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왜 뜬금없이 된장녀 얘기를 꺼내는가 하면, 먹는 언니께서 쓰신 된장녀 관련 포스트를 읽고 그러는 거다. (된장녀들이 밥보다 비싼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1
물론 예전에 된장녀 이슈가 한참일 때도 관련글을 쓴 적 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른 관점에서 끄적거려보는거다.
1. 미끼용어, 된장녀. 2
나는 된장녀란 말은 가급적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그냥 내 작은, 그런데 그다지 절실하지는 않은(ㅡ_-;; ) 바람일 뿐이다. 꼭 쓰고 싶으면 쓰는거지, 뭐. 그것까지 내가 참견하고 싶은 마음은 없고, 이런 말을 쓴다고 해서 무슨 여성 전체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건 그냥 미디어들의 관심유도용 미끼 용어로 정착된 케이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 지극히 자극적이며, 감정적인 용어는(물론 그런 자극 자체가 흥미요소이긴 하지만) 대체로 이성적이고, 평화로운(^ ^) 토론을 방해하곤 한다. 그런 가장 대표적인 저질용어 중 하나인 것 같다.
2. 지금은 재무전문가(사진 이상하게 나왔다고 투덜대시던데, 그럴만하다)이자 작가인, 그런데 한 때 여대 학생회장을 했던 분 왈,
3. 된장녀의 짝말.
있다. 앞서도 말했듯, 남자도 여자도 그런 의존적 경제관념은 있어왔다. 이게 바람직하지 못하긴 하지만, 누구에게도 이런 성향은 조금씩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런 성향을 두둔하자는 것도 아니다. 나도 다분히 그렇다(그렇다. 나, 경제관념 몹시 부족하다. 실은 관념을 가질만한 돈 자체가 없다). 그러니까 '왜 된장녀의 짝말은 없냐?' 이렇게 항변하는 여자들은 억울할 것도 별로 없다. 그런 말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기둥서방.
이건 된장녀보다 한참 전부터 있어왔지 않나.
아님 말구. ㅡ.ㅡ;
4. 된장녀와 스타벅스
된장녀와 스타벅스는 그다지 관련이 크지 않은 것 같다. 된장녀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것들 중 하나가 스타벅스일지는 모르겠지만, 5, 6천원짜리 커피 먹는다고 된장녀라니. 좀 억울하다. 이건 가만히 보면 미디어에서 '된장녀' 이슈를 소비하기 위해(특히나 김옥빈 망언 사건이 인구에 회자되던 당시에) 의도적으로 스타벅스와 연결시킨 것 같다.
된장녀에 대한 다수설(?)이 경제의존적인 성격(특히나 남자, 애인에 대한 경제의존적 성격)과 낭비벽(명품애호증)이라면 5천원 안팎의 커피가 남자애인 삥뜯기라거나 낭비벽이라고 말하기엔 그 물리적인 수치가 너무 낮다. 스타벅스 커피가 한 2, 3만원하면 몰라도.
5. 문화의 방식, 자본의 방식
양자는 점점 더 서로 구별이 없이 한몸이 되어간다. 자본은 점점 더 문화라는 외피를 입고, 침투한다. 침투한다는 말이 좀 딱딱하면, 스며든다. 그래, 스며든다, 라는 말이 좀더 어울리겠다. 이게 가장 촌스럽게 실현되는 방식이 애니밴드 같은 덜 떨어진 기획상품이다.
암튼 각종 영화와 시트콤에서 스타벅스는 등장하고, 한 때 한국에까지 열혈펜들을 만들어낸 '프렌즈'같은 미국 시트콤에서 죽때리는 데가 바로 '스타벅스'다. 나는 '프렌즈' 한번도 본 적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 그런 영화와 시트콤 드라마의 모던한 도시 청춘남녀들이 낭만적인 삘 한 가득한 이야기들을 담뿍 들고 '스타벅스'에서 죽 때리면 것도 폼나긴 하겠다는 생각, 당연히, 든다. 그럼 당연히 그거 보고 모방심리 잔뜩 충전한 대한민국 청춘남녀들이 '스타벅스'에서 죽 때리는 것도 당연하다(이거 정말 비난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그런 문화적인 어떤 풍경들, 그런 추상적인 이미지들을 유통시키는 영화사, 배급사, 방송사, 미디어들은, 유태인들이 아주 강하게 침투, 아니 스며들어 있는 기업들이다. 적어도 세계유일의 수퍼파워 미국을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고 안다. 유태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게 뭐냐면,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자신들의 지배력을 실현할 수 있을지를 정말 정확하게 안다는 거다. 그건 문화(헐리웃)과 미디어(방송사)다.
이제 21세기형 권력기관은 영화사와 미디어관련 기업들이다.
6. 문화와 자본의 결합, 그리고 이스라엘 마피아들.
좀 추상화시키자. 그러니까 모델화, 도식화시켜보자는 거다.
(친) 이스라엘 자본은 좀 독특한 자본이다.
그 자본은 (초기 시오니즘과는 상관없이 전투화된) 시오니즘과 관계 맺고 있는, 혹은 그런 의심을 강하게 받는 친민족적이면서, 친국가적인 자본이다. 그러니까 자국의 정치, 입법, 사법, 행정부 전체를 상대로 도박판 벌이는 삼성과도 좀 다르다. 3
각설하고, 이스라엘 자본, 혹은 이스라엘에 친화적인 기업들은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자본(가령 스타벅스)는 세련된 문화적인 이미지들로 자신을 숨기는 자본이다. 방송과 미디어, 문화상품들 속에 그 자본 자체의 야만성은 위장한다. 그런데 실은 그렇게 달콤한 청춘남녀들 허파에 바람 잔뜩 넣어서 삥뜯은 돈이 이스라엘에서 아랍인들 괴롭히는데 지원하는데 쓰인다. 양의 탈을 쓴 늑대랄까.. 뭐 그런 촌스럽지만, 섬뜩한 느낌 물씬 나는 그런 자본이다.
너무 무식과감하게 도식화시킨 점은 있지만, 뭐 대충 이런 구도로 돌아가는 것 같긴 하다. 좀더 정확한 밑그림은 댓글 논평을 통해서 보충받으면 좋겠다.
7. 스타벅스와 세련, 낭만, 그리고 의식적 소비
뭐, 대단한 소리 하자는 거 아니다.
세련이란 무엇인가?
낭만이란 무엇인가?
미국 시트콤 따라서 스타벅스에서 커피마시면 뉴요커된 듯한 환상(을 갖고 스타벅스 가는 촌스런 대한민국 청춘남녀들이야 많지 않겠지만서도)이 내가 보기엔 가장 촌스런 문화적인 소비행태다. 그리고 그건 그다지 낭만적이지도 않다. 물론 이게 우리나라 대중문화, 적어도 지상파와 케이블의 연예프로그램 수준이기는 하지만서도.
별게 세련이 아니라, 별게 낭만이 아니라, 자신이 최소한 알고 있는, 사랑하는 어떤 것을 위해 일상을 그런 관념의 실천형이 되도록 조금씩 노력하는 그 일상의 모든 행위들이 세련이라고 나는 소박하게 생각한다.
그건 별개 아니다. 그런 의식과 신념과 낭만(이 닿아 있다고 생각하는 아주 단순한 휴머니즘.. 최소한 이스라엘에서 미사일 빵빵 때려서 아랍아이들이 죽어나가고, 그 아이들이 청소년되서 자살특공대 자원하는 이 야만에 반대하는거)이 일상속에서 실천으로 '닦여서, 빛나는'되는 거, 그게 세련이다.
나는 내 나름의 세련된 문화생활(이란거 솔직히 거의 없지만)을 위하여 스타벅스는 절대로 가급적 가지 않는다.


* 관련 웹페이지
1. 국제민주연대, 웹진 '기업과 인권' [06-08-28]
스타벅스의 진실
2. 인권운동 사랑방, 인권오름 제 23 호 [2006년 09월 27일]
“스타벅스를 보면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생각나요”
[기획 연재 - 내 삶의 불복종 ①] 나는 스타벅스에 가지 않는다 (지은)
3. http://www.inminds.co.uk/boycott-starbucks.html
4. capcold
이스라엘의 학살과 스타벅스 불매운동의 효과. [2006. 08. 21.]
p.s.
제목은 미끼다.
물론 의도적이다.
(미끼를 좀 많이 물었으면 좋겠지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_^_)
그렇다.
된장녀는 있다.
그건 기둥서방이 존재하는 것과 같이 실재한다.
그 된장녀와 기둥서방은... (좀 식상한 멘트이긴 하지만) 당신이고, 나이며, 우리들이다.
항상 그래왔다.
아닌척 하지 말자.

물론 예전에 된장녀 이슈가 한참일 때도 관련글을 쓴 적 있다.
more..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른 관점에서 끄적거려보는거다.
1. 미끼용어, 된장녀. 2
나는 된장녀란 말은 가급적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그냥 내 작은, 그런데 그다지 절실하지는 않은(ㅡ_-;; ) 바람일 뿐이다. 꼭 쓰고 싶으면 쓰는거지, 뭐. 그것까지 내가 참견하고 싶은 마음은 없고, 이런 말을 쓴다고 해서 무슨 여성 전체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건 그냥 미디어들의 관심유도용 미끼 용어로 정착된 케이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 지극히 자극적이며, 감정적인 용어는(물론 그런 자극 자체가 흥미요소이긴 하지만) 대체로 이성적이고, 평화로운(^ ^) 토론을 방해하곤 한다. 그런 가장 대표적인 저질용어 중 하나인 것 같다.
2. 지금은 재무전문가(사진 이상하게 나왔다고 투덜대시던데, 그럴만하다)이자 작가인, 그런데 한 때 여대 학생회장을 했던 분 왈,
"여자인 내가 생각해도 정말 된장녀 있다니까".처음에는 좀 놀랐다. 그런 말 나올줄 몰랐다. 솔직하고, 션션한 성격인 건 알았지만 좀 의외였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된장 (스타일)은 항상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거다.
3. 된장녀의 짝말.
있다. 앞서도 말했듯, 남자도 여자도 그런 의존적 경제관념은 있어왔다. 이게 바람직하지 못하긴 하지만, 누구에게도 이런 성향은 조금씩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런 성향을 두둔하자는 것도 아니다. 나도 다분히 그렇다(그렇다. 나, 경제관념 몹시 부족하다. 실은 관념을 가질만한 돈 자체가 없다). 그러니까 '왜 된장녀의 짝말은 없냐?' 이렇게 항변하는 여자들은 억울할 것도 별로 없다. 그런 말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기둥서방.
이건 된장녀보다 한참 전부터 있어왔지 않나.
아님 말구. ㅡ.ㅡ;
4. 된장녀와 스타벅스
된장녀와 스타벅스는 그다지 관련이 크지 않은 것 같다. 된장녀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것들 중 하나가 스타벅스일지는 모르겠지만, 5, 6천원짜리 커피 먹는다고 된장녀라니. 좀 억울하다. 이건 가만히 보면 미디어에서 '된장녀' 이슈를 소비하기 위해(특히나 김옥빈 망언 사건이 인구에 회자되던 당시에) 의도적으로 스타벅스와 연결시킨 것 같다.
된장녀에 대한 다수설(?)이 경제의존적인 성격(특히나 남자, 애인에 대한 경제의존적 성격)과 낭비벽(명품애호증)이라면 5천원 안팎의 커피가 남자애인 삥뜯기라거나 낭비벽이라고 말하기엔 그 물리적인 수치가 너무 낮다. 스타벅스 커피가 한 2, 3만원하면 몰라도.
5. 문화의 방식, 자본의 방식
양자는 점점 더 서로 구별이 없이 한몸이 되어간다. 자본은 점점 더 문화라는 외피를 입고, 침투한다. 침투한다는 말이 좀 딱딱하면, 스며든다. 그래, 스며든다, 라는 말이 좀더 어울리겠다. 이게 가장 촌스럽게 실현되는 방식이 애니밴드 같은 덜 떨어진 기획상품이다.
암튼 각종 영화와 시트콤에서 스타벅스는 등장하고, 한 때 한국에까지 열혈펜들을 만들어낸 '프렌즈'같은 미국 시트콤에서 죽때리는 데가 바로 '스타벅스'다. 나는 '프렌즈' 한번도 본 적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 그런 영화와 시트콤 드라마의 모던한 도시 청춘남녀들이 낭만적인 삘 한 가득한 이야기들을 담뿍 들고 '스타벅스'에서 죽 때리면 것도 폼나긴 하겠다는 생각, 당연히, 든다. 그럼 당연히 그거 보고 모방심리 잔뜩 충전한 대한민국 청춘남녀들이 '스타벅스'에서 죽 때리는 것도 당연하다(이거 정말 비난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그런 문화적인 어떤 풍경들, 그런 추상적인 이미지들을 유통시키는 영화사, 배급사, 방송사, 미디어들은, 유태인들이 아주 강하게 침투, 아니 스며들어 있는 기업들이다. 적어도 세계유일의 수퍼파워 미국을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고 안다. 유태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게 뭐냐면,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자신들의 지배력을 실현할 수 있을지를 정말 정확하게 안다는 거다. 그건 문화(헐리웃)과 미디어(방송사)다.
이제 21세기형 권력기관은 영화사와 미디어관련 기업들이다.
6. 문화와 자본의 결합, 그리고 이스라엘 마피아들.
좀 추상화시키자. 그러니까 모델화, 도식화시켜보자는 거다.
(친) 이스라엘 자본은 좀 독특한 자본이다.
그 자본은 (초기 시오니즘과는 상관없이 전투화된) 시오니즘과 관계 맺고 있는, 혹은 그런 의심을 강하게 받는 친민족적이면서, 친국가적인 자본이다. 그러니까 자국의 정치, 입법, 사법, 행정부 전체를 상대로 도박판 벌이는 삼성과도 좀 다르다. 3
각설하고, 이스라엘 자본, 혹은 이스라엘에 친화적인 기업들은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자본(가령 스타벅스)는 세련된 문화적인 이미지들로 자신을 숨기는 자본이다. 방송과 미디어, 문화상품들 속에 그 자본 자체의 야만성은 위장한다. 그런데 실은 그렇게 달콤한 청춘남녀들 허파에 바람 잔뜩 넣어서 삥뜯은 돈이 이스라엘에서 아랍인들 괴롭히는데 지원하는데 쓰인다. 양의 탈을 쓴 늑대랄까.. 뭐 그런 촌스럽지만, 섬뜩한 느낌 물씬 나는 그런 자본이다.
너무 무식과감하게 도식화시킨 점은 있지만, 뭐 대충 이런 구도로 돌아가는 것 같긴 하다. 좀더 정확한 밑그림은 댓글 논평을 통해서 보충받으면 좋겠다.
7. 스타벅스와 세련, 낭만, 그리고 의식적 소비
뭐, 대단한 소리 하자는 거 아니다.
세련이란 무엇인가?
낭만이란 무엇인가?
미국 시트콤 따라서 스타벅스에서 커피마시면 뉴요커된 듯한 환상(을 갖고 스타벅스 가는 촌스런 대한민국 청춘남녀들이야 많지 않겠지만서도)이 내가 보기엔 가장 촌스런 문화적인 소비행태다. 그리고 그건 그다지 낭만적이지도 않다. 물론 이게 우리나라 대중문화, 적어도 지상파와 케이블의 연예프로그램 수준이기는 하지만서도.
별게 세련이 아니라, 별게 낭만이 아니라, 자신이 최소한 알고 있는, 사랑하는 어떤 것을 위해 일상을 그런 관념의 실천형이 되도록 조금씩 노력하는 그 일상의 모든 행위들이 세련이라고 나는 소박하게 생각한다.
그건 별개 아니다. 그런 의식과 신념과 낭만(이 닿아 있다고 생각하는 아주 단순한 휴머니즘.. 최소한 이스라엘에서 미사일 빵빵 때려서 아랍아이들이 죽어나가고, 그 아이들이 청소년되서 자살특공대 자원하는 이 야만에 반대하는거)이 일상속에서 실천으로 '닦여서, 빛나는'되는 거, 그게 세련이다.
more..
나는 내 나름의 세련된 문화생활(이란거 솔직히 거의 없지만)을 위하여 스타벅스는 절대로 가급적 가지 않는다.


* 관련 웹페이지
1. 국제민주연대, 웹진 '기업과 인권' [06-08-28]
스타벅스의 진실
2. 인권운동 사랑방, 인권오름 제 23 호 [2006년 09월 27일]
“스타벅스를 보면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생각나요”
[기획 연재 - 내 삶의 불복종 ①] 나는 스타벅스에 가지 않는다 (지은)
3. http://www.inminds.co.uk/boycott-starbucks.html
4. capcold
이스라엘의 학살과 스타벅스 불매운동의 효과. [2006. 08. 21.]
p.s.
제목은 미끼다.
물론 의도적이다.
(미끼를 좀 많이 물었으면 좋겠지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_^_)
그렇다.
된장녀는 있다.
그건 기둥서방이 존재하는 것과 같이 실재한다.
그 된장녀와 기둥서방은... (좀 식상한 멘트이긴 하지만) 당신이고, 나이며, 우리들이다.
항상 그래왔다.
아닌척 하지 말자.

- 요즘 내 관심사 중 하나는 다음 블로거뉴스의 편집경향인데, 다음 블로거 뉴스에서 좋아하는 아이템 중 하나가 이런 류의 글인 것 같다. 여기에는 어떤 적극적인 평가도 없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글 재밌게 잘 읽었다. 다만 된장녀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글이다. 내 글처럼. ^ ^;;
-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이 글도 미끼용어를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네. ㅡㅡ;;
삼성은 자본 증식 요구에 부합하는 모든 것들을 상대로 '작업' 벌이겠다는 그야말로 순수한 자본욕구를 대변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 모든 '작업'들은 대한민국 잘살게 해보겠다는 박통식의 무대뽀식 유교정치, 혹은 왕조정치와도 다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적을 쳐부셔야 겠다는 그런 게 아니라, 아무리 좋게 봐도, 삼성 임직원 잘먹고 잘살겠다는 차원에서, 작업을 일삼는, 그런 점에서는 초국가적인 성격을 갖는 자본이다. 그런 자본은 국가단위의 사고, 민족단위의 사고도 거의 없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박이 필요한 국면에서는 '삼성 망하면 대한민국 절딴난다'는 식으로 자신과 공생관계에 있는 미디어를 이용한다. 물론 그 자본욕구는 '장자 몽땅 상속'을 거쳐야 하는 한국에 특유한 욕구를 가진 자본이기도 하다.












