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 : 이고잉 (egoing)
인터뷰어 : 민노씨
일시 : 2011년 12월 30일 2시 17분 ~ 11시 15분
장소 : 한남동 복합문화공간, 그리고 밥집과 커피전문점.
1. 인생이란 진지한 표정으로 거론할 수 있는 그런 하찮은 게 아니다
2. 마당
3. 탐앤탐스
1. 이고잉 egoing
2. 블로거 이고잉
3. 생활코딩
4. 인터넷
5. 스트림과 아카이빙
6. 트위터
7. 허무에 대하여
8. 우린 그냥 좀더 이야기하기로 했어
S#6. 트위터
"트위터는 진영을 비즈니스화 했다."
- 책을 쓴다면 싶다면 어떤 책을 쓰고 싶은가?
"책을 쓸 생각이 없다. 다만, 책을 쓴다고 가정하면 쓰고 싶은 것들은 몇 개 있다. 표지 디자인까지 가지고 있는데 ㅎㅎ 그 중의 하나가 LENGTH다. 랭스는 우리말로 길이라는 뜻인데, 근래의 미디어 현상을 이야기하는데 길이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것 같다.또 다른 주제가 리얼리즘이다. 세상은 리얼리즘을 욕망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화상전화가 여전히 외면 당하고, 스마트폰의 시대에도 문자메시지가 이토록 각광받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어떤 점에서는 오히려 리얼리즘을 꺼린다.
그 외에 동기성에도 관심이 많은데, 이를테면 전화는 동기적이고, 메신저는 비동기적이다. 다시 메신저는 동기적이고, 이메일은 비동기적이다. 즉 전화는 서로가 전화기를 앞에 두고 있어야 하는데, 이메일은 보고 싶을 때 보면된다. 기술은 동기적인 미디어를 욕망하며 발전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비동기적인 것을 좋아한다. 사실 문명 자체가 비동기성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고도화되었다. 구글의 웨이브가 망한 것을 생각해보자. (+ 구글 웨이브와 이메일)
즉 길이, 리얼리즘, 동기성을 메트릭스로 만들어보면 아직 출현하지 않은 미디어를 조심스럽게 예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역시나 무엇인가를 수집하고, 검증하는데는 게을러서 못해봤다. (그게 머 어렵다고;;)"
- 트위터의 140자에 대해
"트위터의 140자 제한은 대단히 흥미로운 접근이다. 이것이 시대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아거, 호모 리시프로칸으로서 트위터 사용자들의 선택, 보복, 그리고 신뢰 (댓글 중에서)
- 트위터는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들의 근거지라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일정부분 동의 한다."- 나는 트위터의 ‘소수(유명인, 자극적인 이슈) 집중’을 우려하는 편이다.
"소수 집중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이슈라고 본다. 이것은 앞으로도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대중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 채널이 생긴 것은 평가한다. 미디어의 상층은 그대로인데, 하부에서 일정부분의 진보가 있었다고 할까? 집중화와 같은 이런 계급적인 문제는 워낙 고질적이니 차치하고서라도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측면이 있는데, 바로 진영논리다. 트위터가 팔로우 기반의 미디어이다 보니,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관계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속해있는 카테고리가 전부인양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좀 심하게 말하면 트위터는 진영을 비즈니스화했다."
2012년 1월 20일 오후 11시 쯤 '트윗믹스' 첫화면
연예인 트위터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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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메시지의 물리적 도달률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고 본다(3초면 지워질 정보들). 그 뿐만 아니라 발화자의 ‘진의'가
수용자에게 도달할 확률, 즉, ‘밀도 있는 소통의 가능성'은 더욱 더 낮아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민노씨는 블로그주의자니까 아마 그 질문은 블로그 대비를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래서 굳이 비교하자면 블로그나, 트위터나 도달률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느끼는 피로감? 허무감?은 앞서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SNS가 컨텐츠와 커뮤니케이션이 퉁쳐져 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커뮤니케이션의 유속 안에서 컨텐츠는 소모적인 형태 밖에 존재할 수 없는데 민노씨처럼 공들인 컨텐츠주의자에게는 트위터가 대단한 시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민노씨나 나와 같은 블로그주의자들이 갖는 어떤 섭섭함은, 블로그는 나의 사적 점유를 주장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 안에서 나와 방문객들은 포스트와 댓글이라는 엄격한 규격과 모종의 위계를 통해서 존재하는데, 트위터는 그런 게 없는 것 때문이 아닐까? 농담 삼아 이야기 해보면, 히끼꼬모리 생활을 하던 사람이 노숙생활을 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 답변(규격과 위계에 대한 지적)을 듣고 보니 내가 마치 귀족주의자 같다(ㅎㅎ. 물로 나는 도시빈민이다....). 피상적 이미지만으로 보면 트위터는 평민적이고, 블로그는 뭔가 귀족적이다. 물론 그 귀족은 몰락한 귀족이겠지만.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트위터의 평민적 이미지는 결국 구조적으론 극소수의 수혜자들(명망가, 콘텐츠 관련 종사자, 열혈 트위터러들)에게 그 열매가 돌아간다는 점에서 오히려 평민 이미지를 가진 귀족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수혜가 수혜가 되려면 당사자가 그 것을 수혜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트위터하는 사람들의 다수가 자기들끼리 소통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좋아서 트위터를 하는 것이지 자신의 미디어활동을 하기 위해서 트위터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시청자에 머물러 있는 것에 익숙하다. 명망가들에 대한 불편함은 민노씨나 나처럼 블로그로 대변되는 일인 미디어 시대를 거쳐오면서 미디어적 욕망에 눈을 뜬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그니까 그 명망가분들은 예나 지금이나 귀족이었고, 다만 소위 평민들이 발언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 트위터의 의미라면 의미라고 할까? 다만, 트위터가 마치 세상을 바꾸기라도하는 것처럼 호들갑하는 것에는 부질없다는 생각이다."- 트위터에서의 ‘공감’ vs. ‘배움’
"전에 블로그에서 썼던 글로 대신하고 싶다.""때때로 배움과 공감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둘은 다르다. 배움이란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고, 공감이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다른 방식으로 재확인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배움은 컨텐츠의 문제고 공감은 스타일의 문제다. 먼가 공감이 된다면 이미 내 안에 있던 것을 표현하는 방식의 새로움이나 세련됨에 매료된 것일 뿐, 멀 배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모두들 공감에만 목을 멘다. 그리고 일제히 공감의 기획자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배움에 목말라 있는 겸손한 사람이라 여기고 은밀한 만족감을 챙겨간다. 사실 배움은 내 안에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점에서 수업처럼 따분하거나, 리서치처럼 지리멸렬하거나, 꼴통들의 이념처럼 열받는 것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배움의 풍경은 공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지 않던 것을 공감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하면 막 머라고 하면서, 같은 것을 맞다고 하는 것은 머라고 안하는 사람들과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시대. 어쩌면 그게 우리의 상한일지도.” ( + 공감에 대한 유감)
- 트위터의 140자는 대단히 매력적인 길이지만, 동시에 절대적인 한계를 가진 길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사유의 파편화, 즉물화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그 길이의 한계 속에서 사람들은 좀더 자극적인 이슈에 이끌리고, 함몰되는 느낌이다. 사유의 쉼표랄까, 그런 것이 증발된 공간 같달까... 정겨운 시장이라기 보단, 마치 먼지 가득한 공장에서 빼곡하게 일하는 불쌍한 노동자들 같단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 점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사실 140자가 즐겁다. 이건 좀 웃기는 이야기지만, 나는 내 생각을 140자 안에 우겨 넣기 위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본다. 이건 마치 내가 블로그 생활을 할 때 포스트의 길이를 정사각형 박스로 만들려고 하는 것과 유사하다. 얼마 전에 날라간 내 트위터 임시보관함에 글이 300개 정도 있었는데, 이리 궁리해보고, 저리 궁리하다가 결국 방정식을 풀지 못한 것들이다. 어찌보면 이 짓은 최근에 내가 하는 유일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길이가 문제라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짧으면 짧은대로 내용이 거세되고, 길면 긴대로 맥락이 복잡해져서 오해를 일으키니까..."- 트위터가 지배적인 형식의 대중 미디어로 자리하면, 내러티브와 스토리가 사라지고, 맥락이 거세될 것 같은 조금은 과장된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남는 건 이슈의 껍질을 한 당파와 주장들 뿐일 것 같다. 혹은 광고라던가...
"물론이다. 그리고 그런 욕구 불만을 축적하는 것이 트위터의 역할이다. 진보는 그렇게 준비되는 것 아닌가?"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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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이고잉님의 공감과 배움에 대한 의견에 공감합니다. 더 앞에서 말씀하신 "진영의 비즈니스화"와 같은 맥락에 있는 현상이겠죠? 언론에서 트위터혁명라는 과장된 수사까지 사용해가면서 보도해대길래, 뭔가 좀 배워보려고 갔다가 의미없는 맥락없는 리트윗과 수동알티의 소용돌이 속에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 계정을 죽여버린 개인적 경험이 있습니다. 미디어 관련해서는 지식이 미천합니다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소통의 본질적인 가능성은 소통의 도구보다는, 그 메세지의 내용과 소통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마치 트위터가 이집트에서 무바라크를 몰아낸 것 처럼 말하는 것은 택도 없는 수사죠.
이고잉 인터뷰에 댓글 논평이 거의 없어서 아쉽던 차에 데릭 님께서 그 아쉬움을 풀어주시네요. : )
말씀하신 바에 아주 공감합니다.
우리나라 언론의 (뉴)미디어에 대한 태도는 '유행'과 '과장', 이 두 가지라고 개인적으론 생각하는데요. 인간을 중심에 놓은 미디어적 고찰은 없고, 인간을 거세시킨 현상추수적인 유행만 만연한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더불어 말미에 주신 말씀은 아주 아주 공감합니다.
http://minoci.net/1198
http://minoci.net/1205
http://minoci.net/1219
앞으로 종종 대화를 나눌 수 있길 바라봅니다.
논평 고맙습니다.
이고잉님이 하신 "공감과 배움"에 대한 말씀을 제가 쓴 글에다가 인용하려고 하는데, 괜찮으신지 궁금합니다. 거창한 목적을 가진 글은 아니고, "토론"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그냥 개인적인 생각을 끼적거려본 글입니다. (글 주소: http://messybooks.egloos.com/435730)
Derick님 물론 좋습니다. 저의 글은 CCL 보다 강도 높은 오픈 정책인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제글이 심지어 자기 글이라고 주장해도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