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씨.네 __ 페이스북 서버에서 자라는 혁명

페이스북 서버에서 자라는 혁명

2011/06/13 17:45
- 에브게니 모로조프(Evgeny Morozov), 월스트리트저널 2011년 2월 19일
- 번역 : zninldn 블로그, 트위터 아이디 @ntolls

0. 이집트 민중봉기과 SNS에 관한 칼럼. 모로조프의 "(소셜미디어에 대한 독재적 국가권력의) 역이용 가능성"은 말콤 그래드웰의 회의론(소위 '혁명은 트윗될 수 없다.')과는 다른 지점에서 SNS와 튜니지, 이집트 시민봉기의 관계를 바라보는 의미있는 관점들 중 하나인 것 같다.(아거의 트윗).

1. 모로조프의 글은 소셜미디어, 특히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대한 낭만적 혁명의 기대감을 국가 대 시민사회간 실질적인 권력 역학, 국가권력이 활용가능한 자원과 전략 등을 예시하면서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이하 생각나는대로의 단상들.

2. 우리나라 상황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네이버와 다음, 그리고 네이트가 지배하는 웹 구조 하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혁명, 사회적 개혁의 근거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아주 거칠지만 도식적인 질문도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말이 되는 질문인지 아니면 억지스런 끼워맞추기인지, 쓰면서도 갸우뚱하다. 주신부님 자주 쓰는 표현처럼, 지금 내가 쓰는 글이란게 그저 '잡감'이니 계속 생각나는대로 써보자.

국내 포털은 이미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혹은 방통위법, 그것도 아니면 저작권법, 형법, 하다못해 전기통신법의 그런 조항이 다 있어? 하는 그 온갖 제도적 족쇄들로 저항의 잠재력을 '무장 해제' 당한지 오래다. 그게 밖에 있는 제도라면, 안에 있는 시스템 얼개는 어떤가? 일말의 체제 저항적 시도들, 그 전복적 감수성은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완벽하게 무력화되고, 달콤한 순응형이 된다. 네이버 블로그나 다음 카페에서 혁명의 감수성이 자라날 가능성? 소녀시대가 콘서트에서 '철의 노동자'를 부를 가능성이 차라리 높겠다.

2-1. 트위터.
그럼 트위터는? 페북은 잘 모르겠고(나는 이 서비스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트위터는 글쎄, 적어도 체험적으로 트위터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아주 지엽적인 차원에서의 시민운동 혹은 사회운동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속적인 체제 변혁의 동력으로 트위터가 기능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나 싶다. 트위터의 잡담들이 혁명에 관한 일반 민중의 감수성을 일깨울 가능성? 무슨 그런 농담을...

거칠게나마 일단 표현하면, 트위터의 압도적 노이즈는 포털의 '실시간 인기 검색어'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노이즈가 그 나름으로 대단히 의미있는 정서적인 '농담' '잡담'이더라도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변혁이나 혁명의 가능성은, 뭐랄까, 그런 혁명, 변혁, 반항까지를 '잡담화'한달까, 그런 느낌이 든다. 혁명이 농담으로 가능할 수 있다면, 고압적인 선동이나, 피를 끓게 하는 공포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 그 극한의 감정들이 아니라, 시트콤의 감수성으로, 때론 멜러드라마의 감수성으로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 혁명은 정말 근본적으로 새로운 혁명이긴 하겠다. 하지만 글쎄.... 트위터를 체제 순응적인 기제라고 단정하는 것도 웃기지만, 트위터를 체제 변혁 도구라고 말하는 것도 과하다. 그렇다고 트위터가 가진 긍정적 속성, 가능성, 이런 걸 무시하는 건 아니다. 트위터는 그냥 트위터다. 있으면 덜 심심하지만, 없어도 크게 아쉬울 것 같진 않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열심히 트윗하는 당신! 열심히 트윗하는 만큼 비판적 사회의식, 도전적 인식들이 당신 안에 스며들고 있는 것 같습니까? 나는 전혀 아닌데, 그렇다고 할 사람 많다면, 나는 아주 환영이다. 아주 아주 환영!

3. 뭔가 석연찮은 부분이 있는데, 생각나는대로 나열하면 이렇다. 기본적으로 튀니지나 이집트 사례를 소셜미디어 혁명으로 이야기하는 관점을 나는 다소 비판적으로 바라보는데, 그건 마치 프랑스 혁명이 마리 앙트와네트를 소재로 한 포르노그래피를 통해서 이뤄졌다는 주장 만큼 과장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렇다고 그 의미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거대 IT 기업의 서비스를 인터넷으로 동일시하는 관점은 좀 아쉽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네티즌들에게 네이버나 다음이 인터넷 그 자체이듯, 이제는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마치 인터넷 그 자체인 것 같다. 미국의 거대 소셜미디어 서비스가 인적 구심점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모로조프의 '현실론'은 당연히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그런 거대 서비스를 중심으로 소위 '거기의 혁명'을 서구/미국의 관점에서 철저하게 객체화시키는 관점은, 뭐랄까, 철저하게 오리엔탈리즘 관점에 서 있는 느낌이다.

6. 웹은 이제 '독립적 개체들의 분산화된 네트워크의 총합'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서비스 안에서 이뤄지는 '약관에 동의한 서비스 회원의 총합'인 것 같다. 이집트의 민중봉기, 그 시민혁명에 대해 말하면, 본질적인 관점에서 민중의 오랜 고통 속에서 혁명은 발아하고, 그렇게 싹 틔어진 혁명은 '사건'(상징)을 만나 폭발한다. 여기서 그 기폭제 혹은 촉진제 역할을 소셜미디어가 했다거나 혹은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나는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혁명이 거대 기업의 서버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라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을 혁명의 인큐베이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거가 지적한 것처럼 당대의 정치적 변혁을 상징하는 미디어들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관점, 시민들의 혁명적 잠재력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미국의 특정 기업의 토양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는 대단히 낭만적이고, 위험을 잠재한, 결국은 현실에 순응하는 패배적 관점이다.

구글이 중국검열 정책에 굴복했던 것처럼 페이스북이 이집트 정부에 굴복했더라면?(물론 이집트는 중국처럼 큰 시장이 아니지만) 모로조프의 지적처럼 이집트 정부가 "인터넷을 잘 알기 때문에" 이에 대한 효과적인 억압 전략을 가져갔다면? 자명한 사실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독재권력 타도하는 시민혁명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 시장의 현실적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처음엔 버티는 척(?) 하다 결국 방통위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낸 페이스북 처럼, 기업은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그것은 지금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듯 혁명을 위해 존재할 수 없다. 물론 나는 이 고답적인 명제가 깨지길 누구보다 원한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서 이제 기업이 아닌 세력은 그 존재 자체가 티끌처럼 미미해져가고 있으니까.

까지 썼다가 다시 이어서... 유지하지 않고 갱신할 예정.

49. 최근 신비와의 대화에서도 잠깐 썼지만, 나는 김여진씨나 날라리 외부세력, 아주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런 움직임들이 아주 아주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해. 하지만 여전히 그 멋진 움직임들을 나는 '구경'한다. 나는 관객이 다. 내가 수줍음이 많아서 그럴수도 있고, 내 자폐적인 선입견이 강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관객이 아니라 친구가 되고 싶은 걸.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 되기 보다는 블로거들 속에서 블로거들의 정다운 이웃, 민노씨가 되고 싶고, 인터넷 주인찾기라는 모임에서 민노씨를 하고 싶다.

625. 인터넷 주인찾기가 세 번째 컨퍼런스를 연다. 홈페이지는 바이러스로 마비 상태고, 발제안은 회의에 회의를 장장 3주 동안 거듭했음에도 여전히 미완이다. 타이틀도 정해진 바 없다. 오늘 오프라인 회의를 통해 급한 것들을 결정해야 한다. 이게 정말 '인터넷 주인'을 되찾기 위한 작지만 위대한 걸음인지, 아니면 컨퍼런스를 해야 하니까 하는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놀랄만큼 복잡한 테이터들이, 마치 진화된 유기물처럼, 거대하게 살아 숨쉬는 페이스북 서버의 질서정연한 코드들, 그 거대한 제국의 심장보다 바이러스로 마비된 인주찾기 서버의 엉켜진 코드, 그 안에서 내는 생채기들 속에 우리의 작은 혁명은 그 씨앗들을 뿌리 내리고 있다고. 이것이 초라하고 순진한 감상주의에 불과할지라도 우리는 누군가 걸어야 하는 이 '등신 같지만 멋진' 일을 함께 해내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는 현실창조공간이 아니라 민노씨.네..;;;



* 관련글
당신에게 블로그는 무엇이었나요? 에 묶으려다가 따로 공개.
반쯤 닫힌 웹의 월드 가든에서 아이폰 들고 블로깅 하기 여기 썼던 내용의 중언부언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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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인터넷에 국경이 없으니 너무 좋다니께

    Tracked from 비빔뉴스 2011/06/15 02:39 del.

    외국 은행 계좌라는 게 일부 탈세하고 싶은 돈 많으신 분들에게 축복이라면, 인터넷에 국경이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다. 왜냐? 민노씨 - 페이스북 서버에서 자라는 혁명 사회적 개혁과 웹서비스에 대해 얘기하는 민노씨의 위 글을 읽었는데, 나는 나도 나름 댓글로 몇 가지 추가하려다가 보니까 내 댓글이 "인터넷 국경 없어 좋지 아니한가"로 요약되는 따로글이 되는 기라. 그래서 그냥 댓글 안 달고 이렇게 글을 쓰기로 결정한 게지. "일말의 체제 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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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거 2011/06/13 23:11

    아랍 혁명을 보고 요즘 제가 생각하는 사회변혁 모엘에선 시민들이 사회변혁에 참여하는 경로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이른바 숙의민주주의를 따르는 경로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공감을 통해 참여로 이르는 겁니다. 배타적이라기 단정하긴 그렇지만, 대체로 첫번째 경로를 따르는 사람들은 토론형 미디어를, 후자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회참여에 이를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건 순전 미디어 중심적 사고이고, 미디어 설명 이전에 개인적 변수들이 상당히 많이 존재하죠.
    좀 더 구체화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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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1/06/14 04:32

      오늘 인주찾기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아이폰을 통해 혹시(!) 댓글이 있을까 둘러봤는데, 아거님 댓글이 있어서 무척 기뻤습니다. : )

      최근(?)에 트윗으로 '숙의민주주의'에 관한 글들을 소개한 연유가 거기에 있었군요.
      "토론형 미디어"는 주로 블로그를 가리키는 것인가요?
      블로그는 점점 더 '독백형' 미디어가 되어가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물론 소리 없는, 예전에 게이터로그식 표현을 빌자면, 비가시적인 독자들은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현저히 눈에 보이는 독자'들은 트윗하시느라 많이들 바쁘신 것 같습니다.

      "개인적 변수들"에 관한 설명이 벌써부터 궁금하네요.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 노이 2011/06/14 00:10

    잘 읽었습니다. 저도 페북과 트위터에 초기에 열광하다가 지금은 잠시 거리를 두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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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1/06/14 04:32

      오타와 비문으로 가득한 글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

  3. 민노씨 2011/06/14 04:33

    * 오타 비문 사소하게 수정. 불명료한 표현 사소하게 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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