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주찾기 네번째 컨퍼런스 <심의를 심의한다> 따끈따끈한 동영상이 나왔습니다!

오프라인 컨퍼런스에 찾아주신 분들은 정말 특별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한 분이거나 모처럼의 주말 여유를 자발적으로 기꺼이 포기하고, 새로운 모험에 동참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도 그렇고, 대부분의 많은 분들도 그렇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마음처럼 극복하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과 공간의 기억들을 동영상에 남기는 것이고, 또 그것을 통해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1월 14일 숙명여대 진리관 중강당에서 있었던 <인터넷 주인찾기 네 번째 컨퍼런스, "심의를 심의한다">의 기억을 여러분과 다시 한번 나누고 싶습니다. 원래 먼저 포스팅했어야 하는건데 깜박했네요. : )

이번 컨퍼런스에서도 소리웹(soriweb.com) 이용진 대표께서 동영상 제작을 협찬해주셨습니다.
더불어 인주찾기 홈페이지 복구가 완료되는대로 동영상 및 녹취록을 정리해 공유할 예정입니다.
고맙습니다!

0. 리승환(@nudemodel), 오프닝
1. 전응휘(녹색소비자연대 이사) '심의와 검열 사이'
2. 캡콜드(@capcold), '검열과 반대의 제도들 : 미국의 사례'
3. 이정환 @leejeonohwan '여론 장악 메커니즘과 위축효과'
4. 박경신, 박경신에게 현 심의위원에게 듣는다.

5. @2MB18nomA , "18놈을 18놈이라고 부르게 해줘"
6. 펄 (@pariscom) , 열려라 문! 
7. 제라드76 (@gerrad76) , "표현의 자유와 게임심의"
8. 새드개그맨 (@sadgagman) , "누가 명예를 말하는가?"


0. 리승환 http://soriweb.com/tv/archives/638
1. 전응휘 http://www.soriweb.com/tv/archives/644
2. 캡콜드 http://t.co/skMUgCYt
3. 이정환 http://www.soriweb.com/tv/archives/642
4. 박경신 http://minoci.net/1284  
5. @2MB18nomA http://www.soriweb.com/tv/archives/646
6. 펄 http://www.soriweb.com/tv/archives/650
7. 제라드76 http://www.soriweb.com/tv/archives/647
8. 새드개그맨  http://www.soriweb.com/tv/archives/652
(퍼가기용)





이고잉 인터뷰 S#6. 트위터

2012/01/20 23:23


인터뷰이 : 이고잉 (egoing)

인터뷰어 : 민노씨


일시 : 2011년 12월 30일 2시 17분 ~ 11시 15분

장소 : 한남동 복합문화공간, 그리고 밥집과 커피전문점.

1. 인생이란 진지한 표정으로 거론할 수 있는 그런 하찮은 게 아니다

2. 마당

3. 탐앤탐스


1. 이고잉 egoing

2. 블로거 이고잉

3. 생활코딩

4. 인터넷 

5. 스트림과 아카이빙

6. 트위터  

7. 허무에 대하여

8. 우린 그냥 좀더 이야기하기로 했어 




S#6.  트위터

"트위터는 진영을 비즈니스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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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고잉 트위터



- 책을 쓴다면 싶다면 어떤 책을 쓰고 싶은가?

"책을 쓸 생각이 없다. 다만, 책을 쓴다고 가정하면 쓰고 싶은 것들은 몇 개 있다. 표지 디자인까지 가지고 있는데 ㅎㅎ 그 중의 하나가 LENGTH다. 랭스는 우리말로 길이라는 뜻인데, 근래의 미디어 현상을 이야기하는데 길이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것 같다.  

또 다른 주제가 리얼리즘이다. 세상은 리얼리즘을 욕망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화상전화가 여전히 외면 당하고, 스마트폰의 시대에도 문자메시지가 이토록 각광받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어떤 점에서는 오히려 리얼리즘을 꺼린다.


그 외에 동기성에도 관심이 많은데, 이를테면 전화는 동기적이고, 메신저는 비동기적이다. 다시 메신저는 동기적이고, 이메일은 비동기적이다. 즉 전화는 서로가 전화기를 앞에 두고 있어야 하는데, 이메일은 보고 싶을 때 보면된다. 기술은 동기적인 미디어를 욕망하며 발전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비동기적인 것을 좋아한다. 사실 문명 자체가 비동기성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고도화되었다. 구글의 웨이브가 망한 것을 생각해보자. (+ 구글 웨이브와 이메일


즉 길이, 리얼리즘, 동기성을 메트릭스로 만들어보면 아직 출현하지 않은 미디어를 조심스럽게 예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역시나 무엇인가를 수집하고, 검증하는데는 게을러서 못해봤다. (그게 머 어렵다고;;)"


- 트위터의 140자에 대해

"트위터의 140자 제한은 대단히 흥미로운 접근이다. 이것이 시대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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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거, 호모 리시프로칸으로서 트위터 사용자들의 선택, 보복, 그리고 신뢰 (댓글 중에서)


- 트위터는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들의 근거지라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일정부분 동의 한다."

 
- 나는 트위터의 ‘소수(유명인, 자극적인 이슈) 집중’을 우려하는 편이다.
"소수 집중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이슈라고 본다. 이것은 앞으로도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대중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 채널이 생긴 것은 평가한다. 미디어의 상층은 그대로인데, 하부에서 일정부분의 진보가 있었다고 할까? 집중화와 같은 이런 계급적인 문제는 워낙 고질적이니 차치하고서라도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측면이 있는데, 바로 진영논리다. 트위터가 팔로우 기반의 미디어이다 보니,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관계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속해있는 카테고리가 전부인양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좀 심하게 말하면 트위터는 진영을 비즈니스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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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월 20일 오후 11시 쯤 '트윗믹스' 첫화면
                                          연예인 트위터가 눈에 띈다.

 

- 트위터에서 메시지의 물리적 도달률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고 본다(3초면 지워질 정보들). 그 뿐만 아니라 발화자의 ‘진의'가 수용자에게 도달할 확률, 즉, ‘밀도 있는 소통의 가능성'은 더욱 더  낮아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민노씨는 블로그주의자니까 아마 그 질문은 블로그 대비를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래서 굳이 비교하자면 블로그나, 트위터나 도달률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느끼는 피로감? 허무감?은 앞서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SNS가 컨텐츠와 커뮤니케이션이 퉁쳐져 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커뮤니케이션의 유속 안에서 컨텐츠는 소모적인 형태 밖에 존재할 수 없는데 민노씨처럼 공들인 컨텐츠주의자에게는 트위터가 대단한 시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민노씨나 나와 같은 블로그주의자들이 갖는 어떤 섭섭함은, 블로그는 나의 사적 점유를 주장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 안에서 나와 방문객들은 포스트와 댓글이라는 엄격한 규격과 모종의 위계를 통해서 존재하는데, 트위터는 그런 게 없는 것 때문이 아닐까? 농담 삼아 이야기 해보면, 히끼꼬모리 생활을 하던 사람이 노숙생활을 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 답변(규격과 위계에 대한 지적)을 듣고 보니 내가 마치 귀족주의자 같다(ㅎㅎ. 물로 나는  도시빈민이다....). 피상적 이미지만으로 보면 트위터는 평민적이고, 블로그는 뭔가 귀족적이다. 물론 그 귀족은 몰락한 귀족이겠지만.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트위터의 평민적 이미지는 결국 구조적으론 극소수의 수혜자들(명망가, 콘텐츠 관련 종사자, 열혈 트위터러들)에게 그 열매가 돌아간다는 점에서 오히려 평민 이미지를 가진 귀족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수혜가 수혜가 되려면 당사자가 그 것을 수혜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트위터하는 사람들의 다수가 자기들끼리 소통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좋아서 트위터를 하는 것이지 자신의 미디어활동을 하기 위해서 트위터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시청자에 머물러 있는 것에 익숙하다. 명망가들에 대한 불편함은 민노씨나 나처럼 블로그로 대변되는 일인 미디어 시대를 거쳐오면서 미디어적 욕망에 눈을 뜬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그니까 그 명망가분들은 예나 지금이나 귀족이었고, 다만 소위 평민들이 발언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 트위터의 의미라면 의미라고 할까? 다만, 트위터가 마치 세상을 바꾸기라도하는 것처럼 호들갑하는 것에는 부질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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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0일 오후 11시 Topsy 첫화면
유명 팀블로그, 언론사 링크들이 많이 보인다.


- 트위터에서의 ‘공감’ vs. ‘배움’

"전에 블로그에서 썼던 글로 대신하고 싶다." 

"때때로 배움과 공감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둘은 다르다. 배움이란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고, 공감이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다른 방식으로 재확인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배움은 컨텐츠의 문제고 공감은 스타일의 문제다. 먼가 공감이 된다면 이미 내 안에 있던 것을 표현하는 방식의 새로움이나 세련됨에 매료된 것일 뿐, 멀 배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모두들 공감에만 목을 멘다. 그리고 일제히 공감의 기획자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배움에 목말라 있는 겸손한 사람이라 여기고 은밀한 만족감을 챙겨간다.  사실 배움은 내 안에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점에서 수업처럼 따분하거나, 리서치처럼 지리멸렬하거나, 꼴통들의 이념처럼 열받는 것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배움의 풍경은 공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지 않던 것을 공감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하면 막 머라고 하면서, 같은 것을 맞다고 하는 것은 머라고 안하는 사람들과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시대. 어쩌면 그게 우리의 상한일지도.” ( + 공감에 대한 유감)



- 트위터의 140자는 대단히 매력적인 길이지만, 동시에 절대적인 한계를 가진 길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사유의 파편화, 즉물화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그 길이의 한계 속에서 사람들은 좀더 자극적인 이슈에 이끌리고, 함몰되는 느낌이다. 사유의 쉼표랄까, 그런 것이 증발된 공간 같달까... 정겨운 시장이라기 보단, 마치 먼지 가득한 공장에서 빼곡하게 일하는 불쌍한 노동자들 같단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 점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사실 140자가 즐겁다. 이건 좀 웃기는 이야기지만, 나는 내 생각을 140자 안에 우겨 넣기 위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본다. 이건 마치 내가 블로그 생활을 할 때 포스트의 길이를 정사각형 박스로 만들려고 하는 것과 유사하다. 얼마 전에 날라간 내 트위터 임시보관함에 글이 300개 정도 있었는데, 이리 궁리해보고, 저리 궁리하다가 결국 방정식을 풀지 못한 것들이다. 어찌보면 이 짓은 최근에 내가 하는 유일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길이가 문제라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짧으면 짧은대로 내용이 거세되고, 길면 긴대로 맥락이 복잡해져서 오해를 일으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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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시(Topsy)에서 검색한 <효도코딩>
<효도코딩>을 링크 소개한 61개의 트윗


- 트위터가 지배적인 형식의 대중 미디어로 자리하면, 내러티브와 스토리가 사라지고, 맥락이 거세될 것 같은 조금은 과장된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남는 건 이슈의 껍질을 한 당파와 주장들 뿐일 것 같다. 혹은 광고라던가...

"물론이다. 그리고 그런 욕구 불만을 축적하는 것이 트위터의 역할이다. 진보는 그렇게 준비되는 것 아닌가?"






 

제라드, <표현의 자유와 게임심의> (15:38)
http://www.soriweb.com/tv/archives/647



[화면 1. 타이틀]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표현의 자유와 게임심의'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게 된 제라드라고 합니다. 오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로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왜 뜬금없이 '게임심의'를 이야기하느냐, 이걸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 얘기로 제 발제를 시작할까 합니다.

[화면2. 표현의 자유 = 정치적 표현의 자유. 나꼼수, G20 쥐포스터. 미네르바]
표현의 자유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다. 여기 @2MB18nomA님도 오셨고, 얼마전엔 <나는 꼼수다>에 대한 심의가 시작되느냐, 마느냐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구요. G20과 관련해 쥐그림을 그린 분(박정수)이 벌금 선고를 받은 일도 있었고, 그 다음에 시간이 좀 지나기는 했지만 미네르바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정치적 표현의 자유, 그런 것들이 통치권력, 대통령에 대한 비판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정치적 표현들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관심이 많은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왜 우리는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냐, 왜 게임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되느냐,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화면 3. 헌재 판결문 중 일부]

표현의 자유에서 보호되는 표현의 자유에서 보호하는 '표현의 범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헌법에선 '표현의 자유'라는 표현을 안하고 있고, '언론출판의 자유'라고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판결을 하나 보면,

'언론출판의 자유' 내용 중 의사표현전파의 자유에 있어서 의사표현 또는 전파의 매개체는 어떠한 형태이건 가능하며 그 제한이 없으므로, 담화/연설/토론/연극/방송/음악/영화/가요 등과 문서/소설/시가/도화/사진/조각/서화 등 모든 형상의 의사표현 또는 의사전파의 매개체를 포함한다(헌재 1993.5.13. 91헌바17)  

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어떤 형태이든 어떤 매개체이든 표현의 자유의 범위 안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게임이라고 하면 주로 아이들이 주로 놀이 문화로서 즐기는 것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참 많구요. 실제로 블로거분들 가운데 게임을 안하시거나 별 관심이 없는 분들도 꽤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게임에는 이렇게 관심이 없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게임을 대하는 방식, 그런 것들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그게 표현의 자유에서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화면 4. 특정한 매체가 다른 매체보다 우월하다.]

특정한 표현이 다른 표현보다 우월하다는 생각만큼, 특정한 매체가 다른 매체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저는 상당히 전체주의적인 관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예를 들면 어떤 소설, 어떤 기사 같은 표현들은 만화나 게임 같은 좀더 대중적이고, 본질적으로 좀더 가벼워 보이는 매체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우리가 은연중에 하고 있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는 오늘 '표현의 자유'나 '심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적절한 주제가 아니지 않느냐, 그런데 그런 생각 자체가 특정한 매개가 다른 매개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게임 심의'가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보고요. (3:10)

[화면 5. 게임물 등급 분류]

그래서 지금 게임이 어떤 방식으로 분류가 되고 있고, 게임심의는 어떤 식으로 운용이 되고 있는지 간략하게 말씀을 드리면, 게임물 등급위원회(이하 '게등위')라는 곳에서 겔임물 등급분류를 합니다.    

그러니까 게임을 제작하거나 배포하려는 자가 게임물등급위원회에 게임물등급 신청을 합니다. 그러면 게등위에선 밑에 보이시는 '선정성' '폭력성' '사행성' '약물' '언어의 부적절성' '범죄' 같은 요소들을 고려하죠. 그렇게 요소들을 고려해서 맨 밑에 보이시는 'A'(All의 약자. 전체이용가 게임) '12'(12세 이용가 게임) '15'(15세 이용가 게임) '18'(청소년 이용 불가 게임) 이렇게 네 가지 등급으로 나눠서 등급을 분류하고, 그 연령에 맞는 사람들에게만 그 특정한 게임을 서비스할 수 있도록 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시스템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뭐냐하면, 게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몇 가지 예외의 게임들, 중앙 행정기관의 장이 게임대회를 연다던가, 교육목적으로 만들어진 게임 중에 대통령령이 규정한 어떤 특정 사항들을 충족시키는 게임들에 대해서는 등급분류를 받지 않고 서비스를 할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개발되고, 배포되는 모든 게임들은 게임물 등급 분류를 받아야 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엔 형사처벌이 가능한 아주 무시무시한 조항들입니다.

[화면 6.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러면 이런 게임물 등급 분류, 게임물 등급 심의 때문에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왼쪽 위에 보이는 게임은 <XNova 엑스노바>라는 게임입니다. 동시접속자수, 그러니까 한번에 그 게임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한 40~50명 정도 되는 아주 마이너한 게임이었는데요. <엑스노바>라는 게임을 만들었던 개발자가 게등위에서 공문을 한장 받습니다.

"당신이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은 게등위의 게임물등급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이기 때문에  이 서비스를 당장 중단하던가 아니면 게임물 등급신청을 해서 게임등급을 받은 뒤에 서비스를 재개하라."

이런 이야길 하는거죠. 그런데 문제는 <엑스노바>라는 게임은 아마추어가 만든 게임이고, 단지 게임을 사랑하기 때문에 만든 것이었고, 수입원이 별도로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심의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고, 그러한 심의를 받을 필요도 없다고 느껴서 <엑스노바>라는 게임은 처음엔 그 요청을 거부하고, 개발을 맡았던 분이 차라리 게임등급을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사정이 안되는 아마추어 게임을 투자를 해서 특정한 사업모델로 게임물 등급 수수료를 대신 내주고, 나중에 광고를 붙이던가, 새로운 수익원이 개발되면 이익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보겠다고 시도를 하셨는데요. 그 이후에 후속기사가 없어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고요.

오른 쪽에 보시면 지금은 <니오틴>이라고 개명을 했는데, 원래는 <니오티>를 만드는 아마추어 개발자들의 커뮤니티였습니다. 그러니까 '쯔쿠로 알피지'라는 RPG 게임 개발용 툴이 있었는데, 그 게임 개발용 툴을 가지고 아마추어 제작자들이 게임을 만들어서, '아, 내가 만든 게임은 어떠냐? 재밌냐?'이러면 '재밌다, 재미없다, 이런 요소를 보완하면 좋겠다.'

그러니까 아주 순수한 목적으로 상업적인 의도 없이 어린 친구들도 많이 들어와 있는, 다른 사람의 게임을 평가하고, 게임을 만들고자 하고, 자기가 만든 게임을 평가받고 싶어하는 이런 아마추어들이 모여서 만든 커뮤니티였는데요. 여기도 역시 게등위에서 공문을 보냈죠.

"당신들의 자료실에 올라와 있는 각종 게임들이 게임물 등급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들이기 때문에 당장 서비스를 중단하던가, 아니면 등급을 받아서 서비스를 재개하라."

제가 봤을 때 '게등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예외적인 조항들을 두지 않고, 아주 일률적이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현재 상황에서 게임물을 만든 사람들을 원칙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죠.

생각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저는 티스토리에 <함께 바꾸는 세상>이라는 작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볼품 없는 블로그지만, 예를 들면, 블로그에 어떤 글을 쓸 때마다 방송통심심의원회의 등급분류를 받아 그 글이 전체 이용가냐, 아니면 12세, 15세 이용가냐, 아니면 청소년 이용 불가냐... 심의를 받아 심의비를 내고, 그것에 따라 포스팅을 할지 안할지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해주겠다, 라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게임물에 대한 등급심의가 크게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한 이유는 아직도 나름대로 어린이들의 문화다, 놀이문화다, 여가를 즐기는 문화다, 이런 생각들이 강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은 이렇게 아마추어들이 만들고자 하는 게임들이 '게등위'의 아주 기계적인 등급심사 때문에 다 막혀 있는 상황이라는 거죠.

그리고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에 보면, 밑에 있는 장면은 <홈프론트 HomeFront>라는 게임이 있는 한 장면인데요,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이 남한을 흡수통일을 합니다. 여기 보면, 아마도 미군 병사일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요, 게임을 해보진 않았기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깃발이 이렇게 눈을 가리고 있죠. 눈 가리개로 쓰이고 있습니다. 내용은 북한이 남한을 적화통일해서 일본을 점령하고, 경제위기에 빠진 미국을 침공해서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뭐 그런 내용입니다. 상당히 쇼킹하면서도 가능성이 떨어지는 그런 이야기죠.

그런데 이건 '스팀'이라고 온라인으로 게임물을 다운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거기서 다운로딩 서비스를 개시하려고 했는데, '게등위'에서 조치를 취한거죠. 우리나라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에 보면 "반국가적인 행동을 묘사하거나" 아니면 "현실을 왜곡하는" 그래서 "국가의 정체성을 현저히 손상하는" 그런 게임들은 만들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게등위에선 우리나라에서 만든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스팀'에 공문을 보내고, 다운로딩 서비스를 제한건 맞을 것 같지만, 실제로 이런 생각들, 사상들, 이런 규제들이 굉장히 많은 것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냐, 누군가 저런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런 게임들, 이런 표현들을 관용할 수 있으냐, 받아들일 수 있으냐, 사회적 구성원의 합의가 되어 있느냐, 그런 것들이 훨씬 중요한 것 같습니다. (10:06)

[화면 7. <비명을 찾아서> 소설책 표지]

<홈프론트> 사태를 보면서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건 뭐였냐면, <비명을 찾아서>(복거일 장편소설)입니다. 85년에 나온 소설인데, 내용을 간단히 말씀 드리면,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 살해에 실패합니다. 그래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죠. 주인공은 식민지가 된 조선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회사원입니다. 그런데 아주 우연한 기회에 조선말과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 알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고민하다가 조선말로 시를 쓰고 싶어하는 욕구가 좌절되는 그런 내용인데, 역사적 가정이라고 생각해봤을 때 과연 어떨 수 있으냐, 그렇다면 과연 북한이 남한을 적화통일하고, 일본과 미국을 점령하게 되는 그런 상황, 그리고 복거일의 장편소설처럼 대한민국이 독립을 못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 있는 상황... 그런데 복거일의 장편소설은 문학계에서 굉장히 호평을 받았던 작품였거든요.    

어디까지 관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특정한 매체에 대해서는 관용의 정신이 없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곤 합니다.

[화면 8.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그래서 이런 일들이 계속되면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물론 가정입니다. 얼마전에 매체를 통해서 보도된 것인데요. 이란계 미국인 한명이 이란혁명법원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관련기사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20110140609&section=05 )  이유는 오른 쪽 밑에 보면은 <쿠마워>라는 게임을 만들었다. CIA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게임을 만들었는데, 그 게임의 내용이 뭐냐면 미국의 특수부대가 이란에 들어가서 이란의 핵시설을 파괴하고, 이란의 요인들을 테러하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이란계 미국인이었는데 이 사람이 결국 사형선고를 받게 되죠.

결국은 이런 것들이 가능한 것이냐, 가능하지 않은 것이냐의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요. 얼마나 사회적으로 이런 것들을 관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문제와 규제는 극단적인 방식에서 일어나는 것 같구요.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있을 때 사회가 그것을 관용해줄 수 있으냐, 없느냐에 따라서 표현의 자유가 인정될 수 있으냐 없느냐가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대한민국이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란이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과 얼마나 틀린가?  
이런 점을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12:43)

[화면 9. 우리는 왜 게임심의에 반대해야 하는가]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왜 게임심의에 반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얘기를 해보면, 저는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만화들을 보면, 우리와는 달리 엄청나게 다양한 소재들을 다루고 있고, 엄청나게 많은 주제들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만화책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만화들을 그리려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만화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저변이 넓고, 문화적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인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른 쪽에 보면 임정현 씨, 장성하 씨, 유튜브를 통해서 유명해진 천재 기타리스트들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가 항상 기획사에서 내놓은 음반만 듣고 있었다면 이런 사람들의 명연주를 들을 수 있었을까, 저는 게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변이 확대되고,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게임을 만들고, 모든 게임들이 자유롭게 유통되고,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이런 상황이 되어야만 그것이 표현의 자유에서 큰 축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면 10. 이런 날을 기대하며]

제가 마지막, 결론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요. 저는 게임심의를 풀고, 게임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면, 이런 것들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오른 쪽 위에는 <푸드포스. Food Force>라는 게임인데요. 기아와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기가 주인공이 되서 기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게임입니다.

오른쪽 위에 있는 <피스메이커. Peace Maker>라는 게임은 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자기가 평화의 중재자가 되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게임입니다.

밑에 보시면 <이머전시 벌스. Emergency Birth>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이건 인디 게임사에서 만들었던 게임인데요. 실제로 산부인과와 산부인과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가 태어나려고 하면 어떤 행동들을 해야하는지를 게임화시켜서 만든 겁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제3세계 국가들이나 아주 긴박한 순간에서 아이를 출산해야만 하는 그런 상황에서 행동요령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만든 게임입니다.

아마추어 게임을 만들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게임심의의 문제에 봉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게임을 만들고, 자유롭게 게임을 유통시킬 수 있게 한다면, 저자본으로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많은 아마추어 개발자들이 이런 여러가지 주제, 실제로 그것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기업에선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수많은 표현들이 블로그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 처럼, 수 많은 게임들이 이런 공익적인 목적이라던가, 아니면 다양한 목적을 갖고 유통되고, 그것을  통해 보다 많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저변이 확대되서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 감사합니다. (15:38)          


침묵과 도약

2012/01/20 18:17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책, 장 그르니에의 <섬>에는 '고양이 물루'라는 챕터가 있다(기억이 맞다면).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짐승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장 그르니에)

지금 여기에 있는 유일한 소리는 컴퓨터 돌아가는 펜 소리다. 아, 그리고 내 알 수 없는 생각들을 활자화시키는 키보드의 '탁.탁.' 하는 소리. 어쩌면 그게 마치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소리인 것 같은 적막감을 느낀다. 어젠 주낙현 신부님과 우재씨, 피타님의 전화를 받았고, 저녁엔 세어필, 성나, 이승환을 만났으며 많은 인주벗들과 메일을 통해서 이야기했다. 트윗을 몇 개 쯤 날리고, 이고잉님과 구글톡으로 이야기하고, 마냐님과 통화를 했다. 지난 주 부터 틈틈히 보고 있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 9편을 봤고, 진보넷의 정책과 이슈 페이지를 훑어봤으며, 이고잉님과의 전체 인터뷰가 담겨 있는 구글문서를 읽었다. 나는 어떤 사람들과 어떤 생각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 나는 연결되어 있다. 나는 그렇게 연결된 나를 인지한다.

하지만, '하이퍼 커넥티드 월드'라고 불리는 웹과 모바일과 각종 SNS로 엮여진 이 세계에서 나는 문득, 완전한 고립감을 느낀다. 이 침묵이 담고 있는 도약이 무엇일지 나는 모르니까. 고양이 물루는 자신의 완전한 침묵과 그 침묵이 숨겨놓고 있는 도약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그건 본능이니까. 나는 그저 미지근한 커피 같은 미열을 느끼며 이 정막에 대해 쓸 뿐이다. 그게 두려운 건지 쓸쓸한 건지 아니면 설렘과 도약을 숨겨 놓고 있는건지 알지 못한채, 그저 설을 앞둔 금요일 오후 6시 16분을 지나가는 이 시간과 이 좁은 공간 속의 감상들을...



이고잉 인터뷰 S#5. 스트림과 아카이빙

2012/01/19 21:02

인터뷰이 : 이고잉

인터뷰어 : 민노씨

일시 : 2011년 12월 30일 2시 17분 ~ 11시 15분

장소 : 한남동 복합문화공간, 그리고 밥집과 커피전문점.

1. 인생이란 진지한 표정으로 거론할 수 있는 그런 하찮은 게 아니다

2. 마당

3. 탐앤탐스

1. 이고잉 egoing

2. 블로거 이고잉

3. 생활코딩

4. 인터넷

5. 스트림과 아카이빙
6. 미디어

7. 허무에 대하여

8. 우린 그냥 좀더 이야기하기로 했어 




S#5. 스트림과 아카이빙

"대부분의 물질은 강처럼 흐르거나, 산처럼 쌓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플립보드 Flipboard'

인터뷰 중간에 이고잉이 만지작 거렸던 아이폰(아이패드) 앱 리더


- 플립보드 괜찮은가?

“익숙한 걸 새롭게 만들고, 새로운 걸 익숙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차원에서 괜찮은 접근인 것 같다. SNS라는 새로운 것을 미디어라는 오래된 것으로 풀어냈다.”


-  ‘강과 산, 아카이빙과 스트림’  

“강산에라는 말을 생각해봤다. 대부분의 물질은 강처럼 흐르거나, 산처럼 쌓인다. 디지털 컨텐츠도 마찬가지인데, 어떤 컨텐츠는 스트림(흘러가고)되고, 어떤 것은 아카이빙(쌓인다)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디지털 컨텐츠는 스트림된다. 이를테면 트위터는 스트림이다. 불과 10분전에 쓴 글이 오래된 글이 된다. 블로그도 역시 스트림이다. 이것의 유속은 트위터 보다 조금 느리다. 게시판이나 방명록이나 모두 스트림이다. 사람들은 최신의 컨텐츠만 본다. 컨텐츠를 생산하는 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에 띄기 위해서 자주 컨텐츠를 만든다. 스트림의 세계에서 (얼마나 자주 생산하느냐하는) 속도는 실존의 문제다. 느린 것은 자신에게 실제 하지만, 타인에게는 실제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블로그를 하지 않는 이유로 SNS를 지목하는데, 물론, 그런 영향도 있지만, 그 유속에 지친 것이다. 지친 사람들은 이유도 모르고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 ‘스트림’이라는 경향

온라인의 컨텐츠가 이토록 스트림 일변도인 것의 역사성을 추론해보자. 이를테면, 초기의 홈페이지들은 대체로 아카이빙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오래된 글이 상단을 차지하고 있었고, 각각의 개별적인 아티클들은, 그 글을 보고 있는 사람이 이전 글을 봤고, 이후 글을 볼 것이라는 기대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부분은 전체를 이루고 있었다. 이것은 오래된 미디어인 책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디바이스들은 이렇게 긴 컨텍스트의 컨텐츠를 소비하는데 적합하지 않았다. 모니터는 번쩍 거리고, 디바이스는 소란했으며, 자세는 수험생의 것이었다. 게다가 컴퓨팅 환경이 멀티테스킹(한번에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 쉽게 말해서 창을 여러개 띄어놓고 일할 수 있게 되었다.)으로 흐르면서 사람들은 방대한 컨텍스트를 관리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거기에 메신저와 같은 푸쉬형 서비스, 미디어의 낚시질까지 가세하면서 현대인의 정신세계는 극도로 복잡해졌다. 이래저래 긴 컨텍스트의 설자리는 없었다.


물론, 이런 정황들은 추정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실을 확인하는데 극도로 불성실하기 때문에 가급적 주장을 자제하고, 이렇듯 의견으로 연명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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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이빙 시대의 재도래를 준비하는 '오픈튜토리얼스 opentutorials.org' 


- ‘아카이빙’이 온라인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블로그를 거치면서 온라인은 컨텐츠를 유통하는 채널로서의 지위가 확고해졌고, 책에 필적하는 가독성과 지속성을 가진 디바이스들이 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 모바일은 근본적으로 멀티테스킹 프랜들리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데스크탑의 시대 대비 몰입도가 높아지고 있다.


컨텐츠는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활동이다. 요즘처럼 폭증하는 SNS의 유속 안에서는 존재자체가 어렵다. SNS로 단일화 되었던, 커뮤니케이션과 컨텐츠 활동이 차차로 분화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흐름의 이북은 좀 아닌 것같다. 내가 이북 전문가는 아니라서 최근의 논의를 따라고 있지는 못한데, 가끔 곁눈질을 해보면, 책이라는 메타포에 너무 함몰되어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스마트폰의 사례를 참조해볼만하다. 휴대폰과 컴퓨터가 단일화 된 것이 스마트폰이라고 할 수 있는데, 휴대폰은 이미지를 챙겼고, 컴퓨터는 실체를 챙겼다."


- <생활코딩>과 아카이빙

"생활코딩이 기존의 블로그의 포스트와 다른 점은, 오래된 컨텐츠 순으로 정렬되고, 각각의 수업들은 선행수업을 봤을 것이라고 간주하고 진행된다. 덕분에 생활코딩의 컨텐츠는 한벌을 만들어 놓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최신글을 만들려고 강박하지 않아도 된다."
 

- 아카이빙과 스트림의 위계

"아카이빙과 스트리밍간에는 우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아카이빙과 스트리밍의 교집합을 통해서 세상을 받아들인다. 다만, 지금까지 인터넷은 스트리밍 중심이었고, 이에 대한 욕구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다." 


아이폰앱 플립보드 Flipboard를 간단히 설명하는 이고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