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 늦어버린 카카오( http://www.kakao.com/ ) 간담회 후기 겸 이런 저런 카카오에 대한 간단한 단상들.

0. 우선 간담회에서 받은 것.
욜 비싼 햄버거(난 실은 차라리 김밥이 좋은데...ㅠ.ㅜ;). 차비 2만원. 아이리버 USB 메모리(2메가. 가카 때문에 오타났다. 당연히 2기가). 기념 노트. 기념 티셔츠(꽤 고급인 듯. 의외로 맘에 든다). 기념 볼펜. 꽤 푸짐하게 이것저것 받았다. 차비에 대해 좀더 쓰면, 참석자 이동거리, 서울인가 지방인가,에 따라 차등. 나는 서울이라서 2만원. 서울 임의 장소에서 강남(간담회 장소)까지 택시비가 대충 2만원이 넘지는 않으니 적당한 수준(혹은 약간 후한?)인 것 같다.

1. 카카오란? 
카카오의 "카카오란?"  페이지에 들어가면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만의 마이크로 카페"
(중간 생략)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 원하는 친구들하고만 논다=카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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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위 설명만으로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파악하기란 상식적인 독해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위 중간 생략 부분에는 "이젠 모두가 모인 무겁고 복잡한 기능의 카페는 Bye~"이라는 문구가 보이는데, 포토/톡톡/동영상/일정/스토리/연락처/파일/뮤직/장소 등으로 용도 분류된 카카오 역시 '복잡하다'는 부담을 갖기에는 모자람 없어 보인다. 물론 직접 사용해보면 꽤 직관적이고, 사용자 편의를 상당히 고려했단 생각도 든다. 그리고 쓰다보면 대충 알게 되겠지. 그러니까 서비스 기능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어떻게 표현하고, 설명 홍보해야 하는지에 대해 별 고민이 없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서비스 소개 페이지로선 좀 아쉽다.... 까지 썼다가 다시 한번 가서 보니 사용설명서 꽤 잘 구성되어 있다. ㅡ.ㅡ;;

그러니까 '카카오 소개하기'(이건 왜 소개할게요! 소개합니다. 것도 아니면 그냥 '소개'가 아니라, 소개하기...인지 모르겠다. 어법상 다소 어색) 아래에 있는 것들이 다 개별 메뉴얼 페이지였다. ㅡ.ㅡ;; 첫 소개 페이지에 괄호 따위로 "사용법은 아래 용도별로 참조하세요. 클릭!" 정도로 좀더 초딩스럽게(메뉴얼은 초딩스러운게 짱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설명해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카카오란?이라는 최상단 탭을 누르면 첫 메뉴얼 페이지인 '카카오 소개하기'만 설정되어 있어서... 나처럼 좀 감이 늦는 사람들은 아래 있는 용도별 메뉴얼 페이지들이 정말 메뉴얼 페이지인지 모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참석자 중 도아님(?)께서 간담회에서 지적했던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기능과 쓰임이 구글 웨이브와 비슷하다고 한다. 구글 웨이브는 그럼 뭔가? 모른다. 써봤어야 알지. 오늘 마침 칫솔님으로부터 우연히 초대장을 받아 한번 써보려고 한다. 한 10분 머물러봤는데, 감이 안온다... ㅡ.ㅡ;; 암튼, 내 식으로 표현하면 카카오란 이런 서비스다. '자료 공유를 목적으로 하는 소규모 밀폐형 커뮤니티.'


2. 내가 카카오에 잘 안가는 이유 : 아마도 배경화면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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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 쓴 표현인데, 무슨 악의가 있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다. 농담(유골)에 가깝지만, 뭐 그렇다고 진심이 아닌 것도 아니다.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다. 배경화면이 너무 맘에 안들어서 잘 안간다. ㅡ.ㅡ;;; 특히 좌측의 헬리콥터는 보고 있으면 살짝 짜증이 생길 지경이라서..페이지 바닥에 깔린 이상한 카카오 마을이 맘에 드냐 하면 물론 전혀 마음에 안든다. 앞서 카카오를 자료공유를 목적으로 하는 삼삼오오, 소규모의 다소 은밀하고, 다소 폐쇄적인 느낌의 서비스라고 설명했는데, 그렇다면 이렇게 헬리콥터 뜨고, 날씬한 엽기 구름 흘러가는 카카오 마을 디자인은 별로인 것 같다. 다시 강조하지만 내 기준으로 내 취향으로 말하는 거다. 다른 이용자들이 디자인? 굿~! 이러면 나야 아, 내 취향이 좀 비주류군! 이러면 그만이다. 내가 디자이너라면 다락방 같은 약간은 촌스럽고, 은밀한 디자인을 컨셉으로 가져갔을 것 같다. 이하 내가 주로 간담회에서 질문한 내용을 위주로(그도 그럴 것이 좀 오래되서 다른 참석자들이 질문하고 답변한 내용에 대해선 기억이 더 가물가물해서리...;;;; ) 간단히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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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저작권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앞서 카카오는 '자료 공유를 목적'으로 하는 소규모 커뮤니티라고 했다. 카카오가 성공한다면 다른 이유는 없다. 자료 공유의 효율성과 편의성을 합법적으로 공인된 웹서비스 공간에서 구현할 수 있단 그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민감한 저작권 문제가 포개진다. 공유할 자료란 상업 음원 및 영상(영화), 그러니 상업적 저작물이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간담회에서 그 저작권 분쟁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이 있는가라는 취지로 몇 가지 질문했다. 카카오측 답변은 다소 불명확한 것이었는데, 이런 저작권법과 관련한 분쟁이 생겨 대법원까지 올라가서 판례가 생기면 좋겠다고 말한 건, 그게 진심인지 그냥 외교적인 수사인지 헷갈리지만, 아무튼 인상적이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ㅡ.ㅡ; 그래서 좀 웹 문화와 산업을 함께 살릴 수 있는 전향적인 판결이 나왔으면 좋겠다. 암튼 좀더 살피면 이렇다.

저작권법 30조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
공표된 저작물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에는 그 이용자는 이를 복제할 수 있다. 다만, 공중의 사용에 제공하기 위하여 설치된 복사기기에 의한 복제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카카오측 답변은 위 저작권법 30조에 있는 "가정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에 기대어 저작권이 제한되는 경우를 상정하고 있다. 즉, 대단히 제한적인 소규모 그룹간의 자료 공유는 저작권이 미치지 않는다는 논리인데, 그 "가정에 준하는 규모"의 상한을 카카오측은 20명 정도로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하다. 이에 대해선 참석자 중 저작권 분쟁 직접 당사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자신의 소송 대리인인 변호사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기준은 4명 정도라고 했다는 거다. 그러니 카카오측 변호사와 그 참석자 분의 변호사 간 법리적 의견의 편차가 너무 크다. '사적 이용의 규모'가 문제된 판례를 찾아봤지만 그 규모를 다룬 판례는 찾아지지 않고(혹은 찾아져도 유료자료고), 그래도 유사한 판례를 찾아보니 이런 판례가 있다.

판시사항 및 재판요지 (독해 편의상 다소 편집) 
1. 인터넷 이용자들이 저작권자로부터 이용허락을 받지 않은 영화 파일을 업로드하여 웹스토리지에 저장하거나 다운로드하여 개인용 하드디스크 또는 웹스토리지에 저장하는 행위가 저작권자의 복제권을 침해하는 것인지 여부(원칙적 적극) : 유형물인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고정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저작권자의 복제권을 침해한다. 

즉, 별 다른사정이 없으면 원칙적으로 저작권 침해를 인정한다. 다만 특별한 사정, 여기에선 저작권 행사를 제한하는 30조 "사적 복제"에 해당하면 저작권 행사가 자체가 제한되어 저작권 침해는 성립하지 않게 된다. 아래 결요지는 그렇게 30조에 해당하여 저작권이 제한되는 경우의 요건에 에 관한 판결내용이다. 

2. 저작권법 제30조는 이른바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를 허용하고 있으므로, 위와 같은 이용자들의 복제행위가 이에 해당하여 적법한지 여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하의 판결요지는 사적복제가 허용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분류하고 있는데, 그 쟁점은 "해당 파일이 저작권을 침해하는 불법 파일인 경우에도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소극)"다. 물론 이에 대해 법원은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러니 업로드된 저작물이 불법이면, 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다운로딩 행위도 저작권 침해행위로 간주하게 된다. 판결요지를 따라가 보자.

1) 먼저 웹스토리지에 공중이 다운로드할 수 있는 상태로 업로드되어 있는 영화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개인용 하드디스크 또는 비공개 웹스토리지에 저장하는 행위가 영리의 목적 없이 개인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복제를 하는 경우에는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에 해당할 수 있다.

2) 그러나 업로드되어 있는 영화 파일이 명백히 저작권을 침해한 파일인 경우에까지 이를 원본으로 하여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가 허용된다고 보게 되면 저작권 침해의 상태가 영구히 유지되는 부당한 결과가 생길 수 있으므로, 다운로더 입장에서 복제의 대상이 되는 파일이 저작권을 침해한 불법파일인 것을 미필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면 위와 같은 다운로드 행위를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로서 적법하다고 할 수는 없다.

3) 다음으로 개인용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영화 파일을 ‘비공개’ 상태로 업로드하여 웹스토리지에 저장하는 행위에 관하여도,
ㄱ. 해당 파일이 예컨대 DVD를 합법적으로 구매하여 이를 개인적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파일로 변환한 것과 같이 적법한 파일인 경우라면 이를 다시 웹스토리지에 비공개 상태로 저장하는 행위 또한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로서 적법하다고 할 것이나,
ㄴ. 해당 파일이 불법 파일인 경우라면 이를 웹스토리지에 비공개 상태로 저장하더라도 그것이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로서 적법하다고 할 수는 없다.

- 서울중앙지법 2008. 8. 5. 선고  2008카합968 【저작권침해금지등가처분】

즉, 위 판결이 시사하는 바는 이렇다. 불법파일은 저작권이 제한되는 사적복제 범위에서 아예 일차적으로 탈락이고, 그래서 이걸 비공개로 다운받는, 아니면 아주 소규모(이게 정말 카카오의 바람대로 "가족에 준하는 범위"내라고 할지도) 그룹에서 대내적으로만 돌려서 공유하든 저작권 위반이다. 물론 이것이 밖으로 드러날 가능성, 혹은 저작권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은 난 잘 모르겠다. 서비스가 활성화된다는 가정하에서 본다면, 당연히 폐쇄적 커뮤니티, 것도 약관에서까지 "게시물은 공유를 목적으로 한다"(주: 이런 약관규정은 참 묘한데, 같은 아이위랩 서비스인 '위지아차트'에도 같은 문구가 있다. 아이위랩은 공유 엄청 좋아하나보다.. )로 하는 카카오는 꽤나 골치 아플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상업적 이윤을 추구하는 웹서비스 회사로서 카카오는 1. 이런 분쟁에 휘말릴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2. 이런 상황 속에서 잠재적 사용자들에게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하는 이중의 난제에 봉착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쓰다보니 또 지루하게 글이 길어지는데... 일단 여기까지만 쓴다. 다른 부가적인 내용들은 추후 보충할까 싶기도 한데, 내 게으름에 미뤄보건대 쓰지 않을 확률이 높다.


추.
간담회 사진 올리는 블로거들께 부탁 말씀. 가급적 제 사진은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ㅡ.ㅡ;
딱히 유감이 있는 건 전혀 아니고, 민망해서리...




자기보다 나은 입장에 처해 있는 사람을 보고, 부러우면 지는 거다, 라고 생각하는 분발형 네티즌들이 있는가 하면 부러우면 치는 거다, 라고 생각하는 열폭형 네티즌들도 있다. 당연히 전자는 선플을 즐기고 후자는 악플을 즐긴다. 당신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이외수)
1:33 AM Nov 15th  http://twitter.com/oisoo/status/5712356361

1. 우연히 외수옹 트위터 훑어 보다 묘한 느낌 들어 짧게 써본다. 사족이지만 나는 외수옹에 대해선 막연하게나마 호감을 갖고 있다. 책은 별로 안읽었지만. 암튼 아주 당연한 한 말씀 같은데, 왜 이 짧은 문단이 묘한 느낌으로 다가오는건지 잘 모르겠다. 열등감이나 부러움, 질투나 시기 등의 감정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오래도록 강화시켜 이제는 본능처럼 내면화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2. 우리나라처럼 급속하게 자본화가 진행되고, 봉건 잔재(양반/상놈)의 문화적 뿌리가 청산되지 못한 사회, 일제와 내전이라는 뼈아픈 역사적 트라우마를 지닌채 군홧발 정치의 가부장적 독선이 무슨 시혜인 것처럼 향수되고 있는 사회에서 뭐 문화적인, 사상적인 뿌리나 토대, 이런게 바로 설리가 없다. 그럼에도 참 대단한게 그 군홧발 정치를 시민들이 젋은 애들이 피를 뿌리면서 어쨌든 몰아냈고, 우리 사회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세력이 통치권력을 교체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3. 하지만 이 새로운 사상적 전환의 움직임은 급속하게 후퇴하는데, IMF로 뒷통수 제대로 맞아서다. 그래서 다시금 획일적이며 배타적인 줄세우기, 돈이면 장땡인 시스템이 그 군홧발을 대신하게 된다. 그리하야 배타적 폭력성을 본질로 하는 끼리끼리 혹은 줄세우기 시스템은 공식/비공식 제도로 진화되어 사회에 뿌리 박히게 된다. 나는 그게 지금/현재 대한민국 정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역시나 잡생각이 엉키기 시작하는데...

4. 쉽게 말해서 "자기보다 나은 입장"이란게 도무지 뭔지도 모른 채, 그 모든 조건/기준은 '물질'로 환원된다.  고민은 제거되고, 질문은 생략된다. 자기보다 나은 입장에 처한 사람은 당연히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또 부러움은 '지거나, 이기거나' 하는 게임으로 환원되며, 그래서 결국 '치거나, 안 치는' 폭력적 액션의 버튼 누르기 심리시스템으로 안착하게 된다. 

5. 이 자동순환하는 대한민국 심리 시스템, 그 병적인 사고패턴. 그 방향을 바꾸지 못하면, 그 뿌리를 제거하지 못하면 정말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는 점점 더 끔찍한 사회가 될 것 같다. 그러니 부럽다가 지배하는 이 사회의 감정적 밑바닥을 최소한  '다르다'라는 이성적 필터가 작동하는 심리시스템으로 진화시키지 못하면, 그렇게 한번쯤 갸우뚱할 수 있는 심리적 처리과정을 우리사회가 획득하지 못하면, 늘 그랬듯 개차반으로 잘 먹고 잘 사는 사회가 내내 영영 안녕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 줄이면 될 글을 참 길게도 쓴다.는 생각이 다 쓰고 나니 들었다.



아래 짤방은 뉴시스에서 조인스닷컴에 제공한 영화 2012에 관한 기사다. 기사 머리와 꼬리를 아무리 살펴도 기자 이름을 확인할 수 없다. 영화가 말이 필요없어서 그 기사에는 기자 이름도 필요없나 보다. :D 이런 무책임하고, 개차반인 일들이 특히 온라인 연성 뉴스들(흔히 미끼기사들이나 이렇게 보도자료의 흔적이 노골적으로 강한 글들)에서 흔히 벌어진다. 그냥 보도자료 베낀게 쪽팔려서 자기 이름을 지운건가 싶은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스스로 언론이라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자기 글에 자기 이름을 걸어어야 한다. 이건 블로그에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 말이 블로거들 역시 자신 실명을 확인시켜야 한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익명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글에 대한 자기 책임의 최소한을 확보해야 한다. 그 글과 어떤 실존의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아무튼 기자 이름도 없이 "말이 필요 없는 영화"라고 설레발치는 기사를 보자니 헛웃음만 난다.더불어 기사의 신뢰성에 깊은 의구심이 당연히 생겨난다. 이런 기사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나?

추.
통신사라서 기사공급에만 방점이 쪅혔을 수도 있겠고, 조인스닷컴에서 기사를 공급받는 과정에서 해당 기자의 이름을 누락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구체적인 영화 평에서 글쓴이가 공중증발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아래 추3. 참조)


뉴시스1

뉴시스2 

http://news.joins.com/article/919/3874919.html?ctg=15


* 발아점
[2012] 영화 자체도 쒯스럽고, 모 기자의 삽질도 쒯스럽다 (BLUEnLIVE): 비엔엘님 글을 읽고 도대체 이 기사가 어떤 기사고, 그 "모 기자"는 누군인지 궁금해서 조인스닷컴을 찾았는데, 본문에서처럼 그 "모 기자"가 누구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ㅡ.ㅡ;


추2.
좀 미진한 마음이 들어서 조인스닷컴 몇몇 기사를 살피던 중 조인스닷컴이 습관적으로(?) 기자 이름을 누락하는건가 싶은 생각이 드는 기사를 발견했다. 그냥 실순가 싶기도 하고, 암튼 기자 없는 기사는 이제 좀 그만 봤으면 한다. 더불어 온라인 연예기사들 보면 자사의 '(디지털) 뉴스팀'이라는 집단(?) 속에서 숨어서 각종의 찌라시 미끼기사들을 양산하는데, 이것도 가급적 좀 기자 이름 걸고 책임있게 기사를 내보내면 좋겠다.

1. 엔크린닷컴에 실린 중앙선데이 최원창 기자의 글
http://media.enclean.com/nws/view.do?atclId=423507&cateCode=CMT080007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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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인스닷컴에 실린 같은 글
http://news.joins.com/article/226/3875226.html?ctg=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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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3. 댓글창의 논평을 참보하니(논평 감솨~!) 해당 기사를 쓴 기자가 일부러 자신의 이름을 지운 건 전혀 아니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에게 본의 아니게 과한 비난을 가한 듯 해서 죄송한 마음이다. 이 기사에서 기자 이름이 지워진 건 조인스닷컴 측의 실수(?) 혹은 습관(?)인 것으로 보인다.



오래간만에 한RSS에 가봤다. 요즘은 brief를 주로 사용해서 이용빈도는 낮아졌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RSS 리더인 만큼 관심은 큰 편이다. 이건 뭐 공치사 같고(뭐 거짓말은 아니지만), 한편 한RSS 추천글이 개인적인 취향과 점점 더 부합하지 않아서 발걸음이 좀 뜸해진 것도 사실이다. 암튼 다음 그림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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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처럼 주소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내가 사이드바 위치를 바꾸는 과정에서 뭔가 실수를 했나 싶어서 한RSS에 가서 다시 블로그용 구독단추 주소를 복사해와서 붙였지만 결과는 같다. 아래와 같은 이상한 주소가 복사된다.

< a href="http://www.hanrss.com/add_sub.qst?url=http%3A%2F%2F"  title="한RSS에 추가"><img src="http://static.hanrss.com/images/add_to_hanrss3.gif" border="0" / ></a >


%3A%2F%2F 이란 건 아마도 :// 인 것 같다. ㅡ.ㅡ;;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싶어, 아무래도 feeds / feeds2 의 주소체계 문제인 것 같아서, 언젠가 북마크해뒀던 '한RSS 주소 통합' 요청 페이지에 가봤다. 구글이 피드버너를 인수하면서 주소체계를 지멋대로 feeds.feedbutner에서 feeds2.feedburner로 바꿨다 하길래, 그 때 좀 짜증이 났지만 나 역시 주소 체계를 feeds -> feeds2로 '수동으로' 바꿨던 적이 있다. 그런데 위 한RSS 주소 통합요청 페이지에 가보면 알겠지만, 몇몇 블로거들이 다시 feeds2 -> feed로 바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튼 역시나 무지하게 오랜만에 피드버너 내 계정 페이지로 가보니 기본 주소체계가 바뀐 feed2에서 다시 feed로 돌아온 것 같더라. 그래서 일단 나도 feeds2처럼 이상한 주소체계가 싫어서, 그리고 한 RSS 구독단추 오류가 이 주소 때문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서 위 주소 통합 페이지에 feeds2를 feeds로 통합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궁금한 건 두가지다.

1. 왜 한RSS에서 내 블로그 구독단추 주소에 오류가 생겼을까? 피드버너 주소 체계 변동 때문인가?
2. 피드버너의 주소체계는 원래대로 돌아온건가? 그럼 feeds2 주소로 구독설정해도 feeds에 자동 통합되는건가?

아시는 분 간단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추.
위 1은 일단 구독단추 위젯 편집기를 이용해서 해당 주소를 입력하는 것으로 일단 해결. 그리고 민노씨.네 블로그  RSS주소는 기존 주소체계인 feeds2에서 다시 feeds로 재설정 함.



글을 썼지만 여전히 정리가 안되서 다시 한번 써본다. 각 문단 부피는 세줄 정도로 제한해본다. 별 의미는 없고, 짧게 쓰는 연습 혹은 트위터식 놀이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고맙겠다.

1. 루저녀 현상은 우리사회의 미성숙을 반영한다. 그 미성숙한 사회는 껍데기가 실질을 파괴한, 양자의 긴장이 해체된 사회다. 그 사회는 "얼굴 보단 마음"에 대해 즉각적인 조소 내지는 무관심이 완전히 승리한 사회다. "마음 보다는 얼굴" "성격보다는 외모"가 먼저인 사회 되시겠다. 나 역시 여기에 일조했다는 생각, 당연히, 든다.

2. 표상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사회. 표지와 내용이 완전히 따로 노는 사회. 결과가 과정을 압도하고, 표지(표상)는 이제 가치 그 자체가 된다(이게 '돈'이 갖는 성질이다). (학력주의와 상관없는)학벌주의는 이를 견고화한다. 며칠 전에 끝난 수능은 단일표준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획일성을 지지하는 주요한 물적 제도다. 

3. 스펙 사회. 획일화된 표준에 바탕한 과시적 표지는  대중적인 영역에서는 '스펙'이라는 유행어로 표출된다. 그게 미수다 루저녀를 탄생시킨 직접적 토양이다. 이제 비교는 강박이 되고, 질투와 시기는 가장 훌륭한 인간성이 된다. 스펙이 내면이고, 스펙이 도덕이며, 스펙이 인간성이다. 이 야만에 우리는 줄기차게 가담했다. 아파트라는 가장 대표적인 스펙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도덕성과 민주주의를 뭥미?시켰다. 가카는 그 상징이시다.

4. 그러니 지금 꽤나 고통받고 있을 루저녀는 예외적인 똘아이가 아니다. 그 20대 초반의 철부지 여대생은 우리 사회의 상식과 도덕에 대한 놀랄만한 돌연변이는 최소한 아니다. 오히려 우리사회의 놀랄만한 진화(혹은 퇴화)에 민감하게 반응, 잘 적응한 평범한 여대생의 모습에 훨씬 더 가깝다고 봐야한다. 이건 남/녀 불문이다.

5. 그런데 나는 왜 그 발언이 "나치스럽다"고 호들갑 떤걸까? 그건 좀 구체적인 문젠데, 특히 미수다 제작진의 아무 생각 없는 무아지경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국영공영 지상파 TV 프로그램은 낸시 랭 류의 무개념 '전위 예술'을 아무 생각없이 틀어줘선 안되는거다. 제작진 총사퇴했다고 하던데, 아예 폐지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엔 변함없다.

6. 미수다는 철딱서니 없는 오리엔탈리즘, 좀더 쉽게 풀면 우리 안에 내재된 '백인(미녀)'에 대한 모방적 선민 환상을 적당한 교양과 뒤섞어 우리에게 제공했다. 그게 미수다의 최대 미덕이었고, 또 한계였다. 하지만 미수다는 이미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앞으로 남겨진 건 이미 지겹게 봐 온 꽃치장한 백인 미녀들의 착한 훈수 밖에 없다.

7. 트위터에서 미수다 루저녀 발언도 이에 대한 (과도한) 반응도 가련하다는 글을 읽었다. 마음 속 한편으론 크게 공감하면서도 정확히 취지가 잡히지 않아 질문해봤다. 이런 자극적인 이슈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지 않느냐, 뭐가 그렇게 가련한것인가? 라고. 기대했던 답변은 아니었다. 

8. 가련한게 맞긴 맞다. 루저녀도 가련하고, 이렇게 관심 쏟는 나도 가련하고, 이런 개차반 사회에서 아둥바둥대는 너나 할 것 없는 대한민국 중생들도 가련하다. 하지만 이건 무슨 초딩스런 열등감 문제만은 아니다. 이건 정말 스스로 쪽팔린거다. 거듭 확인하는 바, 이 개차반 사회를 만든 건 '그들' 뿐만은 아니고, '우리들'이다. 쯧쯔쯔..한다고 나만 그 개차반 사회에서 산신령이쥐. 이렇게 되는 건 아니라고 본다.

9. 이 사건이  '몰지각한 여대생의 안드로메다 발언'이라는 예외적인 해프닝이라면 '루저녀'나 '나'처럼 이 허접한 이슈에 관심 쏟는 몇몇 철없는 중생들을 가련하다고 조소해도 상관없다. 그 조소를 고맙게 기꺼이 받겠다. 나 하나 조소당하고, 이 사회가 건강하다는게 증명된다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10. 하지만 이 이슈는 우리사회의 야만을 상징적으로 증거하는 꽤 의미있는 사건이다. 4대강 삽질 만큼 중요하다. 그리고 그 문제 해결은 4대강 삽질문제보다 더 힘들거다. 왜냐하면 4대강 삽질은 이 거대한  대한민국의 정신적 삽질 구조, 그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1. 그러니까 이 미수다 루저녀 사건은 예외적인 막장질이 아니다. 우리사회의 욕망(궁극적으론 생물학적이며 사회적인 배타적 붕가붕가 욕망)을 솔직하게, 그런데 좀  '포르노'식으로 묘사한 사건이다. 그게 차라리 순진한 포르노가 아니라 교양으로 위장되었다는 점은 이 인종차별적 퍼포먼스를 아주 역겹게 하는 이유지만, 문제는 사회가 이미 하드 포르노라는 거다. 그게 본질이다.

12. 그렇다면 그 루저녀 역시 이 이중적인 사회의 희생양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외적으론 경건하고, 고상하기 짝이 없는 우리사회의 이중성, 그 덧에 걸려든 것일 뿐이니까. 솔직한게 죄다. 룸살롱 텐프로 쭉빵녀를 욕망하는 평범한 남자동물의 욕망과 그 루저녀의 욕망은 별 다를게 없다.

13. 마녀사냥. 이건 좀 생각을 바꿔야겠다. 이번 건 역시 사회의 철부지에게 과도한 비난이 쏟아진다는 측면에선 마녀사냥이 맞지만, 나는 이 마녀사냥이 좀더 커졌으면 좋겠다. 이 마녀사냥이 좀더 커져서, 바깥에 있는 그 힘없는 마녀만 쫓는게 아니라, 자기 안의 성찰없는 욕망을 숙주삼아 자라고 있는  그 진짜 마녀를 쫓는 것이길 바란다.

14. 마녀사냥의 효용. 한편 사회적으로 바라보면, '~녀' 사건으로 명명되는 이 마녀사냥, 인터넷을 통한 과도한 호들갑은 내가 증오해마지 않는 연예 찌라시즘을 통해 확대재생산되곤 했다. 하지만 그게 단순히 마녀사냥이라고만 치부되는 건 좀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댓글'을 읽으니 더더욱 그렇다. (다만 편의상 계속 '마녀사냥'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15. 마녀사냥과 상식주의. 우리가 흔히 마녀사냥이라고 치부하는 일견 과도한 증오와 과장된 퍼포먼스에는 우리사회에서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어지는 최소한의 '상식', 그 상식의 확인과 승리라는 사회적 순기능이 존재한다. 그건 우리가 여전히 상식 속에서 살고 있다고 우리를 안심시킨다.

16. 하지만 이 집단제의적 호들갑이 축제가 아닌, 일회적 삽질, 혹은 그저 희생양 만들기로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이유는 거기에 '자기 반성적 성찰'과 무엇보다 '정치적 상상력'이 거세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마녀사냥는 그저 힘없는 마녀를 저 정의의 화염 속에 불태우는 고색창연한 마초이즘의 광란이 되어버리곤 했다.

17. 그러니 좀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이 마녀사냥이 축제가 되려면, 즐거운 놀이가 되려면, 그 우리 안에 있는 마녀를 물리치고, 그 마녀를 키우는 각종의 기만적 담론기제들(가령 각종의 찌라시들)과 싸우며, 결국은 우리가 손가락질 했던 그 마녀라고 위장된 그 철부지와 대화하고, 그녀를 우리 편으로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18. 그게 졸 힘들고, 졸 어렵고, 졸 짜증나는 일이란 건 나도 알고 당신도 안다. 하지만 그게 우리의 마녀사냥이 그저 부질없는 해프닝의 가련함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건 그렇고, 이 거대한 사회적 퍼포먼스에는 그 최소한의 상식주의에 바탕한 다양한 문화적 시도(루저송), 상업적 시도(루저 티셔츠)들이 존재한다.

19.  '루저 티셔츠'. 반8이라는 업체에서 벌써 루저 티셔츠를 디자인해서 팔고 있더라. 그 발빠른 순발력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개인적으로 무척 아쉬웠다. 지인(이분은 화가. 디자인 및 자금 담당. ㅎㅎ)과 루저 디셔츠로 한번 장사(?)해볼까 궁리하던 중에 역시나 '준비된 업체'에 선수를 빼앗긴 거다. ㅡ.ㅡ; 다만 여전히 루저 티셔츠(와 이에 바탕한 뭔가...)엔 미련이 많다.

20. 그러니 마녀사냥이 갖는 이분법적 배타성과 폭력성을 순화시키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활발한 문화적, 상업적 시도들을 정치적인 상상력과 묶어낼 수만 있다면, 이 마녀사냥은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한판 놀이, 혹은 축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이 축제를 부추기는 연예 찌라시즘도 반가운 우리들의 홍보 도우미 역할을 할 수 있을테다.


* 관련
루저녀 단상 : 미수다 혹은 순진한 포르노. http://minoci.net/995 


* 관련 추천
본문 링크로 대신(내 글 빼고..ㅡ.ㅡ;)
그리고 루저들과 새로운 중세(socio) 강추. ( ...라퓨시안의 소개
또,  비겁해지지 말자 (산하) (... 아거의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