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근과 독일 형법 2조

2012/01/17 13:43
박정근이 대통령에게 글을 썼다( + 이명박 각하께 보내는 공개서한). 나는 이 글이 별로다. "우리는 모두 박정근이다."라는 대단히 감동적인 문구에 격하게 공감하는 것과는 별론으로, 나는 개인 박정근의 트위터 활동이나 글에 별다른 관심도 매력도 느끼지 못한다. 개인 박정근이 맘에 들거나 말거나, 그가 쓴 글이 별로거나 말거나 중요한 질문은 이렇다. 

박정근을 구속한 국가는 정당한가?
그런 국가와 사회를 우리는 지향하는가?

나머지는 박정근 구속 사태에서 부차적이다. 박정근 맘에 안들어, 짜증나, 싫어! 이런 사람들을 종종 접한다. 그리고 그렇게 박정근 싫다는 사람들 대부분은 박정근 구속을 옹호한다. 독일 형법 2조는 "건전한 국민감정에 반하는 행위는 법률 규정이 없어도 벌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물론 그 독일은 '나치'가 창궐하던 그 독일이다. 21세기 대한민국 국가보안법은, 마치 독일 형법 2조처럼, 한 인간의 자유를 '국가'라는 알 수 없는 괴물의 감정를 빌어 재단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국가를 마치 사적인 감정의 대리인처럼 바라본다. 이건 마치 '짐이 국가다'의 잔인한 코미디 버전 같다. 국가와 법은 당신이 싫어하는 어떤 사람을 억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정서' 따위의 모호한 가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다를 수도 있는 '개인의 자유'를 위해 가장 우선해서 존재한다. 이 자유를 제한하려 할 때 법은 끝까지, 최후까지 인내해야 한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시민사회는 그 인내심를 조금씩 키워 왔다. 매맞고, 피를 뿌리며, 죽음으로 저항하면서 그렇게 법을 만들었다. 그게 헌법이다. 그게 어떤 사회가 도달한 법의 정신이며,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법을 만든다. 그리고 그 법은 당신이 싫어하는 누군가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싫어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핍박당할 수 있는, 당신을 위해서 존재한다.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나치의 독일이나, 현실 소비에트의 독재가 당신 마음에 새겨진 당신이 원하는 국가임을 인정하는게 순서일게다.


* 참조
1935년 독일 형법 제2조
"건전한 국민감정(gesundes Volksempfinden)에 반하는 행위는 법률의 규정이 없어도 벌할 수 있다."

1926년 소련 형법 제16조
"공산주의혁명의 목적상 사회에 위험한 행위는 실정법을 떠나서 처단할 수 있다."

독일과 소련의 역사적 치욕으로 남아 있는 위 조항들은 각각 1946년과 1958년에 폐기된다. 

* 박정근
박정근은 트위터에서 북한 계정(우리민족끼리 등)을 RT(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돼 조사받고 있는 25세의 대한민국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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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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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카사 2012/01/17 15:36

    박정근이 구속된 이유에는 트윗남발 외에도 이적문서의 소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어떤 행동을 하건간에 구속은 너무 심하다는 의견이신거 같은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우리나라를 부정하는 인간들에게 까지 자비롭지 않습니다(이를 방어적 민주주의라 하던가요?). 과연 그의 구속이 과한걸까요? 박정근은 지능범입니다. 그는 국보법에 관한 국민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는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법을 이용해서 국가에 농간질을 했습니다. 그는 분명히 생각했을겁니다. 민노님처럼 자기를 옹호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고, 자기가 처벌을 받아봤자 자기가 잃는것은 얻는것에 비하면 아주 사소할 것이라고요. 오히려 저는 박정근의 저러한 작태에 정부가 무능한 모습을 보였더라면 매우 실망했을겁니다. 제가 진짜 이 글을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하겠는것이 어째서 법을 어긴 사람을 구속하는데 자유니 뭐니 하는 잣대를 들이미냐는 것입니다. 구속당할 짓을 했는데 구속하면 안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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