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도약

2012/01/20 18:17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책, 장 그르니에의 <섬>에는 '고양이 물루'라는 챕터가 있다(기억이 맞다면).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짐승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장 그르니에)

지금 여기에 있는 유일한 소리는 컴퓨터 돌아가는 펜 소리다. 아, 그리고 내 알 수 없는 생각들을 활자화시키는 키보드의 '탁.탁.' 하는 소리. 어쩌면 그게 마치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소리인 것 같은 적막감을 느낀다. 어젠 주낙현 신부님과 우재씨, 피타님의 전화를 받았고, 저녁엔 세어필, 성나, 이승환을 만났으며 많은 인주벗들과 메일을 통해서 이야기했다. 트윗을 몇 개 쯤 날리고, 이고잉님과 구글톡으로 이야기하고, 마냐님과 통화를 했다. 지난 주 부터 틈틈히 보고 있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 9편을 봤고, 진보넷의 정책과 이슈 페이지를 훑어봤으며, 이고잉님과의 전체 인터뷰가 담겨 있는 구글문서를 읽었다. 나는 어떤 사람들과 어떤 생각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 나는 연결되어 있다. 나는 그렇게 연결된 나를 인지한다.

하지만, '하이퍼 커넥티드 월드'라고 불리는 웹과 모바일과 각종 SNS로 엮여진 이 세계에서 나는 문득, 완전한 고립감을 느낀다. 이 침묵이 담고 있는 도약이 무엇일지 나는 모르니까. 고양이 물루는 자신의 완전한 침묵과 그 침묵이 숨겨놓고 있는 도약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그건 본능이니까. 나는 그저 미지근한 커피 같은 미열을 느끼며 이 정막에 대해 쓸 뿐이다. 그게 두려운 건지 쓸쓸한 건지 아니면 설렘과 도약을 숨겨 놓고 있는건지 알지 못한채, 그저 설을 앞둔 금요일 오후 6시 16분을 지나가는 이 시간과 이 좁은 공간 속의 감상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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