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배제. 주로 전반적인 인상과 배우들에 대한 단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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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앤](EBS 재방송)이 종영된 아쉬움을 이 영화가 많이 달래줬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름은 감독인 마크 포스터도 아니고, 정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윌 페렐이나 매기 질렌홀도 아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름은 각본을 담당한 자크 헬름(Zach Helm)이다.
근래에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지적이고, 감각적이며, 따뜻하면서도, 사려깊은 시나리오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의 힘은, 물론 연출력과 연기력 모두 수준급이지만, 본질적으로 시나리오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거다.

궁금해서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자크 헬름. Mr. Magorium's Wonder Emporium. 2007)이 나온다. 여기에선 감독까지 했다. '장난감 백화점'은 워낙에 혹평이 많아서 피했던 영환데, 확인차 조만간 한번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아무래도 '스트레인저 댄 픽션'에서의 재능 때문에 이른바 곧바로 '입봉'하는 출세가도를 달린 건 아닐까 추측도 해본다.

물론 이 영화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그래서 전혀 새롭게 독창적인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의 소재는, 자주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변주되었다. 제목을 기억할 수 없는 아주 오래 전 내 유년의 TV에서도 분명히 봤던 어떤 영화의 소재는 이 영화의 소재와 정확히 일치하고, '매트릭스'나 13층(조세프 루스낵. The Thirteenth Floor. 1999)과도 흡사하다. '13층'도 꽤 인상적으로 봤던 작품인데, 이 작품의 경우엔 원작이 있단다(이번에 알았다). 대니얼 갤로이. Daniel F. Galouye.가 쓴 시뮬라크론 3(Simulacron 3)'가 '13층'의 원작. 기회가 닿으면 '스트레인저 댄 픽션'과 '13층'의 내러티브를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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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층'의 원작인 '시뮬라크론3'



이 영화는 매우 괴팍하고, 뭔가 있어 보이지만, 불친절한 영화가 되기 쉬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이를테면 '재킷'이나 '23'처럼),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 일으키면서, 독자에게(영화는 본질적으로 시각예술이지만, 이 영화는 그 시각적 내러티브가 '들리는' 환청을 만들어낸다, 주인공이 그런 것처럼) 영화를 '함께' 느끼고, 음미하면서, 함께 '쓰는(영화 속 엠마 톰슨처럼!)' 즐거움을 부여한다.

영화산업적 관점에서 이 영화는 훌륭한 연출자와 연기자만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경제적인' 시나리오이다. 최근 우리나라 영화의 상반기 점유율이 40%에도 미치지 못한 현실에서, 그리고 극소수 대작 영화(혹은 속편 영화)가 극장을 독식하는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퀸 라티파는 그녀의 역량을 발휘하기에는 너무 작은 역할을 맡았다. 
웨인 왕의 역시나 따뜻하고, 유쾌한 코미디인 '라스트 홀리데이'(Last Holiday, 2006)에서 나는 퀸 라티파에게 반해버렸다. '스트레인저 댄 픽션'에 대해 말하자면, 관객들의 캐릭터에 대한 기대적 관습이나 선입견을 탈피할 수 있었다면 차라리 엠마 톰슨과 퀸 라피타의 배역을 서로 바꿨으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였다. 물론 엠마 톰슨의 연기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대 이상은 아니다. 딱 기대한 그 만큼이라서 그 배역 자체가 아닌 연기만으로 본다면 살짝 아쉬움이 없지 않다.

윌 페렐은 그저그런 코미디 배우인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정말 완벽하게 캐릭터와 일치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매기 질렌홀에 대해선, 그다지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녀의 출연작 중에서 그래도 꽤 많이 알려진 '새크리터리(스티븐 세인버그. Secretary. 2002) '나 '월드 트레이드 센터스(올리버 스톤. World Trade Center, 2006)'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에 속한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기존의 선입견은 거의 모두 벗겨진 것 같다. 그녀는 충분히 자신의 재능을 보여줬다.

연기의 달인(ㅡ.ㅡ;) 더스틴 호프만과 엠마 톰슨은 생략.



추.
극장에서도 개봉한 작품이었다고 하는데, 이토록 지적이며, 동시에 사랑스런 영화를 놓쳤다는게 몹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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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스트레인저 댄 픽션 (Stranger Than Fiction, 2006) - 죽이느냐 살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Tracked from Different Tastes™ Ltd. 2008/07/14 07:27 del.

    ★★★★☆ (스포일러 있습니다) DVD로 감상한지가 벌써 2주 전인데 개봉작 쫓아다니고 다른 일에 치여서 많이 늦어졌습니다. 그 사이에 봤던 영화들 가운데 하나가 '넘지 말았으면 하는 선을 넘어가버린' <추격자>였었고 그랬던 덕에 이 영화의 내용에 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스트레인저 댄 픽션>은 일종의 메타-픽션 드라마입니다. 국세청 직원인 주인공 해롤드(윌 패럴)와 그의 일상과 운명을 결정하는 소설가 카렌(엠마 톰슨)이 등..

  2. Subject : 세무조사에 대처하는 그녀의 자세 : 스트레인저 댄 픽션

    Tracked from Philos의 잡다한 생각들 2008/07/28 14:11 del.

    1. 탈세 혐의로 세무조사를 받게 된 빵집 주인 아가씨가 세금도 안내고 사랑도 찾는 일거양득 성공 스토리. - 세무조사에 대처하는 그녀의 자세. 1단계: 항변.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는 세금은 낼 수 없다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2단계: 역공. 세무조사관이 자신의 가슴을 계속 쳐다보았다며 성희롱 혐의를 덮어씌운다. 3단계: 뇌물. 과자 한 개와 우유 한 잔으로 경계심을 풀게 한 후 과자 박스를 선물한다. 4단계: 유혹. 과자 박스를 물리치자 호의..

  3. Subject : Stranger Than Fiction

    Tracked from 꿈꾸는 사람 2008/09/02 12:47 del.

    Stranger Than Fiction, 2006 출연 Will Ferrell - Harold Crick Karen Eiffel - Emma Thompson Ana Pascal - Maggie Gyllenhaal Professor Jules Hilbert - Dustin Hoffman Penny Escher - Queen Latifah Tony Hale - Dave 감독 Marc Forster 각본 Zach Helm 명대사그는 거의 알지 못했다.우...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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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성치 2008/07/14 09:29

    윌패럴은 최근 한 2년사이에 가장 좋아하게 된 배우입니다.
    제 블로그에서도 코미디영화 얘기만 나오면 윌패럴을 한번씩언급하는데요.
    "헐리웃의 주성치"라는 호칭에 딱 맞는 배우가 아닐까 합니다.
    짐캐리도 대단하지만 개인기가 너무뛰어나서 주성치랑은 좀 틀린것 같구요.

    윌패럴영화는 주성치처럼 바보나 악인에서 시작해서 잠재력을 깨우치던가
    개과천선을 하는 이야기로 흘러가죠. 그의 능청맞은 연기는 정말 깊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봉안했지만 진짜 재밌는 영화들이 많죠.
    탤러대가 나이트, 블레이즈 오브 글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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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14 13:16

      '헐리웃의 주성치'라니, 정말 인상적인 평가시네요. : )

  2. 홀리 2008/07/14 11:47

    (반가운 영화 제목 때문에 모처럼 놀러왔습니다)

    물론 훌륭한 시나리오도 감동이었지만,
    마크 포스터 감독의 연출력은 정말 늘 감동입니다.

    스테이 - 네버랜드를 찾아서 - 몬스터볼 - 스트레인저 댄 픽션
    전 이렇게 네개를 봤는데 모두 같은 감독이 만들었다고 보기엔
    눈을 의심할 정도로 각양각색이면서도 멋진 영화들이었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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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14 13:18

      포스터의 영화는 이번 '소설보다 낯선'이 처음인데요.
      (어떻게 하다보니 인연이 닿지 않았는데... 새로운 007을 찍을 거란게 인상적이더군요.. )
      지난 영화들도 한번 살펴봐야네요..

      (앞으론 종종 오시면 좋겠습니다... ㅎ)

  3. 구루마루 2008/07/15 13:53

    13층. 정말 재밌게 본 영화였는데 원작이 있었군요 *_*

    "Stranger Than Fiction" 찾아 볼 영화 목록에 넣어 둬야 겠습니다. 소개 감사드립니다. (이런 류의 영화라면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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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17 06:11

      제가 오히려 고맙고, 반갑습니다. : )
      영화 재밌게 보세요.

  4. 써머즈 2008/07/16 02:05

    SNL 출신 배우들은 누가 일찍 뜨느냐, 누가 늦게 뜨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정말 다들 대단한 것 같아요.

    저도 즐겁고 흥미 진진하게 본 영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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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호박꽃 2008/07/16 09:49

    스토리보다 훨씬 더 감독의 연출이 더 인상깊었던 영화네요. 전 영화보다 감독에 대해 더 관심을 가졌었죠. 연출자의 능력이라는 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해주었던 영화였던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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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17 06:14

      말씀처럼 연출력도 탁월한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출력과 더불어 배우들의 연기도 탁월했지만요.
      그나저나 호박꽃님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 ^;
      제가 요즘 게으름이 가속도를 붙였는데,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6. 그로커 2008/07/18 10:41

    보고싶어지는 영화군요. 시간내서 한번 봐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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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21 06:06

      앗, 무지무장 반가운 그로커님! ㅎㅎ
      강춥니닷, 꼭 보시(셨)길!

  7. 필로스 2008/07/27 00:25

    아.... 이게 민노씨 블로그에서 봤던 거군요...
    제목 기억이 안나서 헤메고 다니다가 여기서 드디어 발견^^
    dvd 빌리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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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27 05:18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 )

    • 필로스 2008/07/28 14:12

      감상후기는 트랙백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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