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라는 신흥종교

2008/07/30 11:11
재테크는 이제 종교인 것 같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신흥종교입니다. 'ㅇㅇ대여 재테크에 미쳐라', 'ㅇㅇ살까지 100억 버는 7가지 방법'류의 SF소설(혹은 재테크라는 미명하에 쓰여진 판타지소설)이 재테크교도들의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그래서 정말 20대에 10억을 벌고 30대가 끝나기 전에 100억 모을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꿈꾸는 것 같습니다. 물론 팍팍한 삶을 버티게 하는 '신데렐라' 심리만을 나무랄 수는 없겠죠. 하지만 이건 마약입니다. 재테크라는 판타지에 빠지는 것은 마약 중독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환각이 당신의 미래를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냉정하게 현실을 되돌아 봅시다. 그런 판타지 소설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됩니까? 백에 하나, 천에 하나 그렇게 억수로 운 좋은 재테크 교도가 있다고 칩시다. 그렇게 돈벼락 맞은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 나도 꼭 대박 쳐야지! 다짐하며 여느 재테크 사제의 '복음'처럼 당신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은 그 빚을 '지렛대'삼아 아파트로, 상가로, 야산으로, 펀드로, 골동품으로, 미술품으로 좀비처럼 그 고깃덩어리를 따라 옮겨다니며 당신 인생을 낭비하고 싶습니까? 그렇게 재테크에 관한 황당무계한 판타지 속에 갇혀 계시고 싶습니까?

거듭 냉정해져야 합니다.
시장은 제로섬 게임입니다. 재화는 한정적입니다. 승자가 있다면 패자가 있습니다. 전체로서의 '투기 시장'은 더 더욱 냉혹한 제로섬 게임의 룰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본에 관한 제로섬 게임이 개미들, 서민들에게 유리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 게임에서 승리했다는 개미들을 저는 본 적 없습니다. 난다 긴다하는 전문가들 예측도 신뢰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여기에 국가의 정책은 어떻습니까? 최근 'KIKO사태'로 상징되는 과도한 국가의 정책적 개입은 시장에서의 예측 가능성을 더더욱 흔들고 있습니다. 결국 KIKO 사태로 인해 '프로급 금융전문가가 있는' 대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아마추어' 중소기업들은 재앙을 맞았습니다.

재테크 사제들은 목놓아 전도합니다. 투자를 위해서는 '대출'도 마다하지 말라고 목청을 높입니다. 그렇게 대출 받은 돈을 '지렛대'(레버리지 효과)삼아 좀더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당신을 현혹합니다. 이런 유혹은 당신 인생을 '판돈' 삼아 '도박'하라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최소한의 양식을 가진 재무 컨설턴트라면 이런 도박을 부추기지 않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특히나 장기적인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시장의 불안요소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대출금을 지렛대 삼아 '과감한 투자'를 부추기는 행태는 당신의 머리에 총을 대고 '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te) 게임을 하자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돈벌고 싶으십니까?
그런데, 당신은, 도.대.체. 왜(!) 돈을 벌고 싶으십니까?
재테크 광풍은 돈 그 자체를 인생의 목적으로 둔갑시킨지 오래입니다.
이제 그야말로 물신주의는 우리시대의 제1 철학이고, 제1 신앙입니다.
돈은 이 세상의 유일한 신(神)입니다.
이건희씨 보세요, 돈이 있으면 죄가 있어도 죄가 없고, 돈이 없으면 죄가 없어도 죄가 있습니다.

죄 짓고도  죄 없는 정도로, 샘송의 그 양반처럼 돈이 많았으면 좋겠습니까?
말(馬)처럼 탐스런 스포츠카를 타고 말보다 더 탐스런 여인들을 탐닉하고 싶으신가요?
현재의 힘겹고, 비참한 생활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자본주의 시대의 신데렐라를 꿈꾸십니까?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입니다.
돈을 통해 삶을 안정적으로 영위하고자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당연한 욕구입니다. 하지만 자기 철학에 기반해서,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들에 바탕한 인생설계만이 당신이 꿈꾸는 안정적인 삶의 영위를 가능하게 합니다. 대박심리에 바탕한 러시안 룰렛 게임이 당신에게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할 '확률'은 정말 희박하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온갖 케이블 방송을 도배한지 오래인 대출광고들. 빚 내라고 유혹하고, 강요하는 사회, 레버리지 효과를 부동산 재테크의 금과옥조로 찬미하고, 부동산 불패가 '산상설교'처럼 암송되는 사회, 재테크라는 신흥종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아니 그렇게 허망한 욕망으로 가득찬 자기 자신으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가장 소박한 투자의 기본으로, 저축의 기본으로, 가계부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재테크라는 종교, 그 교조적 신념과 비판적 이성의 거리를 유지하고, 비로소 재테크 상식의 허와 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 워렛 버핏 사진을 책상 앞에 붙이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복사'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부를 마치 종교처럼 찬미하는 어떤 재테크 사제의 혀놀림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잠깐 머리를 식히는 건 어떻습니까?
재테크 상식으로 알려진 다음 다섯가지 '교리'의 허와 실을, 음지와 양지를 한번 점검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세계적으로 자산 거품이 꺼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예전의 '재테크 상식'은 재점검해야한다고 재무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경제교육업체 에듀머니의 도움을 얻어 우리 사회에서 '불문율'처럼 굳어져 있는 재테크 상식 다섯가지를 점검해 봤다.

① '빚 내서라도 집 사야 한다'? =  [....] 금리가 뛰고, 고물가로 가처분 소득도 줄고 있다. 버티지 못하고 집을 급매물로 내놓을 때 집이 팔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② '부자는 빚을 예찬한다'? = [....] 투자의 기본은 장기투자인데, 빚 내서 하는 투자는 그게 안된다.

③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 투자가 대세다'? = [....] '몰빵 투자'는 지금와 같은 자산가격 하락시기에 가계 유동성 위기를 불러온다.

④ '아끼는 것은 가난을 벗어날 뿐이지 부자될 수 없다'? = 보통 사람들의 자산 증식은 아끼는 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하다. [....]

⑤ '신용카드로 절세와 혜택을 챙겨야 한다'? = 미미한 절세와 부가혜택 [....] 연봉 2700만원 정도 직장인이 연간 소득공제대상이 되는 카드 사용액이 2100만원일 때 세금환급이 13만원 수준이다.

- 한겨레 안창현, 다섯 가지 재테크 상식의 허와 실 중에서





* 이 글은 에듀머니닷컴에 수록될 글의 초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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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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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승환 2008/07/30 16:18

    이 사이트는 무엇입니까? 영역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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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30 21:01

      영역 확장은 아니고...
      일종의 상호 협업적 프로젝트(?)랄까..
      http://minoci.net/552

      뭐 그렇습니다.. ^ ^;
      일단 저는 그저 배우는 입장에 불과하구요.

  2. 엔디 2008/07/30 18:53

    민노씨 블로그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새로운 글이군요. ^^ 재테크는 확실히 종교가 맞습니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에 '그리스도인의 재테크'라는 글을 실어보려고 했는데 마땅히 쓸 사람이 없어서 미루고 있습니다. ㅜ.ㅜ
    아, 좀 있으면 기도 열심히 했더니 하나님이 축복해주셔서 펀드 대박났어요, 이런 인터뷰 기사도 뜰 거 같아서 슬퍼요.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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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30 21:02

      최근의 추세는 그 정도가 이미 상식선을 한참 벗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의 미디어들도 이에 대해선 그다지 문제의식이 없고 말이죠... 하기는 버라이어티에서도 '재테크'를 홍보(현영 같은 케이스)하는 판이니 말 다했죠... 케이블은 대출업체들이 먹여살리고 있고... ㅡ.ㅡ ;

  3. 비밀방문자 2008/07/30 18:54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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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30 21:03

      오, 저로선 무척 반가운(???) 소식이네요.
      그런데 제가 반가워해도 되는건가요? ㅎ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언제라도 먼저 연락주셔도 좋습니다. : )

  4. ㅋㅋ 2008/07/30 20:52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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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Hee 2008/07/31 20:06

    대선이 끝나고 유행했던..
    ~~~~ 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되지, 라는 유행어는..
    그냥 비꼬는 게 아닌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런 인식을 하고 있기에 더욱 씁쓸했는데..

    포스팅 보니까..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게 종교적 믿음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부자들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서민들이 너무나도 많은 듯....
    결국 자기들을 옭아매는 건 줄도 모르고...orz...


    그나저나...
    ~~ 하면 부자된다. ~~로 몇억 만들기 뭐 이런 류의 책 볼 때마다...
    그런 비법 있으면 내가 더 벌지 책까지 내서 남들 다 알려주겠냐라는 생각이 들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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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8/01 01:26

      오늘도 잠깐 빠삐놈 전진버전을 언제나닷컴에서 봤는데 말이죠. ㅎㅎ

      마지막 말씀은..
      정말 그 분들께서 그런 마음으로 책을 쓰셨다면...
      무한경쟁시대의 '천사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

  6. Hwoarang 2008/07/31 23:53

    어느 순간에 이미 젖어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도 돈 좀만 더 있으면 저거 해보고 싶은데라는 생각도 들어가고 말입니다.

    미디어의 파급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재테크의 종교화(?)에 충분히 일조를 했으니까요.. 저도 꼬임에 잠시 빠졌습니다. 돈이 없어서 포기했지만서도..ㅠ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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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8/01 01:29

      저는 돈이 풍족한 정도로 있다면...
      별 욕심없이 제가 하고 싶은데 게으름 때문에 하지 못한 공부나 하면서 게으르게(ㅡ.ㅡ;) 살고 싶네요.;;;

      부족한 글에 격려 말씀 주셔서 고맙습니다.

  7. 서진 2008/08/02 07:51

    정말 공감.
    지금 대한민국은
    사교육광풍, 재테크 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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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8/02 23:57

      그 이기심을 비난할 수만은 없겠지요.
      하지만 그 이기심이 사회적인 상상력, 공동체적 상상력과 만나지 못한다면... 결국은 삶을 좀더 비참하게 만드는게 기여(?)할 수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8. Magicboy 2011/01/24 11:14

    구글 리더에서 몇몇 지역에 대한 것들을 검색해보다가 이 글이 나왔네요.. 오랜만이에요 ㅎㅎ
    (검색어는 전원 이었는데..왜 이게 나왔는지는 의문입니다..^^; )

    글 작성 시점이 2008년 7월이면.. 꽤 많은 일들이 중간에 있었겠군요 .. 열심히 재테크라는 종교에 빠져서 이것저것 공부하다보니.. 예전엔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더군요. 뭐.. 묻지마 투자 식으로 돈 던지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재미있는 부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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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1/01/24 15:06

      정말 오랜만이네요, 견습마법사님! : )
      말씀처럼 "공부하는 차원"에서는 달리 평가할만한 부분들도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잘 몰라서, 너무 추상적인 훈계글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흐흐.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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