 주소를 갖는 것이다. IP 이전에는 방송이 있었다. TV는 주소가 없다. 공기 속의 전파를 사용한다. 그래서 IP 이전의 디바이스들을 사실 거대한 하나였다. 모두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내용을 본다. 방송이 IP로 변화된 시대에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


- ‘핫에서 쿨에서’

“핫은 모두가 관심을 갖(게 하)는 속성이라면,  쿨은 내가 좋아하는 거다. 인터넷은 쿨하고, 브로드캐스팅은 핫하다. 쿨이 지배하는 시대에선 자신의 취향 선택권이 확대되니까.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그렇다. 사람들이 점점 더 자기 취향에 맞는 소규모 공동체에 속하게 된다. 취향으로 만난다.” (+ 쿨미디어와 핫미디어)


- ‘우리 아버지는 핫하고, 우리 어머니는 쿨하다’  

“가령 우리 어머니는 사진을 좋아하신다. 그리고 인터넷을 하신다. 그래서 사진 좋아하는 20대들과도 만난다. 아버지는 TV를 보는 분이다. 아버지는 오래된 친구들과 등산을 하신다. 어머니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출사를 나간다. 아버지는 청주에 있지만, 부산에 있는 누군가를 만나도 할 말이 있다. ‘무한도전 봤냐?’ 이런 핫한 이야기. 어머니는 출사를 가면 20살 30살 어린 친구들과도 이야기할 수 있지만 대구에 사는 누군가를 만나면 할 얘기가 없다.”


- 인터넷도 소수 유명인사와 소수의 테마와 이슈 집중현상은 여전한 것 같다.

“그건 인터넷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사의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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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고잉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조카



- 인터넷은 성숙한가?

“인터넷이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완전한 허구다. 세상에는 구획이 있다고 생각한다(scope). 사람들은 저마다 이 구획에서 살아간다. 기술이란 이 구획을 재구성한다. 이를테면 예전엔 동네단위로 일등이 있었다. 그런데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도시 단위로 일등이 생긴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국가 단위의, 세계 단위의 일등이 생긴다. 세계화의 주역으로 무역을 이야기 하지만, VIP는 인터넷이다. 자본이 양극화를 만든다면, 기술은 일극화를 완성한다. 인터넷이 평등 하다고 믿는 이상, 인터넷은 평등하지 않다.”


- 기술은 일극화를 완성한다?

“인프라가 심화될수록 일극화는 가속될 것이다. 우리가 편리함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인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거다. 이를테면, 저출산도 그런 것 같다. 고용 없는 성장의 무의식적이고, 집단적인 솔루션이 저출산이다. 저출산, 그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 ‘편리함을 추구할 수록 우리는 죽는다.’  

“사무자동화, 컨퍼런스콜…. 사람을 배제하는 기술들이 진화한다. 동료를 줄이고, 사람을 줄이고, 사람과 만나는 일을 줄인다. 얼마나 깔끔한가. 온라인에선 똥냄새, 땀냄새가 나지 않으니까. 화상전화가 안되는 이유도 사람들이 리얼리티를 원하지 않아서인 것 같다. 문자는 참 많이들 쓴다.”


- ‘빛은 물론 있다’

“당근이다. 근데 모두가 기술의 빛을 이야기 하는데, 나까지 기술을 찬양할 필요는 없지 않나? 기술이 어둠만 있는게 아니라, 어둠만을 이야기 할 뿐이다. 나는 대체로 기술의 수혜자이기 때문에 그 빛을 이렇게라도 갚아야지. 찬양해서야 되겠나?”


- <생활코딩>은 똥 냄새와 땀 냄새를 포함하는가?

“지금은 그런 게 없지만. 앞으론 그걸 포함하려고 구상중이다. 그 방법은 아직 못찾고 있지만. 그걸 한 그릇에서 담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긴 하다.”


- 기술 염세주의와 기술 낙관주의

“그런데 생각해보면 일반인에게 프로그래밍을 알려주는 생활코딩이나, 어르신들을 위한 IT 수업인 <효도코딩>은 이것이 수업의 형식을 띠고 있는 이상, 이것은 기술에 대한 최상급의 찬양이 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가만보니까 이렇게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된다. 긍정을 담아내는 컨테이너와 부정을 담아내는 컨테이너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고....”


- 기술 자체가 반휴머니즘적 속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다. 기술은 중립적이다. 하지만, 기술은 우리 안에 반휴머니즘을 부추기기 때문에 반휴머니즘적이다.“


- 기술과 인간

“마셜맥루한은 어려워서 포기했는데, 몇 가지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미디어가 인간의 확장이라는 표현 말이다. 기술은 인간의 확장이다. 감각을 확장하고, 감성을 확대한다. “


- 대한민국 인터넷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인터넷이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문제다. 국가로 담을 수 없는 걸 국가로 담으려고 하니까. 그 불일치에서 생기는 문제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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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WWW)의 아버지, 팀 버너스-리

                        ( + 강정수, 팀 버너스 리: 페이스북, 애플 그리고 구글이 웹을 위협하고 있다)                                                       ( + 민노씨, 반쯤 닫힌 웹의 월드 가든에서 아이폰 들고 블로깅 하기)



- 팀 버너스-리의 페이스북, 애플, 구글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동의한다. 구글은 오픈API나 오픈소스 등을 통해서 자신의 성취를 나눠준다. 또 비즈니스적으로는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는 것들을 공짜로 퍼준다. 그래서 나는 구글을 사랑하지만, 그만큼 구글에 종속되고 있다. 이건 세련된 탐욕이다. 어찌보면 구글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엔터프라이즈 버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바로 그 세련된 탐욕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 ‘불일치’와 ‘균열’

“초국가적인 것과 국가적인 것의 불일치. 그 풍경들을 발견할  때 마다 블로그에 담는다. 그게 내 나름의 게임이고, 즐거움이니까. 거기에 진지함은 없다. 그것들이 나에게 재밌는 놀이거리다 .”


- 아이폰

“너무 훌륭한 제품이다. 이 제품이 만들어진 컨텍스트를 사랑한다. 이 제품의 결과에 대해선 사랑하지 않는다.”


- 아이폰의 결과

“안드로이드가 출현하지 않았다면 완전한 독점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MS같은 일이 또 한번 벌어졌질 뻔 했다. 애플이 덜 사악해질 수 있었던 건 구글 안드로이드 덕분이다. 독점이 되었다면 애플의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는 사악해졌을 것이다.  IT 역사에서 아주 긴박한 순간이었다 생각한다.”


- ‘아이폰이 진보다.’(?!)

“진보와 분화는 다른 것이다. 이를테면 스마트폰은 전화기의 진보다. 하지만 데스크탑의 진보는 아니다. 분화다. 모바일이 그 거지 같은 입출력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모바일은 데스크탑의 분화지 진보는 아니다. “


- ‘가령 오픈코스웨어(OCW, Open Course Ware, 공개강의운동)

“분명히 기존 방식보다는 진보다. 지식을 공유하니까. 하지만 그 안에 엄청난 헤게모니 싸움이 있다. 포항공대 같은 경우에는 자기 교수 수업은 듣지 않고, MIT 수업을 듣는다고 하더라. 지식의 다양성이 담보될 수 있을까? 민노씨가 이야기한 블로그와 SNS의 역학, 메커니즘과 문화적 지향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다. <위키피디아>도 그런 위험이 있다고 본다. 물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의 문제이긴 하지만. 누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지식의 브랜드 현상은 인터넷 시대에도 더욱 확대 강화하고 있다.”


- 인터넷이 지식권력의 독점현상을 심화시킨다고 보나?

“그런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빛과 그림자처럼. 앎의 퀄리티 문제가 아니라 브랜드가 문제된다. 오픈소스운동은 대단히 효율적으로 기존질서를 파괴했다. 그런데 구글 같은 사기업에서도 오픈소스 정책을 편다. 오픈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시장에서 결국 승리할수  있다고 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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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명 "이고잉텔"의 현관. CCL 마크가 선명하다.
            사생활 보호를 아주 신경쓰는 이고잉의 집은 그렇지만 많은 친구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 ‘지식의 결을 대패질하는 현상’

개방된 세계에서도 일어나는 이 독점의 문제는 자칫 지식의 결을 대패질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를테면 위키피디아는 집단지성이 만들어낸 전세계적인 단일 의견이다. 이것은 매순간 변화하고 있지만, 그 순간은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 물론, 이것은 위키피디아의 책임이 아니다. 그게 더 큰 문제다. 문제는 있는데 책임이 없다. (무책임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해결의 실마리가 없다는 의미에서..)”

- 왜 인주찾기(인터넷 주인찾기)에선 자신을 옵저버로 고집하나?

“내가 나름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생활코딩). 내가 동의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인주찾기). 함께 동의 하는 가치가 있는 것이고, 각자가 실천하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위해서 주변을 정리하고 또 정리했다. 이 정리벽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그래야 내가 하고자 하는 일 안에서 복잡하게 어지러뜨릴 수 있다. 내가 개발자니까 벤처하는 친구가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서, 자꾸 같이 뭐 좀 만들어보잖다. 이렇게 말했던게 생각나는데.. ‘야 너도 아이디어가 많고, 나도 아이디어가 많으니까 우리는 협업이 아니라 외교관계로 만나는게 좋겠다’ (웃음) 직장을 그만두면서 세워둔 원칙 역시 이것을 위한 것이다. 1. 돈을 벌지 않겠다. 2. 남이 기획한 일에 대해서 노동하지 않겠다.




.... 이고잉 인터뷰 내일 계속
 



중앙일보 1월 17일자
한나라당 공천 트위터지수 (중앙일보, 허진, 김용민 기자)

지랄육갑도 이 정도면 기네스북에 등재될 수준인 듯. "하버드 출신"이라고 강조하는 기사에서 소개한 한나라당 비대위원 이준석의 '공식'이라는 걸 들여다보면 이건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내 마음 갈 길을 잃어버리게 만들고야 만다. 기사는 이렇게 쓴다.

‘팔로어 수’(자신의 메시지를 받아보는 다른 사람 수)와 ‘팔로잉 수’(내가 메시지를 받아보는 다른 사람 수)가 포함된 좌항은 ‘인맥의 넓이’를 측정한다. 얼마나 많은 트위터 사용자와 관계를 맺고 있느냐를 가늠하는 수치다. (기사 중에서)

트위터는 비대칭적이다. 내가 누군가를 팔로잉한다고 해서 그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내 트위터를 팔로잉한다고 해서 그가 나와 소통하는 것도 전혀 아니다. 결국 현재 수준에서 남은 건 이 비대칭성의 수혜자들, 오프라인의 인기인들, 체계적인 정보 공급자들(기자나 블로거 등등), 그리고 소수의 열혈 트위터러들이다. 소통이 갖는 본래적인 의미에서 '쌍방향성'은 달나라에 가서 물어보던가. 단적으로 말해 트위터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채널', 즉 소통 채널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배급, 유통하는 중계채널이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취향에 따라 콘텐츠를 걸러낼 수 있을 뿐인 콘텐츠 필터링 채널이다.

누누히 강조하지만 트위터에서 이른바 '소통할 수 있는 질량'은 대단히 한정적이다. 내가 생산할 수 있는 정보도 한정적일 뿐더러,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정보도 한정적이다. 하루 종일을 트위터에 매달려도, 아무리 리스트를 잘 관리/활용해도 수 천명, 수 만명과 '소통'한다는 건 이게 무슨 제정신인 건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소통이 숫자로 가능하다고 믿는 사이비들이 있다. 좋다. 최대한 우호적으로 살펴보자. 몽상적인 수준에서, 쌍방향 소통의 잠재적 가능성으로서 '팔로어'나 '팔로잉' 수가 의미를 가진다고 치자. '맞팔'이라는 이상한 문화를 정착시킨 채, 극소수 자극적 이슈에 몰빵하는 현재의 트위터 구조상 "하버드 출신" 이준석의 '공식'이 이야기하는 "인맥의 넓이"는 개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0만의 팔로워가 있고, 내가 10만명을 팔로워 한다고 쳐, 언제 소통할건데? 어떻게 소통할건데? 이게 가능한거야? 준석아, 이거 어떻게 하면 좋겠니? ㅡ.ㅡ;

트위터 소통 지수를 '공학적'으로 계산해보겠다는 시도, 좋다. 그걸로 '소통의 질량'을 계산하겠다는 시도, 뭐 좋다. 하지만 이준석의 공식은 트위터에 대한 몰이해를 증명할 뿐이며, 한나라당의 깜짝 이벤트 상품 이준석이 갖는 그 정체가 무엇인지를 그야말로 선언하고 있을 뿐이다('바보 선언'). 이런 개판 1초 전 3류 이벤트를 무슨 대단한 '과학'인양 소개하는 중앙일보는.... "회장님 힘내세요!"나 해라, ㅡ.ㅡ;,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트위터가 갖는 사회적 의미, 사회적 효용, 나는 이걸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김진숙이나 박정근은 트위터러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의미있는 사회적 실험들이자, 트위터식 실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공천 공식' 따위로 트위터를 저급한 PR 이벤트 도구로 전락시키는 시도들은 이제는 정말 없어졌으면 좋겠다. 한나라당 이준석의 발상이 만들어낼 건 트위터라는 도구를 사용해 소통하는 척 하는 '기계', 즉 트위터 청년 알바들 뿐이다. 물론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 공천 트위터지수'가 공천을 빙자한 게 청년실업 대책이라면 그 작은 의미를 인정할 수도 있겠다.


* 추.
열혈 변태 잉여 블로거 리승환 수령이 '민주당 청년비례대표 국회의원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나는 리승환의 시도를 지지하고, 이 실험이 의미있는 결실을 맺길 바란다.



이고잉 인터뷰 S#3. 생활코딩

2012/01/17 17:24

인터뷰이 : 이고잉

인터뷰어 : 민노씨


일시 : 2011년 12월 30일 2시 17분 ~ 11시 15분

장소 : 한남동 복합문화공간, 그리고 밥집과 커피전문점.

1. 인생이란 진지한 표정으로 거론할 수 있는 그런 하찮은 게 아니다

2. 마당

3. 탐앤탐스


1. 이고잉 egoing 

2. 블로거 이고잉

3. 생활코딩

4. 인터넷

5. 스트림과 아카이빙
6. 트위터

7. 허무에 대하여

8. 우린 그냥 좀더 이야기하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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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코딩



S#3. 생활코딩

“누구나 가르칠 게 있고, 누구나 배울 게 있다.”



- <생활코딩>을 쉽게 설명하면?

“기술 주체성을 고양시킨다고 해야 하나? 음.. 말이 너무 맘에 안든다. 기술적인 자신감을 갖도록 도와주는 프로젝트. 기술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기술적인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 ‘기술이라는 딜레마’  

기술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기술에 대한 나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대단히 회의적이다. 그것은 마약 보다도 무서운 것이다. 일단 시작하면 끊을수 없다. 이를테면 후쿠시마의 원전은 엄청난 재앙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모든 원전을 지금 이 순간 차단한다면, 후쿠시마 원전 사태보다 훨씬 더 큰 위기가 올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생활코딩이나, 효도코딩은 기술의 디스토피아를 더욱 앞당기는 활동이기도 하다. 문제는 내가 문명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문명을 선택한 바가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대단히 부조리하지만, 어차피 현실이란 부조리의 온상이 아닌가? 민노씨나 나나 운이 좋다면 살아 있는 동안은 기술에 대한 대체적인 수혜자로 살수도 있겠지만...”


- 기술 자체에 대한 입장은 대단히 회의적인 것 같다

기술의 종착역은 비극일 것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 비극을 이끄는 힘이 희극이라는 점이다. 기술은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 기술에 대한 찬양으로 이에 보답하지만, 사실 기술은 몰래 힘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그 힘은 너무나 다양하고, 동시에 엄청난 것이어서, 그 중의 하나만 사단이 나도, 인류전체가 순식간에 리셋될 것이다.“


- ‘인터넷과 중국이 결합하면…’

“일전에 아버지 카팩을 사드리려고 옥션에서 카팩을 검색했다. 1천원이었다. 배송비가 2천 5백원인데... 중국과 인터넷이 결합하면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자로서는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좋은 일일까? 일전에 지식을 공유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사람의 동영상을 본적이 있다.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중간단계가 없는 세계를 찬양했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중간단계에 속해있다. 기술은 맹렬한 속도로 중간단계를 제거하고 있다. 그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점은 참 아이러니하다.”


- 이상적인 사회 모델이 있나?

“몇 년 전에 소유의 상한을 정했다. 물론, 나는 그 상한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고, 상한은 꽤나 큰 액수다. 영업비밀이니까 공개는 못한다. 상한에 도달하면, 소비하거나, 공유할 것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상한이 없는 삶이 참 고단하게 느껴진다. 재산을 1조나 가지고 있음에도, 2조를 가지려고 바둥되는 사람들을 보면 부자라서 가난한 사람들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100억이 있는 사람이나, 1000억이 있는 사람이나 이들이 누리는 생활에는 어떠한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부터 돈은 가상의 것이 된다. 이게 게임중독이랑 머가 다른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모델은 소유의 상한과 하한이 있는 사회다. 그 룰 안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는 것이다. ( + 상한)


반대로 이 사회에 유감도 물론 있다. 이를테면 학교. 학교는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악마성의 모델하우스 같은 곳이다. 이곳을 보면 이 사회의 그늘이 그나마 명징하게 드러난다. 이를테면,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열심히 하면 너도 1등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게 개인적으로는 맞는 말인데, 집단적으로는 거짓말이 된다. 누군가는 반듯이 꼴찌를 해야 하는 악마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부조리는 '진도'인데, 이 부분은 여기까지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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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렬과 병렬’

“기대 수명을 생각했을 때 인생 중간 쯤 온 것 같은데, 한번 정리하고 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얻는 것도 많다. 이를테면 수업을 만든다는 것은 내 안의 경험을 유통 가능하게 이론화시키는 것인데, 이게 참 어렵고, 재미있는 도전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 직렬화 병렬화)


- ‘나로 인해 누군가 자신감을 갖는다면 행복할 것 같다’

“나는 20대 전체를 의기소침함과 싸운 것 같다.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몇 가지 기질과 우연히 얻게 된 관념들 그리고 모종의 환경들 덕분에 나름 자신감이라는 것을 회복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의기소침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자신감은 행복감의 실체다. 이것이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


- <생활코딩>의 로드맵

나도 개발자라 클라우드 컴퓨팅, nosql, 모바일, 소셜 같이 섹시한 토픽들을 다뤄보고 싶다. 그런데 그건 ‘생활코딩의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는가?’ 해서 기초인 PHP, 데이터베이스, 운영체제와 같은 것들을 충실하게 하고, 그 다음에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다뤄볼 생각이다.


- <생활코딩>은 직업인가 취미인가?

“명백하게 취미다. 직업보다 빡시게 하고 있지만 ,그건 당연하다. 직업은 살기 위한 것이고, 취미는 사는 이유니까. 아무튼 생활코딩 시작하면서 결심한 것이 있는데, 하나는 돈을 벌지 않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기획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노동하지 않겠다는 거다. 직장 그만두면서 독립된 계좌를 만들었다. 그 안에 딱 연봉을 넣어 놨는데, 잔고가 없어지면 일하러 갈 생각이다. 물론, 잔고는 맘 편하게 활동하기 위한 심리적인 장치일 뿐이다. 필요하면 줄일수도, 늘릴수도 있다.”


- <생활코딩>이 장래의 직업적 가능성과 연계되지 않겠나?

“간접적인 것은 막을수 없고, 어쩌면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내 맘을 잘 모르겠으니까. 하지만 직접적인 부분은 분명하게 단절시켜왔고, 단절시킬 것이다.“


- <생활코딩>학생들과의 관계는? 학생들에게 어떤 사람인가?

“일단 선생님. 친구이기도 하고. 관계를 맺을 때 뭔가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블로그에서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너무 고맙다. 하지만 독자들도 내 글을 읽으면서 고마움을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 ‘취미에선 순결해지고 싶다. 돈이 끼어들면 그게 망가진다.’

“이를테면 블로거 이고잉은 작가이고, 내 블로그를 구독하는 분들은 독자인데, 나는 내 글을 봐주는 분들에게 무한한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어쩌면 못생긴 내 글을 굳이 구독하는 분들도 나에게 조금은 고마운 마음을 느끼지 않을까? 서로가 고마워하는 이런 관계가 나는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사이에 돈이 끼어드는 순간 모든 관계가 생산자와 소비자로 환원된다. 그래서 직업이 중요하다. 취미를 취미의 영역에 고립시켜놓고, 즐기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나는 직업의 영역에서는 어떻게 하면 연봉과 지분을 높일까를 항상 고민하고, 경쟁사를 찍어 눌러서 마켓쉐어를 넓힐수 있을까?에 몰두한다. 비즈니스엔 항상 그늘이 있고, 때가 묻는다. 그래서 취미가 중요하다. 이렇게만 살수는 없으니까!! 나에게 직업과 취미는 재귀적인 관계다.”


- 재귀적인 관계?

개발자들이 쓰는 말이다. 무한반복된다는 의미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 보통 사람들은 ‘직업' 때문에 ‘취미' 영역을 포기하게 된다.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내가 생각하는 ‘취미’와 ‘직업’은 지극히 개인적인 정책일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내 정책을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이게 정답이라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개인적인 정책일 뿐이다. 나를 떠나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선 어떤 판단도 하지 않는다.”


- <생활코딩>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내고자 한다면?

“베스트는 그것도 받지 않는거다. 나는 정말로 나의 취미 영역에서는 돈이 개입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직업의 영역에서 조달하고 싶다. 이것을 위해서라면 직업의 영역에서 기꺼이 더 탐욕스러워 질 것이다. 하지만, 베스트는 베스트일 뿐이라는게 문제다.”


- <생활코딩>은 현재 얼마나 진행중인가? 100이라고했을 때.

“기초를 다진다는 차원에선 80정도? 완성도와는 별개로. 퀄리티에 대한 걱정은 항상 있는 편인데…. 그걸 걱정하는 게 좋은건지는 모르겠다.”






- <생활코딩> 자매 프로젝트

“효도코딩, 개발자영어, 생활요리(나는 자취생이다), 생활디자인, 생활드로잉, 생활육아, 생활쇼핑몰.”


- 각각에 대해 짧게 설명하면?  

“<효도코딩>(이고잉)은 어르신에 대한 기술교육. <생활드로잉>(어슬렁)은 그림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린 그림도 공유하는 프로그램. <생활요리 : 자는 자취생이다>(a양)는 자취생들을 위한 요리 프로그램,  <개발자영어>(나솔)는 개발자를 위한 영어교육. <생활디자인>(리나)은 생활코딩 같은 디자인 수업. 포토샵 사용법 등등. <생활육아>(리체)는 애 키우는 노하우를 공유. <생활쇼핑몰>(미페이)은 쇼핑몰 창법하는 법을 공유한다.”


- 각각은 어떤 공통분모를 갖나? 이고잉은 어떤 역할로 참여하나?

“말이 좀 이상한데, 나는 일종의 롤모델을 제공한다. 처음 생활코딩을 할 때는 컨텐츠에 대한 생각 밖에 없었다. 그런데 진행하다 보니까 생활코딩에 맞는 옷이 없더라. 블로그도 그렇고, 게시판도 그렇고... 다행인게 나는 컨테이너를 만드는 직업인이 아닌가? 그래서 직접 만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먼가 공허하고,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그룹을 만들었고, 그게 생활코딩 페이스북 그룹이다. 그리고 가만 보니까 이게 모종의 패턴이 있더라. 그래서 만든 전략이 ㅋㅋㅋ 전략이다. 컨텐츠, 컨테이너, 커뮤니터의 삼박자랄까? ㅎㅎ (+ 생활코딩 페이스북 그룹) ( + ㅋㅋㅋ 전략)”


- 직접 관여하는 작업은 뭔가?

“같이 수업을 기획하고,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만나게 해주고, 또 첫 번째 녹화가 뻘쭘하면 같이 출현도 한다. 이게 사는거구나 싶다."


- 각각의 프로젝트는 잘 진행되고 있나?

“준비중인 게 많다. <효도코딩>은 2012년 1월 1일에 런칭할 생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효도코딩

설을 앞두고 '효도코딩 : 종합선물세트'를 준비중이라고 한다.



- <생활코딩>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힘든게 가장 크다. 그 외의 감정들은 구체적이지 않다. 유일하게 구체적인 감정은 ‘힘들다’라는 감정이다. 그게 동력이기도 하다.”


- 앞으론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웹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 웹브라우저를 만드는 사람들, 오에스 만드는 사람, 하드웨어를 만드는 사람, 전력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계된 시스템의 요소들의 인터페이스를 관찰하고 대중지식화 하고 싶다. 각 단계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론화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면 더욱 좋겠다. 누구에게나 관객은 필요하다. 관객 없는 삶은 초라하니까.”




... 이고잉 인터뷰 내일 계속




박정근과 독일 형법 2조

2012/01/17 13:43
박정근이 대통령에게 글을 썼다( + 이명박 각하께 보내는 공개서한). 나는 이 글이 별로다. "우리는 모두 박정근이다."라는 대단히 감동적인 문구에 격하게 공감하는 것과는 별론으로, 나는 개인 박정근의 트위터 활동이나 글에 별다른 관심도 매력도 느끼지 못한다. 개인 박정근이 맘에 들거나 말거나, 그가 쓴 글이 별로거나 말거나 중요한 질문은 이렇다. 

박정근을 구속한 국가는 정당한가?
그런 국가와 사회를 우리는 지향하는가?

나머지는 박정근 구속 사태에서 부차적이다. 박정근 맘에 안들어, 짜증나, 싫어! 이런 사람들을 종종 접한다. 그리고 그렇게 박정근 싫다는 사람들 대부분은 박정근 구속을 옹호한다. 독일 형법 2조는 "건전한 국민감정에 반하는 행위는 법률 규정이 없어도 벌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물론 그 독일은 '나치'가 창궐하던 그 독일이다. 21세기 대한민국 국가보안법은, 마치 독일 형법 2조처럼, 한 인간의 자유를 '국가'라는 알 수 없는 괴물의 감정를 빌어 재단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국가를 마치 사적인 감정의 대리인처럼 바라본다. 이건 마치 '짐이 국가다'의 잔인한 코미디 버전 같다. 국가와 법은 당신이 싫어하는 어떤 사람을 억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정서' 따위의 모호한 가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다를 수도 있는 '개인의 자유'를 위해 가장 우선해서 존재한다. 이 자유를 제한하려 할 때 법은 끝까지, 최후까지 인내해야 한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시민사회는 그 인내심를 조금씩 키워 왔다. 매맞고, 피를 뿌리며, 죽음으로 저항하면서 그렇게 법을 만들었다. 그게 헌법이다. 그게 어떤 사회가 도달한 법의 정신이며,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법을 만든다. 그리고 그 법은 당신이 싫어하는 누군가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싫어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핍박당할 수 있는, 당신을 위해서 존재한다.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나치의 독일이나, 현실 소비에트의 독재가 당신 마음에 새겨진 당신이 원하는 국가임을 인정하는게 순서일게다.


* 참조
1935년 독일 형법 제2조
"건전한 국민감정(gesundes Volksempfinden)에 반하는 행위는 법률의 규정이 없어도 벌할 수 있다."

1926년 소련 형법 제16조
"공산주의혁명의 목적상 사회에 위험한 행위는 실정법을 떠나서 처단할 수 있다."

독일과 소련의 역사적 치욕으로 남아 있는 위 조항들은 각각 1946년과 1958년에 폐기된다. 

* 박정근
박정근은 트위터에서 북한 계정(우리민족끼리 등)을 RT(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돼 조사받고 있는 25세의 대한민국 청년입니다.




이고잉 인터뷰 S# 2. 블로거 이고잉

2012/01/16 23:57


인터뷰이 : 이고잉

인터뷰어 : 민노씨


일시 : 2011년 12월 30일 2시 17분 ~ 11시 15분

장소 : 한남동 복합문화공간, 그리고 밥집과 커피전문점.

1. 인생이란 진지한 표정으로 거론할 수 있는 그런 하찮은 게 아니다

2. 마당

3. 탐앤탐스


1. 이고잉 egoing

2. 블로거 이고잉

3. 생활코딩

4. 인터넷

5. 스트림과 아카이빙
6. 트위터

7. 허무에 대하여

8. 우린 그냥 좀더 이야기하기로 했어  



S#2. 블로거 이고잉

“나는 글 쓰는 게 좋다. 글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 사람들은 이고잉 블로그를 함축적이고 간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대단히 장식적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실제로 장식적이다. 학창시절에 문학회를 했다. 우리 문학회는 시를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시가 좋아서 문학회에 소속된 것이 아니었다. 선배들이 멋있었고, 사회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문학회 소속이라면 시를 써야 한다. 그래서 거짓말로 시를 썼다. 내 인생에서 가장 거짓된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습관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서 여기까지 왔다. 이것은 부끄러운 것이지만, 이 역시 나의 한 단면이다. 그리고 그 그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좋게 말하면 미학적인 글을 만들기 위해서 쓴다. 그게 나쁘게 말하면 장식적인 것이 되겠지. 아무튼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그것이 미학적이지 않거나, 장식적이지 않으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다. 그렇다고 나의 글이 아름답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방향성이 아름다움을 향해 있다는거지. 이거 참 빈곤한 비유라는 것은 아는데, 구글과 애플 중 글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디에 가깝냐고 물어보면 애플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구글을 좋아하는데....“


- 짧은 제목을 고집하는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다. 나중에 내가 쓴 글들을 보니까 제목들이 다 짧더라. 그 때, 내가 짧은 제목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부터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다. 종종 겁나 긴 제목도 있다.”  ( + 내가 장사를 한다면 이런 것들은 꼭 해보고 싶다 )


- 이고잉의 텍스트는?  

“내 텍스트는 폐쇄적이다.”


- 폐쇄적이다?

“원초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는 학교 시절에 그다지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이해도, 암기도 잘하지 못했으니까. 산만하기까지 했다. (- 사람들은 당신을 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게 득이 될 때도 있고, 실이 될 때도 있다. 공부를 못했던 이유와 폐쇄적인 이유가 같다. 암기와 이해에 대해선 여전히 컴플렉스가 있다. 하지만 산만함에 대해선 생각이 좀 달라졌다. 산만한 성격 덕분에 어떤 텍스트를 쉽게 다른 것으로 변환했던 것 같다. 연상작용이 심하게 일어나는 면이 공교육의 안에서는 산만함으로 탄압 당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산만함의 기술적 발현이라는 하이퍼텍스트, 다시 말해 웹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 하이퍼링크는 폐쇄적이지 않은 속성인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의 텍스트에 몰입하지 못하니까. 폐쇄적이라고 느낀다. 예전엔 죄책감도 느꼈지만. 이게 내 모습이니까. 갈라파고스처럼. 그렇게 느낄 때가 있다.”


- 블로깅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요즘 잘 안하는데? (웃음)”


- 블로깅은 이고잉에게 뭔가?

나의 생각은 대체로 진부하다. 이런 진부함을 어장 관리한다. 그러다 보면 진부함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유레카!’를 외치며 글을 쓴다.”  


- 영감처럼?

“영감이란 표현은 싫고, ‘diff’(차이점을 비교하는 툴. 개발자들의 관용어)처럼. 그런 순간이 있다. 익숙한 것에서 균열이 느껴질 때. 글을 쓰는 순간은 그런 뭔가를 발견했을 때다. 그건 사회적일 것일 때도 있고, 놀이적인 것일 때도 있다. 어떤 경우에도 써야 할 것 같은 글을 쓰지는 않고, 발견했을 때, 그걸 쓴다.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라도, 마음으로 이게 그거였구나, 내가 느끼는, 깨닫는 순간. 누군가에겐 진부하더라도 나에겐 그게 발견이니까.”


- 가장 맘에 드는 글은?

“모르겠다.”


- 블로그에 카테고리가 없다.  

“귀 찮아서. 카테고라이징이 귀찮으니까. 카테고리는 남을 위해서 설정하는 건데, 내 글은 남을 위한 글이 아니니까. <생활코딩>은 남을 위한 활동이니까 아주 꼼꼼히 태그를 설정하지만, 블로그는 ‘발견’을 기록하는 공간이니까. 나에게 글을 쓰는 건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로 재미고, 목적이다. ”


- 취미와 직업

“요즘 천착하는 주제는 취미와 직업.”


- 취미를 직업으로 삼고 싶다?

“아니 그 반대. 친구와의 메신저에 서 ‘취미는 살아가는 이유잖아!’라고 무심결에 이야기했다. 요즘 그 말을 곰곰히 생각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건축과 수학은 도구지만, 사랑, 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다.’ 삶에 필요한 것과 살아가는 이유는 서로 다른 것 같다. 취미생활에 대한 정책은 ‘대충해도 되는 것, 직업의 이순위…’가 아니라, ‘재미있는 것, 진지한 것…’ 이라고 생각한다. <생활코딩>에 대해선 이걸 사회운동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좀 부담스럽다. 이건 재밌어야 하니까. 진지함이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가 될 때도 있다. 이를테면 사이트를 운영하다가 데이터가 날아간 적 있다. 실수로. 그런 문제를 생각하면 잠을 못잔다. 백업에 백업에 백업에… 억압이고, 재미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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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겨 읽는 블로그는?

“없다. 난독증 때문에 다른 텍스트는 잘 읽지 않는다.”  


- 블로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스타일과 콘텐츠. 블로그 스킨도 중요하다. 나에겐 스타일도 컨텐츠고, 컨텐츠도 스타일이다.


- 이고잉 블로그의 스킨

“조금씩 바뀐다. 글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조금씩 제거해가고 있다. 사각형에 대한 집착이 있다. 글을 썼을 때 분량이 정사각형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분량이 나에겐 가장 이상적인 분량이다. 예전에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마침 그 때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조카가 아팠다. 좌절스런 상황이었는데, 격한 글을 블로그에 썼다. 키보드를 치는데, 조카가 그 전에 스페이스를 망가뜨린 상황이라서 띄어쓰기를 못했는데, 그 때 딱 정사각형의 글이 나왔다. 그 고통스런 순간에 대단히 미학적으론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 그 글 제목이 뭔가?

“비공개 글이다.”


- 비공개 글은 얼마나 되나?

“공개된 글의 두 배 정도.”


- 언젠가는 공개할 생각?

“그럴 생각 없다.”


- 비공개 글 가끔 읽나?

“전혀 읽지 않는다. 대부분은 완성되지 못한 글. 완성하고도 공개하지 않은 글은 없다.”


- 블로깅의 기쁨

“뭔가 익숙한 걸 새롭게, 새로운 걸 익숙하게 바라볼 때, 그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인식을 재구성하는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런 순간에 주로 글을 쓴다. 비슷한 말들, 가령, 순수와 순진은 전혀 다른 말이다. 유사하지만, 그 유사어들이 서로 각자 살아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거대한 차이가 공공연하다면, 미세한 차이는 아주 은밀한 진실을 담고 있다. 그걸 발견하는 건 기쁘다.”  


- ‘순수’와 ‘순진’, ‘감각’과 ‘지각’, ‘주장’과 ‘의견’

순수하고 순진하다. 순수하지만 순진하진 않다. 순진하지만 순수하진 않다….가령 민노씨는 순수하지만 순진하진 않은 것 같다. 그와 비슷한 경우는 ‘감각’과 ‘지각’이다. 감각은 육체적인 지각이고, 지각은 정신적인 감각이다. 또는 ‘주장’과 ‘의견’. 주장에는 다툼이 있고, 의견에는 다툼이 없다. 그런 차이를 찾아냈을 때 ‘유레카’를 외친다. 그런 순간에 글을 쓴다.” (+ 미묘함 )


- 블로깅은 자주할 생각인가?

“SNS와 블로그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라서. 지금 나에게 가장 적합한 툴을 쓸 뿐이다.” (+ SNS와 블로그)


- SNS의 득세와 블로그의 쇄락에 대해  

“우선 관계, 소통이라는 부분이 본의 아니게 SNS로 아웃소싱 되면서, 관객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한편으로는 지식인들은 대단히 맥락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인데, 블로그라는 단일 도구 만으로는 이런 맥락을 수용하는게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를테면 블로그에서는 새로운 글이 올라오지 않으면 블로그가 죽은 것이 된다. 지치는 일이다.”  (+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서의 블로그)


- 질투를 느낄 때는?

“글을 통해선 느낀 적이 거의 없고, 영화 드라마 혹은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아! 기막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굳이 비유하면 애플과 비슷하달까. <생활코딩>을 이야기 할 때 칸 아카데미가 자주 언급된다. 물론, 질투를 느끼는 것은 아닌데, 기분 나쁘지 않게 억울하다. 나는 벤치마킹에 대단히 게으르기 때문에 칸을 몰랐고, 여전히 잘 모른다. 칸이나, 생활코딩은 차라리 시대의 압력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고, 예민하게 안테나를 세우고 있었던 사람들이 비슷한 선택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 선생님 하면 참 잘 할 것 같다. 강의하는 걸 즐기나?

“잘난 척하는 걸 좋아한다. (웃음) 원래 나는 잘난척은 좋아 하지만 남 앞에 서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이러고 있는 내가 나도 놀라운데,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추면서 남 앞에서 잘난척하는 것이 자유로워졌다. 개발자로 나의 수준을 말도 안되게 서열화 해보면 한 51% 정도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나 밖에 없다. 깔대기는 아니다. 당연한 말 아닌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 밖에 없는 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그걸 깨닫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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