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미롭고, 따뜻한 지적 상상력 : 스트레인저 댄 픽션 (Stranger Than Fiction, 2006) 단평
* [빨강머리앤](EBS 재방송)이 종영된 아쉬움을 이 영화가 많이 달래줬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름은 감독인 마크 포스터도 아니고, 정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윌 페렐이나 매기 질렌홀도 아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름은 각본을 담당한 자크 헬름(Zach Helm)이다.
근래에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지적이고, 감각적이며, 따뜻하면서도, 사려깊은 시나리오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의 힘은, 물론 연출력과 연기력 모두 수준급이지만, 본질적으로 시나리오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거다.
궁금해서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자크 헬름. Mr. Magorium's Wonder Emporium. 2007)이 나온다. 여기에선 감독까지 했다. '장난감 백화점'은 워낙에 혹평이 많아서 피했던 영환데, 확인차 조만간 한번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아무래도 '스트레인저 댄 픽션'에서의 재능 때문에 이른바 곧바로 '입봉'하는 출세가도를 달린 건 아닐까 추측도 해본다.
물론 이 영화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그래서 전혀 새롭게 독창적인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의 소재는, 자주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변주되었다. 제목을 기억할 수 없는 아주 오래 전 내 유년의 TV에서도 분명히 봤던 어떤 영화의 소재는 이 영화의 소재와 정확히 일치하고, '매트릭스'나 13층(조세프 루스낵. The Thirteenth Floor. 1999)과도 흡사하다. '13층'도 꽤 인상적으로 봤던 작품인데, 이 작품의 경우엔 원작이 있단다(이번에 알았다). 대니얼 갤로이. Daniel F. Galouye.가 쓴 시뮬라크론 3(Simulacron 3)'가 '13층'의 원작. 기회가 닿으면 '스트레인저 댄 픽션'과 '13층'의 내러티브를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13층'의 원작인 '시뮬라크론3'
이 영화는 매우 괴팍하고, 뭔가 있어 보이지만, 불친절한 영화가 되기 쉬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이를테면 '재킷'이나 '23'처럼),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 일으키면서, 독자에게(영화는 본질적으로 시각예술이지만, 이 영화는 그 시각적 내러티브가 '들리는' 환청을 만들어낸다, 주인공이 그런 것처럼) 영화를 '함께' 느끼고, 음미하면서, 함께 '쓰는(영화 속 엠마 톰슨처럼!)' 즐거움을 부여한다.
영화산업적 관점에서 이 영화는 훌륭한 연출자와 연기자만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경제적인' 시나리오이다. 최근 우리나라 영화의 상반기 점유율이 40%에도 미치지 못한 현실에서, 그리고 극소수 대작 영화(혹은 속편 영화)가 극장을 독식하는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퀸 라티파는 그녀의 역량을 발휘하기에는 너무 작은 역할을 맡았다.
웨인 왕의 역시나 따뜻하고, 유쾌한 코미디인 '라스트 홀리데이'(Last Holiday, 2006)에서 나는 퀸 라티파에게 반해버렸다. '스트레인저 댄 픽션'에 대해 말하자면, 관객들의 캐릭터에 대한 기대적 관습이나 선입견을 탈피할 수 있었다면 차라리 엠마 톰슨과 퀸 라피타의 배역을 서로 바꿨으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였다. 물론 엠마 톰슨의 연기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대 이상은 아니다. 딱 기대한 그 만큼이라서 그 배역 자체가 아닌 연기만으로 본다면 살짝 아쉬움이 없지 않다.
윌 페렐은 그저그런 코미디 배우인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정말 완벽하게 캐릭터와 일치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매기 질렌홀에 대해선, 그다지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녀의 출연작 중에서 그래도 꽤 많이 알려진 '새크리터리(스티븐 세인버그. Secretary. 2002) '나 '월드 트레이드 센터스(올리버 스톤. World Trade Center, 2006)'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에 속한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기존의 선입견은 거의 모두 벗겨진 것 같다. 그녀는 충분히 자신의 재능을 보여줬다.
연기의 달인(ㅡ.ㅡ;) 더스틴 호프만과 엠마 톰슨은 생략.
추.
극장에서도 개봉한 작품이었다고 하는데, 이토록 지적이며, 동시에 사랑스런 영화를 놓쳤다는게 몹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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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스트레인저 댄 픽션 (Stranger Than Fiction, 2006) - 죽이느냐 살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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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세무조사에 대처하는 그녀의 자세 : 스트레인저 댄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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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Stranger Than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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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윌패럴은 최근 한 2년사이에 가장 좋아하게 된 배우입니다.
제 블로그에서도 코미디영화 얘기만 나오면 윌패럴을 한번씩언급하는데요.
"헐리웃의 주성치"라는 호칭에 딱 맞는 배우가 아닐까 합니다.
짐캐리도 대단하지만 개인기가 너무뛰어나서 주성치랑은 좀 틀린것 같구요.
윌패럴영화는 주성치처럼 바보나 악인에서 시작해서 잠재력을 깨우치던가
개과천선을 하는 이야기로 흘러가죠. 그의 능청맞은 연기는 정말 깊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봉안했지만 진짜 재밌는 영화들이 많죠.
탤러대가 나이트, 블레이즈 오브 글로리
'헐리웃의 주성치'라니, 정말 인상적인 평가시네요. : )
(반가운 영화 제목 때문에 모처럼 놀러왔습니다)
물론 훌륭한 시나리오도 감동이었지만,
마크 포스터 감독의 연출력은 정말 늘 감동입니다.
스테이 - 네버랜드를 찾아서 - 몬스터볼 - 스트레인저 댄 픽션
전 이렇게 네개를 봤는데 모두 같은 감독이 만들었다고 보기엔
눈을 의심할 정도로 각양각색이면서도 멋진 영화들이었다죠.
포스터의 영화는 이번 '소설보다 낯선'이 처음인데요.
(어떻게 하다보니 인연이 닿지 않았는데... 새로운 007을 찍을 거란게 인상적이더군요.. )
지난 영화들도 한번 살펴봐야네요..
(앞으론 종종 오시면 좋겠습니다... ㅎ)
13층. 정말 재밌게 본 영화였는데 원작이 있었군요 *_*
"Stranger Than Fiction" 찾아 볼 영화 목록에 넣어 둬야 겠습니다. 소개 감사드립니다. (이런 류의 영화라면 대환영!)
제가 오히려 고맙고, 반갑습니다. : )
영화 재밌게 보세요.
SNL 출신 배우들은 누가 일찍 뜨느냐, 누가 늦게 뜨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정말 다들 대단한 것 같아요.
저도 즐겁고 흥미 진진하게 본 영화입니다. ^^
처음엔 SNL이 뭔가 했습니다. ^ ^;;
구글링하니까 이렇게 나오는데 이게 맞겠죠?
http://www.google.co.kr/search?q=SNL&sourceid=navclient-ff&ie=UTF-8&rlz=1B3GGGL_koKR220KR221
써머즈님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보셨을 것 같네요. : )
스토리보다 훨씬 더 감독의 연출이 더 인상깊었던 영화네요. 전 영화보다 감독에 대해 더 관심을 가졌었죠. 연출자의 능력이라는 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해주었던 영화였던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
말씀처럼 연출력도 탁월한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출력과 더불어 배우들의 연기도 탁월했지만요.
그나저나 호박꽃님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 ^;
제가 요즘 게으름이 가속도를 붙였는데,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보고싶어지는 영화군요. 시간내서 한번 봐야겠네요. :)
앗, 무지무장 반가운 그로커님! ㅎㅎ
강춥니닷, 꼭 보시(셨)길!
아.... 이게 민노씨 블로그에서 봤던 거군요...
제목 기억이 안나서 헤메고 다니다가 여기서 드디어 발견^^
dvd 빌리러 갑니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 )
감상후기는 트랙백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